유행도 어떤 사회의 시간적 필요의 일 현상인 것 같다. 상류계급의 유행이 중류나 하류 계급에 반드시 유행하지 아니하며 일본의 유행이 반드시 조선에 유행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필요의 차이가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예전과 달라서 교통기관의 발달은 세계 각국인의 거리를 점점 단축하게 해놓은 결과 아메리카인의 생활은 직접 우리에게 관계되게 되고 남양군도의 변화는 세계 각국에 영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메리카나 구라파의 유행은 조선에까지 유행하게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생활과 우리의 생활 사이에 어떠한 공통이 있는 까닭일 것이다. 생활의 공통이 없는 곳에는 공통된 유행이 없는 것이니 따라서 그만한 필요를 느끼는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 사회처럼 생활의 진전이 지리한 곳에는 유행까지도 지완(遲緩)하여 족히 말할 것은 없으나 어떻든 일부 사회에는 남의 후진(後塵)이나마 유행을 좇는 습속이 있는 모양이니 우선 가장 문제거리 여자단발 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어떠한 필요에서 생기지 않은 것이라 하면 거짓말일 것이니 언제 어느 잡지에 여러 선배들의 평론도 난 일이 있었지만 그것이 시간적으로 영구한 필요를 가졌다 하면 그것은 반드시 일반 사회에 모조리 실행되어 유행이란 말까지 잊어버리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되는 것은 내가 직접 들은 말은 아니나 어떤 단발 여자에게 어떤 사람이 그 단발한 이유를 물으니까 그것은 활동 능력이 높아지는 까닭이라고 대답하더라고. 그 사람은 즉시 그 자리에서 조롱 비슷하게 하는 말이 머리를 깎는 것보다도 됫똑됫똑하는 구두 뒤축을 낮추는 것이 활동 능률을 높이는 데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중산모 밑에 남바위 쓰는 이도 있지만, 그것을 볼 때 우리의 유행심리는 일종의 웃음을 일으킨다. 그러나 중산모 밑에 남바위를 쓰는 것은 어느 의미로 보아서 실용적 일는지는 모르지마는 구두 뒤축은 그대로 두고 머리만 깎는다는 데는 모순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병적 유행이다. 병적 유행은 사회를 망친다. 단발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요, 구두 뒤축을 억지로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다. 유행은 생활의 가장 정직한 표현이니 우리의 추태를 남에게 보이지 말기를 노력하자는 말이다.

사람이란 몹시 똑똑한 체하는 동물이다. 또한 몹시 어리석은 일을 하는 동물이다. 서양에서는 최고 공훈이 있는 자에게 몽둥이의 진보(?)된 원수장(元帥狀)이란 것을 주는 습속이 있으며 각국의 주뇌자(主腦者)는 자기에게 충실한 자에게는 개모가지에 패를 달아주듯이 쇳조각으로 만든 표를 채워 주어 더 격(格)을 자기네에게 충실하기를 여(勵)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욱 어리석고 우습고 나중에는 이상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형틀을 모가지에 걸고 그것에 입 맞추고 그것에 절하고 그것에 기도하는 예수교인의 십자가다. 십자가는 우리 법률에 중죄수를 죽이던 형틀이다. 그 형틀 위에서 예수라 하는 성자가 죽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2천 년간이나 그 형틀은 세계 인류의 신앙을 지배하였다. 패금(貝金)도 일부 사회의 신앙을 지배하는 중이다. 인류가 그만큼 어리석으므로 말미암아서 사람을 죽인 형틀은 그만큼 위대하여진 것이다. 예수교인의 새로이 만들어 놓은 십자가의 의의는 여기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생각하였다. 감옥에는 반드시 나쁜 사람만 가는 것이 아니다. 악하지 않은 사람도 간다. 어떤 때는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도 간다. 그러면 지옥에도 나쁜 사람뿐이 아니라 좋은 사람도 가는지 모른다고.

하루는 꿈을 꾸었다. 그는 지옥에를 가게 되었다. 그는 옥문밖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퉁기고 울었다. 그러나 사자는 밀쳐 넣었다.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다. 그는 며칠을 눈을 감고 먹지도 않고 누웠었다. 그는 무섭고 답답하여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는 닷새 후에 지옥 속을 보았다. 지옥은 조금도 무서움이 없었다. 지옥 속도 세상이 있었다. 그는 바깥 세상을 잊어버렸다. 자기 집에 있는 것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다, 지옥은 자기 집이었다. 자리나 책상이나 벽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자기의 생활이나 지옥속의 생활이나 조금도 다를 것 없었다. 그는 눈을 떴다. 그는 혼자 웃었다. 그러나 사람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세계가 있다. 그것은 세계라는 범위를 나가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들은 넓은 세계를 국한하여 그 속에 들어앉지 않으려 한다. 즉, 스스로 자기의 감옥을 짓는다. 그러는 동안에 상여는 그를 실으러 온다 하는 결론을 지을 줄을 모르고 다만 지옥이나 여기나 마찬가진가? 하고 입을 벌린 채 생각하여 볼 뿐이었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