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우리들은 부산발 신경행 급행 열차 식당 안에서 비루병과 일본술 도쿠리를 지저분히 벌려놓은 양탁(洋卓)을 새에 두고 앉았다. 마침 연말 휴가로 귀향하던 도중 우리는 부산서 서로 만난 것이다. 넷이 모두 대학 동창이요, 또 모두가 같이 동경에 남아서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광고쟁이 한 사람은 축산 회사원, 한 사람은 조선신문 동경지국 기자, 그리고 나. 우리들은 기실 대학을 나온 이래 이렇게 오랜 시간 마주 앉아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 우리는 만취하기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술에도 담배에도 이야기에도 시진하였다. 그때에 신문 기자는 이 열차에 오를 적마다 머릿속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노라 하며 다시 우리들의 주의를 이끌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지금 세상에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퍽이나 많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는 이상한 사나이였다. 하나 나는 아직까지도 그의 본명을 모른다. 그래 여러 사람이 부르던 것처럼 나도 여기서 그를 왕백작이라고 부르기로 하련다.
그런데 내가 처음 왕백작을 만나기는 그다지 큰소리로 말할 것은 못 되나 사실은 동경 A 경찰 유치장 속에서였다. 바로 3년 전의 일이니 내가 ××사건에 관계하여 들어갔을 때이다. 그러므로 그를 왕백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것도 이를테면 구류들과 형사들과 간수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흥미 있는 일은 청년 왕백작이 대체 무슨 사건으로 해서 들어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유치장 속에서 대단히 인기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그가 누구에게 대하여서나 제일 부쩝이 좋았고 또 호통을 잘 부려 주위 사람들을 매우 우습게 혹은 귀찮게까지 만들기 때문이다. 퉁명스런 구류인들도 결국은 그의 일을 놀리던가 핀잔을 하던가 하면서 그나마 무료함을 꺼주는 위로로 삼고 있는 터였다.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할 대로 고요한 유치장 내의 암울한 공기를 깨뜨리며 이 모든 사람의 심란한 낮졸음을 깨우치는 것두 그 사나이였다.
“탄나 탄나상.”
이렇게 그는 밖으로 향해 부르기가 일쑤였다.
유치장에 들어간 다음날 나는 이 기이한 발음에 퍽이나 놀랐다. 그것은 바로 맞은편 쪽 방으로부터였으나 아무래도 그 목소리의 임자가 조선 사나이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포쿠데스요. 포구 변소, 변소에 가구 싶어요.”“왕백작인가.”
“하이 하잇.”
그것이 아주 질겁할 말큼 황송한 목소리이다. 구류인들은 모두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그래도 간수는 그이가 백작이라 하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변소에 내보낼 시간이 아닌 데도 드디어는 패검소리를 제가닥대며 철창문을 열며 그쪽으로 간다. 이래서 감방 사람들은 말짱 졸음을 깨치고 그래서 또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는다. 물론 그다지 불평일 게두 없지만. 그냥 너무 지루하던 끝이라 그렇게나마 파적을 하는 것이렸다. 그러나 그 중에도 이 음산한 분위기에서 겨우 구함을 받은 것 같아 철창 문 밖을 몰래 내다보려고 우죽우죽 엉덩이를 쳐드는 작자도 있다. 내 바로 옆에 쭈그리고 있던 전과 3범의 대야머리는 목을 움츠리고 어깨를 으쓱 올리면서 푸념을 한다.
“자식 또 떠들어대네.”
“저 사내는 어째서 들어온 모양인가”
하고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야 모르지만, 저래 보여두 저고사 자네네 백작이랍데.”
하고 전과자가 입맛 쓰다는 듯이 웅얼거린다.
“저놈은 내가 사상가야라구 아주 얼러댄다니까.”
“저 녀석 애비가 조선 어딘가의 지사라나.”
이번은 맞은편에 쭈그리고 있던 쇠들쇠들 말라빠진 고무 도적이 말을 걸었다. 그때 나는 옳지 하고 생각이 났다. 암 그렇지, 그놈이 ××도지사의 아들임에 틀림없지. 긴데 가만 있게나. 거기서 이놈이 또 수작을 하는 거야.
이놈은 본시 백작과 같은 방에 있으면서 백작하고 몰래 수군거리다가 간수의 눈에 띄어 전방(轉房)되었다던가 그래서 왕백작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셈인지.
“들으니까 저 녀석이 또 백만장자라겠지. 그래 조선 신마이 자네는 모르는가, 그래 몰라? 저놈은 저래두 사람은 무척 좋은 사나일세.”
“언제쯤 들어왔는가.”
나는 재차 물었다.
“반 년두 더 되었드군.”
“무슨 일로.”
“나두 모르지만 제딴은 아주 큰일을 저질렀다구 그러든데.”
그러고 이 고무 도적의 설명에 의하면 왕백작은 매일 특고실(特高室)에 불려 나가 마음대로 사먹고 싶은 맛나는 음식을 주문해 먹으면서 신문과 잡지도 자유롭게 읽으며 또 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의해보니까 그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점심 전에 불리어 나간다. 그러면 고무 도적이 그 뒤에서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이렇게 중얼대곤 하였다.
“저 녀석은 오늘은 또 중국요리를 먹구 들어올 게야……아 ── 아 나는 담배라두 한 대 피워 물었으면, 담배라두 한 대…….”
그런데 나는 드디어 특고실에서 그 고무 도적의 이야기와는 얼토당토 않은 일을 하고 있는 왕백작을 발견하였다. 유치장을 나서면 바로 오른쪽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다. 거기를 올라가 막다른 곳에 특고실의 표찰이 걸려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밝은 데로 나갔던 탓인지, 눈이 부시어 보이지 않고 눈물이 솟구어 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켠 모퉁이 의자에 걸터앉아 현기증과 가뿐 숨결을 죽이려 하였다. 겨우 제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까 내 앞에는 어느새 유령과 같이 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것이 히죽이 웃는다.
바로 이 사나이로구나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를 보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 꼬락서니. 나이는 한 스물예닐곱, 포로가 된 타타르인같이 헤어진 양복에 머리는 장발장의 그것같이 길고 더부룩하다. 다만 그 희고도 넓은 이마와 공허스런 큼직한 눈, 둥그스럼한 얼굴이 겨우 사람이라는 현실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그럴싸하여 그런지 얼굴과 몸가짐의 어느 구석엔가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운 즐거움과 상인(常人) 아닌 귀공자 풍이 깃들이고 있었다. 그것이 소매를 추키고 손에 흠뻑 더러운 걸레를 쥐고 서 있다.
조리(슬리퍼)도 걸치지 않은 채 걸레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발은 11 11과 같이 더러웠다. 그리고 발가락 사이로는 시꺼먼 흙이 삐죽삐죽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도 딴 사상 혐의와 같이 불리어 나가 매일 수기를 쓰고 있음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날은 또 특별히 소제를 돕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윽하여 대밭 밑에 몸을 구부리면서 걸레질을 하는 시늉을 지으며 주의를 꺼리는 듯한 나지막한 조선말로 속삭였다.
“실수 없이 하게나. 똥구래미가 있으면……잘 부탁만 하면 모치떡 사먹을 수가 있다네.”
그러고는 그는 얼굴을 쳐들고 입맛이 당기는 듯한 비굴한 동정의 웃음을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옆에 놓인 바케스 속에 걸레를 넣어 쥐어짜더니 그만 옆에 테이블 밑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갔다. 나는 그의 병적으로 뚱뚱 부어오른 꺼먼 다리를 보면서 심한 각기로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다리는 더욱 악화된 모양으로 그의 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고 그 때문인가 오랜 동안 예의 호출도 오지 않게 되었다.
어떤 날 밤 나는 잠깐이나마 변소 안에서 그와 함께 몰래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내 방 사람들이 모두 변소에 나갔을 때다. 바로 왕백작은 괴로운 자세로 같은 방 사람들보다 떨어져 혼자 소변대 위에 서 있었다. 나는 그의 옆으로 가서 나란히 서 있었다.
“몸은 괜찮은가.”
“응 고맙네……괜찮어.”
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하나 그 목소리가 듣기에 너무나 가늘고 숨이 괴로워 보이기에 나는 놀라서 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런 즉 그는 아주 뻐기는 듯이 히죽 웃더니
“나는 죠렌(단골)이어서 뭐.”
한다. 그 얼굴은 이상하게도 찔린 듯이 새하얗다.
“언제 나가는가.”
“나야 아마 송국(送局)일걸.”
그러나마 기운 없는 떨리는 목소리면서도 어쩐지 내심 득의양양한 눈치였다.
“크게 다치는 일인가.”
“나? 헤헤헤 그게야 누구 보구 말할 수 있나 헤헤헤.”
하더니만 그는 별안간 커다란 공허스런 눈을 희번덕이며 목구멍이 메인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아나키스트란 무언가?”
“아나키스트라니 거야 말하자면……”하고 나는 그 말문이 막히어 어쩔 줄을 모르며 끝을 못 맺었다. 글쎄 한 3년 전의 일이니까 옛적이라고도 할까. 그 시절에 있어서는 아나키스트도 있기는 하였을 것이다. 그러자 이 왕 백작이 돌연 넘어질 듯이 몸을 비틀거리며 에헤에헤 웃어대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에헤헤 에헤 내가 그것이라우 바루 그것이야.”
그게 너무 엉뚱한 큰 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펄쩍 놀라며 옆에 술통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오금을 펴지 못하였다. 간수가 듣지나 않았을까 하여. 어쨌든 이 모양으로 그는 실로 무지하고 광신적이며 또 그리고 곧잘 허풍을 떠는 성질이었다. 그는 병이 중태에 이르렀을 때에도 간수의 눈을 피해가며 철창 문 옆에 비스듬히 기대고는 아무 방 사나이 보고라도 말을 걸고 선전하였다.
“아마 결국 나는 아나키스트란 말이야. 무슨 일이 나기만 하면 턱하고 붙들려오거던. 그런데 아마 아나키스트란 무엔지 네 아냐 말이다? 응 그렇지 모를 테지?”그러나 감방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의 말을 곧이 들을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저 헤벌심 헤벌심 불어 넘기고 만다. 하나 나는 하루는 다시 특고실로 불리어갔을 때 그에 대한 모든 일을 알 수가 있었다. 거기에는 그의 아버지가 찾아와 앉았다. 금테 안경을 낀 허어연 수염을 단 뚱뚱하고 점잖은 신사였다. 물론 ××도지사이었음에 틀림없다. 주임이 이 노백작에게 그의 아들의 일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왕백작은 사실로 수십 회나 여러 곳 서에 붙들려 다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죠렌이라는 것도 믿을 성싶은 말이다.
그리고 그의 범죄라는 것이 또 늘 아주 기괴하였다. 어디서든지 부덕한 사람이 검속된 것을 안다 치면 무슨 생각엔지 그 뒤다름으로 주인공인 사람한테 자못 중대해 보이는 편지를 써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큰일이구나 해서 뛰어가 살펴보면 역시 사나이의 짓인 것이 판명되곤 하였다. 이번만 하더라도 같이 하숙하고 있는 대학생이 무슨 혐의론지 붙들려가자 이어 그 방으로 들어가서 수상해 보이는 서적이며 그 외 증거물 같은 것을 자기 방으로 옮겨다 놓았던 것이다. 형사가 가택 수색을 하러 나가본즉 온통 방안 모습이 달라졌기에 알아보니까 왕백작이 그것을 제 방으로 갔다가 이 모퉁이 저 모퉁이 쌓채이고서 그 가운데 네활개를 펴고 드러누워 있었다. 그래 동행을 요구하니까 그는 벌떡 일어나 덜렁덜렁 따라 나왔다는 것이다.
“사실로 백작님 아드님한테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라고 주임은 머리를 긁적거리었다.
“유행을 따른다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쳤으며……그리고 인제는 또 그러한 불온사상도 유행하지 않습니다.”
“대체 그게 무어라는 사상인데.”
노백작은 침통한 낯빛으로 묻는다. 주임은 자못 난처한 모양으로
“네 글쎄 아나키스트라구나 말씀 드릴런지요.”
확실히 그것은 그 뒤 2,3일 지나서인가 생각된다. 내가 일껀 서류와 함께 검사국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그런데 그날의 이 가련한 아나키스트의 인상이란 나에게 있어 일생 동안 잊지 못할 만치 깊은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감방 밖으로 나가 거의 두 달 만에 구두를 신으며 주섬주섬 차비를 차리고 있었다. 그는 어느 구류인들과 같이 철창 문지방에 몸을 기대고 나의 얼굴을 멀거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탄나상한테 부탁하여 담배라두 한 대 피우도록 하거니.”
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고맙네.”나는 왜 그런지 갑자기 마음이 언짢아지어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어 쳐다보았다.
그의 그 총명해 보이는 넓은 이마에는 서너 줄의 움푹한 주름이 잡혔고 공허스런 눈은 힘없이 보이며 덥수룩이 수염을 기른 입 가장은 삐죽삐죽 움직이고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루 자동차루 가게나.”
나는 포승을 걸친 몸뚱이에 오바를 걸치고 모자를 깊숙이 쓴 다음 그에게 목례를 하였다.
그러고 유치장 문을 막 나서려 할 때 별안간 왕백작의 목이 갈한 듯한 그러나 큰 고함지르는 소리가 내 귀에 째앵 울리며 들려왔다.
“우마쿠 야레요오(잘 하시오).”
나에게는 지금도 아직 그 목소리가 내 귀창을 찌르며 들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 찌르르 ──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없이는 그 고함 소리를 생각해낼 수가 없다. “……자, 비루를 좀더 따러주게나.” 여기서 말을 잠시 끊고서 신문 기자는 또 한 잔 꿀꺽 들이마셨다. 기차는 어둠 속을 조금도 쉴 새 없이 그냥 북으로 북으로 맥진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그 후 아마 재작년 지금쯤의 일인가 싶다. 나는 다시금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갱생한 것이라 할까. 그리고 바로 이 경부선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나는 실로 그때에 다시 한번 이 왕백작을 만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드디어 무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하여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괴로워진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그렇다. 나는 갱생이라는 인생의 재출발 벽두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생각된다.
그날 밤은 오늘 밤과 같이 달이 화안히 비치고 있지는 않았다. 배에서 내렸을 때 부산 부두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해질 무렵 기차가 추풍령 협곡에 다다랐을 때는 태백산맥에 부딪친 대륙의 태풍이 노호를 하고 있었다. 주위 일면에는 눈보라가 치며 하늘은 검푸르게 내려앉고 소나무와 섭나무의 숲이 바위 잔등에서 떨고 있었다. 열차는 골짜기를 지나서는 어둠이 벌어지는 낙막한 전야(田野)로 돌진하였다.
헤일 수 없이 많은 가마귀들이 울면서 하늘 높이 떠오른다. 그때부터 실로 말하자면 음산한 밤이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기차 속은 만주 광야로 이주하는 이민군들로 가득 찼었다. 그들은 짐짝과 같이 웅크리고 쭈그리고 쓰러지고 혹은 넘어지고 모로 눕기도 하고자리에서 비어져 나온 사람은 통로에서 타구를 안은 채 세상 모르게 잠들고 있다. 모두들 무던히 피곤한 듯 침침히 잠이 들어 누구 하나 까닥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때때로 어린애들이 킹킹 보채인다. 여기저기서 부인네들은 구역질을 하고.── 끈으로 꾀어 돌더구(돌로 만든 절구통)에 매어단 바가지는 서로 마주치며 달가락 달가락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그 한 모퉁이에 움츠리고 있었다. 내 아무것도 생각지 않으랴 과거의 일은 과거대로 묻어버리고 말리라고 눈을 감은 채였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 체내에 새 생명의 피와 힘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저주받을 풍수해로 말미암아 논 ․ 밭 ․ 집을 몽땅 띄워버리니 백성들이 이제부터 새로운 광명을 찾아 멀리 광야로 출발함을 볼 때 나는 더욱더욱 자기도 용기를 내어 갱생치 않으면 안 되겠다.
새로운 생명을 다시금 찾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혼자 흥분한 나머지 차츰 체열이 생겨 거의 상기까지 할 지경이 되었다.
그 사이에도 이 이민 열차는 쉴 새 없이 기적을 울리면서 맥진하고 있었다. 바로 이 기차 모양으로 연결되며 또 그 지방의 이민군들이 우르르 오르곤 한다. 너무나 소연한 바람에 나는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직두 펄펄 눈은 내리고 있다. 그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이민군이 꾸러미와 보따리를 안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서 마치 파도와 같이 뒤 차륜으로 비명을 지르며 몰려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난민의 무리와도 같이 보인다. 그러는데 어느 새엔지 우리들의 차륜으로도 수십 명의 이민들이 들어와 보려고 얼굴을 들며 밀었다가 무엇인지 지껄이면서 황망히 다시금 밖으로 물러 나간다. 그러나 그는 그 뒤로 꺼먼 외투에 흰 명주 마후라를 걸친 중키의 한 신사가 비틀비틀거리며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문 어귀에 멍하니 한참 서서 차 속을 둘러보는 것이다. 아주 퍽 괴로운 듯이 몇 번이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두터운 입술을 비죽인다. 얼굴은 뻘겋게 달고 있다. 이마에는 서너 줄의 주름이 가로 잡혀 섰다.
숨이 몹시 가뿐 듯. 몹시 술에 취한 게로구나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저도 모르게 펄쩍 놀라며 일어섰던 것이다.
그도 나를 알아차린 듯 갑자기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만 히죽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는 나도 무엇이라 소리를 쳤다. 그것은 언제인가 A 서 특고실에서 내 앞에 나타나 히죽이 웃던 왕백작이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엎어질 듯 비틀거리며 가까이 오더니만 덥썩 나한테로 달겨붙는다. 술냄새가 확 코를 찌른다.
“동경의 동지!”
이렇게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다짜로 부르짖었다. 술기운 때문에 이전보다도 더욱 혀가 돌아가지 않는 일본 말을 쓴다.
“응 이게 웬일인가, 대체 자네는 그 후 무사했는가. 얼굴빛이 아주 나쁘구먼.”
“어서 여기라도 좀 앉게나.”
하고 나는 그에게 자리를 내주려고 일어났다. 그런즉 그는 갑자기 무엇에 놀란 것처럼 괜찮아 하며 손을 내저어가며 뒷걸음을 치더니 그냥 그대로 통로에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고는 마냥 떠들어대는 것이다.
“아니 나는 여기가 더 좋을세 여기가. 응 그런데 여보게 동경의 동지. 자 자네가 송국될 때 근심하였다네. 아주 크게 걱정을 했었다네. 저것이 처음이 되어 금시에 헤타바루(녹초가 되다) 하지나 않을까 하구 응.”
“고마울세 그러나 자네 지금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며 나는 그를 타이르듯이 조용히 달랬다. 그런즉 그는 두말 안짝으로 유순히 무르팍을 모아 세우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괴로운 듯이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때 기차가 굉음을 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홈과 차 속으로부터 일제히 통곡과 탄성이 천동하듯 일어났다. 서로 멀리 이별할 순간이 되자 모두 울음통이 터진 것이다. 왕백작은 뜨거운 물이라도 끼얹인 듯이 머리를 휙 쳐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서운 공포에 쌓인 것처럼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나 그 희멀건 눈 속에는 비웃는 듯한 음흉스런 기쁨의 빛이 서리고 있었다. 그는 두서너 번 피게질(딸꾹질)을 하더니
“응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면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하며 그는 아주 미치기라도 한 사람 모양으로 에헤헤 에헤헤 웃어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상하게도 왕백작은 소리를 내어 괭괭 쳐울기 시작한 것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눈을 뜨고 말소리를 죽이고서 조용한 태도로 이 이상한 왕백작을 굽어보기 시작하였다. 짐짓 기차도 홈을 지나고나니 차 속도 차츰 조용해지었다. 어느덧 이 근처부터는 눈보라도 개이고 멀리 첩첩 싸인 산이며 지질펀하니 누운 전야가 백은색에 싸이어 어스름한 달빛 아래 흘러 달아나버린다. 다시 차 속은 아주 고요해졌다. 그러나 왕백작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높아갈 뿐으로 어떻게 손을 댈래야 댈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 낯을 척 들더니 이번에는 대번 조선 말로 또 떠들기 시작하였다.
“나두 통곡을 하구 싶어요. 큰 소리를 지르며 통곡을 하고 싶어 나는 울기를 좋아하는 거야 울기를. 그래서 나는 늘 이 이민 열차에 오르곤 하겠지.”
거기서 그는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고 목소리를 낮추더니 얼굴 근육에 몹시 경련을 일으키었다. 나는 이 광열적인 사내가 우리들도 흔히 빠지곤 하는 절망적인 고독감에 사로잡힌 것을 알았다.
그렇다. 그는 늘 절대의 고독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무서운 절망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가 빨리 진정되어주기만 바랐다. 그러나 그의 턱주가리는 차츰 더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비명과 같은 소리를 꽥 지르더니 그는 뒤로 움쳐든다.
“네 네놈은……날 보구 복수를 하려는 게지.”
잠시 동안 흠침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입을 멍하니 열고서 내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본다. 나는 공연히 가슴이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나에게 복수를 하려드는구나. 네놈두 그렇지? 그래 그렇지 않단 말이냐? 저것 보게 차츰 얼굴빛이 달라져간다 에구 달라져 가누나.”
“무슨 환영을 쫓고 있는가보네. 그리고 그것에 자네가 쫓겨다니구 있는 걸세.”
하고 나는 측은한 낯빛을 웃어 보이었다. 사실 나는 그를 어떻게 해석함이 옳은지 몰랐다. 하여튼 이것을 병이라고 말한다면 확실히 그것은 유치장에 있을 때보다 더 악화된 모양 같았다. 나는 위로하듯이 덧붙여서 말하였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통 종을 못 잡겠네.”
“네놈은 시침을 떼려드느냐 응, 복수를 해보고 싶지 않느냐 말이다 내게 응 나에게 에헤헤 에헤헤.”
“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하고 나는 조금 캐듯이 물었다.
“아니 그 그…….”
그는 다시 괴로운 소리를 내며 신음하였다.
“나는 아아 지금 당장 내 자신으로부터도 복수를 받고 있는 터이야 목줄을 졸라매구 있는 터이야. 희망두 없구 슬픔도 없구 그리구 또 목적조차 없구…… 아아 나는 이 이민 열차에 탔을 때만이 행복인걸 어떡하나. 나는 그들과 같이 울 수가 있구 부르짖을 수가 있어.”
“하나 이 사람들은 희망을 붙들고 가는 것이지 슬퍼하러 가는 것은 아닐 텐데.”
“그게야 아무렴 어때 나는 그냥 그들과 같은 차로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것만이 기뻐 죽겠어. 그리구 같이 울기두 하구 부르짖는 것두 함께 한다는 것이. 그러나 어떡허나 나는 어떡허나 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면 나는 혼자서 집에 오지 않으면 안 되니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하고 그는 또 쿨적쿨적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더욱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어쩐지 그의 일이 뜻없이 측은히 생각되어 나도 덩달아 같이 슬퍼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냉정히 생각한다면 이런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런 사람이야말로 차츰 멸망할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그만두게 이것이 무슨 짓이람.”
그러자 그는 움칠하더니 푸들푸들 다시 몸을 떨기 시작하였다. 눈을 휘황하게 뜨고 턱주가리가 떡떡 마주쳐 일어서려고 애를 쓴다. 나는 잠시 망연하여졌다. 그 얼굴은 사상(死相)을 띠고 몸은 벅벅 극매인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이 천국을 거부당한 것처럼. 최후의 기쁨을 빼앗긴 것처럼 그리고 팔을 휘저으며
“이놈 날더러 가만 있으라구.”
하고 고함을 벽력같이 지르니 그만 기운이 빠져 그 자리에 넌지시 엉덩이를 박고 넘어졌다. 좀 있더니 입으로 침을 흘리며 그리고 얼굴과 함께 상반신을 그냥 철석 통로 바닥에 파묻어버렸다. 얼굴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잔인스럽게도 그만 잘 되었다 이제는 잠이 들 것이라구
“그러나 그때 잘 되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하여 나는 아직도 가슴이 메저린 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그 일이 이 2년 내 나를 얼마나 심한 고문에 걸고 있는 것일까.”
하며 신문 기자는 비검한 안색을 지었다.
“술을 좀더 부어주게 응. 술을 좀더 부어주게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축산 회사원은 뒤가 궁금한 듯이 재촉하였다.
“글쎄 가만 있게나. 그런데 기차는 좀 있으면 대전에 닿게 되었더란 말이야. 군들도 알지만 나는 대전서 호남선으로 차를 바꿔 타야지 않는가 그래 그때 나는 내릴 준비를 하면서 생각하였네. 자 작별을 하기 위해 이 왕백작을 깨워야 옳은가 그냥 두는 게 옳은가. 그는 정신 모르고 그냥 쓰러져 누워 있었네. 그래 구태여 깨울 필요가 없다구 생각하였지.”그러자 거의 가까워진 모양으로 기적 소리가 울렸다. 그래 나는 양손에 트렁크를 들고 일어서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기차가 몹시 흔들리기 때문에 그 통에 나는 넘어질 뻔하며 그만 잘못하여 왕백작의 잔등 위에 엎어졌다.
백작은 아주 펄저덕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혼이나서 버둥거리며 일어섰다.
하나 그는 통로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꼼짝도 않는다. 이리하여 더욱 나는 그에게 인사를 못 하게끔 되었다. 그때 벌써 홈의 등불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백작.”
불러도 대답이 없다. 취해서 그만 잠이 들었구나 하였다.
기차는 차츰 멎기 시작한다. 홈의 분주한 양이 보인다. 소연스런 소리. 나는 어서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이 분주해진다.
“왕백작 여보게.”
여전히 그는 쓰러진 채 몸 하나 달싹 않는다. 나는 트렁크를 내려놓고 그를 깨울 지혜까지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은 더욱 분주하였다.
“왕백작 어떻게 된 셈인가. 일어나게 거기서 자다가는 짓밟히네. 여보게 백작 일어나게나.”
드디어 기차는 멎었다. 라우드스피커는 소리를 지르고 홈에는 사람들이 뛰어 덤빈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어 걸음 문 옆으로 달려가면서 돌아보았다.
그때 보다못해 옆에 사람이 왕백작을 끄집어 일으켜내려고 하며 백작의 몸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내 앞으로 승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그래서 황망 중에 나는 막 빠져나가려 고민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서 백작을 깨우던 사내가 놀라 고함을 지르며 일어선 것 같았다.
“아앗.”
나는 놀라 홱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새로이 올라탄 그 많은 승객들 틈에 끼어 몸을 비비댈 수도 없어졌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으며 아비규환이라 할 지경이었다. 왕백작이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보이지가 않았다. 왜 그러지 나는 그때에 내린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꽉 찼었다.
그래 사실 차가 떠나기 전에 내렸을 때는 숨이 내쉬었다. 그러나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갑자기 무엇에 놀란 것처럼 트렁크를 든 채 기차를 막 따라가며 죽기 한사하고 부르짖은 것이다.
“왕백작! 왕백작!”
“벌써 아까 숨이 끊어졌던 가부지.”
하고 광고쟁이는 측은스레 물었다.“그것이 내게는 아직두 알 수 없는 의문인 것이다. 지금까지두 나는 그것 때문에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아마 벌써 숨이 넘어갔던지두 모른다. 이것을 생각하면 나는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내리지를 않았어야 꼭 옳을 뻔하였다. 아아 정말로 왕백작이 지금두 이 땅에서 살고 있는다면.”
신문 기자는 거기서 땀과 함께 눈물을 훔치었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뚝 끊었다. 그 후에는 한 번도 만난 일은 없느냐고 축산 회사원이 물으니까 그는 잠시 동안 묵묵히 있더니만 다시 무거운 목소리로 혼잣소리같이 시작하였다.
나는 작년 여름에 좀 조사할 것이 있어 강원도 산 속으로 들어갔었다. 그때에 수가 사나우려니까 열흘 동안이나 폭풍우가 계속되었다. 한강 상류에 아주 큰 창수로 탁류가 된 것이다. 어떤 날 그 강 쪽에서부터 사람 살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 같아 뛰쳐나가 보았다. 중류 지대에 누아떼가 내려가고 있다. 그 위에 두서너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비 안개가 자욱하며 똑똑히는 보이지 않으나 그 중에는 양복 입은 사람도 하나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단말마의 소리를 내어 부르짖고 있는 모양이다. 그 몸 모양이 어쩐지 눈에 익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그것이 왕백작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나는 것이 물론 그럴싸해서이겠지만. 나는 그 후 서울 어느 젊은 목재 상인이 누아떼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는 소리를 산읍에서 내려와서 들었다. 그러나 그 사내의 이름이 무엇이라는 것은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렴. 그것이 왕백작이겠는가”고 광고장이라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번 봄의 일이다. 서울에 출장을 나와 종로에서 동대문 행 전차를 탔을 때이다. 바로 그게 반공 연습 당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차가 막 5 정 목 네거리를 지나가려 할 때였다. 그 길가에서는 경방 단원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별로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한 사나이가 외줄로 쭉 늘어선 단원에게 훈시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사내의 뒷모양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것이 왕백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직도 한데.”
하고 나는 무릎을 치며 부르짖었다. 왜 내가 그렇게 부르짖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있음직한 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 게야. 꼭 그게 왕백작임에 틀림없을 게야. 그는 전쟁이 벌어져 기뻐할 걸. 왜 그런고 하면 지금의 우리 나라는 현실적인 괴로움은 있지. 그러나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건국일치의 체제로 맥진에 맥진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는 인제는 생활의 목표와 의의를 얻어 메었는지두 모르지.
경방단 반장쯤 넉넉하지 지냄직한 걸.’
모두들 묵묵히 끄덕이었다.
“그랬으면 좋은련만.”
하며 신문 기자는 한참 동안 비루잔을 들어다보더니 한숨을 짓는다. 그리고 또 다시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 뒤 또 어떤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