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러한 일이 이 현실에 실재해 있는지? 없는지? 그가 묻던 말에 아직까지도 그 대답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 그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언제나 저녁밥을 늦게 짓는 나는 그날도 늦게 지어 먹고 막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들어와 앉았을 때 밖에서,

"아저머이 계시유."

하는 굵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는 냉큼 일어나 문을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밖이 어둡고 더구나 그 음성이 평시에 듣지 못하던 음성이므로 누구인지 얼핏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찾으시오?"

나는 한참이나 머뭇머뭇하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다가서며,

"아저머이 나유. 복순 아비유."

그 순간 나는 반쯤 열어 잡았던 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갔습니다.

"복순 아버지! 이게 웬일입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그제야 그는 방안을 들어 앉았습니다. 나는 일변 담배를 사오고 재떨이를 내놓으며 그를 똑똑히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옷은 아주 형용할 수 없이 남루하였으며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우울한 빛이었습니다. 이맛전이 툭 솟아나는 아래로 눈은 깊이 들어가서 눈가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거멓게 보이는 그 눈 속으로 이따금 번쩍이는 안광은 나의 가슴을 서늘케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뭘하러 그가 우리집에를 돌연히 찾아왔을까 하는 불안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짐을 나는 느꼈습니다.

복순 아버지는 바로 우리 윗집에서 단간방을 세 얻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벌이가 없이 그저 그날그날 노동이나 해서 돈푼이나 생기면 먹고 안 생기면 굶고 지내는 것을 나는 종종 보았습니다. 나는 그의 아내와 좋아 지내고 어린 복순이를 귀애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이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구차하게 지낸 까닭입니다. 그들이 끼니를 끓이지 못하고 우두머니 앉은 것을 뻔히 알면서 우리만 밥을 지어다 놓고 먹기가 거북스럽고 미안하여 맘놓고 술이나 저를 구를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때때로 찬밥덩이나 찌개국물이나 먹다 남은 것이 있으면 그들을 주었습니다. 주면서도 내 맘만은 항상 아수하여 어서 그들이 어디로 이사해 갔으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딸 복순이가 나를 보면 먹을 것을 줄 줄 알고 발발 기어오르는 데는 귀엽고도 가여워서 나는 한참씩이나 안아주었습니다.

"너 몇 살?"

복순이는 아직 말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지가 엉뚱하게 발달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그의 여윈 두 손가락을 쪽 펴보이었습니다. 나는 복순이를 꼭 껴안으며,

"두 살…… 이게 말두 못하는 것이 어떻게 알까."

나는 그의 어머니를 돌아보았습니다.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그의 어머니도 그제야 빙긋이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웃는 것은 참말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양 볼에는 항상 눈물이 흘러내리는 듯 보일락말락하게 선이 그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저렇게 얼굴이 궁하게 생기고야 고생을 안 할 수가 있나 하고 그와 마주 앉을 때마다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복순의 재롱을 보려고 무시로 그의 집에 갔으나 복순 아버지는 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혹간 마주 앉게 되면 나는 곧 나와 버렸습니다. 그와 마주 앉기는 대단히 거북스럽고 일종의 불쾌한 감을 갖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복순 어머니의 궁하게 보이는 그 얼굴도 무의식간에 남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나온 복순이만은 눈이 샛별같이 빛났습니다.

"우리 복순 아버지는 도무지 말을 안 해서 나는 영 죽겠구려."

복순 어머니에게서 이러한 말을 나는 종종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우리 복순 아버지는 밤마다 어데를 가기에 집에 오면 그 모양이우. 땀이 옷에 척척하게 배는 구려…… 누구보고 말씀 마세요."

나오는 줄 모르게 남편의 걱정을 하고서도 나를 꺼리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점점 복순 아버지에 대하여 어떤 불안을 갖는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복순 어머니만 마주 앉으면 이리저리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속 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이태 전 그 어느 날 아침에 나는 복순이를 주려고 두부찌개에 밥을 비벼 가지고 복순네 집에 와보니 방안은 어지러우며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가 혹시 누구네 집으로 쌀을 꾸러 갔는가 하여 한참이나 기다리다 못해서 그가 찾아갈 만한 집에는 다 다녀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모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나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그들을 문득문득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섭섭하면서도 시원하였습니다. 반면에 그들의 소위에 나는 분개도 하였습니다. 아무리 밤도망갈 형편이라도 내게만은 말하고 갈 터이지 하는 노여운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간다 온단 말없이 자취를 감춘 지 일년이 지난 그날 밤, 내 머리에서는 복순의 그 샛별같은 눈이 희미하게 사라진 그때, 돌연히 찾아온 복순 아버지. 나는 반가우면서도 불안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얻으러 온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새 복순이랑 복순 어머니도 잘 있나요."

묵묵히 앉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며 그의 눈치를 살피니 저녁도 굶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금방 벗어 걸은 앞치마를 입고 부엌으로 나오며,

"저녁 진지 가져올 것이니 찬은 없으나마 좀 떠보세요."

하고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흘끔 나를 쳐다보며 자리만 옮겨 앉을 뿐 하등의 표정을 그의 얼굴에서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본래부터 그의 성격이 그리 된 것을 짐작하므로 새삼스럽게 놀랄 것은 없으나 그의 얼굴이 전날부다 한층 더 파리했으며 인생으로서 막다른 길까지 걸어 본 듯한 자취가 확실히 나타나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발하는 안광은 볼수록 소름이 쭉 끼쳐졌습니다. 나는 남편이라도 얼른 들어와 주었으면 하면서 부엌으로 나왔습니다. 웬일인지 부엌도 무시무시해지며 발길이 허둥거렸습니다. 나는 전날 복순 어머니가 그의 남편의 말을 하던 것을 다시금 회상하며 어른 밥을 지어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밥상을 보자 권할 여지가 없이 버썩 다가앉아서 먹었습니다. 나는 밥술을 보아 배가 고파서 우리집에 들어온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실 때는 왜 말씀도 없이 가셨나요?"

그가 밥술을 놓았을 때 나는 물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잠잠하고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말이 그의 비위를 거슬려 놓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위에 더 묻기가 곧 힘이 들고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방안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대해서 그런지 본순의 그 눈동자가 내 눈앞에 얼른거리며 한 번 꼭 보고 싶었습니다.

"복순이가 이젠 말두 잘하고 걷겠습니다그려."

나는 나오는 줄 모르게 이렇게 또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무거운 침묵은 우리 사이를 싸고 언제까지나 돌았습니다. 나는 답답하였습니다. 저렇게 할 말이 없으면 밥까지 먹었으니 이젠 가든지, 그리고 무엇을 얻어 가지고 갈 생각이 있거든 달라고 말을 하든지, 좌우간 뭐라고 의사 발표를 했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앉아만 있으니 나는 땀만 부진부진 나고 수없는 불길한 예감이 나의 조그만 가슴을 꽉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나 깍지 않은 듯한 그의 머리며 턱밑으로 거멓게 나온 수염은 나로 하여금 한층 더 불안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나는 그에게 대하여 어딘가 모르게 일어나는 호기심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나는 그가 번번이 대답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주인으로서 너무 잠잠하고 있을 수가 없기에,

"그 동안 지내신 이야기나 좀 하시구려."

나는 막연하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뜻밖에 '허허'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는 내가 일찍이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칼날과 같은 차디찬 웃음이었습니다. 아주 무겁게 냉랭한 기운을 띤 그런 웃음이었습니다. 나는 그 웃음에 기가 질리어 머리를 숙이고 앉았노라니 그는 기침을 칵 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외에도 말을 꺼냈습니다. 나는 놀라 머리를 들고 똑똑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입술 놀리는 것이 하도 이상스러워서.

"아저머이! 나는 복순이, 복순 어미가 어데서 어떻게 되었는지 난 모르우!"

이렇게 무책임하고도 몽롱한 말끝은 내놓았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대하여 왜 그러냐? 고 반문을 하고 싶었으나 그가 보통 사람 같지 않아 어쩌다 저렇게 말을 내놓은 것이니 내 물음에 그만 그 말끝이 들어가고 말까 하여 나는 잠잠히 듣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실 나는 지금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을 말하겠수. 물론 내가 아저머이를 보통 부인네들과 같이 알면 이런 말도 하지 않겠수마는 아저머이는 글을 쓴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 글은 지금까지 어떤 글을 써왔는지 내가 모르나……"

그는 잠깐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웬일인지 그를 마주 보기가 거북스러웠으며 그 말에 일종의 위압까지 느꼈습니다. 그러고 이때까지 놀린 나의 붓끝이란 참말 인생의 그 어느 한 부분이라도 진지하게 그려 보았던가? 하는 의문이 불시에 들었습니다. 따라서 나의 붓끝이란 허위와 가장이 많았음을 느끼는 동시에 그의 솔직한 말에 나의 가슴은 선뜻 찔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밤마다 어떤 악몽에 붙잡히우. 나는 이 꿈에 붙잡히지 않으려고 온갖 애를 다 써보았으나 하등의 효과도 없고 도리어 점점 더하여 가우. 그러니 지금 와서는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을 만큼 되었수.그래서 밤이면 나는 새우오. 그 꿈이란 말하면 이러우. 나는 언제나 눈을 감으면 벌써 어떤 괴악스럽게 생긴 인간들이 나의 앞에 나타나서 나를 끌고 어떤 암흑의 천지로 가우. 그 인간들은 분명히 인간 같은 데 나와 같은 인간 같지는 않우. 그러고 나를 끌어다 두는 곳 역시 세상은 틀림없는 듯한데 굴 속같이 어둡소."

하나의 무식한 노동자로만밖에 알지 않았던 그가 이렇게 조리있게 말하는 데는 나는 적지않게 놀랐습니다. 그러고 납덩이같이 묵직묵직한 그의 음성에 나의 가슴은 어떤 압박을 느꼈습니다.

"그 암흑 천지에 가니 나와 같은 인간들이 얼마든지 있수. 그들도 역시 나와 같이 끌려 와서 있는 모양이우. 어쨌든 꿈이니 분명하지는 않우. 우리들을 끌어간 그 인간들을 편의상 B라 부르오. 밤만 되면 B들이 나타나서 우리들 중의 몇 사람을 불러내우. 그들이 B들에게 불려 문밖에만 나가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수.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슨 일인가 하였으나 차차 시일이 지나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우리들은 다 알았수. 그 다음부터 우리들은 B들에게 불릴 것을 두려워하였수. 그래서 밤만 되면 우리들은 죽은 듯이 엎디어 있었수.

어느 날 밤 콘크리트 바닥을 걸어오는 B들의 구두소리가 뚜벅뚜벅 들리었수. 그리고 문이 덜그럭 열렸수. 우리들의 전신은 쭈삣해지며 소름이 끼쳤수. 그때 B들은 누구누구를 불렀수. 그러나 그들은 못 들은 체하였수. 그러니 B들은 우루루 달려와서 구둣발로 차고 채찍으로 때리우. 그때 '갈 대로 가보자!' 동무의 소리가 벼락같이 들렸수. 그뒤를 이어 '가보세' 후하는 한숨소리가 났수. 그들의 음성은 인생의 최후 순간에서 나오는 생에 대한 애착의 무서운 발악이우. 그들의 무거운 신발소리를 들으며 우릳들은 부루루 떨었수. 그러나 손발 하나 까딱하지 못하였수."

그는 숨을 몰아쉬며 등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불꽃같이 빛났습니다. 그때 나는 몸이 한 줌만 해졌습니다. 그리고 가늘게 떨었습니다.

"어떤 날 나는 또 그 꿈을 꾸었수. B들이 나타나는 그 밤이우. 그때 나는 불림을 받았수. 벌써 나의 의식은 마비될 대로 되어서 내 뒤로 누구누구를 불렀으나 나는 몰랐수. 나는 땅을 어루만졌수. 그러고 무엇을 찾았었수. 행여나 붙들 것이 있으면 붙들고 나는 저들에게 끌려 가지 않으려는 것이었수. 그때 내 몸을 후려치는 매에 나는 나의 몸에 살이란 한 점도 없고 뼈만 남았음을 알았수. 마침내 우리 일행은 아마 문밖에 나온 듯싶우. 나는 한 발걸음에 주저하고 두 발걸음에 앙탈하였수.

달은 밝았수. 흰 눈에 비치는 달빛은 몹시도 밝았수. 그러나 그 달은 마치 해골덩이가 흰 이를 내놓고 웃는 듯하였수. 우리들이 어떤 산비탈까지 왔을 때 나는 걸어왔는지 끌려왔는지 분명하지 않았소. 그때는 아픈 것도 쓰린 것도 장차 어떻게 될 것까지도 생각이 되지 않았수. 그저 멍하니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할 것뿐이었수.

지금 생각하니 나는 어떤 나무 그루터기를 붙들고 앉았던 모양이우.

그때 '으악'하는 소리에 나는 흠칫하며 눈결에 그곳을 바라보았소. B들은 어린애기를 칼 끝에 끼워 들었수. 애기는 다리 팔을 팔팔팔 날리우.

'어마 엄! 마!'

애기는 제 어미를 부르오. 제 어미라는 여인은 바보같이 멍하니 애기를 바라만 보았소. 애기는 흑! 흑! 하고 기를 쓰오. 그때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웬일인지 나도 저렇게 죽음을 받는다는 생각은 없고 그저 막연하게 살 것만 같았수. 하늘과 땅에서 어떤 변동이 일어나더라도 나만은 살 것 같았수. 그때 어디서 언제 왔는지 모르는 자동차가 나타났수.

'이리 와!'

고함치는 소리에 나는 흠칫하여 바라보니 내 옆에 앉아 있던 동무가 벌떡 일어나우. 그도 나와 같이 어리석은 생각에 아마 자기만은 자동차를 태워 보내려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우. 그때 나도 덤벼 일어났수.

'가만히 앉았어!'

나는 고함소리를 들으면서도 달려가려 하였수. 내 발에는 쇠사슬이 무겁게 달려 있었수. B들은 그 동무의 목을 쇠사슬로 매어 놓았수. 그러고 그 끝을 자동차에 매었수.

'너 이 차를 따라오면 살려주마!'

나는 이 말을 분명히 들었수. 나는 또다시 덤볐수.

'하하하하 따라오너라 오너라.'

차에 오른 B들은 손짓을 하우. 그러고 엔진을 틀었수. 차는 달아나우. 그 동무는 살겠노라 두 팔을 바람개비 날리듯 하며 따라가우. 그러나 몇 발걸음 나가지 못해서 푹 거꾸러지는 모양이우. 그러고 땅을 쓰는 소리와 같이 자동차는 뿌옇게 사라지우.

다음은 내차례우. 그때 B 하나가 총 끝에 칼을 끼워 가지고 내 곁으로 왔소. 그때까지도 저가 참말 나를 죽이려는가? 하였수. B는 그 칼을 나의 가슴에 대었수. 비로소 나느 삶의 희망이 아주 탁 끊어졌수. 그때유. 아저머이! 그때라우. 나는 그 절망에서 어떤 힘을 벼락같이 얻었수. 그러자 나의 의식은 명확해졌수. 동시에 내가 누구에게 죽음을 받는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수. 나는 B를 보았소. 그때 나의 가슴에는 칼이 들여 박혔수.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수. 그러고 소스라쳐 깨었소. 꿈이란 그뿐이우."

그는 말을 마치며 눈을 무섭게 떴습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쥐며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의 빛이 팽팽히 잡아씌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은 무겁게 다물리었으며 턱을 거불거불 채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흥분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등불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고요히 비쳐줍니다. 한참 후에 그는 나를 보았습니다.

"그런 일이 혹 현실에 실재해 있을 것 같우?"

나는 눈등이 뜨거워서 그의 시선을 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물음에 입이 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온몸이 무섭게 떨렸습니다. 그때 함석지붕에 빗방울 듣는 소리가 푸떵푸떵 들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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