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랑은 성은 왕이오, 이름은 사궤니 길주 사람이다. 나이 쉰일곱에 아내 송씨, 먼저 죽은 지 열한 해 밤중 삼경 때에 창을 두드려 이르되,

"낭이여. 자느냐 아니 자느냐?"

하거늘, 왕랑이 이르되,

"누구요?" 한 대

"낭군의 고처 송씨러니 종요로운 뜻을 잠깐 이르러 왔노라."

왕랑이 놀라 괴이히 여겨 이르되,

"무슨 종요로운 일인가?"

송씨 가로되,

"내 죽은 후 열한 해로되, 염왕이 아직 죄 묻기를 마치지 아니하고 그대를 기다려 결단하리라고 서로 의논한 지 오랜지라. 내일 아침에 그대 잡을 차사 다섯 귀신이 올 것이니, 그대는 집 가운데 미타탱을 서벽에 높이 걸고 그대 동으로 안고 서를 향하여 아미타불을 여하라."

왕랑이 이르되,

"명관이 날 잡아감은 무엇 때문인가?"

송씨 이르되,

"우리 집 북녘 이웃에 사는 안노숙이 매일 이른 새벽에 서쪽을 향하여 쉰 번 절하고 매월 보름에 미타불 염하기를 일만 번으로 업을 삼거늘, 그대와 내가 매양 비방했더니, 이 일로 나를 먼저 잡아 가두어 죄를 묻고 그대를 기다려 문죄를 마치리니 우리들이 필연 지옥에 떨어지면 길이 빠져나올 기약이 없으리로다."

말을 마치고 송씨 즉시 돌아가거늘, 이에 왕랑이 다음 날 아침에 그 말대로 하여 지성 염불하더니, 그 때 문득 다섯 귀사 뜰 가운데 와 서서 오래 돌아보아 자세히 살펴 관찰하다가 먼저 미타탱에 절하고 다음에 왕랑에게 절하거늘, 왕랑이 크게 놀라 자리에서 내려와 답하여 절하니, 귀사가 이르되,

"우리들은 명조께 명을 받았는지라, 그대를 잡으로 왔더니, 이제 그대 도량을 깨끗이 하고 단정히 앉아 부지런히 미타를 염하니, 우리들이 비록 공경해 마지아니하나 염왕의 명을 피하기 어려워 아니 잡아가지 못할지니, 비록 칙령대로 아니나, 엎드려 청하노니 행래하소서."

제삼 귀 가로되,

"염왕이 명을 내리시되, 왕랑을 엄히 매어 가져오라 하셨으니 칙령대로 아니 하면 왕의 진심을 우리들이 감히 입으리로다."

나머지 귀사 가로되,

"우리들이 많은 칙령을 받았어도 선도를 닦지 못한 고로 이제까지 귀보를 못 벗으니, 차라리 죽을죄가 될지언정 감히 칙령을 좇아 염불하는 사람을 매지 못할지로다."

제일 귀사가 왕랑더러 말하기를,

"비록 죄 범함이 산 같아 반드시 지옥에 들 것이나, 우리들이 본 바로 염왕께 이대로 사뢰면 반드시 인도에 도로 오리니, 그대는 감히 슬퍼 마소서. 그대 만일 극락에 가거든 우리 등 귀사를 잊지 마소서."

인하여 끓어 앉아 게를 보여 가로되,

"내 명간에 사자된지 이제 백천 겁이로되 부처 염하는 사람이 악도 중에 떨어짐을 보지 못했도다. 그대 만약 연화국에 나거든 우리 무리 생각하여 귀보를 벗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명조에 가니 염왕이 칙사더러 노하여 가로되,

"빨리 잡아매어 오라 했더니 어찌 늦게 오느냐?"

귀사가 보던 바를 갖추어 말하니, 왕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하되,

"좋구나, 왕랑이여, 빨리 섬에 오르소서."

염왕이 모두 절하여 가로되,

"부처가 일직이 안노숙의 염불하는 일을 매양 비방하기에 먼저 송씨를 가두고 왕랑더러 물어서 악도에 떨어뜨리려고, 이제 지극히 모진 귀차를 부렸더니, 귀사의 본 바를 들으니, 그대 마음을 고쳐 참회하고 부지런히 염불하니 어떤 죄 있으리로?"

왕이 인하여 게로써 이르되,

"서방주 아미타불은 이 사바에 각별한 인연이 있으니, 만약 한결같이 저 부처를 아니 염하면 명조의 용맹한 사자를 항복케 하기 어려우리라."

하고,

"부처를 인간에 도로 보내어, 남은 목숨이 설혼 해이거늘 예순 해를 더하여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여 아미타불을 염하여 빨리 저 세계에 가리시니, 우리 등 시왕도 다 서방에 이르게 하소서."

하고 위하여 보내리라. 왕이 조부 최 판관에게 명하여 가로되,

"왕랑이 도량을 벌이고 간절히 염불하니 먼저 범한 무간죄보가 이제 이미 흩어져 없고, 오직 염불 공덕으로 부부를 한가지로 인간에 돌려보내어 함께 늙도록 한 곳에 살아 부처를 염케 하리니, 송씨 명 마친 지 오래어 가죽, 뼈 흩어져 없으니 혼을 어느 곳에 부칠고?"

판관이 왕명을 들어 염왕 뜻으로 왕랑께 절하고, 왕께 사뢰되,

"월시국 옹주가 이제 명이 스물한 살이라, 명한이 이미 다한 고로 혼이 이제 야마천에 난지라. 그 몸이 온전하리니 송씨의 혼을 옹주 형체에 의탁하여 도로 나게 함이 마땅하니이다."

하거늘, 염왕이 기뻐 말하기를,

"왕랑 부처가 이 원을 잊지 않으면 서방에 빨리 나시리니, 그대 자세히 들으라. 그대 집 북쪽에 사는 안노숙을 감히 비방하지 말지어다. 이 몸을 받아 늘 서방을 존중하여 말하면 이 공덕으로 제불제천이 매양 호지 할 것이니라. 그대는 늘 공양함을 부모같이 하시어, 그대에게 청하노니 우리들 음신을 안노숙에게 전하여 아뢰소서."

하거늘 왕랑이 대답하여 허락하니, 염왕이 노숙을 향하여 절하고 가로되,

"도체 어떠하신고? 날로 새로 견고히 하시니 세 해 사이 있다가 삼월 초하룻날이면 서방 교주가 자금련 꽃좌를 가지고 그대를 맞아 서방 상품에 나게 하리라."

하고 말을 마침에, 도로 본가에 오니, 집사람이 영장하고자 할 때에, 도로 일어나 게로 이르되,

"집에 가득한 처자와 재물, 보배는 수고 당한 시절에는 이 몸을 대신하지 못하리다. 일념 미타라야 죄보를 사르나니, 도로 나와 명을 늘여 다시 진을 닦으리로다."

송씨 옹주의 몸에 위탁하여 도로 나니 왕고 부인이 기뻐할 때, 옹주 생신이 위의 일을 갖추어 말하니 왕이 슬퍼하고, 왕랑을 조서하여 가로되,

"나는 잠깐도 이런 일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른바 꿈 중의 상서로다."

왕랑이 즉시 사뢰어 이르되,

"송씨 열한 해 사이에 다른 친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오직 전날의 신을 가져서 이에 다시 친함을 만났도다."

하고 기뻐 물러가 목숨 일백마흔일곱 해를 늘인 후에 함께 극락국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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