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 시가와 송도원 해수욕장 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산기슭이 뾰족이 나와 있는 그곳에 안(安)씨라 하는 한 기인(奇人)이 살고 있다.

안씨와 나와는 수십 년 전부터 알아 오는 사이였으나 친밀한 교제가 있는 사이는 아니었었다.

올 여름 내가 송도원 해변가에서 뜻 아니한 안씨와 만나게 되어서 내 어린 자식들과 한 가지 안씨 댁으로 만찬에 불리게 되었다.

『옥수수밖에는 아무것도 없읍니다만.』

하는 말이 안씨의 초대사이었었다.

약속한 오후 다섯 시에 안씨는 우리를 맞으러 와 주었다. 초대된 손들은 만주국 별명까지 가진 나(羅)씨 부부와 그의 아이들과 그리고 우리들이었었다.

나씨와 나와는 옛 친구일 뿐더러 또한 가정적으로도 벗되는 사람이었었다.

안씨의 집은 매우 풍경이 절가하고 동쪽 창으로는 원산 바다가 눈앞에 잡힐 듯이 보이고 또한 뜰 앞에는 느티나무와 떡갈나무, 늙은 벗나무와 소나 무 등이 울창하고 그늘을 짓고 있었다.

『이것은 조선 제일입니다그려.』

나는 무심코 말하였으나 이것은 결코 칭찬에 지난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서양 사람 편이 제 고장 조선 사람보다도 풍수에도 밝으니.』

라고 함은 나씨의 평이었다.

풍수라 함은 집터나 묏자리 보는 술이라 하는 뜻이니 이 집은 지금으로부터 사십여 년 전 구한국에 해관리로 원산에 온 오이센이란 덴마크 귀족이 지은 것이었으니 지금의 주인인 안씨는 실상은 그 오이센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었다.

햇볕 잘 들고 풍경 좋고 게다가 서북은 산에 둘려 있는 참으로 좋은 명당이다.

안씨는, 나와 비로소 알게 되던 때에는 안씨는 한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는 시베리아로 혹은 만주로 왔다갔다하여서, 나씨와 가까이 된 것도 해삼위 방랑 때이었다 한다. 나씨도 젊어서는 사상적으로 공간적으로나 또는 사업 적으로도 방랑자여서 수십만 재산을 모으게 된 것은 근년에 일이요, 안씨도 지금은 자산이 오백만을 넘는다 한다. 안씨나 나씨의 나이 이제 겨우 오십!

성공한 셈일 것이다 다만. 그때나 이제나 가난한 서생으로 버틴다는 것은 나뿐이다. 피차에 젊었을 때 지낸 이야기로 시간은 흘러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마호가니 재목인지는 모르나 훌륭한 식탁에 하얀 상보 덮여 있고 의 자와 방안 세간들이 모두 어느 것이든지 시대에 어울리는 고상한 맛이 있다.

요리는 현부인으로 이름이 있는 안씨 부인이 손수 만든 것이라 하여서 자 신 급사 노릇을 하고 계시다.

처음에 나온 것이 서양 접시에 담은 누른 빛나는 죽이었다.

『옥수수예요. 옥수수 죽입니다. 자아 어서 드세요.』

하고 안씨가 먼저 스푼을 들어 한 입 떠먹었다. 나도 먹어 보았으나 참 맛 났다. 이것은 호텔 같은 데에서도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옥수수가 햇것인 까닭도 있음인지 호텔에서 먹던 것과는 비교하지도 못하리만큼 맛났다.

『이것 참 좋군.』

하고 나씨는 입맛을 쩍쩍 다신다.

『대체 이것은 어떻게 만드는 거요?』

나는 안씨에게 물었다.

『뭐 어려울 것 없읍니다. 옥수수 알맹이를 따서 뭉크러뜨립니다. 그래 가지고 알마치 끓여서 크림과 소금을 조금 넣어서 만듭니다. 아마 이건 닭국물을 조금 쳤나 봅니다마는.』

『사탕은 넣지 않습니까?』

하고 묻는 것은 나씨 부인이었었다.

『아니요, 사탕은 아니 들었읍니다.』

라고 안씨 부인이 대답을 하니 안씨는,

『저의 집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사탕을 쓰지 않을 방침입니다. 조선에서는 사탕이 나지 않고 또 제 손으로써 만들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다 어느 곡식에든지 적당한 분량의 당분이 섞여 있으니까요. 조리하는 법만 잘하면 따로 사탕을 넣지 않아도 좋을 줄 알아요.』

『조물주 처방대로 하신다 말씀이죠.』

나씨는 유쾌한 듯이 웃었다.

『그렇습니다. 조물주 처방에 틀림은 없읍니다.』

안씨는 웃지도 않고 정색으로 말하였다.

둘째번 코스는 닭을 로스트한 것이어서 이와 함께 빵과 쿠키가 나왔는데 안씨는 쿠키를 손에 들고 가리키며,

『이것도 옥수수입니다. 빵도 옥수수나 메밀로도 되지만, 밀은 조선에도 되니까 문제는 없지요 그러나 . 옥수수는 어떠한 산전이라도 되니까요. 귀밀 도 그렇습니다만 옥수수를 상식(常食)으로 하는 것이 조선 양식 문제 해결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을 줄 알므로 나는 이십년래 옥수수를 맛있게 해먹는 시험을 하고 있읍니다. 이 쿠키도 옥수수로 만든 것이니 하나 잡숴 보세요.』

하고 말하였다.

『참으로 맛납니다그려.』

『응, 이것 참 맛나군.』

『나도 하나 더.』

어른이나 아이나 다 대환영이었다.

다음에 나온 것은 전병 같은 것이었다. 안씨는 또,

『이것도 옥수수입니다.』

하고 싱긋 웃어 보인다.

그것도 맛났었다.

다음에 나온 것은 옥수수를 그냥 삶은 것이었었다. 안씨는,

『입때 잡수신 옥수수가 이것입니다. 이것은 골든밴듬이란 아메리카 종자인데, 조선 기후 풍토에도 잘 맞는다고 합니다. 자아 이번에는 원료 그대로 인 옥수수를 잡숴 보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참으로 맛났다. 말랑말랑하고도 단기운이 있는 데다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풍미가 있었다.

아이들은 지껄이는 것도 잊어버리고 먹고 있다. 식욕이 없는 나의 아들녀석도 골든밴듬에는 제 세상이나 만난 것처럼 달려들고 있다.

『이렇게 옥수수를 먹어도 배탈이 아니 납니까?』

하고 나는 근심스럽게 물었더니 안씨는 침착한 태도로,

『아니요, 그러한 걱정은 없읍니다. 과식만 하지 않으면 관계 없읍니다.

식탁에선 좀 무엇한 말씀이오나 옥수수를 먹으면 뒤보기가 좋습니다. 설사를 하느니 하고 말하지만 그런 일은 없읍니다. 병이 되는 것은 과식한 까닭 입니다.』

그리고 도마도가 나오고 신선한 버터, 치스, 야채도 여러 가지 나왔으나 이것이 모두 뜰 앞 밭과 목장에서 손수 만드신 것으로, 돈을 내고 사오신 것은 소금과 사탕뿐이라 한다.

다음에 검은 빛 나는 음료가 나왔으므로 나는 선뜻 포도즙인 줄 알고 마셔 버렸다.

『이 선생! 어떻습니까, 지금 마신 것은?』

하고 안씨는 나를 향하여 웃어 보였다.

『좋습니다 포도즙이지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안씨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레이프 주우스인 줄 알았는데요.』

나씨도 나와 같은 말을 하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더군요. 이것은 포도가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풀 열매입니다.』

『야생(野生)입니까?』

『그렇죠, 야생과 같지요. 서양서 온 것입니다. 그저 뿌려만 두면 좋습니 다.』

안씨는 그 풀 이름을 들려 주었으나 나는 그 이름을 잊어버려서 유감이다.

언제든지 물어 보련다.

맨 나중에 나온 것은 과일과 시커먼 음료와 그리고 케이크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또 무엇일까. 커피나 코코아는 아닐 것이니까.』

하고 나씨는 웃으면서 컵을 입에 대보고,

『아아 포스텀이군. 아무리 안군이라도 이것만은 수입품이군.』

하고 큰소리로 마치 승리의 부르짖음과 같이 말한다.

『아니.』

하고 안씨는 유쾌한 듯이 웃었다.

『그럼 무엇이요?』

나씨는 헛 맞쳤다는 듯이 물었다.

『이것도 옥수수겠군요?』

하고 나는 농담 삼아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것도 옥수수입니다. 옥수수를 볶아가지고 가루를 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어떤 풀이 조금 들어 있읍니다. 이 향기가 그 풀 향기지요.』

안씨는 수줍은 듯이 말하였으나 여전히 자랑의 웃음을 머금은 빛은 감출 수 없었다.

『옳지, 이것도 옥수수라.』

나씨는 또 할 수 없다는 듯이 항복하였다.

『아! 참 그렇지 그래.』

하고 안씨는 부인을 돌아보며,

『밥을 조금 드릴까. 어쩐지 동양 사람은 밥을 먹지 않으면 먹은 것 같지 않으니까요.』

라고 하면서 의미 있는 듯이 우리들을 둘러 보았다.

아니요 아니요 『 , . 더 못 먹습니다. 더는 아무것도 못먹겠읍니다.』

하는 내 말에 안씨는,

『그래도 조금만치라도.』

하고 부인에게 밥을 가져오라 말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쌀밥은 평지 주민이 상식으로 할 것이지 조선 과 같이 산악이 많은 곳엔 밭이나 산에서 되는 것으로 상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평지의 면적은 늘지 않는데 인구는 점점 늡니다. 그런데도 하루 세끼 흰 쌀밥만 먹으려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찌 하여서든지 산에서 만드는 식량과 그것을 맛있게 해 먹는 연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 자신 가정에서 실행하고자 생각한 바이예요. 그것은 내가 나 선생과 해삼위에서 작별하고 길림성이나 함경남북도로 돌아다니는 길에 깨달은 것인데, 실로 광대한 산야를 이용치 않고 있어요. 만일 산에서 만드는 식량과 그것을 맛있게 먹는 조리법을 발견한다면 조선은 지금 인구의 몇 배를 더 기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감자와 옥수수와 밀, 조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러나 아시는 바와 같이 나 같은 가난한 서생으로는 모두 생각하는 바와 같이 되지 않고 이제야 겨우 옥수수 재배법과 조리법만은 이럭저럭 해결이 된 셈입니 다. 이로부터는 감자로 옮기려고 하는 차입니다. 자 어서 잡수셔요. 실례하 였읍니다. 너무 말이 길어져서. 그래서 옥수수 포스텀이라셨지요? 나 선생 이 포스텀이라고 하셨으니 그래도 좋지요. 그리고 이 케이크가 감자로 만든 것입니다.』

하고 말하며 자기가 먼저 감자 케이크를 한입 먹고는 옥수수 포스텀을 마시었다. 우리들도 안씨를 따라 먹었다. 포스텀과 케이크가 다 맛있었다.

식후 우리들은 바다로 면한 베란다는 아니나 넓은 마루같이 되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밤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그 주제(主題)는 산의 개척이었다. 옥수수나 감자와 맥류(麥類)의 재배와 소, 양, 돼지 같은 목축은 조선의 이로부터의 농업에 신천지가 아니면 아니 될 뿐 아니라 또 중요한 것이 아니면 아니 된다고 하는 말이었다.

『논과 밭을 개량함도 급무이지만 산을 개척하는 것은 창조이니까요. 자손 만대 먹을 만한 양식의 새 원천을 만든다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안씨의 눈은 빛났다. 아이들도 있는 고로 아홉 시쯤 되어서 안씨 댁을 나왔는데 작별할 때에 안씨는,

『언제 또 한 번, 이번엔 감자 만찬을 드리겠읍니다.』

하고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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