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당원 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존경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최근 저의 몇 가지 제안에 대하여 당내에서도 이런 저런 궁금증들이 있는 것 같아서 이 편지로 저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의 제안은 여러 가지이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인 결함을 바로잡아서 정치를 정상화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생산적인 정치로 발전시키자는 것입니다.
“왜 연정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세계 여러 나라가 다 연정을 하고 있는데 왜 유독 우리는 연정 이야기만 나오면 펄쩍 뛰는가,”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정당끼리 손을 잡고 협력한다고 하면 ‘2중대’니 ‘밀실야합’이니 하며 비난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작정치와 야합정치가 판을 치던 독재시대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인 듯 합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도 이제 정상적인 생각으로 정상적인 정치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연정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여소야대 구조 때문입니다. 여소야대는 정상적인 정치구조가 아닙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여소야대의 구조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례가 없습니다. 여소야대 구조로는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8년 이래 여러 차례 여소야대 정치의 실험을 해 왔습니다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역대 정권 모두 3당 합당이나 정계개편으로 여소야대의 구조를 해소해 버렸습니다. 여소야대로는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셈입니다.
과거 미국에서 여소야대가 있었던 예를 들어 여소야대 구조 아래서도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런 인식은 맞지 않습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특별한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고 우리 정치와도 많이 달라서 본보기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도 여소야대라는 비정상적인 정치구조를 청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협박이니 매수니 하는 공작정치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 정치도 이제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정치행위를 통하여 정치구조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연정이 성공하면 독재와 타도, 불신과 대결로 점철되어온 우리 정치에 신뢰와 협력, 대화와 타협이라는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정치가 투쟁의 민주주의 시대에서 관용의 민주주의 시대로 한 단계 성숙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비타협의 선명성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연정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연정을 한다면 열린우리당과 소수야당의 전부나 일부가 참여하여 정권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밖에도 두 가지의 조합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야당이 모두 손을 잡아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여 프랑스식의 동거정부를 구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당과 손잡아 대연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동거정부 이야기는 제가 당선자 시절에 예고한 바 있습니다.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거나 야당 연합을 이루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한나라당이 동거정부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헌법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당연한 권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7대 총선 결과 동거정부 이야기는 꺼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4.30 재보선으로 여소야대가 되고 난 후에도 민주노동당의 노선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동거정부 이야기를 다시 꺼낸 데는 좀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비록 야당이라 할지라도 연합까지 해가면서 반대만 하는 것이 공당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4.30 재보선 이후 한 때 한나라당은 다른 야당에게 반대를 위하여 당연히 대오를 함께 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했고 실제로 국회가 그렇게 되는 듯한 분위기가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저와 참모들은 몇몇 법안의 귀추를 놓고 심각한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 되면 동거정부를 제안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정당이 연합을 하여 국회 과반수를 만들 때는 정권을 잡아서 책임 있는 일을 하기위한 것이어야지 오로지 정권에 반대하고 흔들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 정치를 보아도 민주화 투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는 반대를 위한 야당연합은 찾아볼 수가 없고 따라서 야당연합에 의한 여소야대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굳이 야당연합을 하려면 정권을 맡기 위한 연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반대를 위한 야당연합을 거부하는 바람에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단지 저만을 위해서 다행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의 장래를 위하여 다행스러운 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정치입니다. 앞으로는 야당이 반대전선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야당의 정체성 운운’하며 뭔가 잘못된 일이라도 본 듯한 그런 비정상적인 논평을 하는 정당이나 언론은 없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문제는 대연정입니다.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이라면 한나라당이 응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연정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야당도 함께 참여하는 대연정이 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정은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이라야 성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제안은 두 차례의 권력이양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이양하는 대신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입니다. 굳이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어떤 선거제도이든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합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당장 총선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적 합의만 이루어지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구성하고, 그 연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하고 그리고 선거법은 여야가 힘을 합하여 만들면 됩니다.
우리 정치의 많은 문제가 지역주의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지역구도 하에서 정치인이 선거에서 이기는 길은 끊임없이 상대방 지역과 상대 당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자극하고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의정활동도 오로지 지역감정과 지역이기주의를 중심에 놓고 대결하게 됩니다. 지역으로 편을 가르고 대결이 심화될수록 지역민심은 더욱 단결하는 구조이니 정책정당도 대화정치도 설 땅이 없어집니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하여 지역감정을 자극해놓고 그 지역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의 구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구도 해결 없이 우리 정치의 여러 가지 고질은 해소되기 어렵고, 정치발전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구도는 끊임없이 우리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매우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지난날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가 국난을 당할 때마다 분열이 있었습니다. 지도층의 분열, 지도층과 국민의 분열이 국난을 불러왔고 또 분열 때문에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여 국난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지역감정이 여러 가지 분열의 빌미를 생산하고 키우고 있습니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앞날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지역감정 때문에 어렵게 꼬이는 나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정도로 병이 심각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와 나라의 장래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이 걸림돌은 반드시 치워야 합니다. 이 일을 하자면 우리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 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하기만 하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폭력배들에게 테러를 당해가면서까지 공정선거 감시활동을 한 보람도 없이 지역대결 때문에 군사정권이 연장되는 현장을 지켜보며 분노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13대 국회 1년을 지나고부터는 정치를 포기한다고 마음먹고 야당 통합운동에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90년 3당합당 이후부터는 반독재 투쟁하던 심정으로 지역주의에 맞섰습니다. 고향에서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여러 차례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한 번도 제 자신의 정치생명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명분도 지역주의 극복이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역감정은 상당히 해소될 것이고, 이어서 총선에서 지역구도가 어느 정도 완화되면 제도 개선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 첫 번째 국회연설에서도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선을 간곡히 호소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주의 극복은 저의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권을 내 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에 대한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열린우리당은 스스로 지역당을 넘어서고, 이를 통하여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낙선의 위험을 감수하고 분열주의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 만든 정당입니다. 지금도 지역구도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열린우리당 누구도 다음 선거를 걱정하거나 정권을 내 놓는 결단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정을 한다하여 각료 몇 자리 놓고 다투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나라당도 이제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어두웠던 시절의 부채를 과감하게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할 때입니다. 언제까지나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기대어 한국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스스로 지역당의 한계를 넘을 수가 없고, 지역당의 한계를 넘지 않고는 정권을 잡더라도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수권정당이 되기를 원하는 정당이라면 지역당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큰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지역주의를 만들고 3당합당으로 지역주의를 고착시킨 과거를 청산하는 뜻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여야가 이 합의를 이룬다면 우리 정치는 새로운 역사를 열게 될 것입니다. 이 합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어려운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없던 일입니다. 우리 정치에 감동이 살아날 것입니다. 또 서로를 존중하는 새로운 자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관용과 상생의 정치,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자는 것입니다.
결코 무슨 이익을 취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정권을 내 놓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속임수도 없습니다. 불신과 의심을 뛰어넘는 발상의 대전환과 과감한 결단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야 정치인과 우리 국민 모두가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새로운 세상이 보이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이 정권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정상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기회 있을 때마다 나라가 위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장 나라가 결딴이라도 날듯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얼른 국정을 인수하여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본시 정당은 정권을 잡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기회가 오면 당연히 정권을 맡아야 합니다. 저는 한나라당이 정권에는 관심이 없고 발목이나 잡고 흔들기나 좋아하는 무책임한 정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대통령을 탄핵할 때에도 정권을 잡자고 한 것이지 그저 흔들어 보자고 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연정이라는 말이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선거로만 정권을 잡는 것은 아닙니다. 선거로 국회의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연정을 구성하여 정권을 잡습니다. 어떤 정당과 연정을 구성하는가에 따라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대연정을 통하여 놀랄만한 업적을 이루어낸 사례도 있습니다. 연정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기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양당이 걸어온 역사와 노선이 서로 달라서 연정을 하기가 부자연스럽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더 큰 목표와 가치를 위하여 그만한 차이는 뛰어 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양당의 구성을 보면 그 내부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어서 실제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연정을 맺고 합동의총에서 정책토론을 하게 되면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당을 넘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소신과 노선에 따른 자유로운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안한 대연정은 실질적으로는 정권교체 제안입니다. 우리는 지역구도 해소가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도 이루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후보만 내면 당선이 보장되는 영남 텃밭의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도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설득하고 점차 국민들의 이해가 넓어지면 결국 우리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이 문제에 진지하게 반응할 때까지 지역구도로 인한 우리 정치의 병폐를 고칠 한나라당의 대안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당선이 보장된다는 텃밭의 기득권이 나라의 장래보다 더 소중한 것이냐고 질문해야 합니다. 90년 3당합당으로 지역구도를 돌이킬 수 없도록 굳혀버리고 노선도 원칙도 없는 정치질서를 만들어 버린 책임을 누가 질 것이며 이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을 방안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통로로 다양한 방법으로 대화를 제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생이 어려운데 웬 정치구조 이야기냐.’는 비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로지 비난을 위한 논리입니다. 지난 시절 우리가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독재자들은 항상 ‘경제가 어려운데 웬 데모냐.’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데모를 하는 동안에도 경제는 고속으로 성장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을 전후한 몇 년 동안은 온 나라가 민주화 운동으로 벌집을 쑤신 듯이 시끄러웠으나 경제는 두 자리 숫자로 성장을 계속했습니다.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높이려면 공장 설비를 잘 해야 합니다. 설비에 문제가 있으면 즉시 고치고 개량해야 합니다. 생산에 바쁘다고 설비의 문제를 방치해 두고는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향상될 수가 없습니다. 정치가 잘 되어야 경제도 잘 될 수 있습니다. 정치가 잘 되려면 정치제도도 잘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정치제도를 고치고 바로잡자는 것입니다. 되물어 보고 싶습니다. 이 낡고 고장난 정치제도로 비정상적인 정치를 계속하자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까,
이치가 어떻든 저는 경제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출발할 때부터 우리 경제에 여러 위험요인이 터져 나왔습니다. 북핵위기, 한미관계, 카드채, 가계대출, 중소기업대출, 신용불량자, 이런 위험요인들이 지뢰밭처럼 널려 있었습니다.
이제 한고비는 넘겼습니다. 기름값, 환율 등의 문제가 있고 국내적으로는 양극화로 인한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남아 있습니다만 2년 전에 비하면 위험은 훨씬 줄었습니다. 훨씬 안정되고 전망도 밝아졌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했습니다. 자부할 수 있습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관을 무릅쓰고 이룩한 성과입니다. 참으로 국민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는 총리와 부총리에게 맡기라고 합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의 위험요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참모들과 함께 면밀히 점검하고 있습니다. 정치 이야기 좀 하더라도 민생과 경제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이제 저의 정권 후반기에는 지속가능한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정비하고자 합니다. 유능한 공장장이라면 제품 하나하나의 생산에도 힘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공장의 잘못된 설비를 바로잡고 개량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 정치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의 개선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라 할 것입니다. 밥이나 부지런히 지을 일이지 주방설비 손질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가장 중요한 정치개혁을 비방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초헌법적 발상 또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헌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헌법은 단순한 대통령제 헌법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합의가 되면 헌법에 위배됨이 없이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운용을 예상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각제적 운용을 방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경우도 헌법을 만들 때는 동거정부를 상상하지 않았지만 동거정부로 운용하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우리 헌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국민이 만들어 준 권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정치적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치현실이 변화하여 과거와는 다른 융통성 있는 권력의 운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가 미국정치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와 미국 정치는 아주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뿐 정당이 정권을 잡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생각하여 당정 협의도 하고 국회에서는 여야가 일사불란하게 행동통일을 합니다. 마치 정권이 내각제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민주화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거처럼 대통령이 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지배한다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당을 지배할 수가 없게 된 현실에서는 당정간에 주도권 다툼이 있게 됩니다. 제도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상징적인 권위와 지도력으로 이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 모순을 관리하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당정 분리를 엄격히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위임하고 총리로 하여금 원활한 당정협의를 통하여 당정 일체를 이루어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당원들에게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적지 않은 당원들이 어떤 때는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없다고 하면 왜 대통령이 지도력을 행사하지 않느냐고 나무랍니다. 또 어떤 때는 우리가 거수기냐고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심하면 청와대 인사를 비난하고 간섭하기도 합니다.
저는 당정분리 제도가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자는 국민적인 여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장차 국정의 운영에 있어서도 대통령에 대한 당과 국회의 위상과 권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당을 정권의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는 국정운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각기 다른 선거로 선출되는 국회와 대통령간의 권력의 이원화와 그에 따른 정통성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적절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유연한 정권운용의 필요성은 여소야대 국회 하에서 야당이 연합하여 대통령이 지명하는 총리를 반대하고 스스로 총리 지명권을 행사하려고 할 때 극명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동거정부가 바로 그 실제의 사례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현실을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권력의 이양이라는 대통령의 제안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보일지 모르나, 대통령으로서는 비정상적인 우리 정치제도와 변화하는 정치현실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거쳐 나온 결론이라는 점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지역구도 극복은 언젠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입니다.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명령입니다. 3당합당으로 헝클어진 정치질서를 복원해야 합니다. 여소야대 문제도 응급조치나 미봉책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열린우리당부터 결단을 내립시다. 역사를 새로 쓴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국민의 공론을 모아 나갑시다. 지금 이 시기가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를 바로잡아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정치를 이루어낸 시기로 역사에 기록되게 합시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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