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궁정의 살롱에서는 연주 중에 내객이 있을 때 수문장이 내객의 이름을 외쳐 알리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 16세의 전성시대, 마리 앙투아네트 황후는 당시의 대바이올리니스트요 작곡가로 이름이 높던 비오티의 음악을 듣기 위하여, 그를 궁정으로 불러서 하룻밤의 연주회를 열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비오티가 이 영광스런 석상에서 자기의 원숙한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을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궁정의 시신(侍臣)이하 고관 대작들은 그의 신기한 묘기에 심취되어 살롱 안은 마치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던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살롱의 입구에서 “알트 백작의 행차!”라고 외치는 소리가 수문장의 입에서 요란스럽게 튀어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불의의 규성(叫聲)에 모처럼 심취되었던 심경에서 번쩍 깨인 듯이 일제히 입구를 향하여 고개를 돌렸던 것입니다. 백작은 중인(衆人)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서 주춤하고 섰다가, 이윽고 유유하게 자기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때는 바로 여러 사람의 갈채를 받은 비오티가 무대에 다시 나타나서 재연주를 시작하였던 찰나였던 것입니다. 청중은 곧 다시 무대를 향하여 귀를 기울였으나, 그러나 거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경이의 눈을 들어 무대를 쳐다볼 그때, 비오티는 바이올린을 옆에 끼고 퇴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궁중이거나 어디거나, 또는 황족의 앞이거나 서민의 앞이거나, 이 음악가에게는 자기의 예술에 일사(一絲)의 난마(亂麻)라도 가하는 이가 있을 때에는 아무 용서 없이 당연히 연주를 중지하고 곧 퇴장하는 것이 그의 습성이었습니다. 알트 백작이라는 예술에 대하여 몰이해한 그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되었을지 보고 싶은 일입니다.
- 비오티(Giovanni Battista Viotti)sms 1753년 5월 23일에 이탈리아 베르셀리에서 나서, 1824년 3월 3일에 영경 륜돈(런던)에서 객사한 명 바이롤리니스트 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