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곤 없더니 이불을 쓰면 가끔씩 잘두 횡재한다.

공동 변소에서 일을 마치고 엉거주춤히 나오다 나 는 벽께로 와서 눈이 휘둥그랬다. 아 이게 무에냐. 누 리끼한 놈이 바로 눈이 부시게 번쩍번쩍 손가락을 펴 들고 가만히 꼬옥 찔러보니 마치 갓 굳은 엿 조각처 럼 쭌득쭌득이다. 얘 이놈 참으로 수상하구나. 설마 뒤깐 기둥을 엿으로 빚어놨을 리는 없을 텐데. 주머니 칼을 꺼내들고 한 번 시험조로 쭈욱 내리어 깎아보았 다. 누런 덩어리 한쪽이 어렵지 않게 뚝 떨어진다. 그 놈을 한데 뭉쳐 가지고 그 앞 댓돌에다 쓱 문대보니 까 아아 이게 황금이 아닌가. 엉뚱한 누명으로 끌려가 욕을 보던 이 황금, 어리다는 이유로 연흥이에게 고랑 땡을 먹던 이 황금, 누님에게 그 구박을 다 받아가며 그래도 얻어먹고 있는 이 황금 -.

다시 한 번 댓돌 위에 쓱 그어보고는 그대로 들고 거리로 튀어나온다. 물론 양쪽 주머니에는 묵직한 황 금으로 하나 뿌듯하였다. 황금 ! 황금 ! 아, 황금이다. 피언한 거리에는 커다랗게 살찐 돼지를 타고서 장군 들이 오르내린다. 때는 좋아 봄이라고 향명한 아침이 었다. 길 양쪽 버드나무에는 그 가지가지에 주먹 같은 붉은 꽃이 달리었다. 알쭝달쭝한 꽃 이팔을 날리며 엷 은 바람이 부웅 하더니 허공으로 내 몸이 둥실, 얘 이 놈 좋구나. 허나 황금이 날아가선 큰일이다. 두 손으 로 양쪽 주머니를 잔뜩 웅켜 잡고 있자노라리 별안간 꿍 하고 떨어진다. 이놈이 어따 이건 함부로 내던졌느 냐. 정신이 아찔하여 똑똑히 살펴보니 이것이 바로 우 리집 대문 앞이 아니냐.


대문짝을 박차고 나는 허둥지둥 안으로 뛰어들었다. 돈이라면 한 푼에 목이 말라하는 누님이었다. 이 누런 금덩어리를 내보이면 필연코 그는 헉, 하고 놀라겠지.

"누님 ! 수가 터졌수 !"

나는 이렇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으나 그는 아무 대 답도 없다. 매우 마뜩지 않게 알로만 눈을 깔아 붙이 고는 팥죽만 풍풍 퍼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입을 연다는 것이,

"오늘은 어떻게 취직자리 좀 얻어봤니 ?"

대문밖에 좀 나갔다 들어만 오면 변치 않고 노냥 물어보는 그 소리. 인제는 짜장 귓등이 가볍다. 마는 아무래도 좋다. 오늘부터는 그까짓 밥 얻어먹지 않아 도 좋으니까 -.

"그까짓 취직." 하고 콧등으로 웃어버리고는,

"자 이게 금덩어리유. 똑똑히 보우."

나는 두 손을 다 그 코밑에다 들이댔다. 이래두 침 이 아니 넘어갈 터인가. 그는 가늘게 실눈을 떠가지고 그걸 이윽히 들여다보다 종내는 나의 얼굴마저 치어 다보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금덩어리와 나의 얼 굴을 이렇게 번차례로 몇 번 훑어가더니,

"이거 너 어디서 났니 ?" 하고 두 눈에서 눈물이 확 쏟아지질 않느냐. 그리고 나의 짐작대로 날랜 두 손이 들어와 덥썩 훔켜 잡고,

"아이구 황금이야 !" 평소에도 툭하면 잘 짜는 누님. 이건 황금을 보고도 여전히 눈물이냐. 이걸 가만히 바 라보니 나는 이만 만해도 황금 얻은 보람이 큼을 느 낄 수 있다. 뻔둥뻔둥 놀고 자빠져서 먹는다 하여 일 상 들볶던 이 누님, 이왕이면 나도 이판에 잔뜩 갚아 야 한다. 누님이 붙잡고 우는 황금을 나는 앞으로 탁 채어가며,

"이거 왜 이래 ? 닳으라고." 하고 네 보란 듯이 소 리를 냅다 질렀다. 내가 황금을 얻어 좋은 건 참으로 누님의 이 꼴 보기 위하여서다. 이런 황금을 막 허불 리 만져 보이느냐, 어림없다, 호기 있게 그 황금을 도 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

"오늘부터 난 따로 나가겠수. 누님 밥은 맛이 없어서."

나의 재주가 자라는 데까지 한껏 뽐을 내었다. 이만 큼 하면 그는 저쯤 알아채겠지. 인젠 누님이 화를 내 건 말건 내 받고 섰을 배 아니다. 버듬직하게 건넌방 으로 들어가 내가 쓰던 잔 세간과 이부자리를 포갬포 갬 싸놓았다. 이것만 들고나서면 고만이다. 택시 하나 부를 생각조차 못하고 그걸 그대로 들고 일어서자니 까 이때까지 웬 영문을 몰라 떨떠름히 서 있던 누님이,

"얘 너 왜 이러니 ?" 하고 나의 팔을 잡아들인다.

"난 오늘부터 내 밥을 먹고 살겠수."

"얘, 그러지 마라. 내 이젠 안 그럴게."

"아니, 내 뭐 누님이 공밥 먹는다고 야단을 쳤대서 그걸 가지고 노했다거나 혹은 어린애같이 삐졌대거 나........." 하고 아주 좋도록 속 좀 쓰리게 해놓고 나 서니까,

"얘, 내가 다 잘못했다. 인젠 네 맘대로 낮잠도 자구 그래 응 ?"

취직 못한다고 야단도 안 치고 그럴께니 제발 의좋 게 같이 살자고 그 파란 얼굴에 가엾은 눈물까지 보 이며 손이 발이 되게 빌붙는다. 이것이 어디 놀구 먹 는다고 눈물로 밤낮 찡찡대던 그 누님인가 싶으냐.

"이거 왜 이래 남 싫다는데."

누님을 메다 던지고 나는 신바람이 나게 뜰 알로 내려섰다. 다시 누님이 맨발로 뛰어내려와 나를 붙잡 고 울 수 있을 만침 고만침 동안을 떼어놓고는 대문 께로 나오려니까 뜰 알에서 쌀을 주워 먹고 있던 참 새 한 마리가 포루룽 날아온다. 이놈이 나의 턱밑으로 넌즈시 들어오더니 이건 어디다 쓰는 버릇인지 나의 목줄띠를 콱 물어채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그대로 대 롱대롱 매달려 바들짝 바들짝 아, 아아 아이구 죽겠다. 아픈 건 둘째치고 우선 숨이 막혀 죽겠다. 보퉁이를 들었던 두 손으로 참새란 놈을 부리나케 붙잡고 떼어 보려니까 요놈이 버릇없이 요런. 젖 먹던 힘을 다 들 여 내 목이 달아나냐, 네 목이 달아나냐고 홱 한 번 잡아 채이니 휴우 코밑의 연기로다.

아, 나 죽는다.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참새는 거머리 같이 점점 달라붙고 숨쉬기만 더욱 괴로워진다.

공교로이도 나의 코끝이 뚫어진 굽도지 구멍에 가 파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고 구멍으로 아침 짓는 매 캐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 연기만도 숨이 막히기에 넉넉할 텐데 이건 뭐라고 제 손으로 제 목을 잔뜩 움켜잡고 누웠느냐.

"그게 온 무슨 잠이냐 ?"

언제쯤 거기 와 있었는지 누님이 미닫이를 열어제 치고서는 눈이 칼날이다. 어제밤, 내일은 일찍부터 돌 아다니며 만날 사람들을 좀 만나보라던 그 말을 내가 이행치 못하였으니 몹시도 미울 것이다. 야윈 목에 핏 대가 불끈 내솟았다.

"취직인가 뭔가 할려면 남보다 좀 성심껏 돌아다녀야지."

바로 가시를 집어삼킨 따끔한 호령이었다. 아무리 찾아보아야 고대 같이 살자고 눈물로 빌붙던 그 누님 은 그림자도 비취이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는가. 나도 뚱그렇게 눈을 뜨고서 너무도 허망한 일인 양하여 얼뚤한 시선으로 한참 누님을 쳐다보았 다. 암만해도 사람의 일 같지 않다. 낮에는 누님이 히 짜를 뽑고 밤에는 내가 히짜를 뽑고. 이마의 땀을 씻 으려고 손이 올라가다 갑자기 붉어오는 안색을 깨닫 고 도로 이불을 푹 뒤집어쓴다.

이불 속에는 아직도 아까의 그 연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