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야말로 이 나라의 보배로운 가을철이다.
더구나 그림도 같고 꿈과도 같은 좋은 밤이다.
초가을 열 나흘 밤 열푸른 유리로 천장을 한 밤
거기서 달은 마중 왔다. 얼굴을 쳐들고 별은 기다린다. 눈짓을 한다.
그리고 실낱 같은 길을 끄으며 바라노라 이따금 성화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오를 밤에 좋아라 가고프지가 않다.
아니다 나는 오늘 밤에 좋아라 보고프지도 않다.

이런 때 이런 밤 이 나라까지 복지게 보이는 저 편 하늘을
햇살이 못 쪼이는 그 땅에 나서 가슴 밑바닥으로 못웃어 본 나는 선뜻만 보아도
철모르는 나의 마음 홀아비자식 아비를 따르듯 불 본 나비가 되어
꾀이는 얼굴과 같은 달에게로 웃는 이빨 같은 별에게로
옆도 모르고 뒤도 모르고 곤두치듯 줄달음질을 쳐서 가더니
 
그리하야 지금 내가 어데서 무엇 때문에 이것을 하는지
그것조차 잊고서도 낮이나 밤이나 노닐 것이 두려웁다.

걸림없이 사는 듯하면서도 걸림뿐인 사람의 세상.....
아름다운 때가 오면 아름다운 그 때와 어울려 한뭉텅이가 못 되어지는 이 살이.....
꿈과도 같고 그림 같고 어린이 마음 위와 같은 나라가 있어
아무리 불러도 멋대로 못 가고 생각조차 못 하게 지쳤을 떠는 이 설움.
벙어리 같은 이 아픈 설움이 칡넝쿨같이 몇 날 몇 해나 얽히어 틀어진다.
 
보아라 오늘 밤에 하늘이 사람 배반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오늘 밤에 사람이 하늘 배반하는 줄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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