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초 귀신
대단히 더운 날이니 슬픈 이야기보다도 무서운 이야기보다도 우습고 우습고 허리가 아프게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옛적 아주 어수룩한 옛적에, 시골 양반 한 분이 서울 구경을 왔다가, 불만 켜대면 온 방안이 환하게 밝아지는 초(蠟燭)를 처음 보고 어찌 신기한지 많이 사 가지고 내려가서, 자기 동네의 집집마다 찾아가서 서울 구경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고, 서울 갔던 표적으로 그 신기한 양초를 세 개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처음 보는 물건을 받기는 받았어도 무엇 하는 것이며 어떻게 쓰는 것인지 알지 못하여 퍽 갑갑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다 준 사람에게 새삼스럽게 물어 보기는 부끄러우니까, 물어 보지도 못하고 저희들끼리만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면서 서로 물어보았으나, 한 사람도 그 하얗고 가늘고 깰쭘한 것이 무엇 하는 것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 하다하다 못하여 젊은 상투쟁이 다섯 사람이 그것을 손에 들고 동네에서 아는 것 많기로 유명한 글방(서당) 선생님께로 물으러 갔습니다.
“선생님, 이번에 뒷마을 사는 송 서방이 서울서 이런 것을 사 가지고 와서 서울 갔던 표적이라고 집집에 세 개씩 주었는데, 선생님 댁에도 이런 것을 가져왔습더이까?”
“응, 가져오구 말구. 우리 집에는 아홉 개나 가져왔다네.”
“예에, 선생님께는 특별히 많이 가져왔습니다그려....... 그런데 저희는 이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무엇에 쓰는 것인지 여쭈어 보러 왔습니다.”
“그까짓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죽게, 죽어 버리게. 죽는 게 옳으이.......”
“예, 죽더라도 시원히 알기나 하고 죽겠으니, 제발 좀 가르쳐 줍시오.”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기로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그것이 국 끓여 먹는 것이라네. 서울 사람들은 그걸루 국을 끓여 먹어요.”
“허허, 이걸루 국을 끓여요? 맛이 있을까요?”
“맛이 있구 말구....... 맛이 없으면 서울 사람들이 먹을 리가 있겠나....... 맛좋고 살찌고 아주 훌륭한 것이라네.”
“대체 이것이 무엇인데 그렇게 맛이 좋고 몸에 이롭습니까?"
“백어(白魚)라고, 물속에 있는 생선을 잡아 말린 것이야.”
“이상한 생선도 많습니다. 눈깔도 없고, 이 앞에 요 뾰족한 것(심지)은 무엇입니까?”
“눈깔이 원래 없는 생선이야....... 그래서 더욱 귀하다는 것이라네. 그 뾰족한 것은 주둥이가 아니고 무언가.”
“이 밑에 있는 이 구멍은 무업니까?”
“그것은 똥구멍이지 무어야.”
“네에 예, 알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참말 생선 말린 것입니다그려....... 대체 서울 사람들은 별 생선을 다 잡아먹는군요.”
“그러게 서울이 좋다는 게 아닌가.”
“그래, 이것으로 국을 어떻게 끓입니까?”
“허허, 무식한 사람이라 갑갑도 하군....... 물을 끓이고 이것을 칼로 커다랗게 썰어 넣고 간을 쳐 먹는 것이 아닌가!”
“그게 그렇게 맛이 있을까요?”
“맛이 있고 말구....... 자아, 이왕이면 오늘 우리 집에서 끓여 먹어보고 가게.”
이 선생 영감이 애초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였으면 좋을 것을, 가장 아는 체 하고, 집안사람들을 불러서 물을 끓이게 하고 간장을 치고 파를 썰어 넣고, 그리고 초를 크게 썰어 넣어 펄펄 끓여서 대접에 여섯 그릇을 내어 왔습니다.
“자아, 먹어 보게. 맛만 보면 반할 것이니......”
“글쎄올시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으면 속이 장하게 놀라겠습니다.”
“잔말 말고 어서 먹어 보게. 나는 작년에 서울 갔을 때 먹어 보고 오늘 처음 먹네.”
그런데 다섯 상투쟁이가 그것을 먹으려고 보니까, 초를 끓인 까닭에 하얗고 번쩍번쩍하는 기름이 둥둥 떠 있었습니다.
“아이구, 이것 이상스런 기름이 떠 있습니다그려. 무엇입니까?”
“아따 그놈들, 시골 놈들이라 무식한 소리만 하는구나. 좋은 국일수록 기름이 많은 법이라네. 쇠고깃국도 잘 끓이면 기름이 많지 않은가....... 백어국도 기름이 많아서 먹으면 살찌는 것이라네. 내가 아까부터 살찌는 것이라고 안했나.”
또 무어라고 하면 시골 놈이라고 흉잡힐까 봐, 냄새가 나는 것도 억지로 참으면서 꿀꺽꿀꺽 먹었습니다. 먹고 보니 목구멍이 매캐하고 쓰라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 참다못하여,
“아이고, 서울 음식은 모두 이렇게 목구멍이 아픕니까? 아파 죽겠습니다.”
“허허, 상놈의 목에 양반의 음식이 들어가니까 그렇지. 잠자코 먹게 그려.”
여러 사람은 그만 말도 못 하고 목이 아파서 입을 딱딱 벌리고 ‘씩씩’하고 앉았는데, 선생 영감은 남보다도 더 목구멍이 아파 죽을 지경이지만, 남이 부끄러워 입도 못 벌리고 쩔쩔매고 앉았습니다.
그러자, 그때에 정말 서울 가서 양초를 사 온 송 서방이 이 집에 왔습니다. 여러 사람이 하도 반가워서,
“아이고, 마침 잘 오십니다. 당신이 그 때 갖다 준 백어로 오늘 국을 끓여 먹었더니, 목이 이렇게 아파서 죽겠소이다. 그게 원래 아픈 것인가요?”
송 서방이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서,
“그것을 먹닷께? 먹는 것이 아닌데.......”
여러 사람은 먹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아이그머니 큰일 났네. 못 먹는 것을 서울 음식이라는 바람에 먹었네그려.”
하고 야단들입니다.
“그것을 먹는 것이라고, 누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였단 말인가?
“누구는 누구야. 저 선생님이 죽어라 살아라 하면서 그걸 국을 끓였지.”
고만 선생의 얼굴이 홍당무같이 빨개져서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앉았습니다.
“그것은 백어가 아니라 불을 켜는 것이라오. 자, 보시오. 불을 켤 터이니........”
하고 성냥불을 그어 생선 주둥이라던 심지에 불을 켜니, 온 방 안이 환해지는지라, 그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은,
“에그머니 우리가 불을 먹었구나!”
하고, 미친 사람같이 날뛰면서 우리 뱃속에도 저렇게 불이 켜질 터이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당장에 뱃속에 불이 일어나는 것처럼 펄펄 뛰면서,
“아이그머니, 불야!”
“아이그머니, 배가 타면 어찌하나!”
하고 우는 듯싶은 소리로 야단야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새빨간 얼굴을 푹 수그리고 앉았는 선생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겁이 났습니다. 그래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 뱃속에 불씨가 들어가 있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서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뱃속에 불이 일어나기 전에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가자!”
하면서 제일 앞장을 서서 뛰어나가 마을 뒤 냇가에 가서 모두들 옷을 훌떡훌떡 벗어 버리고 물속으로 풍덩풍덩 들어가서 모가지만 물 위에 내어놓고 불이 안 나도록 몸을 물속에 잠그고 있었습니다.
달이 환하게 밝은 밤이었으나, 늦게 지나가는 나그네(旅客) 한 사람이 그러지 않아도 냇가를 혼자 지나가기가 겁이 나는데, 냇물 위에서 지껄지껄하는 소리가 나므로 깜짝 놀라 달빛에 자세히 보니까, 냇물에 사람의 대가리만 수박같이 둥둥 떠 있습니다. 그래,
“옳지, 저놈들이 도깨비로구나....... 도깨비는 담뱃불을 무서워한다더라.”
하고 부리나케 담배를 담아 물고 담뱃불을 붙이느라고 성냥을 드윽 그었습니다. 물속에 있던 선생과 상투쟁이들은 뱃속에 있는 양초에 불이 안 일어나도록 물속에 있는데, 나그네가 성냥불을 켜니까 겁이 나서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소리치면서,
“여보게, 저 놈이 성냥불을 그어 우리 뱃속에 있는 초에 불을 켜려고 하니, 모두 머리까지 물속에 담그게, 큰일 나네.”
하고, 모두 머리와 얼굴까지 물속으로 잠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그네는 그런 줄은 모르고 냇물 위에 수박 같은 도깨비 대가리만 없어진 것을 보고,
“대체 도깨비란 놈들이 담뱃불을 제일 무서워하는군.......”
하고 지나가 버리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