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35장
哀戀無限[애련무한]
편집이 실로 결투 아닌 결투의 전말은 무인허중령으로 하여금 완전히 그 힘을상실하게 하였다. 연적(戀敵)의 목숨을 빼앗기 위하여 허중령은 결투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임 지운은 연적에게 목숨을 빼앗기기 위하여 그 결투를 승낙한 것이다. 그것은 이미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결투조건의 결여(缺如)를 의미하고 있었다. 허 정욱이 최후의 순간에서 결투를 포기한 이유는 실로 거기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냉정히 생각해 볼 때, 권총에 자신이 있을만한 임 지운의 경력도 또한 아닌 것 같았다.
결투를 중지한 자신의 처사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송장을 쏘아 사람을 죽인 불명예를 하마트면 자기는 입을뻔했기 때문이다.
허 정욱은 그 길로 곧장 명륜동으로 돌아와서 오 진국씨와 조모님 앞에 모든 것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나서,
『선생님, 오늘 이 순간부터 저는 선생님의 아들이 되기로 결심했읍니다.
할머님도 그런 줄 아시고 예전처럼 저를 친손자로 생각해 주십시오.
조모는 울고 있었고 오 진국씨는 눈을 감고 있었다.』
『후방 전임을 중지하고 저는 일선으로 다시 나가겠읍니다. 험준한 산악과 광막한 평야 일선 싸움터는 제게 있어서 영원한 애인이 될 것입니다. 국가의 간성인 군인의 몸으로서 평온한 가정생활을 꿈꾸었다는 것이 애당초 주제 넘은 일이었읍니다.』
『군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사위가 갑자기 아들이 되고 손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야.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래! 인제 영심이가 돌아오면 이 아비의 생각을 잘 타이르마.』
임 학준 교수가 뛰쳐나간지 얼마만에 영심도 두 사람의 행방을 더듬을 생각으로 집을 나가고 없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영심씨를 이상 더 건드리지 말아 주시요. 임 지운은 훌륭한 사나이였읍니다. 방금도 말씀 드린 것처럼 오늘의 결투에서 저는 완전히 참패를 했읍니다!』
허 정욱의 눈에는 글썽글썽 눈물이 어리어 있었다.
『할머니!』
허 정욱은 조모를 쳐다보며,
『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뛰쳐 오겠읍니다.』
『여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어쨌든 영심은 오 도원 선생의 손녀가 아닌가! 될 말이 아니지 될 말이 아니야!』
조모는 죽은 남편의 손녀로서 영심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떠나지 말고 영심이가 돌아 올 때까지 기다려 주게.』『할머니의 말씀, 잘 알아 모셔요. 그렇지만 영심씨를 만나보고 갈 생각은 조금도 없읍니다. 외출하고 없는 것을 천행으로 생각하고 저는 떠나겠읍니다.』
허 정욱은 그러면서 이십 만환의 저금 통장을 안 주머니에서 내주며,
『할머니가 갖고 계시다가 선생님을 모셔 주세요. 선생님을 모셔주세요.
선생님과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제가 꼭 모시겠읍니다.』
『얘, 안된다! 그래도 영심을 한 번 만이라도 만나고 가야지 않겠니?』
할머니는 울면서 허 정욱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허군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요. 일선으로 간다고 영 가는 것이 아닐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영심과 대면한다는 것은 허군의 감정으로 도리어 좋지못한 결과를 맺을 것도 같으니까……절양을 하는 셈으로 당분간 영심일랑 내게 맡겨 두고 가 있는 것도 좋은 방도일 거네.』
『그럼 선생님, 안녕히……할머니도……』
『허군, 한 마디 부탁이 있네.』
『백인(百忍)은 인간 수업의 근본 정신이네. 자중해 주게!』
『일이 모셨읍니다!』
절을 하고 허 정욱은 훌쩍 일어났다.
오 영국씨는 문을 열고 허 정욱을 바랬고 조모는 대문 밖까지 따라나왔다.
『몸 조심하거라.』
『할머니, 염려마시래두!』
『영심이가 돌아오면 내가 잘 타이를게.』
타일러서 될 일인 줄로만 할머니가 알고 계시는 것이 허 정욱은 슬펐다.
지이프차를 전송하고 조모는 이층 영심의 방으로 올라갔다.
책상위에 흰봉투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무심코 조모는 그것을 들었다.
『── 아버님 전 상서 ──』
겉에는 영심의 달필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시간의 촉박을 느끼며 총총히 쓴 영심의 유서는 이러하였다.
아버님 전 상서 창졸지간에 붓을 들었삽기에 지필묵의 예의를 갖추지 못한 소녀를 꾸짖어 주시옵소서.
이러한 심정에는 결혼식 당일에도 푸뜩푸뜩 사사로 잡힌 바 있었사오나 소녀의 노력이 충분히 그것을 초극해 나갈수 있었기에, 또한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여서 감히 소녀의 몸을 훼상치 않는 것을 효도의 길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그러한 운명의 극치로부터 제 자신을 붙들어 온 영심이었읍니다.
저간의 소식은 아버님께서 양해하실 것은 하시고 못 하실 것은 못 하시겠삽기에 거듭 쓰지않으오나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오늘,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처어도 오직 단신 이 한몸둘곳 없삽기에 그것이 분명 아버님을 배반하는 불효의 길인줄을 모르는 바 아니오나 감히스스로를 훼상함로으써 죄에 죄를 거듭하는 바이옵니다. 몸이 허약하여 변변한 식찬 한끼 올리지 못 하옵고 마음이 연약하여 부도(婦道)조차 지키지 못 하였사오니 소녀의 지은 죄 비길데 없삽니다.
끝으로 정욱씨에게 한 마디 올릴말씀 있읍니다. 정욱씨의 성실한 아내가 되고자 소녀는 제가 지닌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사오나 원래 덕이 없고 마음이 약하여 노력은 마침내 보람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사오니 이내 몸 슬프고도 한스럽습니다. 정욱씨의 용서를 빌고 싶은 생각 안타깝게 마음에 사모치오나 생각이 글을 이루지 못 하여 이대로 붓을 놓습니다.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는 조모님과 아버님을 생각하면 죽어도 끊기지 않는 목숨이 오나 아아…… 아버지…… 할머니!……
유서는 거기서 끝났다. 중도에서부터 필적은 대단히 어지러워져 있었다.
서명조차 영심은 잊어먹고 있는 것이다.
『얘야, 영심아! 영심아!』
조모는 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무턱대고 밖으로 뛰쳐나갔고 오 진국씨는 전신을 와들와들 떨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는 기세가 너무 지나쳐 자유를 잃은 한편 쪽 다리가 휘청하고 꺾어지며, 다시금 펄썩 주저 앉았다. 두 다리가 펼쳐진 채로 오 진국씨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슬 눈물이 얼굴에 흘렀다. 부모의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 자식 하나를 오 진국씨는 눈앞에 분명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 진국씨는 그것을 단지 영심 한 사람의 탓으로만 돌리지는 않았다.
『시대가 나쁘다! 시대가 나쁘다!』
펄썩 주저 앉은 그대로의 자세로써 그 한마디를 수 없이 되풀이하며 단장(斷腸)의 눈물을 오 진국씨는 흘리고 있었다.
그지음, 지운은 개천을 끼고 삼선교 다릿목까지 터벅터벅 걸어나와서 전차에 올랐다. 혜화동을 거치고 명륜동을 지나서 창경원 문이 눈 앞을 스치고흐를 무렵에야 자기가 지금 전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의식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지운에게는 자기가 아직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오직 그 한가지 의식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핏 스치고 지나간 창경원 문이 지운을 불현듯 유혹했다. 원남동에서 지운은 내렸다. 창경원 문을 향하여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비로소 지운은 허 정욱이가 남겨놓고간 한 마디가 무심중 생각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투쟁은 이미 끝났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갔다. 관념적인 조잡한 윤리는 가고 진실은 왔다. 백치의 그것과도 같은 미소 하나가 지운의 입술 위에 떠 올랐다.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없어졌다!』
진실 앞에 허 정욱은 머리를 숙였다. 허 정욱은 지고 지운은 이겼다. 오영심의 영혼과 육체를 완전 무결하게 지운은 소유할 수 있는 몸이 마침내 된 것이다.
그렇건만 어찌된 셈인지 지운은 통 유쾌하지가 못했다. 그 백치의 미소 하나가 휙 사라진 지운의 입술 위에 웃음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승리 뒤에 비애감이 왔다. 이상하게도 기쁘지가 않다. 폭력의 뒤에오는 서글픔과 흡사한 공허감이었다.
『아, 저건 영심이가 아닌가!』
창경원을 들어서서 연못을 향하여 걸어가다가 지운은 벤치 위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영심의 뒷 모습을 확인하였다.
눈이 꽁꽁 얼어 붙은 벤치 위에 영심은 앉아서 연못 위를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영심씨가 여기를?』
영심의 눈앞으로 지운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 ──』
꿈에서 깨어나는 사람 모양 지운을 쳐다보며 영심은 후딱 몸을 일으켰다.
긴 치마에 고무신을 영심은 신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무슨 흰 종이 봉지를 영심은 외투 주머니에 얼른 집어 넣으며,
『아직……아직 지운씨는 살아 계셨어요?』
남편의 총탄에 이미 쓰러진 줄로만 믿고 있던 영심이었다. 그러한 영심의 눈앞에 지운이가 나타났다. 쓰러진 것은 남편인지도 모른다.
『결투를 했다지요?』
『그건 또 어떻게 아십니까?』『임교수가 찾아 오셨어요.』
『아, 아버지가……』
복순이의 말을 듣고 달려 온 아버지임에 틀림 없었다.
『허 중령이 허 중령이 죽었읍니까?』
매어 달릴 듯이 다가서며 영심은 허겁지겁 물어왔다.
『아니요.』
지운은 가만히 돌이돌이를 했다.
『총도 쏠 줄 모르신다면서?』
그 말에 지운은 영심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부드러운 미소 하나를 입가에 띠웠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뇌에 찬 두 눈동자가 언제까지 나 영심의 얼굴을 핥는 듯이 들여다 보고 서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그이는 지금 어디 있어요?』
지운의 외투자락을 두손으로 무섭게 잡아 흔들며 영심은 물었다.
『댁으로 돌아 갔읍니다. 총을 쏠 줄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허중령은 결투를 중지 했읍니다.』
그러면서 지운은 결투가 중지된 전말을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나서,
『허 중령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나 같은 인간은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허 중령이야말로 대아를 위하여 소아를 희생시킨 훌륭한 인간이지요. 그이는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려 주었답니다.』
『아아 ──』
지운의 외투자락을 탁 놓고 영심은 다시금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무섭게 흐느꼈다.
영심의 옆에 지운은 가만히 걸터 앉으며,
『울음을 그치고 빨리 댁으로 돌아가 보시오. 허 중령은 훌륭한 인간이었읍니다. 인간적인 의미에 있어서 나는 완전히 허중령에게 진 사람입니다.』
사랑의 승리는 인간적인 패배를 초래하고 있었다. 이유 모를 지운의 서글픔은 그 곳에 있었던 것이다. 승리의 그늘에 비애감은 싹트는 법이다. 승리자는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영심씨, 이제 일어나요. 그리고 다시는 창경원을 찾아오지 마셔요.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던 영심씨가 아닙니까?』
흐느끼던 영심이가 차차 조용해지며,
『네 이제 가야겠어요.』
두 손을 내리고 가만히 일어섰다.
『얼굴을 고치고 가셔야지.』영심은 쓸쓸히 웃으며 콤팩트를 꺼내 간단히 얼굴을 고쳤다.
『지운씨도 인제 여기 오지 마세요.』
문을 향하여 걸어나가며 영심은 말했다.
『네, 나도 인제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겠읍니다. 영영……』
영심은 핼끔 지운을 쳐다보았다.「영영」이라는 그 한마디가 오늘 허 중령의 총뿌리 앞에 조용히 나섰던 지운의 심경을 말하는 것 같아서 영심은 무섭다.
『인제 어디로 가세요?』
문을 나서서 둘이는 한 길가에 우두커니 마주 서 있었다.
갈 곳이 없다. 다만 허 중령의 관용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생명이 한두 시간 더 연장되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것과 꼭 같은 심정에 영심도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지운의 앞에서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했으나 영심이야말로 갈 곳이 없는 몸이다.
아까 집을 나올 때 명륜동 약방에서 영심은 수면제「세코날」의 치사량(致死量)을 샀다. 그것이 지금 자기 외투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다.
『집으로 가야지요. 영심씨도 어서 집으로 가세요.』
『정말 곧장 댁으로 돌아가셔야만 해요?』
『돌아가지요. 영심씨도 곧장 돌아가시지요?』
『그럼요.』
둘이는 제각기 상대편의 거취가 무서워졌다.
상대편에 대한 불안이 자꾸만 커져갔다. 이대로 헤어졌다가는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만 같아서 두 사람은 각기 서로가 무섭다.
그러는데 원남동 쪽을 향하여 택시 한 대가 서서히 달려오다가 두 사람 앞에서 멈추었다.
『타십시요.』
조수가 권유를 해 왔다.
꼭 택시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것같은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두 쌍의 다리가 아무런 목적 의식도 없이 저절로 움직이며 차 안으로 올라갔다. 문을 탁 닫으며,
『어디로 가실까요?』
운전수는 물었다.
둘이는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나면서,
『안국동까지……』
『명륜동까지……』둘이의 말은 겹쳐져 나왔다.
『네?』
운전수는 얼떨떨 해졌다.
『명륜동까지 가요.』
『아냐요. 안국동까지 가세요.』
원남동 쪽을 향하고 있던 차는 곧장 달려가기 시작하였고 둘이는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지운은 외투의 깃을 세우며 무서운 표정을 하고 창 밖을 묵묵히 내다 보고 있었다. 영심은 외투 주머니에서 검은 바탕에 노란 줄이 굵게 뻗은 넥카티브를 끄집어 내어 퍼어머 머리를 턱 밑에서 감싸맸다.
곤색 바탕에 흰 점이 알룩달룩 박힌 영심의 마후라와 좋은 대조가 되고 있었다.
이윽고 돈화문을 지나 안국동 네거리에 다다랐을 때, 자꾸만 내리라는 영 심의 말을 무시하고 지운은 명령을 하듯이 강경한 어조로 차를 세웠다.
『명륜동까지 가요!』
영심은 마침내 입을 다물고 이상 더 항거하기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차가 다시금 창경원으로 되돌아 와 명륜동입구까지 다달았을 때 영심은 펄떡 정신이 든 사람처럼,
『아, 이거 보세요. 그리로 들어 가면 안돼요!』
하고 외치 듯이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갑니까?』
운전수는 물었다.
『그냥 가세요.』
『그냥 곧장 가요?』
『네, 그냥……』
차는 다시 혜화동으로 달려갔다.
상대편은 무사히 돌려보내고 자기만이 죽음의 길을 걷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한 노력을 둘이는 꼭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른다운 노력이 결국에 있어서는 그들 두 사람의 참된 애정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지는 않았다. 같이 죽고 싶은 것이다. 같이 죽어 주었으면 했다. 같이 죽는 것만이 사랑의 진실인 자태 같았다.
그러나 둘이는 누구 하나 그것을 입밖에 내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곧장 올라갑니까?』
동소문 고개를 올라가면서 묻는 말이었다.
『네, 그냥……』삼선교를 지나 돈암동 종점까지 와서,
『어디서 멈출까요?』
운전수는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가시요?』
그것은 지운이가 비로소 입을 연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그냥이라고……미아리입니다.』
『돈을 드리면 되지 않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지운 또래의 운전수와 이십 전후의 조수였다.
지운은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두 시 반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차는 미아리고개를 넘어 곧장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지운도 말이 없고 영심도 말이 없다. 돈만 받으면 그만인 운전수도 이상 더 목적지를 묻지 않았다.
하얀 벌판에 희미한 석양이 하얗게 내려 비치고 있었다. 공동 묘지를 지나 미아리 동네 끝까지 나간 택시였다.
『멀리 더 갑니까?』
『더 가시오.』
『이 길을 곧장 가면 포천이 됩니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삼팔선이지요.』
지운은 분현 듯 영심을 돌아다보았다. 스카프로 머리를 싸 매인 영심의 얼굴이 조용히웃고 있었다. 지운도 따라서 웃었다. 조화를 이룬 웃음이었다.
『삼팔선……』
지운은 중얼거리며,
『가는 데까지 가시요.』
그러는데 영심이가 돌연 창밖을 내다보며,
『아이, 저기 저 산 무척 예쁘지요?』
하고 어린애처럼 외쳤다.
『어느 산 말입니까?』
지운도 영심의 시선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저기 저 눈을 하얗게 인 산……봉우리 셋이 우뚝 우뚝……』
『아, 그건 삼각산이지요.』
삼각산이라는 말에 영심은 갑자기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 어조로,
『저게 삼각산이어요.』
『그렇답니다. 맨가운데 있는 봉우리가 백운대(白雲臺)지요.』『백운대! 말로만 듣고 있었어요. 한 번 올라가 봤으면……』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 같은 감동의 중얼거림이었다.
『아직 못 올라가 보셨읍니까?』
『네, 아직……』
『그럼 올라가 보시지요!』
절실한 동감이 지운에게 왔다. 두 사람에게는 비로소 뚜렷한 목적지가 생긴 것이다.
『운전수 양반, 우이동까지 가요!』
어린애처럼 신이 나서 지운은 말했다.
『아니, 이 눈길에 삼각산을 올라가셔요?』
운전수와 조수는 어안이 벙벙해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올라가는건 우리들이고 차를 모는 건 당신이요. 청하는 대로 요금은 드리겠소.』
마다하는 운전수를 지운은 돈으로 우겨댔다.
이리하여 차는 다시금 녹다 남은 눈길을 굴기 시작했다. 미친 사람이라고 운전수는 생각하면서도 돈은 귀했다. 그러나 본도를 떠나서 우이동으로 들어가는 가랑지 길은 사람의 발자욱이 몇낱 박혀 있을 뿐 차는 새 눈길을 개척하면서 전진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운전수와 조수는 누차 불평을 말했으나 돈의 힘이 신통했던 탓으로 우이동 계곡 앞까지 차를 들여 대는데 마침내 성공하였다.
짧은 겨울 해라,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 되어 있었다. 결국은 만족해서 돌아가는 운전수의 뒷모양이었다.
『아이, 참으로 경치가 좋아요! 저 웅장한 산악 좀 올려다 보세요!』
실감 그대로의 감탄을 영심은 또다시 했다.
『아, 저 웅대한 봉우리……』
봄이나 여름철에는 여러번 본 산이었다. 그러나 오늘 자기의 생명이요 우주인 오영심의 감탄을 반주로 얻은 임 지운이다. 영심의 온갖 감격이 그대로 고스란히 지운의 감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적막 강산, 새 소리 하나 벌레 소리 한 오락 들리지 않는 백설이 만건곤(白雪滿乾坤) 한 유곡(幽谷)속에 지금 두 사람은 서 있는 것이다.
감감히 올려다보이는 봉우리 셋 ── 눈을 소담스럽게 인 세 개의 흰 메뿌리가 동양화의 웅대한 기상을 지니고 두 사람을 홀연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석양이 회화적인 라인라이트(線光[선광])로 봉우리 셋을 서두르고 있었다.『올라가요.』
『올라갑시다.』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롭고도 웅장한 산기(山氣)가 두 사람의 영혼을 불러 올리고 있다.
『해가 지면 길이 험해요. 어서 올라가요.』
『해가 지면 저기 저 달이 빛을 내지요.』
히끄무레한 빛을 잃고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인가가 몇, 한 길가에 잠방하니 앉아 있었다. 굴뚝마다 저녁 연기가 가느다랗게 내뿜고 있었다. 지금은 폐점을 하고 있지만 제철에는 손님들에게 자 자부레한 식료수를 팔고 있던 한길가 가게로 지운은 들어갔다.
『뭐 먹을 것 없읍니까?』
저녁을 짓던 오십 대의 마누라가 손을 혹혹 불면서 나타났다. 이 겨울철에 어이한 사람들인가고 의아스런 표정을 얼굴에 지으면서,
『팔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나 약주 같은 건 있지만……』
『과자는 어떤 것이 있읍니까?』
『비스켓 같은 것……오래된 것이지만……』
『그걸 주시오. 술은?』
『국산 위스키 같은 것……』
『그걸 주시요.』
비스켓 한 통과 위스키 한 병을 지운은 사들고 나왔다.
『서울로 들어가시는 길이면 바삐 걸으셔야 겠읍니다.』
가게문을 닫으며 마누라는 말했다.
『아닙니다. 백운대에 올라가는 길입니다.』
『백운대라고요? 어마나?』
소스라치게 마누라는 놀란다.
『이 눈길에 백운대에 올라가십니까? 더구나 저런 아가씨가……』
지운의 말이 주인 마누라에게는 통 믿기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저희들은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눈에 싸인 백운대를 꼭 한번만 봐 둬야만 하겠기에』
『소설……이야기책 말씀이예요?』
『이야기책……네네, 맞았읍니다.』
『그럼 저 장화홍련전 같은?』
『그렇지요. 추월색(秋月色)이나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같은 이야기책이 있지 않습니까?』『아이, 그럼 훌륭하신 분이네요!』
신통한 사람들을 눈앞에 본다는 듯이 마누라는 눈을 크게 떴다.
영심과 지운은 조용히 웃었다.
『그렇지만 인제부터 올라가시면 밤길이 될 텐데……』
『달이 뜰테니까 괜찮습니다.』
『달이야 뜨겠지만……하두미끄러워서 어떻게 올라가셔요? 한 발만 잘못 딛이면…… 어젯밤 바람이 불지 않았어요? 골짜기마다 세 길 네 길 눈이 쌓이어 있을 터인데요.』
『한 발 잘못 딛이면 죽습니까?』
지운과 영심은 또 마주 쳐다보며 가만히 웃었다.
『죽다 마다요! 골짜기도 무섭지만 눈떼미가 가끔 떨어진 답니다. 언젠가도 꿩 사냥을 올라갔던 포수가 눈 떼미가 떨어지는 바람에 골짜기로 굴러 들어가서 죽은 일이 있답니다.』
둘이는 또 서로의 얼굴을 문득 바라보았다. 이 눈길이 위험하면 위험할 수록 자기들의 생을 처리하는데 인공적인 귀찮은 수단 하나가 덜어지는 것 같아서 오히려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자연의 의욕 속에 인간의 운명을 맡기는 길 ── 그것만이 현재에 있어서의 그들의 심정에는 가장 어울리는 오직 하나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각기 혼자서 품고 있는 심정의 일치일 뿐, 그것을 감히 입 밖에 내어 상대편의 의사를 타진해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주머니, 염려 마시요. 저희들은 산악회(山岳會) 회원이랍니다. 오늘은 이처럼 평복을 하고 왔지만 등산에는 자신이 있답니다.』
『그렇지만 이 저문 날씨에……』
참 이상도 한 사람들이라고, 마누라는 두 사람의 표정에서 그 무슨 불길한 것을 심중에 느끼면서,
『더군다나 저 아가씨는 고무신을 신고 미끄러워 어떻게 올라가십니까?』
그때, 지운은 비로소 그 점에 생각이 미친 듯이,
『참, 무슨 노끈 같은 것이 있으면 조금 빌려주시요. 신이 벗겨지면 안될 테니까.』
『노끈이야 있지만도……』
마누라는 다시 가게로 들어가서 먼지가 허옇게 내려앉은 건설 담배 상자 속에서 올망 졸망한 노끈 뭉치를 몇낱 집어 주며,
『생각해 보시고 내일 아침 올라가시지. 여기서 하룻밤 묵어서……』
『하하, 아주머니가 암만해도 걱정이 되시는 모양인데……』미소를 띄고 있는 영심의 시선과 눈을 한번 맞추고 나서,
『아주머니가 정이 저희들을 염려해 주신다면 이렇게 좀 해 주실까요?』
지운은 마누라에게 봉투 한 장을 빌렸다. 거기다가 명륜동 주소에 영심의 이름과 안국동 주소에 자기 이름을 나란히 지운은 썼다. 그리고는 수첩을 한 장 뜯어서 다음과 같이 간단한 한 마디를 적었다.
『── 춘삼월 눈 녹을 무렵에 삼각산 계곡을 더듬어 보시면 혹시 저희들 두 사람을 발견 할 수 있을지 모르겠읍니다. 지운과 영심 올림 ──』
쓰고 나서 지운은 종이 조각을 영심에게 보이며,
『다소 위험하다니까 준비로 이렇게 한자 적어서두는 것이 어떨까요?』
영심은 읽고 나서 지운을 빤히 쳐다보며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가만히 끄덕끄덕 했다.
지운은 봉함을 하고 나서,
『등산에는 자신이 있는 저희들이지만요. 또 운이 나빠서 어떻게 될런지,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있읍니까. 내일 중으로 저희들이 내려오지 않는 경우에는 귀찮으시겠지만 서울가는 인편에 부탁을 해서 우체통에 좀 넣어주시도록……』
그러면서 지운은 봉투와 함께 수고 한다는 의미로 주머니에 남은 돈 삼천 환을 털어서 마누라에게 내주었다.
『편지는 붙여 드리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주시면 어떻거세요?』
사양하는 마누라의 손을 지운은 막으며,
『애들에게 연필이나 사 주시요.』
마누라는 송구해 하며,
『중간 쯤 올라가면 도성사(道成寺)라는 절이 있는데……거기서 밤 쉬임을 하시게 되면 천만 다행이지만도……』
소년 시절, 해군복의 소녀를 절절히 그리며 산으로 들로 무턱대고 싸돌아 다닐 무렵, 도성사에는 지운도 한 두번 들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미끄러운 눈길에 암만 생각해두 거기까지 올라갈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염려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지운과 영심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가게 앞을 떠났다. 일단 안으로 들어갔던 마누라가 작년 가을에 팔다 남은 껌 세개와 초콜렛 다섯 개를 들고 따라 나와서 가만히 영심의 외투 주머니에다 넣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사양 없이 영심은 받았다.『글쎄 이 저문 눈길에……』
암만 생각해도 수상하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으며 개천 가 새 눈길을 조그맣게 사라져 가는 두 사람의 까만 그림자를 마당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언제까지나 마누라는 바라보고 있었다.
해는 이미 삼각산 봉우리를 넘어선지 한참 산 그늘의 어둠이 너무도 빨리 황혼을 재촉하는 삭막한 계곡길이다.
바람은 없으나 설곡(雪谷)의 기온은 대단히 차다.
『영심씨, 춥지 않습니까?』
『아니요.』
길도 고르지 못하지만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도랑인지 알 수가 없다. 짐승의 발자욱 하나 보이지 않는 하얀 눈위를 어쨌든 골짜기를 끼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둘이다 깡그리 잠을 못 이룬 지난 밤은 모진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모진 바람에 불리고 불려 눈은 되는대로 이리 저리 깊은 데를 찾아서 몰리어 있었다. 쌓이어 있었다. 발등을 채 덮지 못하는 곳도 간혹가다 있었으나 발목까지는 대개가 찼다. 낮은 데는 두 사람의 종아리와 무릎을 적시는 눈의 두께였다.
고무신 바닥이 미끄러워 자꾸만 발에서 벗겨져 나간다. 눈속을 더듬어 벗겨진 고무신을 두 세번 찾아 신다가,
『지운씨, 노끈을 주세요.』
손 하나를 영심은 내밀었다.
『제가 동여 드리지요.』
계곡 입구를 조금 밖에 들어가지 못한 지점에서 둘이는 마침내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 이리 주세요.』
영심은 부끄러운 것이다.
『가만이 계셔요.』
외투 주머니에서 노끈 한톨을 지운은 꺼내 들며
『이 돌 위에 발을 올려 놓으시요.』
영심의 발이 돌 위로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지운은 엉거 주춤히 꾸부리고 앉았다.
『제가 멜 테야요. 이리 주세요.』
『글쎄 빨리 놓으세요.』
『아이 참……』눈이 하얗게 선을 두른 자주 비로드의 치마 자락과 함께 영심의 옥색 고무신이 돌뿌리 위로 가만히 올라 앉았다.
몸무게에 비해서는 조그만 발이었다. 요 조그만 발을 가지고 그처럼 어른다운 말만골라서 했느냐고, 영심의 그 가혹했던 노력이 지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눈을 털어 낸 영심의 발등을 지운은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신비로운 감각이 손바닥에 왔다. 그 조그만 버선 발을 두 손으로 꼬옥 감싸주고 싶은 충동이 무섭게 왔다.
그러한 애무에의 충동 하나를 격렬히 느끼고 지운은 갑자기 자기가 부끄러워졌다. 소년 시절의 그것처럼 죄 의식은 분명히 아니었다. 남녀의 애정에는 그러한 부끄러움이 본질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것일까? 성스러운 부끄러움이며 신비로운 수줍음이었다.
그 절실한 애무에의 충격을 지운은 가까스로 억제하며 고무신과 발등과 발목을 벗겨지지 않도록 천천히 동여맸다.
『저편 쪽 발을.』
『아이, 인제 정말……미안해서……송구해서 이러구 서 있을 수가 없어요!』
『빨리 올려 놓아요. 날이 자꾸만 저물어 가는데……』
한 쪽 발길이 마치 돌 위에 올라 와 앉았다. 지운은 다시 찬찬히 감아 매기 시작하였다. 감아 매다가 지운은 돌연 돌뿌리 위에 엎디며 신발과 함께 영심의 발을 두팔에 안고 자기의 볼을 그 조그만 발등에 무섭게 부볐다.
영심은 놀라서 발을 움츠러뜨리고 했으나 지운은 그냥 볼을 부비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성스러운 발 밑에서 지운은 그저 죽고 싶었다.
사랑의 극치는 주는 것도 아니고 소유하는 것도 아닌성 싶었다. 사랑 그 자체 속에서의 개체(個體)와 함께 전실재(全實在)의 용해(溶解)를 의미하고 있을 뿐이다. 주는 것을 생각하고 소유하는 것을 의욕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사랑의 순수한 자태는 아닌 것이다.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사랑 그 자체일 뿐이다. 사랑 그 자체가 가치체(價値體)일 따름이다. 사랑에는 효용(效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사랑의 효용을 생각하는 것은 연애윤리학자(戀愛倫理學者)나 연애 공리학자(戀愛功利學者)들뿐이요, 그 실천자는 아니었다.
지운은 지금 영심의 발등에 볼을 부비며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운이가 자기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당한 어휘를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 보았을 따름이었다. 실은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명확히 들지 않았다. 반대로 살겠다는 생각은 더 한층 들지 않았다. 다만 지운이 가 자기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좀더 적당한 어휘를 선택하는데 작가적인 시간의 여유를 가졌다면 그것은 생명의 자연적인 용해(溶解)에 의 허용(許容)인 동시에 인간의식의 페이드인(溶暗[용암])을 의미했을 뿐이다.
사람은 사랑한다는 그 자체만이 레존데뜨르(存在價値[존재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운은 거스름없이 그것을 생각하였다.
둘이는 다시금 걷기 시작하였다. 울통불통 골짜기를 깊이 접어 들어 가면서부터 눈길은 차차 험해지고 좁아졌다. 빙산(氷山)인양 눈속에 파묻힌 돌을 차고 영심은 벌써 세번이나 둥그러져 나갔다. 지운은 영심의 팔을 붙들고 걸었다. 눈은 두 사람의 종아리를 덮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사흘을 걸어도 못 올라가겠어요.』
그러나 그 사흘을 영심은 조금도 고통스럽게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한달이 걸리면 떻습니어까?』
『눈이 차차 더 깊어져 가지요?』
『길이 갑자기 낮아져서 그렇군요.』
눈의 두께가 두 사람의 무릎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영심은 한 손으로 치마귀를 걷어잡지 않을 수 없었다. 발을 빼서 걸음을 옮기기가 차츰차츰 힘들어졌다. 다리에 피곤이 오기 시작하였다. 발이 꽁꽁 얼기 시작하였다. 아랫 동아리서부터 냉기가 차차 배 위로 기어 올라왔다.
계곡의 황혼은 갑자기 짙어져갔다. 앞도 뒤도 첩첩 산이다. 묵화에서 흔히 보는 삭막한 설악(雪嶽)속에서 두 사람은 지금 개미처럼 지지 부진한 걸음을 한발씩 옮기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속세를 완전히 떠났으니까요.』
『사람의 인연이란 생각하면 우습지요.』
『우습다는 것 보다도 신통하지요.』
『신통……정말 생각하면 신통해요.』
『이런 겨울에……이런 곳으로 영심씨와 함께 산보를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산보……참 지운씨는 좋은 말 많이하셔요.』
『영심씨가 이처럼 옆에서 들어 준다면 좋은 말 자꾸 해드리지요.』
길이 왼편으로 꾸부러지면서 계곡의 낭떠러지가 갑자기 깊어졌다. 두 길은 넉넉히 될 눈이 벼랑턱 절반까지 가득 차 있었다.『떨어지면 영 기어올라오지 못하겠지요?』
『약간 힘들겠는데요?』
『위험해요 좀 이리 들어 서세요.』
붙들린 팔로 낭떠러지 쪽에 선 지운을 영심은 가만히 잡아당겼다.
『아, 위험……』
이번에는 지운의 편에서 돌뿌리를 밟고 퉁그라졌다.
『꼭 붙잡아야겠어요. 혼자만 떨어짐 안돼요.』
『영심씨!』
『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지요?』
『두견새가 되잖아요?』
『아, 두견새!……그러다 보니 영심씨도 무척 좋은 말 많이 하셔요.』
『흐, 흥』
영심은 쓸쓸히 웃으며,
『많이 하지요. 신앙 생활로 설교할 줄 알고……대아의 정신도 말할 줄 알고……』
『눈 덮힌 겨울철에 백운대 산보도 오실 줄 알고……』
『팔장을 끼고「愛人[애인]」의 속편을 실행하기 위해서 황혼의 설곡을 걸을 줄도 알고……』
실로 오랜 시일에 걸쳐 억압되어 오던 한학자의 딸 오 영심의 감정이 차츰차츰 속세의 질곡(桎梏)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하였다.
영심의 그러한 감정의 해방이 지운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내가 벌써부터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던 것처럼 영심씨는 확실이 서로 상극되는 두가지 면을 아울러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무슨 뜻인데요?』
『하나는 영심씨의 바둑과 서도(書道)에서 오는 일면이고……』
『그리고는?』
『영심씨의 전공인 영문학에서 오는 일면이지요.』
사랑은 자기를 잘 이해하여 주는 데서도 싹이 트는 법이다. 한 번 보고 느껴진 순수한 애정 위에 이해의 애정이 다시금 겹쳐지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완전 무결한 둘이의 사랑이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이루어지지 않아서는 아니되었던 운명 그 자체가 한스러울 뿐이었다.
『역시 작가는 다르셔.』
영심은 기쁘기 한량없다.『가장 꿈이 많으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인간 오 영심!』
『꿈이 지나치게 지리했었어요.』
『서구적(西歐的)인 로맨티시즘을 동양적인 모랄리즘으로 감싸고 있는 여성 오 영심!』
『아이, 재미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지운씨도 마찬가질 거예요.』
『뭐가요?』
『그와 꼭 같은 중세기적 로맨티시즘을 임교수의 근엄한 성실로서 캄플라즈 하고 있는 작가 임 지운!』
지운은 눈이 번쩍 띄였다. 이렇게까지 정확성을 지니고 자기를 논평한 사람이 친구 중에도 없었고 평론가 중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운씨의 성실은 이 석란과의 결혼을 실천에 옮기는데 자신을 가졌었지만 지운씨의 꿈은 그 결혼을 손수 파괴하셨지요.』
『영심씨의 모랄리즘이 허중령과의 결혼 생활을 노력했었지만 영심씨의 꿈이 결국은 백운대 산보를 시키게 하는 것처럼……』
맞은 말이었으나,
『아니에요.』
하고 영심의 말은 항거를 해 본다.
『뭐가 아니예요?』
『제가 집을 나설 때는 이런 데로 찾아 올 생각은 꿈에도 없었으니까요.』
영심의 오른편 손이 외투 주머니 속의 수면제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지운씨를 만나지 않았댔음 오늘 저는 딴 길을 산보했을 거예요.』
실은 창경원 벤치 위에서 약을 먹을 셈으로 영심은 있었던 것이다.
『딴 길이라고……이보다 더 아름다운 길인가요?』
『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영심은』
후딱 지운을 쳐다보며 쓸쓸히 웃었다. 지운은 걸음을 멈추고 영심의 쓸쓸한 웃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길이 갑자기 가파로와지기 시작한 어떤 벼랑턱 위에서였다.
『영심씨!』
지운은 두 손으로 영심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며 불렀다.
『네?』
자즈러질 것 같이 조용한 대답을 영심은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무척……무척……』숨이 가빠 영심의 대답이 자꾸만 매듭을 맺는다.
『사랑은 인간에게 영원을 생각하게 하는 오직 하나의 순수한 관념 같아요.』
『영원……영원……』
잠고대처럼 영심은 중얼거리며,
『지나간 오랜 시절, 지운씨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영원을 생각했지요.』
영원을 생각하고나서는 생명의 유한(有限)을 생각하고요.』
영심의 상반신이 조금씩 앞으로 쓰러져 오는 것과 지운의 품이 그것을 조용히 맞이한 것은 동시에 일어난 자연 현상이었다.
그것을 하나의 행동이라고 부르기에는 둘이의 의욕이 이미 조절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새가 울고 꽃이 피는 것과 꼭 같은 대자연 속의 한낱 현상일 따름이었다. 이 인간의 의욕을 초월한 순수 무구한 애정의 자세 속에서 인류는 탄생했고 철학은 싹텄다.
『영원히……당신을 영원히 내 품에……』
『영원히…… 영원히 당신 품에……』
병풍인 양 겹겹이 둘러 싼 백은(白銀)의 세계. 그 웅대하고 삭막한 눈의 계곡 속에서 둘이는 오랫동안 포옹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행동이 아니고 현상을 의미하는 조용한 포옹이었다.
바람 소리도 없고 새 소리도 없다. 무엇 하나 움직이는 것도 없다. 영원한 침묵을 지켜 주려는 것처럼 우뚝우뚝 솟아있는 웅장한 설악의 품 속에 둘이 의 조그만 그림자는 조용히 안기워 있었다.
날은 완전히 저물어 희미한 달빛이 황혼의 꼬리를문북극의 백야(白夜)가 설곡에 왔다무시무시한 적료(寂廖)가 둘이의 주위에는 있었다.
『영심이!』
『네.』
누구 한 사람 듣는 이가 있을 리 없건만 둘이의 대화는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몸이 얼었는데……』
『춥지는 않아요.』
희미한 월광을 등불 삼아 미끄러운 비탈길을 둘이는 한 걸음 올라가고 있었다.
『앗 ──』
손길만을 잡았던 것이 나빴다. 길 한 쪽이 떨어져 나간 줄을 알 리가 없다. 쌓였던 눈더미가 저항을 잃고 영심의 발을 몸과 함께 낭떠러지로 밀어넣고 있었다.
『손을 꼭 잡고 가만히 매달려 있어요! 힘을 쓰면 내 발이 미끄러워서……』
달빛이 차차 밝아 오며 지운의 손길 하나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영심의 몸뚱이가 완전히 보였다. 다행히 지운은 앉은뱅이 소나무 하나로 자기의 몸을 지탕하며 조심조심 영심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하마터면 혼자 갈 뻔했어요.』
영심은 눈을 털며 지운을 쳐다보고 가볍게 웃었다.
『왜 혼자 보내겠어요? 내가 따라 다이빙을 하지요.』
『수영을 하세요?』
『운동이라고는 수영밖 에 모른답니다.』
둘이는 웃었다.
『어떻게요? 좀더 올라가서 쉬어 가지요.』
『이 비탈길 만 올라가서 쉬어요. 저리가서 쉬어요. 다리가 아파요. 발이 꽁꽁 얼어서 감각이 없어요. 고무다리 같아 졌어요.』
둘이가 다 아랫동아리가 흠빡 젖어 있었다. 군데군데 얼어붙기도 했다.
『영심은 이런 데로 산보 온 걸 후회하지 않아요?』
『아니요. 지운씨는?』
『나야 물론……』
『그럼 어서 가요.』
『가만 있어요. 이대로 올라가다는……』
지운은 외투 밑에 목도리를 벗었다.
『춥겠지만 영심씨의 마후라 좀 빌려 주세요.』
영심은 마후라를 주었다. 지운은 둘을 마주 비끄러맸다. 그리고는 자기 허리에 둘러 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허리를 동여 매기에는 아직 길이가 모자랐다.
『이거 드려요?』
영심이가 머리에 쌌던 스카프를 벗으려는 것을 막으며 자기의 허리띠를 지운은 풀었다. 그리고는 허리띠 대신 아까 그 노끈 남은 것으로 바지를 맸다.
『아직, 조금 짧은데……』
혁대를 이어도 둘이의 허리를 간신히 동여 맬 수 있을 뿐, 끈이 짧아서 걸을 수가 없다. 그것을 보자 영심은 외투 단추를 끌러 헤치고 저고리 고름을 잡아 뜯었다.『이걸 이으면 될 거예요.』
『찬 바람이 들어 갈 텐데……』
『외투 입어요?』
고름 두 개를 또 이었다. 둘의 허리를 동여매기 전에 지운은 자기의 외투를 벗어서 괜찮다는 영심에게 더 입혀 주었다.
『남자의 몸은 여자보다 강인하니까……』
둘이의 허리를 각기 매고도 한 자 길이의 여유가 두 사람 사이에는 생긴 것이다.
『자아, 이제 올라가요.』
『어린애들의 기차놀이 같아요.』
둘이는 손을 돌려 서로의 몸을 꼭 부여안고 다시금 눈비탈을 쑥쑥 빠지면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저고리 고름이 약해서 끊어짐 어떻게요?』
영심은 그것이 또 걱정이 되었다.
『이은 데만 없으면 끊어지지는 않겠지요.』
『이는 데는 없지만……이거 하나 잡수세요.』
몇걸음 올라가다가 영심은 가게 아주머니가 준 초콜렛을 꺼냈다. 시장끼는 벌써부터 있었다.
『그것보다도……우선 위스키로 먼저 몸을 풀어야 하겠소. 냉기가 심장까지 올라오기 전에……』
영심에게 더 입힌 외투 주머니에서 위스키 병을 지운은 꺼냈다. 이빨로 마개를 뽑고,
『자아, 한 모금……』
하고 먼저 영심에게 권했다.
『전 못 먹어요.』
『먹은 줄 알고 권하는 것이 아니요. 몸을 데워야 산보를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영심의 입에 병을 갖다 대고 지운은 가만히 술을 부었다.
처음에는 가슴이 째개지는 것 같았으나 한참을 지나고 나니 몸이 차차 영심은 풀리기 시작하였다.
지운은 올라가면서 병 나팔을 수차나 불었다.
『비스켓이예요.』
이번에는 영심의 편에서 지운의 입에서 비스켓을 하나씩 쏙쏙 들여뜨려 주었다. 두 사람은 눈속에 여러번 쓰러지면서 걸었다. 일어설 기력을 잃고 꼭안은 채 그대로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또 용기를 내어 일어서서 걸었다. 걷다가는 또 딩굴며 쓰러졌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사랑의 고행(苦 行)을 의미하고 있었다.
비탈길은 마침내 두 사람을 절벽 꼭대기로 인도하였다. 길은 거기서 또 오른편 낭떠러지를 기어 올라가고 있었으나 지운은 영심의 몸에서 자기의 외투를 벗겨 벼랑턱 위에 깔았다. 그리고는 피로할대로 피로해진 영심의 몸을 가만히 앉히었다. 끈이 짧아서 영심이 앉으면 지운도 따라 앉아야만 했다.
『꿈 속 같이 신비로운 이 경치!』
몸이 풀림을 따라 영심의 감정은 차차 황홀해 갔다. 황홀을 느낄만한 신비로운 경치가 둘이의 눈앞에 즐비하게 전개되어 있기도 했다.
쓰러지기만 하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두 사람은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창백한 차거운 달빛 속에 높고 낮은 눈 봉우리가 눈 아래로 첩첩이 덥겨져 있었다.
『등산 온 보람이 있지요?』
지운은 영심의 몸을 자기의 체온으로 조금이라도 더 녹여주고 싶어 꼭 옆으로 껴안아 조용히 물었다.
『보람 이상의 보람……』
영심은 꺼질 것 같은 한숨을 지었다.
『피곤하지요?』
『아니요.』
육체의 피곤을 묻는 말이었으나 영심은 마음의 건강 상태를 대답하고 있었다. 영심의 표정은 달빛 속에서도 분명히 피곤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위스키를 마시고 난 지운의 입에다 빠짐 없이 비스켓을 영심은 하나씩 넣어 주며,
『이제……이제 더 이상 더 움직이기가 싫어졌어요. 눈이 더 자꾸만 내려서…… 이대로 이렇게 앉아 있는 이대로의 저희들을 덮어 죽었으면……』
『아아, 영심!……』
지운은 영심의 몸을 조용히 돌려 두손으로 영심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영심은 눈을 사르르 감고,
『영혼은 불멸(不滅)이죠?』
했다.
『그럼요! 우리의 사랑이 불멸인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영원히 살아 있을 거예요.』
『그러면……그러면 안심 하겠어요!』『영심 안심해요! 영혼의 불멸을 굳게 믿어요. 설사 우주의 소멸은 있을런지 몰라도 오 영심과 임 지운의 혼백은 영원히 살아 있지요!』
영심도 두 손을 올려 지운의 볼을 어루만져 보면서,
『혼자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예요! 하마터면 백운대 둥산을 못해 보고 죽을 뻔 했어요.』
『아아, 그럼 영심은 아까……』
영심은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 벼랑 밑으로 던지며,
『한 사람 분이니까, 인제 소용 없게 됐어요. 약을 먹고……지운씨를 맨 처음으로 뵌 나무 밑 벤치에 가만 누워 있을 생각으로……』
『영심, 영심!』
얼굴을 더듬던 지운의 손이 영심의 몸을 끌어안아 품안에 꼭 넣어 보며,
『하마터면……나도 영심을 보지 못하고 죽을 뻔했 지요. 이 유서 ── 인제 다 소용 없게 됐소.』
양복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영심의 본을 따라 휙하고 달빛 속에다 내던지며,
『둘이 같이 영원히 살아요! 대자연이 영원한 것처럼 우리들의 생명도 영원하지요.』
『영원히……영원히』
볼을 스치던 입술과 입술이 매마르게 부딪치며 십년 전 창경원 봄 동산에서부터 여물고 여물어 온 사랑의 봉우리가 오늘 이 창백한 달밤, 삼각산 빙악(氷嶽) 속에서 비로소 꽃피기 시작한 두 떨기의 아름다운 빙화(氷花)여!
우주와 더불어 영혼의 영구 불멸은 그들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미 하나의 확고 부동한 신앙으로 변하고 있었다.
포드등……
포드등……
이름 모를 산새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 남아 있던 한 무더기의 눈을 날리며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 갔다.
산적적 인적적(山寂寂 人寂寂), 달은 천심(天心)에 걸려 있었다. 북빙양(北氷洋)의 파도가 그대로 고스란히 얼어붙은 것처럼 멀리 가까운 백설의 메뿌리가 유현무궁(幽玄無窮) 차거운 달빛 속에 목화인 양 몽롱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 이윽고 속세를 등진 두 사람의 유인(幽人)은 다시 몸을 일으켜 차차 더 험준한 길 아닌 길을 부둥켜안고 미끄러지며 사랑의 고행을 계속하기 시작하였다. 둘이는 연방 위스키를 마시면서 걸었다.
몸과 마음을 독한 술로 후련히 데운 두 사람은 영혼의 불멸을 체험하기 위하여 일부러 위태로운 낭떠러지 길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이윽고 백설로 담요 삼고 이불을 삼은 두 개의 육체에서 한 쌍의 영혼의 나비가 창공을 향하여 나블나블 승천(昇天)할 시각이 멀지 도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걸어 온 네 개의 발자욱이 달빛 속에 희미하다. 발자욱마다 처녀지(處女地)를 밭가는 개척자의 그것인 양 고난에 차 있었고 그 하나 하나에 세계고(世界苦)는 인박혀 있었던 것이니, 임 지운과 오 영심의 그 우주적이요 인류적인 환희와 고독의 발자욱은 삼각산 새 눈길에 얼마나 더 아로새겨 질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 「애인」ㆍ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