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초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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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四五[일구사오]년 봄, 오영심이가 평양서 서울 모 사년제 여학교로 전학을 해 오게 된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영심의 건강 문제였고 둘째는 상급학교 진학시에 있어서의 학비 문제였다.

그즈음 서울에는 영심의 외숙 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총독부의 중급 관리였다. 이 외숙이 영심을 무척 귀여워하여 평양서 여학교만 졸업하고 올라오면 서울 유학 중의 온갖 비용은 자기네가 담당한다고, 그것은 벌써 오진국씨가 학교를 사직하고 병상에 눕게 되던 무렵부터 쭉 해오던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일 년을 앞질러 가지고 영심을 서울 여학교로 전학을 시킨 것은 오로지 영심의 건강을 우려해서였다. 본래부터 결핵성 체질로서 영심의 장래를 근심하던 이 외숙은 영심이가 마침내 폐를 앓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부랴부랴 영심을 데려다 대학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당시 내과의사로서는 최고 권위자이던 일인 교수 C박사와 친분이 있던 외숙은 영심을 위하여 특별 진료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하루 이틀 완치될 병이 아님을 알고 C박사는 외숙의 경제 문제도 고려하여 한 달 후, 영심을 퇴원시키고 특별한 외래 환자로서 취급해 주겠다는 것을 약속하였다. 외숙은 박사의 호의를 감사히 여기고 영심의 전학 수속을 부랴부랴 밟았던 것이다.

외숙의 집은 용산에 있었다. 거리도 멀고 또 갓전학해온 영심이었기 때문에 매일처럼 몇 시간씩 빠지기도 어려워서 그런 말을 했더니, 매일처럼 다닐 필요는 없고 한 주일에 한 번씩만 다니라고 C박사는 말하고 나서, 학교가 그처럼 빠지기 싫으면 일요일에만 오라고 하였다.

그것은 대단한 친절이었다. 이 병원 내과 과장인 C박사는 일요일에는 통 환자를 보지 않고 하루 종일 연구실에만 들어배겨 있는 몸이다.

『보통날은 환자가 많아서 바쁘니까 일요일 오전 중에 연구실로 오시요.』

했다. 영심은 기뻤다.

영심의 나이가 열 일곱, 어린애 같으면서도 어른같고 어른 같으면서도 어린애 같은 인생의 환절기(換節期)에 오영심은 놓여 있었다. 어린애들과 함께 무심하게 별을 세다가도 후탁 꺼질 것 같은 한숨을 쉬었고 인생의 고매한 진리를 찾다가도 불쑥 손을 뻗쳐 동생의 누렁지를 빼앗아 먹는 계절이었다.

이 불안전한 감정의 계절 속에서 영심은 지운을 만났다. 만일 영심이가 자기를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대우를 하던가, 또는 반대로 하나의 어린애로서 취급을 했던들 오늘의 영심과 오늘의 지운은 좀 색다른 인생의 길을 걸었을지 모른 일이었다.

그렇건만 영심은 어린애 같은 어른이었고 어른같은 어린애였다. 영심의 어른은 지운의 모습을 그리워했고 영심의 어린애는 사람들의 눈을 무서워했다. 그렇다. 영심은 확실히 그것을 하나의 불미로운 정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열 입곱 살의 어린 것이 이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오진국씨의 딸로서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하나의 죄악을 의미하였다. 그 죄악감과 그 동경심의 상극(相克)속에서 영심은 항상 무표정의 두꺼운 탈을 써야만 했다. 불행한 탈이었다.

영심의 이 죄에의 의식은 과거 십 칠 년 동안에 있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불행한 의식이었다. 자기가 죄를 범하고 있다고 의식하는 순간, 과거의 영심은 곧 그러한 불미로운 의욕을 억제하고 제거함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얻어 왔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온갖 교훈의 지상 명령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창경원 연못가에서 지운을 만나면서 느낀 죄에의 의식을 과거처럼 그리 쉽사리 영심은 억제해 버리지를 못했다.

『나는 마침내 불량한 학생이 되었다!』

자기 마음속 어느 구석에 그러한 불량성이 숨어 있었는지, 자기자신도 통 모르고 지나온 영심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데서는 남녀의 애정 문제를 처음부터 정당화시키고 있지만 영심이가 살고 있는 주위에서는 어디까지나 그것을 불미로운 것으로서 규정을 짓고 있었다. 가정에서의 교훈이나 학교에서의 훈육이 영심의 열 입곱 살의 연애를 정당화시켜 줄 것 같지는 진정 않았다. 영심은 사람의 눈이 자꾸만 더 무서워졌다.

정중한 편지에는 언제나 두루마리나 한지에다 모필로 써야만 했다. 겉봉도 점잖은 흰 봉투를 영심은 썼다. 서울 외숙에게 편지를 쓸 때는 언제나 그렇게 하도록 기갈을 받아 온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영심은 겉봉투만은 꽃봉투를 사용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도 다 꽃봉투를 쓰는데……』

한 시간이나 망설이다가 영심의 어린애는 마침내 꽃봉투를 사용했고 영심의 어른은 장지에다 모필을 사용했다. 이리하여 겉과 속이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글월(죄악의 글월)을 영심은 썼던 것이다.

『너무 다가오지 말아요! 사람이 봐요! 우리학교 선생님이 오셨는지도 몰라요!』

그러다가 후딱 영심은 일어서며,

『나는 가야겠어요. 다음에 또……다음에 또……』

『그럼 다음 일요일 꼭……』

영심이가 바꾼 대화란 단지 이것 뿐이었다. 영심은 죄인처럼 등뒤가 무서워 쏜살같이 창경원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다음 일요일이 오기 전에 운명의 손길이 먼저 왔다.

그것은 잊히지도 않는 그 주일 목요일의 오후였다. 벌써 열흘 전에 방학을 하고도 내려오지 않는 영심에게 어머니가 위독하니 곧 오라는 지급 전보가 학교로도 오고 집으로도 왔다. 다음 일요일이 무척 마음에 걸렸으나 내려갔다가 병세만 좀 웬만하면 토요일 밤으로 잠깐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날 저녁차로 외숙과 함께 서울을 떠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환은 영심의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포기시키고 말았다.

아니, 병환도 병환이지만 아버지의 한 쪽 손과 한 쪽 발이 되어 있던 어머니가 병석에 드러누웠기 때문에 살림살이는 연료가 딸린 화차모양으로 한 곳에서 정지를 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간신히 끼니나 끓여대는 조모를 내놓고는 이 집안 구석구석에서 영심의 손길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살림살이였다.

어머니의 병환은 그 해 여름 북한 각처에서 만연되고 있던 장질부사였다.

영심이가 내려간지 사흘만에 어머니를 피병원으로 격리시켰다. 크레졸 냄새가 집안을 뒤덮었고 영심은 병원과 집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 다녔다.

그것이 바로 일요일이어서 영심이가 껑충껑충 뛰어다닐 즈음 지운은 창경원 연못가에서 꽃봉투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를 피병원으로 격리시킨 이튿날, 너무 오래 결근할 수도 없어서 외숙은 다소의 금자를 영심에게 쥐어주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제 그이는 나를 얼마나 기다리다가 돌아갔을까?』

사람에게 불신(不信)을 저지르는 것처럼 영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오기는 왔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그이도 자기처럼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못 왔는지도 모를 것이라고, 그것을 영심은 골똘히 원하면서, 홀가분히 서울로 올라갈 수 있는 외숙을 영심은 마음속으로 한없이 부러웠다.

『어디서 사는 누군지나 알았으면……』

편지라도 띄울 것이 아니냐고, 껑충껑충 뛰어다니다가도 훤하게 트인 남쪽 하늘가를 영심은 후딱 바라보곤 했다.

사십 이 도의 고열 속에서 신음을 하던 어머니의 신열이 차차 가라앉기 시작한 것은 피 병원으로 격리되어 간지 사흘이 잡히는 날 아침부터였다. 영심은 희망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토요일 밤차로 갔다가 일요일 밤차로 내려와도 무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 쯤이야 내손이 비어도……』

한 시간도 비일 수 없는 자기손임을 빤히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여 보는 영심의 눈앞에 팔․일오 해방이 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신열이 차차 내리기 시작한 정오의 일이었다.

세상은 뒤집히고 민족은 흥분했다. 금성탕지(金城湯池)를 자랑하던 정치체제는 무너지고 민존정신은 자유와 독립을 지향하여 극도로 앙양했다.

『서울로! 서울로!』

기차는 수시로 서울을 향하여 달렸다.

이 거창한 정치적 흥분 속에서 민족은 질서를 포기했다 기차는 배가 터지도록 군중을 실었고 지붕 위에까지 사람은 하얗다. 게다가 만주에서 밀려나오는 일제 피난민과 한계 귀국민들로 말미암아 전국의 교통 기관은 무질서 한 총동원을 개시했으나 한 오금의 바닷물을 퍼내는 격이다.

고비는 넘겼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신열은 사십도 이하로 내려서지는 않았다. 이리하여 다음 일요일에도 또 다음 일요일에도 영심은 하염없이 서울 하늘만 쳐다보았다. 실로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구월 중순에 어머니는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혼란 통에 약재 하나 변변히 못 쓰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영심은 안타깝게 슬퍼하였다. 모든 기관이 마비 상태에 빠져있던 무렵이라 서울 외숙에게 어떤 인편을 통하여 편지는 냈으나 회답도 사람도 오지 않았다. 삼팔선은 이미 굳어져 있었던 것이다.삼팔선이라는 새로운 국경이 생겨서 마음대로 오르내리지 못한다는 풍설은 팔월 하순부터 있었다. 소련군이 총질을 하여 부상을 당하고 돌아 온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부득이 월남을 해야할 사람들은 모두가 다 위험을 무릅쓰고 밤길을 택하여 수십리 혹은 수백리 길을 이리저리 돌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영심은 절망을 느꼈다. 토요일에 잠깐 올라갔다가 일요일 밤으로 내려와도 무방하리라던 생각은 이미 한낱 신화로 변하고 말았다. 더구나 시월이 지나고 동짓달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사상적인 통제가 표면화하여 밤길을 택해서 떠났던 월남자의 대부분이 삼팔선도 바라보지 못하고 보안대의 손에 걸려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반신 불수의 아버지가 아니었던들 어떤 고초를 무릅쓰고라도 서울의 별을 머리위에 이었을 영심이었다.

생활의 방도를 통 잃어버린 오진국씨였으나 다행히도 다년간의 교직원 생활에서 각계 각층에 자기 제자를 가진 몸이라, 그들의 도움이 단출한 세 식구의 호구지책으로 되고 있었다 그래서 영심이도 어쨌든 학교만은 나와 둬야 겠다고 낮에는 아버지를 조모에게 맡기고 시내 여학교엘 다녔다. 학제가 변경된 것은 이태나 후의 일이었다.

허정욱 청년이 돌연 영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이듬해 이월, 어떤 눈 오는 날이었다.

중학을 마치고 동경 모 대학에 다니다가 학병으로 끌려 나갔다는 허정욱이었다. 그 허정욱이가 북만주 전선으로부터 돌아온 것이 월여 전, 고향인 순천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월남할 생각으로 집을 떠나온 길에 하직 겸 오 교장을 찾아 뵌 것이라고 했다. 부모를 일찍 여윈 지주의 아들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자기는 다행히 군대 생활에 경험이 있는 몸이라, 월남을 하면 군문으로 들어가겠다는 굳은 결의를 말하며 옆에 앉은 영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영심씨도 이젠 어른이 되었군요.』

삼 년전 동경서 나왔던 길에도 한 번 허정욱은 오교장을 찾아 왔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열 다섯 살의 어리디 어린 소녀였다. 그 소녀가 벌써 이처럼 성장을 했다는 것이 허정욱의 눈에는 신기롭기 짝이 없었다. 삼 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은 무슨 마술사와도 같이 영심을 화려하게 변모 시키고 있었다.

『사과를 먼저 집어 먹을려고 퉁바리바위를 기어올라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 참 그런 일도 있었지.』

아버지도 잠시 회상에 잠기며,

『참, 민호군은 학병을 면했다지?』

『예, 유군은 서울 법전(法專)이었으니까 벌써 졸업을 하고 서울서 변호사시보(試補)로 있었답니다.』

『음, 무엇이 복이 되고 무엇이 화가 될는지, 세상사는 모를 일이야. 유군도 집안이 넉넉했더라면 대학엘 갔을 테니까, 영락 없이 학병 감이었는데……』

집이 가난한 탓으로 유민호는 삼 년제인 법학전문 학교로 가서도 절반은 고학을 했다. 졸업하는 해로 변호사 시험해 합격했다는 소식을 아버지도 듣고는 있었던 것이다.

『유군은 재사니까, 어쨌든 성공을 할거네.』

『중학 시절부터 똑똑했으니까요.』

『그러나 잘못하면 지나칠는지 모르지.』

퉁바리바위 위의 한 알의 사과를 아버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심씨는 서울 가고 싶지 않아요?』

영심씨가 지어온 저녁밥을 먹고 나서 허정욱 청년은 억제할 수 없는 절실한 감정을 전신에 느끼면서 물었다.

『왜 안 가고 싶겠니? 서울 학교만 늘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선생님은 월남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허군의 건강이 부러울 뿐이네.』

그러다가 아버지는 불현듯 영심을 바라보며,

『나야 이미 페인이 된 몸이니, 어디있던 무덤 하나야 없겠나? 내 노모께서도 역시 그렇고……문제는 영심인데……그렇다고 영심이가 없으면 한시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일동은 암담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잘 알았읍니다. 어쨌던 제가 우선 넘어가서 무슨 좋은 방도를 강구해 보겠읍니다.』

그날밤으로 허 정욱은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영심에게는 한 줄기 무슨 희망 같은 것이 마음 한 구석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무슨 좋은 방도를 강구해 보겠다는 허정욱 청년의 한 마디를 영심은 점점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좋은 방도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본래 공상의 세계를 남단리 좋아하는 영심으로서는 무슨 소설 같은 천재 일우의 기회가 또한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언제든지 서울에 가기만 하면……』

어떤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그이를 찾아 낼 것만 같았다. 서울 장안을 편답해서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이를 만나기만 하면 당장으로 자기가 저지른 불신을 용서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 올는지, 기약없는 허정욱 청년의 한 마디에 자기의 운명을 걸어보는 영심이가 차차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창경원의 벚꽃은 올해도 피었을 테지!』

사월이 왔다. 그 꽃피는 사월도 지나가고 녹음의 시절이 왔다.

『금잉어는 지금도 연못에 놀고 있겠지!』

여름이 오고 팔․일오 기념일이 왔다. 기념 행사로 거리는 뒤끓었다.

『그 벤치도 그냥 있고 그 벗나무도 그냥 있을까?』

그 벗나무에 아로새긴 ⌜愛人[애인]⌟의 두 글자를 일생에 단 한 번 만이라도 제 눈으로 보고 죽었으면 했다.

『그이는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꼬박꼬박 밤을 새웠고 안타까운 마음은 천마(天馬)인 양 하늘을 달렸다.

『저 별 밑에 그이는 자고 있다!』

달 없는 밤이면 별을 찾았다. 그 별 밑에 자고 있을 성싶은 조그만 별 하나를 남쪽하늘에서 영심은 골라 본다. 어제도 고르고 그제도 고르고 벌써 벌써 오래전부터 골라보는 별이었다.

그러나 그 유난히 초록색을 띈 조그만 별은 익살맞은 요술장이와도 같이 반짝반짝 나타났다가는 깜빡깜빡 숨어 버린다.

『아이, 그놈의 초록별, 깜직두 하네!』

별이 숨으면 마음이 어둡고 불안했다.

『아, 저거다!』

별이 보이면 영심의 감정은 어쩐지 밝아지며 안일했다.이처럼 밤이 깊은 줄도 모르는 듯이 남쪽 하늘에 빛나는 그 조그만 초록별과 숨박꼭질이라도 하다가 자는 밤이면 그래도 영심은 행복 같은 것을 느끼지만 끝끝내 못찾고 마음이 지치는 밤이면,

『혹시 무슨 병에 걸려 죽은 것이나 아닐까?』

했다. 그러다가 이튿날 밤, 다시 초록별을 찾아내고야 마음을 놓고 잠들 수가 있는 영심이었다.

그러나 무슨 좋은 방도를 강구하겠다던 허정욱으로부터는 아무런 기별도 오지 않았다.

그 해도 저물어 또 이듬해가 되었다. 놀고 있을 수 없는 영심은 우편국 사무원으로 취직을 했다.

또 일 년이 지났다. 언젠가 터질 줄로만 알았던 삼팔선은 그냥 더 굳어만 갔다.

영심은 실망을 느끼고 창경원 연못가를 조금씩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듬해 그러니까 그것은 一九四九[일구사구]년, 영심이가 스물한 살이 되는 해 삼월 중순 어떤날 저녁 무렵이었다.

어떤 청년 하나가 찾아와서 남한에 있는 허정욱 대위의 전달이라고 하면서, 모일 모시 모처에서 그 청년이 인도하는대로 배를 타라고 했다.

반신불수인 아버지였고 칠순이 넘은 조모였기 때문에 별로 의심도 받지 않고 동해안까지 기차로 왔다. 거기서 청년이 인도하는대로 야음을 타서 어선에 올랐다. 이틀만에 삼팔선을 무사히 넘었다.

그즈음 허정욱 대위는 중동부 일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허대위는 곧 지이프차로 영심의 가족을 부산으로 옮겨갔다. 부산에는 유민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 간판을 서울에다 걸어놓고 한 달의 태반은 부산에 내려와서 살았다. 서울에는 소규모의 지점만 냈고 덕흥상사 회사의 본접은 부산에 있었다.

허대위는 유변호사에게 미리부터 청을 넣어 오교장의 생활비를 부담하도록 제의를 하였을 때, 유민호는 그것을 쾌락하였던 것이다.

덕흥상사는 동광동에 있었다. 이층 사옥이었다. 안채에 방이 넷이나 있었다. 단출한 영심이 가족으로서는 방이 남아 돌아 갈 지경이었다.

『마침 잘됐읍니다. 나도 여관밥만 먹는데 실증이 난 참이라, 때때로 가정적인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유민호는 이 가정에 식모 한 사람을 얻어 두었다. 그것은 너무나 과분한 일이라고 조모를 비롯하여 오교장 부녀가 극히 반대를 했으나,

『그러실 필요는 조금도 없읍니다. 이왕 넘어 오셨으니까, 영심씨도 학교에는 다녀야 할테니까요.』

학교 같은 건 생각도 못한 일이라고, 영심이가 굳이 사양을 하였으나,

『이왕 유군의 신세를 지는 바에야 다닐 수만 있으면 학교에도 가야지요.』

하고 허정욱 대위까지도 찬성의 뜻을 표하였다.

『학교는 서울 학교를 다녀야만 하겠지만 우선 여기서 다니다가 형편을 보아서 서울 학교로 편입해도 무방하니까요.』

그래서 부산대학 영문과를 영심은 다녔다.

영심이 건강은 여전히 허약했다. 그러나 사 년전 대학 병원엘 드나들던 무렵에 비하면 그동안 약 한 첩 쓰지 않았으나 도리어 차츰차츰 경과는 좋은 편이었다.

일 년 동안 부산서 살다가 학교는 역시 서울이라야만 되겠다고 이듬해 봄, 유민호는 영심을 서울 M여대 이학년으로 편입시키고 명륜동에 마담한 적산가옥이 하나 있어서 그것을 불하맡아 오진국씨 일가에게 제공하였다. 이리하여 비로소 과거 오 년 동안을 오매에 그리던 서울땅을 밟게 되었던 것이다.

영심은 곧 창경원을 찾아가 보았다. 연못도, 금잉어도, 벤치도, 벚나무도 오 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모진 비 바람으로 꺼멓게 빛깔이 변해버린 ⌜愛人[애인]⌟의 두 글자가 획마다 조금씩 벙싯벙싯 넓어진 것을 보니, 그만큼 벚나무도 굵어진 모양이다. 똑똑히는 보이지 않았으나 ⌜誠[성]⌟이라는 글자가 ⌜愛人[애인]⌟바로 위에 한 자 더 새겨져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영심은 가슴이 아프도록 서글퍼졌다.

『나도 ⌜誠[성]⌟자 하나를 더 써 놓겠읍니다.』

더듬거리는 말로 그것을 약속하던 오년전의 그날을 영심은 기억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녹쓸은 기억이요, 여위어 빠진 꿈이었다. 달포를 두고 일요일을 중심으로 하여 창경원 연못가를 싸돌아 다녔으나 꿈속의 주인공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살아만 있다면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만나게 되겠지!』

영심은 그것만을 골똘히 생각했다.

『그처럼 굳은 약속을 했는데……』영심은 때때로 나타나 주지 않는 그이를 나무래 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