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아의 해방

이 세기의 역사적 과제가 무엇이겠느냐 하건대 우리는 아세아의 해방이 되리라고 하고싶다.

아세아는 지구 육지면적의 3분지 1을 차지하고 세계인구의 과반(過半)을 가지고 인류문화의 최고(最古) 또 최대 연원(淵源)을 짓는 자(者)이어늘 명실히 완전한 독립자주국은 일본(日本)하나 밖에 없으며 그 나머지는 3백년 이래(以來)로 차차 구미의 식민지 혹은 반(半)식민지를 이루어서 그악한 질곡(桎梏)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형편이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는 소이(所以)를 그 도덕성에 둔다고 하면 인류의 대부분이 그 소부분의 압박(壓泊)대상으로 있는 패륜현상은 진실로 인류자신의 죄악, 또 치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세아의 해방에 말미암는 인류평등의 실현은 문화발전의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 역사적 양심의 최고명령으로 나타날 약속을 가진 것이요, 오늘은 정(正)히 그 때에 다다른 것이다.

저 육지발견 과학발당 자유정신발양 국민주의발흥 등의 기와 여러 세기(世紀)의 그것들 보다 아니 이 모든 것을 총합한 것보다 더 큰 역사적 과제야말로 진실로 이 아세아의 해방임을 누가 아니라 할 자이냐.

인류의 역사는 그 본성에 있어서 전일(全一)을 구하면서도 아직까지도 세계를 통동(通同)하는 계단에 이르지 못하고 극히 굵게 뭉쳐서라도 동양 서양이 두 덩어리가 따로 따로 분리 대립함을 가질 수가 없다. 교통기관의 발달은 사실상으로 사해(四海)를 일가화(一家化)하고 무선전신의 응용은 전 인류의 조석(朝夕)대담을 거칠 새 없이하여 인류의 기술은 벌써 세계의 일체를 실현하였거늘 역사의 궤도만은 의연히 원심적 배주(背走)를 고집하고 있음은 인류의 정신이 그 손끝보다 저열(低劣)함을 보이는 사실이다.

더구나 동양과 서양이 일방은 피압제자, 피착취자라는 비윤리적 대립상을 정(呈)하고 있음은 인류의 양심이 오히려 둔미(鈍微)함을 나타내는 큰 증거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합리적 장애, 내재적 모순을 제거한 뒤가 아니면 세계사의 출현은 물론 기대할 수 없다.

이럼으로 아세아의 해방은 다만 아세아적 입장 뿐 아니라 진실로 인류적, 세계적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요규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다.

인류가 [세계]라는 일원성(一元性)을 실현하려고 하는 노력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과거에 있어서 인류역사의 일대 추진력이 된 동서양방의 반발작용과 같음도 그 실질에 있어서는 그것 그대로 [세계]를 만들기 위하는 견인작용, 접근작용에 불외(不外)하는 것이다.

저 상고(上古)에 있는 아세아 대희랍의 항쟁으로부터 [알렉산더]의 인도(印度)방면 정벌, [폼페이우스]의 동방제국 경락(經略)과 같은 서방의 동진(東進)과 [훈]人, [사라센]人, 몽고인 등의 굼치를 이은 구라파 침입과 같은 동방의 서진(西進)등에서 보는 것처럼 동서의 대항성 접근작용은 연대(年代)와 함께 그 세(勢)를 돋우기도 하고 또 범위를 확대하여 나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같은 상호반발은 실상 종필귀일(終必歸一)한 본능적 약속을 개현(開顯)하여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근세에 들어와서 해항술의 진보와 탐험욕의 증상(增上)을 계기로 하여 구라파인의 동양진출이 대규모로 일행되고 그 결과로 근대국력의 표상인 물질문명 기계기술의 낙후자인 동양민국이 이른바 제국주의 또 자본주의적 침략의 희생을 이뤄서 길게는 동인도상회(東印度商會) 이래 3백년의 비운이 전 동아를 내습(來襲)하여 빠르게는 아편전쟁 이후 1백년의 탐서(貪筮)가 극동 일대를 능학(凌虐)된 것도 그 이면적 소식을 더듬어 볼진대 종래에 여러 번 있어오는 서방동진의 점증적 일 양상으로서 또한 인류역사이 [세계]실현상에 있는 필요한 일단계임을 알 수 있다.

한번은 한번보다 ?한 서방의 동진으 그럴 때마다 그보다 더 큰 동방의 반발로써 수응(酬應)됨이 과거역사의 통태(通態)이었다. 최근에 있는 구라파 내지 그 연장으로 인 미주(美洲)세력의 동아(東亞)침입이 공전(空前)한 대구모의 것이요, 영향이 심각을 극(極)한 만큼 동아편의 구미진출에 대한 반발작용도 또한 공전한 강대성을 띠어올 것은 또한 자연한 수(數)이다.

이제 그것이 일본국민을 선수로 하고 대동아전을 무대로 하여 우리들의 발 앞에 그 씩씩한 보취(步趣)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동아전(戰)은 결코 일본만이 전쟁이 아니요, 또다른 어느 일국민, 일민족 대 타국민족과의 투쟁도 아니라 진실로 일본 및 일본정신을 발단자, 또 중추세력, 또 지도원리로 하는 전동아의 해방운동이요, 이 동아해방운동은 그대로 곧 세계개조의 중대한 사안인 동시에 인류역사이 [세계]화를 현전(現前)케 하는 기연(機緣)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쏠렌]성(性)과 인류적 보편타당성으로써 본질을 삼는지라 대동아전은 가깝게는 전(全)동아 10억 대중의 협심육력(協心戮力)까지를 대망할 수 있는 것이다. 동아인으로는 의(義)에 용(勇)하며 세계인으로는 진리에 충(忠)하야 다함께 진정한 [세계]사의 첫장을 도의로써 기록하기에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대동아 선전(宣戰)의 대조(大詔)는 병호(炳乎)히 일월(日月)로 더불어 광(光)을 한가지 하시거늘 개전(開戰) 양기(兩朞)의 사실은 드디어 10억 대중의 의신(倚信)을 표명하는 [대동아선언]으로써 줄탁( 啄)이 상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동아전은 그 최후의 결말까지를 기다릴 것 없이 이미 아세아해방이 본 목적을 달성한 관(觀)이 있다. 앞으로 설사 약간의 곡절과 진퇴를 보이는 일이 있을지라도 [세계]의 신역사는 이미 권두(卷頭)를 열고서 다만 1장(章) 또 1절(節)씩, 신(新)경과 신(新)사실을 거듭해 나가게 되었다.

저 근세에 있는 구라파의 동침(東侵)과 여기에 대한 이번 대동아전이 반발은 둘이다. 서방 또 동방으로서 하는 견인(牽引)접근으로서 이번의 일촉발이 문득 동서를 혼(混)하고 세계를 통향(通向)하는 신기운을 출현할 것은 인류 전역사의 시사(示唆)로써 다시 의심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전주곡은 전 동아 10억 대중의 완전한 해방, 너나없이 기소(基所)를 각대(各待)하고 기도(基堵)를 각안(各安)하야 팔굉위우(八紘爲宇)의 실(實)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동아전은 역사적 사명의 수행일새 여기 성공이 약속되며 대동아전은 진리와 함께 진행함일새 여기 승리가 확보된다. 천하에 진리와 함께 있는 자(者)보다 더 강할 이가 없다. 대동아전이 그것이다. 천하가 악호(惡乎)에 정(定)하랴.

일(一)에가서 정(定)할 것이다. 일(一)이란 무엇인가. 만방(萬邦)에 본연한 지위를 주고 만인에게 정당한 발전을 약속하는 진리가 그것이다. 대동아전이 그것이다. 그래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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