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이는 자려고 불을 껐다.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훤한 전등빛에 실내는 달밤 같다.

그는 옷도 벗지 않고 그냥 이불 위에 아무렇게나 누웠다.

그러나 온갖 사념에 머리가 뜨거운 그는 졸음이 오지 않았다. 이리 궁글 저리 궁글하였다. 등에는 진땀이 뿌직뿌직 돋고 속에서는 번열이 난다.

이때에 건넌방에 있는 H가 편지를 가져왔다.

편지를 받은 유원이는 껐던 전등을 다시 켰다. 피봉을 뜯는 그의 가슴은 두근두근 울렁거렸다. 무슨 알지 못할 큰 걱정이 장차 앞에 닥쳐오려는 사람의 심리 같았다. 그리 짧지 않은 편지를 잠잠히 보던 그는 힘없이 편지를 자리 위에 던지고 왼팔을 구부려 손바닥으로 머리를 괴고 또 이불 위에 눕는다.

눈을 고요히 감은 유원이는 무엇을 생각한다. 그의 낯빛은 몹시 질린 사람같이 파랗다. 그리고 힘없이 감은 두 눈가에는 한없이 슬픈 빛이 흐른다.

그 편지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다. 그 편지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생애가 너무 곤란하여 무명을 짜려고 한다. 그러나 솜을 사야 할 터인데 돈이 한 푼도 없구나! 넨들 객지에 무슨 돈이 있겠니마는 힘이 자라거든 십삼 원만 부쳐다오.

그런데 처음에는 십사 원이라고 썼다가 그 사 자를 뭉개고 옆에 다시 삼 자를 썼다. 그것이 더욱 유원의 가슴에 못이 되었다.

유원이는 금년 이십이의 청춘이다. 그는 어머니가 있다. 처도 있다. 두 살 나는 어린 것도 있다. 그러나 곤궁한 그 생애는 그로 하여금 따뜻한 가정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는 늘 동표서랑(東漂西浪)으로 가족을 떠나 있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지배되었다. 지금도 그 가족은 시방 유원이 있는 곳에서도 백여 리나 더 가서 S라는 산골에 있다. 그리고 유원이는 이곳에서 노동을 하여 다달이 얼마씩 그 가족에게 보낸다.

사세가 이러하니 그의 객지생활은 넉넉지 못하였다. 친구에게 부치는 서신도 마음대로 못 부친다. 그의 사정이 이런 줄을 그 어머니는 잘 안다. 유원이가 어디 가서 넉넉히 지내더라도 그 어머니께서 돈 보내라는 편지는 못 받았다.

그 어머니는 항상 빈한에 몰려서 괴로운 생활을 하건만 유원에게는 괴롭다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식인 유원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함이다. 그렇던 어머니에게서 이제 돈 보내라는 편지가 왔다.

유원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다시 그 편지를 집어들었다. 십삼 원의 쓰신 구절을 또 읽었다.

‘아! 어머니가 여북하시면 돈을 보내랄까!! 십사 원을 쓰셨다가 다시 십삼 원으로 고치실 때…… 형언 못할 감정이 넘쳤을 어머니의 가슴!’

머리를 양연히 들어 벌건 전등을 바라보고 눈을 감으면서 이리 생각하는 유원의 머릿속에는 행여 돈이 올까 하여 기다리고 있을 그 어머니의 측은한 모양이 떠올랐다. 까맣게 때 묻고 다 떨어진 치마를 입고 힘없이 베틀에 앉은 처의 형용도 보였다. 젖을 먹으려고 어미의 무릎에 벌레벌레 기어오르는 어린 것의 가긍한 꼴도 그의 눈앞에 환영으로 지내었다.

유원이는 조금 설워도 잘 우는 성질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쩐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모든 의식이 망연하고 가슴이 답답하여 무어라 해야 할지 몰랐다.

“에라, 어디 K하고나 말할밖에…….”

하면서 그는 벌떡 일어섰다. K는 유원이 복역하는 노동조의 회계이다. 오십 가까운 중늙은이로 조원의 숭경을 받는 이다. 상당한 재산도 있는 사람이다.

유원이는 뒷마당에 나왔다. 문간에 달아놓은 전등빛은 밝다. 가을밤에 스치는 바람은 쓸쓸하였다. 하늘은 흐려서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유원이는 문간에 잇대어 있는 K의 방으로 들어갔다. K는 있었다. 그밖에 K의 부인과 같은 조원인 C가 놀러왔다. 유원이는 K의 곁에 앉았다. 그는 공연히 가슴이 울렁울렁하여 어떻게 말을 끄집어내면 좋을지 몰랐다. 신문을 보던 K는,

“허허, 동경 근처는 말이 아닐세! 이거 참 세상이 다시 개벽할라나? 이렇게 큰 지진은 말도 못 들었지.”

하면서 유원이를 쳐다본다. 풍부한 살결에 윤광이 도는― 주름이 약간 잡힌 이마 아래 두 눈에는 웃음을 띠었다. K는 언제든지 유원이를 대하면 웃는다.

“글쎄요.”

유원이는 대답을 하기는 하였으나 무슨 말에 대답을 하였는지, 무슨 의미로 “글쎄요.” 하였는지 그는 그 스스로도 몰랐다. 다만 십삼 원이란 돈 말을 어찌할까 함이 그의 온 감정을 지배하였다.

‘이 말을 내었다가 거절을 당하면 어쩌나?’

그의 마음은 떨렸다.

‘그러나 그 거절당하는 무참도 한순간이겠지? 내가 말 내기 어려운 말 내는 것도 한 찰나겠지? 영영 이 무참이나 그 괴롬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순간을 어서 흘리어야 하겠다.’

생각하니 그는 용기가 좀 났다. 그는 말하려고 입을 머뭇하였다. 그의 가슴은 찌릿하였다. 그의 마음에는 곁에 있는 여러 사람이 거리끼었다. 그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구구한 사정을 꺼내기는 참으로 괴로웠다. 자기는 세상에 아무 권리도 없는 약하고도 천한 무능력한 자라는 모욕적 감정이 그의 의식을 흔들었다. 그는 그만 “으흠” 기침 하고 말을 내지 않았다.

‘조용한 틈을 타서 말하리라.’

하였다. 설마 K가 거절이야 없겠지? 그는 추측하였으나 그것도 말해 보아야 판단하리라하였다.

K는 유원이를 사랑한다. 그의 정직하고 쾌활한 성격을 사랑하며 비상한 재주를 사랑한다. 또한 곤궁으로 헛되이 보내는 유원의 청춘도 아까워하였다.

금년 여름이었다. 유원이가 ××강습소에 삼 주일 동안이나 매일 오전마다 다녔다. 그때에 K는 친히 유원의 대신 조에 가서 일한 일도 있었다.

“우리 조 회계가 좀해서는 누구 말을 잘 안 듣는데 유원의 말은 잘 들어!”

“흥,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유원)이 또 그렇지, 회계의 일이라면 좀 잘 보아 주나. 어찌했든 유원이 같은 사람은 쉽잖아.”

“암, 그렇구말구. 우리게 비기면 그래도 지식도 있고 하지만 당초에 냄새가 없지!”

그 조원 간에는 이러한 회화가 종종 있었다. 신문을 보던 K는 유리 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가겟방으로 나간다.

“아, 벌써 열 한 점인가!”

시계를 쳐다보고 흔자 중얼거리면서 유원이는 K를 따라 가겟방으로 나갔다. 그는 이제는 은근히 말하리라 하고 K의 옆에 다가섰다. 방에 모든 사람은 유리를 스쳐 자기의 행동을 유심히 보는 듯하여 또 기운이 줄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서,

“또 걱정이 생겼어요.”

하는 그 말은 남의 말 하듯 좀 냉정하였다. 그의 가슴은 여전히 두근덕두근덕하였다. 그러나 영맹한 기분이 들어찬 굴에 가는 사람이 굴 어구에 있을 때의 그러한 심리는 아니었다. 이미 굴에 들어서서 맹수에게 화살을 던진 때에, 그 생사 여부를 기다리는 때의 심리였다.

“응, 무슨 일로?”

K가 묻는 때에 방에 있던 C가 유리창을 열고 나오면서,

“에― 가서 자야지.”

한다. 유원이는 또 말문이 막혔다. K는 이편 유원이 쪽으로 머리를 기웃하고 무슨 소리를 기다린다. C는 갔다. K는 도로 방으로 들어왔다.

‘아, 내가 왜 말을 칵 하지 못하고 이리도 애를 쓰노.’

하고 유원이는 자기의 맘 약한 것을 뉘우쳤다. 이번은 꼭 말하리라 하고 주인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저……편지가 왔는데.”

하고 그는 괴로운 웃음을 지었다.

“응, 어디서?”

K는 입에 문 궐련 연기가 눈에 들어갔는지 눈을 비비면서 유원을 본다.

“집에서요.”

유원은 편지를 끄집어내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무에라고?”

K는 편지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또 돈이올시다.”

그는 한편으로는 K에게 편지를 주고 곁눈질하여 K의 부인을 보았다. 부인은 담배만 퍽퍽 피우고 이쪽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맘은 좀 편하였다.

“내일 부치오. 아마 집에서 퍽 곤란할 게요. 그러면 벌써 말하지.”

K는 태연히 말하였다. 유원이는 무엇이라 할런지 너무도 감격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그 어머니의 십삼 원 받고 기뻐할 것을 상상하였다. 감격에 끓던 그의 가슴은 다시 쓰린 감정이 넘치었다.

‘아! 이 십삼 원, 이것으로 무명 원료를 사면 쌀은 어찌할까 ? 나무는 무엇으로?’

그는 그만 소리 없는 눈물을 떨어뜨리었다.

🙝 🙟

유원이가 우체국에 가서 어머니에게 십삼 원 부치던 날 밤이었다. S촌에 있는 유원의 어머니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무명을 짜느라고 외상으로 산 솜 값 받으려고 솜 장사가 왔다. 그런데 유원에게서는 돈을 못 부친다는 편지가 왔다.

솜 장사는 솜 값을 내지 않는다고 베틀에 불을 질렀다. 유원의 어머니는 불붙는 무명틀을 부여잡고 울다가 깨어나니 꿈이었다.


(1923. 9. 작(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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