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나갈 거라곤 인제 매함지박과 키쪼각이 있을 뿐이다.

그 외에도 체랑 그릇이랑 있긴 좀 허나 깨어지고 헐고 하여 아무짝에도 못쓸 것이다. 그나마 들고 나설려면 안해의 눈을 기워야 할 터인데 맞은쪽에 빠안히 앉았으니 꼼짝할 수 없다.

허지만 오늘도 밸을 좀 긁어놓으면 성이 뻗쳐서 제물로 부르르 나가 버리리라―――아랫목의 근식이는 저녁상을 물린 뒤 두 다리를 세워안고 그리고 고개를 떨어친 채 묵묵하였다. 왜냐면 묘한 꼬투리가 있음직하면서도 선뜻 생각키지 않는 까닭이었다.

웃방에서 내려오는 냉기로 하여 아랫방까지 몹시 싸늘하다. 가을쯤 치받이를 해두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천장에서는 흙방울이 똑똑 떨어지며 찬 바람은 새어든다.

헌 옷대기를 들쓰고 앉아 어린 아들은 하룻전에서 킹얼거린다.

안해는 이 아이를 얼르며 달래며 부지런히 감자를 구워 먹인다. 그러나 다리를 모로 늘이고 사지를 뒤트는 양이 온종일 방아다리에 시달린 몸이라 매우 나른한 맧이었다. 손으로 가끔 입을 막고 연달아 하품만 할 뿐이었다.

한참 지난 후 남편은 고개를 들고 안해의 눈치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두터운 입술을 째그리며 바로 데퉁스러이

"아까 낮에 누가 왔다 갔지유―――" 하고 심심히 받으며 들떠보도 않는다.

물론 전부터 미뤄오던 호포를 독촉하러 오늘 면서기가 왔던 것을 남편이라고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자기는 거리에서 먼저 기수채었고 그때문에 붙잡히면 혼이 뜰까봐 일부러 몸을 피하였다. 마는 어차피 말을 꼴려하니까

"볼 일이 있으면 나를 불러대든지 할 게지 왜 그놈을 방으루 불러들이고 이 야단이야." 하고 눈을 부르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해는 이 말에 이마를 홱 들더니 눈꼴이 잡은참 돌아간다. 하 어이없는 일이라 기가 콕 막힌 모양이었다. 샐쭉해서 턱을 조금 솟치자 그대로 떨어치고 잠자코 아이에게 감자만 먹인다.

이만하면, 하고 남편은 다시 한번

"헐 말이 있으면 문밖에서 허든지, 방으로까지 끌어들이는 건 다 뭐야?" 분을 속갔다. 그제서야

"남의 속 모르는 소리 작작하게유. 자기 때문에 말막음하느라구 욕본 생각은 못하구."

안해는 가무잡잡한 얼굴에 핏대를 올렸으나 그러나 표정을 고르잡지 못한다. 얼마를 그렇게 앉았더니 이번에는 남편의 낯을 똑바로 쏘아보며

"그지말구 밤마다 짚신짝이라두 삼어서 호포를 갔다 대게유." 하다가 좀 사이를 두곤 들릴듯 말듯한 혼잣소리가

"기집이 좋다기로 그래 집안물건을 다 들어낸담!" 하고 여무지게 종알거린다.

"뭐! 집안물건을 누가 들어내?"

그는 시치미를 딱 떼고 제법 천연스리 펄쩍 뛰었다. 그란 속으로는 떡메로 복장이나 얻어맞은 듯 찌인하였다. 입때까지 까맣게 모르는줄만 알았더니, 안해는 귀신같이 옛날에 다 안 눈치다. 어젯밤 안해의 속곳과 그제밤 맷돌짝을 후므려낸 것이 죄다 탄로가 되었구나, 생각하니 불쾌하기가 짝이 없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벼락을 맞을라구?"

그는 이렇게 큰소리를 해보았으나 한팔로 아이를 끌어다려 젖만 먹일 뿐, 젊은 안해는 숫제 받아주지 않았다.

안해는 샘과 분을 못이기어 무슨 되알진 소리가 터질듯 질듯 하면서도 그냥 꾹 참는 모양이었다. 눈을 알로 내려깔고 색색 숨소리만 내다가 남편이 또다시

"누가 그따위 소릴 해 그래?" 하 제에야 비로소 입을 여는 것이―――"

"재숙 어머이지 누군 누구야."

"그래, 뭐라구?"

"들병이와 매맞았다지 뭘 뭐래, 맷돌허구 내 속곳은 술사먹으라는 거지유?"

남편은 더 뻗치기를 못하고 고만 얼굴이 화끈 닳았다. 안해는 좀 살자고 고생을 모릅쓰고 바둥거리는 이 판에 남편이란 궐짜는 그 속곳을 술사먹었다면 어느모로 따져보든 곱지 못한 행실이리라. 그는 안해의 시선을 피할만치 몹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마는 그렇다고 자기의 의지가 꺾인다면 또한 남편된 도리도 아니었다.

"보두 못허구 앰할 소릴 해 그래, 눈깔들이 멀라구?" 하고 변명삼아 목청을 꽉 돋았다.

그러나 아무 효력도 보이지 않음에는 제대로 약만 점점 오른 뿐이다. 이러다간 본전도 못 건질 걸 알고 말끝을 얼른 돌리어

"자기는 뭔데 대낮에 사내놈을 방으로 불러들이구, 대관절 둘이 뭐했드람?" 하여 안해를 되순나 잡았다.

안해는 독살이 송곳끝처럼 뾰료져서 젖 먹이던 아이를 방바닥에 쓸어박고 발딱 일어섰다. 제 공을 모르고 게정만 부리니까 되우 야속한 모양같다. 찬 방에서 너 좀 자보라는 듯이 천연스레 뒤로 치마꼬리를 여미더니 그대로 살랑살랑 나가버린다.

아이는 또 그대로 요란스리 울어대인다.

눈 위를 밟는 안해의 발자취소리가 멀리 사라짐을 알자 그는 비로소 맘이 놓였다. 방문을 열고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

무슨 짓을 하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부엌으로 더듬어 들어가서 우선 성냥을 드윽 그어대고 두리번거렸다. 짐작했던대로 그 함지박은 부뚜막은 위에서 주인을 우두먼히 기다리고 있다. 그 속에 담긴 감자나부랭이는 그 자리에 쏟아버리고 그리고나서 번쩍 들고 뒤란으로 나갔다.

앞으로 들고 나갔으면 좋은 테지만 그러다 안해에게 들키면 아주 혼이 난다. 어렵더라도 뒤곁 언덕 위로 올라가서 울타리 밖으로 쿵 하고 아니 던져넘길 수 없다.

그담에가 이게 좀 거북한 일이었다. 허지만 예전 뒤나 보러 나온 듯이 뒷짐을 딱 지고 싸리문께로 나와 유유히 사면을 돌아보면 고만이다.

하얀 눈 위에는 안해가 고대 밟고간 발자국만이 딩금딩금 남았다.

그는 울타리에 몸을 착 비겨대고 뒤로 돌아서 그 함지박을 집어들자 곧 뺑소니를 놓았다.

근식이는 인가를 피하여 산 기슭으로만 멀찌감치 돌았다. 그러나 함지박은 몸에다 곁으로 착 붙였으니 좀체로 들킬 염려는 없을 것이다.

매웁게 쌀쌀한 초승달은 푸른 하늘에 맹그머니 눈을 떴다.

수어리골을 흘러내리던 시내도 인제는 얼어붙었고 그 빛이 날카롭게 번득인다. 그리고 산이며, 들, 집, 낟가리, 만물은 겹겹 눈에 잠기여 숨소리조차 내질 않는다.

산길을 빠져서 거리로 나오려 할 제 어디에선가 징이 찡찡, 울린다. 그 소리가 고적한 밤공기를 은은히 흔들고 하늘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는 가던 다리가 멈칫하여 멍하니 넋을 잃고 섰다.

오늘밤이 농민회 총회임을 고만 정신이 나빠서 깜박 잊었던 것이다.

한번 회에 안 가는데 궐전이 오전, 뿐만 아니라 공연히 부역까지 안담이 씌우는 것이 이 동리의 전례이었다.

또 경쳤구나, 하고 길에서 그는 망설인다. 허나 몸이 아퍼서 앓았다면 그만이겠지, 이쯤 안심도 하여본다. 그렇지만 어쩐 일인지 그래도 속이 끌밋하였다.

요즘 눈바람은 부닥치는데 조밥꽁댕이를 씹어가며 신작로를 닦는 것은 그리 수월치도 않은 일이었다. 떨면서 그 지랄을 또 하려니 생각만 하여도 짜장 이에서 신물이 날 번하다 만다.

그럼 하루를 편히 쉬고 그걸 또 하느냐, 회에 가서 새 까먹은 소리나마 그 소리를 졸아가며 듣고 앉았느냐―――얼른 딱 정하지를 못하고 그는 거리에서 한 서너번이나 주춤하였다. 허지만 농민회가 동리에 청년들을 말끔 다 쓸어간 그것만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밤에는 술집에 가서 저 혼자 들병이를 차지하고 놀 수 있으리라―――

그는 선뜻 이렇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다리를 재촉하였다. 그리고 술집 가차이 왔을 때에는 기쁠 뿐만 아니요 또한 용기까지 솟아올랐다.

길가에 따로 떨어져서 호젓이 놓인 집이 술집이다. 산모퉁이 옆에 서서 눈에 쌓이어 그 흔적이 긴가민가하나 달빛에 빗기어 갸름한 꼬리를 달고 있다. 서쪽으로 그림자에 묻히어 대문이 열렸도 그 곁으로 불이 반짝대는 지게문 하나가 있다.

이 방이 즉 계숙이가 빌려서 술을 팔고 있다는 방이다. 문을 열고 썩 들어서니 계숙이는 일어서며 무척 반긴다.

"이게 웬 함지박이지유?"

그 태도며 얕은 웃음을 짓는 양이 나달전 처음 인사할 제와 조금도 변칠 않았다. 아마 어젯밤 자기를 보고 사랑하다던 그 말이 알톨같은 진정이기도 쉽다. 하여튼 정분이란 과연 희한한 물건이로군―――

"왜 웃어, 어젯밤 술값으로 가져왔는데." 하고 근식이는 말을 받다가 어쩐지 좀 제면쩍었다. 계집이 받아들고서 이리로 뒤척 저리로 뒤척 하며 또는 바닥을 뚜들겨도 보며 이렇게 좋아하는 걸 얼마쯤 보다가

"그게 그래봬두 두 장은 훨씬 넘을걸!"

마주 싱그레 웃어 주었다. 참이지 계숙이의 흥겨운 낯을 보는 것은 그의 행복 전부이었다.

계집은 함지를 들고 안쪽문으로 나가더니 술상 하나를 곱게 받쳐들고 들어왔다. 돈이 없어서 미안하여 달라지도 않는 술이나 술값은 어찌되었든지 우선 한잔하란 맧이었다. 막걸리를 화로에 거냉만 하여 따라부며

"어서 마시게유, 그래야 몸이 푸리유." 하더니 손수 입에다 부어까지 준다.

그는 황감하여 얼른 한숨에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 한잔 두잔 석잔―――

계숙이는 탐탁히 옆에 붙어앉더니 근식이의 얼은 손을 젖가슴에 묻어주며

"어이 차, 일 어째!" 한다. 떨고서 왔으니까 퍼그나 가여운 모양이었다.

계숙이는 얼마 그렇게 안타가워하고 고개를 모로 접으며

"난 낼 떠나유!" 하고 썩 떨어지기 섭섭한 내색을 보인다. 좀더 있으려 했으나 아까 농민회 회장이 찾아왔다. 동리를 위하여 들병이는 절대로 안 받으니 냉큼 떠나라 했다. 그러나 이 밤이야 어디를 가랴. 낼아침 밝는대로 떠나겠노라 했다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근식이는 그만 낭판이 떨어져서 멍멍하였다. 언제이든 갈줄은 알았던 게나 이다지도 급자기 서둘줄은 꿈밖이었다. 자기 혼자서 따로 떨어지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려든가―――

계숙이의 말을 들어보면 저에게도 번히는 남편이 있었다 한다. 즉 아랫묵에 방금 누워있는 저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다. 술만 처먹고 노름질에다 후딱하면 안해를 두들겨패고 벌은 푼돈을 뺏어가며 함으로해서 당최 견딜 수가 없어 석달전에 갈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자기와 드러내놓고 살아도 무방한 것이 아닌가. 허나 그런 소리란 차마 이쪽에서 먼저 꺼내기가 어색하였다.

"난 그래 어떻게 살아. 나두 따라갈까?"

"그럼 그럽시다유." 하고 계숙이는 그 말을 바랐던 듯이 선뜻 받다가

"집에 있는 안해는 어떡허지유?"

"그건 염려 없어!"

근식이는 고만 기운이 뻗쳐서 시방부터 계숙이를 얼싸안고 들먹거린다. 치우기는 별로 힘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제대로 그냥 내버려만 두면 제가 어디로 가든말든 할 게니까. 하여튼 인제부터는 계숙이를 따라다니며 벌어먹겠구나, 하는 새로운 생활만이 기쁠 뿐이다.

"낼 밝기 전에 가야 들키지 않을걸!"


밤이 야심하여도 회 때문인지 술꾼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인젠 안 오려니 단념하고 방문고리를 걸은 뒤 불을 껐다. 그리고 계숙이는 멀거니 앉아있는 근식의 팔에 몸을 던지며 한숨을 휴우 짓는다.

"살림을 하려면 그릇쪼각이라두 있어야 할텐데!"

"염려 말아, 내 집에 가서 가져오지!"

그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그저 선선하였다. 딴은 안해가 잠에 곯아지거든 슬며시 들어가서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대로 후므려오면 그뿐이다. 앞으로 굶주리지 않아도 맘편히 살려니 생각하니 잠도 안올만치 가슴이 들렁들렁하였다.

방은 우풍이 몹시도 세었다. 주인이 그악스러워 구들에 불도 변변히 안 지핀 모양이다. 까칠한 공석자리에 등을 붙이고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대구 떨었다. 한 구석에 쓸어박혔던 아이가 별안간 잠이 깨었다. 킹얼거리며 사이를 파고드려는 걸 어미가 야단을 치니 도로 제자리에 가서 찍소리 없이 누웠다. 매우 훈련 잘 받은 젖먹이었다.

그러나 근식이는 그놈이 생각하면 할 수록 되우 싫었다. 우리들이 죽도록 모아놓으면 저놈이 중간에서 써버리겠지. 제애비 본으로 노름질도 하고, 애미를 두들겨패서 돈도 뺏고 하리라. 그러면 나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격으로 헛공만 들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당장에 곧 얼어죽어도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 어미의 환심을 서려니깐

"에 그놈······ 착하기도 하지." 하고 두어번 그 궁둥이를 안 뚜덕일 수도 없으리라.

달이 기울어서 지게문을 훤이 밝히게 되었다.

간간 외양간에서는 소의 숨 쉬는 식식 소리가 거푸지게 들려온다.

평화로운 잠자리에 때아닌 마가 들었다. 뭉태가 와서 낮은 소리로 계숙이를 부르며 지게문을 열라고 찌걱거리는 게 아닌가. 전일부터 계숙이에게 돈좀 쓰던 단골이라고 세도가 막 댕댕하다.

근식이는 망할 자식, 하고 골피를 찌푸렸다. 마는 계숙이가 귓속말로

"내 잠깐 말해 보낼게 밖에 나가 기달리유." 함에는 속이 좀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말은 남편을 신뢰하고 하는 통사정이리라. 그는 안문으로 바람같이 나와서 방벽께로 몸을 착 붙여세우고 가끔 안채를 살펴 보았다. 술집주인이 나오다 이걸 본다면 담박 미친 놈이라고 욕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저께는

"자네 바람 잔뜩 났네 그려. 난 술을 파니 좋긴 허지만 맷돌짝을 들고 나오면 살림 고만 둘 터인가?" 하고 멀쑤룩하게 닥기었다. 오늘 들키면 또 무슨 소리를―――

근식이는 떨고 섰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방문께로 바특이 다가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왜냐면 뭉태가 들어오며

"오늘두 그놈 왔었나?" 하더니 계집이

"아니유, 아무도 오늘은 안 왔어유." 하고 시치미를 떼니까

"왔겠지 뭘. 그자식 왜 새바람이 나서 지랄이야." 하고 썩 신퉁그러지게 비웃는다.

여기에서 그놈 그자식이란 물을 것도 없이 근식이를 가리킴이다. 그는 살이 다 불불 떨렸다.

그뿐 아니라 이말저말 한참을 중언부언 지껄이더니

"그자식 동리에서 내쫓는다던걸!"

"왜 내쫓아?"

"아 홰엔 안 오고 술집에만 박혀 있으니까 그렇지."

(이건 멀쩡한 거짓말이다. 회좀 안 갔기로 내쫓는 경우가 어딨니, 망할 자식.) 하고 그는 속으로 노하며 은근히 굳세게 쥐인 주먹이 대구 떨리었다.

그민아라도 좋으련만

"그자식 어찌 못낫는지 안해까지 동리로 돌아다니며 미화라구 숭을 보는걸!"

(또 거짓말. 안해가 날 어떻게 무서워하는데 그런 소리를 해!)

"남편을 미화라구? 하고 계집이 호호대고 웃으니까

"그럼 안그래? 그러구 계숙이를 집안망할 도적년이라고 하던걸. 맷돌두 집어가고 속곳도 집어가구 했다구."

"누가 집어가 갖다주니까 받았지." 하고 계집이 팔짝 뛰는 기색이더니

"내가 아나, 근식이 처가 그러니깐 나두 말이지."

(안해가 설혹 그랬기루 그걸 다 꼬드겨바쳐? 개새끼 같으니!)

그담엔 들으려구 애를 써도 들을 수 없을만치 병아리 소리로들 뭐라 뭐라고 지껄인다. 그는 이것도 필경 저와 계숙이의 사이가 좋으니까 배가 아파서 이간질이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계집도 는실날실 여일히 받으며 같이 웃는 것이 아닌가.

근식이는 분을 참지 못하여 숨소리도 거칠을만치 되었다. 마는 그렇다고 뛰어들어가 두들겨줄 형편도 아니오 어째볼 도리가 없다. 계숙이나 뭣하면 노엽기도 덜하련마는 그것조차 핀잔 한 마디 안 주고 한통속이 되는 듯하니 야속하기가 이를데 없다.

그는 노기와 한고로 말미암아 팔짱을 찌르고는 덜덜 떨었다. 농창이 난 버선이라 눈을 밟고 섰으니 뼈끝이 쑤시도록 시렵다.

몸이 괴로워지니 그는 안해의 생각이 머리속에 문득 떠오른다. 집으로만 가면 따스한 품이 기다리련만 왜 이 고생을 하는지 실로 알고도 모를 일이다. 허지만 다시 잘 생각하면 안해 그까짓건 싫었다. 아리랑타령 한 마디 못하는 병신, 돈 한푼 못 버는 천치―――하긴 초작에야 물불을 모를만치 정이 두터웠으나 때가 어느 때이냐, 인제는 다 삭고 말았다.

뭇사람의 품으로 옮아안기며 에쓱거리는 들병이가 말은 천하다할망정 힘 안 들이고 먹으니 얼마나 부러운가. 침들을 게제 흘리고 덤벼드는 뭇놈을 이손 저손으로 맘대로 후물르니 그 호강이 바이 고귀하다 할지라―――

그는 설한에 이까지 딱딱거리도록 몸이 얼어간다. 그러나 집으로 가서 자리 위에 편히 쉬일 생각은 조금도 없는 모양 같다. 오직 계숙이가 불러들이기만 고대하여 턱살을 받쳐대고 눈이 빠질 지경이다.

모진 눈보라는 가끔씩 목덜미를 냅다 갈긴다. 그럴 적마다 저고리 동정으로 눈이 날아들며 등줄기가 선뜩선뜩하였다. 근식이는 암만 기다려도 때가 되었으련만 불러들이지를 않는다. 수근거리던 고것조차 끊이고 인제 굵은 숨소리만이 흘러 나온다.

그는 저도 모르는 약이 발뿌려서 머리끝까지 바짝 치뻗었다. 들병이란 더러운 물건이다. 남의 살림을 망쳐놓고 게다 가난한 농군들의 피를 빨아먹는 여우다, 하고 매우 쾌쾌히 생각하였다. 이변 그렇게까지 노해서 나갔는데 안해가 지금쯤은 좀 풀었을까 이런 생각도 하여 본다.

처마 끝에 쌓였던 눈이 푹 하고 땅에 떨어질 때 그때 분명히 그는 집에 가려 하였다. 만일 계숙이가 때맞춰 불러들이지만 않았더면

"에이 더러운 년!"

속으로 이렇게 침을 배앝고 네 보란듯이 집으로 삑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계집은 한문으로

"칩겠수, 얼른 가우."

"뭘 이까진 추워."

"그럼 잘 가게유, 낭종 또 만납시다."

"응, 내 추후루 한번 찾아가지."

뭉채가 이렇게 눈도 털 줄 모르고 감지덕지하여 닝큼 들어서며 우선 얼른 손을 썩썩 문댔다.

"밖에서 퍽 추웠지유?"

"뭘 추워 그렇지." 하고 그는 만족히 웃으면서 그렇듯 분분하던 아까의 분노를 다 까먹었다.

"그자식, 남 자는데 왜 와서 쌩이질이야!"

"그렇게 말이유, 그런 눈치 코치도 없어!" 하고 계집은 조금도 빈틈없이 여전히 탐탁하였다. 그리고 등잔에 불을 다리며 거나하여 생글생글 웃는다.

"자식이 왜 그 뻔세람. 거짓말만 술술 하구!" 하며 근식이는 먼젓번 뭉태에게 흉잡혔던 그 대가품을 안할 수 없었다. 나두 네가 헌만치만 허겠다, 하고

"아 그놈 참 병신 됐다드니 어떻게 걸어다녀?"

"왜 병신이 되우?"

"남의 계집 오입하다가 들켜서 밤새도록 목침으로 두들겨 맞었지. 그래 응치가 끊어졌느니 대리가 부러졌느니 허더니 그래두 곧 잘 걸어다니네!"

"알라리, 별일두."

계집은 세상에 없을 일이 다 있단듯이 눈을 째웃하더니

"제 계집좀 보았기루 그렇게 때릴 건 뭐야."

"아 안그래 그럼. 나라두 당장 그놈을!" 하고 근식이는 제 안해가 욕이라도 보는듯이 기가 올랐으나 그러나 계집이 낯을 찌푸리며

"그 뭐 계집이 어디가 떨어지나 그러게?" 하고 샐쭉이 뒤둥그러지는데는 어쩔수 없이 저도

"허긴 그렇지, 놈이 원체 못나서 그래." 하고 얼른 눙치는 게 상책이었다.

내일부터라도 계숙이를 따라다니며 먹을텐데 딴은 이것저것을 가리다는 죽도 못 빌어 먹는다. 그보다는 몸이 열파에 난대도 잘 먹을 수만 있다면이야 고만이 아닌가―――

그건 그렇다고, 어떻게 뭉태란 놈의 흉은 그만치 봐야 할 것이다. 그는 담배를 하나 피워물고 뭉태는 본디 돈도 신용도 아무것도 없는 건달이란둥, 동리에서는 그놈의 말은 곧이 안 듣는다는둥, 심지어 남의집 보리를 훔쳐내다 붙잡혀서 콩밥을 먹었다는 허풍까지 찌며 없는 사실을 한창 늘여 놓았다.

그는 이렇게 계집을 얼렁거리다 안말에서 첫홰를 울리는 계명성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개동까지는 떠날 차보가 다 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계집의 뺨을 손으로 문질러보고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다.

"내 집에 좀 갔다올게 꼭 기다려 응."

근식이가 거리로 나올 때에는 초승달은 완전히 넘어갔다.

저 건너 산밑 국수집에는 아직도 마당의 불이 환하다. 아마 노름꾼들이 모여드어 국수를 눌려먹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밭둑으로 돌아가며 지금쯤 안해가 집에 돌아와 과연 잠이 들었을지 퍽 궁금하였다. 어쩌면 매함지박 없어진 건 알았을지도 모른다. 제가 들어가면 바가지를 긁으려고 지키고 앉았지나 않을는지―――

이렇게 되면 계숙이와의 약속만 깨어질뿐 아니라 일은 다 글르고 만다.

그는 제물에 다시 약이 올랐다. 계집년이 건방지게 남편의 일을 지키고 앉었구, 남편이 하자는 대루 했을 따름이지, 제가 항상 뭔데―――허지만 이 주먹이 들어가 귓배기 한 서너번만 쥐어박으면 고만이 아닌가―――

다시 힘을 얻어가지고 그는 제집 싸리문께로 다가서며 살며시 들어밀었다. 달빛이 없어지니까 부엌쪽은 캄캄한 것이 아주 절벽이다. 뜰에 깔린 눈의 반영이 있으므로 그런대로 그저 할만하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선 봉당 위로 올라거서 방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풍지도 울듯한 깊은 숨소리, 입을 벌리고 곁에서 코를 골아대는 안해를 일상 책했더니 이런때에 덕볼줄은 실로 뜻하지 않았다. 저런 콧소리면 사지를 묶어가도 모를만치 곯아졌을 게니까―――

그제서는 마음을 놓고 허리를 굽히고 그리고 꼭 도둑같이 밭을 저겨 디디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첫째 살림을 시작하려면 밥은 먹어야 할 테니까 솥이 필요하다. 손으로 더듬더듬 찾아서 솥뚜껑을 한옆에 벗겨놓자 부뚜막에 한다리를 얹고 두 손으로 솥전을 잔뜩 웅켜잡았다. 인제는 잡아당기기만 하면 쑥 뽑힐 게니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솥이 생각하면 사년전 안해를 맞아들일 때 행복을 계약하던 솥이었다. 그 어느날인가 읍에서 사서 둘러메고 올 제는 무척 기뻤다. 때가 지나도록 안해가 뭔지 생각하고 모르다가 이제야 알고보니 딴은 훌륭한 보물이다. 이 솥에서 둘이 밥을 지어먹고 한평생 같이 살려니 하니 세상이 모두 제것같다.

"솥 사왔지."

이렇게 집에 와 내려놓으니 안해도 뛰어나와 짐을 끄르며

"아니 그솥 이뻐이! 얼마 주었수?" 하고 기뻐하였다.

"번인 일원사십전을 달라는 걸 억지로 깎아서 일원삼십전에 떼 왔는걸!" 하고 저니까 깎았다는 우세를 뽐내니

"참 싸게 샀수, 그러나 더 좀 깎았으면 좋았지."

그리고 안해는 솥을 두들겨보고 불빛에 비춰보고 하였다. 그래도 밑바닥에 구멍이 뚤렸을지 모르므로 물을 부어보다가

"아 이보게, 새네 새, 일 어쩌나?"

"뭐, 어디."

그는 솥을 받아들고 눈이 휘둥그래서 보다가

"글쎄, 이놈의 솥이 새질 않나!" 하고 얼마를 살펴보고난 뒤에야 새는 게 아니고 전으로 물이 검흐르는 것을 알았다.

"숭맥도 참 많어이, 이게 새는 거야? 겉으로 물이 흘렀지!"

"참 그렇군"

둘이들 이렇게 행복스러이 웃고 즐기던 그 솥이었다. 그러나 예측하였던 달가운 꿈은 몇달이었고 툭 하면 지지리 고생만 하였다. 인제는 마땅히 다른 데로 옮겨야 할 것이다.

그는 조금도 서슴없이 솥을 쑥 뽑아 한길 체 내려놓고 또 그담 걸 찾았다.

근식이는 어두운 벽 한복판에 서서 뒤 급한 사람처럼 허둥지둥 매인다. 그렇다고 무엇을 찾는 것도 아니요 뽑아논 솥을 집는 것도 아니다. 뭣뭣을 가져가야 할는지 실은 가져갈 그릇도 없거니와 첫째 생각이 안 나서이다. 올 때에는 그렇게도 여러가지가 생각나더니 실상 와 닥치니까 어리둥절하다.

얼마 뒤에야

(옳지 이런 망할 정신 보래!)

그는 잊었던 생각을 겨우 깨치고 벽에 걸린 바구니를 떼들고 뒤적거린다. 그 속에는 닳아 일그러진 수저가 세 자루 길고 짧고 몸고르지 못한 젓가락이 너덧매 있었다.

그중에서 덕이(아들)먹을 수저 한개만 남기고는 모집어서 궤춤에 꾹 꽃았다. 그리고 더 가져가랴 하니 생각은 부족한 것이 아니로되 그릇이 마뜩치 않다. 가령 밥사발, 바가지, 종지―――

방에는 앞으로 둘이 덮고 자지 않으면 안될 이불이 한 채 있다마는 방금 아내가 잔뜩 끌어안고 매댁질을 치고 있을 게니 이건 오매부득이다. 또 웃목구석에 한 너덧되 남은 좁쌀자루도 있지 않느냐―――

허지만 이게 다 일을 벗내는 생각이다. 그는 좀 미진하나마 솥만 들고는 그대로 그림자와 같이 나와 버렸다.

그의 집은 수어릿골 꼬리에 달린 막바지였다. 양쪽산에 찌어 시냇가에 집은 얹혔고, 늘 쓸쓸하였다. 마을복판에 일이라도 있어 돌이 깔린 시냇길을 여기서 오르내리자면 적잖이 애를 씌웠다.

그러나 이제로는 그런 고생을 더 하자 하여도 좀체 없을 것이다. 고생도 하직을 하지 하니 귀엽고도 일변 안타까운 생각이 없을 수 없다.

그는 살던 즈집을 뒤서너번 돌아다보고 그리고 술집으로 횡하게 달려갔다.

방에 불은 아직도 켜 있었다.

근식이는 허둥지둥 지게문을 열고 뛰어들며

"어, 추워!" 하고 커다랗게 몸서리를 쳤다.

"어서 들어오우, 난 안 오늘줄 알았지."

계숙이는 어리삥삥한 웃음을 띠우고 그리고 몹시 반색했다. 아마 그동안 자지도 않은 듯 보재기에 아이 기저귀를 챙기며 일변 쪽을 고쳐끼기도 하고 떠날 준비에 서성서성하고 있다.

"안 오긴 왜 안와."

"글쎄 말이유, 안 오면 누군 가만둘줄 아나. 경을 이렇게 쳐주지." 하고 그 팔을 잡아서 꼬집다가

"아, 아, 아고파!" 하고 근식이가 응석을 부리며 덤비니

"여보기유, 참 짐은 어떡허지유?"

"뭘 어떡해?"

"아니 은제 쌀려느냔 말이지유." 하고 뭘 한참 속으로 생각한다.

"진시 싸놨다가 훤하거든 곧 떠납시다유." 근식이도 거기에 동감하고 계집의 의견대로 짐을 댕그머니 묶어 놓았다. 짐이라야 솥, 맷돌, 매함지박, 옷보따리, 게다 술값으로 받아들인 쌀 몇되, 좁쌀 몇되―――

먼동이 트는대로 짊어만 매면 되도록 짐은 아주 간단하였다. 만약 아침에 주젓거리다간 우선 술집주인에게 발각이 될 게고 따라 동리에 소문이 퍼진다. 그뿐 아니라 아내가 쫓아온다면 팔자는 못 고치고 모양만 창피할 것이 아닌가.―――

떠날 차보가 다 되자 그는 자리에 누워 날 새기를 기다렸다. 시방이라도 떠날 생각은 간절하나 산골에서 짐승을 만나면 귀신이 되기 쉽다. 하지만 술집의 심은 다 되었다니까 인사도 말고 개동까지 지는 슬며시 달아나야할 것이다.

그는 몸을 덜덜 떨어가며 얼른 동살이 잡혀야 할텐데―――그러다 어느결에 잠이 깜빡 들었다.

그것은 어느 때쯤이나 되었는지 모른다.

어깨가 으쓱하고 찬 기운이 수가마로 새드는 듯이 속이 떨려서 번쩍 깨었다. 허나 실상은 그런 것도 아니요, 아이가 킹킹거리며 머리 위로 대구 기어올라서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귀찮아서 손으로 아이를 밀어내리고 또 밀어내리고 하였다. 그러나 세번째 밀어내리고자 손이 이마 위로 올라갈 제, 실로 아지 못할 일이다, 등뒤 웃목쪽에서

"이리온, 아빠 여깄다." 하고 귀설은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걸걸하고 우람한 그 목소리―――

근식이는 이게 꿈이 아닌가 하여 정신을 가만히 가다듬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였다. 그렇다고 몸을 삐끗하는 것도 아니요, 숨소리를 제법 크게 내는 것도 아니요, 가슴 속에서 한갓 염통만이 펄떡펄떡 뛸 뿐이다.

암만 보아도 이것이 꿈은 아닐 듯싶다. 어두운 방, 앞에 누운 계숙이, 킹킹거리는 어린애―――

걸걸한 목소리는 또 들린다.

"이리와, 아빠 여깄다니깐?"

아이의 아빠이면 필연코 내던진 본 남편이 결기를 먹고 따라왔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부정을 현장에서 맞딱뜨린 남편의 분노이면 네남직없이 다 일반이리라. 분김에 낫이라도 들어 찍으면 고대로 찍소리도 못하고 죽을밖에 별 도리 없다.

확실히 이게 꿈이어야 할 터인데 꿈은 아니니 근식이는 얼른 몸에서 땀이 다 솟을만치 속이 답답하였다. 꼿꼿하여진 등살은 그만두고 발가락하나 꼼짝 못하는 것이 속으로 인젠 참으로 죽나보다 하고 거진 산송장이 되었다.

물론, 이러면 좋을까 저러면 좋을까 하고 드립다 애를 짜아도 본다. 그러나 결국에는 계숙이를 깨우면 일이 좀 필까 하고 손가락으로 그 배를 넌즈시 쿡쿡 찔러도 보았다. 한번, 두번, 세번 그리고 네번째는 배에 창이 나라고 힘을 들이어 찔렀다. 마는 계숙이는 깨기는세로 그의 허리를 더 잔뜩 끌어안고 코골기에 세상만 모른다.

그는 더욱 진땀만 흘렀다.

남편의 어청어청 등뒤로 걸어오는듯 하더니 아이를 번쩍 들어안는 모양이다.

"이놈아, 왜 성가시게 굴어?"

이렇게 아이를 꾸짖고

"어여들 편히 자게유!" 하여 쾌히 서심을 쓰고 웃목으로 도로 내려간다.

그 태도며 그 말씨가 매우 맘세 좋아보였다. 마는 근식이에게는 이것이 도리어 견딜 수 없을만치 살을 저미는 듯하였다. 이렇게 되면 이왕 죽을 바에야 얼른 죽이기나 바라는 것이 다만 하나 남은 소원일지도 모른다.

계숙이는 얼마후에야 꾸물꾸물하며 겨우 몸을 떠들었다.

"어서 떠나야지?" 하고 두 손등으로 잔 눈을 부비다가 웃목을 내려다보고는 몹시 경풍을 한다. 그리고 고개를 접더니 입을 꼭 봉하고는 잠잠히 있을 뿐이다.

이런 동안에 날은 아주 활짝 밝았다.

안부엌에선 솥을 가시는 소리가 시그러이 들려온다.

주인은 기침을 하더니 찌걱거리며 대문을 여는 모양이었다.

근식이는 이래도 죽긴 일반 저래도 죽긴 일반이라 생각하였다. 참다 못하여 저도 따라 일어나 웅크리고 앉으며 어찌될 겐가 또다시 처분만 기다렸다. 그런 중에도 곁눈으로 흘깃 살펴보니 키가 커다란 한 놈이 책상다리에 아이를 안고서 웃목에 앉았다. 감때는 그리 사납지 않으나 암끼 좀 있어 보이는 듯한 그 낯짝이 넉히 사람깨나 잡을 듯하다.

"떠나지들―――"

남편은 이렇게 제법 재촉하며 자가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치 제가 주장하여 둘을 데리고 먼 길이나 떠나는 듯싶다. 아이를 계숙이에게 내맡기더니 근식이를 향하여

"여보기유, 일어나서 이 짐 좀 지워지게유." 하고 손을 빈다.

근식이는 잠시 얼뚤하여 그 얼굴은 멍히 쳐다봤으나 그러나 허란대로 안할 수도 없다. 살려주는 것만 다행으로 여기고 본시는 제가 질 짐이로되 부축하여 그 등에 잘 지워 주었다.

솥, 맷돌, 함지박, 보따리들을 한데 묶은 것이니 무겁기도 조히 무거울 게다. 허나 남편은 조금도 힘드는 기색을 보이기커녕 아주 홀가분한 몸으로 덜렁덜렁 밖을 향하여 나선다.

안해는 분부대로 아이는 포대기에 들싸서 등에 업었다. 그리고 입 속으로 뭐라는 소리인지 종알종알하더니 저도 따라나선다.

근식이는 얼빠진 사람처럼 서서 웬 영문을 모른다. 한참 그러나 대체 어떻게 되는 겐지 그들의 하는 양이나 볼려고 그도 슬슬 뒤묻었다.

아침 공기를 뼈끝이 다 쑤시도록 더욱 매섭다.

바람은 지면의 눈을 품어다간 얼굴에 뿜고 또 뿜고 하였다.

그들은 산모퉁이를 꼽들어 퍼언한 언덕길로 성큼성큼 내린다.

안해를 앞에 세우고 길을 찾으며 일변 남편은 뒤에 우뚝 서있는 근식이를 돌아보고

"왜 섰수, 어서 같이 갑시다유." 하고 동행하기를 간절히 권하였다. 그러나 근식이는 아무 대답없고 다만 우두커니 섰을 뿐이다.

이때 산모퉁이 옆길에서 두 주먹을 흔들며 헐레벌떡 달겨드는 것이 근식이의 안해이었다. 일은 벌어졌으나 말을 하기에는 너무도 기가 찼다. 얼굴이 새빨개지며 눈에 눈물이 불현듯 고이더니

"왜 남의 솥을 빼가는 거야?" 하고 대뜸 계집에게로 달라붙는다.

계집은 비녀쪽을 잡아채는 바람에 뒤로 몸이 주춤하였다. 그리고 고개만을 겨우 돌이어

"누가 빼갔어?" 하다가

"그럼 저 솥이 누거야?"

"누건 내 알아? 갖다주니까 가져가지!" 하고 근식이 처만 못하지않게 독살이 올라 소리를 지른다.

동리사람들은 잔 눈을 부비며 하나 둘 구경을 나온다. 먹질이 떨어져서 서로들 붙고 떨어지고

"저게 근식이네 솥인가?"

"글쎄, 설마 남의 솥을 빼갈라구!"

"갖다줬다니까 근식이가 빼온 게지!"

이렇게 수군숙덕―――

"아니야! 아니야!"

근식이는 안해를 뜯어 말리며 두볼이 확확 닳았다. 마는 아내는 남편에게 한팔을 끄들린 채 그대로 몸부리를 함 여전히 대들라고 든다.

그리고 목이 찢어지라고

"왜 남의 솥을 빼가는 거야, 이 도둑년아!" 하고 연해 발악을 친다.

그렇지마는 들병이 두 내외는 금새 귀가 먹었는지 하나는 짐을, 하나는 아이를 둘러업은 채 언덕으로 유유히 내려가며 한번 돌아다보는 법도 없다.

안해는 분에 복받치어 고만 눈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체면 모르고 울음을 놓는다.

근식이는 구경꾼쪽으로 시선을 흘깃거리며 쓴 입맛만 다실 따름―――종국에는 두손으로 눈 위의 안해를 잡아 일으키며 거반 울상이 되었다.

"아니야 글쎄, 우리것이 아니라니깐 그러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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