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떡 술떡

  설(正初)명절 잔치에 떡잔치는 어린이의 것 술잔치는 어른의 것인데…… 나는 이제 그 두 잔치를 얼러 합쳐서 단단히 자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옛날 어수룩하기로 유명하고 돈없기로 유명한 『철욱』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수룩하고 마음 좋고 술 잘 먹고 떡 좋아 하건만 돈이 한푼도 없으니까 정월 초하루날도 술 한잔 먹을수 없어서 입맛만 쩌억쩍 다시고 있었습니다.
  보기에 하도 딱하니까 그의 마누라가 이웃 집에 가서 술재강(술맨든 찍걱지)을 얻어다가 그것으로 넙적한 떡을 맨들어 주면서
  『여보 이것이나 먹으면 술먹은것 만큼 취할것이니 어서 잡수시요.』
  하였습니다.
  철욱이는 그것이나마 고맙게 여기면서 한개 먹고 또 한개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몇개를 먹었는지 수효도 모르게 많이 먹었습니다.
  술재강 떡이라도 하도 많이 먹으니까 술기운이 올라서 얼굴이 붉어지고 신이나서 어깨가 으쓱으쓱 해 졌습니다.
  『이만큼 취하였으니 길에 나가드래도 누구든지 술먹고 취한줄 알지 재강떡 먹고 취한줄 아는 사람은 없겠지…』
  하고 길거리로 나가 비틀비틀 하면서 취한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마침 그 때 친한 친구 한 사람이 마주 나오다가 동전 한푼 없이 지내는 철욱이가 술이 굉장히 취한것을 이상히 알면서
  『철욱이! 자네 굉장히 취했네그려. 정월초하루부터 큰 수가 생긴 모양일세그려.』
  하고 비행기를 태우니까
  『아무렴 취하고말고…… 곤드레만드레 취했다네.』
  하고 흥청거리므로 이놈이 꽤 허풍을 떠는고나 생각하고 빈정거리느라고
  『허허 정말 대단히 취했네그려…… 무엇을 먹고 그렇게 취했나?』
  하니까 철욱이는 점점 더 신이나서
  『응 취하고말고…… 술 재강을 흠뻑 먹고 취했네.』
  그 말을 듣고 친구는 어찌 웃읍든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웃으면서 도망하였습니다. 철욱이는 집에 돌아와서 그 말을 하니까
  『아이고 대체 어리석기도 하오. 재강을 먹었다고 하니까 남이 웃지요. 누가 묻거든 술을 많이 먹고 이렇게 취했다고 그래야지요.』
  하는지라 철욱이는 그럴듯이 듣고 손벽을 치면서
  『옳지 옳지 이번에는 꼭그러지.』
  하고 그길로 곧장 그 친구의 집을 찾어갔습니다. 큰일이나 난것같이 떠들면서
  『여보게 아까도 취했지만 지금도 이렇게 몹씨 취해서 죽을지경일세.』
  『왜 그렇게 취했나?』
  『술을 많이 먹고 취했다네.』
  『술을 얼마나 먹었단말인가?』
  『아홉개나 먹었다네.』
  해놓아서 또 밑천이 드러났습니다.
  『하하하하 이놈아 어떤놈이 술을 아홉개를 먹는다드냐. 또 재강덩이를 아홉 개 먹은 모양이로구나.』
  하고 웃는고로 창피만 당하고 돌아와서 이야기를 하니까
  『여보 아무인들 웃지 않겠소. 술을 아홉개 먹었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슴이요. 이 담에 만나거든 한동이를 먹었다고 그러시요.』
  그 이튿날이 되기를 잔뜩 기다렸다가 아침이 되니까 밥도 안 먹고 친구집으로 뛰어가서
  『어이고 오늘도 참말 굉장히 취해 죽겠는걸……』
  하였습니다.
  『무얼 먹고 취했나?』
  『술을 먹고 취했지!』
  『얼마나 먹고 취했단 말인가?』
  『얼마가 무언가. 한동이나 먹었네.』
  친구가 그말을 듣고 속으로 안해에게 배워가지고 왔구나 생각하고 한번 더 묻기를
  『찬술을 먹었나? 더운 술을 먹었나?』
  하였습니다. 철욱이는 쩌얼쩔 매다가 하는 말
  『화로에 석쇠 놓고 구어 먹었지.』
  하여 기어코 재강떡 먹은것이 들어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