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退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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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시 철하(哲河)는 성우사(星友社)에서 돌아가는 길에 명순(明淳)이를 만나기 위하여 낙원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홍로와 같은 여름더위는 찌는 듯이 내려쪼이지만 철하는 그 더위를 깨달을만한 여유도 없이 그 마음은 번뇌와 분노에 싸였다.

“이 그림을 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 소년잡지 표지에 이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들의 장래를 망치게 하는 것이야”

고등계 주임의 볼찬 이 소리보담도 사오일 동안이나 경찰서 유치장에서 고생하다가 돌아온 사람을 보고

“쓸데 없는 그림 때문에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었네니 이 후의 검열도 순조로 되지 못할 것은 사실이야”

라는 소위 동인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의 말이 더욱 분하였다.

철하는 당초에 돈으로 행세를 하려고 하는 그들의 클럽에 든 것을 후회하였다. 그것도 강수길(姜秀吉)군 때문이다. 돈 있는 사람을 이용하여 일을 하여보자는 권고에 성우사에 발을 들어 놓게 된 것이다.

철하는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그놈들을 더 부시여 놓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썩어가는 그들의 골통을 좀더 때려부시지 못한 것이 더욱 분하였다. ‘소년문예운동’, 그들의 입에서 서슴지 않고 나오는 말,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지금 소년들이 무엇을 요구하며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헤매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어 아름다운 간판을 코에 걸고 낮이면 뻔뻔스럽게 다니며 무엇을 하느니 하다가도 시꺼먼 밤만 오면 도박장 카페 기생집 등의 마굴로 돌아다니는 무리들 철없는 여학생들을 유인하는 그들―. 길을 걸어가는 철하의 붉은 주먹은 힘있게 쥐여졌다.

“이러한 무리들은 이 사회에서 완전히 퇴치하여 버려야된다.”

철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가면을 쓰고 춤추는 무리들― 그래도 변원식(邊元植)이라고 하면 이 얄궂인 세상에서는 그를 존경하고 대우를 한다. 청년사업가 청년유지 이러한 명칭들이 그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돈 있는 덕분이었다. ××공론사의 최고 주주가 된 뒤로 그는 영업국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의 명예욕은 나날이 자라서 무산아동의 교육사업에 노력하겠다는 전제로 배영학원(培英學阮)을 운영하여 원장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으며 소년문예운동을 목표로 한 성우사를 창립하여 사장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을 하면서도 이해타산에는 조금도 방심을 하지 않았다. ××공론사와 성우사는 현재에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며 배영학원도 어떠한 방면에서 오는 소위 보조금으로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을 하면서도 사실 자기 돈은 한 푼도 소모를 하지 않고 도리어 배영학원 보조금에 욕심이 나서 선생들의 월급을 낮추고 아동들의 월사금을 높여서 남는 돈으로 기생유흥비에 집어넣기도 하고 자기의 잡비로 남용도 하였다. 그 리의 부친에 경영하고 있는 호일고무공장에서는 수백명 남녀 직공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와 땀을 흘려가며 그의 재산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철하는 이러한 놈의 앞에서 머리를 숙여가며 일한 것이 분하였다. 지내간 한달 동안 성우사에서 일을 할 때 그의 무리한 행동에 붉은 주먹을 몇 번이나 힘있게 쥐였는지 몰랐다. 참아라 참아라 속으로 치미는 분을 참아가며 오늘까지 온 것이다..

“좀더 큰 기회가 있으면―”

이라는 수길군의 위로에 용솟음치는 용기를 주저앉혔다.

그 변원식도 변원식이려니와 그 밑에서 허리를 굽혀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더 우스웠다. 돈과 권위(?)에 주구(走拘)된 그들―. 변원식의 비위를 맞혀가며 일하는 그 자들은 참으로 무골충들이었다. 우리 사회의 좀 난곳을 찾아내려면 반듯이 철하는 그곳을 지적하여 낼 것이다. 얼마의 돈으로 자기의 자신을 팔고 사회를 파는 무리들…… 그래도 그들은 처세술에 능숙하여 자기의 허물을 들어내지 않는다. 지금 당한 일과 지내간 일을 생각하며 걸어가는 사이에 철하는 어느듯 가회동에 있는 명순의 하숙 앞에 이르렀다. 문간에 들어선 철하는 자기의 모양을 한번 훑어 보았다. 땀이 배인 고구라양복 몬지가 케케앉은 백구두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들어 갈까 이렇게 생각하다가

“이게 무슨 주제넘은 생각이냐 없는 사람인 줄 장안이 다 아는데”

이렇게 부르짖고 마당으로 쑥 들어섰다. 명순이 방 덧문은 닫쳐 있었다. 아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아니한 모양이다. 철하는 그대로 돌아가기도 무얼하여 명순이가 없는 줄을 알면서도 방문 앞에 가서

“명순씨!”

하고 불러보았다. 방안에서는 예기한 바와 같이 아무 대답도 없고 부엌으로 통하는 문으로부터 어멈의 머리가 쑥 내미더니

“아이고 나는 또 누구시라구 웨 그렇게 놀러 오시지 않우”

사람좋은 어멈은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면서 나온다. 철하는 빙긋 웃고나서

“어디좀 갔다 왔더니…… 그런데 명순씨는 아직 안왔오”

어멈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도 않고

“아씨가 퍽 기다리시던데요 학교에서 돌아오시기만 하면 박선생이 찾어오지 않었던가고 묻겠지요 어쩌면 그렇게 놀러 오시지 않우”

이렇게 딴말만 한다. 철하는 마음이 조리조리하여

“글쎄 그런 말은 그만하고 묻는 말이나 대답해야지”

어멈은 그제야

“참 곧 오실 터입니다. 오래간만에 오셨으니 방에 들어가 기다리시지요”

철하가 허물없이 명순의 방을 출입하는 것을 잘 하는 어멈은 이렇게 말하였다. 철하도 평시같으면 명순이가 있거나 없거나 찾아오는 즉시로 명순의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나 오래간만에 오게 되니 이상한 감상이 생기며 모든 일을 하기가 서투른것 같다. 어멈의 말에 겨우 용기를 얻은 철하는 구두를 벗고 방으로 들어섰다. 철하는 언제든지 이 방으로 들어올 때면 먼저 벽에 걸린 그림을 치어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그림이 눈에 띠이지 않는다. 철하의 마음은 퍽 섭섭하였다. 아니 섭섭하였다는 것보다도 자기가 명순이를 찾아온 것이 부질없는 일 같다.

철하는 이제까지의 극도의 흥분으로 자기 눈에 착각이나 생기지 않았는가 의심하고 눈을 한번 가다듬어 가지고 치어다보았다. 확실히 없어졌다. 그 그림은 철하가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작품으로 피땀을 흘려가며 그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다른 사람에게는 한푼의 가치도 없을는지는 모르나 철하에게 있어서는 그 한폭의 그림이 자기의 전재산이고 생명과 같이 중히 여기는 그림이었다. 철하의 지내간 짤막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그 그림이 철하에게 있어서 중한 것이라고 아니할까.

그가 사년 동안 현해탄 건너 먼 이역에서 발벗고 맨주먹을 부르쥐고 노동시장에 나아가 갖은 학대와 고로를 당하여가며 피와 땀을 판돈으로 학자를 삼아가며 겨우 졸업을 하게 될 때 그린 그 그림. 그림의 화재도 자기가 친 맛보아본 곳에서 취하였고 ‘점’과 ‘선’ 어느것을 물론하고 자기의 설음을 부어넣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 ‘노동시간의 한가한 틈’ 이것이 그 그림의 화제이었다.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졸업할 때 우수한 성적을 얻게 되고 졸업작품상까지 받게 되었다. 이러한 그림을 자기의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명순이에게 준 거이다. 명순이도 그 그림을 받을 때

“철하씨 나의 몸을 당신께 드리는 대신 이 그림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이 철하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철하와 명순이는 이 방에 마주 앉기만 하면 그 그림을 치어다 보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유일의 낙을 삼았었던 것이다.

“철하씨, 저 세멘통에 걸터앉은 저 사람의 팔과 다리를 칼로 찌른다면 금방 피가 용솟음쳐 나올 듯합니다”

어느 때인가 명순이는 그 그림을 치어다보며 이러한 말을 하였다. 철하는 그 말을 들을 때 속으로 퍽 반갑게 생각하였다.

철하는 전선때 모양으로 우두커니 선대로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명순이 마음도 약하고나 거짓과 웃음을 파는 여자다. 불과 몇 날 동안에 이렇게 변하여질줄이야”

이렇게 생각하니 한시라도 이 자리에 있고 싶지가 않다. 철하는 돌아가려고 하다가

“아니다 어찌 된 일인지 알고나 가자”

이렇게 부르짖고 자리에 힘없이 앉았다. 철하는 명순의 마음을 의심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벽에 걸리었던 그림이 확실히 없어지지 않았는가. 책상에 의지하여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을 지음 밖에서 자진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어멈 냉수 한그릇만―”

하는 고운 목소리가 들린다. 틀림없는 명순이의 목소리다. 어멈은 냉수를 들고 나오더니

“아씨 박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박선생이 오셨다는 바람에 냉수도 받지 않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명순이는 의외의 일인고로 가슴이 서늘하였다. 반가히 맞아줄 줄 알았던 철하가 아무 말도 없이 책상에 의지하여 머리를 숙이고 앉았다. 명순이는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철하의 앞에 가 앉으며

“오래간만이올시다”

인사삼아 말머리를 끄집어 내였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다. 명순이는 자기가 철하를 만나기만 하면 먼저 지내간 노염을 하여 보려고 하였던 것이 뜻밖에 일을 당하여 자기의 마음이 도리어 궁금하였다.

“어디 편치않으십니까”

말없이 앉은 철하의 어깨를 흔들며 이렇게 말하였다. 철하는 간들어진 그 목소리가 퍽 우스웠다. 철하는 성낸 사자 모양으로 고개를 들어 명순이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걸리었던 그림을 어찌 하였습니까”

명순이는 속으로

“아! 이 이가 그림 찾으러 왔고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림말입니까. 당신께로 도로 보내려고 싸 두었습니다”

그 말에는 쌀쌀한 기운이 돌았다. 명순이는 찾으러 오기전에 도로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명순이의 톡 쏘는 말에 철하는 더욱 성이 났다.

“웨 도로 보내려고 했오. 벌써 그 그림이 싫여졌오”

이 말을 들은 명순이는 분하였다. 명순이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림은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가져야 되지요”

말을 맺자 명순이는 장판바닥에 쓰러져 느끼여 운다. 철하는 어찌 된 사정인지 알지 못하였다. 명순이가 어떠한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할까. 철하의 가슴은 그 말에 이상한 충동을 받았다.

“…………”

“명순씨 대답을 좀 하십시오. 사랑하는 여자라니요?”

다정한 목소리로 철하는 명순의 손목을 잡으며 이렇게 달내듯이 말하였다.

“물론이겠지요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길래 여러번 편지를 하여도 회답도 아니 하시고 그렇게 자조 다니시던 이가 발길을 똑끊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청천에 벼락 같은 이 소리를 들은 철하는 무어라고 대답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라 한참 망성거리다가

“여보 명순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그렇게 두 여자를 사랑할만한 여유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지내간 보름동안 찾아오지 못한 것은 없는 놈의 팔자라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노라고 겨를이 없어서 찾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편지 몇 번이나 하셨는지 모르겠읍니다마는 내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지도 십여일이나 됩니다. 오늘 밤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볼 수가 있겠지요”

말끝을 맺는 철하의 입에서는 한숨이 뒤따라 나왔다. 철하는 다시 말을 이어

“내가 성우사로 들어갈 때부터 나의 주견과는 맞지 않어 다른 방면에 취직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이름으로 행세하는 세상이니까 나같은 무명화가는 세상에서 알어주지 않어요. 내가 만일 어떠한 기회와 환경에서 큰 이름을 얻을만한 화가가 된다고 합시다. 그때에는 세상에서 나를 무조건으로 존경할 것이며 내 이름을 사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헛된 세상에서 살어가는 나같은 사람들은 완전이 버림을 받고 있읍니다”

쓸어져 울고 있던 명순이는 어느듯 몸을 일으켜 신도가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듯이 아무 말도 없이 잠잠하니 철하의 말을 듣고 있다가

“글쎄 말씀이 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먹고 살라야 되지 않겠읍니까? 고집만 부리시지 마시고 명년봄 전람회에는 출품을 하시도록 준비를 합시다”

“출품― 옳습니다. 내가 어떠한 그림을 그려서 전람회에 출품을 하여 다행이 입상이 된다고 하면 그때에는 나의 취직의 길도 열리겠지오, 그러나 나같은 사람의 그림은 지금 세상 사람, 아니 그보다도 심사원들의 감상력을 도취시키기에는 너무도 일씁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호기심을 살만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주견을 무시하고 다만 한조각의 ‘’을 얻기 위하여 또 명예를 얻기 위하여 나의 본의가 아니인 향동을 한다는 것은 마치 나의 젊은 몸을 안고 나의 관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철하는 유창한 어조로 강연을 하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아무래도 철하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겠다는듯이 머리를 좌우로 개웃개웃 하다가

“그러면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이러한 썩어가는 세상과 싸워보지요, 나는 나의 화필(畵筆)을 들고 이 세상을 개조하려고 합니다”

“성공할 수 있을가요?”

“노력을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웨 그렇게 갑자기 성이 나셨어요?”

“세상에서 버림을 받고 돌아 오던 길에 명순씨께 와서 하소연이나 하려고 하다가 명순씨에게서 마저 버림을 받은 줄 알어서 하하”

“그렇게 농담만 하시지 마시고 바로 대여주세요”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이 편지회답을 아니하는 것과 찾아오지 않는 것으로 의심을 얻게 되는 것이 섭섭하여서”

“웨 자꾸만 그리십니까 다시는 안그릴게요---”

“없는 놈의 아내가 되려면 마음이 강하여야---”

“아이구 속상해라 사람을 자꾸 나무래기만 하시니”

하며 명순이는 철하의 손을 꼬집었다.

철하는 한숨을 한번 쉬고나서

“사실 내가 오늘 마음이 흥분이 된 것은 성우사 사장과 싸워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 학교 교장 변원식이와 싸웠단 말이예요?”

“맞었읍니다”

“변교장 말이 났으니 말이지요 우리 교원들 사이에도 평판이 많습니다. 요사이 이상한 소문이 돌아 다닙니다. 우리 학교 교원으로 같이 있는 강경희씨와 비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강경희씨라니 저 강수길씨의 누이동생 말이지요?”

“맞었읍니다. 아주 얌전하던 아이가 그렇게 되었읍니다”

“황금 앞에서는 철석이라도 녹아 내리는 것이니”

“저도 그 소문이 들리기 전에 퍽 이상하게 생각하였읍니다. 적은 돈을 받는 몸으로 신분에 넘치는 사치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니까요”

“젊은 여자의 마음은 모르는 것입니다”

철하는 명순이게 이렇게 경계 비슷이 말하였다. 명순이는 그 말을 알어 들었는지 못 알어 들었는지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이 앉았다가

“변교장은 참으로 추근추근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예요. 올 봄 내가 처음 그 학교 교원으로 들어가게 될 때 사람을 보고 별 추근추근 한 짓을 다 하겠지요 그럴 때마다 나는 뚝뚝 잡아 떼었더니 그 후부터는 그런 행동을 못하더군요”

“사회는 확실히 고약하지요 그 따위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변교장과 싸웠으면 ‘성우사’에서도 나오섰겠읍니다 그려”

“그까짓 썩어가는 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있겠읍니까”

“그러시면 이후 부터는 어떻게 살어가실 작정입니까”

“사라갈 길이 얼마든지 있겠지요 나의 누이동생도 시집갈 나이가 되었으니 복섬이가 시집만 가면 나의 몸도 좀 자유롭게 되겠지요”

“참 복섬씨가 지금도 공장에 다니십니까?”

“그 애가 공장을 다니지 않는다면 무엇을 먹고 살어가겠읍니까 그런데 그 ‘호일’ 고무공장도 엄청 나지요, 아침 여섯시 반부터 오후 여섯시 반까지 일을 시키는데 일급이 겨우 오십전이니 참 기가 막힐 일이지요”

두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전기불이 들어왔다. 철하는 언제든지 명순이를 만나기만 하면 사회적 교양을 시키기에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명순이는 본래 허영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 지내는동안 명순이의 마음은 차차 변하여 갔다. 그러나 철하는 그것으로 안심을 아니하였다. 명순이의 용모가 아름다운것만치 세상 사나이들의 마수에 걸리기 쉬울 것이라고 늘 걱정하였다.

“철하씨 그러지 않어도 조용한 기회가 있으면 말씀을 올리려고 하였지만 고향에 계신 우리 어머니 말씀입니다. 늘 편지가 옵니다. 하기방학에 내려오면 함께 서울로 올라오시겠다고 하십니다.”

“물론 모셔오서야 되지요. 소년 과부로 당신을 애써 공부를 시키시었으니 고향에서 누구를 믿고 계시겠읍니까? 두 말 할것 없이 하기방학에 귀향하시게 되면 모셔 와야 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읍니다마는 그 적은 월급으로 두 식구가 살어 나아갈 수가 있을는지요”

“그것만 가지면 넉넉합니다. 세 식구래도 지낼수 있을걸요”

철하는 강경하게 권하였다. 그 강경하게 권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자식으로 마땅히 할 일이란 것과, 또 한가지는 만일 어머니와 함께 있게 되면 명순의 신변에 대하여 안심이 될 것, 이 두 가지 때문에 명령하다 시픠 권하였다.

어멈이 저녁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철하는 명순이가 부득부득 만류하는 말도 듣지 않고

“자! 그러면 이만 실례하겠읍니다. 또 놀러 오지요”

명순이와 작별의 인사를 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