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환
밤 열두 시가 훨씬 넘은 때이다.
창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낄 여지도 없이 발에 채찍질을 하여 두 주먹을 부르쥐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들어선 그는 놓이는 마음보다 졸이는 마음이 더하였다. 허리와 등 그리고 목까지 들썩거린다. 땀은 비오듯 맺혀 떨어진다. 손과 다리는 푸들푸들 떤다. 숨은 하늘에 닿았다.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 깨인 창수의 아내는 그 쿵쿵거리는 소리가 ‘찌궁’하는 대문 소리와 같이 멎고 아무 인적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 어 등잔에 불을 켜놓고 의복을 추려 입었다.
‘쿵’하는 소리가 토방 위에서 나 자문고리 소리와 같이 문이 열리고 창수가 들어선다.
창수는 마치 도깨비에게 홀리운 사람 같았다. 전 같으면 점잖게 곤두기침을 서너 번 하고 들어설 그가 오늘 저녁에는 웬일인지 인적도 없이 들어와서 둘레둘레 사방을 살피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다.
어쩐 셈인지는 모르나 무슨 일은 단단히 있는 사람이다. 웬 입성은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 모양으로 땀에 쥐어짜고 얼굴에서는 김이 물물난다. 한참 만에 겨우 정신을 차린 듯이 한숨 한 번을 길게 쉬고 길머리에 그대로 주저 앉는다.
아내는 쿵쿵거리는 소리에 울렁거리는 가슴은 다 까라지고 이제는 남편의 이상한 태도에 대신하였다. 그리고 아까 쿵쿵거리던 소리가 남편의 발자국 소린 줄은 알게 되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아내는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멍하니 앉아있는 남편을 한참 바라보다가 ‘왜 그리우 무슨 일이 났소?” 하고 물었다.
“가 가마…….”
“가 가마……라니요 왜 그래요?” 하고 재차 묻는 아내의 목소리는 떨렸다.
“글쎄, 가 가마…….”
“왜 말을 못 하시우. 아이구 무슨 일이야…….” 하고 다시 힘있게 재차 묻는 아내의 눈에는 안개같이 뽀얀 눈물이 어리였다. 그리고 쏟아졌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내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줄이어 나왔다.
아내가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흐르는 눈물을 치마고름으로 문지르며 부엌으로 나가 커다란 자배기에 냉수를 는짓는짓하게 길어가지고 들어와 손 발을 씻어 주었다. 이것은 여편네들이 흔히 하는 까무러친 데는 유일의 양 약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편을 끌어다 아랫목에 눕히고 얇지 않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내는 남편의 손과 발을 주무르며 밤이 새도록 지켜앉아서 동정을 살피었다. 그리나 동정을 알 수 없었다. 그 후에 남편은 이어 잠이 들기 때문에…….
그 이튿날 아침이다. 장밋빛 해가 그리 훨씬을 나오지 못한 때이다. 그때 에 “창수! 창수!” 하고 대문 앞에서 창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전에 없이 이 이른 아침에 누가 찾을까. 어제 저녁에 기어이 무슨 일이 났구나.” 하고 아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닫이를 열고 “누구요?” 하고 물었다.
“창수 계시나요?”
“네-계시긴 합니다만은 갑자기 두통으로 꼼짝 못하고 누웠습니다. 누군가요?”
“이 아랫동리에 사는 김홍득(金弘得)이라는 사람인데요, 긴급히 좀 볼일이 있어서요. 정 꼼짝 못하시거든 저녁때 찾어오마고 말씀드려 주시오. 그럼 갑니다.”
“네- 그러리다. 안녕히 내려가시우.” 하고 아내는 그 사람을 보냈다.
창수는 아직도 이불 속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어젯밤 증세는 멎었다.
멀거니 눈을 뜨고 지금 김홍득이가 찾아와서 하던 이야기기도 다 들었다.
그리나 속으로 무엇이 간지러운 듯이 조마조마하다는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 놓고 눈을 가슴츠레하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홍득의 말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치가 떨릴 터인데 이 아침에 찾아까지 와서 긴급한 볼일이 있다고 함에는 창수의 마음이 아니 간지러울 수가 없다.
창수는 속으로 ‘야 - 큰일이다. 어떻게 난 줄을 알까?’ 하는 생각과 아울러 두근거리는 가슴은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또 ‘저녁때 찾아온다 하였다. 아! 찾아오면 어떻게 말을 하여야 할까. 단뎡 난 줄은 아는 이상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부정할 수도 없 는 것이고 아! 어쩌면 좋단 말이냐? 큰일이다. 그러나 나를 잡지는 못하였으니 아니라고 그냥 우겨볼까? 그러나 또 그것이 탄로가 되면 그때에는 진작 자백을 하고 지나던 것만도 못할 것이요 아! 모르겠다. 되는 대로 대답을 하자. 하다가 탄로가 되면 되고. 그러나 우겨볼 일이다. 그렇다. 될 수 있는 대로는 우기리라.’ 하고 그는 한숨 한번을 후 - 내쉬고 무어라고 한참 생각하더니 ‘뛰는 것도 좋다. 그가 저녁에 찾아오기 전 어디로 몸을 감추었다가 형님을 찾아 봉천으로 뛰리라. 그렇다. 그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아 내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데리고 가자니 여비가 없고 만일 데리고 간다 하면 그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형님과 같이 농사를 짓자. 그러나 농사 바탕은 있을까. 아니다, 아니다. 그러면 이 방성 일판에서는 나를 가지고 목이 불거지도록 욕을 하리라. 야성(野性)을 가진 개 같은 놈이라고. 아니 아 니 내가 왜 어젯밤에 그곳엘 갔을까. 유부녀 강간, 아! 그것은 차마 못할 짓이다’라고 순서 없이 또다시 속으로 중얼거리며 초조하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헝겊 지갑에서 장수연(長壽煙)을 꺼내어 곰방대에 붙여 물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무슨 묘계를 또다시 생각하는 모양이다.
창수의 일어나는 꼴을 본 그 아내는 잃었던 남편을 찾은 듯한 어떻다고 할 수 없는 반가움에 남편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이제 좀 나신 게외다. 어젯밤 일을 기억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창수는 귀찮다는 듯이 턱을 가슴에 붙이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젯밤 일이란 무엇이야?”
“그럼, 어젯밤에 정신을 도무지 몰랐습니다그려. 그런데 들으셨겠지만은 아침에 김홍득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으니 무슨 만날 일이 계시우? 무슨 긴급 한 일인지 매우 긴급한 일이라 하면서 저녁때 오겠다고 합니다그려.”
“일이야 무슨 일은 없어. 아니 그런데 마누라 우리 봉천 가서 살아보지 않을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어두운데 홍두깨도 분수가 있지 웬 뚱딴지로 봉천은 무어요?”
“글쎄, 이 말이 어두운데 홍두깨 푼수도 되네만은 여기서야 살 수가 있 어야지. 연년이 흉년에 지금 빚이 얼마인지 자네 아나? 삼천 냥이야! 삼천 냥(三白圓).” 하고 아내를 노려보더니 다시 말끝을 이어,
“내년까지 흉년이 들면 거랭이밖에 그래서 더할 것이 있을 줄 아나?”
하고 급하다는 듯이 아내를 쳐다본다.
“글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곳을 어떻게 떠나요?”
“떠나면 떠나지 어떻게도 있나?”
창수의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새삼스럽게 무엇을 생각한 듯이,
“그럼 김홍득이라는 사람하고 봉천 가자는 약속이 있었습니다그려. 옳지 그런 게야…….”
창수는 김홍득이라는 말을 듣고는 아무 말이 없이 또다시 턱을 가슴에 대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벌떡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나서는 그의 발부리는 무슨 결심이 있는 듯 힘이 있어 보이었다.
저녁때라는 때는 되었다. 문전에서는 아침 모양으로 “창수! 창수!” 하고 또 부르는 소리가 난다. 창수의 아내는,
“또 왔구나! 김홍득이가.” 하고 부엌에서 가시를 닦다가 물 묻은 두 손을 행주치마 앞자락에 문지르며 벽문턱을 나서 고개를 대문으로 갸우듬하게 돌리고
“지금 곧 나가셨습니다.”
무어라고 입안 말로 볼 부은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어디로요?”
“어디론지 말하지 않고 갔어요.”
아! 그놈 놓쳤구나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먼산을 바라보고 한참 주저하더니 돌아서 나간다. 나가는 홍득의 발에는 거름풀이 적어졌다.
어느덧 해는 서산 너머로 기어들고 온 누리는 붉으레한 황혼의 품속에 안 기어 버렸다.
밥을 지어 놓은 창수의 아내는 들어올까 들어올까 하고 기다리다 못하여 가까운데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치 어두워질 때까지 대문 지두리에 비켜서서 남편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밤에도 기다렸다. 그 이튿날도 기다렸다. 한 달 두 달이 되도록 창수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봉천을 갔나 하고 조카에게로 편지까지 하여 보았으나 회답이라고 오는 것은 모두 재미없는 회답이었다.
창수가 떠난 지 사흘 만에 그 동리에는 이러한 소문이 퍼졌다. 홍득의 아내하고 창수하고 어디로 도망을 하였다고…….
이 일이 난 후에 홍득은 아내를 찾으려고도 아니하고 “세상이란 이렇구나.” 하고 픽 웃었다.
홍득의 아내와 창수의 그림자가 사라진 지 석 달 만에 이 동리에는 이러한 소문이 또 들리었다. 창수의 아내하고 홍득이하고 한날 한시에 없어졌다고…….
그러나 그 후에는 그들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껏 그들의 소식은 막연하다.
(宣川 [선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