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피서의 성격
그 어느 해 여름 피서를 한다고 이삼 인의 벗으로 어울려 옥호동(玉壺洞) 약수(藥水)를 찾아갔던 일이 있다. 산촌의 약수치고는 설비나 경치나가 다 무던했다. 이 약수의 성능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바 없었으나 물이 차기로는 빙수에 질 바가 없었다. 돌 틈 새로 용솟음쳐 흐르는 물을 배지로 받으면 물 위에 보얗게 어리는 안개가 보기만 하여도 땀방울이 가더든다. 게다가 심산 깊숙이서 시잉싱 줄기차게 숲 사이를 헤치고 쏟아져 내려오는 산바람이 끊임없이 몸을 어루만져 주어 셔츠 바람엔 한기까지 느낄 정도다. 다만 피서지로 결점인 것은 쭉 벌거벗고 진탕치듯 헤엄을 쳐 볼 그러한 물만이 없는 것뿐이지 시원하고 조용한 편으로 송도원(松濤園)이나 그런 것보다 오히려 좋을는지 몰랐다.
그러나 벗들의 비위엔 이게 다 틀렸다. 그날 밤 약수터 주위를 일순하고 난 벗들은,
“가세. 싱거워!”
하고 날이 밝으면 덥기 전에 일찌감치 떠나야겠다고 풀어 놓았던 짐을 도로 챙기며 수선이었다. 그래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술이 있어? 계집이 있어? 병쟁이 아닌 담에야 무슨 맛에 여기서 여름을 나!”
하는 것이 그들의 똑같은 불평이었다.
피서가 목적이긴 하면서도 부수되는 그 어떤 자극적인 향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시원한 물이요, 바람이라고 하더라도 주색이 따르지 않는 물과 바람은 시원하질 않았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피서를 한다는 그 피서는 피서를 위한 한낱 배경에 불과한 것이고 기실 피서는 주색에 있었다고 아니 할 수 없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자에겐 이 약수터가 훌륭한 피서지이었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에겐 이렇게도 피서가 안 되는 것이었다. 나도 일찍이 그 어느 한 때에는 삐루 한 타쯤은 사양치 않으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거니와 만일 내가 술을 제대로 계속하는 그러한 건강한 몸이었더라면 이 약수터가 그들과 같이 그렇게 피서지로서의 대상이 되어지지 않았을 것일까. 술과는 지금토록 인연이 멀게 지나는 나는 피서의 성격에 자못 그 파악이 어려웠다.
내 술과는 인연을 멀리하되 이미 맛은 들였던 술이라 술맛은 알고 있는 처지다. 지금도 가다가는 가끔 조끼라도 한 잔……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는 때가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심정이기는 해도 이만 정도로는 술의 천리가 밑바닥까지 통하지 못한 때문일까. 그렇다면 술을 다시 계속할 만한 그러한 건강이 회복되지 못하는 한 나는 인생의 즐거운 취미 하나는 영원히 맛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셈이 된다. 주색 없이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이 옥호동 약수 취미는 과연 어디 있는 것일까. 유색유주(有色有酒) 속에서 느끼는 취미보다 무색무주(無色無酒) 속에서 느끼는 취미가 좀더 유현한 취미가 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즘 나는 친구들의 우리 어디 피서나 가 볼까 하는 그런 의견이 있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피서의 성격에 다시금 고요히 마음을 깃들여 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