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사람에겐 봄과 가을처럼 서러운 시절이 없다.

간신히 집 한 칸을 얻어 들어 밑을 붙이고 삼동을 나게 되면 집이 팔렸으니 나가라, 그리하여 복덕방 순례를 또 하여 가며“가족이 간단하지요? 어린애 없지요? 단 내외분이어야 놓는다는 방은 있습니다.”하는 따위의 불유쾌한 이야기를 들어 가며 아이들이 있어도 없다 속이고 또 간신히 방 한 칸을 얻어 들고 여름을 나면 집이 팔렸으니 나가라 명령이다.

서울서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태반이 집으로 먹고 사는 장사치들이다.

그렇지 아니한 사람은 방의 여유가 있어도 세를 늘 놓지 아니하고, 이런 축들만이 세를 놓는 것이므로 이런 데밖에 얻어 들 수가 없는데, 집은 늘 내놓아 가지고 있다가 단돈 만원이라도 붙게 되면 팔아서 바꾸는 것이니, 세 집에 들어 사는 무리들은 이 가을과 봄이 돌아오기만 하면 이사를 아니 하게 되지 못한다.

나도 이 가을에 집을 또 얻어야 하는 사람의 하나다. 그러나 자꾸만 올라가는 집값이라, 작년 가을에 얻어 들었던 그 세전을 받아 가지고는 도저히 그만한 집을 얻어 들 수가 없다. 월여를 두고 장안을 돌아보았으나 받은 세전에 맞는 집은 없다. 작년 가을보다 거의 배가 올랐다. 해방 후 단편집을 하나 내 가지고 그 인세로 4천 원짜리 전세를 한 2년 살다 보니 그 돈 4천 원으로는 방 한 칸 월세도 되지 않아 쓴 입을 다시고 작년 가을에 단편집 판권을 또 팔아 다시 세전을 마련했던 그 본전이 금년에 와서는 이렇게 또 모자란다.

집을 쓰고야 살게 마련된 것이 사람일진댄 사람 하나에 집 하나씩은 쳐져서 세상에 내보낼 것이지, 조물주의 이 무슨 모순이냐. 산으로 기어올라 번지 없는 집에라도 살아 보자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곤 하나, 그러나 그 물을 어떻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연일연시로 끌어 올려다 먹는단 말인가. 마흔두 층대를 올라가는 냉동(冷洞) 꼭대기에서도 살아 보았거니와, 물통 하나 자유로 들 수 없는 백면서생으로선 물 없는 집에 사는 도리가 없었다. 딱한 사정이다.

이것이 허구 많은 학문 가운데서 하필 문학을 골라잡았다는 벌일까. 자래(自來)로 글과 친한 이, 다 가난하였다거니와, 어떻게 해야 돈을 모을까 하고 남들은 눈이 빨개 돌아가는데, 이건, 자나깨나 발부리만 들여다보고 앉아서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가 있을까 이것만 생각하니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이북서 넘어온 피난민 한 사람이 브로커질을 해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잡은 것을 보고 그 주위의 사람들이 슬근히 구미들이 동해서,

“그 배 언제 또 떠나나?”

“자네도 또 가나? 이번엔 나두 한몫 넣어 주게.”

하고들 떠들 때 나는 나도 저렇게 한번 브로커질을 해 보리란 생각보다 대뜸 머리에 떠오른다는 욕심이, 이 광경을 어느 소설의 한 장면으로 집어 넣었으면 하는 생각부터 하기에 나는 나대로 만족한 나이었던 것이니 이러다가는 청내 가야 방 한 칸 마련해 놓고 살아 볼 것 같지 못하다.

서울서 아주 살림을 하기로 작정하고 내 권솔을 다 몰고 올라와 남의 집 사랑방 한 칸을 얻어 들었다가 한 달이 채 못 돼서 집이 팔렸노라 앞자리를 치우라고 해서 방 한 칸을 마련하려 두 달 석 달을 돌아가다가 그 해 겨울도 깊어 섣달 보름날에 이르러서야 겨우 냉동 꼭대기에다 어느 친구의 집 신세를 질 수 있게 됨으로 한숨을 쉬고 나서는 그적부터 오막살이라도 집은 한 채 잡고 살아야겠다고 해마다 별러 오는 게 곧이곧대로 오늘까지 이르러 10여 년이다. 집 한 칸 없으면서도 해방통에 남 다 드는 적산을 치사하다 혼자 안 들고 뻗댄 결과는 그래 무엇이냐. 겨울은 버적버적 닥쳐오는 하는 수가 없어 적산이라도 하나 얻어 들려, 용산 방면이라, 상도동이라, 이즘은 연일 섰다시피 뒤가 타 돌아다녀 보다 그 엄청난 권리금이 내 재산과 상대되는 집이라곤 고를 길이 없다.

하기야 지난날도 제 집 없이 10여 년을 살아왔거니, 앞날이라고 못 살아갈 바 있으랴, 집을 구하다가는 지치어 이런 자위라도 하여는 보나 물가변동이 이렇게도 심하고 보면 한양같이 제 발부리나 들여다보고, 이러한 글줄로 원고용지 구멍이나 메워야 되는 직업으로선 한 칸의 셋방이라도 얻어질 것 같지 못하다. 그러니 집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젠 깨끗이 잊어버리고 삶이, 차라리 한 근심만은 덜어 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