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는 것처럼 곤란한 게 없다.

무슨 모양이라든가, 허우대가 좋은 그리고 굉장한 집을 택하는 데서가 아니라 실용적인 것을 찾자니 오히려 그런 게 그리 어렵다. 달포를 두고 골라 보았어도 이렇다 눈에 드는 집이 나서질 않는다. 대가는 얼마든지 무작정하고 골라 보았으면 혹 있었을는지 몰라도 내가 견준 칸수의 집으로선 근 백채를 보아 왔어도 모두 그것이 그것 같은 것들이었다.

본시 내가 있던 집을 판 것도 그 때문이었거니와 사람의 거처를 위하여 지었다는 것보다는 한 개의 상품으로 그저 돈만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정도의 그러한 집들이었다.

쓸모라면 그건 살림살이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로되 통풍채광만은 건강에 절대한 조건이므로 주택에는 으레 그것이 따라야 할 요건이요, 하루라도 결해서는 아니 될 물이 또한 그에 못지않은 요건의 하나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요구한다는 집도 첫째 이 두 조건의 충실에 있었다.

그러나 통풍과 채광이라는 것은 전연 고려치도 않고 문과 주위는 어찌 되었든 그저 그 일정한 건평 위에 어떻게 하면 다만 한 칸이라도 방을 더 세워 칸수를 늘려 볼까 하는 설계에서 지은 집이라는 것이 보는 집마다 드러나다.

한 주춧돌 위에다 기둥 둘을 세우고 옆집 벽이 내 집 벽이요 내 집 벽이 옆집 벽이 되는 집과 집이 맞붙어 놓은 집까지 있다. 그러니 남의 집과 남의 집 사이라 뒷창을 내는 수가 없어 창이라고는 다만 출입하는 정면의 그 소위 출입문이라는 것 하나밖에는 내어 놓지를 않았다. 이러한 칸수 배치에 어떻게 우연히 볕이 들게 되는 방이 혹간 한방씩 있게 되고는 일년 열두 달 가야 하루도 볕을 못 보게들 되었다.

그리고 기둥은 제대로 세우고 지었다고 하는 집들도 그 기둥과 기둥 사이가 불과 일 척 미만이어서 장님 눈 뜨나 감으나 격으로 뒷창을 내었대야 역시 눈흘림이요 볕 한 줄기 바람 한 점 들어올 틈이 없다. 게다가 추녀 끝에는 낙수물받이의 차양을 달아 놓아서 하늘조차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완전하면 볕은 못 들어와도 위험성은 없을 것이, 이건 좌우 두 집의 차양을 그 한복판에다가 달아 놓고 두 집의 낙숫물을 한 곳으로 받아내게 만들었으니 함석의 이음을 땐 납의 힘이 충분히 그 두 집 물의 중량을 받아낼 능력이 모자라서 차양은 이은 짬마다 떨어져 낙숫물이 그 뒷벽과 기둥으로 흘러내려 뒷창을 열고 살피어 보면 뒷벽이 아니 무너진 집이 별로 없고 뒷벽이 무너진 집이면 개개(皆皆) 기둥은 썩었다. 비는 맞고 볕은 못 보고 썩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뒤가 저렇게 썩었으니 방안에도 물론 이상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방안을 또 기웃해 보면 곰팡내가 코를 찌른다.

정면으로 보면 아직 칠도 노랗게 그대로 있는 멀쩡한 집들이 이 모양이기에 대체 몇 해나 되었기에 하고 마루로 올라서 용마루의 건축 연대를 살피어 보면 다들 불과 5, 6년 안짝에 지은 집들이다. 그런데도 수명은 다들 앞으로 몇 해가 안 갈 것 같다.

그래도 이러한 집에 들어서게 되면 남의 집과 벽이 맞붙질 않았다고 복덕방의 기세는 자못 높은 것이었다.

“이 집은 뒤가 돌았습니다. 아주 시원하죠. 겨울이면 장작도 그 뒤에 한 수레는 들어갑니다.”

아닌 게 아니라 벽이 맞붙어 옆집 변소가 내 집 안방 벽이 되어 있는 이런 집보다는 아니 나을 수가 없긴 없다.

땅을 아껴도 분수가 있는 것이지 이렇게도 거처 본위로 되어 있지 않는 집이 들어서는 집마다 거의 다인 것을 보고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물의 설비가 완전한 집도 별로 없었다. 이러한 유의 집들이면 수도는 으레 없고, 대개가 우물이 아니면 펌프인데 우물이 있다는 집도 위명(爲名)만 우물이지 물들이 여간 바르지 않다. 한 자나 두 자쯤만 더 깊이 파서도 그렇지는 않을 것을 물빛만 보이면 남의 눈을 가릴 수가 있다고 노깡통만을 집어넣어 놓았다. 그리고 펌프라는 것이 또 우습다. 우물도 파지 않고 그대로 땅 위에다가 파이프를 내려 꽂고는 그 옆에다가 하수도 구멍을 내어 놓았다. 그러니 그 펌프물이 완전할 리가 없다. 밑바닥에 저수(貯水)가 없으니 불과 몇 바케쓰에 수량이 끊이고 말 뿐 아니라, 땅 밑바닥을 빨아올리기 때문에 모래가 언제나 그냥 묻어 올라온다.

그러나 그것도 몇 해만 지나면 하수도의 노깡에 고장이 생겨서 영락없이 그 하수도 물이 우물로 흘러들어 그나마 물이 더럽기 짝이 없이 된다. 그래서 이걸 폐정(廢井)으로 버려두고 물 가난을 보는 집은 오히려 안심이나 되거니와 이런 것을 모르고 그냥 그 물을 음료수로 전과 다름없이 쓰고 있는 집도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 실로 보는 바 딱도 한 사정이었다.

그러나 복덕방은 그저 칭찬이다.

“우물이나 펌프가 사실은 수돗물보다 낫습니다. 여름에 차고 겨울엔 덥고…… 또 물맛이나 좀 좋습니까?”

복덕방의 말을 신청(信聽)하여서가 아니라, 마땅한 집이 없으니 알고도 사는 수가 없지 않아 있게 된다.

그러니 보건 조건(保健條件)이 불비한 이런 집에 마음이 가라앉을 리 없다. 기회를 보아서는 다시 팔려고들 한다.

왜들 자리를 한 곳에 못 붙이고 비용을 들여 가며 집을 싸지고 떠돌아다니는 것일까 하였더니 이제 이러한 것을 알고 보건대 대부분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볕도 못 보는 지옥 같은 방안에서 기거를 하며 이 불결한 구정물을 먹고 그 집에 들어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가족들의 건강이 아니 근심 될 수 없을 게다. 사람의 일생에 있어 건강에 으뜸가는 복이 없다고 하거늘, 건강이란 조금도 고려치 않고 지은 집들.

이 집들의 건축주들도 응당 제 손으로 제 집들을 지었으려니 하면 그리하여 그들도 다들 이러한 집들을 쓰고 이러한 방에 들어앉아 이러한 물을 먹고 들 살까 하는 생각이 들며 그들의 살림집들이 은근히 한번씩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