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자집에서다.

십칠팔 세의 고학생이 책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더니, 문 안에서부터 차례로 손님 앞에 마다 걸음을 세우고는 모자를 벗고 그리고 예를 하고 책을 쭉 펴 놓고 재학증을 내보이며 판에 박은 듯이

“고학생입니다. 한 권만 팔아 주세요.”

하고 애원을 한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응하지 않는다. 나도 응하지 않았다. 볼 만한 책이 없었다. 볼 것 없는 책을 돈 주고 사서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필요 없으니 딴 데 가 보시오.”

나 역시 남과 같은 말로 응대하는 아량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입맛이 쓴 듯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떡 하고 물러난 학생은 순차(順次)인 내 옆 좌석으로 돌아선다.

거기엔 스물한둘 가량의 양장한 여인이 열두세 살쯤의 자기 동생인 듯한 그렇게밖에 안 보이는 어린 여자와 마주앉아 아이스크림에다가 생과자를 찍어 먹고 있었다.

“책이오?”

하고 그 여인은 학생이 펼쳐 놓은 책은 보려고도 아니하고 고개를 들어 실내를 한 바퀴 쭉 둘러 살피더니,

“여기 앉아요.”

하고, 자기 뒤 빈 좌석에 그 학생을 앉히고 불쑥 일어서 과자 열대로 나가더니 먼저 돈을 치르고 아이스크림 한 그릇에, 구리만두 한 개를 손수 가져다 학생 앞에 놓으며,

“다니기 더울 텐데 좀 요기나 해서 가요, 응?”

앉으라니 멋모르고 앉았다가 이 의외의 환대에 놀라는 듯이 학생은 닁큼 일어서며,

“아니에요!”

“어서 앉아요. 앉아서 먹고 책은 다른 데 가서 팔면 되잖아요.”

좌석의 눈도 둥그래졌다. 십여 인 손님이 하나같이 거절해 오는 이 고학생을 이 젊은 여인이 유독 이렇게도 동정을 베푸는 것이다.

내 시선도 그리로 쏠렸다. 이 여인이 고학생을 위한 지극히 범속한 용단에 나도 아니 놀랄 수 없었던 것이다.

구걸하는 거지의 애원에 이것밖에 가진 것이 없다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투르게네프의 그것과는 이건 다르다. 학생은 책을 팔아 주기 원했다. 그리하여 거기서 버는 할인으로 학비를 얻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 줄을 그 여인도 응당 모를 것이 아니련만, 책을 팔아 주지 아니하고 아이스크림을 대접하는 환대를 베푼다. 책도 비싼 것이 아니었다. 대개가 7,80원짜리 만화요, 가장 고가인 듯하게 보이는 것이 120원짜리 『유관순전』이었다. 아이스크림 한 잔에 80원, 구리만두 한 개에 30원. 그 값이 110원이면 80원짜리 만화 한 권을 팔아 주는 것이 도리어 이로웠다. 학생의원은 원대로 들어주면서도 이로운 책은 아니 팔아 주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구태여 아이스크림을 사서 대접하는 이 여인의 심리는 과연 어디 있었던 것일까. 사서 볼 만한 책이 없으면 아이스크림 대신에 그만한 대가를 현금으로 주는 편이 이 학생으로선 보다 더 긴요할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건 결국 극 고학생을 위한 동정에서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향락을 만족시키기 위한 동정에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밥이 없어 허덕이는 친구에게 단 돈 10원의 청은 무가내하(無可奈何)로 거역하면서도 담배 한 대 술 한 잔은 싫대도 부득부득 권하는 속세인정(俗世人情)에 조금인들 다를 것이 무엇이랴. 동정이라는 것이 흔히 상대방을 위해서보다 자기 자신의 명예나 자존심을 위해서 베풀어지듯이 이 여인의 동정도 이런 예에서 조금도 벗어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 학생이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먹기는 먹으면서도 그 대신에 이것이 현금이었다면 하고 마음 아쉽게 여겼다면 이 여인의 모처럼의 동정은 아무런 의의도 지녀진 것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그 여인이 다시 한 번 더 쳐다보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