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書畵)를 좋아하는 어떤 벗이 하루는 어느 골동점에서 추사(秋史)의 초서(草書) 병풍서(屛風書) 여덟 폭(幅)을 샀다.

“나 오늘 좋은 병풍서 한 틀 샀네. 돌아다니면 있긴 있군!”

그 벗은 추사(秋史)의 병풍서를 구(求)하게 된 것이 자못 만족한 모양이다.

“돈 많이 주었겠군. 추사의 것이면…….”

“아아니 그리 비싸지도 않아. 글쎄 그게 단 오십 원이라니깐 그래.”

추사의 병풍서 한 틀에 오십 원이란 말은 아무리 헐하게 샀다고 하더라도 당치않게 헐한 값 같으므로,

“그러면 추사의 것이 아닐 테지, 속지 않았나? 추사의 것이라면 한 폭에도 오십 원은 더 받아먹겠네.”

하고 의심쩍게 말을 했더니,

“괜히 추사의 글씨가 아니겠군. 바로 병풍을 붙였다가 뗀 것인데 그 글씨 폭은 지지리 지지리 더럽혀지고, 가장자리로 돌아가면서 붙였던 눈썹지 자리만 하얀 자국이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건 옛날 게 분명한 게야.”

한다.

이 소리에 나는 더욱이 그 글씨가 의심스러웠다.

“이즘 고물인 것처럼 그런 가공들을 해서 많이들 팔아먹는다는데 그 눈썹지 가장자리가 햐얗다는 것과 그 오십 원이란 헐한 값과를 미루어 보면 글쎄 그게 추사 친필이라고……?”

“아아니! 그렇게만 자꾸 의심할 게 아니라니깐. 내게 추사의 필첩(筆帖) 이 있는데 거기에 찍힌 낙관과 이 병풍서의 것과 조금도 틀림이 없거든.”

하고, 그는 틀림없는 추사의 친필로 단정을 하고 조금도 의심하려고 않는다.

그러니 나도 확실히는 모르면서 아니라고 그냥 우길 수는 없어서,

“그럼 글씨 전문가에게 시원스럽게 한번 감정을 받아 보지?”

하고, 나도 사실은 그 진부(眞否)가 궁금해서 이런 제의를 했더니,

“그야 어렵지 않지. 그럼 내 가서 감정을 한번 받아 보겠네.”

하면서 그는 현재 생존해 있는 모모씨의 글씨도 여러 폭 샀던 것을 추사의 것과 아울러 다 싸가지고 어느 서도 대가를 찾아가서 감정을 받기로 했다.

내 의심이 틀림없이 맞았다.

추사의 것뿐 아니라 현 생존자의 것들까지 진짜 친필은 하나도 없다고 그 대가는 말하더란다.

그러면서 추사의 글씨를 가지고 하는 말이, 추사의 글씨를 방불케 하는 것으로 솜씨는 도리어 추사보다 능숙한 데가 있어 보이나, 도장이 추사의 것이 아니니,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란 말을 하더란다.

그래서 이 글씨가 추사의 글씨보다 낫다면 추사 이상의 가치를 인정해 줘야 할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어찌 글씨의 능, 불능으로 가치가 있게 됩니까? 이왕 얻은 그 필자의 명성 여하로 글씨의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지요. 낙관이 추사의 진짜 낙관이어야 값이 나갑니다.”

하고, 추사의 글씨보다 도리어 나은 점이 있다고는 하면서도 그 대가는 그 글씨를 조금도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이 더 더듬어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밀어 던지더란다.

하필 글씨에 있어서뿐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서 이렇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새로이 잘한다는 것이 이미 얻어 가지고 있는 그 명성을 누르기 힘들다. 확실히 그 가치의 판단에 명석한 두뇌도 그 명성 앞에서는 눈을 감는 것이 예의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자라난 그 명성의 그늘 밑에선 흔히 새싹이 마음대로 오력(五力)을 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예를 보아도 오거니와, 이 가짜 추사가 추사의 글씨보다 자기의 것이 분명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러면서도 추사의 이름으로 글씨를 써서 팔아먹지 않아서는 안 된다면 그 창조적 고민이 얼마나 클 것일까? 생각을 하며,

“추사의 글씨보다 능숙하다니 잘 보관해 두게. 그 사람이 출세하면 그것도 만 냥짜리는 될 테니.”

하고, 웃었더니

“보관이 다 뭐야! 거 참 흉측한 노릇이로군!”

하고 그 벗은 그 글씨 뭉치를 아무런 미련도 없이 다시 보자기에 싸더니 골동품점으로 가지고 나가서 이조자기의 화병 한 개로 바꾸어 왔다.

그 벗 역시 그 추사의 글씨에 혹해서 추사의 글씨를 사려고 하였던 것이 아니라, 그 글씨 필자의 명성, 다시 말하면 추사의 명성을 사려고 하였던 한 사람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