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삼국사기/권44/이사부
원문
편집異斯夫【或云苔宗】, 姓金氏, 奈勿王四世孫, 智度路王時, 爲沿邊官, 襲居道權謀, 以馬戱誤加耶【或云加羅】國取之, 至十三年壬辰, 爲阿[何]瑟羅州軍主, 謀幷于山國, 謂其國人愚悍, 難以威降,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 分載戰舡, 抵其國海岸, 詐告曰, 汝若不服, 則放此猛獸踏殺之, 其人恐懼則降, 眞興王在位十一年, 太寶元年, 百濟拔高句麗道薩城, 高句麗陷百濟金峴城, 主[王]乘兩國兵疲, 命異斯夫出兵, 擊之, 取二城增築, 留甲士戍之, 時, 高句麗遣兵來攻金峴城, 不克而還, 異斯夫追擊之大勝
번역문
편집이사부 <혹은 태종이라고도 함>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고, 내물왕의 4세 손인데, 지도로왕 때에 연해변의 관리가 되었다. 그는 거도가 마련한 마숙놀이로써 가야국<혹은 가라국이라고도 함>을 빼앗고, 왕 13년에는 아슬라주의 군주가 되어 우산국을 아우르려고 도모하였다. 그런데 그 나라 사람들은 어리석고 사나와서 위력으로 항복받기는 어려우므로, 괴러써 굴복시키는 것이 옳겠다 생각하고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많이 만들어서 전선에 싣고, 그 나라의 해안에 이르러 거짓 속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곧 이 맹수를 내놓아 모조리 밟아 죽일 것이다” 하니, 우산국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항복하였다. 진흥왕 11년에 백제가 고구려의 도살성을 빼앗자, 고구려는 백제의 금현성을 함락시켰다. 왕은 이 두 나라 군사가 싸워 피로하게 된 틈을 타서 이사부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내어 이를 쳐서 두 성을 빼앗아 성을 증축하고, 군사들을 머물러 이를 수비하게 하였다. 이때 고구려는 군사를 내어 금현성을 침공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이사부는 이를 추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