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돌아가는 필름과 같아 인간의 일생에는 희노애락이 수시로 변 하며 날로 중하네.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온갖 희비극은 이것이 인생의 생 활 방법일세. 그러나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모두 불행한 자는 아니요 희극이 줄창 흐른다고 모두 행운자는 아닐세. 모름지기 질족자(疾足者) 선득(先得) 이라는 말과 같이 남보다 발 빠르고 남보다 영리하고 남보다 역강(力强)하 고 남보다 우승한 자라야만 자가(自家)의 생명 안전을 보전하는 것일세. 그 러나 인간이라는 우맹(愚盲)한 동물들은 다른 동물이 감히 생각지도 못할 만한 기발하고 열악(劣惡)한 장난을 하여 귀를 즐거이 하고 눈을 기쁘게 하 는 것일세. 이런 기발무류(奇拔無類)한 현상이 부절히 계속되는 동안에는 인생은 쾌락이란 것을 맛보는 것일세. 이것이 문명이고 진보라네. 우습다면 우습기도 하고 어리석다면 어리석기도 하지”

하고 A는 자기 친우들과 회합했을 때에 이같이 말한다.

“여보게, 그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무엇인가, 우리의 사회라는 것은 본시 일대 경기장일세. 자네 일전에 ○○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회에 구경 을 가지 않았었나. 자네들은 그것을 무엇으로 보았나? 참 기발한 현상일세. 그날은 전날 밤부터 쏟아지던 대설(大雪)로 인하여 운동장에는 적설이 척 여(尺餘)에 이르지 않았었나. 아마 일기(日氣)도 무던히 추웠지. 그렇건만 다리가 절구통같이 굴고 키가 9척 장승같이 큰 젊은 애들은 아래 웃통을 벌 거벗다시피 하고 자기네 손으로 그 눈을 모두 치운 후, 동분서주하며 혈안 철각(血眼鐵脚)으로 자웅을 결하는 경기를 시작하데 그려.

어느 누구든지 그들 중의 한 사람을 보고 이게 무슨 어리석은 장난이냐고 할 것 같으면 그는 곧 생사를 결판할 작정으로 달려들 것일세. 그네들의 심 중에는 이것이 곧 자기네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일세. 무슨 어림없고 지각없는 짓이란 말인가.

여보게, 그나 그뿐인가. 그 주위에 둘러선 관중들을 좀 생각해 보게. 상하 치근(齒根)은 발작적으로 경련되어 맞붙이려 해도 맞붙지 않아 떨고, 두 다 리는 몹시 얻어맞은 개다리 떨듯이 벌벌 떨면서 두 손을 입에 대고 훅훅 불 면서도 오히려 이것을 재미있다고 유쾌하다고 용장(勇壯)하다고 사람답다고 온갖 인위적 찬사를 아낄 줄을 모르고 제성(齊誠)하네 그려.

무슨 어리석고 못생긴 짓이란 말인가. 제집에서 제 처자가 꼭 소용이 있으 니 돈을 몇 푼 달라고 하면 눈코를 부릅뜨고 호령호령 하네. 그런 자들이 이런 구경이라면 수화(水火)를 헤아리지 않고 달려드네 그려. 입장료는 얼 마 되든지 간에…… 도무지 인생이란 것처럼 허위의 것은 없어"

하고 열변을 토하는 자는 A옆에 알아 있는 똥똥하고 체소(體小)한 K라는 남 자이다. 이 말에 계속하여 C, D, E…들은 중구난방으로 떠든다. 언권(言權) 은 마침내 C에게 차지되었다.

“그러니까 일언으로 폐지하면 인간이란 것은 어떠한 모퉁이에만─가장 어 리석고 못생긴 곳에─두뇌가 발달된 것이란 말일세. 말하자면 이같은 기발 하고 열악한 현상을 보지 못하고는 적요무비(寂寥無味)함을 깨닫는다는 말 이지.

일전에 비행가가 와서 비행을 한다고 온 시중이 열갈(熱渴)과 같이 벌컥 뒤떠들지 않던가? 이것은 축구대회 이상의 익살일세. 비조(飛鳥)가 날음을 볼 때에는 총을 쏘아 떨어뜨려서 그 악취 나고 비릿비릿한 혈과 육을 삼키 는 자들이 비행기라는 불완전하고 자연을 무시하는 마술을 볼 때에는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네그려.

조물주가 이 꼴을 본다면 실로 고소를 마지아니할 것일세. 만일 공중을 종 횡으로 비상(飛翔)하는 조류(鳥類)를 보지 못했던들 그네들은 비행기라는 “비”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지마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인간들은 머리를 썩혀가며 연구니 실험이니 해가지고 몇천년 만에 겨우 비행기라는 괴물을 만드러 가지고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들어갈듯이 뒤떠드네그려.

그보다도 더 우스운 것이 있지 아니한가. 공중에 솟은 지 불과 8척에 보기 좋게 추락이 되네그려. 그러할 때에는 무슨 기체에 고장이 생겼느니 무슨 공기의 밀도가 어떠하니 하고 죽을 때 죽더라도 그 과실은 자기 이외의 것 에 밀어버리네그려.

비조도 나래를 상할 때가 있고, 원숭이도 나무로부터 떨어지는 일이 있는 데 비행기라는 부자연한 인위물이 어찌해서 떨어지지를 않겠나. 공기의 밀 도가 항시 균등할 줄만 알고 기체의 발동이 완전무결 할 줄만 알았더란 말 인가. 문명이 극도에 달하면 그 결과는 이러한 것일세. 문명인들은 언필칭 ‘생명 보전’이라 하지마는 이런 말도 모르던 원시인들은 무병장수만 잘하 네.

우맹한 인간들은 자기를 자수(自手)로 경멸하면서도 오히려 염치없이 ‘생 명 보전’이니 ‘자가 번영’이니 하고 떠드네그려.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 는 일일세.”

벌써부터 말을 하려고 입을 벙긋벙긋하고 앉았던 D는 이제 서야 기회를 얻 어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의 주장은 모두 합리적 고론탁설(高論卓說)일세. 그러나 그것은 한갖 공론에 지나지 않는 데야 어찌하나. 이것이 인간의 ‘살아가는 방법’ 이 된 이상에야, 또한 인생의 진리라고도 할 수 있지 않는가? 이론과 실제 는 어느 때든지 합일이 되지 않는 것일세. 물론 자네들의 안목으로 보면 인 간이란 일개의 허위물에 지나지 않겠지만 우리도 ‘인간’이란 관사를 쓴 이상에야 하느님의 일은 못할 것이 아닌가.”

“옳다. 그 말 이야말로 진리다! 실용적이다! 이 사람들아 배가 봉긋하거 든 잠이나 자소. 그만큼 떠들었으면 시장할 듯도 한데…”

하고 E가 말했다.

“나도 역시 시장한데”

하고 서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매일 밤에 이같이 회합하여 쓸 말, 못 쓸 말 함부로 지껄임이 습례 가 되었다.

밤은 이미 늦었다. 벽상에 걸린 괘시계는 오전 1시를 보(報)했다.

A는 또다시 입을 벌려서 먼저 하던 말과 같은 의미의 말을 하다가 이윽고 껄껄 웃으며 주머니 속으로부터 궐련초를 꺼내어 물고 불을 당기어 두세 모 금 빤 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그만 일어서지. 어디 가서 뱃속을 메꾸어 볼 예산 이나 하세……”

일동은 A의 말에 찬동을 했다. 그들은 종이조각에 금액을 적은 후 이것을 제비뽑았다. 이 방법은 그들이 매일 밤에 행하는 바, 소위 "공(空)뽑기"라 는 것이다. 제비를 뽑아서 “공”이 된자가 사무처리인이 되는 것이다. 이 날은 C가 “공”을 뽑았다. 30분쯤 지난 뒤에 주문했던 중국 음식이 중국인 의 손에 요리되어 그네들 앞에 나왔다. 그들은 배껏 흠씬 먹었다. 주기는 전신에 돌았다. 아편 중독자가 모르핀 주사를 맞은듯이 그들의 심신은 후줄 근하게 되어서 벌서 만사가 태평이라는 악경에 이르렀다.

이윽고 C는 주머니 속에서 “인단”이란 소화제를 꺼내어서 10여립이나 탄 하(呑下)했다. 그리고는 만족한 얼굴로,

“에 ─ 너무 과식을 했는걸…”

하고 말했다.

B, D, E…들도 또한 과식을 했다고 “인단”을 얻어먹었다. 그러나 A는 한 구석에 주저앉은 채로 아무말도 없었다. 그들은 A의 행동에 그다지 주의하 지 않은 것 같았다.

이윽고 그들은 헤어지려고 일어섰다. 그러나 A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앉 아 있다. 아마 그는 너무 몹시 취했던 모양이다. 그는 여러 사람의 부축으 로 간신히 일어서더니 아아, 큰일이다! 미구(未久)에 그는 조금 전에 먹었 던 것을 그대로 토했다. 일동 삐죽 웃고 있던, 극히 중구무언(重口無言)한 성격의 소유자 되는 F는 일동을 비웃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 보게 - 내 어쩐지 자네들의 철학은 위태한 듯싶네. 배가고프면 고 프다고 야단, 먹고 나서는 과식을 했다고 법석, 그것이 인생의 진리란 말인 가? 작작 먹지 한 끼니 굶어서 죽지는 않겠지? 사람이란 그러한 것일세. 내 말이 진리요 철학이니…”

일동은 박장대소했다. 그후에도 매일 밤 이같은 회합은 그들 사이에 여전 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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