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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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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위기의 시대이다.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다다른 시대, 달러 지배 체제의 위기, 세계경제 위기의 시대이다. 경제의 양적 성장이 고용 축소를 낳는 시대, 고용 위기의 시대이며, 공공성의 파괴와 복지 삭감으로 국민의 사회적 공통성이 파괴되고 국민주권이 위협받는 시대,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이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 테러리즘, 국외 파병으로 말미암아 세계 평화가 위협받는 시대, 전 세계 인민의 안전이 항상 위기인 시대, 전쟁 위기의 시대이며,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무시하는 개발 지상주의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파괴하는 시대, 자원과 에너지 위기의 시대, 생태 위기의 시대이다.

우리 시대의 위기는 총체적이며 보편적인 위기, 전 세계적 위기이다. 또한 이러한 위기는 우리의 국가와 사회에서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1997년 금융 위기 이후로 진행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내수, 고용, 서민 경제의 위기를 낳았고 사회 양극화를 불러왔다. 금융 공공성이 파괴되었고, 공공 부문은 사유화되고 사영화되었고, 노동은 유연화되었다. 경제의 양적 성장이 고용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시대인데도 복지는 노동 연계 복지로 설계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비롯한 복지 제도는 국민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별적이고 잔여적인 복지에 불과했고 낙인적이고 시혜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비정규직, 실업자, 빈민이 경제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을 뜻했다. 그 결과 국민의 사회적 공통성은 파괴되었다. 국민 공통성의 파괴로 ‘모두의 나라’인 ‘민주공화국’은 껍데기만 남았고,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신자유주의는 국민 공통성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평등한 선거권과 절차 문제로 축소했다.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 국면에서도 신자유주의는 한국에서 더욱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탈규제 정책, 부자 감세 정책, 시장화 정책으로 경제 위기의 고통은 서민과 노동자에게만 전가되고 있다. 이로 말미암은 대중 저항에도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더욱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1987년 헌법의 성과인 정치적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자유권을 축소시키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 영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1997년 이래 신자유주의는 1987년 헌법의 실현을 가로막는 원인이며, 민주주의 위기의 근원이다. 2008년 이후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는 1987년 헌법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수도 있다.

우리의 국가와 사회가 직면한 위기는 서민 경제의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만이 아니다. 전쟁 위기와 생태 위기 또한 한국에서는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전개된다. 핵 대결은 동북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끊임없이 조성하고 있으며, 정전협정 체제는 아직도 비핵ㆍ평화 체제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 무분별한 ‘토건국가’식 개발과 핵 발전으로 생태 위기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방식이 생태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는 극복과 전환을 요청한다.

위기의 시대에 정치는 전환을 추진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바라는 전환은 결코 위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위기를 완화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전환은 이 시대의 위기의 극복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신자유주의 이전의 복지 국가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국민 모두에게 좋은 경제, ‘대안 경제’를 수립하는 것이며,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통하여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껍데기만 남은 1987년 헌법을 넘어 국민 모두의 나라, 국민의 사회경제적 공통성이 보장되는 ‘사회적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전란의 시대를 끝내고 동북아와 한반도의 ‘비핵ㆍ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일, 국외 파병이 없고 대체 복무가 가능한 ‘평화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생태 위기에 직면하여 우리의 목표는 산업 시대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산업 시대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보장된 새로운 ‘생태 사회’를 수립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경제ㆍ시민사회ㆍ국가 영역의 모든 배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배제도 없는 사회를 수립하는 것,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바탕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시대의 과제를 분명히 밝히고 대안을 수립할 것이다. 우리는 경제사회ㆍ국가사회ㆍ시민사회의 모든 층위에서 배제된 대중을 대표하여 대한민국헌법이 정치적 다수파에게 허용하는 권력을 기꺼이 떠맡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시대를 전환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국가와 사회를 배제 없는 통합의 원칙에 따라 재구성할 것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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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경제사회에서의 배제 극복]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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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자유주의 수탈 경제를 극복하여 시대를 전환한다.

기술혁신은 고용 창출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반대로 노동자는 해고되고 생산 설비와 같은 불변자본의 비율은 높아진다. 그 결과, 실물 부문의 이윤율은 떨어진다. 이윤율의 저하는 자본의 과잉을 낳는다. 그 결과, 자본 간의 경쟁은 격화된다. 1970년대 중반 영미 자본주의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이와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으로부터 비롯된다. 자본은 세계화, 노동 유연화, 시장화를 통하여 착취를 강화한다. 자본 주도의 세계화를 통해 세계적 저임금을 추구하고, 내부적으로는 노동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함으로써 임금을 떨어뜨린다. 사회 복지를 축소하고, 사회 전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하여 이윤 창출 영역을 넓히며 경쟁을 격렬하게 부추긴다. 그럼에도 이윤율 저하와 자본 과잉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자본은 금융적 축적을 추구하게 된다. 증권화와 파생 상품화를 통하여 미래 수익을 현재에 실현하는 의제자본이 등장하고, 생산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사회적 부가 금융자본의 수중으로 흘러들어 가는 금융 주도의 축적 체제가 수립된다. 최소한의 금융 공공성을 유지하던 ‘은행 자본주의’는 영리를 위해서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금융회사 중심의 ‘금융시장 자본주의’로 탈바꿈한다. 이와 같은 금융화의 본질은 자본이 실물 생산에 관계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총 이윤을 배분받는 것이다. 이는 곧 수탈이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적 방식의 수탈 이외에도 공공 부문의 사유화와 사영화, 규제 완화, 지적 재산권의 강화, 부동산 투기 등과 같은 지대적(地代的) 방식의 수탈에도 의존한다. 이러한 방식으로도 충분치 않을 때 자본은 군사적 방식을 통해 에너지자원 등을 확보하는 외부 수탈에 나선다. 신자유주의는 바닥을 향해 질주하는 경쟁적 착취 경제일 뿐만 아니라 금융적, 지대적, 강압적 수탈 경제이다.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는 신자유주의 수탈 경제의 위기와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미래 수익을 가상적으로 실현하는 의제자본은 과도한 신용창조로 과잉생산을 유발했지만, 세계적 저임금과 대중의 빈곤화로 수요가 창출되지 않았다. 그래서 의제자본은 자산 거품, 부채 증가, 붕괴의 시나리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채권에 근거를 둔 증권 같은 신종 의제자본이 등장하여 빈곤층의 가계까지 금융의 대상으로 만든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붕괴는 세계경제의 규칙을 정하고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 같은 금융 패권 국가도 의제자본이 만든 거품의 붕괴를 다소 지연시킬 수 있을 뿐, 붕괴를 피할 수는 없었음을 보여 준다. 오히려 미국의 금융 위기는 세계 금융 위기로 확대되었고,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졌으며, 전 세계를 경제 위기로 몰아넣었다.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는 부실 금융회사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수요 위축을 막기 위해 서둘러 재정 확대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급격한 붕괴는 피했을지언정 경제 위기로부터 벗어난 것은 아니다.

정작 되짚어 볼 것은 무엇을 위한 재정 확대이며 누구를 위한 재정 확대인가이다.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로 재원을 확보하지 않는 재정 확대는 미봉책일 뿐이다. 그것은 서민들이 언젠가는 되갚아야 할 세금만 늘어나는 재정 확대이며, 결국 또 다른 방식의 수탈 경제, 국가 재정을 통한 수탈 경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황의 주범인 금융자본을 구제하기 위한 공적 자금 투입도 재정적 방식의 수탈 경제일 뿐이다. 재정적 수탈을 위한 국가의 귀환은 신자유주의 종식도 아니며 위기 극복의 수단도 되지 못한다. 이런 방식의 국가는 신자유주의 역사에서 늘 있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유럽의 사회국가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에서의 국가도 늘 시장에 개입해 왔다. 개입의 목표와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금융 주도의 축적을 용이하게 만드는 개입, 공공 소유에 대한 수탈을 합법화하기 위한 개입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국가 주도의 신자유주의 수탈 경제의 전개는 붕괴를 지연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그로 인해 위기의 폭과 깊이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미봉책이나 지연책이 아니다. 시대는 전환을 요구한다. 그리고 전환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 경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시대를 전환하는 대안 경제의 출발점은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의 극복에 있다. 대안 경제는 금융적, 지대적, 강압적, 재정적 수탈 체제를 없앰으로써 신자유주의 극복을 추구한다. 또한 자본 주도의 세계화가 아닌 연대와 호혜성에 입각한 세계경제를 지향하며, 달러 패권 체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의 수립을 추구한다.

첫째, 금융적 수탈 체제를 없애기 위해 대안 경제는 금융 공공성을 강화하고, 신용 양극화를 해소한다. 아울러 증권화와 파생 상품화를 규제하고, ‘주주(株主) 자본주의’에 대한 공공의 통제 수단을 확보하며, 투기 자본을 규제한다.

1) 대안 경제는 금융 공공성을 강화한다. 따라서 신용의 기능을 영리가 아니라 대중의 복지, 생태 친화형 대안 발전 등 공공의 목적에 대한 봉사로 본다. 이를 위해 필요한 시책은 주요 은행 국유화, 기타 은행의 추가 사유화 방지, 신용 양극화 해소이다. 물론 이때 국유화는 개발주의 시대의 ‘관치 금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대안 경제는 금융 감독 기구의 민주화, 금융기관 경영에 대한 사회적 참여 등의 방식을 통해, 금융에 대한 사회의 통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금융기관의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운영을 꾀한다.

2) 경제 약자에 대한 금융 배제의 극복을 위해 지역 중소기업의 대출을 전담하는 국책 지방은행과 서민 전담 금융기관을 설립한다. 아울러 이자율 상한제를 통해 고리 대금업을 규제한다. 이때 금융기관의 설립 재원은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수익금을 활용하는 방식 등을 통해 충당한다. 이는 기존 금융 수탈로 일부가 독점한 부당이득을 환수하여 국민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이며, 시행 자체가 금융 공공성을 확대하는 획기적 방식이다. 그 밖에 금융 수익의 지역 재투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지역 금융기관의 여신을 규제한다. 이를 통해 금융 자산이 지역사회 안에서 순환하게 한다.

3) 금융 수탈 체제의 해소는 증권화와 파생 상품화에 대한 규제 없이 성공할 수 없다. 은행과 금융회사의 파생 상품 판매를 규제함으로써 금융시장이 투기의 장이 되는 것을 방지한다. 신용카드는 국유 금융기관만 발급하게 하고 수수료는 0%로 한다. 「증권양도소득세」(가칭)를 도입하여 양도 차익에 대해 대주주, 기관 투자자, 개인 투자자별로 차등 과세하며 보유 기간에 따라 누진 과세한다. 배당에 대해서는 30% 이상 과세한다. 아울러「주식거래세」를 개정하여 대주주의 주식거래에 대해 고율의 거래세를 부과하고 보유 기간에 따라 누진 과세하여 주식시장의 안정을 꾀한다. 대량 보유 주식에는 신고 의무를 부과한다.

4) 사회 구성원의 참여가 보장되고 공공적으로 운영되는 위원회가 연기금을 운용한다. 「연기금사회책임투자법」(가칭)을 제정하여 연기금 투자의 목적을 영리가 아니라 공공의 가치에 제한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연기금이 투기되는 것을 막고, 또한 연기금과 국유화된 주요 은행들을 통해 거대 자본에 대한 국민의 통제를 실현한다.

5) 토빈세와 환율 변동에 따라 세율을 달리 책정하는 이중외환거래세(CTT) 등을 도입하여 투기 자본을 규제한다.

둘째, 대안 경제는 지대적 수탈 체제를 없애고 사회 공공성을 강화한다. 지대적 특혜 경제를 조성하는 공공 부문의 사유화와 사영화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건설 규제 완화에 따른 개발이익은 국가나 지역사회가 환수한다. 물, 전기, 가스, 교육, 보건, 운송, 통신 등 기간산업과 공공재와 사회 서비스는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공공이 소유하고 관리한다. 공공 부문의 지배 구조는 사회 구성원의 참여를 보장하여 ‘사회적 자주 관리’가 가능하도록 바꾼다. 아울러 토지 공유 개념에 입각한 고율의 토지세를 도입하여 부동산 투기를 근절한다. 또한 대안 경제는 모든 새로운 지식은 인류 공동의 지적 재산에 의존한다는 관점 아래 지적 재산권의 행사를 공공성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로 제한한다.

셋째, 대안 경제는 군사적ㆍ억압적 수탈에 반대하는 평화 경제이다. 지역과 세계 수준의 평화 군축을 통해 군수산업을 없애고 한반도, 동북아, 전 세계에 평화 경제를 수립한다.

넷째, 대안 경제의 국가 재정 원칙은 재정 확대이다. 그러나 금융 수탈자를 구제하기 위한 재정 확대, 안보 예산과 토건 예산을 위한 재정 확대가 아니라,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지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위한 재정 확대, 사회 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위한 재정 확대이다. 대안 경제는 이를 위한 재원을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조달하며 이로써 금융적 수탈과 지대적 수탈을 없앤다. 아울러 고율의 환경세를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에 생태적 기초를 부여하고, 환경 기본권을 실현하고, 이를 통해 생태적인 대안 발전이 가능하게 한다.

다섯째, 대외적으로 대안 경제는 개발도상국과 빈국의 이해가 관철되는 세계경제 질서 재편을 목표로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을 국제연합(UN) 산하에 두고 여기서 국제통화를 발행한다. 이를 통하여 미국이 전 세계에 기축통화인 달러를 추가 공급함으로써 자국의 재정 적자를 충당하는 달러 패권 체제를 종식한다. 국제연합의 관리 아래 지구적 기본소득을 실시하여 국제통화량의 증대는 오직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한다. 대안 경제는 연대성과 호혜성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세계무역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기본소득의 도입을 통해 서민 중심의 국내 경제를 강화하고 대외 의존성을 줄이는 전략 등을 통해 수출과 내수의 동반 성장을 꾀한다. 대외 경제 관계는 세계적 금융 수탈 체제에 휘둘리지 않도록 선별 개방과 통제된 개방에 근거하여야 한다. 점차 심화되는 지구의 식량 위기 시대를 맞아 식량 자급도를 높이기 위하여 농산물 개방은 특히 통제되어야 한다.

2.배제 없는 경제를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

비자발적 실업자,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가사 노동자와 돌봄 노동자 등 수많은 종류의 ‘그림자 노동’ 종사자, 신용 불량자, 노숙인, 빈곤 노인 등 엄청난 수의 대중이 경제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그들은 임금노동을 제공함으로써 생산에 참여하고 소득을 얻을 기회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거나 조금밖에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소비 영역에서 이들은 자본주의적 경제사회에 통합되지 않을 수 없다. 땔감을 구하러 나무 하러 갈 수도 없고 수렵이나 채집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소비 영역에서의 통합은 때때로 경제 학살에 해당되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 안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미 경제사회의 구성원 자격을 박탈당하며 사회 밖에 존재하는 생물의 상태로 전락한다. 육체 보존조차 극히 예외적 방식, 즉 구걸과 자선 등에 의존한다. 노숙인이 전형적인 예이다. 비록 소득을 약간 얻을 수 있다 해도 소비 영역에서의 통합은 고통이 될 뿐이다. 실업 대중과 노동 빈곤층이 전형적인 예이다. 더 나아가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도 소비 영역에서의 통합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하는 영세 자영업자가 전형적인 예이다. 소득이 반드시 노동과 연계되어 있는 상황에서 임금노동을 수행할 수도 없고 독립적으로 생산이나 유통에 참여할 기회도 제한된 사람들에게 노동 기회의 박탈은 소비할 수 있는 소득의 부족을 뜻한다. 소득의 부족은 경제사회 안으로의 통합을 고통으로 만든다.

자본주의가 임금노동자뿐만 아니라 실업자 대중도 함께 만들어낸다는 것은 산업혁명기부터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혁명 이후 오늘날의 경제는 이미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했다.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고용이 늘어나는 시대는 지나갔다. 기술혁신과 산업 재편성이 일자리를 없애는 속도가 생산자본의 확대로 추가 고용이 창출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시대이다. 신자유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서유럽 국가들에서 가능했던 완전고용 경제가 자본주의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시기임을 실증하였다. 신자유주의에서 완전고용이 가능한 임금 수준은 최저임금보다 훨씬 낮고, 그러한 방식의 완전고용은 노동 빈곤층이 지금보다도 더 비참해지는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일자리가 없거나 노동을 통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노동과 연계되지 않은 소득,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이 대중의 일반적 삶의 양태가 되어 버린 초유의 시대에 기본소득은 대중의 경제적 배제를 극복하는 핵심 대안이다. 기본소득은 완전고용 사회를 전제하는 기존 복지 체계를 개편하여, 임금노동을 수행하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도 생계유지에 충분한 액수의 소득을 제공한다. 아울러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 현물과 서비스 형태의 기본복지를 제공한다. 기본소득과 더불어 금융 공공성이 수립된다면 이들에 대한 금융 배제도 극복하여, 이들을 경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재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양적 성장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라고 주장하는 우파 대중영합주의(파퓰리즘)는 사회에 불필요한 저임금 일자리를 최대한 늘려 노동 빈곤층을 양산할 뿐이다. 물론, 산업의 변화에 맞춰 고용의 안정성과 가능성을 높이는 산업교육 및 직업교육의 체계는 실제 고용 효과와 무관하게 여전히 필요하다. 대안 경제는 교육체계를 산업과 생산의 체계에 따르는 독자적 사회체계로서 형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노동 유연화에 대응하는 최소 안정성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친 낙관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오직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를 전제할 때만 경제구조의 고도화에 따른 산업 재편에 대비한다는 본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실업자에게 소득을 부여하지만, 노동과 생산으로부터의 배제를 없애지는 못한다. 그러한 배제를 직접 해소하는 방법은 오직 고용 창출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불필요하게 저임금 일자리를 늘려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방법은 시대를 전환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시대의 전환은 오직 새로운 통합 방식의 창출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기본소득은 바로 이와 같은 새로운 통합 방식이다.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지 체계는 생활 영역에서 최소 안정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현물이나 서비스 형태로 공급되기 때문에 사회적 일자리도 만들어낸다. 기본복지 강화로 공공 부문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일자리는 빈곤선 이하의 소득을 얻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 복지는 일자리도 창출하고 산업구조와 사회구조도 혁신한다. 이는 영세 자영업자가 날로 늘어나는 한국에서 중요한 전환의 의미가 있다. 기본복지의 확충은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 지불하는 비용을 사회가 떠맡는 것이고 이를 통해 기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소득의 액수가 줄어드는 효과도 생긴다. 이처럼 기본복지 확충은 기본소득의 도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그런데 기본복지의 확충이 고용 창출 효과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소득의 도입도 임금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 대안이자 일자리를 만드는 대안이기도 하다. 고용 불안정이 소득 불안정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은 오히려 기본소득의 소극적 의의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생산 영역으로부터의 배제를 인정한 채 소비 영역에 의한 재통합만을 꾀하는 소극적인 대안이 아니다.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를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액수가 기본소득으로 지급되면, 산업재해의 위험 속에서 굳이 무리하게 잔업, 특근, 철야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비자발적 노동이나 과잉 노동은 감소하며, 노동시간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이 단축되어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해지고, 과잉 노동이 감소하여 일자리 수요도 늘어나 고용 증대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효과도 기본소득의 적극적이고 전환적인 의의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본소득의 적극적이고 전환적인 의의는 임금노동의 형태를 벗어난 자발적 노동이 등장할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은 자본에 고용되어 이윤을 창출하는 임금노동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여러 활동을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기본소득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에서 수행하는 노동 등 임금노동을 벗어난 자발적 노동에 사회적 기초를 부여한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노동의 사회적 형태와 성격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의 질적 변화도 촉진한다. 충분한 액수의 기본소득은 창의적인 지식 기반 노동으로의 전환을 촉진하여 경제구조를 지식산업 중심으로 고도화하는 효과도 낳는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비자발적 실업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노동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임금노동의 틀 밖에서 노동의 사회적 형태가 수립되면 임금노동으로부터의 배제는 임금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할 수 있다. 노동 개념의 전환이야말로 기본소득이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전환이다. 이는 기본복지 확충을 통해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기본소득이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전환,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가는 전환일 것이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형태에 입각한 완전고용 사회를 넘어 다른 형태의 사회로 나아가는 경로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중의 경제적 배제를 극복하는 것이며, 기본소득의 도입은 이러한 과제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동시에 가장 전환적인 해법이다. 이 시대의 진보적 경제 대안은 시야를 생산과정, 임금과 분배, 소유관계, 관리 체제 등 전통적으로 진보 대안이 다루어 왔던 영역에만 한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이 시대의 대안이 그러한 영역에서의 과제를 도외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과제로 유효하다. 단지 현실적 조건이 바뀌어 전통적인 영역에만 한정된 해법들은 더 이상 사회 전체에 대한 대안일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임금노동을 수행함으로써 생산 영역에 포섭된 노동자들도 배제된 채 포섭되어 있을 뿐이다. 대개 임금노동자들은 생산과정에서 의사 결정권을 박탈당한다. 생산 결과의 분배에서도 임금은 이윤에 대한 분점이 아니라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비용의 충당을 뜻할 뿐이다. 진보적 대안 경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임금노동으로부터 배제되는 것뿐 아니라 임금노동을 통한 배제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20세기 노동조합운동이 생산과정의 민주화나 경제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요구했던 제도들, 즉 노동자도 경영자와 마찬가지로 생산과정에서 의사 결정권을 가지는 노사공동결정제, 물가상승률과 임금의 연동 관계, 나아가 노동자의 이익분점권, 소유관계와 지배관계에 대한 노동조합의 참여 등은 여전히 실현을 요구하는 과제들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요구들이 생산과정의 의사 결정, 소유관계와 지배관계, 분배 방식에 있어서 최선의 대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안 경제의 궁극적 지향은 기업별 노동자 자주 관리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해 당사자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보장하는 사회적 자주 관리이며, 이를 통해 경제사회의 대등한 구성원으로서 만인의 진정한 통합, 어떤 사람도 배제되지 않는 통합이 실현되는 것이다.

20세기 노동조합운동은 임금노동으로부터의 배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으나 임금노동에 기인하는 배제의 극복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물론 그들이 당시 조건 속에서 제출한 대안은 변화된 조건에 맞게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다시 해석하고 새로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대에는 20세기 노동조합운동의 성과물을 지키는 것이 미완의 지향을 실현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되어 버렸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이다. 특수 고용직 노동자, 공무원 노동자, 공공부문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 직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악법들을 철폐하고 노동 삼권을 완전히 보장해야 한다. 산업재해로부터의 안전보장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밖에, 노사 교섭 영역에서도 산별 교섭이 자리 잡지 못한 한국에서는 산별 교섭 체제의 수립도 중요한 과제가 된다. 하지만 산별 교섭 체제가 수립된 국가들에서도 노동조합운동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도 기본소득은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가 보장될 정도로 충분한 액수가 기본소득으로 지급된다면, 노동시장에서 개별 노동자의 교섭력은 강화되고, 이는 노동조합운동의 교섭력을 높여 임금과 노동조건 교섭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제들 이외에도 한국의 노동 현실에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고 여성 노동의 다수를 점하는 비정규직 문제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비정규직 확산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신자유주의는 수탈 체제일 뿐만 아니라 더욱 강화된 착취 체제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으로 저임금 경쟁 구조를 수립했고, 선진 자본주의에서도 비정규직은 일반화되었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차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보편적 복지체계가 수립되어 있지 않고 기업별 복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고용 불안은 그대로 복지에서의 차별로 이어진다. 나아가 비정규직은 임금 차별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확산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시급하다. 아울러 비정규직에 대한 모든 차별을 금지해야 할 것이다. 동일 노동ㆍ동일 고용조건ㆍ동일 임금 원칙에 따라 고용형태와 임금에서의 차별이 사라져야 하고, 복지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가 되어야 한다.

Ⅲ. [국가사회와 정치에서의 배제 극복] 국민의 사회경제적 공통성이 보장되어 모두가 대등한 주권자로서 참여하는 ‘사회적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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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통해 진정한 국민주권을 실현한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헌법 제1조의 실질적 관철을 위한 민중 투쟁의 역사이다. 민중은 1960년 4월, 1980년 5월, 1987년 6월의 항쟁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확립했으며 자신을 주권자로 세웠다. 절차적 민주주의, 자유권 보장, 법치주의 등은 분명히 민중 투쟁과 국민주권 운동의 전과(戰果)로 도입되었다.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의 노동자 투쟁은 노동삼권의 보장이라는 성과를 이룩했고, 1990년대 이후 점차 여성, 환자, 이주 노동자, 소수자 등이 시민권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헌법 제1조는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국민의 진정한 주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ㆍ경제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국민주권의 실현은 선거권과 피선거권만으로 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을 얻고,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 기본복지가 보장될 때만 진정한 국민주권이 실현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권리들이 모든 국민에게 당연한 권리로 주어질 때만, 국민은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얻으며, 비로소 나라의 진정한 주권자가 될 수 있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통하여 경제사회 영역에서 대중이 배제되지 않을 때만 국민주권 원칙이 비로소 현실의 원칙일 수 있다. 이는 정치적 국가의 존립 조건이며,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에 관철된 신자유주의는 민주개혁세력의 집권이 의미를 잃을 정도로 점점 더 많은 국민 대중을 경제사회 영역에서 더욱 심각하게 배제했다. 사회가 ‘불로소득자’와 ‘경제사회로부터 전적으로 배제된 자’의 양 극단으로 쪼개지고, 국가 공동체의 의미에서 ‘나라’가 더는 존립할 수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국민 공통성마저 해체된다면, 진정한 민주공화국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실질적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는 헛된 소망에 불과하다. 하지만 1987년 민주주의 운동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던 민주개혁세력은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을 통해 1987년 운동이 실질적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것을 아예 틀어막고 말았다. 이 결과가 한나라당의 2007년 집권과 2008년 의회 장악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세계경제 위기의 와중에서도 그나마 최소 수준에서 잔여적 형태로 도입되었던 복지조차 삭감하고, 공공 부문을 사유화하고 사영화하여 지대적 특혜를 나누어 주며, 서민 경제의 희생을 통해 부익부ㆍ빈익빈의 자산 재분배를 추구하는 극단적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경제사회적 배제는 평등선거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가와 무관하게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만든다. 민주주의 운동은 국민주권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수립하는 운동이다. 민주주의 발전 정도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민주주의 운동은 영역별, 생애 주기별 기본복지 체계의 수립과 기본소득의 도입을 통해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수립하는 운동이다. 민주주의 운동은 영리 병원으로 인한 의료 양극화를 막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90% 이상으로 높여 무상의료를 실현하는 운동이다. 민주주의 운동은 무상교육을 고등학교까지 확대하여 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배제를 극복하고 공교육의 수준을 높여 사교육이 공교육을 잡아먹는 오늘의 현실을 바로잡는 운동이며, 국민 모두에게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운동이다. 민주주의 운동은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국민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운동이며, 모든 국민이 보육과 노후에 대해 근심하지 않아도 되도록 복지 체계를 수립하는 운동이며,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운동은 국민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운동은 국민 모두의 사회경제적 공통성을 새로이 수립하고 사회 공공성을 보장하여 대한민국을 모든 국민이 대등한 주권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공화국’으로 만드는 운동, ‘민주공화국’을 ‘국민 모두의 나라’로 보고 이에 따라 헌법 제1조를 실질화하여 민주공화국을 국민 모두의 나라로 만드는 운동, 바로 사회적 공화주의 운동이다. 신자유주의는 국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운동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운동과 떨어질 수 없다. 민주주의 운동은 2008년 이전의 상태, 신자유주의 틀 안에 갇힌 민주주의로 되돌아가는 운동이 아니다. 민주주의 운동은 1997년 이후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여 1987년 이후 미완성인 채 후퇴를 거듭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운동, 바로 신자유주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국가사회 영역에서의 탈배제(脫排除) 운동이다.

2006년 강령 개정 이후 사회당은 ‘사회적 공화국’ 수립을 위한 일관된 노력을 펼쳤으나 2007년과 2008년의 정치적 전환이 다수 국민을 사회경제적으로 더 많이 배제하고 국민 공통성을 더 많이 해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회적 공화국’ 수립을 위한 새로운 국민주권 운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8년 대한민국 국민은 촛불을 들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외쳤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의 주권이 실질적이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1987년 헌법의 미완성적 성격과 내적 한계를 극복한다.

1987년 헌법은 민주주의의 비약적 발전을 뜻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헌법 국가의 역사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아울러 비록 정치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실현된 적은 없지만, 1987년 헌법의 경제조항들에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실마리들이 들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활성화하고 더욱 전개하는 과업,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1987년 헌법의 완성은 민주주의 정치운동의 시대적 과업이다. 이 시대는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은 대중의 경제적 배제 극복이 민주주의 운동의 고유한 과제일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따라서 1987년 헌법의 완성 역시 ‘사회적 공화국’ 수립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운동과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은 동시에 모든 국민의 사회경제적 공통성이 보장되는 국민 모두의 나라, ‘사회적 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또한 사회적 공화국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미완성의 문제 이외에 1987년 헌법의 자랑할 만한 성과 가운데에도 고유한 한계가 드러난다. 일단, 비록 선거법상의 문제이지만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 아래서 결선투표가 없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나 대통령 선거제도는 대표성의 문제를 드러낸다. 국회의원 선거도 완전 비례대표제로 전환해야 정치적 대표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제도는 1987년 헌법이 안겨 준 중요한 결실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국민주권과 권력분립 원칙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현행 제도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의 임의성과 포괄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재판관 선임 절차의 개혁도 필요하다. 헌법재판관 전원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2/3의 동의를 얻어 선임해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한계는 1987년 헌법에도 예산비법률주의(豫算非法律主義)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1987년 헌법에서 예산은 입법 주권의 행사가 아니며 국회에게는 심의하고 확정할 권한만 있다. 예산비법률주의 아래서 총액예산제와 전략적 재정계획제도 등은 철저히 행정부 주도의 예산 제도가 되며 국민과 국회의 예산 주권은 축소된다. ‘시민 참여 예산제’를 통하여 재정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예산이 일반 법률처럼 국회에서의 입법 과정을 거치는 예산법률주의(豫算法律主義)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위해 재정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대에 한국과 일본만 예외적으로 채택한 예산비법률주의를 예산법률주의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 밖에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의 도입, 국민투표제 개선 등을 통해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확대해야 한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도입한 1987년 헌법을 보완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키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Ⅳ. [시민사회에서의 배제 극복]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만인의 참여와 소통이 보장되는 역동적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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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보ㆍ통신ㆍ미디어의 탈(脫)상품화와 탈시장화를 통해 가치ㆍ담론ㆍ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시민사회는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차별 없는 대등한 시민의 상호 존중과 소통을 통해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사회의 통합도 배제적 통합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로부터의 배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으로부터의 배제, 담론과 소통으로부터의 배제 등이 시민사회로부터 시민이 배제되는 대표적 예들이다. 이러한 배제에도 형식적 시민성과 형식적 국민 규정 아래로의 통합은 치밀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미디어 자본이 주도하는 일방적 소통 체계는 시민 개인을 철저히 수동화하면서 문화 다양성과 담론 다양성을 억누르고 짓밟는다. 이와 같은 통합은 특히 소수자와 이주자에게, 그리고 여성이나 장애인에게도 예나 다름없이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차이를 부인하는 일방적이고 외적인 통합, 폭력적이고 반문화적인 통합을 뜻하며 극단적일 때는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담론과 문화 시장은 비록 다양성 존중을 미덕으로 내걸지만, 시장 형태로서만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소통에 의한 통합은 언제나 소통으로부터의 배제를 전제한다. 알 권리와 표현할 권리를 실현할 조건을 부여받지 못한 개별 시민은 소통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배제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광고처럼 일방적인 지배 담론의 시장 지배력에 의해 통합된다. 미디어 시장을 통한 통합은 늘 배제적인 통합일 뿐이다.

만인의 참여와 소통이 보장되는 역동적 시민사회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창출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상품 형태가 아니고 시장에서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다양한 문화, 담론, 소통의 형태가 제공되어야 한다. 국가의 재정 지원과 참여자의 자주 관리 체계를 통해, 시장을 벗어난 정보ㆍ지식ㆍ문화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미디어 자본의 수중에 장악된 유무선 통신망, 방송,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인간적 보편성, 민주성, 가치 다양성과 문화 다양성의 원칙에 따라 사회화하고, 시민의 적극적 참여가 가능한 방식으로 자주 관리 아래 둔다. 둘째, 모든 시민에게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접근권과 향유 기회를 보장하고, 인터넷 등을 수단으로 하여 공적 소통에 참여할 기회와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문화, 지식, 정보에 대한 접근에서 배제를 극복하고,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것은 대등한 주체의 소통을 통해 통합이 이루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2.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으며 소수자와 약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는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차이의 인정이 요구된다. 배제 없는 통합은 평등과 동일성만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형식적 동일성은 평등을 빌미로 한 배제로 귀착된다. 차이의 인정은 여성, 장애인,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 성적 소수자 등의 문화적 측면에서 통합의 전제 조건이어야 한다. 문화적ㆍ성적ㆍ신체적 정체성의 다양성과 개별적 차이를 인정하는 통합만이 배제를 극복한다. 이러한 관점은 성 인지 정책, 장애 인지 정책, 문화 다양성 인지 정책 등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자립 생활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한다. 모든 인종 차별은 금지되고 이주자에게도 지역사회에서의 참정권을 인정한다.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계시민국가로의 전환을 통하여 이주자도 대등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소수자나 약자의 문제에서 차이의 인정만으로 배제 없는 통합이 달성될 수는 없다. 차이의 인정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차이가 차별을 만들지 않도록 소수자나 약자에게 더 많은 우선권을 부여하는 적극적 시정 조치도 각종 층위에서 도입해야 한다. 적극적 시정 조치처럼 차이와 다양성의 인정, 차이가 차별을 낳지 못하게 하는 각종 제도는 차이를 위한 차이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통합 방식, 새로운 일반성의 수립을 목표로 한다. 시민사회에서의 탈배제 전략은 차이를 인정하는 동일성의 수립을 목표로 해야 한다.

차이와 다양성의 인정, 소수자와 약자 우선의 원칙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두 원리는 배제 없는 통합을 위한 상호 보완적 원리일 뿐이다. 이 점은 여성권 신장을 위해 두 원리가 맺는 관계를 통해 명확하게 나타난다. 여성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기에 결코 소수자일 수 없으나 부가장제 사회에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돌봄 노동이나 가사 노동의 가족 내 분담과 사회화, 동등한 기회의 제공, 직장 생활에 있어서의 성 평등 등에서 평등 원리를 구현하고, 다른 한편으로 여성 할당제나 성 인지 정책, 적극적 시정 조치 등을 통해 차이의 인정과 약자 우선의 원칙을 실현할 때 여성권이 가장 많이 신장한다.

Ⅴ. [생태 사회로의 전환]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바탕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생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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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토건국가’는 산업적 근대화의 극단이었던 박정희 정권의 개발 독재를 거치면서 더욱 단단해졌다. 오늘날의 신개발주의도 이 연장선에 있으며 환경은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거짓 포장 아래 여전히 개발의 포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발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대규모 국책 사업들 탓에 국토는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국민총생산 대비 에너지 사용량, 가장 낮은 에너지 효율성, 국토 환경에 걸리는 환경오염 부하량(負荷量) 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토건주의가 인간과 자연 모두를 헐벗게 하고 생태적으로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사회로 내몰기 전에 생태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전 지구적 환경 위기도 산업적 근대화를 넘어서는 생태 사회로의 전환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제의 수행이 요구된다.

첫째,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재생에너지 중심 체계로 전환한다. 아울러 현재의 중앙집중적 방식의 에너지 체계를 다양한 대안 체계로 전환한다. 이른바 저탄소 녹색 성장을 빌미로 하여 핵 발전을 지원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핵 발전은 대안이 아니며 미래에 피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는 일이다. 핵 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중단하고 단계적으로 탈핵화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자원 순환형 재활용 시스템 구축을 근간으로 생태주의적 순환 경제구조를 수립한다. 특히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를 강화하여 생산자, 수입업자, 대규모 판매업자가 생산 제품 전량에 대해 수거 의무를 지고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한편, 재활용 의무 비율도 높인다.

셋째, 90% 이상의 국민이 사는 도시 공간을 생태적으로 재구성한다. 생태 도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녹지 공간 확충, 대기오염 개선, 녹색 교통 체계 구축, 생태 축 확보, 생태 복원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도시 공간의 재구성은 정부나 전문가의 일방적 주도가 아니라 시민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생태 도시로 전환하는 도시 정비 사업은 생태 환경적 가치, 세입자나 도시 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이익, 시민 대중의 참여라는 세 가지 원칙에 따른다.

넷째, 먹을거리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생태 농업 체계를 수립하고 도시와 농촌이 연계된 지역 먹을거리 체계를 형성한다.

다섯째, 생태 환경을 단순한 자원으로 간주하는 근대국가로부터 생태 국가로 전환한다. 국가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울러 국가는 자연을 존중할 의무를 지며 개별 국민의 환경권을 보호할 의무도 진다. 개별 국민의 환경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환경 소송에서 집단소송제나 대리소송제를 폭넓게 인정한다. 나아가 생태 국가는 과학ㆍ기술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파괴하지 않도록 한다. 이를 위해 과학ㆍ기술의 적용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기술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한다. 아울러 생태적 목표에 부합되는 과학ㆍ기술 정책을 통해 국가는 과학ㆍ기술이 생태의 파괴가 아니라 복원의 수단이 되게 하고 생태적인 경제구조와 사회구조의 수립에 기여하게 한다.

Ⅵ. [평화 강령] 비핵ㆍ평화 체제의 수립과 평화 국가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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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전협정 체제인 1953년 체제를 비핵ㆍ평화 체제로 전환하고 동북아시아에 다자간 안전보장 체제를 수립한다.

첫째, 동북아시아의 비핵ㆍ평화 체제를 구축한다. 정전협정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평화 체제는 한반도를 넘어서서 동북아시아로 틀을 확장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안보 정세는 핵무기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관계의 대립을 축으로 여전히 불안정하다. 북미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러시아와 일본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간 비핵ㆍ평화 체제에 포함되어야 한다. 핵무장국은 역내 국가에 대한 핵사용의 영구 포기를 선언하고 단계적인 상호 핵군축을 통해 핵무기 폐기로 나아갈 것을 약속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 아래 북한의 핵무장 포기는 한국, 일본, 대만의 핵개발 포기와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은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아울러 시민사회의 평화 역량이 증대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영토 국가 측면에서 대외 경계를 확정하기 위하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관계를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재정립하고, 분단 대결 체제의 유산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 한반도 일국론(一國論)의 관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하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한반도에 수립된 두 국가의 통일은 헌법에 명시된 목표이나, 통일은 국가와 반국가단체의 통일일 수 없고 언제나 국가와 국가의 통일일 뿐이다. 한반도에 이미 두 개의 국가가 수립된 현실에서 두 국가의 관계는 국제법적으로 대등한 국가 대 국가 관계이어야 하며, 양국은 분단 대결 상태를 영구히 종식하기 위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 평화 체제의 출발점이고, 평화 체제 없는 통일은 두 국가 국민 모두에게 재앙일 따름이다.

2.평화 국가로의 전환

평화 국가로 전환하기 위하여 군비를 축소하고 국외 파병을 금지한다. 군사 대결이 종식되지 않은 한반도에서 수교와 관계 정상화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군비축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무장병력의 국외 파병을 막는 「파병규제법」(가칭)을 제정하여 베트남 파병이나 이라크 파병과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한다. 평화 국가 수립을 위해서는 군 복무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대체 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대체 복무제는 군비축소, 국외 파병 금지 등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평화 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대체 복무제는 대한민국이 국민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상적인 헌법 국가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부속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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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9일에 개정된 강령의 정신에 따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를 위하여]를 부속 강령 (1)로 채택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를 위하여]

기본소득은 경제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어떤 자산 심사도 없이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무관하게 균등 지급된다. 기본소득 지급액은 생계유지에 충분한 액수이고 물가 상승률과 연동한다. 기본소득은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현물 및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는 기본복지와 함께 대중의 경제적 배제를 극복하는 대안이며,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진보적 대안 경제의 핵심이다. 나아가 기본소득은 국가사회와 정치에서의 배제를 극복하여 국민의 사회경제적 공통성과 사회 공공성이 보장되는 국민 모두의 나라, 곧 ‘사회적 공화국’을 수립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운동의 핵심이다.

경제사회와 국가사회 영역에서의 배제를 극복하는 운동에서 기본소득의 도입과 보편적 복지의 확립이 가지는 핵심적 의의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를 위하여]를 부속 강령으로 채택한다.

1.배제 없는 경제

자산 소유자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소득은 언제나 노동과 연계된다. 노동하지 않으면 먹을 수도 없는 사회, 하지만 일자리는 늘 부족하고 불안정한 사회,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고용으로부터의 배제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충분한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비록 임금노동의 기회로부터 배제되었거나 고용이 불안정하더라도 소득이 불안정하지는 않게 된다. 기본소득은 비자발적 실업자,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가사 노동자와 돌봄 노동자, 그 밖에 수많은 ‘그림자 노동’ 종사자, 신용 불량자, 노숙인, 빈곤 노인 등을 경제사회에서 배제하지 않는 유일한 대안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완전고용이 가능한 임금 수준은 최저임금보다 훨씬 낮다. 이런 방식의 완전고용은 노동 빈곤층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비참해지는 상태일 것이다. 성장하면 할수록 고용이 줄어드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는 고용 축소를 막을 수 없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노동 유연화에 대응하는 최소 안정성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지나친 낙관이다. 오직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를 전제할 때만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경제구조의 고도화와 산업 재편에 대비한다는 본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일자리가 부족한 사회에서 노동 연계 복지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낙인이며 징벌이다. 충분한 기본소득이 없다면,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지 강화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일자리도 생계에 필요한 충분한 소득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질 나쁜 일자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날이 갈수록 고용이 줄어드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대중의 경제적 배제를 해소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기본소득은 실업자에게 소득을 부여하지만, 노동과 생산으로부터의 배제를 없애지는 못한다. 그와 같은 배제를 직접 해소하는 방법은 고용 창출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완전고용 사회로의 복귀는 시대를 전환하는 대안일 수 없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일자리를 늘려 완전고용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기본소득을 도입하여 경제적 배제 없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는 실현 불가능한 가상(假想)이고, 하나는 배제 없는 경제를 수립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하나는 임금노동에 근거한 낡은 사회의 최대 이상(理想)이었고, 하나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재 사회에서 임금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미래 사회로 넘어가는 전환의 대안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생산 영역으로부터 대중의 배제를 인정한 채 소비 영역에 의한 재통합만을 꾀하는 소극적 대안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 대안이자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가 보장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액수가 기본소득으로서 지급되면, 산업재해의 위험 속에서 굳이 무리하게 잔업, 철야, 특근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진다. 비자발적 노동이나 과잉 노동도 감소하며, 노동시간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해진다. 과잉 노동이 감소하여 일자리 수요도 늘어난다. 그러면 고용도 증대할 것이다. 아울러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에서 개별적인 노동자의 교섭력을 강화하고, 이는 노동조합운동의 교섭력을 높여 임금과 노동조건 교섭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사회를 혁신한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사회를 더 인간화하고 노동자에게 더욱 유리한 교섭 조건을 창출하며 일자리 나누기 효과를 통해 고용도 창출한다. 기본소득은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경제사회에 통합하여 배제 없는 경제를 만들며 임금노동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배제도 완화한다. 모든 측면에서 기본소득은 배제 없는 경제를 수립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2.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약자에 대한 연대에서 평등한 권리로!

한국에서 기존의 복지는 빈곤한 사람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 등에 대한 선별적 복지였고, 시혜라는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은 수혜자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했고 하루빨리 그와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무로 여겼다. 날이 갈수록 부익부ㆍ빈익빈이 심해지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회에서, 이와 같은 복지는 당사자에게 사실상의 징벌이었다. 아울러 한국에서 기존의 복지는 노동 연계성을 전제한 보충적이고 잔여적인 복지에 지나지 않았다. 복지는 국민과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최저 보장이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선별적, 시혜적, 잔여적 복지는 또한 많은 서민과 중산층에게 복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주었다. 복지 확대는 더 많은 조세 부담을 뜻할 뿐이었다. 복지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시혜이고, 따라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으로서 보충적인 의의가 있을 뿐이라는 의식이 확산되었다.

서민과 중산층의 복지 체험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복지에 대한 권리 의식은 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이익에 대한 경험만으로 권리 의식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기본복지의 향상도 자동으로 권리 의식의 발전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단지 수혜층의 확산과 복지 체험의 확산만 이루어질 뿐이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권리 의식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 의식은 복지가 수혜가 아니라 권리의 체계로 수립될 때만 사회 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의식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에서의 선별주의를 극복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복지에서의 선별주의는 복지 요건을 선별하고 제한하여 당사자의 특수한 처지에 따라서만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시혜적 선별주의는 노동 연계성을 전제하며 권리로서의 복지 개념을 훼손한다. 사회연대성에 입각한 선별주의는 선별 복지 체계를 유지한 채 시혜성만을 제거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복지는 처지가 어려운 사회 구성원에 대한 좀 더 처지가 나은 사회 구성원의 연대로 파악된다. 하지만 시혜이건 연대이건 선별주의는 복지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동등한 권리로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모든 종류의 선별주의에는 17세기 초 영국의 구빈법(救貧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복지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 은폐되어 있다. 처지가 나쁜 사회 구성원에게 시혜를 베푸는 일이건, 연대하는 일이건, 선별주의는 복지 체계를 시장에 대한 보완으로서만 사고하게 한다. 설령 선별 복지 체계에서 복지 지출이 증대된다 하더라도 복지의 보충적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자산 여부나 노동 여부에 관계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된다. 기본소득은 가난하거나 노동능력이 없는 개인의 특수한 처지 때문에 국가와 공동체가 베풀어주는 시혜도 아니고, 처지가 나쁜 사회 구성원에 대한 사회적 연대도 아니다. 기본소득은 자산이 있건 없건 노동을 하건 안 하건 모두가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관점, 곧 사회 구성원 또는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근거를 둔 기본적 권리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복지의 요건은 가난, 질병, 무능력 등과 같은 특수한 처지로부터 사람, 사회 구성원, 국민 같은 보편적 자격으로 바뀌게 된다. 기본소득은 개별 사회 구성원의 특수한 처지를 요건으로 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원리처럼 오직 국민 또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보편적인 자격에 근거를 둔 복지이다. 따라서 사회연대성에 근거를 둔 선별주의 복지와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한 보편주의 복지는 원리부터 다르다. 이와 같은 차이는 복지 재원을 어떻게 얼마나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 이전의 차이, 사회 구성원의 배제 없는 통합에 대한 관점의 차이, 곧 두 입장에 표현된 사회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다. 기본소득은 선별주의 복지를 보편주의 복지로 전환한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약자에 대한 연대를 넘어 평등한 권리에 근거해 만인의 진정한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렛대이다.

정치적 국민주권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평등한 선거권을 가진다. 기본소득도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기본소득은 재산 정도나 노동 여부 등 어떤 특수한 경제적 조건과 상관없이 오직 사회 구성원이라는 평등한 자격에만 근거를 두고 동일한 액수로 지급된다. 기본소득은 보편주의 복지의 요체가 복지 원리와 민주주의ㆍ국민주권 원리의 상동성(相同性)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기본소득은 보편주의 복지의 국민주권적 차원을 연다. 복지는 이제 보충적인 체계가 아니라 국민주권의 전제 조건이 되며, 무조건 충족시켜야 하는 국가 정당성의 조건이 된다.

3.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로 사회적 공화국을!

진정한 국민주권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부여만으로 실현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에 충분한 소득을 얻으며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지가 보장될 때, 국민주권은 비로소 실질적이게 된다. 이때 모든 국민은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획득하며 비로소 나라의 실질적인 주권자일 수 있다. 기본소득을 비롯한 보편적 복지는 진정한 국민주권의 출발점이고, 정치적 국가의 존립 조건이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를 통해 국민 공통성이 확립된 사회적 공화국만이 실질적인 민주공화국이다.

사회적 공화국에서 복지는 국민 모두의 보편적인 수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동등한 권리이다. 사회적 공화국은 수혜의 보편성에 근거를 둔 사회국가가 아니라, 권리의 동등성에 근거를 둔 사회국가, 만인의 사회적 공통성에 기초하여 만인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사회국가이다. 기본소득은 이와 같은 권리의 동등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제도이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수혜를 넘어 동등한 보편 권리를 지향하며, 복지와 민주주의ㆍ평등의 상동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사회적 공화국을 수립하는 운동의 핵심 과제이다.

4.투기소득과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하여 신자유주의 수탈 경제를 규제한다.

신자유주의는 복지를 시장화하고, 공공재를 사유화하고 사영화하여 공공의 것을 수탈해 왔다. 이와 같은 특혜 경제와 수탈 경제는 기본소득과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지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사회적 기본권 체계로 수립될 때만 해소될 것이다.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재원을 마련한다. 이자ㆍ배당ㆍ지대에 대한 중과세는 턱 없이 낮은 현행 세율을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는 것과 함께 보편적 복지의 재원을 형성할 것이다. 보편적 복지 체계 수립이 복지의 시장화 이전에 원래 공공의 것이었던 복지를 다시 공공의 것으로 되돌리는 행위라면,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재원 충당 방식은 금융 수탈에 대한 역수탈(逆收奪)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한 조세와 재정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수탈 경제를 제어하며 또한 강력한 소득재분배 효과도 낳는다. 이는 금융 공공성에 입각한 통제 및 사회화 정책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수탈 경제를 극복하는 두 종류의 중요 수단이 될 것이다.

5.기본소득은 서민 중심의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여 수출과 내수의 동반 성장을 이룩한다.

복지와 성장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복지는 성장의 부산물이 아니라 독자적인 목표라는 관점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복지 없는 성장은 불균등과 불평등을 심화한다. 바로 그와 같은 불균등과 불평등이 성장의 한계로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복지를 통한 성장만이 대안이다. 복지는 더 이상 성장의 후유증인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소극적 역할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성장의 전제 조건으로 파악된다. 특히 기본소득은 소득 양극화에 따른 저소비를 극복하고 내수를 확충하며 수출과 내수의 동반 성장이 가능하게 한다. 물론 미국, 유럽,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처럼 대규모 내수 시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이 수출 주도형 성장으로부터 즉각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수출과 내수의 동반 성장은 장기적으로는 총경제성장률과 내수 성장률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정도로 불균형이 시정되고, 단기적으로는 총경제성장률에 조응하는 내수 성장률의 비약적 증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은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아울러 내수 성장이 관건으로 떠오른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위기 해소의 방법이 된다. 현재 세계경제의 유례없는 위기는 금융중심국과 상품수출국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도록 강제한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세계시장에 추가 공급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상품수출국이 내수 시장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왔다. 이런 방식의 세계경제 질서는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정도로 위기에 빠졌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이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재정 확대를 지속하는 동안 한국과 같은 국가는 당분간 수출 호조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그런 방식으로 더는 내수 시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한국과 같은 국가들에게는 내수 위기뿐 아니라 수출의 위기도 닥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비록 무역의존도를 급격하게 줄일 수 없다 하더라도 수출과 내수의 동반 성장 형태로의 단계적인 전환은 시급한 과제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수요 중심 경제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서민들의 생필품 시장에서 수요가 늘어나고, 중소 내수 기업을 위한 시장이 형성된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수출 기업과 내수 기업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기업 간 격차가 임금 격차와 사회 양극화의 원인이 되어 온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기본소득은 서민 중심의 내수 성장을 위한 기초를 형성한다.

6.기본소득은 사회적 경제의 기초이며 경제구조 고도화에 기여한다.

고용 관계에 있지 않은 가사 노동이나 돌봄 노동 등은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 즉 불불(不拂) 노동이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이런 여러 종류의 활동을 사회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협동조합이나 공동소유형 기업에서의 노동처럼 임금노동 형태로 수행되지 않는 자발적 노동에 사회적 기초를 부여한다. 노동의 사회적 형태와 성격을 변화시킴으로써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안에서 비자본주의적인 사회적 경제의 기초를 형성한다. 나아가 기본소득은 노동의 질적 변화도 촉진한다. 충분한 기본소득의 지급은 창의적인 ‘지식 기반 노동’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며 경제구조의 고도화에 기여한다. 지식 기반 사회로의 전환은 사회구조 전반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지식 기반 사회에서 교육ㆍ훈련의 체계와 연구ㆍ개발의 체계는 산업ㆍ생산 체계와 대등한 정도의 독자적 체계가 될 것이며, 훈련비와 연구비의 지급은 임금 지급과 마찬가지로 여겨질 것이다. 생산적 노동과 소득의 연계를 완화하는 기본소득 제도는 이와 같은 전환의 기초이자 전제 조건이다.

7.‘임금노동의 사회’를 넘어 모두의 일이 인정받는 ‘사회적 필요 활동의 사회’로!

고용이 불안정한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당연하게도 대중의 소득 불안정을 극복하는 것이며, 기본소득은 이러한 과제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동시에 가장 전환적인 해법일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해방적 의의는 이보다 훨씬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와 관계된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비자발적 실업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노동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임금노동의 틀 밖에서 노동의 사회적 형태가 수립되면 임금노동으로부터의 배제는 임금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환이야말로 완전고용 사회를 달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가는 전환일 것이다. 고용 불안정이 소득 불안정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 점은 도리어 기본소득의 소극적 의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독립적이고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노동의 확대를 통해 임금노동 사회를 넘어서는 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로 속에서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의 사회를 넘어 모두의 일이 인정받는 사회적 필요 활동의 사회로 나아가는 적극적 전환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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