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못 채셨어요. 그런 눈칠?”

밑도끝도없이 불쑥 말을 하는 것이 아내의 버릇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돌아다보려니까, 아내는 마구리도 빠진 헌 맥고모자에 모기장을 어깨까지 뒤집어쓰고는 몸이 달아서 왕봉을 찾고 있다. 언제 누가 얘기를 걸었더냐 싶게 소광(巢框) 양 귀퉁이를 엄지와 둘째손가락으로 가벼이 들고 뒤 적인다. 인제 아주 손에 익은 솜씨다. 벌〔蜂[봉]〕들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뒤집어놓았다고 끄무레한 날씨 탓도 있기는 하지만 적의 본거지를 발견한 전투기처럼 아내의 머리를 에워싸고 법석이다.

그도 아내의 그런 물음에는 언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버릇이 되어 있는 터라, 그저 “응?” 코대답을 하고는 날로 파래 가기는 하면 서도 어딘지 아직 여름다운 하늘의 뜬구름을 지칠 줄 모르고 바라다보고 있었다. 우수(雨水) 때부터 물이 못나게 일을 한 농부들도 밭걷이도 대충 끝내고 논물도 빼고서 한숨 돌릴 무렵의 어느 날 오후였다. 하늘도 가을다워 여름의 그 초조해하는 기색이 없다. 그것은 마치 한가로운 소떼들이 끝없는 대초원을 유유히 거닐며 풀을 뜯고 있는 그림에 흰구름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향취 있는 담배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스무 개에 십육전짜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꿀처럼 달다.

“요 맛이라니…”

아내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눈치더니 다시 소광으로 눈을 옮기다가,

“아이, 따궈라.”

소리를 친다. 한 방 쐰 모양이다.

“한낮에 봤어야 할걸, 아이그, 아퍼!”

하면서도 열심히 찾더니,

“있어요! 있어! 그러면 그렇지 죽었을 린 없거든.”

하고 왕봉을 알려준다.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내는 소초를 한 장 한 장 되집어넣으면서 제 딴에는 아까 이야기의 계속인 듯이,

“남 선생님 요새 좀 수상하잖습니까?”

한다.

“수상타니, 뭐가?”

“그래요? 그럼 나만 괜히 그렇게 봤나…”

하고 다소 굳어지더니만 금방 또,

“그래두 좀 수상해.”

하면서 차근차근히 소광 간격을 골라서 뚜껑을 덮고 뒤집어썼던 모기장과 맥고모자를 벗어놓는다. 덩치가 큰 요량해서는 귀엽도록 잽싸게 몸을 다룬다. 땀에 앞머리가 쩍 달라붙은 것을 긁어넘기면서 아내는 또,

“남 선생님 말여요, 요새 아주 명랑해진 것 같잖아요? 나 뵘에 그런 것 같아.”

“요새라니, 언제부터?”

“요 한 일주일째…”

“글쎄, 나 보맨 별루 그런 티두 없어보이는구먼서두. 뭐 눈칠 챘나?”

“눈친 무슨 눈치…”

꼭 째인 희다 못해서 파아란 이〔齒[치]〕를 보이며 비쭉 웃는다. 입으로는 부인하면서도 ‘그런 일이 있답니다.’하는 식의 웃음이었다. 그는 며칠 전에도 아내한테서 한번 그런 의미의 말을 들은 일이 있는 터라 반드시 뭐 있었구나 싶어 남의 최근 행동을 이리저리 뒹굴려보았으나 통 수상한 데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더러 무슨 눈치를 챈 것이 있느냐 해도 생글 웃고만 있다.

남이란 두어 달 전부터 그한테 와서 몸조리를 하고 있는 그의 친구다. 중학 때부터 지독한 공부꾼이어서 대학까지 사뭇 우등으로 버틴 수재였다. 소위 수재형이란 대개 그렇지만 얼굴이 하얗게 희고 손은 마치 장마철의 수박 덩굴처럼 배리배리했다. 장난하느라고 아침 햇살에 비쳐보면 뼈대는 그렇지도 않지만, 노란 털이 까칠하게 선 것이 일종의 측은한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 옷을 차리고 나서면 그렇지도 않지만, 내복만 입었을 때 보면 애련하도록 뼈가 들여다보이는 새가슴에다, 멀쑥하게 긴 동체라든지, 목젖뼈가 쑥 불거진 껑충한 긴 목하며 보기에도 딱할 정도다. 법문학부를 나오는 길로 어떤 중학교에 취직을 하더니, 그 들고파는 데가 펄펄 뛰는 중학생들의 거의 만적(彎的)인 추진력에 기가 질리어선지 일년 전에 비교적 시간이 있는 여자전문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교육학 강의만을 맡은 터라 그렇게 고되지도 않은 모양이면서도 고질인 위병이 더치어 위궤양이 되었는지 소화불량쯤은 좋은 편이요, 가끔 혈담(血痰)을 뱉는 일까지 있었다. 위가 아프기 시작할 때 보면 오만상을 찌푸리고 이를 악문다. 그러고는 눈을 딱 감고서, 그 무슨 인간 최대의 시련이나 받는 것 같다. 그가 마침 한 삼년 전부터 서울서 백리 가량 떨어진 산중에로 이사를 온 터라 하루는 서울 갔던 길에 산간 전지요양을 권해보았던 것이다.

“글쎄 그래 볼까, 하긴 A 박사 말을 들으면 위도 위지만 폐가 어떨까 겁이 난다구두 그러구. 폐스럽잖겠나.”

“오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기차 정거장에서 십리나 되고 물이 있나, 경치가 좋은가, 실로 보잘데없는 평범한 산간인 것을 소설 쓰는 사람의 독특한 과장으로 마치 서서(瑞西)의 계곡이나 되는 듯이 풍을 치는 바람에 서울서 나서 서울서 큰 남은 회가 동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좋은데면 내일이라도 가도 좋으니 같이 가자고 서둘렀다. 처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집안 살림을 통 맡아 보아주는 동생 내외에 누이까지 있는 터고 학교도 벌써 두 달째나 쉬고 있는지라 남의 어머님도 제발 좀 데리고 가달라는 것이었다.

“처자가 딸려노면 이런 짓도 하기 어렵지. 그렇잖어요, 어머니?”

삼십이 지나도록 독신으로 있는 것이 오늘의 요양을 위해서였기나 하는 것처럼 남은 이런 말을 하며 이튿날 그를 따라온 것이었다.

한 열흘 지나는 동안에 남은 훨씬 좋아졌다. 죽도 별로 먹지 않던 남은 하루 한 끼씩은 밥도 먹었고 미열도 좀 뜨음해졌다. 평범한 산과 숲에 정도 붙이었는지 조반 후에는 가벼운 산책도 즐기었다.

“인제 궁촌이 아주 마음에 드네. 이만하면 여기 어디 집이라도 한 채 짓고 영주할 수도 있을 것 같으이.”

“부디 그러게. 우리도 고적하잖고 자네 어머님두 좋아하실 걸세.”

“어머니? 어머닌 안 돼, 지독히 귀족적이니까.”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밥도 두 끼씩 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궁촌 특산인 수박통을 들고 서울 집에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주일에는 서울로 가겠노라던 남이 갑자기 정말 밭뙈기라도 사서 집이나 짓고 여기 영주하고 싶다고 천연덕스럽게 서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아침에도 낚시질을 가면서 집터를 하나 물색해달라 한 일이 있기에 아내가 말하는 것도 그 말을 들었기 때문이려니쯤 생각했다. 명랑해진 것은 건강이 좋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더니 그날 저녁 남이 잡아온 피리를 기름에 튀겨 저녁을 먹고 나서 나무토막으로 만든 걸상을 뜰 코스모스밭 앞에 내어다놓더니 남은 정말 집터 이야기를 또 끄집어냈다. 우선 아쉬운 대로 논 여남은 마지기하고 밭 하루 갈이만 구해서 농사도 짓고 초가라도 좋으니 조촐하게 집도 짓겠다, 석유를 구하기가 힘드니 가스등을 사다 켜느니 설계가 그럴 듯하다. 화초와 나무도 백원만 던지면 쑬쑬히 구하겠더라. 그렇지만 다른 것은 못하더라도 목욕탕만은 만들고 싶다. 지금 쇠가마는 구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나무통이면 대수냐 ─ 남은 가을의 별 하늘을 쳐다보며 외듯이 이렇게 늘어놓고 있었다.

“이 사람이 미쳤나?”

그는 할 수 없이 웃어버렸다.

“미치긴 왜?”

남은 좀 의외라는 듯이 그를 꾹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하긴 자네가 들으면 우습겠지. 허지만 난 진정일세. 지금까진 몰랐는데 딱 떠나자구 드니까 궁촌이 여간 좋은 곳이 아닌 것 같아지네. 순박한 사람들하며 모략이 없는 산과 들, 그 숱한 꾀꼬리, 좀 보라구, 저 고운 감나무 가지를…난 궁촌에 와서 정말 자연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알았네.

자연의 너그러움을. 농부들두 이젠 여간 마음에 들잖거든! 어머니두…참 그랬지 ─ 자네한테 아직 보고를 못했네만 어머니하구두 의논했네.”

“허어, 벌써 거기까지?”

그가 호들갑스럽게 놀라보이니까 남은 가볍게,

“의논이랄 건 없구 귀띔만 했지.”

“그러구 보면 내가 완전히 졌는걸.”

“뭣이? 그럼 부인이 뭐라구 그러시던가?”

그가 그렇다고 웃으니까 남은 질겁을 하며 달구쳤다.

“무슨 소릴? 응, 뭐라고 그러시던가?”

“아니, 별말이 아니라, 요새 자네가 갑자기 아주 명랑해졌다고 그러데나.”

“그래? 흥, 할 수 없군. 역시 여자의 눈은 업수이 못하겠는걸.”

남은 꿍짜가 있다는 듯이 멋쩍게 웃는다. 그 웃음이 또 여간 어색지 않다.

남도 자기의 웃음이 어색했음을 깨달았는지 뜰나막신 뒤꿈치로 땅을 통통 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멀리 밤하늘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이 삼십이나 된 위인이 그만 일에 그렇게 당황해하는가 생각하니 그는 일종 귀여운 마음까지 들었다. 바로 십여 일 전 일이지만 남한테 여자 손님이 하나온 일이 있었다. 같은 학교에 있는 음악선생이 문병차로 과일상자를 들고 온 것이었다. 그때의 그 당황해하는 꼴은 마치 죄진 사람이 경관의 방문이나 받는 것처럼 보이어‘이 친군 나이 얼마나 되어야 여자 앞에 가서 말마디나 하게 될 건고.’속으로 웃은 일도 있었다. 그 꼴을 보고서 그는 그 A양이 다녀간 뒤에, 사내와 놀면 아이를 밴다는 말을 들은 소학교 여학생 아이가 하루는 배가 몹시 아프니까 이웃 남생도 아이와 줄넘기를 하고 놀아서 아이를 밴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자살을 꾀했다는 어떤 여선생님의 딸 이야기를 하니까 남은 정말 , 외골쑤 마음으로 골똘히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과일만 얻어먹었으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

이렇게 말할 때의 그 눈을 커다라니 뜨고 눈가가 신경질로 움직이는 표정이 하도 우스워서 그의 아내는 씻던 접시를 산산조각으로 깨먹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당자인 A양은 잠을 좀 덜 잔 흠은 있었지만 미끈한 현대적 체격을 가진 환하게 생긴 여자였다.

그는 남의 궁촌서 살고 싶어하는 말을 듣고 곧 그 A양과 짝을 지어 생각한 것이었다. ‘수줍쟁이인 남에게도 그런 일면이 있었던가.’하고 그는 속으로 놀랐다.

“그럼 올 가을 안으로라도 식을 할 작정인가?”

“식?”

남은 여우에 홀린 표정을 짓는다.

“식이라께?”

“결혼하랴는 거 아닌가?”

남은 기가 막히다 못해서 울상을 짓더니,

“자네네 부부한텐 손 들었네! 허지만서두 말이 끝나야 하잖나. 그러니까 자네가 좀 나서서 다리를 놔달란 말일세.”

“글쎄, 그건 자네 맘에 달렸겠지만서두 내게다 말을 시킨다면 A양보다는 유 양이 낫지 않은가 싶구먼.”

“뭣이라구?”

남은 역시 영문을 모르는 눈치다. 유 양이란 ○○여자전문과 같은 계통인 여학교 가사선생으로 있다가 의사가 되겠노라 여자전문을 들어가서 내년 봄이면 졸업을 하기로 되어 있는 좀 엉뚱한 여성이었다. 탈속한 몸매에 늘 아침이슬 무렵에 피는 풀꽃같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유 양도 한 번 A 양과 교대해서 자기가 손수 만들었다는 음료수에 요새는 보기 드문 과자상자를 들고 백리 길이나 되는 이 산중으로 남을 찾아 온 일이 있었던 것이다. 하이얀 깨끼저고리에 깜장 세루 치마가 물빛 바탕에 빨간 꽃무늬를 논 원피스 보다는 얼마나 고상해 보였는지 몰랐다. 사과하듯 속살속살하는 말소리도 다정한 맛이 있었다. 유 양은 한 시간 가량 놀다가 돌아갔었다. 그때 눈치로 보아서도 남이 A 양보다는 유 양한테 더 무관하게 하는 것 같은 눈치였기에 그는 유 양을 추천한 것이었다. 사실 그한테 고르란다면 A 양보다는 유 양을 고르기로 했을 것이었고 남이 궁촌 와서 산다면 이들 중의 한 여성이 배우자가 되리라고 짐작한 것이다.

남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멍하니 그를 쳐다만 보고 있더니, 상대란 도 아니요 “ A , 유도 아닐세. 자네로선 전혀 상상치도 못할 사람일세. 놀라 자빠지지만 않겠다면 말해도 좋지만…”

“안 놀람세. 자네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혼할 결심을 한 것으로써 나의 놀람은 충분하네. 참 잘 결심을 했네.”

“결혼이란 것도 조물주의 한 섭리일세. 대자연 속에 이렇게 살아보니까 그것을 잘 알겠네. 그건 그렇고 상대방인데, 여기엔 꼭 자네 힘을 빌려야겠네. 자네가 안 들면 절대루 안 될 사람야. 자네가 실팰 한다면 나의 궁촌 경영도 수포로 돌아가네.”

“누군가, 대관절. 내가 아는 사람인가?”

“금례일세!”

남은 톡 튀기듯 말을 했다.

“금례? 금례라께. 이 동리 금례?”

“그러네.”

“헤에, 금례라? 이건 암만 약속이 있었지만 놀라 자빠지지 않을 수 없네!”

하고 놀라며 그는 정말 뒤로 벌떡 자빠져 보이었다. 그러고는 손의 흙을 털면서,

“어떻게 된 겐가, 대관절?”

“아냐. 그건 물을 필요도 없구, 또 찬성이니 불찬성이니도 말할 것 없구, 단지 나서겠나 아닌가만 말해주게. 나서주지?”

“그야 나서두 좋지만…”

“그럼 그만야. 더 말할 것은 없어.”

상대가 금례라고 한다면 나설 사람은 그밖에는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이외에는 지주인 박 선달과 금례 큰아버지 되는 문만갑이가 있겠지만, 이 두 사람을 끌어내는데도 그가 필요했다. 금례란 대엿 마지기 자작에 열닷마지기 소작을 하는 문춘갑이의 고명딸이다.

문 서방은 산밑 세 집 뜸 중의 한 채인, 그와는 조그만 들창과 우물 하나를 격해 있는 집이다. 부지런키로도 유명하지만 근실하기로도 궁촌서 손꼽는 농군이었다 말적고 . 손장난하는 일 없고, 마음 바르고 ─ 무릇 원만한 사람을 말할 때 쓰는 일체의 용어가 다 들어맞을 수 있는 농부였다.

그가 처음 궁촌으로 이사를 왔을 때 동리 사람들은 단지 그가 서울서 왔다는 것과 양복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일에 적대시했었다. 품을 하루 사 써도 더 받아야 했고 나무 한 짐까지도 장에 내다 파는 값보다도 더 받아야만 주고 했었다. 이러한 그들 틈에서 혼자 들고일어난 것도 문 서방이었다.

“에이, 몹쓸 사람들. 그 사람 하나한테 몇 푼 더 받아서 부자 된다던가.

사람이란 서로 의질 해야 사는 게지…”

미움을 사면서도 그를 싸고돌았거니와 그렇다고 문 서방이 아첨을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싸돌기만 하지도 않는다. 문 서방은 도회생활에서 직업 없는 농촌으로 와서 마음이 탁 풀린 관계도 있겠지만 실상은 점심 한 끼라도 줄여보자고 늦잠을 자고 아침도 늦게 해먹는 그를 붙들고,

“댁에선 내 맘이지 누가 참섭이냐 할지두 모릅니다만 우리집 아이들이 배울까봐 탈이오. 걸핏하면 저집엔 아직두 일어나지두 않았는데 ─ 이럽니다 그려.”

이렇게 충고를 하다가 하루는 그를 끌어내어가지고,

“그따위 버릇을 동리에 길러놀 테면 당장 이 동리서 나가라!”

이렇게 막 윽박아댔던 것이다. 그래서 몹시 조심도 했지만 워낙 그가 소설을 쓰는 관계로 밤을 새우기가 일쑤요 그러니 자연 그의 아내도 따라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있어 늦잠자게 되는 것이다. 그럴라치면 마치 자기 며느리나 나무라듯 마당까지 들어와서 그만들 일어나라고 막 야단이다.

“난 자요. 낼 또 시아버님한테 야단만나게.”

아내는 조금만 늦어도 이렇게 달아났다.

─ 이 문 서방한테 치여난 금례다.

금례가 났을 때는 문 서방은 송곳도 꽂을 땅이 없었다고 한다. 타작을 하고 나면 벌써 양식 걱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병작 도지는 후한 편이고 대개 말섬 도지가 넘어 지주한테 뜯기고, 마름한테 곯리우고, 장릿벼다 곗돈이다 물다 보면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고명이라고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손톱이 닳도록 일에 들볶이었다. 여덟 살부터 벌써 절구질을 했고, 조당수물만 마시고 사는 그들이었던지라 금례는 절굿공이를 든 채 기절한 일까지도 있었다. 열 살 후로는 내리 줄다는 동생들을 업어주랴, 부엌일에, 맏딸인만큼 머슴 대신 들일에도 끌려다니어 정말 눈코 뜰 새가 없다.

“쟤가 일에 치여서 자라질 못하는구나.”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 사실 뼈가 굻어질 수도 없으리만큼 어린 금례한테는 과한 노동이었다. 그래도 문 서방은 물이 못 나게 달구친다.

“얘 이년아, 금례야! 뭘 그리 꼼지락대기만 하냐! 냉큼 못해!”

팽구리처럼 치맛자락에 바람이 일건만 문 서방은 걸핏하면 벼락을 내린다.

타고난 성품이 좀 급해놓으니까 말을 해도 부푸다. 어떤 때는 눈이 나오게 알밤을 쥐어박는 수도 있건만 금례는 눈물을 쪽쪽 짜면서도 말대꾸 한마디 않고 일만 했다. 그래 한번은,

“금례야, 애비가 잘못했다. 너 같은 아이가 어디 있다고 내가 때렸구나.

이놈의 손목쟁이를…”

이렇게 뉘우치기도 했다. 문 서방은 정말 마음이 아팠던지 눈물까지 흘렸었다.

금례는 올해 열여덟이나 허드렛일은 물론 들일에도 막히는 데가 없고, 꿰맴질도 매끈하다. 눈썰미가 있어서 멍석이니 바구니, 심지어 제 손으로 곱다랗게 물을 들여서 초신까지 삼아 신고 다니었다.

농삿일만 해도 이만저만한 풋머슴은 말도 못 붙여본다. 눈을 감고 만져만 보고도 은방조와 다마금을 구별하는 정도니 곡식의 거름이며 흙을 만져만 보고도 그 흙에 맞는 곡식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정확한 것이었다.

“금롄 인저 아무데 내놔두 구길 데 없을 게다. 내게 치여났으니 더 할말없지. 암만 큰 광작〔大農[대농]〕 집에 간대두 막힐 거라군 없으리라…”

문 서방이 이렇게 딸을 칭찬하게 된 것도 올해 들면서부터다. 나이가 찼으니 인제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서다.

문 서방은 어떤 사위를 고르는지 금례가 열네 살 때부터 몰려드는 신랑감을 함부로 막 내밀었다. 대개는 남의 땅 소작들이었지만 개중에는 제 땅마지기나 가진 사람도 있었고 한번은 자작농의 광작의 둘째아들도 있었던 터라 모두들 문 서방이 월급쟁이 사위를 고르느니라 했다. 하루는 문 서방이 젊어서 머슴살이를 할 때부터 친한 권삼성이가 와서 사돈이 되자고 했었다.

삼성의 아들은 보통학교를 나와서 면서기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 좋은 자리를 내차는 것을 보고는 그가 고르는 것이 반드시 월급쟁이가 아닌 것도 알려졌다.

“우리 금롄 농가루 보내야지 월급생활을 하는 집에 가서 뭘해.”

그러면서도 농사꾼의 사윗감이 나서면 헐렁이니 좀생원이니 불량하니 트집을 잡아서는 내찬다. 대학 출신인 남의 눈에 들 만하면 인물도 속 빠졌겠고 보니 침을 삼키는 총각들도 많았다. 권삼성의 아들도 그중의 하나다. 어디서 들었는지 뱀 허물 벗은 것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짝사랑하는 여자가 달라붙는다고 벌써 이태째나 그 꺼림칙한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원래 . 농사가 싫어서 서울 가서 일인 상점에 점원으로 있는 박달성이는 천원이 넘는 저금통장까지 보이면서 금례와 혼인만 하면 시골 와서 땅이라도 파먹겠노라고 문 서방을 졸랐었다. 이 말을 듣자 문서방은 불 붙은 맹수처럼 노했었다.

“뭣이라고? 이 사람, 한마디 더 해보게나! 시골 와서 땅이라도 파먹겠다구? 응, 땅이라도 파먹는다! 얘, 이 녀석 봐라. 그래 왜놈 집 고시깽이가 농군보다 더 장하단 말이겠지? 무엇이 어쩌구 어째! 땅이라두 파먹겠다구?”

마침내는 이놈이 되었다. 문서방은 골춤이라도 잡을 듯이 나대면서,

“우리 농군네가 왜놈 집 고시깽이만도 못하다? 이놈아, 난 군수두 쥐뿔두 부러울 것 없다. 군수두 우리 농군네한테 절하는 세상이야. 뭐가 어째? 땅이라두 파먹겠다구!”

이런 일이 있은 후로는 동리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댔다.

“금례두 불쌍하지, 그놈의 욕심쟁이 늙은이가 딸을 늙혀죽일 작정인가봐.

머슴 대신 부려먹을라구 그라잖나베!”

이런 세평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어쨌든, 이 문 서방의 딸을 남이 얻겠다니 딱한 일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하지만 박달성이처럼 혼을 나면 확실히 밑지는 일이었다.

그는 그한테서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문 서방을 이리저리 상상해보았다.

그러나 그로서는 문 서방을 찾아가기 전에 먼저 남의 태도가 어느 정도 진실한 것인가를 다질 필요가 있었다. 돌에서 나서 시멘트 위에서 자란 남이었다. 내려찌는 풀향에 어지럼증까지 일으킨 남이기도 했다. 낚시질을 가다말고 꾀꼬리 소리에 홀려서 오봉산을 종일 헤매다가 돌아오기도 하는 남이었다. 파아란 콩꽃이 열매가 된다고, 껍질을 뚫고 병아리가 나왔다고, 마치 무슨 위대한 신비나 발견한 것처럼 수선을 피우는 남이기도 했었다.

이 서울뜨기가 박꽃처럼 소탈한 금례한테 혹한 것은 되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었지마는, 서울뜨기는 어디까지든지 서울뜨기가 아닌가 한 것이었다.

이 사람 농담도 이만저만히 “ ! 해주게. 자네 그렇게 자꾸 다지면 난 불쾌할 뿐일세!”

남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기간이 너무 짧지 않으냐고 그는 핑계를 삼다가 혼이 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소설가가 기간을 운운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애는 없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의 소설은 밥맛밖에 안 난다. 나의 금례에게 대한 사랑을 기간 운운할 테거든 아예 소설을 집어치워라 ─ 남은 이렇게 막 몰아세웠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우리 현대인의 감격과 오십 년간 갖은 풍화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땅만 파고 살아오는 농군과의 감격이 다르다는 것, 더욱이 문 서방의 사람됨을 이야기함으로써 남을 단념케 하려고도 시험해보았던 것이다. 파다하니 굶으면서도 군수도 부러워하지 않는 문 서방 ─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금례를 얻을 자격도, 이런 시골에 와서 살 자격도 없다고도 말했었다.

그러나 남은 그와 사귄 이래로 일찍이 그런 예가 없었으리만큼 그 말에 노했었다.

“자넨 날 모욕할 작정인가! 자넨 감상적이니, 호기심이니 별 불유쾌한 용어를 다 쓰네만, 그것은 나를 모욕하는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세! 날 이 이상 경박한 놈을 만들지 말아주게!”

기실, 그는 깊이 남을 믿고 있었다. 남이 열이 나서 변명하는 것이 되레 우스웠을만큼 믿고 있었다.

“만일 금례가 안 온대도 나는 농촌에서 살겠네!”

남은 이제 할말을 다 했노라는 듯이 입을 딱 봉했다. 남과의 이런 알력이 있은 지 며칠 후 저녁을 먹고 그는 집을 나섰다. 싸리문을 지치려고 하니까, 방에 남은 줄만 알았던 남이 따라나오면서 좀이 쑤셔서 꾹하니 방에 들어앉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게!”

“글쎄, 워낙 고집퉁이가 돼서 원!”

이렇게 말은 하나, 남한테는 말을 않았지만 기실 그의 처가 미리 어느 정도의 공작은 해두었다. 금례와 금례 어머니는 그럴듯이 듣는 모양이었다.

더욱이 금례는 퍽 좋아하는 눈치더라는 것이었다.

“금례하구 남 선생님하구는 어느 정도 얘기가 됐나봐, 그런 게지?”

아내는 이렇게 킥킥댔다. 그리고 이제 생각하니 금례가 풋콩이니, 계란이니, 호박 같은 것을 가져온 것도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 선생님 상에 놓으라고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럼 난 공연히 미움받잖았나.”

그도 웃었다.

문 서방은 아내의 보고대로 사랑에서 혼자 새끼를 꼬고 있었다.

하늘의 파아란 빛깔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밝은 달밤이다. 흠씬 익어가는 백곡의 흐뭇한 향기가 물씬물씬 땅 위로 기어올라온다. 이 엄숙한 순간에 경의나 표하듯 우주는 죽은 듯이 고요하다. 철적은 반딧불 하나가 이 파아란 포물선을 그으며 지나가자 그 반딧벌레의 날갯소리가 곧 들려오는 듯싶은 정적이었다. 밭머리에 멋쩍게 키가 큰 수숫잎이 산들바람에 스치는 소리도 이 경건한 밤의 침묵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었다.

“어서 오슈, 원, 발 들여놀 데두 없어노니.”

문 서방은 꼬던 새끼타래를 한쪽으로 밀어치우며 그를 맞아들였다.

“저녁엔 화롯불 생각두 나는데요.”

“참 세월은 빠르지.”

그러면서도 문 서방은 연성 새끼를 꼰다. 공출 새끼까지 치면 마흔 타래는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잠시 끊긴 틈을 타서 그는 실로 긴 서두를 늘어놓고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말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는 문 서방이 생각함직한 것이며, 문 서방이 뺑소니를 칠 수 있을 만한 말까지를 미리 앞질러서 해버리었다. 남 군이 자기 옆에 같이 살면 나도 여기서 영주하겠다.

그러니 날 보아서라도 금례를 달라고 졸랐다. 문 서방이 그의 말을 신중히 듣고 있다는 것은 무슨 애기를 하면서도 일찍이 손을 쉬어본 적이 없는 그가 손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듣고만 있던 문 서방이 입을 열었다.

“고마운 말씀이외다. 과만하외다.”

“아, 승낙해 주셨습니다그려!”

그는 정신이 번쩍 났다.

“고마운 말씀이오.”

문 서방은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과만한 말씀이외다.”

“남 군도 퍽 좋아할 겝니다.”

“과만하구말구.”

문 서방은 천천히 또 새끼를 끌어당긴다. 그것을 보고 그도 일어나며,

“그럼 그렇게 알구 갑니다.”

하고 일어서 나오는데 문 서방은,

“과만한 얘기지요.”

또 한마디를 하고는 정말 금례한테는 과만하다고 다시 설명을 한다. 그러더니,

“그럼 선생님, 그 양반한테 말을 전해주시오. 고마운 말씀이라구 너무 과만하다구. 그러고 고마운 말씀이나 며칠 좀 참아달라구, 저 어멈하구두 의논을 해야겠구, 제 말두 들어봐야지요.”

“암, 그렇구말구요. 당자 말이 젤이지요!”

이만하면 됐다고 그는 뛰어나왔다. 울타리 옆에서 엿듣고 있던 남이 같이 뛰어오며 손을 잡고 흔들었다.

“성공! 자네두 그렇게 안 봤더니 상당한데.”

“들었나?”

“응.”

“글쎄, 어떻게 될지.”

“됐네 됐어. 그렇게 말해서 안 들을 사람 없겠네. 자네 그러다가 처녀 유괴마가 되리.”

둘은 커다랗게 웃었다.

며칠이라고 그랬지만 이튿날이면 회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당자와는 그날 밤 얘기가 될 거고, 문 서방의 형 만갑이도 한동리에 사는 터였다. 그랬던 것이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다.

그는 그의 아내를 두 번이나 보내 보았으나 아무런 말도 못 듣고 돌아왔다. 금례 모녀는 처음부터 마음이 턱 실리나 통 문 서방이 대답을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럭저럭 일주일이나 지났다. 참다못해서 그가 문 서방을 찾아가니까 문 서방은 여전히,

“온, 과만해서…”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도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 서방의 형인 만갑이를 찾아가서 졸라보았다. 만갑이도 과만하다고 하며 자기도 기실 아우의 고집 때문에 말다툼까지 했다는 것이다. 교섭을 시작한 이튿날 남은 준비를 하겠노라 서울로 가고 없었다. 남의 어머니도 처음에는 펄펄 뛰더니 자식이 죽는다고 덤비니까 수그러졌다는 소식까지 왔다. 금례한테도 그렇게 전해달라고 마치 약혼한 색시처럼 다루는 데는 질색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금례한테 전할 도리도 없어서 어리둥절하고 말았는데 하루는 남이 어머니와 함께 불쑥 내려왔다.

“내가 졌다우. 한번 말을 꺼내면 그만인 사람이니까.”

남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쓸쓸히 웃고 있었다. 남의 어머니도 금례를 훔쳐보고는 무식해서 그렇지 맹통하지는 않겠다며 올라가버렸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나 좋이 못마땅한 눈치다.

농촌에서는 한창 바쁠 때다. 모두들 타작 준비를 하느라고 법석이었다. 문서방네서도 온 집안이 끓어나와서 도급기를 손질한다, 마당을 고른다, 야단이었다. 그래서 통 말을 붙여보지도 못하고 지냈다.

“어떻게 되는 겐고?”

남은 맥이 탁 풀린 모양이었다.

“내버려두게. 타작이나 끝내구 보세. 농사라구 지어서 손 툭툭 털고 일어설 때는 마음이 돌아서리. 두고 보지.”

초조한 채 다시 십여 일이 지나서야 문 서방네 추수도 대략 짐작이 되었다. 다 갚고 나면 벼 닷 섬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문 서방은 깊이 장 속에 넣어두었던 당목 홑두루막을 꺼내 입고 정거장으로 나갔다. 아무도 몰랐지만 서울 남의 집을 찾아간 것이었다.

가보니 그것은 과연 부잣집다웠다. 삼십여 칸이나 되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높은 벽돌담이 둘러 있었다.

“천석꾼이는 된다! 거짓말은 아니었거든!”

문 서방은 담 밖에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돌아왔다. 오래 끌어오던 문 서방의 생각은 내려오는 기차 속에서 벌써 결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늦게서야 문 서방이 그 집에를 찾아왔다.

나란히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던 그들은 벌떡 일어났다. 문 서방은 대답이 너무 늦은 것을 정중히 사과하고 기실 오늘 서울 댁을 갓으로 보고 왔노라 했다. 굉장한 댁이라고 입에 침이 마른다.

“거 왜 그냥 오셨습니까. 들어가셨더면 어머니두 퍽 좋아하셨을 껜데요.”

“원 천만에요. 이런 더러운 발을 해가지구 그런 댁엘… 원, 천만에 말씀이지요.”

“그래 작정이 됐습니까?”

이때를 놓치지 말자고 그가 다르쳤다.

“네, 작정을 했습니다. 원 과만해서요…”

“잘 작정을 하셨습니다.”

둘이 함께 머리를 숙이었다. 그러니까 문 서방은 득득 긁으면서,

“정말 너무 과만해서요! 금례를 달라시면 댁에 보내긴 하겠쇠다만, 원 과만해서 ─ 하인으로나 보내시라면 건 몰라도…”

“네?”

농담이니라 하고만 있으려니까, 문 서방이 다시,

“부엌띠기로나 달라시면 몰라두 지금가지 얘긴 그만두겠쇠다. 원 과만해서요… 말이 됩니까, 과만하구말구요.”

이렇게 말을 하더니 그대로 일어서버리는 것이다.

둘은 인사도 못하고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금례가 장돌이와 말이 되어 음력 시월 초열흘날 잔치를 한다는 소문이 돈 것은 그런 지 달포밖에 안 돼서였다. 시월 초열흘이라면 앞으로 보름밖에 남지 않았었다. 장돌이는 삼모자의 식구는 단출하나 제 땅 한 마지기도 없는 순 소작인이었다. 그러나 문 서방은 장돌이 자랑을 이렇게 하고 다니었다.

“뭐? 장돌이가 날털터리라구? 어떤 놈이 그따우 소릴 하구 다닌다디. 사람이 털스럽고, 부지런하고, 고지식하구, 그러면 됐지! 이보다 더 좋은 밑천이 있다던가! 또 뭐, 송곳 꽂을 땅 한 뙈기 없다구? 왜 없어. 논이 섬지기가 넘것다, 밭이 사흘갈이나 되어, 집 있어, 사람 착실해!

문 서방의 말은 소작권이란 곧 땅문서와 마찬가지다. 지만 착실하면 땅 뗄 놈이 누구냐.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돈은 몇 만 냥 있어도 사람이 변변치 못하면 당장에라도 거지가 되지만 착실한 마음자리는 어떤 놈이 도적질도 못해 가는 큰 보배다. 이 보배와 돈과 바꿀 시러베아들놈이 있느냐.

─ 이렇게도 떠들었다.

그러나 장돌이 자랑을 하는 것은 유독 문 서방뿐이 아니다. 생각 있는 동 리 사람들은 다 이렇게 그를 칭찬했다.

“문 서방이 사윈 잘 골랐느니. 그 사람 심지가 고우니까 그런 사위가 되 었지. 그 서울띠기 녀석을 주었어 보게나, 오쟁이지기 십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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