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서(曆書)

편집

옛적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역법(曆法)에서 정월을 세운 것은 이른 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눈과 얼음이 녹고, 동면하던 벌레와 동물들이 활동하며, 온갖 초목들이 힘차게 새싹을 틔우고, 두견새가 먼저 울부짖는다. 만물은 세시(歲時)와 더불어 동쪽에서부터 생장하고, 차례로 네 계절을 거쳐 마침내 겨울이 가고 춘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에 수탉이 세 번 울면 마침내 새날이 밝아온다. 열두 달의 절기 순서에 따르다가 건축(建丑, 북두칠성의 자루가 하늘의 축 방향을 가리키는 달로 12월을 뜻한다)에 끝난다. 해와 달이 운행하면 밝아진다. 밝음이 어른이고, 어두움은 어린이이다. 어둠과 밝음은 암컷과 수컷의 관계와 같다. 암컷과 수컷이 대를 이어 일어나고 또 맹춘이 정월이 되는 역법과 서로 부합된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동쪽에서부터 밝아오고, 달은 서쪽에서부터 밝아오기 시작하여 동쪽으로 진다. 정월을 정할 때에 하늘의 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또 사람의 도리를 따르지 않으면 모든 일이 쉽게 무너지고 이루어지기가 어렵게 된다.

제왕이 성(姓)을 바꾸고 하늘의 명(命)을 받아 새로운 왕조를 세울 때에는 반드시 맨 처음부터 신중해야한다. 정삭(正朔, 정월 초하루. 역성혁명을 이룬 제왕이 새로 제정하여 반포함)의 역법을 고치고, 복식(服飾)의 색깔을 달리하고, 천체 운행의 시작되는 근본을 탐구하여 그 뜻을 순순히 받아들어야 한다.

사마천의 논평

편집

태사공은 말했다.

“신농씨(神農氏) 이전의 일은 너무나 오래되어 거론할 필요가 없다. 황제(黃帝) 때에 성력(星曆, 천문역법)을 고찰하고 역법을 제정하고, 오행(五行)의 차례를 세우고, 음양이 소멸되고 생성되는 규율을 확립하였으며, 윤달을 두어 일 년 열두 달의 크고 작은 차이를 바로 잡았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신에게 각기 제사를 올리고, 기타 물류(物類)에 대해서는 적합한 인재에게 관직을 주었는데, 이를 오관(五官, 오행을 맡은 다섯 관원. 즉, 목을 담당하는 장관인 구망, 화를 담당하는 축융, 금을 담당하는 욕수, 수를 담당하는 현명, 토를 담당하는 후토. 혹은 황제 시대에 오색구름 이름으로 다섯 가지 관직명을 삼았는데, 이를 청운씨, 진운씨, 백운씨, 흑운씨, 황운씨로 알려짐)이라고 했다.

각기 맡은 직분에 따라 정무에 힘쓰니 서로 혼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신뢰감을 갖게 되었고, 신도 영명한 덕을 밝힐 수가 있었다. 백성은 신과 직책이 달랐지만 서로 공경하고 번거롭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그들에게 곡식을 가꿀 수 있게 했으며, 백성들은 제사를 지내 제물을 바침으로써 재앙과 화(禍)가 생기지 않았고 다함이 없이 바라는 바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소호씨(少皞氏)가 쇠락한 후에 구려족(九黎族)이 덕정(德政)을 어지럽히자 백성과 신의 관계가 마구 뒤섞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재앙과 해악이 거듭 일어났고, 나쁜 기운이 끊임없이 생기게 되었다. 전욱(顓頊)이 제왕의 자리를 이어받자 곧 남정(南正, 상고 시대 관직명으로 목정(木正)이라고도 한다.) 중(重)에게 하늘에 관한 일을 주관하게 하여 신에 올리는 제사를 맡겼고, 화정(火正, 상고 시대 관직명으로 북정(北正)이라고도 한다. 불을 관장함) 여(黎)에게 땅에 관한 일을 주관하게 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을 맡겼다. 다시는 과거의 전통을 회복시키고, 서로 침범하고 모독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후에 삼묘족(三苗族)이 구려족의 행적을 따라서 난을 일으켜 중(重), 여(黎)의 두 관직을 모두 없애자, 윤달을 계산하고 못하고 혼란이 생겼으며 정월이 소실되었으며 섭제성(攝提星, 절후를 맡은 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역법과 천체의 운행의 질서를 잃게 되었다. 당요(唐堯, 요임금) 때에 다시 중(重)과 여(黎)의 후손을 임용해 그들로 하여금 옛것을 잊지 않도록 하고 다시 그들로 하여금 원래의 직무를 돌아 보도록 하고, 또한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라는 관직을 설립했다.

천시(天時)의 변화가 바른 법도에 맞게 되자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비와 바람이 적절하게 되자 무성한 기운이 이르렀고, 백성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요절하는 일이 없어졌다.

요 임금은 나이가 들어 노쇠해지자 순(舜)에게 선양(禪讓)했다. 그는 문조묘(文祖廟)에서 순에게 훈계하며 말하기를 “하늘의 역수(曆數)을 만드는 중임은 당신 한 몸에 달려있도다.”라 했다. 순도 요임금에게 들은 그 말을 똑같이 하나라 우(禹)에게 전해주었다. 이를 살피어보면 역법이 제왕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 것을 알 수 있다.

하(夏)나라 때에는 정월(正月)을, 은(殷)나라 때에는 12월을, 주(周)나라 때에는 11월을 정삭(正朔, 정월 초하루)로 삼았다. 대개 삼왕(三王) 시대의 정삭은 마치 순환되는 것 같아서 궁극에 다다르면 다시 근본으로 돌아온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절기의 차례도 조화를 잃지 않으며, 도가 없으면, 즉 왕이 반포한 역법도 제후의 나라들이 실행하지 않게 된다.

(주나라의) 유왕(幽王), 여왕(厲王) 이후에는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미약해져 열국의 경대부들이 정권을 잡자, 사관들은 정확한 시기를 기록하지 않았고, 군주가 고삭(告朔, 천자가 정삭(正朔)을 제후에게 반포하는 것)의 예를 거행하지 않았다. 고로 역법과 천문학자들의 자제가 각지로 분분하게 흩어졌다. 그중에 어떤 이는 중국의 여러 제후국에 흩어져 있었지만 어떤 이는 오랑캐의 땅으로 가버렸다. 이 때문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도가 황폐하지고 통일되지 않았다.

주나라 양왕(襄王) 26년에 윤 3월을 두었는데, 『춘추(春秋)』에는 윤월을 두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고대의 선왕들이 역법의 규칙을 제정할 때에 먼저 역원(曆元, 역서의 근원. 역법 계산의 기점)과 년, 월, 일 등의 개시하는 시각을 정했고, 다시 매달 중순에 열 두 절기에 두었으며, 매달 남는 시간을 모아서 한 해의 마지막으로 돌려 윤달에 귀속시켰다. 일 년의 시작을 사립(四立, 입춘, 입하, 입추, 입동)에서부터 추산하여 절기 차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였고,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은 매달 중순에 절기를 두어 백성들이 미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였고, 남는 시간을 윤달에 귀속시킴에 따라 일의 어그러짐이 없게 하였다.

그 후 전국(戰國) 시대에는 각국의 목적은 단지 자국을 강성하게 만들고 적에게 승리하는 데에 있었고, 또한 당면한 위기에서 벗어나고, 분쟁을 해결하는데 정신을 뺏겼다. 그렇기 때문에 역법을 제정하는 일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시기에는 오로지 추연(鄒衍)만이 오덕지전(五德之傳)[1]에 밝았으며, 음양이 소멸되고 생성되는 이치를 퍼뜨려서 제후들에게 그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또한 진(秦)나라가 6국(六國)을 멸할 때에는 전쟁이 극심했으며, 뒤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역법 연구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또한 오행(五行) 상극(相克)의 이치에 자못 관심을 기울여 스스로 오행(五行) 중에 수덕(水德)의 상서로움을 얻었다고 여겼으며, 황하의 명칭을 고쳐서 ‘덕수(德水)’라고 불렀다. 그리고 10월을 정월로 삼았고, 오색 중에 흑색을 숭상했다. 또한 역법에 윤달을 두었지만 그 정확한 진상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한(漢)나라가 흥기하자 고조(高祖)는 말하길 “북치(北峙)가 나를 기다렸기에 세웠다.(고조가 북치에서 오제의 신위를 갖추어놓고 흑제(黑帝)에게 제사 지낸 것을 일컫는다.)”라고 하고 스스로 수덕(水德)의 상서로움을 얻었다고 여겼다. 당시 일부 역법의 이치에 밝았던 사람들과 장창(張蒼) 등도 모두들 그렇게 여겼다. 이때 천하가 금방 평정되었기에 나라의 기강에 큰 틀을 세울 때였으나, 고후(高后, 여태후)가 여주(女主, 여자 주군)가 되어 정권을 장악했다. 그래서 모두가 역법에 대해 더 이상 연구할 틈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진(秦)나라의 정삭과 복색을 그대로 답습했다.

효문제(孝文帝) 때에 이르러 노(魯)나라 사람인 공손신(公孫臣)이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 왕조가 오행(五行)의 상승(相勝) 순서에 따라 일정하게 바뀌어 진다는 학설로,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추연(騶衍)이 창안함)’을 근거로 삼아 황제에게 글을 올려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는 토덕(土德)을 얻었으니 마땅히 원년을 고치고, 정삭을 바꾸며, 복색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땅히 하늘에서 상서로운 조짐을 보일 것이니, 황룡이 출현하게 될 것입니다.”

(황제는) 이 일에 대해서 승상 장창에게 하문하니, 장창은 자신이 율력(律曆)을 배운 적이 있는데, 공손신의 학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일을 추진하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 황룡이 성기(成紀) 땅에 출현하니 장창은 자신의 허물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장창은 자신이 저술하고 싶었던 역법에 관한 논술 또한 완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신원평(新垣平)이란 방사(方士)가 스스로 망기(望氣, 망운(望雲)이라고도 하며, 구름을 보고 길흉을 예언하는 점술)의 기법을 터득했다고 황제에게 자랑하면서 역법과 복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그가 난을 일으켰기 때문에 효문제는 그의 주장을 폐기하고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 황상(皇上, 한무제)가 즉위하자 방사인 당도(唐都)를 불러서 천부(天部, 28수(宿))에 대해 측량을 하였다. 그리고 파군(巴郡) 낙하(落下)의 굉(閎)이란 사람에게 해와 달, 별 등의 운행에 대해 계산하도록 했다.

그런 후로 일진(日辰, 지간(支干))이 운행하는 도수와 하(夏)나라 역법을 같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연호를 바꾸고, 관직의 명칭을 고쳤으며, 태산(泰山)에서 봉제(封祭)를 올렸다. 그리고 어사(御史)를 불러 이르기를 “지금까지 역법을 담당하는 관리가 성도(星度, 별이 운행하는 도수)에 대해 측량하지 못했으니, 널리 인재를 모으고 의견을 듣고 어떻게 성도를 측정해야 할 것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어떻게 측정할 것에 대한 만족할 답변을 얻지 못했다. 대략 듣자니 예전에 황제(黃帝)는 성스러운 덕과 신령이 서로 결합하여 죽지 않고 용을 타고 신선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일찍이 천제의 명칭과 운행 규칙을 증험했다고 한다. 또 오음(五音) 청탁(淸濁)의 높낮이를 확정짓고, 사시(四時)와 오부(五部, 오행(五行))의 관계를 확립했으며, 이십사기(二十四氣)와 만물, 천체의 운행에 대해 분수(分數)를 명확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의 연대는 너무 오래되었다! 기록은 완전하지 못하고 예악도 문란해져서 짐은 그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짐은 오직 이전의 역법을 밝혀내어 좇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일분(日分, 일수(日數)의 단위)을 역산하고, 수덕(水德)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인 토덕(土德)을 서로 결합하려고 한다. 지금 태양이 바로 하지(夏至)를 순행하니, 황종(黃鐘)으로 궁성(宮聲)을 삼고, 임종(林鐘)으로 치성(徵聲)를 삼고, 태주(太簇)로 상성(商聲)을 삼고, 남려(南呂)로 우성(羽聲)를 삼고, 고선(姑洗)으로 각성(角聲)을 삼는다. 이후로 24절기가 정상을 회복하고, 우성(羽聲)이 맑은 소리를 회복하며, 율명(律名)도 다시 회복되어 바르게 될 수가 있었으며, 자일(子日)은 동지(冬至)로 삼았다. 이후에 음양이 떨어지고 합치는 도가 실행될 수 있었다.

이미 11월 갑자(甲子) 삭일(朔日) 새벽에 동지가 관측되었으니, 마땅히 원봉(元封) 7년을 태초(太初) 원년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연명(年名)을 ‘언봉섭제격(焉逢攝提格)’[2]이라 하고, 월명(月名)을 ‘필취(畢聚, 정월)’라고 부르고, 일명을 갑자(甲子)라고 하며, 또 야반(夜半) 삭단(朔旦)을 동지로 삼았다.”

역술 갑자편(曆術 甲子篇)

편집

태초(太初) 원년에 연명(年名) 언봉섭제격(焉逢攝提格), 월명(月名) 필취(畢聚), 날은 갑자(甲子)이고, 야반(夜半) 삭단(朔旦)을 동지로 삼았다.

정북(正北)[3]

편집

태초(太初)

편집

원년(BC 104) 갑인(甲寅) 12개월 = 0일, 0분 : 0일, 0분 = 0일, 0분 : 0일, 0분

2년(BC 103) 을묘(乙卯) 12개월 54일, 348분: 5일, 8분

3년(BC l02) 병진(丙辰) 윤년13개월 48일, 696분 10일, 16분

4년(BC 101) 정사(丁巳) 12개월 12일, 603분 15일, 24분

천한(天漢)

편집

원년(BC 100) 무오(戊午) 12개월 7일, 11분 21일, 0분

2년(BC 99) 기미(己未) 윤년13개월 = 1일, 359분 26일, 8분

3년(BC 98) 경신(庚申) 12개월 = 25일, 266분 : 31일, 16분

4년(BC 97) 신유(辛酉) 12개월 19일, 614분 36일, 24분

태시(太始)

편집

원년(BC 96) 임술(壬戌) 윤년13개월 = 14일, 22분 : 42일, 0분

2년(BC 95) 계해(癸亥) 12개월 = 37일, 869분 47일, 8분

3년(BC 94) 갑자(甲子) 윤년13개월 = 32일, 277분 52일, 16분

4년(BC 93) 을축(乙丑) 12개월 56일, 184분 57일, 24분

정화(征和)

편집

원년(BC 92) 병인(丙寅) 12개월 50일, 532분 3일, 0분

2년(BC 91) 정묘(丁卯) 윤년13개월 44일, 880분 8일, 8분

3년(BC 90) 무진(戊辰) 12개월 8일, 787분 13일, 16분

4년(BC 89) 기사(己巳) 12개월 3일, 195분 18일, 24분

후원(后元)

편집

원년(BC 88) 경오(庚午) 윤년13개월 57일, 543분 2일, 8분

2년(BC 87) 신미(辛未) 12개월 21일, 450분 29일, 8분

시원(始元)

편집

원년(BC 86) 임신(壬申) 윤년13개월 15일, 798분 34일, 16분

정서(正西)[4]

편집

시원(始元)

편집

2년(BC 85) 계유(癸酉) 12개월 39일, 795분 39일, 24분

3년(BC 84) 갑술(甲戌) 12개월 34일, 113분 45일, 0분

4년(BC 83) 을해(乙亥) 윤년13개월 28일, 461분 50일, 8분

5년(BC 82) 병자(丙子) 12개월 52일, 368분 55일, 16분

6년(BC 81) 정축(丁丑) 12개월 46일, 716분 0일, 24분

원봉(元鳳)

편집

원년(BC 80) 무인(戊寅) 윤년13개월 41일, 124분 6일, 0분

2년(BC 79) 기묘(己卯) 12개월 5일, 31분 11일, 8분

3년(BC 78) 경진(庚辰) 12개월 59일, 379분 16일, 16분

4년(BC 77) 신사(辛巳) 윤년13개월 53일, 727분 21일, 24분

5년(BC 76) 임오(壬午) 12개월 17일, 634분 27일, 0분

6년(BC 75) 계미(癸未) 윤년13개월 12일, 42분 32일, 8분

원평(元平)

편집

원년(BC 74) 갑신(甲申) 12개월 35일, 889분 37일, 16분

본시(本始)

편집

원년(BC 73) 을유(乙酉) 12개월 30일, 297분 42일, 24분

2년(BC 72) 병술(丙戌) 윤년13개월 24일, 645분 48일, 0분

3년(BC 71) 정해(丁亥) 12개월 48일, 552분 53일, 8분

4년(BC 70) 무자(戊子) 12개월 42일, 900분 58일, 16분

지절(地節)

편집

원년(BC 69) 기축(己丑) 윤년13개월 37일, 308분 3일, 24분

2년(BC 68) 경인(庚寅) 12개월 1일, 215분 9일, 0분

3년(BC 67) 신묘(辛卯) 윤년13개월 55일, 563분 14일, 8분

정남(正南)[5]

편집

지절(地節)

편집

4년(BC 66) 임진(壬辰) 12개월, 19일, 470분 19일, 16분

원강(元康)

편집

원년(BC 65) 계사(癸巳) 12개월 13일, 818분 24일, 24분

2년(BC 64) 갑오(甲午) 윤년13개월 8일, 226분 30일, 0분

3년(BC 63) 을미(乙未) 12개월 32일, 133분 35일, 8분

4년(BC 62) 병신(丙申) 12개월 26일, 481분 40일, 16분

신작(神爵)

편집

원년(BC 61) 정유(丁酉) 윤년13개월 20일, 829분 45일, 24분

2년(BC 60) 무술(戊戌) 12개월 44일, 736분 51일, 0분

3년(BC 59) 기해(己亥) 12개월 39일, 144분 56일, 8분

4년(BC 58) 경자(庚子) 윤년13개월 33일, 492분 1일, 16분

오봉(五鳳)

편집

원년(BC 57) 신축(辛丑) 12개월 57일, 399분 6일, 24분

2년(BC 56) 임인(壬寅) 윤년13개월 51일, 737분 12일, 0분

3년(BC 55) 계묘(癸卯) 12개월 15일, 654분 17일, 8분

4년(BC 54) 갑진(甲辰) 12개월 10일, 62분 22일, 16분

감로(甘露)

편집

원년(BC 53) 을사(乙巳) 윤년13개월 4일, 410분 27일, 27분

2년(BC 52) 병오(丙午) 12개월 28일, 317분 33일, 0분

3년(BC 51) 정미(丁未) 12개월 22일, 665분 38일, 8분

4년(BC 50) 무신(戊申) 윤년13개월 17일, 73분 43일, 16분

황룡(黃龍)

편집

원년(BC 49) 기유(己酉) 12개월 40일, 920분 48일, 24분

초원(初元)

편집

원년(BC 48) 경술(庚戌) 윤년13개월 35일, 328분 54일, 0분

정동(正東)[6]

편집

초원(初元)

편집

2년(BC 47) 신해(辛亥) 12개월 59일, 235분 59일, 8분

3년(BC 46) 임자(壬子) 12개월 = 53일, 583분 4일, 16분

4년(BC 45) 계축(癸丑) 윤년13개월=47일, 931분 9일, 24분

5년(BC 44) 갑인(甲寅) 11개월 11일, 838분 15일, 0분

영광(永光)

편집

원년(BC 43) 을묘(乙卯) 12개월 6일, 246분 20일, 8분

2년(BC 42) 병진(丙辰) 윤년13개월 0일, 594분 25일, 16분

3년(BC 41) 정사(丁巳) 12개월 = 24일, 501분 30일, 24분

4년(BC 40) 무오(戊午) 12개월 18일, 849분 36일, 0분

5년(BC 39) 기미(己未) 윤년13개월 13일, 257분 41일, 8분

건소(建昭)

편집

원년(BC 38) 경신(庚申) 12개월=37일, 164분 46일, 16분

2년(BC 37) 신유(辛酉) 윤년13개월=31일, 512분 51일, 24분

3년(BC 36) 임술(壬戌) 12개월 = 55일, 419분 57일, 0분

4년(BC 35) 계해(癸亥) 12개월 = 49일, 767분 2일, 8분

5년(BC 34) 갑자(甲子) 윤년13개월 = 44일, 175분 7일, 16분

경녕(竟寧)

편집

원년(BC 33) 을축(乙丑) 12개월 = 8일, 82분 :2일, 24분

건시(建始)

편집

원년(BC 32) 병인(丙寅) 22개월 2일, 430분 18일, 0분

2년(BC 31) 정묘(丁卯) 윤년13개월 56일, 778분 13일, 8분

3년(BC 30) 무진(戊辰) 12개월 = 20일, 685분 28일, 16분

4년(BC 29) 기사(己巳) 윤년13개월 = 15일, 93분 33일, 24분

이상이 「역서」이다. 대여(大餘)는 남은 일의 수를 지칭하고, 소여(小餘)는 남은 분의 수를 지칭한다. 단몽(端蒙)은 연명(年名)이다. 지지(地支): 축(丑)은 적분약(赤奮若)이라고 하고, 인(寅)은 섭제격(攝提格)이라 한다. 천간(天干): 병(丙)은 유조(游兆)라고 한다. 정북(正北)에서는 동지가 자시(子時)에, 정서(正西)에서는 동지가 유시(酉時)에, 정남(正南)에서는 동지가 오시(午時)에, 정동(正東)에서는 동지가 묘시(卯時)에 있다.

  1. 오덕이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 등 다섯 종류의 물질에게 덕성(德性)을 부여하여 이를 본체(本體)로 삼고, 여기에 운(運)이라는 음양 변화의 작용성을 부가한 뒤, 이 오덕이 상생상극(相生相克)하며 자연의 명운(命運)과 왕조의 흥망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2. 언봉이라는 것은 알봉(閼逢)과 같은 것이다. 섭제격이라는 것은 섭제(攝提)와 같은 것으로 십기(十紀)의 하나이고, 섭제는 지(支)의 인(寅)에 해당한다.
  3. 동지(冬至)가 자시(子時)에 있음을 지칭함
  4. 동지(冬至)가 유시(酉時)에 있음
  5. 동지(冬至)가 오시(午時)에 있음
  6. 동지(冬至)가 묘시(卯時)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