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와 그애

오늘 새벽 ― 새벽이라기보다는 이른 아침에 나는 홀로 묵상에 잠겨 있을 때, 참새들의 첫소리 그리고 멧새의 예쁜 소리, 다음에 비둘기가 구슬프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어제 내린 봄비에 그렇게도 안 간다고 앙탈을 하던 추위도 가버리고 오늘 아침에는 자욱하게 낀 봄안개 하며, 감나무 가지에 조롱조롱 구슬같이 달린 물방울 하며, 겨우내 잠잠하다가 목이 터진 앞 개울물 소리 하며, 아직 철 보아서는 춥기는 춥건마는 봄맛이 난다. 갑자기 불현듯 나는 봄기운, 그것은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어떤 슬픔을 자아낼 때에 그때에 어디선지 끊일락 이을락 들려 오는 비둘기 소리. 내 마음이 슬픈 때 인지라 그런지 금년 잡아 처음 듣는 비둘기 소리가 유난히 슬픔을 자아낸다.

그애가 듣고 슬퍼하던 것은 뻐꾸기의 소리요 비둘기의 소리는 아니었다.

뻐꾹새가 울자면 아직도 한 달은 있어야 될 것이다. 그애가(작년에 죽은 내 조카딸 애가),

『아이, 뻐꾹새 소리가 슬프기도 해요. 나도 죽으면 뻐꾹새가 되어서 이 산 저 산 다니며 슬피 울어나 볼까?』

하고 바짝 여윈 낯에 시무룩한 기운을 띠던 때는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다.

그러나 비둘기 소리를 들어도 나는 그애가 생각이 난다. 뻐꾹새 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더 그애를 생각할까. 능금꽃이 피고 감나무 잎이 파릇파릇해서 낮이 되면 겹옷은 덥고 그래도 홑것은 이른 때에 그애는,

『아이, 또 저놈의 뻐꾹새가 우네. 왜 하고 많은 산에 하필 요기만 와서 울어?』

하고 자리에 누워서 일지 못하던 때는 아직도 두 달이 넘어 남았다.

오월 어떤 아침 그날 따라 내 창 밖에서는 유난히 뻐꾹새가 울어서 나는 뻐꾹새 소리에 잠을 깨면서,

『아 뻐꾹새가 우는군. 그애가 또 얼마나 슬퍼할까?』

하고 나는 눈물이 고임을 깨달았다. 그렇게도 마음이 착한 애, 이태 동안이 나 앓는 긴 병에 한번도 짜증내는 일도 없던 화평한 마음을 가진 애, 저의 아버지가 화를 내면 못 들은 체하고 가만히 있고 어머니가 화를 내면,

『아이, 어머니도 무얼 그러우? 다 내 운명이지. 세상의 사내가 다 그렇구, 그 사람 원망은 왜 하시우.』

하고 약간 양미간을 찌푸릴 뿐이던 착한 그애, 그렇게 열이 오르내리고 그렇게 구미가 없고 그렇게 몸이 괴로와도 내가 제 방에를 들어 가면 상그레 웃던 그애, 전문학교에까지 다녀도 어느 남자와 마주 서서 말해 본 일도 없 는 그애를 저렇게 지독한 모욕과 실연의 슬픔으로 목숨이 사라져 가면서도 그 무신한 사내를 믿으라고 소개하고 억지로 사랑하게까지 하였다고 할 만한 책임자인 내게 대해서 제 부모가 원망다운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아이, 아저씨가 다 잘되라고 그리셨지 못되라고 그리셨수? 아저씬들 얼마 나 가슴이 아프시겠수?』

하더라던 그애. 그애는 지금 죽을 시각을 찾고 다시 못 일어날 자리에 누워서 저 뻐꾹새의 애끓는 소리를 들으려니 하면 더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그 능금꽃 피고 감나무 잎파릇파릇 나는 오월 아침 뻐꾹새가 유난히 내 창 밖에서 울던 날 벌떡 일어나는 길로 세수도 아니하고 잎개울을 건너 가맛골 숲 사이에 있는 그애의 집으로 갔다. 그애가 이 뻐꾹새 소리를 듣고 오늘은 또 얼마나 슬퍼하는가 하면서,

『아이, 또 뻐꾹새가 우네. 하고 많은 산다 두고 하필 요기 와서.』

하고 시무룩하는 양을 생각하면서.

그러나 아아, 그애 방에 들어 가 보니 그애는 벌써 다시 깨지 아니할 잠이 들어버렸다. 해쓱한 얼굴에는 편안히 자는 어린애와 같은 평화가 있었다.

손도 이마도 싸늘하게 식고 발락발락하던 가슴은 언제까지나 고요하였다.

스물 네 살의 짧은 인생, 꽃으로 이르면 활짝 피어 보지도 못하고 방싯봉오리가 열리다가 하룻밤 된서리에 시들어 버리고 마는 듯한 가여운 그 애의 일생.

이제는 그 슬퍼하던 뻐꾹새 소리도 그 마음을 어지럽게 못한다. 그 곁에 얼빠져서울지도 못하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슬픔도 그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다. 오직 고요한 적멸이다. 열반이다. 어린 가슴에 박힌 독한 칼 자국의 쓰라림도 이제는 없다. 그의 생명을 씹던 모든 균, 유형한 결핵균과 무형한 변료균, 배반받은 사랑의 아픔, 미워해야 할 사람이언마는 미워하지 못하는 애탐, 자기의 백년 가약을 굳게굳게 언약하고 다시 언약하고, 다시 언약하고, 맹세하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를 단념하지 못하는 애끓음, 이것도 이제는 아주 아주 지나가 버린 한바탕 꿈이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고? 구름같이 나타났다가 구름같이 스러지는 것이 인생.

『새로 네 시나 되었을까, 제가 아버지 주무세요, 나도 몸이 편안해져서 잘 것 같으니 어서 아버지 주무세요, 아버지 주무시는 것을 보고야 나도 잘 테야요, 그러길래 나도 잠간 드러누웠구료. 그랬다가 한 시간쯤 되어서 눈을 떠 보니까, 아까 저 누웠던 고대로 이 모양이로구료.』

하는 것이 그의 아버지의 술화였다.

『나는 자는 줄만 알았구료.』

하고 그 아버지는 한 마디 더 붙였다.

과연 자는 것이었다.

의사가 일주일을 못 견디리라는 선고를 내리고 인제는 저 먹고 싶어하는 것이나 먹이고 고통이나 없이 편안히 해 줄 수밖에 없다 하여 마취제 처방을 한 것이 바로 칠팔일 전. 그래도 설마 하는 것이 골육의 정.

사오일 전엔가 내가 왔을 때 그애가 늘 하는 상그레 웃는 웃음이 없기로 내가,

『악아 너 왜 상그레 웃지 않느냐? 웃어라.』

하였더니 그애 대답이,

『나는 아저씨가 들어 오시기에 웃었는데 몸이 모두 부어서 웃는 것이 안보이는 게죠.』

하고 음성과 입을 보아서는 웃는 모양이나 눈어염 근육은 움직이지를 아니 하였다.

『그래 웃어라, 응?』

하고 나는 슬픔을 참노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애가 간 줄도 모르고 뻐꾹새는 여전히 울었다. 우리는 뻐꾹새 소리를 들으면서 그애를 염습하고, 관에 넣고, 상여에 담아, 또 뻐꾹새 소리를 들으면서 그애를 홍제원 화장터로 데리고 가서 쇠가마에 넣었다.

그런 지 한 시간 하고 반이나 지나서 나는 그 아버지와 또 한 사람과 함께 그애의 재를 찾으러 갔다. 쇠삼태기에 그애의 명패가 서고, 거기는 재 한줌과 타다가 남은 하얀 뼈 두어 조각, 옥 같이 맑아 투명한 듯한 뼈 두어 조각, 그것이 그애의 깨끗하고 착한 일생의 증거라고 한다.

나머지 뼈 두어 조각을 마저 부스러뜨리니, 그야말로 남는 것이 재 한줌이라기보다 먼지 한줌 그것이 바로 며칠 전까지도 상그레 웃던 그애라고 믿어질까. 이것이 바로 며칠 전까지,

『아이, 뻐꾹새가 또 우네. 하고 많은 산다 두고 왜 하필 여기만 와서 울어?』

『나도 죽거든 뻐꾹새가 되어서 이산 저산 돌아 다니면서 울어나 볼까?』

『아저씨, 나는 이번에 만일 살아 나면 승이 될 테야. 산간에 가만히 있어서 목탁이나 치고 염불이나 할래요.』

하던 그애라고 믿어질까.

금시에 어느 구석에서 그애가,

『아저씨, 나 여기 있수.』

하고 상그레 웃고 나오지나 아니할까.

나는 작년에 여덟 살이 된 아들 봉아(鳳兒)를 잃고 한 달이 지난 지 며칠 아니하여 또 사랑하는 조카딸을 잃었다. 슬픔 위에 덧쌓이는 슬픔이여! 그러나 사람이란 누구나 다 한번은 죽는 것을 누구나 다 한번은 죽는 것을.

오늘 아침 내가 들은 비둘기 소리를 그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으면 얼마나 설어할까.

내가 비록 저를 생각하고 설어한다기로니 한치 건너 두 치 친어버이에게 야 비길 수가 있나?

오늘 비둘기가 울었으니 얼마 아니하면 뻐꾹새가 울 것이다. 금년 뻐꾹새를 차마 어찌 들을꼬? 비록 제 친어버이만은 못하더라도 나도 그애의 기억을 소중하게 가슴 속에 품어 두고, 그렇게도착하고 그렇게 깨끗하던 딸로 일생에 생각할 것이다.

아아 또 비둘기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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