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
상
편집음악회
편집지리하던 장마가 들었다. 한 주일동안이나 퍼붓던 비는 서 울 한복판을 지글지글 끓이던 더위와 후터분한 티끌을 한바 탕 훌부시어 내었다. 얕은 하늘에 칡넝쿨 같이 서리었던 구 름장은 선들바람에 쫓기어 바닷속의 풀잎처럼 흐느적 기다 가는 스러지는 저녁놀에 물이 들어서 산호가지 같이 빨갛게 타는 상싶다.
남대문통 씨멘트를 깔아논 길바닥은 걸레질을 쳐논것처럼 윤이 흘렀다.
"에 좀 찬찬이 가자꾸나 아직두 한시간이나 남았는데……"
세로 약칠한 흰 구두뿌리를 맵시있게 제기면서 걸어가던 동무의 소매를 끌어다녔다.
"벌써 표는 죄다 팔렸다는데 어서 따러와요"
앞서 가던 여자는 팔뚝시계를 들여다 보며 사뭇 달음박질 을 한다. 잠자리 날개같이 다려입은 불란사 깨끼적삼에 땀 이 배어 등어리의 하얀살이 내비쳤다. 그들의 뒤에도 젊은 남녀가 쌍쌍히 따랐다.
전차속도 부펐다. 손잡이에 매달려 가는 사람이 적지않다.
"요셋돈 삼원이면 쌀이 반가마닌데 밑천이나 뽑을까?"
"나역시 큰 오입인걸 그렇지만 독일 본바닥에서 공부를 했 다니깐 상당할테지……."
입장권을 떼어맡기니까 체면상 참석 안할 수가 없어서 나 선 교역자 비슷한 사람들의 주고 받는 말이다.
전차속에서 쏟아져내리는 사람들은 기마순사에게 물리는 군중처럼 허급지급 큰길을 건너 공회당 속으로 빨려 들어간 다. 문밖에서는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비명을 질르는 소녀도 있고 고무신짝을 잃어버리고 사나이들의 가랭이 밑 으로 숨바꼭질을 하는 아낙네도 있다.
정각은 여덟시인데 이십분 전에 만원패가 걸리고 경관은 정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장내는 송곳하나 꽂을 여 지가 없다느니보다 산 사람의 숨이 턱턱막힐 지경이다.
-"조선이 낳은 세계적 천재 [바이얼린이스트] 김계훈군의 귀국 제일회 독주회"-가 첫막을 열게 된것이었다.
근래와 같이 불항한 때에 이원 삼원씩 받는 음악회가 그와 같이 의외의 성황을 이룬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김계 훈이가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부터 제금의 천재라고 일반의 칭찬을 받았던만큼 매우숙련한 기술을 보였다. 독일로 건너 간 뒤에는 유명한 음악 교수의 총애를 받아서 몇해가 못되 어 그곳의 제일 큰 [씸포니오케스트라]단의 가장 명예있는 제일 악수로 출연하였다. 그의 뛰어나는 묘기에 구라파 사 람들도 혀를 빼문다는 소식이 가끔 고국에 전파된 것이었 다. 얼마전 귀국하였을 때에 신분의 선전도 굉장하였다. 뿐 만아니라 아직 삼십도 재되지못한 드물게 보는 미남자였다.
그래서 독일여자들의 연모를 한몸에 받아 삼각사각 관계가 얼크러져서 머리를 앓을 지경이라는 로맨쓰를 고국까지 흘 렸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여학생들은 단체로 밀려들어서 회장을 반이나 점령하였다.
이날밤은 서울장안에 돈있는 사람 지식계급 모던껄이 총출 동으로 한자리에 모였나하여도 지나치는 말이 아니다.
장내는 몇번이나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시간은 십오분이나 지났다. 관계자들은 협문으로 들락날락하며 대단히 초조한 모양이다.
"왔다!"
"길이 막혀 사다리를 타고 들어갔다."
이런 소리가 자리가 없어 들창으로 기어오른 학생들 사이 에 들렸다. 여자들은 손수건으로 부채질을 해가며 한눈도 팔지 않고 방금 무대위에 나타날 주인공을 제각기 상상해보 는 모양이다.
사회자가 공손한 태도로 말에 올랐다.
"…….김계훈씨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를 가진 것은 우리 민 족의 영광이요. 그와 같은 보배를 낳은 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기쁨입니다……."
이런 뜻으로 땀을 흘려가며 백 퍼센트의 소개를 마치고 내 려가자 장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연분홍 장미빛의 야회복자락을 잘잘 끌며 피아노 반주인 독일 여자가 무대위에 크고 적은 화환사이로 미소를 띄우며 나타났다. 그뒤를 따르는 것은 물론 이날밤 인기의 초점인 연주자- 김계훈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은 연미복에 백림서 이천 마크나 주고 장만하였다는 바이얼린을 끼고 경쾌한 걸 음으로 무대 중앙에 칠피구두를 옮겼다.
계훈이가 무대위에 올라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의 한 몸을 일제히 쏘았다. 그 찰라에 별안간 여기저기서
"탕- 탕-"
폭팔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유리창에 들러 붙었던 사람이 둘이나 떨어졌다. 여자들은 깡충 뛰어올았다가 주저 앉았다.
피아노 앞에 앉으며 악보를 들치던 독일여자도 두손으로 젖 가슴을 움켜쥐며 활동사진 배우같이 놀랬다. 음악회의 정숙 한 기분을 깨뜨리기를 여사로 아는 십분 사진반들이 터뜨리 는 "막네슘" 소리었다. 그 소리가 오늘밤에는 유난히 컸다.
계훈이는 잠시 눈을 찌푸렸다. 장내가 진성됨을 기다려 반 주자에게 눈짓을 하였다. 반주하는 여자는 윗통을 벌거벗다 싶이하여 등어리는 온통으로 드러났다. 이윽고 물생선같은 두팔이 백납으로 뽑아 논듯한 손가락을 따라서 피아노의 건 반 위를 어루만진다.
계훈이는 악기를 들어 턱으로 느신히 누르고 감흥을 자아 내다가 조심스러히 활을 탄기기 시작하낟. 빼에토벤의 유명 한 크로이첸쏘나타가 연주되는 것이었다.
이날밤 음악회의 순서지는 전부 독일말로 박아놓았다. 꼬 불꼬불한 곡목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상싶지않다. 더구나 컨제르르니 쏘나타니 하는 고상하고도 대단히 어렵다는 곡 조를 알아 들을 만한 전문적인 조에가 있는 사람도 그 많은 청중 속에 몇 사람 되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앞줄에 버티 고 앉은 신사들은
"깡깽이나 가야금 소리보다 무엇이 나을꼬?"
하면서 그래도 체면상
"거 머상불 훌륭한걸"
-하고 고개를 끄덕여 알아듣는 모양을 꾸미지 않을 수 없 다. 어떤 젊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손을 고이고 있다. 이따금 머리를 숙이면서 아랫배가 아픈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인다.
더구나 여자석에서는 얼대진것처럼 무대위를 멀거니 바라 보고 앉은 사람이 태반이다.
그중에도 입을 헤어 버려고 앉은 마나님들의 귀에는 그 미 묘한 멜로디가 모기 소리나 풍뎅이가 날르는 소리와 달음없 이 귀바퀴를 싸고 돌 따름일 것이다. 계훈이의 길찍하게 빗 어 넘긴 곱실머리와 희고도 준수하게 생긴 용모와 새끼손가 락으로 가는줄을 훓어 올릴 때면은 살살 감았다. 내리깔았 다 하는 눈초리의 표정과 불빛에 빤작거리는 보석 반지를 낀 손가락이며 폈다. 오그렸다 하는 팔의 운동이 시각을 착 란시킬 뿐이다.
더구나 계훈이는 한참 신이 나서 고상하게 말하면 인쓰푸 레슌에 겨울때에는 좌우로 몸짓을 한다. 날씬한 키에 어깨 로부터 잔허리로 엉덩이에서 연미복 꼬리로 부드럽게 흘러 내리는 곳선- 거기에는 젊은 여자들의 마음 괴로운 시선이 닥지닥지 달라붙은게 보이는 듯하다.
한 곡조가 끝이 났다. 숨을 죽이고 앉았던 여자들의 입이 풀렸다.
"저이가 저 반주하는 독일여자하구 약혼했다는게 정말일 까?"
"조선까지 따라왔을 때에는 벌써 알조지 왜 너 배가 아프 냐?"
먼저 말을 건넨 색시는 조금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동무 의 넙적다리를 살짝 꼬집었다. 피차에 흥분된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애 그렇지만 저이는 장가처가 있단다. 커다란 아들까지 있 다는데...."
"저를 어쩌나! 그럼 서양여자가 첩노릇을 하겠네"
성화를 하는 품이 남의 일같지 않은 모양이다. 호기심에 불타는 그들의 눈은 연방 계훈이와 독일여자의 사이를 부즈 런히 달린다.
순서는 거의 끝이나게 되었다. 계훈이는 여러번이나 재정 을 사양하다가 마지막 번외로 육년전 고국을 떠날때에 송별 연주회에서 눈물을 흘려가며 타던 고별의 노래를 아뢰려고 줄을 골랐다. 고요하고 느리고 애련한 이 곡조만은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곡조가 거의 끝이날 임시에 부인석 한편 구석에서 흙흙 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계훈이는 무심코 부인석을 바라다 보다가 얼굴에 손수건을 대고 앉은 여자를 발견하였다. 머리를 쪽진 삼십 남짓한 여 자였다. 두 번째 흘낏 계훈의 눈에 띄운 것은 여자의 빨개 진 눈이다. 눈과 눈이 이상스러히 마주치고 말았다. 계훈이 는 갑자기 무엇에 찔린듯하여 얼덜김에 바이얼린의 줄을 헛 짚었다. 활을 급히 당기는 그 순간에 "탁"소리가 나며 굵은 줄이 끊어졌다. 그 소리는 천장까지 울렸다. 일동은 무슨 불 길한 조짐을 듣은 듯 가슴이 선뜻하였다. 그다지도 성황을 이루었던 음악회는 싱겁게 끝이나고 말았다. 계훈이는 인사 도 없이 휴게실로 꽁무니를 배고 독일여자 역시 뒤도 아니 돌아보고 내려가버렸다.
장내는 모자를 집어쓰는 사람에 곡절을 몰라서 두리번거리 는 사람에 무슨일이나 생긴 듯이 수선수선하였다. 그래도 한편 구석에 진을 치고 있던 학생들은 요란스러운 박수로 짓굿게 재정을 청하고 잇다. 연주자는 으레히 악기에 새줄 을 메워가지고 다시 나오거나 고맙다는 인사라도 있어야 옳 겠건만 관계자들이 여러번 권하여도 못들은 체하고 박아 논 듯이 앉았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숨만 씨근씨근 쉬는 것을 본 독일여자는
"왜 그러새요 그러는 수가 흔히 있는데요. 자 나가서 우리 인사나 하고 들어옵시다."
앞을 서며 계훈이의 말을 거든다. 물론 독일말이다. 계훈이 는
"기분이 나뻐서 못나가요"
잡힌 팔을 뿌리치며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고는 아래 입술 만 깨물고 있다. 독일 여자는 여러 사람 앞에서 처음으로 무안을 보았다. 큰 수치나 당한 듯이 금새로 얼굴이 홍당무 가 되어 파아란 눈꼬리가 샐쭉해졌다.
"난 먼저 갈테야요!"
쏘아부치듯하고는 덧옷을 걸치며 뒷문으로 종종걸음을 친 다. 계훈이는 새끼에 맨 돌맹이처럼 여자의 뒤를 따르지 않 을 수 없었다.
손벽만 부르토도록 뚜드리고 앉았든 학생들은
"건방진 자식 같으니 서양 갔다 온 놈들은 저따위 꼬락서 니 아니꼽드라"
"가만 둬라 요담 음악회에 두고보자"
하고 두덜대며 나가버렸다.
머리를 쪽진 여자는 사람들이 일어서기 전에 그의 오라버 니 되는 사람에게 꺼둘리다 싶이하여 나왔다. 전차 속에서 도 정거장에서 섭섭한 작별이나 하고 들어오는 사람처럼 눈 물이 덧거니 맺거니 한다.
"글세 이 미거한 것아 그만 그처라 만인좌중에서 그게 무 슨 창피한 짓이냐"
어린애 말래듯 한다.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설어지는 법이라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숨을 죽이며 참으려 할수록 설음이 복바쳐 오로는 것 같다.
"그럴걸 무슨 좋은 꼬락서니를 보겠다구 나섰니" 방 구석 에나 죽치고 들어앉었지"
오라버니는 같이 탄 사람들이 자기네의 행동만 주목하는 듯싶어서 입을 다무렸다. 그는 서른 서너살쯤 되어보이는 청년이다. 얼굴에는 별로 이렇다할 특징은 없으나 양미간과 이마에 잔주름 잡힌 것은 고생에 찌들은 표정이다. 나이로 는 것늙은 편이었다. 그러나 수수하게 차뎠으나마 옷 매무 새라든지 몸 가지는 것을 잠시 보아도 지식계급에 처한 사 람인 것이 틀림없다. 그의 본명은 따로 있으나 "정혁"이라고 자이름을 불러야 동지들 간에 통한다. 일본 어느 사립대학 출신으로 잡지사에도 오랫동안 관계를 맺었다가 이사건 저 사건으로 이삼차 큰집 출입을 하였다. 아직도 그의 머리털 은 한지 밖에 자라지 않았다.
머리를 쪽진 여자는 계훈의 아내였다. 그는 양반의 집 딸 이 대개 그러한 모양으로 아명 밖에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 신청을 할 때에 임시로 지은 정희라는 이름을 부르기 로 한다.
집으로(친정) 돌아온 정희는 중문을 들어서며 집안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가 거처하는 아랫방으로 들어갔다.
문턱을 넘다가 문지방에 채여 엎들어질번하였다.
"어디서 인제야 오셨어요" 아버님은 이때껏 주정을 하시고 아오님을 찾아오라고 걱정걱정 허시드니 그만 잠이 드셨나 봐요"
건넌방에서 모기를 쫓으며 어린애를 재우던 혁이의 아내가 추녀 밑으로 신도 아니 신고 내려왔다. 정희는 여전히 입을 다무렸다. 사람의 얼굴을 대하는것도 이야기를 하는것도 만 사가 다 귀찮은 모양이다. 그의 결곡한 성미를 잘 알고 시 누이의 일을 자기의 일이나 다름없이 동정하는 혁이의 댁내 는
"그렇게 새삼스럽게 언짢어하시면 무얼해요 늦었는데 어서 주무시지요"
하고 아랫목으로 요를 펴주고 자리끼를 다가놓고는 구둘장 이 꺼질듯한 한숨과 함께 자리위에 몸을 던졌다.
이웃집에서 새로 한시를 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 때 정희가 누운 머리말에 한길로 뚫린 들창을 똑똑 뚜드리 는 사람이 있다. 정희는 소스라져 깨었다. 다시한번 똑똑 소 리가 났다. 계훈이와 독일여자 쭈리아는 그길로 바로 공희 당에게 길건너인 조선 호텔로 빠져나갔다. 계훈이는 귀국하 면서 한달동안이나 호텔에 유숙하고 있다. 이층 남향 방이 라 방값만 하루에 십이원이다. 양식이 아니면 먹지 못하니 까 아침에 일원 오십전 점심에 이원 저녁에 삼원 오십전 합 하면 하루에 식사만 칠원이요. 심심해서 여자 혼자는 먹을 재미가 없어하니까 계훈이까지 두사람에 십사원이다. 방세 까지 얼르면 하루의 비용이 먹고 자는데만 이십육원이다.
그밖에도 뽀이에게 이활이장의 팁을 주어야하고 한두차례 택시 값이 나가고 손이 오면 접대 안할수 없으니 줄잡아도 하루에 다른 비용없이 삼십여원은 가져야한다. 삼삼은 칠 한달에 구백원이니 백원이 없는 천원 이다. 제 아무리 조선 서 몇째 안가는 이른바 백만장자의 외아들인 계훈이라도 언 제까지 나 이 비싼 호텔에서 앙코배기들과 어깨를 겨누워가 며 생활을 계속할는지 의문이다.
전라도 아전이던 그의 아버지가 두 번 만날 수 없는 좋은 기회에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갈퀴질을 해들인 재산이지만 도 재는 동이에 물붓듯 할 수는 없다. 계훈의 아버지 김장 관(경술년 전해에 삼백석직이 땅을 바치고 산 벼슬이지 만…….)은 계훈이가 양녀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펄 펄 뛰었다. 일가친척의 시비도 성이가시려니와 첫째 십어년 이나 거느리고 있던 죄없는 며느리- 더구나, 종부의 처치문 제도 대단 거북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소첩을 두셋씩이나 가려들여도 씨를 받지 못하니 맏아들겸 막내아들인 계훈의 비위도 덧들리기는 어려웠다. 설사 그가 반대를 하더라도 그의 아내인 대방마님이 남 유달른 자애로 무슨 변통이든지 해서 여률령 시행을 하는데는 자기로서는 일일이 참견할 수 가 없다.
그뿐 아니라 세상에서 자기 아들을 천재니 세계적 음악가 니 하고 굉장이 떠받드는 데는 미상불 어깨가 으쓱해질때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현부모가 첫째가는 효도인 까닭이다.
그래서 새로 양실 한채를 지어줄때까지 하루에 사오십원씩 을 꼬박꼬박 물어주는 것이다.
호텔로 돌아온 그들은 피차에 말이 없었다. 바이얼린줄이 연주중에 끊어졌기로서니 계훈이가 그다지 흥분된 까닭을 쭈리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물어 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계훈에게는 장가든 아내 와 아들까지 새파랗게 눈을 뜨고 있는 사실을 절대 비밀에 붙여 쉬-쉬-하는 터이라 더구나 말을 통하지 못하는 쭈리아 는 감쪽같이 속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계훈이는 신도 벗지않고 침대위에 머리를 짚고 쓰러져 있 는판에 방문 밖에서 떠들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밤의 후원자들이 (대개는 독일 유학생들과 음악가 축인데 그중에 는 스르핀이라는 바이얼린 교사노릇하는 독일사람도 끼었 다) 뽀이의 안내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말없이 두사람을 자 동차에 닮아 갖이고 백화원으로 달렸다. 백화원은 하루 한 끼라도 양접시를 핥지않으면 소화와 영양상 중대한 영향이 미친다는 미국출신의 신사들이 점심때면 모여들어서 와글와 글 한바탕 영어 복습을 하는 레스트란이다.
"대단히 피곤하시겠습니다"
"우리 조선서는 처음되는 훌륭한 음악회였습니다"
"미리 주의를 시켰건만 상식없는 사진반이 큰 실수를 해서 놀라섰겠지요?"
연거피 독일말로 조선말로 사과도 하고 현기증이 나도록 치켜올데는 바람에 계훈이도 눈살을 펴고 사교 능난한 쭈리 아는 있는대로의 애교를 떨어 손들을 접대한다. 더욱이 바 이얼린 교사노릇을 한다는 스로핀은 동포인 여자앞에 더욱 은근한 태도를 짓는다.
포도주 잔이 몇번이나 부딪고 도토리만한 잔에 오륙십전이 나 받는 양주가 기울이는대도 딸렸다.
백림서 지내던 일이며 하이델베르히의 로만틱한 학생 생활 이며 이야기에 꽃이 사람이 계서 독일나라 한모퉁이가 떠들 려 조선으로 이사를 온듯하다.
"자- 이것은 문헨서 수입한 맥주입니다"
그중에 한사람은 손소 마개를 뽑아 쭈리아에게 권하였다.
쭈리아는 (김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하면서도 유리고뿌에 철철 넘치는 고향의 물을 높이 숨게 마셨다. 여러사람은 일 제히 뿌라보를 불렀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을 가누지 못하는 주정군이 사오인이나 작당을 하여 의자를 발 길로 차며 들어섰다.
일동은 그들을 마주 보는것조차 창피한 듯이 고개를 돌렸 다. 먼저 들어왔던 사람이 비틀거리고 다시 나가더니 아에 마다하고고 달아나는 친구 한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는 정혁 이었다. 혁이는 정희를 데려다주고 홧김에 길거리로 바람이 나 쏘이려고 나왔다가 야시광앞에서 그전에 잡지사에서 고 생을 같이 하던 사람들에게 끄들리어 들어온 것이다. 그들 은 어디서 한잔하고 돌아가는 길에 혀끝이 촉촉해서 제이차 로 발전을 하는 눈치였다.
혁이는 계훈이와 바로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오륙년만 에 얼굴을 가까히 하는 매부와 처남! 그들은 전자부터 사상 을 감정상 피차에 담을 쌓고 지내오던 사이다. 그러나 외나 무 다리에서 딱 마주치고 보니 원수가 아닌 다음에야 알은 체 하지않을수 없는 경우 였다. 혁이는 자리도 거북하거니 와 저혼자 맹송맹송하게 앉았기도 멋적었다. 그렇다고 길이 막혀 앉았으니 빠져나갈 수도 없다. 계훈도 혁이를 못 보았 을 이가 없다. 그러나 인사를 하게되면 서양 예법상 쭈리아 에게도 말해서 소개안할 수 없다. 서로 눈에 띠우지 않으려 고 외면을 하고 있으려니 혁이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꾸만 뒤통수를 쏘는 것 같아 송구해 견딜수가 없다.
"어-세계적 천재가 나타나셨군"
넥타이를 풀어헤친 그중의 한사람이 돌아 앉은채 한마디 비꼬아 던졌다.
"쉬-프 프로시아의 여왕도 왕림 합셨다" 혀꼬부러진 소리 가 뒤를 이었다.
"그럼 저 친구는 독일 공주에게로 데릴 사위로 들어간 셈 일쎄그려"
흥 여덟 팔자가 늘어졌구나"
이번에는 그중에도 상통이 험상스럽게 생긴 사람이 왕방울 같은 목소리로 떠들어 부쳤다. 이런 수작이 계훈이와 여러 사람의 귀를 거슬렸겠지만 외국사람의 눈앞이라 꿀꺽 참고 앉은 모양이다. 신경질인 계훈의 얼굴 빚은 몇번이나 변하 였다. 쭈리아는 일종의 호기심으로 일동만 바라본다.
잡지사 축은 테이블을 뚜드려 맥주를 청하였다. 그중에 좀 채신없이 생긴 사람이 계심츠레한 눈으로 혁이와 계훈이를 번가라 보더니 큰 발견이나 한것처럼
"참 저사람과 자네가 남매간이 아니든가?"
묻지 않는 소리를 불쑥한다. 혁이는 식탁 밑으로 그사람의 발둥을 꽉 눌렀다. 함구령을 내리고는 혁이도 한잔을 마셨 다.
저편 식탁에선 또 독일말이 어우러졌다. 험상스럽게 생긴 친구가 듣다못하여
"에- 비위가 역한걸" 하고 벌떡 일어서더니
"내 저자들 한테 경의를 표하고 옴세" 하고 맥주병을 들고 계훈의 테이블로 갈지자 걸음을 걷는다. 그사람은 공회당에 도 갔었던 모양이다.
(허- 저사람이 또 탈선을 하는군) 하면서 혁이는 혀를 찼 다 그사람은
"여 여러분 실례 많이 하겠습니다."
하고 식탁 모소리와 이마뚝을 할만큼 머리를 숙이고 나서 는 허리를 뒤로 젖히고
"김계훈씨! 당신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를 가진 것은(가슴에 손을 얹으며)우리 민족의 영광이요……"
하다가 코소리를 섞어 야릇한 기침을 두어번 하고나서
"또한 당신의 대부인께서 당신과 같은 보배를 빠트린 것은 세에계에 자랑할 우리의 기쁨입니다."
공회당에서 사회하던 사람의 구조로 몸짓까지 흉내를 내니 까 쭈리아는(옳지 술 취사람까지도 우리들을 축복해주는구 나) 하고 머리숙여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한다.
그는 또 최경례와 함께 맥주 한잔을 따라서 계훈의 앞에 공손히 바쳤다. 그리고 좌우를 돌아보며
"자-여러분 시종들도 한잔 드시지요"
하고 잔마다 술을 엎질러 놓는다. 저편 식탁에서는 깔깔 웃으며 손벽을 치며 응원을 한다. 하도 어이가없어 바라보 고만 앉았던 계훈이는 얼굴의 근육이 씰룩씰룩 떨리더니
"너이들이 누구를 놀리는 셈이냐?"
새되게 소리를 지르며 입술을 앙물더니 맥주잔을 힘껏 내 던졌다. 술잔은 험상한 얼굴을 정통으로 맞췄다. 흰 양복에 피가 흐른다. 식탁이 엎어지며 와르르하고 깨어졌다. 그 사 품에 쭈리아는 "으악!" 소리를 지르며 요릿간으로 몸을 피하 였다. 계훈이는 날쌔게 달려들어 저를 모욕한 사람의 멱살 을 추켜잡고 바른손으로 식탁위의 나이프를 번쩍 들었다.
내려 찍으려는 순간에 그의 팔은 혁이의 손에 잡혔다.
정희
편집정희가 거처하는 방의 들창을 뚜드린 사람은 정희를 길러 낸 늙은 유모였다. 그는 김장관 집에서 정희가 떼어 놓고 온 계훈의 아들 영호를 보아주고 있었다. 정희가 반색을 하 며
"이밤중에 웬일이요?"하고 앞문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 려니까 어둑컹컴한 쓰레기통 뒤에서 영호가
"엄마……."
하고 내닫더니 들창으로 두손을 버린다. 정희는 잠자코 대 문의 빗장을 소리없이 벗기고 유모와 영호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유모는 앉을 사이도 없이
"아기가 선잠이 깨서 잠꼬대하듯 자꾸만 엄마를 찾어 오라 구 사뭇 떼를 쓰니 어떻게 해요. 나중에는 심술이 나서 할 퀴구 쥐어뜯구하니 사람이 견딜수가 있어야지요. 대방마님 이 아시면 큰일 나겠지만 내일 아침 일찌감치 데리고 갈 밖 에요"
정희는 풀이 죽어앉은 어린것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엄마가 그렇게도 보구싶든?" 하곤느 얼굴의 눈물 흔적을 지어준다.
"그럼 자꾸만 보구싶어 난 인제 집에 안가구 엄마하구 여 기서 살테야"
영호는 엄마의 무릎으로 깡충 뛰어 오르더니 복성스러운 뺨을 어머니 얼굴에 대고 부빈다.
고 따스하고 보드러운 촉감은 사랑 덩어리인 어머니의 눈 물을 자아냈다. 누르면 터질듯하던 눈물이 쏴르르 쏟아졌다.
따근한 자애의 결정이 토실토실한 영호의 손등위에 방울방 울 떨어졌다. 정희는 어린 것에게 언짢아하는 눈치를 보이 지 않을 양으로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유모도 덩달아 훌쩍 훌쩍 우는 모양이다. 영호는 엄마의 팔을 끌어 다리더니,
"으응 엄마가 우네. 그럼 나두 울테야" 입을 삐죽삐죽하며 금새로 울음이 터지려고 한다.
"아니다 내가 울긴 왜 울겠니. 며칠 만에 너를 보니까 반가 워서 그렇지"
아직도 목멘 소리로 영호를 달랜다. 이번에는 유모가 다가 앉으며
"글세 모자의 정이를ㄹ 별안간 떼려니 될번이나한 말이야 요" 핏줄이 켕기는 걸입쇼. 낮에는 장난감 속에 파묻혀서 군 것질하는 맛에 어머니 생각을 못하지만 밤만 되면 아주 사 람을 못살게 굴어요 이것 좀 보세요 생으로 물어 뜯어 서……"
하소연하듯 하며 말라붙은 젖꼭지를 내여보인다. 영호는 저딴에는 가엾은 듯이
"엄마만 데려다 주면 안그랫지 내 다시 안그럴게에"
엉석부리듯하며 발갛게 부르른 젖꼭지를 "씌-씌-"하고 만 져준다. 유모는 가벼히 두드려주며
"참 아씨!아까 음악회에 가섰드라지요" 마님께서 먼 발치로 보주 못마땅해 하시겠지요. 아드님도 소중하지만 종부님을 죄없이 친만해도 복 못받으실 장본인데 뭣이 유이부족해서 아주 불상견을 하실련 아주 끝끝내 의절을 하시나요" 단 하 나밖에 없는 손주님까지 누구 정씨댁 같은 예문가에서 사대 씩이나 한집안에 뫼시구 이렇게 늙었지만 난 그런일을 첨 당하는 길입쇼. 그까진 귀신 같이 생긴 양녀허구 며칠이나 부질하실라구……(한 숨을 한바탕 쉬고나서)서방님이 서양가 신 뒤에 참 뜻밖에 태기가 기셔서 유복자처럼 낳으신 아기 지만 그래두 당신 혈속인데 아기를 보시구 어쩌면 손목 한 번 않만져 보시오" 그양반도 아마 환장을 하섯나봐요"
"아이구 수다스럽소 어린애 듣는데……"
유모에게 눈짓을 한다.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어서 두눈만 깜작깜작하고 듣고 있던 영호는
"참 그이 빠오롱 썩 잘한대 나두 하나 사줘 응 엄마!"하고 조른다.
"그래 크면느 사주구 말구 그런데 너 누구더러 그이라구 그러니?"
"집에 날마다 오는 키 커어다란 사람말야 접때는 그이가 양녀하구 와서 화재하구 수박하구 먹고 갔다누 난 유모가 업구 가서 얻어먹지두 못하게 하구"
원망스러히 유모에게 눈을 흘긴다. 정희는 다른 말은 못들 은 체하고
"글세 그이가 뭐야" 아버지라구 불르지?"
영호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버지 참 할머니가 그이더러 자꾸만 절하구 아버지라구 그러래. 그렇지만 난 싫여 양녀루 무섭구"
하더니 또 무슨 생각이 나는 듯
"참 엄마 그 야녀 봤우" 눈깔이 딸대 처럼 파아랗겠지!"
하면서 손가락으로 제 눈을 꼭 찔러 보인다.
짤막한 여름밤도 눈뜨고 세기에는 삼동 같이 길었다. 두시 치는 소리를 듣고 정희는 어린 것을 자리에 눕폈다. 영호는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엄마의 젖가슴을 꼭 끌어안고 조그맣게 하품을 깨물더니 금새로 다르랑다르랑 코를 곤다.
오래간만에 제 보금자리에 품기고 보니 제딴에도 안심이 된 모야이다.
"저 눈, 저 코, 어쩌면 그렇게도 네아버지를 닮었니?"
정희는 영호의 자는 얼굴을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들여다 보고 앉았다.
천사의 날개에 고히 덮인듯한 어린것의 얼굴을 유심히 들 여다볼수록 사랑하는 남편의 얼굴이 고대로 떠오른다. 장성 해진 영호의 얼굴이 뒤를 이여 나타난다. 그 두가지 환영속 에서 자기 자신의 신세도 비추어 보았다. 그림자 많은 오만 살이나 찌푸린 하늘 같이 흐려서 앞으로 조고마한 광명조차 비쳐올 것 같지가 않다. 오직 시꺼먼 구름장이 가슴 한복판 을 짖누를 따름이다.
"내가 왜 음악회엔 갔든고?"
차라리 그 얼굴을 보지나 않았드면 하였다. 이제 와서는 모든 것이 후회뿐이었다.
-생리적으로 아무 결함이 없는 정희는 오륙년이나 공규를 지켜왔다. 시부모를 돌고 어린 것을 기르느라고 청춘의 가 장 꽃다운 시절을 허송하였다. 모든 것을 참고 남편이 성공 한 뒤에 하루바삐 돌아 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성공했다 는 전문을 굉장히 놓고 돌아오긴하였다. 그러나 짝잃은 기 러기와 같이 외롭고 고달픈 자기에게는 하룻밤의 위안조차 주지않았다.
남편이 상해까지 와서는 어머니에게 기다란 편지를 보냈 고, 그편지를 받은 날 시어머니는 기쁜 빛을 숨기지못하는 며느리를 불러세우고
"그 애가 볼일간 온다는데 네가 집에 있으면 대단히 거북 한일이 있다구 특정을 했으니 며칠 동안만 눈에 띄우지 않 게 네집에 가있거라"
천만 꿈밖의 명령이었다. 정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메우 섭섭하리마는 무슨일인지 서서히 눈치를 봐서 기별 허마....너두 알다싶이 성미가 괴팍한 애가 돼서……"
천지가 아뜩하여 그 자리에 쓸어질듯한 며느리를 홀낏 쳐 다보고는
"네집에 무에 있겠니?"하고 주머니를 끌르더니
"이걸로 용돈이나 써라"
내미는 것은 십원짜리 지전 다섯장이었다. 어느 영이라 거 슬을 수도 없었다. 정희는 남편이 오기전에 친정 뜰아래 방 으로 예비금속을 당하였다. 그의 시부모는 오십원의 입원료 를 선대하여 전염병자를 몰아 내듯이 살을 저며 먹이고 싶 도록 귀여운 아들과도 격리를 시켜놓았다.
"오십원 받고 쫒겨났구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앙가슴을 쥐어뜯고 싶도록 분하고 절 통하였다. 그러나 점잖은 집안에 태어나 양반의 범절이 골 수에 박힌 정희는
"십여년 동안이나 아침 저녁 너이들에게 문안을 하고 조석 을 받들고 온갖 시중을 다하고 심지어 반빛아치 침모 노릇 까지하고 그뿐이냐 사대가 독신으로 지내는 집에 아들을 낳 아 손을 이어주고 오륙년이나 생과부 노릇을 한 그값이 단 돈 오십원이란 말이냐?"하고 발악을 하며 지전장을 갈가이 찢어 그 피둥피둥한 시어머니 상관에다 끼얹어버리지도 못 하였다. 반한은커녕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는 내야하는 것 이 현부인 자랑스러운 도덕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계훈이가 귀국하던 전전날밤 조고만 보자기에 당 장 아쉬운 옷가지만 꾸려 가지고 휘장을 씌운 인력거에 몸 을 실었던 것이었다.
……전등불이 나갔다. 물장사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골목안 의 새벽 공기를 흔들어 놓는다. 정희는 그때야 눈을 붙여 보려니까 대문소리와 함께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아랫 방 미닫이를 불쑥 열며
"정희야!"
하고 들여미는 것은 혁이의 해쓱한 얼굴이었다.
백화원에서 벌어졌던 싸움은 혁이가 간신히 뜯어 말렸다.
험상한 친구는 분이 머리 끝까지 올라서
"독일 학생이 결투한다는 건 들어서…… 흥 각가지로 흉내 를 내는구나"
하면서 쌈패 모양으로 윗통을 벗어제치고 범같이 뛰는 것 을 혁이 혼자 방패노릇을 하느라고 모시두루마기가 부시깃 이 다 되었다.
계훈이는 진발로 기어올른 개발 자국이나 닦듯이 흰 수건 으로 연미복 자락을 툭툭 털면서 혁이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뒷문으로 빠져 나가려한다. 문간에 쭈리아와 스르핀이 택시를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는 뿡뿡 거리며 손을 제촉한다. 계훈이가 문을 열고 발 하나를 내디 디려하니까 등뒤에서
"계훈이!"
혁이의 노기를 띄운 목소리였다. 계훈이는 발길을 멈추었 다.
"이리 좀 오게"
계훈이는 오도 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섰다가
"내게 할말이 있오?"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십여년전 장가를 들러 갔을 때에는 마주 허게를 하던터이었으나 저보다 서너살이나 손위요 노 성한 처남에게 허게는 할수 없엇다.
"헐말이야 있고 없고간에 싸움을 말리느라고 이모양이 되 었으니 인사 한마디 쯤은 하구 가야 도리에 옳겠지"
모자에 손이 달락말락 하였다. 혁이는 (엎질러 절 받기로구 나)하고 결투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서 앉게 헐말이 있네"
"볼일이 있어 가야할텐데……"
한마디를 내던지고 또다시 돌처선다.
"여보게……"
언성이 높았다.
"볼일이단 자는 볼일 밖에 없겠지 하로 저녁 잠좀 덜 자는 게 문제가 아니야"
자못 흥분된 어조다. 그때 주리아가 기다리다 못하여 들어 오더니 다짜고짜 계훈의 파을 끌어다린다. 혁이는 벌떡 일 어스며
"당신에게 꼭 일러둘 말이 있오이다."
영어로 명령하듯이 하였다. 피차의 발음은 서투르나마 간 단히 영어회화는 주고 받을 줄 알았다.
배오개 네거리에서 동소문 편으로 통한 큰 길은 통안 병문 이라. 그 길로 올라가는 전차에 사람이 어떻게 많이 오르는 지 정거수가 미처 차표 값을 다 받지 못할 지경인데, 사람 이 차에만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이 아니라 거리 가는 남녀노 소가 넓은 길에 빽빽하도록 찼으니, 이는 그 길이 특별히 번창하여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날이 일요일인 고로 일 반 관민들이 골몰 무가히 지내다가 하루 한가한 겨를을 얻 어 창덕궁 안 동물원"박물원"식물원을 구경하려고 가는 사 람들이라.
이왕 정시나절일 제 뵈일 때 팔도 선비가 장중에 들어가느 라고 집춘문이나 월근문에 부문하는 일체로 그 많은 구경군 이 홍화문 앞에 와서 낱낱이 표 한 장씩을 사서 들고 문안 으로 들어가더니 넓으나 넓은 곳에 각기 마음대로 이리로 떼를 지어 간다. 그 중에 어떠한 처녀 하나이 나이는 십일 세가 겨우 됨직 하고 이목구비가 떡으로 빚고 붓으로 그린 듯한데, 삼단 같은 머리를 발뒤꿈치까지 치렁치렁하게 땋아 느리었는데, 고운 모시 진솔 치마를 과히 상스럽지 않게 남 의 눈에 거치지 않을만치 머리에다 쓰고 근 오십된 노파의 뒤를 따라가며 나직한 음성으로,
"에그 할머니, 사람도 퍽으나 많습니다."
"글세, 난 이런 줄은 몰랐구나."
"저 많은 사람의 틈을 부비고 구경하려다가는 고생만 하고 구경은 못할 터이니 그만두고 도로 나갑시다."
"이애, 이왕 들어온 것이 절통하니 저기 저 소나무 밑 한편 구석에 가만히 앉았다 사람이 좀 빠져나가거든 구경하고 나 가자."
"그러다가 너무 늦으면 아비에게 사설이나 듣게요?"
"오늘 구경 온 것을 네 아비가 번연히 알고 내가 데리고 왔는데 무슨 사설을 할라구 그러느냐" 아이들이 어른을 무 서워하기도 하여야 사람이 되느니라마는 오늘은 관계치 않 다."
노파는 앞을 서고 처녀는 뒤를 서서 바른손편 언덕 솔나무 밑 잔디밭에 앉아서 그 아래 길로 구경 들어가는 사람을 내 려다보며,
"할머니, 사람도 많이 들어옵니다. 나가기도 적지 않게 나 갔는데 사람은 여전히 많은데요."
처녀가 맞은편을 물끄러미 건너다보더니,
"할머니, 저기 영록이도 구경을 왔습니다."
"어디 말이냐, 응 저기."
"하나 둘 셋째 교의에 회색 두루마기 입은 어른 곁에 앉은 것이 영록이 아니오니까?"
노파가 손을 들어 넘어가는 햇빛을 가리고 자세히 건너다 보다가,
"참말 영록이가 거기 앉았구나. 에그, 그것 잘도 생겼거니, 저의 부모 마음에 여북 귀히 여길까! 우리 연희도 그만치 못생긴 것은 아니지마는 야속한 삼신이 계집애로 점지하셔 서 일상 섭섭하지. 영록 같이 똑똑히 생긴 사위나 얻었으면 한이 없겠다마는."
연희가 그 말을 듣더니 두 뺨이 빨개지며 다시는 아무말도 아니하더라. 영록은 남부 아래 다방골에 사는 김의관의 아 들인데, 김의관이 늦게야 영록을 낳아 금은보패보다 더 귀 히 여기는데, 가세 요부하므로 의복 음식을 제 마음에 부족 한 것이 없도록 하여주는데, 영록 나이 팔구 세 때부터 철 난 아이 모양으로 글 배우기를 자원하니, 김의관은 제 말이 기특하여 천자 읽히기를 시작하였는데, 이 아이 정신이 어 찌 좋은지 한 번 들으면 잊지를 아니하니, 비단 저의 아버 지되는 김의관만 좋아할 뿐 아니라 보는 사람마다 칭찬 않 는 이 없더라. 김의관이 신식 문견은 소대하여 언론 수작이 갑오 이전 완고 시대로 있어, 영록을 남의 집 아이들 일반 으로 학교에를 보내어 체육"지육"덕육을 시킬 줄은 모르고 시골 생원님을 데려다가 사랑에다 두고 동몽선습"통감 등속 을 가르치는데, 아들 자랑하는 마음으로 봄가을 일기가 좋 은 때이면 한두 차례 데리고 구경을 다니는 터이라. 촌 학 구가 구식으로 가르치는 글방에 공일이 어찌 있으리요마는 동리 사람들이,
"오늘이 공일이지" 쉬는 날이니 구경이나 갈까!"
하고 나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물려가는 것을 보고 영록 이가 저의 아버지에게 동물원 구경가기를 조르니, 김의관은 제 말에 못이겨 영록을 데리고 동물원으로 들어가 각종 동 물을 차례로 구경시키고, 장차 식물원 구경을 갈 터인데, 어 린 것이 오래 서서 돌아다녀 다리가 아파할까 하여 연못가 교의에 한가히 앉았다가,
"영록아, 그만치 구경하였으니 해도 늦어가고 다리도 아픈 데 고만 집으로 돌아가자."
"식물원 구경은 아니하고요" 거기는 각색 화초가 모두 만 발하였는데 나는 다리가 아니 아파요."
김의관이 껄껄 웃으며,
"에그, 그 자식 구경도 좋아한다. 그리해라."
하고 벌떡 일어나 식물원을 향하고 영록의 손목을 이끌고 올라가는데, 저의 할머니 말에 부끄럼을 못이겨 두뺨이 빨 개지던 연희는 정신없이 식물원으로 올라가는 길만 뚫어지 게 바라본다.
"할머니, 고만 구경을 가십시다. 인제는 사람이 많이 나가 고 과히 분잡치를 아니합니다."
"오냐. 그리해라."
노파는 그 구경을 몇 번이나 하였던지 이력이 뻔하여, 바 로 동물원으로 먼저 가 박물원으로, 식물원을 마지막으로 볼 작정인데, 연희는 무슨 사상이 있던지 식물원 길로 쭈루 루 앞서 간다. 노파가 가다가 딱 물러서며,
"이애 연희야, 이리 오너라. 저리 가서 노루"사슴"호랑이"사 자 각색 짐승을 먼저 보고 나중에 그리가자."
"저기부터 가보아요."
노파는 어린 아이의 뜻을 꺽지 아니하려고,
"오냐, 아무려나 하여라. 예부터 보나 제부터 보다 일반이 지."
하며 조손이 식물원으로 나가는데, 김의관은 영록을 일찍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작정으로, 이것저것 대강 대강 구경 을 시키고 나오는데, 중로에서 연희 일행을 만나니, 김의관 은 부인의 오는 것을 보고 체통을 차려 멀찌기 외면을 하며 걸음을 걷고, 노파는 남자가 마주 오니까 내외를 하느라고 길 옆에 돌아섰는데, 연희와 영록은 어린아이들이라 무슨 페모를 알아 길을 서로 사양하리요" 오거니 가거니 서로 이 마를 맞닿을만치 마주뜨렸더라. 영록은 연희를 유심히 보고 연희는 영록을 여겨 보다가 영록이가 먼저,
"너도 구경을 왔구나, 왜 인제야 왔니" 나는 벌써 다 보고 나가는데."
"‥‥‥‥‥‥."
영록이가 노파의 앞으로 쭈르르 가서,
"연희 할머니, 구경오셨어요?"
"오, 너 왔니?"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벌써 와서 구경을 다 하고 지금 갑 니다."
"나는 인제야 왔다. 먼저 잘 나아가거라. 나는 천천히 가겠 다."
아이들 마음에 동리 어른을 만나면 반가와하는 것은 예증 이라, 영록이가 저의 아버지를 부리나케 쫒아가더니,
"아버지, 우리 집 앞에 있는 연희도 저의 할머니와 구경을 왔어요."
"응, 어서 가자."
"더 구경을 하다가 같이 나아가지요."
"에, 철 없는 놈, 어서 나아가자."
영록이가 다시는 조르지 못하고 저의 아버지를 따라가더 라.
연희는 영록이 가는 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는지라, 노 파가 손목을 잡아당기며,
"이애, 무엇을 그렇게 보고 섰느냐" 어서 구경하러 가자."
"사람이 다 나가니까 도리어 심심한데요."
그러면 계집아이가 사람 많은 데로 함부로 다닐까" 심심한 것이 다 무엇이냐?"
하여 꾸짖어 데리고 이리저리 차례차례 구경을 시키며 혼 자 마음으로, (그것의 거동이 우습고도 맹랑하지 아니한가‥‥ 아까 실 없은 말로 저와 영록과 혼인을 정하였으면 좋겠다고 하였더 니‥‥.) 하고서 손을 이끌어 집으로 돌아왔더라. 연희 아버지 서하 고서 손을 이끌어 집으로 돌아왔더라. 연희 아버지 서주사 는 가세가 넉넉지 못한 탓으로, 내지인 고목 변호사의 사무 원이 되어 낮이면 그 사무소에 가있다가 밤이면 집으로 돌 아오는데, 그날은 일요일이라 사무소에를 아니 가고 집에서 서류를 정리하느라니, 대문 소리가 찌꺽 나며,
"연희 왔니?"
서주사가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
"거 누구냐" 영록이로구나."
"연희, 그저 아니 왔어요?"
"아직 아니 왔다. 너도 구경갔더냐?"
"예, 갔다 왔어요."
"너의 아버지 댁에 계시냐?"
"저의 아바지께서 구경 가셨다 오셨어요."
"오, 오늘이 공일이니까 글을 아니 읽고 구경갔다왔구나."
"제가 어디 학교에를 다닙니까, 공일을 보게" 제 선생님께 서는 구학문 선생님이시니까 공일을 모르시오."
"공일 아니 보면 더 부지런히 공부하고 좋지마는, 연골 때 부터 학교에를 다녀야 하는걸."
"아바지께서 학교에를 가면 여러 아이들하고 장난이나 하 다가 다치기도 쉽고 공부가 잘 아니된다고 아니 보내셔요."
"허허, 너의 아버지께서는 착실한 완고시로구나. 오냐, 아 무 데서라도 공부만 잘하여라."
벼루 혈합을 열고 색지 쪽을 주며,
"이것 갖다가 서수 속에 넣어라."
영록이가 색지를 받아들고 여득 천금하여 벙글벙글 웃으며 나아간 뒤에 서주사가 혼자 하는 말이라.
"남은 무슨 복으로 저런 아들을 두었노! 우리 연희도 저만 치 못생긴 터는 아니지마는 아들이 못되고 딸이 되어서 귀 해 하다가도 한편으로 일상 섭섭한 마음이 있지."
하며 보던 수지를 마저 상고하는데 연희가 저의 할머니 처 마 자락에 매달려 들어오며,
"아바지, 나 구경하고 왔소."
서주사가 문을 열고 마루 아래까지 마주 내려가며,
"어머니, 인제야 오셔요."
"압다, 사람이 어찌 많은지 어린 것을 데리고 어디 구경하 겠더냐."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사람이 많을 터이지요. 그래, 구경을 못하시고 오셔요?"
"왜 구경을 못하기는, 한 편 길치워서 우두커니 앉았다가 사람이 거진 나아가기를 기다려서 구경을 하느라고 이렇게 늦었구나."
"이 앞집 영록이는 벌써 와서 연희를 찾아왔던 걸요."
"에그, 그놈 사내자식이라 맹랑도 하다. 그 넓은데를 다 돌 아다니다 와서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연희를 찾아왔구나. 다 시 보아도 그놈 잘도 생겼어. 우리 연희와 혼인을 하였으면 좋겠더라."
"그까짓 것을 어느새 혼인 정하는 것이 다 무엇입니까" 아 직 내버려두었다가 제 나이 차거든 정혼 출가를 시키지요.
그뿐 아니라 저년 하나 분인즉 데릴사위나 하여 의지를 하 여야 할 터인데, 설혹 영록이와 정혼을 하기로 김의관이 무 엇이 부족하여 외아들을 데릴사위로 보내겠습니까?"
"그도 그렇다마는, 네 댁이 지금 아주 단산지경은 아닌즉, 설마 또 낳지 못할라구 그렇게 생각을 두느냐?"
나는 아무리 단산 지경은 아니라도 신병이 심장치를 않으 니 또 잉태하기를 바랄 수 없고, 천우신조하여 수태를 한 대도 무슨 복력에 아들 낳기가 쉽사오며, 아들을 낳기로 잘 기르라는 데 없고, 기른다니 어느 세월에 재미를 본단 말씀 이오니까?"
서주사의 어머니 성은 장씨이니, 자녀간 생산은 부지런히 하였으나 낳는 족족 낭패를 보고 늦게야 서주사를 낳아 세 살이 겨우 되자 저의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니, 과부로 각색 고초를 다 겪으며 그 아들을 길러내어 며느리도 보고 초사 를 시켜 늙기에 재미를 보는데, 그날 그 아들의 낙심하는 말을 듣고 제 마음을 위로겸 자기의 경력을 이야기한다.
"이애, 그리 낙심하지 말아라. 나도 너를 낳기 전에 무슨 마음이 아니 들었겠느냐" 남의 집에 들어와 후사를 끊게 한 생각하면 하루도 몇 번씩 죽고 싶더니, 급기 막내로 너를 낳아놓고 핏덩이를 들여다보면 생각할수록 저것을 언제나 길러 재미를 볼꼬 하였더니, 네가 벌써 사십이 불원하고 그 속에서 난 자식이 열한 살이나 되었으니 세월이 잠깐이더 라. 올내년간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낳아놓으면 네가 늙기에 넉넉히 그 재미를 볼 터이니 공연히 너무 낙심을 말 아라."
그때 마침 대문 밖에서 누가 주인을 찾는 소리가 나거늘, 서주사가 분분히 나아가 보니 이는 별사람이 아니오, 곧 앞 집 김의관이라. 사랑으로 맞아 들어가며,
"영감 오셨소?"
"오늘은 댁에서 편히 쉬시구려."
"예, 그리했습니다. 담배 붙이시오."
김의관이 궐련 한 개를 피워 물고 두어 모금 빨더니,
"오늘 동물원 구경을 하고 왔거니오."
"그리하셨소" 무슨 가관이 많이 있어요" 나는 집에서 볼일 이 좀 있어서 꼼짝도 못하였는걸요."
"압다. 구경할 만한 것이 여러 가지던걸요. 동물원에는 동 서양 기기괴괴한 짐승이 많고, 박물원에는 고금의 명화"명필 과 각종 고물이 평생 처음 보는 것도 많고, 식물원에는 형 형색색 좋은 화초도 많습디다. 그러나 구경군이 어찌 많은 지 좀체 볼 수가 없습디다."
"아마 사람이 그렇게 많았을 것이요. 볼 만한 것이 많기도 하고, 오늘이 쉬는 날이니까 각 관청 관리와 관공"사립 학도 가 모두 갔을 터이니까."
"아마 노형 댁에서도 구경을 가셨지요?"
"내 딸년이 지각없이 조르니까 우리 자친께서 데리고 가셨 다 오셨지요."
"아마 그러신가 봅디다. 노형 자당은 뵈옵지 않은 터이니까 자세는 몰랐으나, 노형 딸아기는 내집에를 이따금 온 것을 더러 보아 알뿐 아니라 우리 놈이를 보더니 저희끼리 반가 와서 지껄입디다. 내가 지금 노형심방 오기는 우슨 말씀 한 마디를 하자고 왔는데 노형이 팔시나 아니하실는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읍니다만 괄시할 리가 있습니까""
"다른 일이 아니라 내 자식도 노형이 조석으로 익히 보신 터이오. 영애도 내가 많이 본 터이니 피차 불필타구로 사돈 이 되면 어떠하겠소?"
"노형이 그 말씀을 먼저 하시니 말이지, 지금 우리 자친께 서 구경터에서 자제 아이를 보시고, 다시 보아도 잘생기었 더라고, 여식과 정혼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하시기에 내가 여쭌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여쭈었습니까?"
"신랑은 다시 더 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노형댁 가품을 동리 간에 일상 흠선하던 터이니까, 통혼을 하여 댁에서 아 니 들으시면 모르거니와, 허 아직 주단 거래가다 무엇이오 니까마는 노형 의향이 그러하시거든 아무려나 보내시지요.
허락곧 하시면 그만치 좋은 일 다시 없으나, 내 신세를 생 각하고 자친께 여쭙기를 혼처는 더 말할 게 없이 극가하나 사십지년에 쓸 자식은 없고 딸년 그것 뿐인 즉, 불가불 데 릴사위를 하여 앞에 데리고 있어야 할 터인데, 그 집에서 귀중한 외아들을 무슨 대사로 데릴사위 줄 리도 없고, 무슨 염치로 달랄 수도 없으니까 그 아니 딱하오니가 하며 모자 가 무한 개탄을 하였는데, 지금 노형이 먼저 통혼을 하십니 다그려."
"노형 사정은 그러하시겠소마는, 그럴 것 없소. 내 집과 노 형 댁이 한마당에 있어 한집안과 일반인즉, 혼인 지낼 지경 이면 자식놈이 데릴사위 일반으로 노형 댁에 와 있다시피 할 터인즉 두말 마시고 아주 정혼을 합시다."
서주사가 가만히 생각한즉 신랑도 욕심이 나고 그 집형세 도 불빈할 뿐 아니라 가품이 매우 좋은 줄을 익히 아는 터 인즉 그런 혼처 내어놓기가 아까와서,
"노형이 미거한 여식을 어떻게 보셨는지 이처럼 친히 오셔 서 말씀을 하시니 어찌 감히 이론을 하오리까?"
"감사하오, 기위 면대를 하여 정혼한 터이니 아주 오늘 주 단을 보내오리다."
"그까짓 입에서 젖내나는 것들을."
서주사가 그 말을 마치고 김의관을 작별한 후 안으로 들어 가 자기 어머니와 부인께 정혼한 이야기를 하고, 주안을 분 별하여 내다가 김의관과 삼사 배 나눈 뒤에 김의관이 자기 집으로 돌아와 자기 부인 오씨와 말을 하고, 즉시 영독을 불러 사주단자를 대간에다 쓰라 하여 백지로 봉하고 싸리를 쪼개어 같이 한반을 끼워 위아래를 다홍실로 휘휘 감아서 서주사 집으로 보냈더라.
서주사가 김의관을 보내고 안으로 들어가 자기 어머니와 부인 임씨에게 연희 정혼한 이야기를 하니,
"오냐, 잘 정했다. 신랑도 다시 골라야 영록이 만한 자격이 없을 것이요, 그 집 벌절도 격장가에서 우리가 다 아는 터 이니 아주 잘되었다. 신랑은 다시 보아도 잘생겼던걸. 오늘 구경터에서 보아도 그 많은 아이들에 하나도 눈에 드는 아 이가 없고 영록이가 제일 잘생겼던걸."
임씨는 자기 시어머니 말 끝에,
"에그, 제일 시집이 가까워서 좋고, 만일 저것을 멀리 시집 을 보내놓고서야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살 수 있나?"
"우리도 영록이를 일상 탐을 냈지마는, 김의관 집에서도 우 리 연희를 대단히 탐을 내었던 것이야."
이 모양으로 좋아하며 아직 혼인을 지내지는 아니하였으나 두 집에서 서로 사까이 지내기는 한 형제집보다 조금도 못 지 아니하더라. 이왕에는 영록과 연희가 날마다 서로 찾아 다니며 소꿉질도 하고, 말농질도 하여 저희끼리 사이가 썩 가깝더니, 두 아이 나이 십세가 가까와음으로부터 영록은 글 읽느라고 한만히 다니지를 아니하고, 연희는 침선 배우 느라고 대문 밖에를 아니 나가므로 서로 자주 만나지를 못 하다가, 그날식물원으로 나가는 길에서 만나 a한 반가와 말 몇 마디를 하였는데, 급기 혼인을 정하여 놓으니, 영록은 사 내놈이라 일호도 부끄럼이 없어 전보다도 더 부지런히 서주 사의 집에를 건너와서 연희를 보려고 기웃기웃 하는데, 연 희는 계집아이라 혼인 정하기 전과 같이 않아 부끄럼을 못 이겨서, 영록의 음성만 나면 어느 구석에 가 쥐 숨듯 숨어 서 내다 보지도 아니하니, 장씨노파는 그것들 하는 양이 재 롱스러워서, "연희야, 숨기는 왜 툭하면 숨느냐" 네가 시집 을 가서도 네 신랑을 보고 저 모양으로 숨을 터이냐?"
"어디로 갔느냐" 할머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고만 내버려 두오. 제 신랑 재목이 왔으니까 부끄러워 그 러나 보오. 이애 영록아, 너는 부끄럽지 않으냐?"
영록이는 그 대답은 아니하고 벙글벙글 웃기만 한다.
장씨가 영록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사내자식이라 맹랑하거든! 부끄러워하기커녕 뱃심 좋게 웃 기만 하는걸."
하고 벽장을 열고 과실을 내어 먹이더라. 그 같이 재미스 럽게 지내는 광음이 어느덧 두 아이 나이 십삼 세씩 되었더 라. 김의관은 완고의 사상으로 아이를 성례를 시키자거니, 서주사는 조혼의 폐습을 들어 아직 급하지 않다거니 하여 날마다 상지 중이더니,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살 세상이라 고 남과 송사는 왜 그리 좋아하던지 고목 변호사에 송사 위 임하는 원피고가 날마다 답지하여 일반 사무원이 미처 눈을 뜰 겨를이 없는 중, 부산 땅에 큰 송사가 한 가지 있어 변 호사가 불가불 출장 변론을 하게 되었는데, 고목 변호사는 경성에서 재판하는 일이 여러 가지 관계가 되어 사무원 하 나를 데리고 출장시킬 터인데, 사무원 중 법률에 밝고 변론 잘 할 만한 사람은 서주사가 제일이라, 부득이 당일로 급히 발행하게 되어 가사를 분별할 여부 없이 총총히 떠나며 자 기 어머니께,
"어머니, 일이 급하여 장황히 말씀을 여쭙지 못하고 떠나가 오니, 저 집에서 혼인 말을 하거든 신부의 아비가 다녀오거 든 의논 조처하자고만 하십시오."
간신히 자기 어머니께 하직절 한 번을 한 후 연희의 머리 를 두어 번 쓰다듬고 휘적휘적 나아가 인력거를 타고 정거 장으로 뒤도 못 돌아보고 가더라. 서주사가 그 길 떠날 때 에는 가까우면 일 주일, 멀어야 이 주일이면 회환할 줄로 생각하였는데, 소송 등사라는 것은 의외 충절이 생기어 여 러 달 지체되기가 부지중 그 해 여름을 객지에서 보내게 되 었더라.
부산항은 내외 상인이 복잡하게 모여들고 동서양 물화가 번창히 왕래하는 곳이라 도처마다객주집에는 너무 조용치를 못한즉, 잠시라도 유숙할 수 없는 중 더구나 소송 등사는 좌석이 요란하고서는 변론할 일을 연구하기가 극난한지라 주인을 으슥한 곳으로 택하여 가 있는데 그 주인은 서주사 의 집 이웃에서 살다가 수년 전에 그곳으로 낙향한 황서방 이라.
황서방의 연기가 불과 십구 세인데 그 부여조가 모두 큰 실업가로 각 은행 취체역으로 있던 터이더니, 재물을 모으 기는 어려워도 패하기는 쉬운 것이라, 황서방이 부여조가 우연 득병하여 모두 세상을 버린 후, 요량없는 황서방은 과 거하는 조모와 어미를 업수이여기고, 밤낮으로 부랑자를 추 축하여 그 많던 재산을 다 털어없애고 부산 농장으로 낙향 을 하였는데, 웬만치 경제를 하였으면 그 농장만 해도 나무 럽지 아니하게 냈으련마는, 걷지도 못하고 날기로 제 집안 경제로 못하는 것이 장사한다고 사면 빚을 내어 도처 낭패 를 하고, 사세부득이 상밥장사를 하고 있는고로 서주사가 일부러 찾아가 주인을 정하였으니, 이는 동시낙양인으로 한 동리에서 살던 정리도 생각하고, 또는 그 집이 한편 길치에 있어 번화치 않은 것을 취함이러라.
"존장께서 여기를 어떻게 내려와 계십니까" 그 동안 기체 안녕하시오니까?"
"응, 나는 별고 없었네마는, 댁내 다 무고하신가?"
"예, 시생은 그 동안 각색 풍파를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시생의 집을 어찌 알으시고 이렇게 찾아오셨읍니까?"
"나도 댁이 여기인 줄은 막연히 몰랐더니 급기 이 곳에를 내려와서 조용한 주인을 정하려는데, 뉘게 들으니까 자네 댁이 여기인데 손을 더러 유숙시킨다하기에, 일변 반갑기도 하고 조용도 할 듯싶어 이렇게 찾아왔네. 어, 과연 반가운 걸."
"아무렴 그러시지. 이곳에 행차를 아니하셨으면 이어니와, 오시고야 다른 집에 가 계셔서야 섭섭지 아니하겠읍니까?"
"아무렴 그러하지. 그러나 그 동안 각색 풍파를 겪었다 하 니 듣기에 놀라운 일일세그려. 무슨 풍파를 겪었단 말인구?"
"말씀을 여쭙자면 기가 막힙니다. 지각없이 굴다가 부조지 업을 다 없애고, 기름 엎지 른후 깨줍기로 이곳으로 내려오 기는 벼 백이나 추수하는 것이 있어 그것이나 지니고 지내 읍자 함이러니, 세상 일이 어디 마음과 같기가 쉽습니까" 항 구에서 남들 장사하여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을 보고, 슬며 시 장사를 해볼 마음이 들어서 장사 시작을 하였다가, 이익 커녕 낭패만 번번이 보고, 또 그 동안 상처까지 하였답니 다."
"허허, 저런 변 보아. 그래, 속현이나 하셨나?"
"속현을 어서 하라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나 시생이 결심하 기를, 돈을 다시 모아 조수족을 할 만하기 전에는 장가를 아니 들리라 하옵고 지금 만 이년을 이렇게 혼자 있으며, 그렁저렁 객주도 한다 장사라고 하여 팔아 없앴던 전답을 약간 물렀읍니다."
"허, 자네 집심이 무던한걸. 그러면 자네 자당께 주궤를 하 시겠네그랴. 노래에 여북 어려우실까" 아무쪼록 어서 속현을 하게."
"존장께서는 무슨 일로 이곳에를 행차해 계시오니까?"
"허허, 나도 생활에 곤란하여 내지 사람고목이라는 변호사 의 사무를 보아주고 매 삭에 사오십 원씩 얻어다 먹고 지내 는데, 마침 무슨 사건이 있어 그 위임을 맡아가지고 이곳으 로 출장하였네."
"그 동안 아마 서랑을 보셨읍니까?"
"정혼은 하였지마는 아직 어린 것을 성례시키기가 무엇해 서 그대로 내버려 두었네."
"예, 그러하시지요. 조혼이라는 것이 아주 해로와 연한 풀 에 서리 맞는 일체야요. 시생도 열한살에 장가를 들었읍니 다마는,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데요. 그런데 혼인은 뉘 집과 정하셨읍니까" 따님을 이왕 보았으니 말이지, 참 잘 두셨는걸이요."
"압다, 자네도 친좁게 지내지. 우리 앞집에 사는 김의관장 의 아들 영록이와 정혼을 하였다네."
"예, 영록이와 정혼을 하셨어요! 그 집 가세도 불빈하고 신 랑도 똑똑한 걸이요. 매우 잘 정하셨읍니다."
"잘 정하였나?"
"잘 정하셨읍니다."
공삼이가 이와같이 수작을 하고 혼자 내심으로, (내가 그 처녀를 조석으로 보았으니 말이지, 인물이 썩 일 색인걸. 그것 분하게 되었다. 혼인을 정하였더면 좋을 것 을‥‥. 내가 늘 홀아비로 살 수는 없고 장가를 다시 들자 면 변변치 못한 신부는 눈에 차지를 아니할 터이요, 응, 공 연히 내가 패가한 이야기를 샅샅이 하였지, 그 생각은 미처 돌지를 아니하고 무심히 하였지‥‥‥. 그 역시 소용없는 말이다. 설혹 내가 더럭 큰 부자가 되었다 하기로, 벌써 정 혼을 하였다는데 거기 파혼하고 나에게 후취 줄 리가 있나
"‥‥‥그렇지마는 그 신부 놓치기는 과연 원통한데.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고") 이리 생각 저리 생각 무한 생각을 하다가, (에라, 고만두어라. 유지면 사경성이니라.) 그 다음부터는 공삼이가 서주사를 더 특별히 대접하여 거 처도 편토록, 음식도 맞도록 맞도록, 소청하는 일이면 입에 혀같이 시행하니 서주사 생각에, (사람이 미상불 외도도 좀 해야 쓰는 것이로구. 저 사람 한 참 난봉 부릴 적에 내가 동리서 목도한 바이지마는, 경박"부 량하여 어른"아이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할러니 지금 지내보니까 아주 지각이 나서 공근하고 겸손 한 것이 십상 좋은 자격이 되는걸. 어, 인제는 황씨 집이 다 시 홍왕하여지겠군. 재물 모으기 전에는 속현 아니한다는 결심이 역시 범상한 사람의 못할 일이야.) 여러 달 동안에 서주사가 공삼이 사랑하는 마음이 친자질 이나 다름이 없이 여기는데, 공삼은 속셈이 있어 출입하는 시간 외에는 꼭 서주사 앞에 있어 서주사의 페를 받아 글씨 배우기로 종사를 한다.
"여보게, 자네가 기위 저렇게 부지런히 공부를 할터이면 글 씨 잘 쓰는 사람의 체를 받아다가 익힐 것이지, 변변치 못 한 내 글씨는 배워 무엇하려나?"
"존장의 필법 만하면 넉넉히 행세하옵지, 명필은 취하여 무 엇합니까" 시생이 일찍이 철이 없어, 부모의 가르치는 것을 배반하고 부랑하기로 종사를 하옵다가, 서사 통정도 변변치 못하오니 지금 와서야 후회가 되어 존장을 친부에서 답지않 게 생각하옵고 필법을 배우는 바이올시다."
"허허, 도리어 부끄러운 일일세. 나 역시 공부를 잘못하여 글씨가 겨우 군두목일세."
이때에 장씨는 그 아들을 여러 달 못 보아 궁금한 중, 천 행으로 우체법이 있어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 왕래를 하니, 몸 성히 있는 줄은 든든 믿고 있는 중, 주인 정하고 있는 황공삼의 후대함과 그 자격의 기특한 말을 한이 없고 칭찬 한 것을 보고 자기 며느리더러,
"이애, 며느라, 사람이라 하는 것은 열 번 다시 되고 백 번 다시 되나 보다. 그 사람이 우리 이웃에 살때에는 지각이 아주 없어 밤낮으로 주색잡기에 침혹하여, 저의 조부모가 손톱"발톱이 자빠지도록 벌어놓은 재산을 다 탕패하고 시골 로 떠나가더니, 그 사람이 그렇게 무던한 사람이 될 줄이야 누가 뜻하였어!"
"어머님, 그 사람이 어른"아이를 몰라보고 아주 후레자식이 라고 연희 아비가 늘 타매를 하고 도무지 대면하기를 싫어 하더니, 편지에 칭찬한 것을 보니까 아주 딴 사람이 된 것 이올시다. 그 때도 난봉짓은 하였으나 덜걱덜걱한 것이 과 히 녹록지는 아니하였지요."
집안에 큰 재앙이 오려면 괴상한 조감이 생기는 법이라.
하루는 임씨가 연희의 머리를 빗기며 자기 남편의 오래 오 지 못함을 한탄하는 차에, 어떠한 마누라가 의복을 정결히 입고 아는 집 들어오듯 하더니, 마루 앞에 가턱 걸터앉으며 혼잣말로,
"주인 아씨가 계신가요?"
임씨는 아는 사람이 누가 왔나 하여 손에 들었던 빗을 연 희 머리에다 꽂고 분주히 문을 열고 내다보니, 생면부지 모 르는 마누라다.
"웬 마누라님이요?"
"예, 지나다가 잠시 들어왔습니다."
"어디 계신 마누라님이요?"
그 마누라가 그 대답은 하지도 아니하고 연희의 얼굴을 물 끄러미 보더니,
"에그, 그 작은 아씨 잘도 생기었다. 얼굴에 오복이 그득하 고나."
임씨가 웃으며,
"그 마누라야, 관상도 하나 보이."
"예, 대강 짐작이나 합지요."
"그러면 자세 좀 보아주오그려. 이 애가 내 막내 딸인데, 저희 우애나 있겠소?"
임씨가 이렇게 말하기는, 평일에 그 남편의 말을 들어 사 주니 관상이니 본다는 것이 모두 허탄한 것으로 여겨 실없 이 물어서 제가 무어라 대답하나 거동을 보자는 것이라. 그 마누라가 임씨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더니 깔깔 웃으며,
"점잖은 아씨도 거짓 말씀을 하십니까?"
"왜" 거짓말은."
"그럼, 진정이셔요?"
"아무렴, 진정이지. 늙은 사람을 속일까요?"
마누라가 허리춤에서 노랑 수건을 집어내어, 두 눈을 이리 저리 씻고 연희도 보는 체 임씨도 자세 보는 체하더니 다시 또 한 차례를 웃는다.
"그 마누라가 사람을 보고 왜 자꾸만 웃기만 할까?"
"예, 아씨 말씀이 하도 우스워서 그럽니다."
"내 말이 우습다니?"
"아씨, 왜 이러십니까" 귀신은 속이셔도 늙은이는 못 속이 셔요. 바로 이 늙은이 눈이 멀었으면 모르거니와 번연히 보 이는 데가 있는 것을 속이셔요" 아씨께서 생산인즉 서너 번 하셨읍니다마는, 지금 앞에 거느리고 계시기는 따님 하나 뿐이실 터인데, 몇 형제이니 몇 남매이니 하시니 속이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임씨가 은근히 혀를 홰홰 내두르며,
"어찌해 그렇단 말인가?"
"관상 이치를 어찌 다 말씀하오리까마는, 아씨 얼굴이시든 지 저 아기 얼굴에 벌써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보여?"
"길닿게 여쭐 것 없이 아씨는 아들 없으실 팔자시고, 저 아 기는 독신일 팔자가 아주 뚜렷이 보입니다."
임씨가 그 말을 듣고 신기해서 혼자 생각하기를, (저 마누라가 한 번도 우리 집에 와본 적이 없는데 저와 같이 여합부절 알아내는 것을 본즉, 관상법이라는 것이 있 기는 분명한 것이로구. 어디, 우리 연희 후분이 어떻겠나 좀 물어보겠다. ) 하고 마누라를 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자세 묻는다.
"여보, 마누라, 귀신같이 알아맞히구려. 기왕 보아주는 터 이니 우리 딸 후분이 어떻겠나 좀 보아주시오. 그러나 음성 을 좀 나직나직히 하오, 우리 시어머님께서 밤이면 잠을 못 주무시고 낮에 겨우 잠이 들으셨소."
"에그, 아씨 효성도 스러우셔라. 지금 세상에 엊그제 시집 온 것들도 제 시어미를 모두 네뚜리로 여기는데, 아씨는 같 이 늙어가는 터이시건마는 조심을 이렇게 하십니다."
"아까는 내가 과연 실없는 말로 마누라님 대답을 좀 들어 보자고 속였더니 여합부절 알아내는 것을 보니까 참 신통하 오. 저것이 내게 당하여 남의 열 아들 믿듯 하는 터이니 잘 좀 보아주오."
"그러면 그렇지, 백주에 늙은 사람을 속이시려고. 그럼, 제 가 무엇을 변변히 알겠읍니까마는 정성껏 아는대로 보아드 리지요."
마누라가 연희의 머리를 반듯이
"여보, 왜 그러오" 그 애 상을 보니까 좋지 못하오?"
아니올시다. 아기 얼굴이 한 곳도 나무랄 데가 없읍니다마 는 한갓 수가 좀 부족합니다."
임씨가 깜짝놀라며,
"수가 부족하다니, 그래서야 어떻게 하오?"
"남의 수양딸로 보내시거나 후취로 들여보내셨으면 도액이 되어 관계치 아니하겠습니다. 아기 본래 타고난 수는 팔십 에 퇴를 달 터인데 중간에 잠깐 액운이 있어 그러하니까 그 도액만 하면 아무 걱정 없을 터이니 염려 말으십시오."
임씨가 돈 이십 전을 내어 그 마누라를 주며,
"이것이 변변치 않으나 담배값에나 보태어 쓰시오."
"에그, 천만 의외올시다. 제가 어디 생애로 다닙니까" 에그, 아씨를 처음 뵈와도 일상 뵈옵던 양반처럼 반가우셔. 그러 나 제 말씀을 귀밖으로 대면한 적이 없더니, 오늘 그 마누라의 말을 들으니까 지 나간 일이 꼭 꼭 맞으니, 관상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닌 데‥‥. 그 마누라 말대로 남의 수양딸로 주자니 내가 허수 하여 못견딜 뿐 아니라 어머님께서 내어놓으실 리가 만무하 고, 남의 후취로 주자니 이미 혼인을 정하였는데 변통할 수 있나‥‥. 어좌어우간 이따 어머니께서 기침하시면 이런 말 씀을 여쭙고 의논을 하여보겠다) 거미기에 장씨노인이 잠을 다 자고 일어나서 닫은 미닫이 를 열고 내다보며,
"어, 내가 잠을 많이 잤구나. 해가 벌써 승석때나 되었구 나."
임씨가 분주히 안방으로 건너가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앉 으며,
"어머님, 무엇 좀 잡수셔요, 시장하실 걸요."
"먹기는 무엇을 먹어" 오래지 아니하여 저녁밥이 될 터인 데."
"그러나 저는 오늘 우스운 일을 보았습니다."
"무슨 우스운 일을 보았는데?"
"아까 어머님 주무실 때에 웬 늙은 마누라 하나이 들어오 더니, 연희란 년 머리 빗기는 것을 여겨보더니 관상을 보는 체하기에, 제가 실없이 연희를 가리키며, 이 애 남매가 우애 나 있게 지내겠느냐 물었더니, 에그, 그런 것은 처음 보았습 니다. 그 말을 듣더니 그 마누라가 웃으며 번연히 아기가 독신인 줄 아는데 왜 속이느냐고 말을 하며, 몇 살에는 아 들을 낳고, 몇 살에는 딸을 낳아 삼사 형제를 낳기는 했으 나, 어느 해에 잃고 어느 해에 잃어서, 외딸 둘 팔자가 얼굴 에 나타났다고 눈으로 본 듯이 말을 해요."
"그래, 또 다른 말도 하더냐?"
"하도 신통하기에 과연 그러하노라 바로 말을 하고, 연희의 전정을 물어보았더니 아주 아니 들으니만 못해요."
"왜 무슨 괴악한 소리를 하더냐?"
"별로 괴악하달 것은 없어도 그 마누라 말이, 연희의 상이 복록이 가득하고 타고난 수는 팔십에 퇴를 달겠으나, 중간 에 살 격이 있어 그 살을 풀지를 아니하면 수에 대단히 방 해가 되겠은즉, 도액하기 위하여 연희를 남의 수양녀를 주 어 얼마간 떠나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후취로 시집을 보내 라 하여요."
"그까짓것들이 무엇을 안더더냐" 지나간 일은 여간 알아맞 히어도 오는 일은 별로 모르느니라."
"저도 그런 줄로 알기는 합니다마는 그 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에 꺼림하여요."
"내 마음도 그렇기 하다마는, 그것을 잠시인들 앞에 떠나 남의 수양딸로 줄 수가 있느냐" 정해논 혼인을 파의하고 다 른 데 후취로 줄 수가 있느냐" 아무래도 사세 부득의 일을 근심하여 쓸 데가 무엇이냐!"
그날왔던 마누라는 제가 <마의상서>나 <희이전서>를 공부 하여 관상한 것도 아니오, 특별한 의사 한 가지로 도처마다 영험하다는 말을 듣고 다니며 전곡 간 적지 아니 벌어들여 태평 생활을 하는 혹세무민의 무리이니, 기의사는 별것이 아니라 아무리 생면부지 모르는 집이라도 들어가려면 먼저 그 근동 사람에게 그 집 내용을 일일이 채문하여 자세 듣고 서야 들어가 능청스럽게 지껄여, 지각없는 부녀들로 고혹하 게 함이러니, 그날 궐녀가 마침 다방골로 지나다가 서주사 의 집에를 들어가 속여볼 작정으로 이웃 행랑것들에게 제가 서주사를 친한 듯이 슬슬 말끝을 내어, 서주사가 무남독녀 를 두었는데 지금 집에 없고, 다만 여편네들만 있다는 말을 역력히 알고 들어가, 그 모양으로 수작을 하여 두 부인의 마음을 현란케 하여놓은 것이라. 때는 정히 가을이 점점 깊 어서 팔월 중순경이라. 일기내 시한 더위에 들볶이던 사람 들이 중병이나 나은 듯이 시원 상쾌하고 몸이 가뜬하여 마 음에 날아갈 듯싶어, 혹 친구를 작반하여 각처 유희장에 구 경도 가고, 혹사 집에서는 아무 흥이 없어 중문을 적히 닫 고 시어머니 며느리도 연희를 앞에 앉히고 탄식하는 말이 라.
"어머님, 오늘이 벌써 팔월 열나흗날이올시다. 그저 저년의 아비가 있었더면 송편이나 좀 하여 먹을걸. 명절이 와도 명 절이 온지 만지, 남들처럼 시원하게 문박으로 공원으로 구 경이나 좀 다녓으면 좋겠습니다."
"글쎄로다. 추석 명일이 내일인데 오려 송편도 못해 먹고 남들과 같이 산보도 못하고, 사는 재미라고는 반점도 없구 나."
연희가 그 말깃을 달아,
"에그, 참, 할머니, 송편 좀 먹었으면."
"에이, 지각없는 것 같으니. 그러지 않아도 할머니께서 근 심을 하시는데,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서주사의 집 안방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김의관집에서 들 은 것같이, 계집하인이 붉은 칠 목판에 노란 종이를 덮어 이고 들어오더니, 그 목판을 내려 마룻전에 다 놓으며 전갈 한 마디를 정이 뚝뚝 듣게 한다.
"마님 안녕합시오" 아씨 안녕합시오" 작은아씨 안녕합시오"
댁 마님께서요, 문안 아옵고자 합니다 하고, 이동안 거느리 시고 기운 안녕하십니까 하고, 그동안 또 부산 편지나 종종 보셨습니까 하고, 이것이 많지 못하고 맛이 없으나 섭섭하 기에 보내오니 잡수어 보십사 하고요."
장씨가 내다보며,
"그것은 무엇인데 저렇게 많이 보내셨니?"
"고사떡이야요. 어저께가 무오일이라고 고사를 지내셨답니 다."
"이애, 며느라, 저것 받아라."
임씨가 마루로 나아와 찬장 우이에 얹힌 빈 목판을 내려 행주질을 정히 하더니 그 떡을 옮기어담으며,
"웬 것을 이리 많이 보내셨을까" 제일 우리 작은아씨 짜리 가 잘 먹겠구먼."
하며 방으로 들어와 돈 십 전을 내어 떡 담았던 목판에다 놓아주며 답 전갈을 한다.
"문안 아옵고자 합니다 하고, 궁금하던 차 하인을 부리셔서 댁내 안녕하신 문안 듣잡고 마음에 든든히 지냅니다 여쭙 고, 부산 소식은 종종 듣사오나 아직 오실 기망이 없사와 답답하오이다 하고, 고사떡은 웬걸 이다지 많이 보내셔서 입맛없던 차 잘 먹겠읍니다고 여쭈어라."
그 하인이 막 나아가자 웬 하인이 대문 밖에서 소리를 질 러서,
"한님, 한님."
임씨가 행랑을 향하여,
"어멈, 행랑에 있나" 댁에 누가 왔나 보이. 좀 내다보게."
행랑에서 아무 대답이 없으니, 김의관 하인이 가다가 돌쳐 서서 한님 부르는 자를 향하여,
"여보, 어디서 왔소?"
그 자가 짚신 감발에 괴나리 봇짐을 걸메고 대 지팡이를 비스듬히 짚고 서서,
"예, 나는 부산에서 올라왔소. 이 댁이 서주사 댁이지요?"
계집하인이 부산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제 마음에도 반갑 게 여겨,
"예, 그댁이 서주사댁이요. 편지 가지고 왔소" 편지가 있거 든 이리 주오. 내가 들여다 드릴 것이니."
그 자가 봇짐을 벗어 끄르더니 큼직한 편지 한 봉을 내어 주며,
"엣소, 들여다 드리시오. 내가 서울 볼일이 있어 올라오는 데 서주사 나으리께서 이 편지를 주시며 부디 댁을 찾아 전 하고 답장을 받아달라고 하십디다. 내가 내일 모레 떠날 때 에 또 올 것이니 편지 답장을 써두었다가 주십사고 여쭈시 오."
계집하인이 편지를 받아들고 서주사 집으로 다시 들어가 임씨에게 드리며 그 자의 하던 말을 전하더니 임씨 앞에가 가까이 앉으며,
"아씨, 편지를 어서 떼어 보십시오, 언제나 올라오시겠다고 하셨나. 댁 영감께서 날마다 궁금해 하시는데, 말씀을 가서 여쭙겠습니다."
임씨가 그 대답을 할 겨를없이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 편 지를 떼어 보는데, 그 편지가 겉봉은 하나라도 그 속에는 석 장을 각각 봉하여 넣었으니, 하나는 피봉에
「어머니 전 상서 부산 객중 자 상서」
라 하였고, 또 한 장에는 피봉에,
「월방 시중 즉납 부산 객중 상장」
이라 하였고 또 한 장에는 피봉에,
「연회 보아라, 부산 객중 평서」
라 하였는데, 게 식구가 다 각기 펴들고 보는데, 김의관의 집 하인이 무슨 재미있는 말이나 얻어들으면 저의 댁에 가 고하려고 귀를 기울이고 앉았는데, 그 편지에 무슨 말이 있 는지 장씨와 임씨가 처음에는 커닿게 보다가 점점 음성이 입속으로 들어가며 아무 소리 없이 속으로만 내려보더니 장 씨가 그 며느리더러,
"이애, 편지 좀 보아라."
임씨가 그 편지를 받아보더니, 자기에게 온 편지를 장씨에 게 드리며,
"어머님, 제게 온 편지도 이러하와요. 좀 보십시오."
장씨가 그 편지를 받으며 자기 며느리를 향하여 은근히 눈 짓을 하니, 임씨가 아무말 없이 편지를 둘둘 말아 한편 손 에다 움켜쥐고,
"행랑 어멈은 어디를 가고 없노" 저애가 마침 아니왔더면 편지를 누가 받아들일 뻔하였어?"
김의관 집 하인이 내려놓았던 목판을 다시 집어 이며,
"편지에 무슨 말씀이 계셔요" 나으리께서 언제나 행차하신 답니까?"
임씨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아직 언제 오실지 모른단다."
"에그, 그렇게 못 오셔서 작은아씨 혼인은 언제나 합니까"
어서 혼인을 지내셔야 쇤네들도 떡을 얻어먹을 터인데."
하며 연희를 돌아보며,
"작은아씨, 그렇지 않으오?"
그 하인이 하직을 다시 하고 저의 댁으로 돌아와 오씨 부 인에게 답 전갈을 고한 후
"아씨 시댁에는 그 댁 나으리 편지가 왔어요."
"응, 편지가 왔어" 그 댁 나으리께서 언제나 오신다고 하셨 다디?"
"그러지 않아도 쇤네가 여쭈어 보니까 그 댁 마님 말씀이 언제 오실는지 모르시겠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한단 말이냐" 그 양반이 어서 올라오셔야 도령님 혼인을 지낼 터인데."
"글쎄올시다. 다른 댁 같으면 벌써 혼인을 하셔서 재미를 적지아니 보셨을 터인데, 도령님 나이 어려서 장가를 이때 까지 아니 들여요" 그 댁에서는 혼인 지낼일 생각은 도무지 아니하시고 편지를 보시더니 무슨 말씀이 있는지, 마님아씨 께서 은근히 눈짓을 하시며 가만가만히 편지를 보시던데요.
에그, 이상야릇도 해라."
"오냐, 요란스럽다. 설마 올해 안으로야 그 양반이 올라오 셔서 성례를 시키시겠지."
"그 나으리 올라오시기 기다리다가 우리 댁 도령님은 노총 각이 되시겠네."
이와 같이 김의관집에서는 조급히 여기는데, 서주사집에서 는 혼인 일사에 대하여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더라. 그 문 제는 별문제가 아니라 그날 김의관집 하인이 받아 들여온 편지는 곧 그 혼인을 파의 하자는 것이라. 그 사연에,
"연희의 혼인은 그다지 급치 않은 것을 일시 무심중에 김 의관의 아들과 정혼을 하였더니, 지금 아무리 생각하여도 영록이라는 아이가 외화는 번번하나 기실은 허화로 생기어 제 수에 극히 해롭고, 또는 그 부모가 모두 완고되어 며느 리를 신식으로 활동치 못하게 하고, 매사에 그곡을 심히 하 여 고생을 막심히 시키기가 십상팔구오니 비록 주단 거래는 하였으나 아직 결혼을 아니하였은즉, 구태여 고집 불통할 필요가 없은즉 진시 변통을 하는 것이 가하오며, 또는 신랑 의 연기가 신부보다 오륙 년 손위가 되어야 생육에도 합당 하고 정도에도 적당하므로 현시 문명한 내지인들은 으레 신 랑의 연기가 신부보다 오륙년 이상 되는 것을 취하느니, 이 리 생각하오나 저리 생각하오나 영록과 결혼하는 것은 만만 불가하온중, 황서방 공삼은 연기도 적당하고 위인도 현안하 고 경력을 많이 하여 더 위논할 여부 없이 극가 극가한 터 이오며, 우중지 일찍이 재물을 치패하였다가 다시 경제를 극히 하여 점점 부요하여간즉 황씨의 집은 즉 늘어가는 터 이요, 김씨의 집은 즉 삭아가는 터이라. 그러한 중 황공삼이 가 그 동안 상처를 하고 결심하기를, 이왕 낭패한 재산을 회복키 전에는 속현을 아니하리라 하였더니, 지금 와서는 저축한 재산이 오히려 본래 있던 것보다 갑절이나 될 지경 이므로 방장 혼처를 구하는 터인즉, 내 생각에는 그같이 합 당한 혼처를 내놓기가 아까운즉 부재다언하옵고 퇴혼하는 뜻으로 김의관 집에 말을 보내옵소서."
장씨에게와 임씨에게 온 편지가 인사만 다를 뿐이지 사연 은 일반이라. 김의관집 하인 나아간 뒤에 시어머니와 며느 리가 의논이 분분하더라.
"어머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읍니까" 저 집에서는 아직 성례만 아니하였다 뿐이지 아주 새 사돈집으로 여기는데 무 슨 핑계로 퇴혼을 합니까?"
"이애, 그렇지마는 당장 핑계하기가 어렵다고 퇴혼을 아니 하고 그대로 두는 수가 있느냐" 그러지 않아도 아까 네 이 야기를 듣고 마음에 꺼림하여 먼저 편지로라도 애 아비와 의논을 하여보자 하였더니, 제 생각이 먼저 이렇게 드는 것 이 신기한 일인데, 무슨 자저를 한단 말이냐?"
"그야 누가 모릅니까마는 그렇게 탐탁히 정한 혼인을 지금 와서 무엇이라고 말을 할 것이 없어 근심이 되어 그럽니다."
"오냐, 그는 걱정 말아라. 내가 망령 삼아 생떼를 쓰겠다."
하고 방장 행랑 마누라를 불러 그 말을 김의관 집에 가도 록 이르려는데, 연희가 저의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를 이리 저리 보고 또 보며,
"할머니, 그까짓 흑세무민하는 관상쟁이년이 무엇을 안다고 그리하세요?"
"오냐, 너는 참섭할 일이 아니다. 어른이 어떻게 하든지 가 만히 있거라."
"또 이번에 온 편지는 모두 아버지가 보내신 것이 아니어 요."
"이애야, 번연히 네 아비 친필을 보며 그런 말을 한단 말이 냐" 듣기 싫다. 저리 가거라."
임씨가 화를 버럭 내며 이 편지 저 편지 주엄주엄 집어 연 희 턱 밑에다 들이대며,
"이 소견없는 것아, 눈깔로 똑똑히 자세 좀 보아라. 아버지 친필이 아닌가."
"필적은 아무리 방불하여도 아버지 편지는 아니야요."
"그것은 어찌해서 그렇단 말이냐" 시원히 말을 해라."
"아버지께서 매사에 신의가 있기로 명예가 높으신터인데, 자식의 인륜 대사를 한 번 정해 놓으신 터에 무단히 이런 편지를 하실 리도 없고, 여러 해포를 그곳에 계실 터이 아 니시고 멀어야 몇 날 후면 올라오실 터인데 무엇이 그리 시 급해서 편지로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있읍니까" 또 그리고 이 편지를 열모로 뜯어보아도 필적이 어리어서 십분의 칠팔 분은 아버지 필적 같지를 아니합니다."
임씨가 벌떡 일어나 연상 혈합에 넣어둔 그 전에 온 편지 를 내어보이며,
"이애, 소견없는 말 작작 하고 이 편지와 비교를 똑똑히 좀 하여보아라. 너의 아버지 필획과 한 점이 틀리냐?"
"비교는 하나 마나, 아버지께서 그렇게 편지를 하실 리가 만무하니 깊이 생각을 하셔요."
"생각이 무슨 생각이란 말이냐" 너의 아버지께서 이런 편 지를 아니하셨더라도 내가 먼저 주장을 하려고 하였다. 너 는 참섭할 일이 아니니 아무말 말고 있으라니까 왜 이러느 냐?"
"말"소 흥정은 하였다가 도로 무르지요마는, 혼인은 인륜 대사인데요‥‥."
"네가 지각이 있느냐 없느냐" 무지막지한 하천배의 자식이 라도 계집아이로서 혼인 등사에 말을 못하겠더든, 너는 조 금도 수괴지심이 없이 중언부언, 응, 해괴망측도 한지고!"
"이애, 고만 꾸짖어라. 그게 아직 펄이 안나서 그렇구나.
그만 일렀으니 설마 다시야 그리하랴?"
"지금 철이 아니 나면 언제나 철이 납니까" 계집애년이 제 혼인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은 고담책에서도 못 보 았습니다."
연희는 감히 다시 말을 못하고 한편 구석에 돌아앉아 눈물 만 더벅더벅 떨어뜨리는데 임씨는 자기 시어머니와 김의관 집에 퇴혼할 공론을 분분히 한다.
"어머님, 김의관집에다 무슨 말로 퇴혼을 하면 좋을까요"
지금 그 집에서는 혼인이 다시 변통이 없을 줄 알고 어서 성례를 하자고 재촉을 하는 중인데요."
"글쎄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이애, 그렇지 아니하다.
아이 아비가 퇴혼하자는 편지까지 하고 퇴혼을 어떻게 할 방침인들 생각을 아니하겠였느냐" 우체로 편지를 부쳐 아이 아비의 시키는대로 하자구나."
각각 편지를 써서 한 봉투에 넣어 등기로 부치고, 날마다 그 회답 오기를 고대하더니, 이왕 같으면 주야 배도 쌍보행 을 띄운대도 십여 일 동안이면 편지가 오고 가지를 못하였 을 터인데, 사흘이 못되어 체전부가,
"편지 들여가오."
하는 소리에 기다리던 편지 답장이 왔더라. 그날 편지 뜯 어볼 때에 장씨"임씨 두 부인은 혼인 파의가 되도록 사연 하였기를 기다리고, 연희는 이왕 정반대로 아무쪼록 퇴혼치 말라는 사연 하였기를 기다리는데 급히 편지를 떼어보더니 연희더러는 이런 말 저런 말 여부없이 행랑어멈을 부르더 니, 연희의 외조 임통정을 청하러 보낸다.
"여보게, 어멈, 지금 한달음에 서학재 넘어가서 작은아씨 외할아버지 영감 좀 여쭈어 오게."
"예."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급히 가려는걸 연희가 물 끄러미 보다가,
"어머니, 아버지께서 무엇이라고 답장을 하셨어요?"
"그건 알아 무엇해" 어른이 시키는대로만 가만히 있지, 응"
규중처녀가 아니꼬와라."
하고 손에 들었던 편지를 연희 앞에다 홱 집어내던지며,
"어따, 네 눈으로 시원히 보려므나. 바싹바싹 소견없이 우 기더니."
연희가 그 편지를 집어들고 종두지미를 내려다보느라니, 필적은 저의 부친과 방불하나 그 사연은 천만 부당하다.
"연희의 혼인 일사는 일전 편지에 아주 말하였는데, 무엇이 자저되어 진시 퇴혼을 아니하옵고 이처럼 기별하옵는지, 길 게 말할 것 없이 나는 결단코 김의관의 아들로는 사위를 삼 지 아니할 터이니, 이 편지 보옵시는 대로 시각을 머무르지 말으시고 곧 퇴혼을 하옵소서. 연희의 지각없는 말은 종작 없는 어린아이의 소견인즉 다시 그런 개구를 못하도록 꾸짖 으시옵고, 당장 연희의 외조부를 잠시 청하여다가 내 편지 를 보시게 한 후 김의관 집에 직접으로 퇴혼을 하여줍시사 여쭈옵소서. 단정코 퇴혼할 줄로 믿고 황공삼에게 이미 혼 인을 통하여 허락까지 들었사오며, 황씨가의 사정이 급함을 인하여 연희의 연기는 비록 어리나 이 달 안으로 불복일 성 례를 시킨 후, 이곳에 있는 황씨의 집을 방매하고 서울 우 리 옆집으로 반이까지 하기로 작정하였사오니 공연히 유예 미결하여 창피한 지경이 없도록 주선하옵소서."
하였거늘, 연희가 낙심천만하여 가슴이 우둔우둔하며 얼굴 에 상기가 부썩 되어 아무 분개를 못하다가 다시 곰곰 생각 하기를 아무래도 그 편지가 의심이 나는데‥‥‥.
(평일에 아버지 말씀이 혼인을 일찍 하는 것은 큰 폐해라.
남자는 십팔구 세나 이십 세 가량이 되어 골격이 장성하여 야 요촉하는 일이 아니 생기고, 여자는 십오 세 이상 십육 칠 세 가량이 되어야 기혈이 충분하여 생식에 이로우니, 우 리 연희는 세상없어도 십칠 세 이전에는 성례를 아니 시키 겠다 하셨는데, 이 편지에는 별안간에 이 달 안에 불복일로 급히 성례를 시키신다는 말씀이 그 아니 이상하며, 그렇게 칭찬하시던 김씨가는 이 모양으로 타매하시고, 한없이 타매 하시던 황씨 아들은 이같이 칭찬을 하셨으니 그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지. 아버지 범절을 아는 바에 범상 처사도 이렇게 반복하실 리가 없거든, 하물며 자식의 혼인대사를 이렇게 사리에 온당치 아니하게 하실 리가 없고, 설혹 아버지께서 망령이 들으셔서 이쯤 하신대도 나 되어서는 죽을지언정 정 이행할 수가 없는 것이, 혼인은 일백 행실의 근원이라, 개나 돼지 아닌 바에 한 번 정하여 사주까지 받은 혼인을 파의하 고 다른 곳에 허신을 하고 천지간에 몸을 어찌 용납하리요
") 하여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주야 울기만 하니, 장씨는 간절히 달래고 꾀고, 임씨는 꾸짖고 욱박지르기만 하더라.
그리하자 인력거 소리가 뚜루루 나며 행랑어멈이 들어오더 니,
"아씨, 서학재 영감 오셨읍니다."
"벌써 오셨나" 그러면 안방 미닫이를 닫고 영감을 모시고 건넌방으로 들어오게."
행랑어멈의 뒤를 따라서 나이 근 육십한 노인 하나이온 세 상이 다 깎는 머리도 아니 깎고 주먹 같은 옥관자를 두 귀 밑에다 딱 붙였는데, 희뜩희뜩한 수염을 연해 쓰다듬으며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아랫목에 가 비스듬히 앉으니, 임씨 가 그 앞에 가 날아갈 듯이 절 한 번을 하더니,
"아버지, 근래에는 해소 기운이 좀 덜하셔요?"
임통정이 수염을 일향 쓰다듬으며,
"응, 나는 관계치 않다마는 모시고 몸 성히 있느냐" 네 남 편의 소식은 자주 들으며, 언제나 올라온다더냐" 영희는 어 디 갔느냐?"
임씨가 자기 아버지 앞으로 바싹 가까이 앉으며,
"아버지, 이것 좀 보셔요."
"무엇 말이냐?"
"이 편지가 연희 아범에게서 온 것인데 사연을 보시면 자 연 알으실 터이야요."
"무슨 사연이란 말이냐?"
하고서 안결집을 부스럭부스럭 열더니 돋보기를 내어쓰더 니 자기 딸이 주는 편지를 들고 한구히 보다가,
"이게 웬 말이냐" 점잖은 터에 주단까지 받고 면언을 하고 서 지금 와서 이론을 어찌 한단 말이냐" 이애, 여러 말 말고 기왕 정한 혼인이니 그대로 지내자고 네 남편에게 답장을 하여라."
"아버지께서는 사정도 채 모르시고 저렇게 말씀을 하십니 다."
"사정이 무슨 사정이란 말이냐" 김동을 나도 익숙히 보았 다마는, 그 애보다 더 똑똑한 서랑은 어디 있으며, 그 집이 요부하겠다, 인품이 후덕하겠다, 무엇이 어떠해서 퇴혼을 구 태여 한다고 이러느냐?"
"퇴혼할 만하니까 그렇지요. 공연히 그리하겠읍니까" 연희 아비가 퇴혼을 아니하려고 한 대도 제가 우겨 퇴혼을 하려 고 하였어요."
"너는 또 무슨 주견으로?"
"그런게 아니라 저 일전에 웬 마누라가 생면부지 모르는 터인데 지나다가 들어오더니, 연희를 유심히 보고 잘생기었 다고 칭찬을 하기에 관상할 줄을 아나보다 하였더니, 대강 짐작이나 하노라고, 연희의 초분"중분"말분을 말하는데, 초 분 지나간 일을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것을 보니, 중분"말분 도 그 말에 벗어나지 아니할 터인데, 연희의 타고난 수는 팔십에 퇴를 달 터이나 중간에 액운이 있어 남의 수양딸로 주어 부모를 갈거나 후취를 주어 팔자땜을 하기 전에는 단 수하기가 십상팔구라 하니, 들으면 병이요 아니 들으면 약 이라고, 그것 하나 있는 것을 남의 수양을 주고 앞이 허수 하여 견딜 수 없고, 나이 파고 지각이 나서 색시 사랑할 만 한 후취 신랑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 좋겠구먼. 김씨가와 정혼을 하였으니 저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꼬 하여, 저의 시 어머님과 한걱정으로 지내는 중 편지가 이렇게 왔어요."
임통정의 연기는 비록 많고 외양은 점잖으나 본래 무식한 소지로 무녀배의 미신하는 말을 곧이듣고 무꾸리를 일수 잘 시키는 자격이라, 자기 딸이 관상쟁이의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먼저 제법 점잖게 말하던 본의는 다 어디로 가고 요사 한 수작이 그 딸보다 한층 더한다.
"이애, 그럴 터이면 퇴혼을 하여야 하겠다. 주단 왕래라 하 는 것이 다 무엇이냐" 그 딸이 어떤 딸이라고, 제게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변통 아니할 수가 있느냐" 또 그나 그뿐 아 니라 이 집에 어른되는 네 남편의 뜻이 이러한 이상에 반대 할 수가 있느냐" 내가 김의관을 가보고 퇴혼을 하여주마. 이 애, 그러나 연희는 아무 눈치가 없더냐" 필경 아무 눈치가 없겠지. 규중 계집아이가 제 혼인 등사에 무슨 참섭을 하겠 느냐?"
"에그, 아버님께서 말씀을 하시니 말이지, 그런 소견없는 년은 처음 보았어요. 저년을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모르겠 읍니다."
"왜 무엇이라고 하더란 말이냐?"
"그년이 퇴혼한다는 말을 듣고 개냐 돼지냐 별말을 다하며, 저의 아비 편지를 번연히 보면서 부썩부썩 그렇게 편지할 리가 만무하다고 하기에 계집애년이 어른 하는대로 할 것이 지, 참섭이 무엇이냐 꾸짖어도 일향 듣지 아니하여 밥도 아 니 처먹고 쪽쪽 울기만 한답니다."
"오냐, 너무 욱박지 말고 가만 내버려 두려므나. 제 뜻이 기특지야 아니하냐" 어른이 제 전정을 위하여 억지의 일을 하는 것이지."
"다른 일과 달라 계집아이가 혼인 등사에 간섭이 무엇입니 까" 고년 정 고집을 하거든 박살을 하여 없애겠읍니다. 그런 소견없는 것을 자식이라고 두면 무엇하게요" 알뜰살뜰히 속 만 타지요."
"어, 네 지각이 연희만 도리어 못하구나. 아까도 말이"는 제 뜻인즉 가상하니 아무쪼록 좋은 말로 달래어 마음을 안 유시킬 생각은 아니하고 왜 그러느냐" 그리 말고 내 말대로 여러 가지 말로 달래어 밥도 먹고 울지 않도록 하여서 황소 년을 올라 오는대로 성례를 시켰으면 고만이지, 무슨 걱정 을 한단 말이냐" 나는 지금 곧 김씨가에 가서 혼인 파의의 말을 하고 오마."
임통정이 즉시 김의관 집으로 찾아가 김의관을 보고 수작 하는 것이라.
"주인이 댁에 계신가?"
"누구시오니까?"
하며 문을 열어보더니 깜짝놀라 마주 나와 영접하여 방으 로 들어가 아랫목 보료를 가리키며,
"이리 앉으십시오."
"아무데인들 관계 있나?"
김의관이 재삼 권하여 임통정을 아랫목에다 앉히고 절을 공손히 한 후, 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앞에 가 앉으며,
"일기가 심히 좋지 못하온데 기체 어떠합시오니까?"
"응, 댁내 일안하신가" 그러나 내가 오늘 자네를 찾아온 것 은 섭섭한 말 한 마디를 하자고 왔거니."
"섭섭한 말씀이 무엇이오니까?"
"응, 말하지. 자네 자제와 내 외손녀와 정혼을 아니하였던 가?"
"예, 그리했읍니다."
"혼처로 말하면 자네 댁이나 내 사위 집이나 막상막하고, 신랑"신부가 서로 나무랄 데가 없은즉 극히 가합한 터이지 마는, 천장 연분이 부족한지 아니될 일 한 가지가 생기었 네."
김의관의 눈이 둥그래지며,
"그게 어쩌신 분부오신지요?"
"매사를 전설거하는 편이 옳지, 간격을 두고 우물쭈물 하여 서는 가치 아니하기로 말일세. 남자와 달라 여자들은 아무 문견이 없고 요사스럽기는 내집 남의 집 할 것 없이 일반이 아닌가! 내 사위는 지금 부산에 가 있고, 내 딸이 저의 홀시 어머니 되시는 양반과 있는데, 아마 어떤 관상쟁이 계집이 왔던가 보데. 소위 관상쟁이니 사주장이니 하는 것이 알기 야 무엇을 알겠나마는, 내 외손녀의 상을 보고 십삼 년 지 나간 일을 일호 차착 없이 내리 맞히니까 깜짝들 혹해서 내 두사를 물은즉, 김씨가와는 연분이 없어 제수에두 해롭고 시집에도 이롭지 못하리라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서‥‥."
"별말씀을 다 합니다. 그까짓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그러십 니까" 이왕 서랑과 동리간에 중매 여부없이 단단히 면약을 하여 주단거래까지 한 혼인을 요사스러운 계집년의 주착없 이 지껄이는 말을 듣고 다른 의논을 할 수가 있읍니까" 그 집 아낙에서 혹 이론을 하시거든 노인장께서 명기불연을 하 십시오."
"허허, 괴이치 않으이. 나인들 알아듣도록 말을 아니했겠나 마는, 내 딸도 고집을 하거니와 제일 신부의 조모 되시는 어른이 한사하고 퇴혼을 하려 하여, 내 사위에게 그 동안 편지 왕래가 여러 번 되어 아주 작정이 되었나 보데."
"그러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서랑 그 사람의 평일 범절을 깊이 아옵는 바 필경 이 일을 경홀히 변경 아니할 듯 싶은 데, 편지 왕래까지 하였다 하오니 아무래도 의심이 나는걸 요."
그 말을 그치자 계집하인이 사랑문 앞에 와서,
"영감마님, 아낙에서 여쭈십니다."
"오냐, 들어간다."
김의관이 일어서며,
"앉아 계십시오, 안에 잠깐 다녀 나오겠습니다."
"응, 그리하소. 나도 총총하여 차차 일어서겠네."
김의관이 안으로 들어오니, 그 부인이 분함을 못 이겨 얼 굴이 푸르락붉으락하며,
"영감, 왜 그리 구구하시오?"
"무엇이 구구하단 말이오?"
"저 애들이 들어와 말하기를, 사랑에 웬 손님이 오셔서 도 령님 혼인 말씀을 하시는데, 자세는 몰라도 퇴혼이니 어쩌 니 하셔요 하기에, 세상에 궁금해서 여편네의 행실은 아니 나 사랑 문턱에 가 엿들어 보았는데, 그런 괴악한 집 풍속 이 어디 있소! 혼인은 인륜 중 제일 큰 일인데 관상장이의 말을 듣고 이러니저러니 이론을 한단 말이요" 에그, 아니꼬 와라. 내 자식이 어디가 병신이요" 무슨 걱정이 되어서 그 아니꼬운 일을 당하시고 구구한 말씀을 하셔요" 첫 마디에 그러하겠다고 우리도 그다지 탐탁지 아니하노라고 못하시 고."
"그렇게 말을 하면 나 역시 주축일반되지를 아니하오" 퇴 혼은 어차어피에 되는 터인데 말이나 그렇게 하여 나마저 그른 사람이 아니되어야지요."
"영감 생각에는 그러하시지마는, 남들이야 그렇게 아나요"
서가의 집에서는 퇴혼하려는 것을 우리 집에서는 아무쪼록 혼인을 지내자고 빌붙는 줄 알 터이니, 그 아니 창피스러워 요?"
"미상불 그도 그렇소. 혼인 아니되는 이상에 쾌쾌한 모양이 나 보여야 옳겠소."
영록이가 협실에서 글을 읽다가 임통정이 와서 퇴혼 언론 하는 양을 보고 저의 아버지가 무엇이라 대답을 할는지 궁 금하여 가만히 엿듣느라니, 저의 아버지가 준절히 그 불가 함을 말하는 것을 듣고 속마음으로, (아버지께서 사리를 따져 대답을 잘 하시는구나. 될 말인 가! 이미 정하여 사주까지 받고서 지금 와서 퇴혼이라니! 우 리 아버지께서 저렇게 대답을 아니하신대도 내가 바로 홀아 비로 늙을지언정 다른 신부에게는 장가를 들지 아니할 터이 다.) 하고 있더니, 자기 아버지가 안에를 다녀 나오더니 임통정 을 대하여,
"길닿게 말씀하실 것 없읍니다. 그 집 의향이 이미 그렇게 들어간 이상인즉 생각대로 하라 하십시오. 자식놈이 아무리 못생겼기로 그 집 아니기로 설마 장가를 못 들이겠읍니까"
마음에도 그 집과 혼인 지내기가 썩 탐탁지 아니하건마는 점잖은 도리에 한 번 정한 혼인을 이론하는 것이 불가하여 그대로 있었더니 너무나 잘되었습니다.
"여보게, 일은 가이없이 되어 할 말이 없네마는, 이 역시 두 집에서 다 좋자고 하는 일인즉 조금도 혐의 쩍게 여기지 말고, 두 집이 예같이 친근하게 지내기를 믿네."
하고 소매 안으로부터 사주단자를 내놓는지라. 영록이가 절통하기도 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걱정들을 것을 불계하고, 좌석으로 썩 들어가 임통정에게 절 한번을 하고서 두 손을 마주잡고 한편에 비켜섰다가, 임통정이 작별하고 일어서 나 아가는 것을 따라 나가 중문밖에 이르러서 임통정 앞에 가 우뚝 서며,
"제가 여쭐 말씀이 있읍니다."
"응, 무슨 말인구?"
"이런 말씀이 아이들 되어 대단 불가하오나, 적은 규모를 지키느라고 대의 관도에 말씀을 아니하면 도리어 고집 불통 이니까 여쭙니다. 지금 노인장께서 가친께 말씀하시는 것을 가만히 듣자온즉, 사리 십분 가합치 아니하오니 노인장께서 서씨댁에를 가거든 명기 불연을 하옵서 일륜 대사에 큰 결 점이 없도록 하옵소서."
"그 일은 너의 어르신네와 이미 결정하였은즉, 너는 참섭할 일이 못된다."
"아니올시다. 말씀을 아니 내었으면이어니와 기위 여쭙는 터이니 말씀이올시다. 사람의 혼인은 말"소홍정과 달라 한 번 정한 것을 무르는 법이 없거늘, 혹세무민하는 요녀배의 무거한 말에 고혹하여 자식의 백년 가약을 파괴하면 이는 무지"몰각한 자의 아니할 바이오니 노인장께서는 생각을 다 시 하여보옵소서."
"그게 무슨 소리냐" 혼인 정하였다가 퇴혼하는 일이 더러 있는 일이요, 또는 어른이 주장하여 좌우간 조처하는데 대 하여, 신랑 네가 참섭하는 것이 만만불가하니라."
"노인장이 아니하실 말씀이 올시다. 혼인을 어른이 주장하 시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오나, 이번 일에 당하와는 윤리 에 위반되는 거조이온즉 어찌 말씀을 아니 여쭈오리까! 만 일 일향 퇴혼을 하는 동시에 시집을 타문으로 가면 서씨와 규수도 행실이 온당치 못하고, 장가를 타문으로 가면 저도 행실이 온당치 못한 줄로 생각하오니 처분하여 하옵소서."
임통정이 그 대답은 다시 아니하고 행행히 자기 사위의 집 으로 와서 그 딸을 보고, 김의관과 수작한 것을 전하고 겸 하여 영록의 말을 이야기하며, 큰 성사나 한 듯이 부녀가 재미스럽게 웃으며 담화하는 것을 연회가 가만히 엿듣고 기 가 막혀 내심으로, (나는 외할아버지 거기 가시는 것을 보고 필경 무안을 당 하고 오시려니 하였더니‥‥‥. 내 집이나 남의 집이나 어 른들 처사하시는 것이 딱하지 아니한가! 에그, 외할아버지 를‥‥‥쫓아 나와서 여쭙더란 말씀이 열 번 옳고 백 번 옳 지. 아무리 저렇게들 하신대도 바로 내 몸이 열 조각이 나 기전에는 다른 데로 시집을 아니 갈 터이니까‥‥‥.) 공변된 광음은 사람의 사정을 따라 재촉하고 지체하지를 아니하고 일정한 이치를 따라 으레 가니, 둥그렇던 보름달 이 점점 이즈러져 부지중 그믐께가 되어오니, 임씨부인이 자기 시어머니와 의논을 하고 대례지낼 준비를 분분히 차려 놓고 부산에서 황공삼이 올라오기를 눈이 감도록 기다리는 데 연희는 기가 막혀 일정한 생각이, (살아서 황가에게 시집을 가느니, 차라리 목이라도 매어 세 상을 잊으리라.) 하고 몇 차례를 독한 마음을 먹었다가 다시 생각하기를, (오냐, 내가 경선히 죽을 것이 아니라 차회를 좀더 보아 정 위급하거든 죽어도 늦지 아니하다. 아무리 연구를 하여보아 도 이 일이 아버지가 알으시는 것 같지를 아니하고, 설혹 알으시고 그런 거조를 하시면 아버지 앞에 불가한 뜻을 시 원히 한 번 폭백을 하여보는 것이 옳겠다. 아마 소위 황가 가 올라올 때에는 아버지께서 같이 오실 터이지.) 그리하자 문밖에서 들레며,
"신랑 서방님이 지금 올라오셔서 이 뒷집에 사처를 정하셨 는데, 댁 나으리마님 서간을 보내셔요."
임씨가 반색을 하여 마루로 마주 나오며,
"이애, 새 서방님이 올라오셨다며! 나으리 서간이라니, 나 으리께서는 못 행차하시는 것이로구나. 이리 다고."
하더니 그 편지를 들고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 뜯어 본다.
"이번에 기어코 신랑과 같이 올라가서 저희들 성례하는 재 미를 보자 하였더니, 공교히 여러 달 끌어오던 송사의 재판 이 격일하여 몸을 빼낼 수가 없어 생각 다 못하여 신랑만 올려보내니, 내일로 곧 성례를 시키시며 장황히 다른 날을 또 택할 것 없이 아주 합례까지 시키시옵소서. 그날이 극히 길한 날일뿐더러 황서방의 사정이 여러 날 지체할 수가 없 으니, 나 없는 것을 부디 섭섭히 여기지 말고 내 말대로 혼 인을 지내게 하옵소서. 일이 이같이 급하였은즉 잔치음식을 집에서 잔만할 수 없을 터인즉, 요릿집에 보내어 교자나 몇 틀 맞춰다가 안팎 손님과 하인배들을 대접하도록 하옵소서.
신랑"신부의 의복은 이왕 유념한 것이 있을 터이니 응당 미 비한 것이 없을 듯하오. 퇴혼한 이래로 김의관 집에서 무리 한 책망이나 없는지" 책망이 만일 있을지라도 아무 관계 없 거니와 행여나 우리 집에서는 그 집에 대하여 좋지 못한 대 답을 말고 귀먹은 체 못 들은 체하소서."
임씨가 그 편지를 자기 시어머니께 보이고 일변으로 정안 청"교배석"독좌상 각색 설비를 분별하며, 일변으로 떡을 마 춘다, 술을 사온다, 국수를 사온다 하며, 일변으로 수모를 불러 연회의 머리를 감기고 세수도 시키려 하는데, 연희는 몸이 아프다 청탁하고 일체 기동을 아니하니, 장씨는 달래 고 임씨는 꾸짖으며 몸이 아무리 아파도 참고 일어나 수모 시키는대로 하라 하나, 연희는 일향 말을 아니 듣는다.
"저년이 금방 뒈지게 되었나, 도무지 기동을 못하게" 여보 게 수모, 고만 내버려두게. 세수를 아니하여 분이 잘 아니 먹거나, 머리를 아니 감아 결어빠지거나, 내일 성례할 때에 나 단장인지 성적인지 하게 그만 내버려두게."
"에그, 그래서 어떻게 하나" 오늘 말끔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아두어야 할 터인데."
"아무렴, 대수인가! 고만 내버려두게, 내일 저도 소견이 있 겠지. 저 모양으로 파발을 하고 교배를 하거나 단장을 하고 교배를 하거나 나는 모르네."
"그러실 리가 있읍니까" 지금은 작은아씨께서 몸이 편치 않으시니까 귀치않아서 그러셨지, 내일이야 무슨 날이라고 성적을 아니하실라구요" 작은아씨, 그렇지 아니하오" 내가 똑바로 알지."
그 모양으로 야단법석을 하다가 수모는 내일 오기로 가고, 집안식구들은 잔치 차리느라고 분주한데, 연희가 아무리 생 각하여도 박두한 화색을 면키 어려운 중, 손녀를 남다르게 사랑하는 장씨노인은, 연희가 어린 소견에 제 뜻대로 못하 는 것을 분히 여겨 혹독한 마음을 둘까 염려함이런지, 자나 깨나 연희의 곁을 아니 떠나니, 연희가 한 가지 꾀를 내어 저의 할머니 훈계를 옳게 듣고 마음을 고친 듯이 벌떡 일어 나 세수를 가져오라 하여 분 세수도 정히 하고, 저녁밥도 앙탈없이 많이 먹으니, 장씨노인은 집안에 큰 경사나 난 듯 이 마음을 턱놓고 며느리를 가보고,
"며느라, 우리 연희가 인제야 회심을 하였나 보더라."
"왜요?"
"제가 자청하여 소세도 하고 저녁밥도 곧 많이 먹었다."
"너무나 다행합니다. 말이 그렇지, 그년이 영영 고집을 하 고 말을 아니 들으면 죽이지도 못하고 어떻게 할 뻔했읍니 까?"
"글쎄다, 인제는 제 거동대로 내버려두고 아예 비위를 거스 려 말하지 말아라. 나도 인제는 저 있는 방에를 자주 가보 지 않겠다. 아이들이, 어른이 올라와 있는 것을 귀치않아하 는 줄을 번연히 알지마는, 그 애가 하도 매몰하니까 나는 은근히 겁이 나서 제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꼭 지켰더니 제 가 그 모양으로 풀리는 것을 보니까 내 마음이 턱 놓인다."
연희가 저의 할머니 없는 틈을 승시를 하여 머리맡에 걸린 수건을 벗겨 들고 슬며시 뒤꼍으로 돌아가 혼자 소리없이 탄식하기를,
"에그, 내가 우리 부모의 무남독녀 외딸로서 아무쪼록 살아 서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여 만년에 재미를 보시도록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어늘, 오늘날 이같이 비명에 자처하는 것 은 불효에 가까우나, 인륜의 큰 관계로 사세 부득이한 거조 인즉, 기실은 불효가 아니라 이는 실로 부모를 위함이니 나 의 지조를 조촐히 하여 남의 타매를 아니 받으면 그 빛난 성예가 부모에게 미치게 함이니라."
하고 수건 한 편 끝을 담밑 오동나무 가지에 걸쳐 매고, 한 끝으로 자기의 목을 매려 하는데 누가 별안간 와락 달려 들어 붙잡으며,
"여보, 좀 참으시오."
연희가 깜짝놀라 돌아보며,
"에그머니, 이게 누구야!"
오매에 잊히지 못하는 사람은 눈을 감아도 그 전형이 환하 게 보이느니, 이는 일심의 정기가 그 사람 하나에게 모여,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염염자재한 곡절이라. 연희가 죽기 로 결심하여 세상 만사에 아무 경황이 없는 중, 이게 누구 야 소리를 지르고 홱 돌아다 보는데, 그때로 말하면 보름께 가 아니니 달빛도 없고, 사람 거처하는 곳이 아니니 등불도 없고, 오직 침침칠야 곁에 사람을 분별키 어려운 밤이언마 는, 영록의 얼굴을 첫대 알아보고 아무말 못하고 땅에 가 푹 엎드러지니 영록이가 황망히 붙잡아 일으키며,
"여보, 이게 무슨 해거요" 정신을 차려 일어나 내말을 좀 들으시오."
"‥‥‥."
"사람이 죽는 것은 막마침 가는 일인데, 지금 꽃으로 이르 면 봉오리도 아니 전 터에, 왜 막마친 가는 일을 행하려 하 오?"
"‥‥‥."
"우리가 이곳에 오래 지체하며 장황히 말할 경위가 못되오 니, 간담을 들어 한 말씀 권고하는 것인즉, 아무쪼록 마음을 돌리어 독한 거조를 말고 부모의 명령을 승순하여, 나 같은 용렬한 위인은 계련치 말고 극가한 신랑과 아름다운 배필이 되어 유자생녀하고 백년을 해로하오. 내가 오늘 밤에 월장 을 하여 규중 여자와 접어를 하는 것이 실례인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우리가 어려서 같이 자라 맵고 단단한 마음을 깊이 짐작하는 바, 오늘밤을 당하여 스스로 추측을 하여본 즉, 필경 생각을 옹색히 하셔서 망령된 거조 있기가 십상 팔구이기로 법률에 저촉됨을 불구하고 깊은 장원을 넘어왔 사오니 특별히 용서하시오."
연희가 그 지경을 당하니 아무리 여자라도 말을 아니하는 수 없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간신히 입을 열어 모기 소리 만치,
"이 사람은 한 번 죽기로 결심하온 바에 다른 말씀은 할 것 없사오니, 부질없이 지체 말으시고 어서 바삐 나가옵소 서."
영록이가 그 말을 듣더니 연희의 손목을 턱 잡으며,
"소저가 이렇게 결심을 한 터이면 내가 도리어 실수의 말 을 하였소. 그러나 부모가 일시간 오해하고 부당한 거조를 하신다고 생명을 끊고자 함은, 이는 목전에 불측한 욕을 면 하나 부모의 누명을 더하게 함이오니, 그리할 것 없이 나와 함께 이 담을 넘어 도망하여 좋은 도리를 구처하는 것이 어 떠하오?"
"죽을 마음을 결단함은 사세가 부득이함에서 나옴이온 데‥‥어디든지 버리지 않으시면‥‥그러나 저 담을 어떻게 넘어가나요?"
"그것은 걱정없소. 내 어깨를 디디고 올라서서 저 나뭇 가 지를 휘어잡고 담으로 올라가면, 그 너머에는 내가 넘어올 제 갖다놓은 사다리가 있을 터이니 그리로 내려가오."
"에그, 나만 넘어가면 어떻게 하나요?"
"내 걱정은 말으오. 어떻게 하든지 못 넘어가겠소?"
연희가 그 담을 넘어가 기다리느라니 영록이가 뒤미처 넘 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느 으슥한 곳에 와서,
"우리가 이 모양으로 가다는 경찰이 밝은 세상에 얼마 못 가서 탄로가 날 터이니, 여기 가만히 숨어 앉았으면 내가 우리 집으로 도로 들어가 의복 입습을 도둑하여가지고 나올 것이니, 그것을 바꾸어 입고 가는 것이 옳을까 하오."
"시키는대로 하지요."
영록이가 임통정 다녀간 뒤로 주사야탁이, (어떻게 하면 서씨가 규수를 다른 데로 시집을 못가게 하 고 내가 기어이 그리로 장가를 갈꼬") 하더니, 급기 부산으로 가 있는 황공삼이가 서규수에게 혼 인을 정하고 성례차로 올라왔는데 내일이 혼인날이라는 말 을 듣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당장 칼이라도 가지고 황가를 푹 찔러 죽여 없애고 싶지마는, 강약이 부동할 뿐 아니라, 번다한 이목에 사실상 되지 못할 일이라 억지로 참 고 슬며시 이웃 노파를 연비하여 연희의 동정을 탐지한즉, 연희가 기어이 다른 사람에게 허신을 아니하려고 식음을 전 폐하고 누워 있다는 말을 듣고서, 심중에 한없이 기뻐하더 니, 또 연희가 황가 신랑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 일어나 소 세도 하고 밥도 먹어 얼마쯤 좋아하는 모양이라는 소문을 들으니 기쁜 마음이 변하여 분한 생각을 견디기 어려워 어 찌할 줄 모르다가 혼잣말로,
"에라, 남의 전하는 말을 도무지 준신할 수 없다. 내 눈으 로 시원히 연희의 거동을 보는 것이 옳겠다."
하고 메투리 한 켤레를 얻어 단단히 신고 곧 밤들기를 기 다려 서주사의 집 뒷담에 사다리를 갖다 놓고 막 넘어가려 는데, 귓결에 얼핏 들으니까 담 안 오동나무 밑에 어떠한 여자가 홀로 서서 신세 한탄을 은근히 하더니 수건을 가져 목을 매어 죽으려 하는데, 아무리 어두운 밤이기로 영록이 가 어찌 연희를 몰라보았으리요. 급한 바람에 뛰어내려와 턱 붙잡아 구제하고 그 담을 같이 나온 일이라. 영록이와 가만히 자기 집으로 들어가, 자기 입던 의복 일습을 이끌고 아래 대로 내려서, 훈련원 벌판을 지나 수구문 밖에를 나아 가니 밤이 벌써 밝아오느라고 동방이 훤하여 온다.
"가자 하시니 따라오기는 하나, 날은 밝아오고 정처는 없으 니 어찌하면 좋은가요?"
"날이 아무리 밝기로 남복을 한 이상에 무슨 염려가 있사 오리까" 누가 묻거든 나와 형제간이라고 대답을 합시다. 지 금 향하고 가기는 다른 곳이 아니라 무수막 건너 앞구정 사 는 나의 고모댁으로 가려 하는데, 나의 이종형님이 상해로 장사를 다니시는 터이니 필경 댁에 아니 계실 테지마는, 우 리 고모 아주머니께서는 범절이 정대하사 우리들이 들어오 는 것을 보시면 얼마쯤 반가이 여기사 좋은 방침을 가르쳐 주실 터이니 걱정 말고 어서 갑시다."
무수막고개라는 데가 경성 지근지처에 있으니, 평지일반으 로 여기고 넘나들지만, 만일 인가가 희활한 하향에 가 있게 되면, 영로에 한참여를 착실히 할 만한 곳이다. 장정이라도 급히 넘어가려면 다리가 뻑뻑하고 숨이 턱에 닿는데 더구나 귀골로 생장하여 대문 밖 일 마정을 못 걸어본 연희와 영록 이리요. 두 발이 통통 붓고 두 다리가 치저려 촌보를 걷기 가 어려운데, 덜미에서 사람이 쫓아오는 듯 정히 난당한 중 고개마루로서 사람의 소리가 지껄지껄 나며,
"이라 워 디여, 이라 이놈의 말아."
삐걱삐걱 찌걱찌걱 소몰잇군 말몰잇군이 나무를 싣고 떼를 지어 너른 길이 빽빽하게 내려오니,
"여보, 아니되었소. 우리 저 언덕 밑에가 숨어 있다가 다 지나가거든 갑시다."
"에그, 해인이 연락부절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고 영록과 같이 길 아래 언덕 밑 솔포기 밑에 가 숨도 크게 못 쉬고 앉았느라니, 그 소 몰잇군이 그 앞에를 막 내 려오자, 어떠한 자 삼사 명이 마주 올라오며 그 중 앞선 말 군을 향하여,
"여보, 말 좀 물어봅시다."
"무슨 말이요?"
"지금 이 길로 열사오 세 가량 되어보이는 총각"처녀가 가 는 것을 보았소?"
"무엇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 보았소."
"이 양반이, 이 길로 정녕히 갔는데 못 보았단 말이 웬 말 이요?"
"그 양반 생떼를 쓰네. 못본 것을 못 보았다고 하지, 어떻 게 하라오" 여보, 이 길로는 총각"처녀커녕 색시"신랑도 아 니 갔소."
그자들이 우두커니 서서 저희끼리 공론하는 말이라.
"여보, 이리로는 아니 왔나 보오. 이리 왔으면 말군들이 못 보았을 리가 없고, 보고서야 바로 일러주지 아니 할 리가 있소?"
"글쎄, 그러면 어디로 갔을까" 지소 순사가 분명 이리로 가 는 것을 보았다던데."
"순사의 말은 어디 분명합더니잇가" 처녀는 못 보고 학도 같은 남자 둘이 지나는 것만 보았다던데요."
"그러면 그 남자 아이 둘의 끄친 곳은 있겠지. 예까지 온 종적은 분명한데 간 곳이 없단 말인가?"
"그건 알 수 업소마는 한강길로 오는 사람더러도 물어 보 고, 뚝섬길로 오는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이 길로 오는 사람 보고도 물어보아도 못 보았다 각기 다 일반인데, 하필 이리 로만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우리 셋이 각각 갈라서 세 군데 로 쫓아갑시다."
그 중 한 놈이 핀잔을 탁 주며,
"이 사람, 우리가 그렇게 열나서 찾을 것이 무엇인가" 양반 이 시키는대로 예까지 와보았으니 고만이지."
또 한 놈이 화를 버럭 내며,
"여보, 그럴 수가 있소" 양반님네는 우리만 믿고 시키시는 데 채 찾아보도 아니하고 도로 간단 말이요" 아까 저 친구 말씀하시던 압구정까지 가보는 것이 옳으니, 한강이니 뚝섬 이니 다 고만두고 압구정으로 가보아서 만일 없으면, 한강 이고 뚝섬이고 찾아볼지라도 예서 도로 가는 것은 만만부당 하오."
지금 말하던 자는 즉 황공삼의 신임하는 하인이라. 압구정 에를 건너가 이진사집을 쏜살같이 찾아 들어가니, 이진사는 별사람이 아니라 영록의 고모부이니, 그는 오 년 전에 불행 하고, 그 아들이 당가하여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을 하는데, 본래 넉넉지 못한 가산이라 이 진사의 아들 이주사 가 상업에 길을 터서 집에 들어 있을 때는 별로 없고, 북경 과 상해를 문턱 드나들 듯하며 돈을 버는대로 꼭꼭 모아 자 기 집으로 환을 부쳐 논도 사고 밭도 사서 점점 발빈이 되 어 가는데, 이주사의 어머니는 곧 영록의 고모라. 비록 앞에 치마를 두른 부인일지언정, 정대한 범절이 좀체 남자로는 명함도 못 들일 지경이라. 그런 고로 영록의 부친 김의관도 자기 매씨의 말이라면 대단히 어렵게 아는 고로, 서씨가에 서 퇴혼하는 이야기를 고하였더니, 김씨부인이 열길 스무길 뛰며 그런 변괴가 있으리 말리 하고, 반대 아니하고 허락한 자기 동생 김의관을 향하여 대단히 나무라는 것을 영록이가 역력히 듣고 본 고로, 얼마쯤 자기들을 두호하여 줄줄 믿고 그리로 향하고 가던 것이러라. 하루는 김씨부인이 자기 동 생의 소식도 궁금하고 영록의 혼인 일사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방장 편지를 써서 놓고 하인을 불러 보내려 하 는 차에. 부리는 노파가 들어오더니,
"김의관댁에서 하인이 왔어요."
"하인이 이 꼭두 식전에 어째서 왔단 말이냐" 무슨 일이 있다더냐?"
"간밤에 그댁 도령님이 도망을 하셨는데 댁으로 혹 오셨나 알러 왔답니다."
김씨부인이 깜짝놀라며,
"그게 무슨 소리냐" 도령님이 도망을 하다니, 그 하인 이리 들어오라고 얼핏 불러라."
하인 하나이 노파를 따라 들어오더니 뜰 아래서 허리를 굽 신 절 한 번을 하며,
"소인 문안드립니다."
김씨부인이 내다보며,
"오, 판득이 왔느냐" 무엇이야, 도령님이 어디를 갔어" 그 게 무슨 소리냐?"
"도령님께서 간밤에 주무시다가 슬며시 어디로 가셨는데, 온 댁내가 도무지 모르고 계시다가 오늘 새벽에 건너댁 작 은아씨가 어디로 간 곳이 없다고 불끈 뒤집히는 통에 의심 이 나셔서 작은 사랑을 열어보시니까 도령님도 아니 계셔 요."
"그러면 도령님이 앞 댁 작은 아씨와 함께 어디로 갔단 말 이냐?"
"그는 자세 알 수 없읍니다마는, 그 댁 작은아씨가 어디로 가시자 댁 도령님께서도 아니 계시니 그 아니 이상합니까"
그러니까 만구 일담이 같이 도망을 하였다고 한답니다."
김씨부인이 혀를 툭툭 차며,
"잘 되었다. 경위없는 일을 기어코 하려고 하더니. 너희들 이 댁에는 왜 왔느냐" 도령님 댁에 온 줄로 알고 왔느냐?"
"댁 영감 마님 내외분께서 걱정하실뿐더러, 앞댁에서는 오 늘이 대례날인데 신부아씨가 그 모양으로 부지 거처이자, 댁 도령님이 아니 계시니까 그 댁도 그댁이려니와 제일 신 랑 양반이 펄펄 뛰며 어떻게 야단을 하는지, 두 댁 하인까 지 나서서 사면 수색하는 중, 댁으로 혹 나오셨나 하여 소 인을 앞세우고 이렇게 찾아 나왔답니다."
김부인이 화를 버럭 내며,
"에이 괴악한 놈들, 댁에는 온 이도 간 이도 없다. 잔소리 말고 썩 들어가거라. 그러나 철모르는 어린 것이 어디로 가 서 고생을 하노! 그것이 어떤 자식이야! 우리 친정 오대 독 자로 금이냐 옥이냐 하는 것인데, 저게 무슨 변이란 말인구"
내가 아무래도 집에 가만히 앉았을 수가 없다. 돌아가서 우 리 영록이를 어떻게 하던지 찾아야지, 그대로 내버려 두었 다는 참혹한 고생을 시킬 터이라."
하고 문안에서 나온 하인을 쫓아보낸 후 즉시 교군을 차려 자기가 문안으로 들어오는데, 김씨부인이 비록 부인일 법해 도 하례배의 통사정을 남자보다 못지않게 하여, 강을 건너 고개를 당도하면 교군에 내려 번번이 걸어 넘어가는 터이 라. 교군은 앞세우고 자기는 지팡이를 짚고 찬찬히 무수막 고개를 넘어오는데, 밤새도록 서리에 결었던 흙이 무심히 겨드락 길로내려오다가 신 바닥에 녹은 흙이 미끄러지며 뒤 로 덜컥 넘어지며 지팡이가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김씨부인 이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이렁나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며,
"에그머니, 길도 미끄럽다. 하마하더면 어떻게 할 뻔했어!
그러나 내 지팡이는 어디에 떨어졌을까" 에그, 저것 보게, 저기 내려가서 자빠졌네."
하고 길 아래 겨드락으로 그 지팡이를 집으로 내려간다.
이때 영록과 연희는 찾아오던 하인들이 압구정으로 가는 양 을 보고 진퇴유곡이 되어 돌아가도 못하고, 그 하인들 회정 하는 거을 보아서 기어이 압구정으로 나아갈 작정으로 숨었 던 솔포기 밑에 가 쥐 숨듯 하고 있어 감히 내다보지도 못 하더니, 별안간에 어디로서 휘익 소리가나며 몽둥이 하나가 머리 위로 들어오더니, 자기 있는 앞에서 고삐 한 길이만치 가서 떠어지는 양을 보고 더럭 겁이 나기를,
"인제는 큰일났다! 아까 찾아가던 놈들이 필경 우리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매질을 함부로 우악하게 하며 쫓아오나보 다."
하여 수각이 황당히 있더니, 인적이 저벅저벅 나며 누가 그 막내 떨어진 곳으로 오는 것을 보고서, 연희는 더욱 겁 을 내어 솔가지 뒤로만 들어가는데 영록이가 와락 뛰어나가 그 삶을 탁 붙잡더니,
"에그, 아주머니!"
김씨가 지팡이 집기에만 골몰하여 그 곁에 영록이 있는 것 을 미처 못 보았다가, 아주머니 보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 곧 영록이라 손목을 턱 잡으며,
"이애, 네가 이게 웬일이냐" 에그, 저 도령은 또 누구냐?"
"말씀이 장황해서 여기서는 여쭐 수가 없사오니, 아주머니 저희들을 우선 살려주셔요."
"무슨 곡절로 네가 예 와 있는지는 모르겠다마는 내가 지 금 너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니 같이 들어가자. 네 아비에 게 말을 하여 과히 꾸짖지 아니하도록 하마."
"죽으면 죽었지, 지금 집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읍니다."
"정 그러면 우리 집으로 나아가자. 글쎄, 저 도령님은 누구 냐?"
"차차 알으셔요. 그러나 아주머니댁에도 가기가 어려운데 요."
"무엇이 어려워?"
"저희 찾아간 하인들이 아주머니댁으로 나갔는데요."
"응, 그래서 말이로구나. 그놈들이 왔기에 내가 소리를 질 러 쫓아보내고 궁금함을 못이겨 내가 지금 너의 집으로 들 어가는 길이다."
하며 연희를 자세자세 여겨보더니,
"옳지, 이제 보니까 저 도령이 도령이 아니로구나. 네가 어 쩌자고 남의 집 처녀를 이 모양으로 데리고 나섰느냐" 오냐, 이곳에 오래 지체할 수 없다. 나 타고 온 교군에 너희 둘이 타고 우리 집으로 어서 급히 가거라. 나는 천천히 걸어갈 터이니."
김부인이 분주히 길 위로 올라서서 앞에서 기다리는 교군 군을 불러 영록과 연희를 태운 후, 교군 앞 휘장을 꼭 가리 어 떠나 보내고, 자기는 지팡이를 짚고 뒤를 따라 들어와, 뒷방으로 영록 일행을 데리고 들어가 자세한 말을 묻는 것 이라.
"글쎄, 이 자식아, 너는 어찌했던지 남의 집 귀한 처녀를 어찌하자고 이 모양으로 데리고 나섰단 말이냐?"
"아주머니께서 자세한 사정을 모르시니까 이렇게 걱정하시 기 쉬우시나, 제 말씀을 여쭙는 것을 들으시면 다 통폭하실 터이올시다."
하고 자기가 동리 사람의 전하는 말을 듣고 궁금증이 생겨 서, 서주사 집 뒷담에 사다리를 갖다놓고 담 너머 넘겨다보 던 말로, 그 담 안 오동나무 가지에다 연희가 목을 매어 죽 으려 하는 것을 보고 급히 뛰어내려가 구제하던 말로, 그 길로 담을 같이 넘어 남복을 시켜 데리고 압구정을 향하고 오던 말로, 나무장수를 만나 길 밑 언덕에 가 둘이 숨어 있 느라니까, 찾아 나오는 하인들이 말군과 수작을 하고 고개 로 넘어가던 근경이며, 압구정으로 가자니 찾아나간 하인들 의 거취를 알 수 없고, 문안으로 들어가자니 만사 와해가 되겠어서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있던 형편을 역력히 고 하는데, 연희는 아무 말 없이 두 눈에서 더운 눈물이 더벅 더벅 떨어져 옷깃을 적시더라. 김씨부인이 넋이 없이 앉아 듣다가 두 아이의 등을 뚝뚝 두드리며,
"에그, 기특들 한지고! 오냐, 걱정말아라. 고생이 진하면 낙 이 오는 날이 있느니라. 내가 너희 파혼한다는 말을 듣고 만만불가한 줄로 말하였건마는, 네 아비는 저 신부의 집에 서 먼저 퇴혼 언론하는데 감정이 생겼는지, 첫대 허락을 하 여놓아서 자식들이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 놓았구나! 그러 나 너희들이 내게 와 있는 것을 만일 알게 되면 필경 좋지 못한 효상이 생길 것이니 너희들은 꼼짝 말고 이 방안에 꼭 들어 있거라. 내가 하인배를 단속하여 이대 말을 일체 밖에 못 내게 하고, 내가 지금 슬며시 문안으로 들어가 눈치를 좀 보마."
"아주머니께서 잘 주선하여 주시기만 바라옵니다."
"오냐, 걱정 말아라.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일이 있다. 너 희 둘이 기왕 저 모양으로 된 터에 잠시라도 피차에 혐의스 러운데 아주 오늘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성례를 하는 것이 가하다."
하고 즉시 대례를 설비하고 영록과 연희로 교배를 시킨 후 자기는 분분히 교군을 차려 친정으로 들어왔더라.
의관이 그 아들을 잃고 두 눈이 캄캄한 중, 황가의 야료김 에 창피 막심하여 어찌할줄 모르고 있는 중 자기 매씨가 들 어오는 것을 보더니,
"누님, 들어오십니까" 우리 집에는 큰 변이 났어요."
"글쎄다. 하인들 편에 말은 대강 들었다마는, 그 일이 어찌 된 곡절이냐?"
"무엇이 어떻게 된 곡절이야요. 서씨가에서 퇴혼한 것은 누 님께서도 다 알으셨지요?"
"알았지, 그래서?"
"그 집에서 퇴혼을 그 모양으로 하더니 이 뒷집에서 살던 황공삼이라는 자와 혼인을 정하여 오늘이 성례할 날이더랍 니다."
"황공삼이라니, 부산으로 가서 사는 난봉놈이로구나."
"예, 그자올시다."
"그래서, 오늘이 성례날인데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
"엊저녁에 이슥토록 영록이가 제 방에서 글을 읽다 자기에 어디 갔으랴 하고 아무 뜻도 아니하였더니, 오늘 동이 막 트자 서씨가에서 신부가 부지거처라고 야단법석이 나더니, 우리 집으로 영록이 있고 없는 것을 알러 하인이 왔기에, 나는 영문도 모르고 되 큰소리를 하며 그 하인놈을 꾸짖었 더니, 웬걸요, 이놈이 참말 없어졌읍니다그려. 그 자식이 평 시에 아비의 말을 잘 복종하기에 그런 거조 할 줄은 꿈도 아니 꾸었더니, 이놈이 이런 짓을 하였으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서씨 가에서는 자기 딸을 당장 찾아놓으라 고 별별 야료를 하는 중, 제일 황가놈은 별별 흉악한 소리 를 다 하며 저리 야단을 한다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 단 말씀이오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저희만 자식을 잃었다더냐" 우리도 자 식을 잃고 기막히기는 피차 일반인데 뉘게 지다위란 말이냐
" 오냐, 그 집에서 누가 와서 또 무엇이라고 하거든 대답할 말이 없어 걱정이냐" 글쎄, 너부터 지각이 없느니라. 그 집에서 아무리 퇴혼 의논을 하더라도 네가 나 이르던 말대로 허락 을 말 일이 지, 앞 뒤 생각을 도무지 아니하고 그 모양으로 쾌쾌히 대답하더니, 잘 되었다. 잘 되었다. 아무리 자식이기 로 무엇이 잘못하였다고 나무래" 이애, 걱정 말고 어디 가 있던지 내버려 두어라. 그 지경으로 저희들의 뜻이 합하여 나간 이상에 만 번 찾으면 무엇하니" 그 신부가 황가에게로 다시 갈줄 아느냐" 열이 나서 찾으려는 황가가 더욱 우습다.
제가 무슨 턱으로 찾아" 그럴지라도 성례를 하였다거나 함 례를 한 신부가 그 모양으로 갔으면 넉넉히 제 계집이라고 찾으려니와, 무슨 턱으로 제가 찾아놓아라 말아라 한단 말 이냐?"
"그 집 신부 일사는 하여하고, 이놈의 거취나 알아야 아니 합니까" 어린 것이 아무 철없이 어디로 가서 무슨 지경이 되었는지 그 아니 걱정입니까?"
"그야 아비된 마음에 심려가 되겠지마는 이 일이 모두 너 의 자취니라. 신부로 말한대로 내가 길러 내나 다름없이 익 숙히 알지마는, 아이들이라 할 수 없이 영리하고 분명하여, 시비 경위를 넉넉 분석할 만하고, 또 우리 영록이는 여간 똑똑하냐" 부모의 처리하는 일이라도 의리에 벗어나면 행치 아니할 줄을 깊이 짐작하기로, 내가 무엇이라고 하더냐" 그 집에서는 아무리 미친년의 말에 고혹하여 퇴혼을 하려 한 대도 우리는 결코 허락할 일이 아니라고 아니하더냐" 어른 이 저희들에게 실체를 하여놓고 그 지경으로 나간 저희들을 무슨 입으로 나무라느냐?"
"글쎄올시다. 누님 말씀을 진작 들었더면 자식고생을 아니 시킬 것을, 그 집에서 하는 양이 하도 아니꼬와 선뜻 허락 을 하였읍니다그려. 그 놈이 그 신부를 데리고 누님댁으로 나 갔나 믿었더니, 누님댁에도 아니 가고 어디로 갔을까요"
서씨가에서도 그 말을 잃고 초절을 할 뿐 아니라 소위 황가 가 어떻게 야료를 하는지, 저자가 필경 경찰서까지라도 호 소를 할 모양인데 그 아니 큰일이오니까?"
김씨부인이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을 하여보더니,
"오냐, 걱정 말아라. 황가가 만일 경찰서에 호소를 하여 네 게 무슨 침탈이 돌아오거든, 내가 나서서 다 말하마. 먼저 사주 왕래까지 하여 뇌정한 혼인이 정작이지, 뒤뿔치기로 제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
그때 마침 대문 밖에서,
"이리 오너라."
소리를 메붙이는 듯이 지르더니,
"이댁 영감 여쭈어라."
하는지라 김의관이 그 매씨와 하던 말을 중지하고 마주 나 아가며,
"누구시오" 저 사랑으로 들어오시오."
황공삼은 연치가 창창한 소년일 뿐더러, 한동리에서 살때 에 저의 어른이 김의관과 막역지우라, 조석으로 추축하던 터이라, 김의관이 황공삼을 친자질같이 길러내다시피 하였 거늘, 사랑으로 와락 달려들더니 반말 지껄이로 한바탕 야 로를 한다.
"여보, 당신은 무슨 뾰족한 수로 가식놈 시켜 남의 계집을 빼돌리오" 당장 찾아놓아야지, 아니 찾아놓고는 못 뱃길걸."
"이 사람, 자네가 어떻게 하는 말인가" 내 자식을 시킨 일 도 없거니와 내 자식이 뉘 계집을 빼어간 여부도 모르거늘, 찾아놓아라 말아라 하며 딱딱 으르노?"
"압다, 점잖은 이가 뻔뻔도 하오. 당신 아들이 뉘계집을 빼 어갔는지 정녕 모르오" 똑똑히 좀 들으시려오" 서주사의 딸 은 즉 내 계집인데, 밤사이로 간곳이 없자 당신 아들도 도 주를 하였으니 그 일이 뉘 조화요" 아무 관계가 없으면 하 인은 왜 각처로 찾아보냈읍더니잇가" 공연히 어름어름 말고 서 진작 찾아놓아."
"이 사람, 그 신부로 말하면 내 자식과 정혼을 하여 주단 거래까지 하였다가 졸지에 퇴혼은 하였네마는 자네 처라는 말은 금시초문이고, 또는 그 신부 도주하자 내 자식이 없으 니까 데리고 간 줄로 말을 하나보네마는 내 자식이든지 그 신부를 찾기 전에야 어찌 알아서 빼어갔느니 찾아놓으라 하 노" 이 사람, 내가 자네 선장과 죽마고교로 친밀히 지냈은 즉, 고인지자 즉오자로, 자네가 곧 내 자식 일반이어늘 말버 릇을 함부로 하여가지고. 응, 괴악한지고!"
황가가 소리를 버럭 질러서,
"당신이 어떻게 하는 말씀이오" 당신이 우리 선친 친구기 에 그렇지, 좀더 친근하였더면 우리 어머니까지 빼어가겠구 려. 오늘 내로 아니 찾아놓는다는 큰 봉변하오리다. 말버릇 을 잘하도록 행세를 하지, 그까짓것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 은 약과요, 약과야! 옳지, 사주까지 보냈더란 말 하는 것을 들으니까 자기 며느리로 알고 자식 시켜 빼돌렸군! 사주를 백 번 보냈으면 퇴혼한 이상에 소용이 무엇이야. 정작 혼인 택일까지 하고 오늘 성례하려던 나는 어디로 가고! 길게 말 할 것 없이 이렇게 옥하사담할 것 없이 경찰서로 가서 재판 을 합시다."
김의관이 기가 막혀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할 뿐인데, 김씨부인이 안문 안에서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듣다 가 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들여다보며,
"여편네가 남의 집 사내 양반에게 말하는 것은 실례지마는, 저 양반은 조그맣서부터 한동리에서 길러내다시피 한 터이 니 무슨 흉허물이 있사오리까" 그런데 지금 내 아우와 수작 하는 것을 대강 들었거니와 서시가 규수 있고 없는 것이 댁 에 무슨관계며, 내 아우가 무엇을 알았다고 재판을 하자고 하시오?"
"여보, 당신이 나를 길러내지 말고 젖을 먹였기로, 부인네 가 나서서 말씀이 무슨 말씀이요?"
"동기 일신인데 아무리 남녀는 다를지인정 내 아우가 당한 일에 말을 좀 못할 것이 무엇이요" 여보, 젊은 양반이 너무 이러지 말으시오. 장가를 들려면 어디 가합한 신부가 없어 서 하필 남의 완정한 신부에게 장가를 들려고 몰경계한 거 사를 하오" 우리는 서씨가에서 퇴혼을 청하기로 그 집에서 어떻게 할 처사를 보자고 내버려둘 따름이지, 김지와 성례 를 시키는지 이지와 성례를 시키는지 도무지 몰랐거늘, 그 신부 어디로 간 것을 왜 이집에 와서 지다위를 하며 재판을 하자 마자 하오?"
"그 신부를 이 주인의 아들이 데리고 도망을 하였으니까 그렇지요."
"그 신부를 내 조카가 데리고 간 것을 어찌 그리 분명히 알으시오" 내 조카가 서씨가에를 어려서는 한집안처럼 다녔 지마는, 근자에는 일체 투족을 한적이 없고, 조카놈 뿐 아니 라 이 집 하인배도 노소 물론하고 그 집에를 왕래치를 아니 하는 터인즉, 그 신부 가고 아니 간 것을 알 필요도 없고, 내 조카로 말하면 그 놈이 지각이 없어서 어디로 갔는지 어 른에게 온다 간다 말이 없었으니, 그 신부 데려간 여부를 어찌 안다고 이집에 와서 지다위를 하시오."
황공삼이가 건넌 산 꾸짖기로,
"어, 별일 다 보았네. 사네들 말하는데 아낙네가 참섭이 무 슨 참섭이람?"
눈을 심술이 뚝뚝 듣게 뜨고 김씨부인을 건너다보며,
"어서 들어가시오. 아낙네가 참섭할 일이 아니오. 당신이 이 모양으로 성군작당 말한다고 내가 할 말 못할 리도 없 고, 재판 못할 리도 없소. 아무 소용 없으니 공연히 내 입에 서 언짢은 말 나오기 전에 어서 들어가시오."
"여보, 댁은 어머니도 없고 할머니도 없소" 내가 나이로 해 도 댁 어머니 연기가 넉넉하고, 동리간에서 한 집안처럼 지 낸 터에 말버릇을 함부로 해가지고, 에, 해괴해라. 재판을 하거나 먼지판을 하거나 생각대로 하시오그려. 누가 왼눈이 나 깜짝할 줄 아는구먼. 우리 집에 와 떼가 웬 떼야" 우리 영록이가 그 집을 왕래하여 그 신부와 잇삿이라도 남 보는 데 아울러 보았으면 오히려 어찌해" 도무지 그 집과 상관이 엇는 터에 왜 와서 떼야" 우리 영록이도 남만치 똑똑한 것 이 저와 단단히 정혼하였던 신부가 다른 사람에게로 시집을 가게 되니까 분하고 화나서 어디로 간 것인데, 그 자식이 남들 알기에는 시들해도 우리 집에서는 금지옥엽같이 여기 는 것이요. 왜 자세 알지도 못하고 그것에게다 향하여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모두 하오" 정장을 한다면 누가 그리 겁 을 내오" 생각대로 하구려. 정장을 해서 정확한 증거를 잡아 내야지, 만일 그렇지 못하면 내 손에 못 배기리다."
"이런 제기,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계집 잃고 눈이 뒤집 히게 된 나보다 한층 더 뛰는걸. 정장을 하든지 말든지 내 마음대로 할 것이지 당신의 건고 들을 내가 아니오. 걱정 말으시오. 필경 어느 끝이 어디 닿든지 귀정을 날이 있을 터이니, 얼마나 기승을 부리고 잘 배기나 봅시다."
하더니 뒤도 아니 돌아보고 나간다.
김씨가 자기 동생을 향하여,
"이애, 안으로 들어오너라. 무슨 이야기 할 일이 있다."
"예, 들어가겠읍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김의관이 황가가 와서 야료하는 것은 몇째 걱정이오, 제일 애가 타서 못 견딜 일은 영록의 종적을 모름이라. 황가 간 뒤에 넋이 없이 앉았다가 자기 매씨가 무슨 말을 이르려고 들어오라고 하기에 즉시 들어오니, 김씨가 조용히,
"이애, 이 일을 어찌하여야 옳겠느냐" 저놈이 정녕 그대로 있을 리 만무하여 정장을 하고야 말 터인데‥‥‥."
"정장하면 당했지, 억지로 어떻게 합니까" 그까짓 일은 시 들해도, 영록이 놈이 어디가 잘 있는지 못 있는지, 죽지나 아니하였는지 꼭 미칠 듯 싶습니다."
"이애, 그는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 애들이 지금 우리 집 에 와 있다."
김의관이 일변 놀라고 일변 반기며,
"그 애들이 누님댁에 있다뇨?"
"에그, 요란스럽다. 가만히 말을 해라."
"누님댁에 하인들이 첫새벽에 찾아갔다 왔는데 그러면 누 님께서 속이셨읍니까?"
"하인 왔을 때에는 없었지."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이야요" 그 애들이라니, 저집 처녀가 참말 그놈과 같이 갔어요?"
"이야기를 다 하자면 기가 막힌다."
하더니, 자기가 하인 급보를 듣고 즉시 떠나 들어오다가 고개 너머서 영록과 연희 만나던 근경을 차례로 말하고 착 수 성례시켜 집에 감추어둔 일을 설파하니,
"저놈이 알면 큰 봉변을 할 터인데 어찌하자고 일을 그렇 게 하셨읍니까" 그 처녀 아니면 우리 영록이 장가 못 들일 라고 그 모양으로 구구히 성례를 시키셨읍니까?"
"저런 말이 있나" 혼인을 말로 흥성하듯 무르는 것이 아닌 데, 어른이 되어 저희들이 그른 거조를 한 대도 아무쪼록 엄금함이 가하거든, 황차 저희들은 의리를 삼엄하게 잡고 죽기로써 변경치 아니하려거늘, 어찌 그 뜻을 성취하여 주 지 아니한단 말이냐" 그런 몰각한 말은 다시 말고 선후 방 침이나 생각하여라."
"누님 말씀이 그르시다는 것은 아니오나, 황가 놈의 억지가 필경 그대로 있지를 아니할 터이으니 그 아니 걱정이오니 까?"
"그놈이 정소곧 하면 네집 내집 할 것 없이 엄밀히 수색을 할 터인즉, 우선 저 아이들을 우리 집에 두어서는 발각될 염려가 있은즉, 이 길로 기별하여 광주산성 우리 외가로 가 있게 하자."
"기왕 그리된 일에 어떻게 하는 수가 있읍니까" 누님 처분 대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 기별을 하자하니 하인이 하나 둘 알아서 소 문 퍼지기가 십상팔구인즉, 바로 내일 첫 새벽에 내가 집으 로 나아가서 조차하는 편이 옳겠다. 황가가 정소를 하기로 밤 동안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
이날 영록이는 저의 고모가 문안으로 들어간 후 그 집 뒷 방에 연희와 같이 꼭 숨어 있어 숨도 크게 못 쉬고 있는데, 밤이 삼경 가량이 되어 밖에서 술렁술렁하며 문 열어 부치 는 소리가 덜걱덜걱 나더니 안잠자던 노파가 뒷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서방님, 큰일났읍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응, 왜 그러나?"
"웬 놈들인지 모두 머리에 흰 수건을 질끈질끈 동이고 긴 몽둥이를 각기 휘두르며 문을 박차고 들어와 지금 안방"건 넌방을 구석구석 뒤집니다."
영록이가 그 말을 듣고 그 대답할 여부없이 연희 손목을 이끌고 뒷문으로 뛰어나아가 신발도 미처 못 신고 뒤꼍 수 도 구멍으로 기어 나아가 산 길로 천방지방 도망을 하여 어 느 바위밑에 가 엎드려 가만히 동정을 살피니, 사면이 고요 하여 아무도 쫓는 사람이 없는지라 그제야 숨을 돌려,
"여보,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소" 그놈들이 다른 놈이 아니 라 필경 황가가 우리 여기 와 있는 것을 알고 수색하러 보 낸 모양이니, 도로 들어갔다가는 봉변을 기어이 할 터이요, 향하여 갈 곳도 없은즉 이 아니 딱하오?"
"죄많은 이 사람이 진시 죽어 이 세상 버렸더면 귀중하신 터에 오늘날 고초를 아니 당하실 것을, 쓸데 없는 인생이 살아 있다가 이 지경을 당케 하오니, 진실로 몸을 둘 곳이 없나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요" 이 사람으로 인하여 부인이 고초를 당하였다 함은 가커니와, 부이으로 인하여 이 사람 고초 당 한다는 말씀은 만분 근리나 하오" 피차에 뉘 탓 할 것 없이 모두 우리의 팔자 소관이니 장황히 말씀 말으시고 당장 박 두한 화색을 모면할 도리나 생각합시다."
"‥‥‥."
"자, 우리가 이곳에만 이렇게 있다가 날이 밝으면 오도 가 도 못할 터이니 부인은 너무 심려말으시고 이곳에 가만히 은신하여 있으면, 내가 비밀히 도로 가서 그놈들 동정을 살 펴보고 와서 가든지 은든지 좌우간 하십시다."
하고 여나문 걸음을 채 못 가서 사람 몰려오는 자취가 우 루루 나는지라, 영록이가 내놓던 발길을 도로 움츠러뜨리어 언덕 밑으로 가서 연희와 한 뭉치가 되어 엎드려 있느라니, 그 사람들이 점점 그 아으로 가까이 오는 모양이라.
"여보, 저놈들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우리가 이 곳에 그대로 있다는 발각되기가 첩경 쉬우니, 저놈들이 더 가까 이 오기 전에 우리 저 아래로 진작 멀찌기 가십시다."
"에그,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은가?"
하고 영록의 손목에 매달려 겨드락길로 더듬더듬 내려가다 가 두 사람이 발을 냅다 놓는다는 것이, 위험하게 든든히 놓이지 못한 돌을 디디어 그 돌이 뚜루루 내리 굴러, 둘이 걷잡을 새 없이 곁묻어 따라 내리구르다가 절벽의 솔방울 떨어지듯 뚝 떨어지는데, 인명이 재천이라 죽을 사람이면 세상없이 보호자가 많더라도 의외의 횡래지액으로 죽고야 말고, 살 사람이면 세상없이 위험한 지경이라도 의외에 구 원자가 있어서 살고야마는 것이라. 영록 내외가 내리구르던 그곳은 뚝섬 맞은편 강 위 언덕이라 휘어잡을 나뭇가지 하 나 없고, 위에서 하나가 구르면 둘셋 벗을 청하여 무수히 와르를 내리구르는 목침만한 베개만한 돌 뿐이요, 그밑은 여러 수십 길 되는 강물이라 아무라도 게서 그 모양으로 내 리굴러 놓으면 하릴없이 그 강물에 가 풍덩 빠져 고기 배에 장사를 지내고 말지라. 당장 영록 내외의 내리구르는 광경 을 사람이 곁에서 보았으면 가슴이 한줌은 되고 마음이 아 슬아슬하여 전신에 소름이 쪽 끼칠만한데, 그때는 어두운 밤이라 누가 곁에 있대도 보지를 못하였을 터이요, 본래 사 람도 없으니 저 불쌍한 어린 내외를 누가 달려들어 구원하 여 주리요! 경각내 달린 두 생명이 번개같이 구르다가 급기 탁 떨어져서 넋을 잃다가, 한구한 후에야 정신을 수습하여 눈을 떠서 두루 두루 살펴보나,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고 다만 물결 소리가 두 귀에 들리며 몸이 저절로 흔들리 는지라, 영록이가 손을 내밀어 이리 더듬 저리 더듬 하는데 마침 정밤중에 돋는 달이 동편 하늘로 불그레 올라오며 맑 은 빛이 영록의 가슴에 가득히 비치는데, 그제야 자세 둘러 본즉 아무도 없는 빈 배 안에 두 몸이 담겨 있는지라, 꿈도 같고 생시도 같고 머리 위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요, 눈앞 에는 와글와글 끊는 물결 뿐인데, 사면에 인적은 없고 다만 물새의 꿈꾸는 소리가 이따금 나는지라, 기절하여 늘어진 연희를 흔들흔들 하며,
"여보, 정신 좀 차리오, 여보 여보!"
연희가 그제야 눈을 떠보며,
"에그, 여기가 어디어요?"
"예가 배 안인가 보오. 나도 어찌된 일인지는 정신이 얼떨 떨하오마는 가만히 생각한즉, 우리가 저 위에서 실족하여 내리굴러서 하릴없이 이 강물에 떨어져 죽을 사세인데, 우 리 둘이 죽지 말라는 팔자로 여기 빈배가 있자 배 안에 떨 어졌구려."
"세상에 신기한 일도 있소. 나같은 쓸데없는 여자는 열 번 죽어 관계 없으나 당신은 막중 존귀하옵신 남지신데, 이 배 가 이곳에 있는 것이 천행이 아니오니까!"
"여보, 우리가 천행으로 이 배에 떨어져 생명은 살았소마 는, 날이 밝기 전에 진작 믐을 숨어야 할 터인데 아까 우리 오던 길을 찾자니 저 절벽에를 올라가는 수가 없고, 이 배 안에 그대로 있자 하니 무슨 소조가 또 있을지 모르겠소구 려."
"에그, 참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래도 죽고 저리 해도 죽기는 일반이니, 저기 잇는 노를 집어가지고 이리 저리 저어봅시다. 필경 저 건너로 건너야 하겠지."
"에그, 아스시오. 배를 부리는 구경도 못하셨을뿐더러 섬섬 약질이 잘못하다 큰 실수하시기가 쉬우니, 똑 내 의견대로 하시는 것이 가하실 듯합니다."
영록이는 연희 영민한 생각에 무슨 좋은 의견이나 생각 할 줄 알고 반가이 묻는 말이라.
"예, 무슨 의견이요" 좋을 도리만 있으면 그대로 하다 뿐이 요?"
"당초에 이 고생이 모두 누구로 인하여 생겼느냐 하면 천 지간 죄악이 심중한 내 한 몸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온데, 종래 고집을 하여 이 모양으로 있다는 목전에 무한한 화색 이 생길 것이오니, 차라리 이 몸이 죽어 당신에 누가 없으 시게 하는 것이 당연하오니 한 번 결단한 뜻을 막지 말으소 서."
하며 뱃전을 향하여 물로 뛰어들려 하니, 영록이가 깜짝 놀라 연희의 허리를 훔쳐 붙잡고 급한 말로,
"여보 여보! 죽을 제 죽기로 이리 급할 것이 무엇 있소" 내 말을 좀 듣고 죽어도 늦지 아니하오."
"나를 붙잡으시는 것은 인정에 혹 그러실 듯하나 내가 살 아 있다는 둘의 생명이 다 위태하여 장차 어찌 될지 모르 니, 그 지경이면 이는 우리 두 집이 모두 복종 절사되기를 스스로 취함인즉, 이 몸 하나 죽는 것을 조금도 쾌념치 말 으시고 귀체를 보중하옵소서. 아무쪼록 구고 양위분을 효양 하옵시고, 나머지 겨를이 계시거든 이 사람 친부모의 비상 한 고생이나 면토록 하여주시면 죽은 고혼이라도 감격함을 마지 아니하겠나이다."
"글쎄, 이리 앉아서 말을 좀 듣고 죽어도 죽어요."
하며 연희의 허리를 잔뜩 안아 배 가운데로 앉히고,
"내가 할 말은 별것이 아니오. 부인이 지금 이 모양으로 죽 고자 함은 용혹무괴나, 다만 한가지k지는 모르는 것이요. 어 찌하여 그러냐 하면 우리 둘이 이 모양으로 손목을 이끌고 나온 것은 피차에 마음이 합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말자 함 인 즉,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 사람의 도 리라. 지금 부인이 저 강물에 몸을 던져 세상이 버리면 나 는 무슨 면목으로 홀로 살아 있으리요. 차라리 저 물에 같 이 빠져 죽은 혼이라도 서로 떠나지 아니할 터인즉, 구태여 조급히 굴지 말고 이 배를 끌러 저 건너로 건너가서 차차 무슨 변통을 하는 것이 가할 듯싶소."
연희가 가만히 생각하여본즉 자기가 그 말을 듣지 않고 죽 었다는 정녕코 영록도 따라 죽을 모양이라, 냅뜨던 마음을 스스로 참고,
"이 사람이 죽고자 함은 결코 당신의 구만리 전성을 위함 이요, 일호도 고생을 싫어함이 아니러니, 이 사람 곧 죽으면 홀로 살아 게시지 아니하겠다는 중난한 말씀을 하시니, 도 리어 몸둘 곳이 없어 다시는 죽을 뜻을 아니 두옵나니 심려 말으시고 계시옵소서."
"옳지, 잘 생각하셨소. 죽기는 왜 무단히 죽는단 말이요"
아무쪼록 살아서 내두사를 아니 보고. 그러나 날이 멀지 아 니하여 밝은 터이니 배를 저어 저 건너 육지로 가서 아무데 로 가던지 가봅시다. 설마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읍뉜 다."
하고 절벽 석각에 배 매어놓은 끈을 끄르고 노를 집어 이 리저리 젓는다. 급한 물결을 건너가려면 장정이라도 노를 젓기에 힘이 들어 까딱 실수하면 얼마쯤 하류로 흘러 내려 가거든, 하물며 약질 영록이는 평생에 노를 손에 만져본 적 이 없는 터에, 가벼운 배로 급한 여울물을 어찌 무사히 건 너가리요" 배가 중류에 가 뜨더니 노를 아무리 저으려 하여 도 물결에 채여 마음대로 아니될 뿐 아니라 노 끝이 배 밑 으로 휘어 들어가며, 영록이가 따라 들어가려 하니 하릴없 이 노를 집어 내던지고 뒤로 물러섰더라. 그 배가 끈 떨어 진 뒤웅박 모양으로 만경창파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빙빙 돌 며 한없이 내려간다. 그 때가 대낮 같으면 오고가는 내왕선 이라든지 고기 잡는 어선이라도 있어 그 모양으로 떠나가는 배를 붙잡아주련마는, 천지가 적막한 밤이라 연강 포촌 앞 에 충충 들어선 배가 모두 닻매고 잠자는 사람 뿐이라. 영 록이가 겁결에 아무리 목이 터지도록,
"사람 살리오, 사람 살리오!"
소리를 지른들 알아들을 사람이 어디 있었으리요" 천행으 로 그 날 새벽에 물 아래 바람이 슬슬 치불어, 물결대로 가 면 순식간에 서해 바다로 떠내려갔을 손바닥만한 배가, 둥 싯둥싯 동이 활짝 밝도록 간 것이 겨우 노돌 다리 위로 뇌 성벽력 같은 소리가 나며 난데없는 종이 한 장이 머리 위로 빙빙 돌아 배 가운데에 와 툭 떨어지는지라, 영록이가 그 경황없는 주에도 심히 이상하여 한 손으로는 뱃전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그 종이를 집어 보니, 글 석 자가 분명히 씌어 있는데, 이는 곧 자기 장인 서주사의 명함이라 깜짝 놀라 열물만 왈칵왈칵 토하고 엎드려 있는 연희를 흔들흔들 하 며,
"여보, 좀 진정을 하여 이것 보오. 어디로서 장인의 명함이 날아왔소."
연희가 명함을 받아 뒤적뒤적 보다가,
"세상에 이상한 일도 있어라. 우리 아버지 명함이 어디로 해서 예 와 떨어졌을까" 명함이 다른 종이 같이 얇고 가벼 운 것이 아닌즉, 바람에 날아왔을 수도 없고, 육지 같으면 누가 가져왔다고나 하련마는, 이 물 가운데 온 이도 간 이 도 없는데."
"이 일이 필경 하나님 조화나 귀신의 재주로 우리를 경정 시키는 것인데, 우리가 우매하여 개닫지를 못하는 것인가 보오. 그런즉 우리는 아무쪼록 살아나서 장인을 뵈옵는 날 이런 말씀을 여쭙시다."
하여 아무쪼록 연희가 죽을 마음만 아니 주도록 말을 하는 데, 연희가 그 명함을 손에 들고 우두커니 들여다 보며 눈 물이 비오듯 옷깃을 적시는지라 영록이가 만단 위로하며 그 배가 저절로 어디 가 닿기만 바라는 데 물 위로부터 나룻배 한 척이 노를 부지런히 저어 나는 듯이 쫓아오며 소리를 높 이 질러,
"그 배 게 좀 섰거라."
영록과 연희가 그 소리를 들으니 덜미에 벼락이 내리는 듯 정녕 황가가 알고 잡으러 쫓아오는 듯 싶으나 노와사앗대질 을 못하고, 빨리 가든지 더디 가든지 배 처분만 바라는 터 이라. 어찌하는 수가 없어 속담과 같이 잡아 잠수시오 하고 엎드려 있느라니, 곁묻어 그 배가 쫓아와서 뱃전을 턱 붙잡 으며 누가 우둥우둥 올라오는지라 영록과 연희가 겁결에 감 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엎드려 있는데, 그 사람이 연 희 앞으로 가까이 와서 손목을 잡아 일으키며,
"네가 이게 웬일이냐" 얼굴을 들어 나 좀 보아라."
연희가 그 음성을 듣더니 고개를 번쩍 들어보다가 와락 그 사람 앞으로 달려들며,
"에구, 아버지‥‥."
당초에 서주사가 변호사 사무원으로 부산항에 내려가 황공 삼의 집에 주인을 정하고 있으며 재판 일을 기다리더니, 우 연히 몸살이 나서 수일 신음하는데, 공삼이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진심껏 구원을 하는중, 졸지에 병세가 위독하여 오장을 에이고 혀가 굳어 말을 못하는 것을 마침 그곳 자혜 의원장이 심방차로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즉시 황공삼에게 입원 치료케 주선하라 하여 여러 가지로 진찰하여 보고 대 증투제로 약쓴 효험으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정신을 차려 차려 기동을 하였는데, 입원한 이후로 황공삼이도 현영이 없고, 자기 서울 집에 편지를 여러 차례 부쳐도 도무지 회 답이 없는지라. 궁금함을 못이겨 더 치료치 못하고 원장에 게 퇴원하기를 청하여 공삼의 집으로 와본즉, 사랑문을 첩 첩이 닫았는지라 심히 괴이하여 하인을 불러 묻는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행랑문이 덜컥 하더니 하인놈 나와 인사를 하며,
"나으리, 행차해 계시오니까" 이제는 병환이 쾌차합셔요?"
"오, 나는 나았다마는 너의 서방님은 어디 가셨느냐?"
"서방님께서 일전에 무슨 긴관이 계시다고 어디를 가셨는 데, 아직 환댁을 아니해 계셔요. 서방님께서는 아니 계시지 마는 사랑으로 들어오십시오."
하여 사랑문을 열고 불을 땐다, 쓰레질을 하다, 자리를 까 는데, 서주사는 사랑에 홀로 들어앉았느라니 심히 무료하여 다시 하인을 불러 묻는 말이라.
"이애, 너의 댁 서방님이 어디를 떠나셨으며 떠나 실 때에 아무 말씀도 아니 계시더냐?"
"서방님께서 지난 날 스무아흐렛날 떠나셨는데, 아무 분부 도 없으시고, 다만 며칠 아니되어 오신다고만 하셨읍니다."
"내 말씀은 아니하시더냐?"
"소인은 아무 말씀도 못 들었읍니다."
서주사가 그 말을 하여 머리맡 벼루 밑을 보니까, 무슨 편 지 수지가 하나 있는지라 무심히 집어서 펴보다가 눈이 둥 그레지며 그 편지를 척 접어 하인이 아니 보도록 감추고,
"오냐, 네 방으로 물러가 있거라."
"예."
하인이 제 방으로 들어간 후에 그 편지를 다시 펴서 찬찬 히 보니 이는 곧 자기 부인 임씨의 필적인데, 그 사연이 분 명한 자기 편지 답장이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보고 또 보다가 혼잣말로,
"세상에 이상한 일도 있다. 내가 병이 들어 집에 편지 한 적이 없는데 답장이 웬일이며, 사연에 연희 혼인을 이미 퇴 하였으니 아무 염려 말라는 구절 편지의 말과 같이, 신랑을 어서 불복일로 올려보내라는 구절, 연희는 저사하고 말을 아니 들으려 하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모르겠다는 구절이 모 두 천만 뜻밖의 말이니, 어 이것 큰일났고! 내가 재판은 못 한대도 지에를 바삐 좀 올라가 보아야 하겠다."
하고 그 날 밤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여 올라오더라. 황공 삼은 서주사의 필법을 모방하여 위조 편지를 서주사 어머니 와 부인에게 보내어 연희 혼인을 퇴하고, 제게로 후취를 주 도록 하여, 서울서 오는 답장은 일변 감추어 서주사를 아니 보일 뿐 외라, 서주사 앓는 것을 좋은 기회로 여기어 약에 독한 물건을 혼합하여 먹이어 정신을 잃고 혼도하자, 자혜 의원장이 마침 와보고 데려가니, 제 마음에 얼마쯤 저옹히 여기는 중 일변 생각하기를, (제가 그 독약을 먹었은즉 아무리 치료를 잘한다 해도 희 생키 어려울 터이요, 희생을 한 대도 하루 이틀에 추서지를 못할 터이니, 그 동안에 서울로 가서 제 딸과 성례를 하여 합례까지 하여놓았으면 제 자식을 보기로 나를 설마 어찌할 라구") 하고서 분분히 서울로 떠나 올라가느라고, 편지수지 나지 는 것을 미처 못 간수하였더라. 급히 서울을 득달하여 성례 를 하려는데 철옹성같이 믿고 조금도 의심 아니하였던 신부 가 부지 거처로 없어졌는지라 눈이 뒤집히고 분이 탱중하여 제 하인과 서주사의 집 하인을 사면 각처로 늘어놓아 찾아 보며, 김의관의 아들 없어진 것을 트집을 삼아 천둥같이 땅 땅 으르며 야단법석을 하면서도, 제 속으로 은근히근심하기 를, (다 쑨죽에 코 쳐지기기로, 이런 놈의 일도 있나" 고 박살 할 김가놈이 꾀어내지를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 없이 나와 혼인을 곧잘 했을 것을. 고런 씨 못 받을 놈의 자식 보았나!
제가 아무리 데리고 도망을 하였지마는 승천입지는 못하였 을 터이니 내 손에 잡히고야 말리라. 고놈은 철 모르는 것 이 제 계집 되려던 신부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된다니까 꾀 어서 데려가기가 오히려 용혹무괴어니와, 그년의 고모년이 우습지 아니한가! 옷자락이 몇 쪽이나 되는지 아니꼽게 출 반주하여 지껄여가지고. 궐녀의 행동이 아무래도 수상한즉 내가 경찰서에가 고소를 하여 단단히 심문을 하도록 한 터 이다. 아니 그것은 그렇지마는 한 가지 걱정이 서주사가 병 이 소복되어 서울로 올라오거나 이런 소문을 듣게 되면 죽 도 살도 다 틀릴 터인데, 경찰서에 고소를 하였다가, 관청 일이라 하는 것이, 매양 여러 날 지체되기가 쉬운데 미처 처결되기 전에 서주사가 올라오면 내 정적이 모두 발각될 터이니, 아서라, 정장할 것 없다. 위풍으로 정소를 하다고 으르기만 하고 주먹다짐을 하여 족불리지로 그 계집아이를 찾고야 말겠다.) 하고 김의관 집에를 뼈염도리로 가서 길길이 뛰며 야료를 하다가 김씨부인이 나서서 말막음하던 것이 종래 의심이 나 서 김의관을 끌어 앞세우고 압구정으로 나아가려 하니, 김 의관이 무엇이라 방색할 말이 없어 부득이나서기는 하였으 나 속마음으로 은근히 겁이 나기를, (내가 아니 가려면 이놈이 더욱 의심을 내어 저 혼자라도 가 보고야 말 터인데, 저것들이 철모르고 저의 고모댁을 영 고탑만치나 여기어 탄평히 있을 모양이니 큰 봉변 나지를 아니하였나" 누님게서 먼저 나아가셨으니까 설마 미리 그애 들 종적을 감추어주시기는 하셨을 터이지. 아니, 누님께선들 황가가 정소곧 하면 우리 집과 내외 종척의 집을 모두 수색 할 줄은 짐작하시겠지마는 오늘 이렇게 급자기 황가가 나아 갈 줄은 뜻을 못하셨을 터인데! 에라. 사람이 너무 나약하면 못쓰느니라. 저놈과 같이 가보아서 그 애들 종적이 발각 아 니되면 좋고, 그렇지 못하여 저놈의 눈에 뜨이는 날이면, 저 노은 성례를 못하였고, 우리 영록이는 성례를 하여 합궁까 지 하였으니 쾌쾌히 말하여 지지를 아니하여야 하겠다.) 이 모양으로 마음을 도사려 먹고 압구정에를 나아갔더라.
김씨부인이 황가와 그같이 언힐을 하다가 자기 집으로 급히 나오기는, 황가가 만일 정소를 하면 경관이 자기 집까지 수 색하기가 쉬운즉, 진시 타처로 옮기어 종적을 감추어주리라 하였더니, 중로에서 하인의 급보를 듣고 집으로 창황히 와 본즉, 밤 동안에 초한 풍진이나 겪은 듯이 안팎 문짝이 떨 어지고 찢어져 턱턱 자빠지고 농장 의거리가 모두 깨어졌는 데 안잠자는 노파가 마주 나오며,
"에그, 마님, 이를 어찌합니까?"
"이것이 웬일인가?"
"에구, 간밤에 강도가 들어와서 댁 세간을 모두 도둑하여 갔답니다."
"그까짓 세간은 잃으면 대사인가마는, 저어, 여보게, 이리 가까이 좀 오게."
하더니 귀에다 입을 대고 가만히,
"여보게, 다동댁의 새 서방님과 새 아씨는 어디 가 숨어있 나?"
노파가 기막힌 대답으로,
"이런 변 보십시오. 처음에 강도놈들이 우루루 몰려 오는 것을 보고 제 생각에는 문안서 또 그 서방님과 아씨를 찾으 러 오는 줄 알고 급히 여쭈었더니, 두 분이 황황 분주히 뒷 문으로 나아가셔서 수도구멍으로 기어도주를 하시더니, 어 디로 가셨는지 이때까지 도무지 소식이 없읍니다그려."
김씨가 깜짝놀라며,
"그러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면 찾아보기가 좀 하지. 아 마 어느 덤불에가 숨어 있어서 집에 무슨 일이 그저 있는 줄 알고 못 들어오나 보구먼."
"마님께서 그 서방님 댁에 와 계신 것을 소문내지말라고 당부는 하셨고, 누구를 시켜 찾아봅니까" 마음에만 답답해서 이때까지 지냅니다."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아무 철모르는 것들이 겁 결에 뛰어나가서 고생을 여북 할까! 고생은 고사하고 오래 지 아니하여 큰 봉변이 있기가 쉬운데, 어디가 깊숙이 은신 이나 하여 있었으면 좋으련마는."
그 즉시 노파를 데리고 담 뒤로 돌아가서 이리저리 형편을 보아가며 숨을 만한 곳마다 모조리 뒤져보다가. 필경 종적 을 모르고 무한 걱정을 하며 집으로 들어오는데, 황가가 자 기 동생 김의관을 끌고 무슨 일이 당장 날 듯이 달려 들어 오더니, 불문곡직하고 내정으로 들어와 김씨부인을 딱 으르 며,
"여보, 공연히 이러지 말고 내 계집을 어서 내놓으시오."
"저분이 미쳤나, 실성을 했나" 댁 계집이 누구인데 내게 와 서 내놓으라시오" 젊은 양반이 경계없이도 함부로 덤벙이 오."
"내 계집 나 찾는 것이 경계가 아니오" 공연히 진작 내놓 아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는 좋지 못하리다."
"여보, 댁 생각대로 하시오. 아무 겁 없소. 필경 서씨집 규 수를 댁 계집이라고 말하나 본오만는, 그 규수가 우리 집에 없으니까 장황히 할 말은 없으나 그 규수로 말하면 우리 영 록이나 댁이나 정혼하였기는 일반이니, 누구든지 먼저 성례 하는 사람이 차지할 것인데, 댁에서 투철히 계집이라고 나 설 것은 무엇이요?"
"어째 못 나서요" 그래 나와 영록인지, 고 발길자식과 그 신부에 대한 권리가 똑 같단 말이요" 뻔뻔스럽게, 하는 말을 들은즉 분명히 그 규수를 이 집에 감추어둔 게로군."
하며 불문곡직하고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다락 속으로 벽 장 속으로 건넌방으로 부엌 광 속을 모조리 뒤지다가 다시 김의관과 시비를 한다.
"여보, 나잇살이나 자신 이가 행세를 음흉하게 말고 어서 바로 토설을 하시오."
"이 자식, 이 후레자식, 나도 삼대 독자를 잃어버리고 열이 나서 찾으러 다니는데 무슨 말을 바로 하라 하느냐" 아니할 말로 네 말과 같이 내 자식이 그 규수와 도망을 하였더라 도, 네가 와서 넉넉한 말이 무엇이야" 너는 그 규수와 혼인 을 정했든지 아니했든지 알 수가 없다마는 내 자식과는 벌 써 몇 해 전에 합사주까지 하였은즉, 설혹 어른들이 열백 번 퇴혼을 하려한대도, 저희들이 말을 아니 듣고 같이 도망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면 어른들도 할 말이 없고, 더구나 너야 아니꼽게 무슨 턱으로 투철히 내 계집이라고 나선단 말이냐?"
"이애, 이말 좀 보아라. 남의 계집을 빼돌려 제 자식과 도 망을 시키고 적반하장으로 되짚어 큰소리를 한다."
하며 연치이니 존장이니 다 불계하고 함부로 욕설을 하며 한참 야료를 하는데, 제 심복으로 데리고 올라온 하인이 숨 이 턱에 닿아서 오더니 대문 밖에서,
"서방님, 서방님."
하고 황공삼을 부르니, 공삼이가 제 하인의 음성을 듣고 마주 나아가,
"너 어찌해서 이렇게 급히 와서 부르느냐" 서주사 댁에서 신부 어디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더냐?"
하인이 가까이 와서 공삼의 귀에다 입을 대고 무어라 무어 라 두어 마디를 하니까, 공삼의 눈이 둥그래지며 아니 아무 말 없이 그 하인과 같이 영등포 가는 길로 나는 듯이달아난 다.
이때에 김의관 남매는 황가의 거동을 보고 더럭 겁이나서,
"누님, 저놈이 웬일이오니까" 저 하인이 와서 무엇이라고 하더니 저 모양으로 검다 쓰다 말없이 급히 가니 그 아니 기상하오니까" 그러나 이 애들은 어디 가있읍니까" 압다, 그 놈 집 뒤짐할 때에 그 애들 어디 있는 데는 모르고 은근히 어찌 겁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이애, 그놈 야단하는 통에 미처 너더러 이야기를 못하였다 마는, 간밤에 나 없는 승시하여 강도 놈들이 돌입하여 우리 집 가산 집물을 모두 도둑하여 가는 통에, 그 애들은 문안 서 저희들을 잡으러 나온 줄 알고 뒤꼍 수도 구멍으로 빠져 서 몸을 피하였다는데, 이때까지 들어오지를 아니하여서 내 가 집안 하인들과 이때까지 사면으로 찾아보아도 어디로 갔 는지 싹이 도무지 없구나."
"에구머니, 그러면 인제는 큰일났읍니다. 필경 황가의 하인 놈이 그 애들 어디 가 있는 소문을 듣고 급히 와서 통기를 하니까, 그 놈이 그 모양으로 쫓아간 것이올시다. 그래, 저 런 못된 자식, 이 근처 어디 있다가 도로 들어오지를 않고 어쩌자고 멀리 번져갔다가 저 봉변을 당하노!"
"에그 참, 그 지경 되었으면 어떻게 하여야 좋으냐" 불들리 기곧 하면 저놈에게 어린 것이 죽을 곤경을 겪겠구나. 이애,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빨리 쫓아가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놈이 어디로 갔는 줄알고 쫓아가오?"
"지금 얼마나 갔겠느냐" 급히만 쫓아가면 응당 만나기도 쉽겠고, 또 그놈이 우리 영록이를 붙잡으면 자연 왁자지껄 할 터이니 그 신부는 배어갈지라도 네가 대들어 영록의 몸 에 우악한 매가 아니 가게 하려무나."
김의관이 자기 매씨의 재촉도 당할 뿐 아니라, 자기 마음 에도 어찌 황망하던지 아무 연구 여부없이 영등포 편으로 숨이 턱에 닿게 쫓아가며 사람을 만나는대로,
"여보, 이리로 나이 스물두엇 되어 보이고 옥색 삼팔두루마 기에 중절모자 쓰고 새 구두 신고 가는 사람 보았소?"
하고 어떤 자는,
"나는 자세히 못 보았소."
급기 영등포 정거장에를 당도한즉 부산으로 내려가는 차가 막 떠나가려 하는데, 힐끗 보니까 황공삼이가 기차안에 앉 았는지라, 김의관도 표를 사가지고 그 차에를 오르려 한즉 벌써 기적 소리가 삐익 나며 차가 떠나가는지라, 망발의 발 로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김의관이 우두커니 서서 나는 듯이 가는 차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혼자 생각하는 말이라.
(어,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히 왔더면 저 차를 타고 쫓아갔 을걸. 그러나 저놈이 저 모양으로 급히 차를 타고 가노" 아 무리 궁구를 하여보아도 짐작할 수가 없는데, 아마 우리 영 록이가 그 신부를 데리고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쫓아와서 붙 들어 싣고 저의 집으로 가나보다. 내가 예까지 아니 왔으면 이어니와 예까지 와서 저놈 가는 것을 확실히 보고야 모르 는 체하고 도로 갈 수가 있나! 만일 내가 모르는 체하고 도 로 갔다가 저 몹쓸 놈이 우리 영록이가 살해하면 그런 눈에 서 피 나올 일이 있나! 오냐, 내게 차비할 돈은 넉넉히 있으 니 이 다음 차를 타고라도 쫓아가서 시원히 내 눈으로 보고 야 말겠다.) 하고 차시간을 눈이 빠지게 기다려 떠나가느라고 자기집 에, 그렇게 가노라 통기도 못하고 차에 올랐더라.
그때에 서주사는 황공삼의 집에서 자기 부인의 필적을 보 고 의심이 더럭 나서 급급히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날이 막 밝자 차가 노돌 다리를 당하여는 기관수가 기관을 틀어 전속력으로 아니 가고 천천히 건너가는 중, 강물을 내 려다보니 물 위로서 낚시 니루 한 척이 둥싯둥싯 떠내려오 는데 사공도 없고 다만 어린아이 돌 뿐이라 심중에 심히 이 상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의 딸 연희와 자기의 사위될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가 분명한지라, 급한 마음대로 하면 차에 뛰어내려서라도 만나보련마는, 육지에서라도 기차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려든 하물며 강물 위 차 안에서 어찌 뛰어 내리리요" 조급한 마음을 억제하고 남문 정거장에 와 내려 서 되짚어 인력거를 타고 노돌로 나아가 독선을 잡아 타고 그 배를 쫓아가본즉 과연 영록과 연희라. 영록이 탄 배를 자기 탄 배에 매어 달고 뛰어 들어가 얼싸안고,
"이애, 연희야, 너 이게 웬일이냐?"
연희가 십생 구사 중에 저의 아버지를 만나 어찌 반갑고 기쁘지 아니하리요" 저의 아버지 품에 푹 안기며,
"에구, 아버지."
서주사가 기가 막혀 일변 두 아이를 자기 타고 온 배로 옮 기고 일변 사실을 묻는다.
"이애, 연희야, 네가 웬 곡절로 이 지경이 되었느냐?"
"에구,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 죽을 죄를 지었읍니다."
하고 흑흑 흐느껴 울기만 한다.
"죄는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울지 말고 말이나 하여 라."
"‥‥‥‥."
"이 자식아, 갑갑하다. 왜 말을 아니하느냐?"
연희가 울음을 그치더니, 당초에 저의 어머니"할머니가 관 상쟁이 말에 고혹하여 퇴혼하려던 말로, 저의 아버지의 편 지에 혼인 옮기어 정하자는 사연을 보고 저의 외조 임통정 을 청하여 김의관 집에 보내던 일을 역력히 고하니, 서주사 가 깜짝 놀래어,
"저런 변괴가 있나! 내가 그 동안 앓느라고 세상을 몰랐는 데 편지는 무슨 편지를 하였단 말이냐" 혼인을 인륜 대사인 데 한 번 언약을 하여 주단까지 받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냐" 아마 너의 어머니가 환장이 되었나 보구나. 내가 아 니한 편지를 청탁하고 그따위 짓을 집구석에 있어 하였단 말이냐?"
"편지가 한 번만 온 것이 아니라 연거푸 여러 번을 왔는데, 저도 보니까 아버지 친필과 흡사하여요."
서주사가 무릎을 탁 치며,
"옳지, 이놈의 협잡이로구나. 그래서 혼인은 어디로 다시 정하라고 하였으며, 너희들이 배는 어찌해서 타고 어디로 가는 모양이냐?"
"혼인은 우리 이웃에서 살던‥‥‥."
"응, 황공삼이?"
"예."
"그래서?"
"불복일로 성례를 하라고 아바지 편지가 오자 황가가 올라 와서 성례를 하려고 하여요."
"저런 죽일 놈 보아. 그놈이 밤낮 내 글씨를 모본하기에 제 문필이 짧으니까 공부하는 줄만 알았더니, 흉한 뜻을 품은 줄이야 누가 뜻이나 하였어, 그래서?"
"저는 죽으면 죽었지 그대로 할 수가 없어서 먹도 아니하 고 머리를 싸고 누웠더니, 집안에서 잔치를 설비한다, 황가 가 올라왔다 하는 양을 보온즉, 밝는 날이면 변통없이 욕을 면치 못하겠기로, 어른들 보시는데 쾌히 낙종이나 할 듯이 좋은 기색을 보여, 마음들을 터놓으시도록 한 후에 밤들기 를 기다려 뒤꼍 오동나무에 가 목을 매어 죽으려는 차에."
"네가 자처를 하려고 목을 매더랬었어" 저런 변이 있나! 그 래, 어떻게 살아났느냐?"
연희는 다시 대답이 없고 영록이가 서주사 앞에 절 한번을 공손히 하더니,
"제가 미거한 탓으로 영애가 그 지경을 할 뿐 아니라 지금 이 곤란까지 당케 하였사오니 심히 황송하오이다."
하고, 연희가 식음을 전폐하고 황가에게 시집을 아니가려 한다는 소문이 났기로 애석한 마음을 못 이겨 사람을 은근 히 놓아 동정을 탐지한즉, 연희가 별안간에 좋은 낯으로 내 일 성례하기를 낙종한다는 말을 듣고, 분심이 폭발하여 밤 에 잠을 못 자고 고생고생하다가, 슬며시 내눈으로 그 거동 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사다리를 갖다놓고 담 넘어가 던 말로, 담 안 오동나무 가지에 연희가 목매는 것을 보고 놀라 뛰어내려 구게하던 말로, 같이 그 담을 넘어와 남복을 시켜가지고 압구정으로 도주한 말로, 중로에서 곤경을 겼다 가 자기 고모를 만나 같이 나가서 작수 성례하던 말로, 웬 놈들이 성군작당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또 도 망하던 말이며, 강절벽에서 실족하여 둘이 내리구르던 말이 며, 요행으로 빈배 안에 가 떨어져 그 강을 건너가려고 배 매어놓은 끈을 끌렀다가 노질을 할 줄 몰라 그 모양으로 떠 내려오던 일장을 차례차례 고하니, 서주사가 듣기를 다하고 서 주먹을 뽑내어 뱃전을 땅땅 치며,
"저런 죽일 놈, 그놈이 흉한 심장으로 내 필적을 모본하여 내 딸을 입욕하려고. 어, 열 번 찢어죽여도 내분을 못다 풀 놈, 그놈으로 해서 죄없는 너희들이 공연히 비명에 수국 고 혼이 될 뻔하였구나. 오냐, 아무 걱정 말고 나와 같이 집으 로 들어가자. 그 놈을 당장 경찰서로 끌고 가서 문서 위조 법으로 고발하여 청 바지를 입혀놓을 터이라."
하고 사공 시켜 부지런히 노를 저어 용산 와 하륙하여, 전 차를 타고 남대문 dksRK지 와서서 주사가 무슨 생각을 하 더니,
"이애들, 이에서 내리자.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서주사가 두 아이를 데리고 대평동 어느 집으로 들어가며,
"어멈, 집에 있나?"
"누가 우리 집에 오셨읍니까?"
"응, 지금 올라오는 길일세."
"에그, 댁에서는 나으리께서 그렇게 오래 아니 올라오신다 고 아주 걱정 중으로 계시던데요."
"언제 댁에를 갔던가?"
"한 보름 전에 가 뵈옵고 요사이는 공연히 골몰을 해서 못 가뵈었읍니다."
"아범은 어디 갔나" 근자에도 고기잡이나 잘 하나?"
"잘이 다 무엇입시오" 벌써 못 살 때가 되느라고 간밤에 그물을 쳐놓고 날이 추우니까 어한을 하려고 술집에를 들어 갔다가 술이 취하여 누워 자고 막 밝자 강으로 나와보니까 어떤 몹쓸놈이 배를 도둑하여 가서 그래서 지금 눈이 뒤집 혀 온 강으로 돌아다니며 찾는다고 나아갔답니다."
주인 마누라가 제 말 하느라고 분주무하다가, 영록과 연희 를 보고 깜짝놀라며,
"에그, 작은아씨가 웬일이요" 김의관 댁 도령님도 왔네. 이 게 웬일인가" 나리 마님, 작은아씨와 저도령님을 어디서 데 리고 오십니까?"
"요란스러워, 떠들지 말고 저 애들을 자네 집에 좀 감추어 두게. 곡절은 차차 알고."
주인 마누라가 감히 다시 묻지도 못하고 영록과 연희를 방 으로 들어앉히며 입속의 말로,
"무슨 사단으로 작은아씨와 저 도령님을 우리 집에다 데려 다 두시며, 떠들지 말라고 당바를 하시나?"
서주사가 아이들을 맡기고 홀로 나가며,
"여보게, 영감 들어오거든 잃어버린 배가 지금 용산 앞 강 에 가 있을 터이니 공연히 애쓰고 찾으러 다니지 말고, 곧 용산 강으로 가보라고 이르게."
"나으리께서 어떻게 저의 배 용산 강에 가 있는 것을 알으 셔요?"
"이 다음 말하지."
하고 인력거를 불러 타고 급히 몰아 자기 집으로 오며 혼 자 생각이라.
(이놈이 내가 이렇게 올 줄은 모르고 뻔뻔스럽게 우리 집 에 가 턱 앉아서 요두전목을 하며 연희를 찾아놓라고 야료 를 할 터이지. 내가 쑥 들어가는 것을 보면 저놈이 아주 질 색을 하렷다! 내가 들어가는 길로 이 놈을 달아나지 못하게 꼭 붙잡고, 경찰서로 가야지. 자칫하다가는 놓치기가 쉬울 터이다.) 하며 자기 집에를 당도하니 대문을 꼭 닫았는데 사람의 소 리가 적적한지라 인력거에 선뜻 내려 가만히 서서 동정을 보다가 슬며시 대문을 열고 자취없이 들어가며 우선 사랑부 터 엿보니, 마루 위에 흙발자취가 어지러이 났는데 곁문이 척척 닫히어 아무도 없는 모양이라, 혼잣말로,
"이놈이 어디 가 있길래 우리 집에 없노" 마루에 흙발자취 를 보니까 한바탕 야단은 톡톡히 한 모양이로구나."
다시 발길을 내놓아 안으로 들어가니, 행랑마누라가 부엌 에서 툭 튀어나오며,
"에구, 나리마님 행차하시네."
그 대답은 하지도 아니하고 안방으로 바로 들어가려는데,
"이 댁에 아무도 아니계십니다."
"다 어디 가셨나?"
마누라가 비죽비죽 울며,
"그 동안에 댁에는 큰 변괴가 났답니다."
"응" 변괴라니, 무슨 변괴?"
"작은아씨께서 어디로 가셔서 사면 찾아도 도무지 종적이 없고, 황서방님은 작은 아씨를 당장 찾아 놓으라고 시시로 오셔서 어떻게 야단을 하시는지, 마님과 아씨께서 진지도 못 잡숫고 잠도 못 주무시며 애를 쓰시다가 못하여, 황서방 님이 어디 가신 승시하여 마님은 마님 조카님 댁으로, 아씨 는 아씨 친정댁으로 몸을 피하셨읍니다."
"황가가 어떤 놈인데, 댁 작은아씨 어디 간 것이 무슨 상관 이라고 찾아놓으라고 야료를 하더란 말인가?"
"에그, 저런 말씀 보시게. 황서방을 모르셔요" 나으리께서 작은아씨와 혼인을 지내라고 편지까지 하여 보내셨다는데 요?"
"그 말은 고만두고 대관절 황가가 어디로 갔냐?"
"황서방님이요" 그 서방님이 댁에만 와서 야단을 하실 뿐 아니라, 작은아씨와 먼저 정혼하였던 이 건너 김의관댁에도 가서 어떻게 야단을 치셨는지 모르는데, 그 댁 영감의 누님 댁이 압구정에 계신데, 작은 아씨가 게 가 있기가 쉽다고 김의관영감을 앞세우고 압구정으로 나아가셨답니다. 인제 오래지 아니하여 들오오실걸요. 그래, 작은 아씨를 찾아가지 고 들어오셨으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그 야단을 또 어 떻게 만나리 싶으셔서 몸들을 피하셨답니다."
"딱하신 일일세. 피신해 무엇해" 어서 가서 마님도 오시고 아씨도 오라 하게."
행랑 마누라가 대답을 하고 나아간 뒤에 서주사 홀로 앉아 궁리하는 말이라.
"이놈이 압구정에를 바로 알고 찾아가기는 하였다마는, 연 희가 있어야 아니 만나보랴" 연희를 못 만나고는 또 지다위 를 하러 들어올 터이렷다. 오, 이놈, 들어오기만 하여라. 하 늘 높은 구경을 단단히 시키리라. 곧잘 살던 집안이 이게 무슨 풍파란 말인고! 이 탓 저 탓 할 것없이 우리 어머니께 서 망령이시고, 나의 내자가 지각없는 탓으로, 그 괴악한 놈 에게 속고서 자식의 못할 노릇을 하고 남의 위세까지 하였 지. 그놈이 아무리 내 글씨를 모본하였기로 내외간에 내 글 씨를 그다지 몰라서 진가를 분별치 못하였담, 응! 다름이 아 니지, 소위 관상쟁이년에게 고혹하여 아무쪼록 영록에게 퇴 혼할 계교가 앞서서, 위조 편지를 보고도 눈이 어두웠던 것 이지."
장씨 조인의 조카 장시어의 집은 모교 근처라. 다동에서 얼마 멀지 아니한 탓으로 자기 아들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 인력거를 타고 거무하에 돌아와 자기 아들의 손목을 잡고,
"에그, 네가 어떻게 올라왔느냐?"
서주사가 자기 어머니 앞에 가 절을 하고 단정히 꿇어 앉 으며,
"그 동안 병환이나 아니 계셔요?"
"오냐, 나는 아무 병이 청승스럽게 없다마는 그동안 집안에 큰 변괴가 생겼구나."
"글쎄올시다. 지금 들어와 행랑마누라에게 대강 이야기를 들었읍니다마는 그런 일이 어디 있어요?"
"그리했느냐" 네 편지를 본즉 연희의 혼인을 퇴하면, 너 주 인 정하고 있는 황씨와 혼인을 지내겠다 하였는데, 내 마음 에도 퇴혼하는 것이 해롭지 아니 여겨 즉시 네 말대로 일변 퇴혼한다, 일변 불복일 성례할 준비를 하였구나."
"그래서오니까?"
연희도 당초부터 그 일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바락바락 반 대를 하다가, 나중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머리를 싸고 누워 있기에 일변 꾸짖고 달래기는 하면서도 은근히 큰 근심을 하였더니, 급기 저녁을 당하여는 이애가 좋은 낯으로 발딱 일어나 소세도 하고, 밤도 먹고, 성적하러 온 수모와도 이야 기를 다 하기에, 혹시 독한 마음이나 먹을까 염려하여 내가 제 방에 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있다가, 그 거동을 보고 서 적이 마음이 놓여셔 안방으로 와서 잠시 허리를 펴느라 고 누웠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본즉, 이 애가 간 곳이 없구나. 온 집안이 황황망조하여 사면으로 찾는데,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도 밤 사이에 어디로 도망을 하였다고 야단하는 것을 들은즉, 짐작컨대 저희들이 같이 도망을 한 모양인데."
"그래서오니까?"
"네가 올려보낸 황공삼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압다 젊은 사람이 영악도 하더라. 열 길 스무 길 펄펄 뛰어, 전하심 후 하심으로 혼인을 정할 제는 웬일이고, 성례 임박하여 빼돌 리기는 웬일이냐 마냐, 성례만 아니했다 뿐이지 당신의 딸 은 즉 내 계집이니 나무라도 깍아 세우고 돌로라도 다듬어 세우라고 야단을 하다가, 김의관 집에 가서도 어떻게 야단 법석을 하였던지 김의관이 그 사람에게 끌려 지금 압구정 매씨 집으로 찾아갔단다. 하나님 덕분에 그 애들을 붙들기 나 하였으면 좋겠다마는."
"어머님, 너무 걱정 말으십시오. 제가 그 동안 앓느라고 세 상을 몰랐는데 집에 편지가 무엇이오니까" 그게 모두 황가 놈의 흉계온데 어머님께서 꼭 속으셨읍니다."
하고 영록과 연희를 사지에서 구하여 데리고 오다가 중간 에 감추어 둔 일절을 조용히 고하니 장씨가 다시 놀라며,
"이애, 저런 죽일 놈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느냐" 이 놈이 들 어오면 나라도 대들어 칼로 배지를 갈라 분풀이를 하겠다.
그놈에게 꼭 속고 죽을 애를 다 썼지. 어른은 어쨌든지 그 철모르는 어린것들을 비명에 죽일 뻔하지 않았나!"
일변 임씨를 재촉하여 오란다, 밤이 이윽한 뒤에 영록 내 외를 데려다가 행랑것도 모르게 뒷방에 감추어 둔다 하고, 황가 들어오기만 고대하더라. 그때에 김의관이 둘째 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바로 황공삼의 집을 물어서 방장 자 기 아들 영록이가 그 집에 있는 줄로 여기고 바로 쑥 들어 가니, 황가는 겁결에 나는 듯이 제 집에를 달려와 또 무슨 후환이 정녕 있을 듯싶어, 가장 집물을 수습하여 가지고 종 적 모르게 고비원주할 작정이더니, 힐끗 보니까 김의관이 두 눈에 눈물 흔적을 후줄하게 흘리고 들어오는지라. 가슴 이 덜컥 내려앉아, (에구머니, 저 분네가 어찌해서 내려오나" 옳지, 벌써 서주 사를 만나보고 나를 잡으러 내려왔나 보다. 저자를 가만히 두었다는 당장 경찰서에 고발곧 하는 날이면 나는 속절없이 살지 못할 터이니, 에라, 죄를 한 번 지으나 두 번 지으나 일반이다. 미리 잡두리를 하여 나 살 도리를 해야 하겠다.) 하고 식칼을 손에 들고 문 옆에 숨어 섰다가 김의관이 막 들어오는 것을 힘껏 명문을 찔러 넘어뜨렸더라. 김의관은 그줄 저줄 다 모르고 황가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달래머, 연희는 황가가 내놓든지 말든지 자기 아들이나 살 려달라 하여 데리고 올라갈 작정으로, 아무 방비 없이 들어 가다가 황가의 독한 칼을 맞고 넘어졌는데, 황가는 그 칼을 다가잡고 두 서너 번 다시 난자를 하여 성명을 아주 결단시 켜, 부엌 뒤로 끌어다 아니 보일만치 대강 파묻고, 가장 집 물을 팔 여부없이 마침 있던 돈 수십 원만 가지고 도망을 하는데, 제 집에서 부리는 하인은 다만 모자 뿐이라 아들놈 은 서울을 데리고 갔다가 떨어져 있고, 그 어미 노파가 빈 집을 지키고 있다가 천만 뜻밖에 그 광경을 보고 무서움을 못이겨, 한편 구석에서 벌벌 떨고 섰는지라. 황가의 생각에, (저 마구는 비록 무식하나 나의 행흉을 목도하였은즉 그대 로 두었다는 폐가 필경 되겠다.) 하고 노파를 앞으로 부르더니 나직한 말로,
"여보게, 우리 여기 있다는 큰 봉변을 할 것이니 아무 말 말고 나를 따라가세."
노파가 간신히 대답하는 목소리로,
"어디로 가시자고 하십니까" 제 자식 옥이란 놈은 어찌하 여 아니 옵니까?"
"글세, 급하니 잔말 말고 가기만 해! 가면 옥이도 만나고 다 관게치 않을 것이니."
"그러면 갑시다."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 행담 속에 헌 옷가지를 주섬주섬 집어넣는지라 공삼이가 성화같이 재촉을 하며,
"그까짓 것은 가지고 가서 무엇하려나" 게 내버려 두게."
"아무리 헌것이라도 아니 가지고 가면 당장 무엇을 입습니 까?"
"가기만 하면 입을 것도 다 있어."
고 모양으로 재촉을 하여 가려하는데, 그때가 초승이라 달 은 없고 밤은 되어 지척을 분변키 어려운데, 바로 바닷가 으슥한 곳으로 나아가니, 사람의 소리와 등불은 일 마장 아 래나 되는 부두에서 들리고 보일 뿐이요, 언덕 아래 흉흉한 파도가 와글와글 끓는 것 같더라.
"나리마님, 이리로 어디로 가시렵니까?"
"가는 데가 있어. 누가 듣네, 떠들지 말고 이리 가까이 와 서 내 말 좀 듣게."
노파는 본래 저의 주인의 말이라면 지체 않고 거행하는 위 인인데, 더구나 그런 때를 당하여 어찌 주저하리요. 저벅저 벅 공삼의 앞으로 들어가니, 공삼이가 가장 무슨 귓속 말이 나 할 듯이 바싹 다가서더니, 노파의 두 어깨를 잔뜩 쥐고 언덕 아래로 밀뜨리니, 근력없는 노파가 어찌 장정의 힘을 당하리요. 풍덩 소리가 나며 물결이 사면으로 헤어지는 곳 에 무죄한 노파가 용궁 구경을 하게 되었더라. 황가가 혼잣 말로,
"옳다, 인제야 마음을 놓겠다. 내가 너를 죽이고 싶어 죽인 것은 아니니, 죽은 고혼이라도 원망은 깊이 말아라. 내가 이 다음 잘되면 해마다 제사나 잘 지내주마."
하고 그 즉시 부두로 내려와 진남포로 가는 배를 잡아타고 훌쩍 떠나버리니, 그날 그 밤에 그 일 난 것을 그 항구에 알 사람이 누가 있었으리요" 그 이튿날 해가 늦은 뒤에야 그 집에 사람의 소리가 도무지 없는 것을 의심내어, 하나씩 둘씩 가서 대문 틈으로 엿보기도 하고 엿듣기도 하나 마침 내 동정이 없거늘, 그제는 대문을 열어본즉 안으로 걸리지 도 아니하였는지라 옥이 어머니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 다.
"어허, 이게 웬일인가" 이 집에 사람이 없나" 있어도 죽었 나" 어찌해서 대답이 도무지 없을까?"
하고 안으로 들어가 이 방 저 방 문을 열어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다만 중문 뒤에 피 흔적만 낭자하다. 그 길 로 경찰서에 가 고발을 하니, 경관이 급히 출장하여 사면으 로 수색하다가, 필경은 부엌 뒤에 피묻은 남자의 시체 하나 를 발견하였는데, 그 집 주인은 나아간 지나 벌써 여러 날 이 되어 없고, 다만 하인 노파 밖에 없었는데 그 노파를 아 무리 찾아도 종적이 묘연한지라, 물어 볼 곳은 없고 시체의 사면을 조사하여 본즉, 속에 명함 두어 장이 있는데,
「김창희」
성명 삼 자 뿐이라. 일변 시체의 죽은 원인을 검사하고 일 변 노파의 종적을 수색하는데, 그 죽은 원인은 남의 칼에 찔려죽은 것이 분명하고, 노파의 거처는 그 살인의 원범을 알지 못하여 진력 형탐하는 중, 공삼의 하인 옥이가 압구정 에서 저의 상전을 잃어버리고 게 있잘수도 없고, 문안으로 갈 수도 없어 할 일없이 저 역시 부산으로 내려오는데, 총 총한 바람에 저의 상전에게 노자 한푼 못 얻고, 적수공권으 로 촌촌 걸식을 하여 아무 소문도 못 듣고 제 상전의 집에 를 찾아 들어가느라니, 별안간 어떤 사람이 와락 달려들어 턱 붙잡더니,
"너 이게 웬일이냐" 여기를 어찌하자고 들어오느냐?"
옥이가 흘끗 보니 이는 곧 제 외가로 척숙되는 한가이라.
"아저씨십니까" 왜 무슨 일이 있읍니까?"
"무슨 일이 다 무엇이냐" 예서는 남의 눈에 뜨이기가 쉽다.
저리 가자,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니."
하고 으슥한 수풀 속으로 들어가 전후 말을 다 이야기 하 니 옥이가 혀를 홰홰 내두르며,
"그러면 그 송장이 누구일까요?"
"그 시체를 경찰관이 검사한즉 별로 다른 증거는 없고, 명 함이 들었는데 김창희라고 쓰였더란다."
"김창희요" 에그, 그러면 서울 다방골 사는 김의관 영감인 가 보오이다. 그래, 저 일이 웬 곡절인가" 그 양반이 압구정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겨를 에 예를 왔던가요" 그래, 댁 서방님 오신 것은 아저씨가 못 보셨읍니까?"
"서방님이 언제 오셨단 말이냐" 나는 못 뵈었다. 나 뿐 아 니라 동리 사람이 아무도 뵈온 이 없길래 경관이 별별 채문 을 다 하는데, 그런 말이 없지?"
"어머니는 어느 때 어디로 가셨어요?"
"저런 딱한 일이 어디 또 있느냐" 어느 때 가시는 것을 뵈 었으면 물어나 보았고, 어디로 간 줄 알면 찾아다가 보게"
이애, 열없이 예서 어루대지 말고 진작 어디로 가거라. 공연 히 죄없이 봉변을 할라."
옥이는 비록 악한 사람의 하례로 있기는 하나, 천질이 제 상전에게 충성되고 제 부모에게 효행이 특이한 중, 의사가 과히 미혹지 아니한 터이라. 제 친적의 전하는 말을 듣고 얼핏 생각하기를, (응, 그만하면 대강 짐작하겠다. 아마 김의관이 아들을 찾 으려고 여기를 내려왔다 우리 댁 서방님을 만나 생 지다위 를 하니까, 서방님께서 그 일을 탄로될까봐 죽여버리고 우 리 어머니를 데리시고 어디로 가셨나보다. 내가 여기서 지 체하여야 소용없으니 진작 사면 팔방 돌아다니며 계신 데를 찾아서, 고생을 하나 낙을 보나 모시고 지내야겠다.) 하고 그 길로 제 척숙을 하직하고 정처없이 가더라.
이 때에 서주사는 자기 딸과 사위를 데려다가 김의관 집으 로 보내고, 날마다 한두 차례씩 건너가 잘 있는 것을 보니 마음에 든든하기는 하나, 사돈의 소식이 여러 날 없는 것이 심히 궁금하기도 하고, 황가놈을 잡아 버릇을 단단히 가르 칠 차로 그 어머니께 가정을 고하고 부산으로 내려온즉, 황 가를 잡기는 고사하고 자기 사돈 김의관이 그 지경이 되었 는지라, 일변 본집으로 전보를 하여 통지하고, 일변 경찰서 에 고소를 하여 범인은 곧 황공삼이니 하루바삐 포박하여 달라 하였더라.
영록은 서가 규수와 작배 동거하니 평생 소원을 성취하여 한없이 기쁘기는 하나, 자기 부친의 뜻을 거역한 일이 못내 황송하여 지내며, 부친이 여러 날 돌아오지 아니함을 십분 초민히 여기더니, 의외에 자기 장인의 전보를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덜미에 벼락이 내리는 듯, 애통함을 마지 못하 다가 주먹을 뽑내며 땅을 치고 벌떡 일어나 몸부림을 땅땅 하며 우는 자기의 어머니를 만류하며 고하는 말이라.
"어머니, 그만 그치시고 진정하십시오. 울기만 하면 돌아가 신 아버님이 살아오십니까" 아무쪼록 아버님 원수를 갚아드 려야 당연한 도리올시다."
"오냐, 너의 아버지 살해한 그놈을 하루바삐 잡아서 간을 씹어야 내 가슴이 시원하겠다."
"걱정 말으십시오. 제가 나는 비록 어리나 옛사람의 말에 정성이르는 바에 쇠와 돌을 가히 뚫은다 하였사오니, 오늘 당장에 어머님 앞을 하직하고 나아가 몇 해가 되든지 기어 이 원수를 갚아 아버님 천대에 계신 혼령을 위로하고야 말 겠나이다."
"네 말은 기특하다마는 어린 것이 어디 가서 그놈을 찾으 며, 설혹 찾기로 어떻게 원수를 갚는단 말이냐" 아무리 지원 극통하더라도 아직 참고 있어 하회를 기다리자. 설마 하나 님이 지시하시기로 죄지은 놈잡을 날이 있게 하시겠지."
"어머님께서는 그대 심려는 말으옵소서. 제가 아무리 나이 는 어리오나 정성을 다하오면 어찌 원수놈을 잡지 못하오리 까" 나이 어린 것을 빙자하고 집에 평안히 있어 불공심수를 갚지 아니하면, 이는 곧 불초자를 면치 못할 터이오니 목전 의 사정 절박함을 생각지 말으시고 쾌히 허락하심을 바라나 이다."
오씨가 영록의 말하는 거동을 보건대 아무래도 제 뜻을 막 기 어려운지라 한숨을 길게 쉬며,
"네가 정 그렇게 뜻이 들어가거든 마음대로 하기는 하여라 마는,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다가는 원수도 갚지 못하고 모 진 목숨이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어미의 가슴에 못만 더 박히게 할라."
"어머님 훈계대로 하오리니 아무 염려 말으옵시고 안녕히 계시면, 아무쪼록 하루바삐 돌아와 뵈오리다."
영록이가 그 어머니 앞에 하직을 하고 죽장망해로 나서려 하는데, 자기 부인 서씨 즉 연희가 역시 남복을 차리고 나 아와, 먼저 오씨 부인께 자기 남편과 같이 나아가 원수갚기 를 청한다.
"어머님께옵서 홀로 계시온데, 슬하를 떠나가겠노라 함은 자식 도리에 황송하오나 시아버님의 참혹한 일 당하심은 모 두 불초한 제 죄로 인연함이오니, 제가 비록 규중 여자오나 어찌 집에 편히 있어 원수놈을 찾아 갚지 아니하오리까" 바 라건대 미거한 말씀을 용서하옵고 장곡에 맺힌 뜻을 성취케 하여주옵소서."
"이애, 네 말이 그르다는 것은 아니다마는, 네가 나간대야 원수갚을 능력은 없을 것이요, 잘못하다가 나의 유한만 더 되게 하기가 십상팔구인즉 십분 다시 생각하여라."
영록이가 자기 어머니 말끝에 다시 이어 이르는 말이라.
"여보 부인, 부인의 말을 들은즉 용혹무비오마는, 그는 그 렇지 아니한 것이, 나는 밖으로 나아가 상사 나신 아버님 원수를 갚고, 부인은 집에 있어 생존하신 어머님 봉양을 하 여야 피차에 당연한 도리일뿐아니라, 나아간 내가 일이 여 의히 못되어 광일이 오래 된대도 마음을 놓아 집안 근심이 없을 터이니, 부인 이 집에 있어 어머님을 봉양하는 것이 오히려 나와 함께 나아가느니보다 나을 줄로 아나이다."
"이 사람이 비록 문견이 없으나 그런 생각을 못하였사오리 까마는, 둘의 힘이 하나보다 나은 것은 정한이치라, 오랫동 안 신고를 하시느니보다 우리 둘의 힘을 합하여 진작 보수 를 하고 돌아와, 어머님 슬하를 길이 모시는 것이 어찌 가 하지 아니하오리까" 변변치 못한 뜻이오나 이미 정하였사오 니 용서하여 주심을 바라나이다."
영록이가 그 뜻을 억제하기 어려움을 짐작하고, 도리어 자 기 어머니께 간곡히 고하여 내외가 동행케 되었더라. 내외 가 오씨부인께 하직을 고하고, 장차 장씨노인"임씨부인께 사 연을 고한 후, 먼저 부산으로 내려가기를 의논할 새 연희가 은근히 말하기를,
"우리 친정에 가서 하직을 고함도 불가하고 부산으로 먼저 가는 것도 역시 불가하오니, 어찌해서 그리하냐 하오면 우 리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나의 떠나는 것을 보면 저사 만류 하실 것이니, 불효의 말씀이나 아직 모르시게 하는 것이 옳 삽고, 부산에 방장 우리 친정아버님이 내려가셨은즉, 그놈 그 근방에 잇기곧 하면 자연 포박이 될 것인데, 내 생각에 는 그 놈이 벌써 멀리 도망하였지 그 근방에 잇을 리가 만 무하온즉, 부산으로도 갈 필요가 없나이다."
"그러면 어디로 먼저 갔으면 좋겠소?"
"규중 여자가 동서 방향을 모르오니 어디라 졸사간 말을 할 수 없사오니, 조선 지도 한 권을 사가지고 자세히 상고 하여 그놈이 가히 감직한 곳을 쫓아가며 찾아보는 것이 제 일 가할까 하나이다."
영록이가 그 말을 옳게 여겨 즉시 지도 한 권을 사가지고 사면 방향을 살펴본 후에,
"이놈이 결단코 육지로는 아니 가고 배를 탔을 터인데, 부 산서 배를 타고 내지로 아니 갔으면 원산이나 삼화로 갔기 가 십상팔구인즉, 우리 원산으로 먼저 가봅시다."
"아니 그렇지 아니하지요. 원산"삼화 두곳으로 의심이 들진 대 구태여 한 곳으로 갈 것이 아니오라, 우리 둘이 각기 나 뉘어 하나는 원산으로 가보고, 하나는 삼화로 가보는 것이 가할까 하나이다."
"천부당한 말도 하오. 나는 남자이니까 혼자 말고 반쪽이 간대도 무슨 일이 있겠소마는, 부인이 어디를 혼자 간다고 하시오" 만 번 가서 그 놈을 만나기로 어떻게 처지하는 도 리가 있소" 공연히 원수도 못 갚고 몸에 욕만 돌아오기가 첩경 쉬우니 그런 말은 두 번도 말으오."
"그렇게 말씀하시기가 쉽사오나, 그놈이 그물에 벗어진 토 끼 모양으로 하방으로 도망하여, 우리가 찾아갈 줄은 천만 의외의 일일뿐더러, 제 눈에 뜨일 것도 없고, 불행히 제 눈 에 띄기로 남복을 한 터에 제가 어찌 얼핏 알아보오리까"
그놈 있는 것만 아는 날이면 몸을 피하여 바로 소관 관청으 로 가서, 범인을 포박하여 달라 고발곧 하면 무슨 흐려가 있사오리까?"
연희도 일시 조급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 영록도 그 말이 근리한 듯싶어 다시 연구하여볼 여부없이 그리 하 자 허락하였는데, 이 일 보통으로 추측하면 인정 밖이라 하 기 쉬우나 그 내외 두 사람의 철천지한이 가슴에 꼭 차서, 그놈 어서 잡는 데만 정신이 팔려 혈혈단신이 서로 나뉘어 가기를 일호도 주저하지 아니함이러라.
두 사람이 각각 갈 곳을 정할새 연희는 진남포로 가기로, 영록은 원산으로 가기로 정하였는데, 영록이가 경인선 기차 를 연희와 같이 타고 인천항에 도착하여 연희를 전송하는 것이라.
전밤중 조수가 덜꺽덜꺽 몰아들어와 부두 앞을 탁탁 치고, 진터리에 덩그렇게 놓여 있던 풍범선들은 물 기운을 못이겨 낱낱이 둥둥 떠서 파도치는대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태외 지 장수들은 물건을 내어 싣느라고 사람의 소리가 와글와글 끓는데, 창창한 두 소년이 해안에 마주서서 눈물을 뿌리며 작별을 하는 광경은, 심양강 비파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듯 한없이 처량하고 연연한 경황은 차마 사람의 눈으로 못 볼러라. 한 소년이 방장 종배를 타고 떠나려 하는데 한 소 년은 잡았던 손목을 차마 못 놓고 나직이 묻는 말이라.
"여보,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면 하일 하시에 어디서 만난단 말이요" 일정한 후기가 있어야 아니하오?"
배 타려던 소년이 내려놓았던 발길을 다시 올려놓으며,
"글쎄올시다. 그는 처분대로 어느날 어느 지방이던지 정하 사 일자를 말씀하옵소서."
묻던 소년이 배 타려는 소년의 귀에 입을 대고 대강 몇 마 디를 하는데 사공이 퉁명스러운 말로,
"어서 타시오. 시간이 다 되었읍니다. 무슨 이야기를 진작 못하고 타시려는 양반을 붙잡고 이러시오?"
두 사람이 잡았던 손목을 사공의 소리에 힘없이 스르르 놓 고, 한 소년은 배에 올라 나는 듯이 바다 한가운데로 향하 여 가고, 한 소년이 부두에 그대로 우두커니 서서 걷잡을 수 없이 나오는 눈물을 수건이 흠씬 젖도록 적시는데, 그 배가 해중으로 들어가 산덩이같이 팔미도를 턱 막아 서 있 는 화륜선에다 세우고, 선객을 윤선으로 인도하여 들이더니, 별안간에 연기가 풀석풀석 나며 기적소리가 두 귀가 딱 맞 히게 나더니 번개같이 가는 지라 부두에서 바라던 소년이 한숨 한 번을 길게 쉬고 돌아서서, 축현 정거장에 와 기차 시간을 기다려 남문 정거장으로 오더니, 급급히 다시 차표 를 사가지고 경원선 기차를 또 타더라. 경원선 철도가 아직 은 개통이 다 못되어 겨우 철원읍에 이르렀는데, 영록이가 철원읍에서 차를 내려 즉시 인력거를 두 패 질러타고 원산 항에를 당도하였더라. 혹 한 눈이 먼 체, 혹 한 다리 저는 체, 혹 얼굴에 때칠도 하고, 혹 헌 의복도 바꾸어 입으며, 이따금 의관도 정체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황하도록 행색을 차려가지고, 원산항 가가호호이 모두 수색하여 보아 도 황가의 종적이 묘연한지라 은근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 다가, 가만히 생각한즉 인천 부두에서 자기 아낙과 만나자 는 기한이 그럭저럭 박두하였는지라 혼잣말로,
"이놈이 이곳에는 아니 왔는 것을 공연히 돌아다니며 찾았 구나. 자기가 저사 고집하기로 뜻을 막을 수가 없어 섬섬 여자를 홀로 가게 내버려 두었는데 천행으로 그놈의 종적이 나 채탐하였으면 공연히 고생만 참혹히 하였을 터인데, 고 생은 으레 면치 못하려니와 생명에나 큰 관계나 없었으면 그 아니 좋을까! 내가 오늘 내로 곧 떠나서 평양으로 가야 약조한 날을 어기지 아니할 터이다."
하고 즉시 항구에 나아가 기선을 타고 삼화항으로 가서 분 주히 평양으로 올라왔더라. 북풍 겨울 하늘에 첫 눈이 풀풀 날리어 장림 쇠한 나무가지에 경각내 이화가 만발한 듯한 데, 소년 남자 하나이 새벽 빛을 띠고 홀로 오르락내리락하 며 중얼중얼 혼잣말이라.
"거진 올 때가 되었는데, 날은 벌써 밝았는데 웬 곡절 인구 이상도 하다. 내가 날을 잘못 쳤나" 그저께가 금요일 어저께 가 토요일, 오늘 정녕 이달 끝 일요일인데, 남의 길과 달라 멀리서 오느라고 미처 대오지를 못하나" 시간에는 못 대오 더라도 설마 얼마 아니있으면 당도하겠지."
하며 앉았다 섰다 이리도 바라보고 저리도 바라보며 애꿎 은 궐련만 펄쩍 쉴 새 없이 피워문다. 일 년 열두 달 중에 양력 십이월이 해가 짧아서 날이 밝자 한나절이 되고, 한나 절이 되자 어두워지는데, 영록이는 첫새벽부터 장림 긴 수 풀 속으로 왔다갔다 한 시각이 십 년이나 지지않게 보내며 사람을 고대하는데, 부지중 해가 서산에 넘어가 점점 어두 워지니 일부중 저녁 연기가 바람에 불리어 나뭇 가지마다 깃들어 지척을 분별키 어려워 온다. 대인난, 대인난, 백난지 중에 대인난이라. 영록이가 그 해가 다 지도록 자기 부인의 오기를 기다리느라고 입술이 마르고 가슴이 타서, 별별별별 망념을 다하여 애를 쓰다가 하릴없이 주인집으로 돌아오며 여러 가지로 근심을 한다.
(당초에 내가 잘못이지. 어찌하자고 여자의 몸을 혼자 가게 내버려 두었던고! 범절이 용렬하고 모호한 자격같으면 오늘 일자를 등한이 잊기나 쉬우려니와, 응당 오늘 일자를 가슴 에 새겨두어 잠시라도 잊을 리가 만무한데 어찌하여 못 오 는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로다. 중로에서 도척을 마 나 해를 당하였나" 아니 몸에 재물이 없고 의복도 잘 입지 를 아니했으니 도적이 보기로 무엇을 빼앗자고 덤볐을 리도 없고, 황가놈을 만나 피신을 못하고 욕을 당하였나" 아니, 그도 그렇지 않은 것이, 만손 그놈에게 욕을 당하였더라도 바로 자기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무슨 방법을 하든지 내 가 번연이 오늘 이리로 올 줄 아는데 기별 한 마디 아니하 여 주었을 리가 만무하지. 이게 웬 까닭인가" 아무리 생각하 여도 황가놈을 만나 오도가도 꼼짝 못하고 잡혀 있는 것이 확실한가 보다.) 그 밤을 잠 한잠 못자고 심려를 하다가, (에라, 세상 일을 몰라. 날짜를 잘못 꼽았어도 하루 더 기 다려 보는 것이 옳다.) 하고 첫새벽에 다시 장림으로 나아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 며 해를 보다가, (어, 진작 삼화로 가 찾아볼걸. 공연히 하루 해만 더지었구.
그러나 저 원수놈에게 잡히기만 하였으면 그 놈이 어림없이 그곳에 붙들고 있을 리가 만무하고, 또 그 성미에 황가놈 말을 얼핏 순종하여 생명을 부지했을 리가 만무한데, 오, 이 놈, 내가 열 치가 한 치가 되기로 죽기로써 결심한 이상에 세상없기로 너 한 놈 잘 살라고 내버려둘 줄 아느냐!) 이 모양으로 바안 활개를 치며 기차를 타고 삼화항으로 향 하였더라. 차가 강서 땅에를 당하여 기양 정거장에 잠시 정 거를 하는데, 연일 밤잠을 못 자고 석탄 연기에 머리가 아 파서 잠시 바람을 쏘이려고 차에서 내려 시원한 바람을 향 하고 섰는데, 어떤 자가 옆에 와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소매 를 턱 붙잡으며,
"댁이 여기 어째 왔소?"
총기가 다른 사람보다 배승한 영록이가 어찌 그자를 몰라 보리요. 깜짝놀라 나오는 소리를 억지로 참고,
"누구시오?"
"누구는 차차 알고 이리로 와서 나 잠깐 보시오."
"할 말씀이 있거든 여기서 하오. 차가 오래지 아니하여 떠 나겠으니까 못 가겠소."
"그 양반 대단히 뻑뻑하다. 차는 이 번 차밖에 다시 없소"
이 다음 차를 타구려. 친구가 청하는데 아니 가는 것이 다 무엇이야?"
"그 양반 별소리를 다 하며, 총총히 가는 남을 붙잡고 무단 히 힐난하네."
하며 속 마음으로, (저놈이 분명한 황가의 하인놈인데, 나를 알아보고 이 모양 으로 힐난을 할 제는 정녕 제 상전 황가놈이 이 근처에 있 는 모양이다. 내가 집에서 결심하고 떠나기는 황가놈 만나 원수 갚자는 것인데, 황가가 있음 직한 증거를 보고 갈 필 요가 없고, 나의 내자도 그 놈에게 붙잡혀 있지나 아니한지 저놈에게 못이기는 체하고 어디 좀 가 볼까보다. 그러나 저 놈은 둘이요, 나는 단 하나요 겸하여 약질인데, 갔다가 귀신 도 모르는 죽음을 당하면 그 아니 딱한가! 에라,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범을 어찌 잡겠느냐" 좌우간 가 보는게 옳다."
하고,
"여보, 댁이 정 가자니 가기는 합시다마는, 가는데는 대관 절 어디요?"
"가보면 알지요."
영록이가 그자의 잡은 소매를 훌뿌리며,
"이 양밤 소매 놓고 갑시다. 죄인 잡아가듯 이게 무슨 모양 이요?"
"예, 소매는 놓을 것이니 어서 가기나 합시다."
그자가 영록을 앞세우고 얼마 아니 가더니, 큰 객주집으로 들어가 으슥한 사처방 하나를 치우고 들어앉더니 얼굴을 뚫 어지게 살펴보며 새삼스럽게 인사를 청한다,
"그러나 노형 성씨가 누구시오?"
"여보,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자고 했읍니 까" 내 성은 오가요."
"공연히 이러지 말고 바로 말하시오. 번연히 알고 묻는데 오가라는 것이 다 무엇이요?"
"어떻게 하는 말이요" 오가이기게 오가라고 하지, 오가 아 닌 것을 오가라고 했단 말이요" 그 양반 넉넉히 남의 친기 도 우기겠소."
"댁이 번연히 김서방인 줄 아는데 오가라고 한단말이요"
서울 다동이 댁이지요?"
영록이가 짐짓 껄걸 웃으며,
"예, 그러면 댁에서 횡 보았소. 내 집은 시흥읍인데 다동이 어디 가 붙었는지 알지 못하오."
"댁 어르신네가 김창희 김의관 아니오?"
영록이가 벌덕 일어서 가려고 하며,
"세상에 별일도 다 보았구. 사람을 자세 알지도 못하고 성 화같이 끌고 오더니 별별 소리를 하고 앉았네. 에이, 정신 없는 양반, 나는 가겠소."
그자는 별사람이 아니라 황공삼의 하인 옥이니, 제 상전과 제 어미의 종적을 찾으려고 사면 팔방으로 불폐풍우하고 돌 아다니다가, 마침 기양 정거장에 와서 제 상전이 눈에 혹 띌까 하여 차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을 면면이 상고하다가, 영록이 차에서 내리는 양을 보고 서주사의 딸을 찾아 저의 상전의 소원 성취를 하여주자는 작정으로 제 식주인으로 데 리고 온 일인데, 아무리 자세 보아도 얼굴은 김의관의 아들 과 흡사한데 성명"거주가 같지 아니한지라 제가 혹 잘못 보 았나 의심은 나되, 종시도 알 수가 없어 얼른 놓아보내지 아니하는데, 영록이는 짐짓 못 이기는 체하고 잡혀 있으며 옥이와 본이 나도록 수작을 한다.
"내 성명은 댁에서 이미 아셨거니와 댁은 누구시오?"
"댁 성명을 내가 알다니, 댁이 김의관 자제인 줄을 내가 이 미 알았단 말이요?"
"김의관은 웬 김의관이란 말이요"
"김의관은 웬 김의관이란 말이요" 내가 이미 말하였은즉, 시흥읍 오가인 줄을 알으셨단 말이야요."
옥이가 껄걸 웃으며,
"예, 그렇단 말이야요. 나는 부산 사는 김옥이란 사람이요."
"객고 평안하시오?"
"예, 평안하시오" 댁이 시흥이라며 예는 무슨 일로 오셨던 가요?"
"예, 우리 외가가 평양 외성인데, 외가에 다니러 왔다 진남 포 구경을 하려고 가는 길이오."
"그러면 유람차로 나섰구려. 유람차로 나선 양반이 무엇이 그리 총급하다고 하여 계시오?"
"그야 동역객 서역객 이지마는, 목적지는 진남포인즉 차를 놓치지 아니하고 가야 아니하오" 노형은 어찌하여 예 와 유 련을 하오" 무슨 장사를 하시오?"
"예, 장사도 별로 하는 것이 없고 나 역시 유람을 하러 나 섰소."
"다동 김의관은 어떤 사람인데 나를 보고 그 아이들이냐고 반가이 물어 계시오?"
"김의관이라고 있지요. 댁 모습이 그 아들과 흡사해서 실례 를 했소이다."
"객지에 다니기가 너무 외롭더니 피차에 잘 만났소. 노형도 유람차요 나 역시 유람차인즉, 서로 의지하여 같이 다니면 어떠하겠소?"
옥이가 영록의 딱 잡아떼는 소리를 듣고도 한편으로 의심 은 쾌히 없지 못하더니, 피차 잘 만났으니 작반하여 유람하 자는 말을 듣고 속마음에, (저 사람이 과연 김의관 아들이 아니로구나. 만일 김의관의 아들이 변성명한 것 같으면 내 얼굴을 짐작할 터이니, 어름 어름 빠져나가려고 할 터인데, 작반을 하여 같이 다니자는 것을 본즉, 확실히 다른 사람을 내가 횡보았나 보다. 관기모 자면 인언수재라고, 저 사람 외양 범절이 저만치 얌전할 제 는 마음도 과히 흉치 아니할 터이니, 자기의 소원대로 작반 을 하여 다니며 위인을 보아 통정을 하고 내 뒤를 좀 보아 달라 하겠다.) 각정을 하고 껄걸 웃으며,
"좋은 말씀이요. 피차 객지에서 형제처럼 의지하고 지냈으 면 해롭지 아니하지요."
사람의 능력으로 변통치 못하고 귀신의 재주로도 추측치 못할 것은 선악 보응이라. 매양 천만 뜻밖에 일이 생겨 만 구일담으로 죽으려던 사람이 살아도 나고, 부귀"복록을 천만 년 누릴 듯하던 사람이 없기도 하여, 천태만상이 듣고 보기 에 두렵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섭섭도 한데, 그 여러 가지 경우를 차례로 손가락을 꼽아 헤어보면, 모두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 일 뿐이어늘, 저 완명 무도한 황공삼은 남의 집 신부를 무례히 욕심내어 아 무 죄없는 김의관을 참혹히 죽이고, 제 죄 엄적하기 위하여 여러 해 신임하던 옥이 어미를 바다에다 떼밀어 없이한 이 후로, 그 밤에 배를 타고 삼화항으로 와서 성명을 변하여 박참위 행세를 하며 여간 돈만 가지고 온 것으로 물건도 무 역하려는 체, 식리도 하려는 체, 가장 큰 부상대고 인모양을 하고 어떠한 객주에 들어 있는데, 그래도 혹아는 자의 눈에 발각이 될까 하여, 가장으로 만든 수염을 주문하여 위아래 턱에다 붙여놓으니, 여간 아는 친구는 고사하고 제 집안 식 구라도 능히 알아보지못할러라.
이때 연희가 자기 남편을 인천 부두에서 작별하고 앞을 가 리는 눈물을 억지로 진정하며 육선에 올라 부지중 진남포에 를 당도하여, 여러 선객과 함께 하륙을 하니, 남자라도 초행 이면 정신이 얼울하려든, 더구나 규중 여자로 대문밖 기척 을 모르다가"번화 복잡한 생면강산에를 당하니, 발길이 서먹 서먹하여 어디로 향할지 모르다가 가만히 생각한즉, (당초에 아니 나섰으면이거니와, 기위 나선 이상에 주저서 어 굴다는 남의 눈에 수상히 보일 터인즉, 아무쪼록 활발한 모양을 보여야 하겠다. 그러나 이놈이 어디 가 있노" 이놈 있는 데를 알아 기약한 날 평양으로 가서 내외가 같이 와 철천지수를 갚을 터인데.) 하고 조금도 수줍은 태도가 없이 다른 남자나 일반으로 객 주집을 찾아 별로 사처를 정하여 잠을 자고, 그 이튿날부터 항구 안 집집마다 슬몃슬몃 구경 다니는 것처럼 모조리 수 색하여도 황가의 영향이 없는지라 혼자 마음에, (이 항구에 있는 노소 행객을 하나 빼지 않고 살펴보아도 황가의 영향을 못 보겠으니, 필경 그놈이 이곳에 없는 것인 즉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다.) 하고 봇짐의 지도를 내어 방향을 골몰히 살피어 보는데, 어떠한 구레나룻이 설핏하게 난 소년 하나이 들어오더니, 등잔 뒤에 가 앉으며,
"저 양반, 우리 인사합시다."
"좋은 말씀이요."
"뉘댁이시며 어디 살으시오?"
"내 성은 임가인데 살기는 전라도 나주 사오."
"나주 사시는 양반이요" 말소리는 서울 양반 같은데요."
연희가 그자가 성을 묻는데 얼른 생각나는대로 자기외가 성을 대고, 고향을 외가본 나주로 대었더니, 그자가 어음이 같지 아니하다는 말에 군색히 꾸며 말하기를,
"어려서 고향을 떠나 전라도 방언은 다 잊어버렸어요. 노형 은 누구신데 어째 찾아 계시오?"
"나는 서울 사는 박 참위라는 사람인데, 군대 파산 이후에 집에서 놀기만 하다가 장사나 하여볼까 하고 이곳에 와 있 는데, 연일 노형 지나다니시는 것을 보니까 전에 어디서 여 러 번 뵌 듯 낯이 익어서 와서 뵈옵고 인사를 청하였소. 노 형은 무슨 일로 이곳에를 오셔서 여러 날 유련하시오?"
"예, 나는 별로 볼일은 없소이다마는 평안도 물색이 하도 좋다기에 구경차로 내려온 길이요."
"평안도 물색이 좋다지마는, 지금 일기가 엄동이라 구경다 니시기가 어려우시겠소. 동행은 몇 분이나 되나요?"
"동행은 여럿인데 아직 여기는 아니 왔소이다. 날이 추우면 이 모양으로 들어도 있고, 따뜻하면 나서서 돌아다니니까 엄동이 관계 있읍니까?"
"그러면 초면에 어찌 들으실는지는 모르겠소마는 나 역시 객지에 아무도 작반한 이가 없어 너무 적적한데, 노형 동행 오기 전에는 우리 둘이 같이 지내면 어떻겠소?"
연희가 그 말을 들으니 마음에 싫어서 칭탁할 말을 생각하 다가,
"말씀은 감사하나 내가 그렇지 못할 사정이 있소이다."
"무슨 사정이 계신가요?"
"내가 양친시하인데 나 여기 있는 기별을 들으시고 우리 어머니께서 금명간 내려오실 터인즉, 내가 주인을 떠날 수 도 없고, 노형이 내 주인에 같이 계실 수도 없으니 대단히 미안하오."
연희는 그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수문수답을 할 따름이요, 그자는 연희를 칠분 짐작하고 짐짓 찾아 와 지긋지긋 문답 을 하는 것이라.
"허허, 그야 내가 바로 노형 처소로 같이와 있겠다면 모르 거니와, 노형더러어찌 내 주인으로와 계시라고 하겠소" 또는 아직 동거처를 하다가 노형 자당께서 행차하시면 나는 내 주인으로 도로 가도 무방하지요."
연희가 무엇이라 대답할 말이 없어 묵묵히 앉았다가 다시 핑계하는 말이,
"그도 그러하려니와 노형 하실 말씀 한 마디를 여쭐 것이 니 용서하여 집에서 나객지에서나 평생에 꼭 혼자 거처를 하여 버릇을 하여서 친구 말고 부모와도 한방에 누워 자지 를 못하는 버릇이 오니 아무리 박절하오나 모시고 같이 거 처할 수가 없나이다."
구레나룻 난 자가 정색을 하며,
"여보, 어떻게 하는 말이요" 동시 객지에서 그만한 청을 하 였더니 사람 대접을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요"
나를 노로보로 알으오" 없소. 내가 별로 자본이 많지 못해도 그래도 몇 백원 가지고 영접하는 놈이 댁 행장 도둑하여 갈 내가 아니오."
"그렇게 하실 말씀이 아니올시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보, 내 고집도 댁만은 착실하오. 댁은 좋거니와 언짢거 니 예 와 같이 있을 테니 귀찮아도 좀 견디시오."
연희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자가 노했던 얼굴을 훨쩍 풀어 껄껄 웃으며,
"허허, 내가 생찌그렁이군이지요" 그렇지마는 내가 의복이 없다든지 반전이 없어 노형에게 떼를 쓰는 것이아니라, 노 령을 뵈와 보아도 일면여구하여 친절히 사귀자고 이리하는 것인즉, 조금도 어찌알지 말으시오."
"말씀 아니하신대도 모르는 일은 아니오나, 성미가 괴악하 여 아무리 노여하신대도 붕행치 못하겠소이다."
그리할수록 그자가 너털웃음을 하고 얼레발을 치며 수염을 연해 쓰다듬다가 수염이 송두리째 뚝 떨어지니, 그자가 황 망히 돌아앉으며 어름어름 도로 붙이는 양을 연희가 누결에 보고, 그자의 얼굴을 자세 여겨본즉 황가가 분명한지라 경 혼 낙담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다시 생각한즉, 만일 경선 히 굴다는 저놈에게 욕을 당장 못 면할 터이요, 원수도 갚 을 기망이 없는지라 수염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 여 천연한 말로,
"노형이 정 이렇게 고집을 하시면 나는 다른 곳으로 가 있 을 터이니 이 방으로 와 계시려거든 계시오."
"그러면 내가 이 방을 탐낸 것쯤 되게요" 댁과 동거처를 한 번 하여보기가 원이 되어 그러는 것인데, 댁은 다른 데 로 가고 나만 예 와 있으라고, 응?"
하더니 연희 턱밑으로 바싹 들어앉으며 또 한 번을 껄껄 웃고 연희의 손목을 잡으려 하며,
"왜 이래, 공연히 성가스럽게. 귀신을 속이지 나를 속이려 고 남복을 하고 변성명을 하면 내가모를 줄 알고 이리하오"
우리가 역시 천생연분이어늘, 무단히 편심으로 고집을 한 대도 소용도 없소마는, 지금이라도 진시 회심하여 바른대로 사정 곧 말하면 내가 얼마쯤 좋을대로 하여주리다."
연희가 가만히 생각한즉, (그놈이 벌써 자기의 본색을 알고 와서 떼를 쓰는 모양이 라 급격히 반대를 하다는 저놈의 손에 속절없이 죽어 불공 심수를 갚지 못할 뿐 아니라, 가장으로 하여금 눈이 빠지도 록 헛 기다리며 고생을 무진 할 터이니, 에라, 차라리 임시 처변으로 비위를 슬슬 맞추어 마음을 놓게 하고 기회를 보 아 처치하리라.) 하고 한숨을 길게 쉬고 나오는 눈물을 손에 들었던 수건으 로 이리저리 씻으며 아무말도 없이 앉았으니, 그자가 앞으 로 다가앉아 연희의 두 뺨을 어루만지며,
"겁내지 말으시오. 이왕 일은 내가 손톱만치라도 개의 할 내가 아니오. 아무 근심 말고 우리 이야기나 합시다. 그래, 김의관의 아들은 어디로 가고 예 와 이렇게 객고를 하오"
하늘이 정하신 연분은 인력으로 어찌 못하는 법이외다."
연희가 짐짓 모르는 체하고 모기 소리만치,
"당신이 누구신데 나를 알으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셔요?"
"나를 응당 모르리다. 한동리에서 그대를 길러내다시피 한 나를 몰라봐" 자, 자세 보오."
하고서, 위아래 턱의 수염을 뚝뚝 떼고 얼굴을 바싹 들이 대니 연희가 뒤로 주춤 물러앉으며 언뜻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또 말이 없으니,
"인제 나를 똑똑히 알겠소" 내가 그대에게 내소박맞던 황 공삼이요."
"‥‥‥."
"그때 형편으로 말하면 조금 과격하다고 하면 하겠지마는, 내가 그 경위를 당하였어도 그리 했기가 십상팔구인즉 다시 개론할 것 없고, 우리가 오늘부터 피차 화합하여 백년을 해 로했으면 고만 아니오?"
"‥‥‥."
"도금사세 하여서는 그대가 아무리 내 말을 아니 들으려 하여도 아니될 것인즉, 잠시라도 남의 속 태우지 말고 진작 말을 해요."
"‥‥말을 무엇이라고 해요?"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는 지금 어디 가 있소?"
"나도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다니 말이 되나" 그때 같이 도망을 하고서 알지 를 못한다고" 그래도 종시 뉘를 속이려고! 이러지 말고 어서 바른대로 하라니까."
"사이도차에 할 일 없소이다. 바른대로 말씀을 하오리다."
"응, 진작 그럴 일이지, 김영록이가 어디 있으며, 그대는 어찌하여 혼자 이곳에 와 있소?"
"기차 들으시면 알으시지요. 당초에 김의관의 아들과 같이 도망하기는, 한 번 김씨가 와 정혼한 이상에 변경을 아니할 결심이 있음이러니, 피차에 아무 경력없는 어린 사람들이 수중에 노자도 넉넉지 못하고 간 곳마다 생면 강산이라, 그 간 죽을 풍상을 한없이 겪다가 생목숨이 얼핏 죽기는 어렵 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모양으로 도로 방황하다가는 장 차 무슨 지경에 이를지 몰라 부득이 피차 사정을 말하고 각 각 헤어졌어요."
"압다 그 자식, 그만한 주변도 없는 것이 남의 집 귀한 신 부를 함부로 데리고 도망을 하였던가" 고놈이 그래 어디 가 있소" 발목을 잡아매어 부딪혀 죽이게."
"그 지경이 되니까 그는 서울 자기 집으로 올라가고, 나는 차마 부끄러워서 서울로 가는 수는 없고, 우리 아버지께서 부산 계신 터이니까 부산으로 가려 한는데 몸에 병이 생겨 서 어찌할는지 걱정이 태산 같아요."
"무슨 병이 있단 말이요?"
"집에서 떠난 이후로 일기는 비상이 추운데, 의복을 박착하 고 잠시도 더운데 거처를 못하였더니 그런지, 우연히 아랫 배가 뻗히어 아프기 시작을 하더니 점점 더하여 지금은 굽 도 젖도 할 수가 없고 진정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냉처를 많이 해서 하초에 냉이 쳐졌나 보구려. 진 작 치료를 하여야지, 부산으로는 무엇하러 간단 말이요" 예 서 병이나 치료하고나와 같이 지내다가 우리 같이 서울로 갑시다그려."
"‥‥‥."
"그 고초를 겪고도 아직도 김가놈을 못 잊어서 대답을 아 니하나 보오마는, 설령 김가가 그 모양으로 제꼭지에 물러 나지를 아니했더라도 내가 있는 이상이면 저는 속절없이 돌 아설 뿐인즉, 만 번 생각하여 소용없 죽은 공연히 그러지 말고 나 시키는대로만 하오."
"‥‥‥."
연희가 간간이 아랫배를 움켜쥐고 은근히 결음정을 내며 못견디어 하는 모양을 하니, 황가가 애가 씌워서,
"여보, 의원을 좀 청해 올까, 방에 불을 더웁게 때라고 할 까" 글쎄, 진정을 하오."
"이만해도 더운데 불은 더 때어 무엇하겠소" 의원이나 좀 보았으면 좋겠으나 이런 시골 구석에 똑똑한 의원이 있을 리가 있나요?"
연희가 의원 보기를 요구하기는 요행 틈을 얻으면 몸을 빼 쳐 도주하자는 계획인데, 황가가 주인을 불러 고명한 의원 어디 있는 것을 물으니, 순직한 주인이 이실 직고하기를,
"여기 의술 똑똑한 의원이 여럿이올시다. 양약을 스시려면 내지에 들어가 졸업한 의학사 회춘당약국이 있고요, 한약을 쓰시려면 저 아랫 동리 권주부약국이 있읍니다."
"그러면 의원을 청해다 보려면 보겠지요?"
"청해다 보기가 좀 거북한 걸요. 권주부는 좀체 정분에는 병을 보러 다니지 아니하고, 회춘당 주인은 오전에는 자기 집에서 병을 보고 오후에야 다섯시간까지 다니며 병을 보는 데, 청하는 사람이 답지하여 며칠 전에 미리 맞추기 전에는 청해 보기가 어려운 걸요. 압다 의술이나 그만치 배워가지 고 약국을 냈으면 큰 실수가 바로 나겠읍디다."
황가가 연희를 돌아보며,
"그러면 양약국에는 급자기 아니되겠고 권주부약국으로 좀 가봅시다."
"에그, 지금같이 아파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어요. 아구 구, 애구 배야."
주막 주인이 창밖에서 듣다가 황가를 바라보며,
"그러면 영감께서나 권주부를 가보시고 같이 가자 간절히 말씀을 하여보십시오. 그가 점잖은 양반이니까 영감 말씀이 면 아무리 초면이라도 아마 괄시를 아니함직하오이다."
황가가 의원을 가보고 싶은 마음은 미상불 없지 아니하나, 연희를 떨어져 자기가 염려되어 얼른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연희는 눈치를 보고 더욱 앓는 소리를 하고 몸을 비비 틀으 니, 황가가 저 보고 더욱 앓는 소리를 하고 몸을 비비 틀으 니, 황가가 저 보기에 어떻게 딱하고 가이없던지 주인더러,
"여보, 권주부약국이 여기서 얼마나 되오?"
"한 이 마장 가량 밖에 아니됩니다."
"에고, 그만두시오. 초면 모르시는데 가시기로 그런 의원이 올는지도 알 수 없는데, 공연히 수고스러우신데 가깝지도 아니한 데를 가실 것도 없고, 나 같은 팔자 기박한 것 앓다 가 나면 고만이요, 죽은들 관계 있읍니까?"
황가가 의원을 찾아가볼 듯이 말은 하면서도 주저주저하다 가, 연희의 말을 듣더니 와락 가고 싶은 마음이 나서 뒤 염 려를 다시 하여볼 여부 없이 벌떡 일어나서,
"말이 되나, 사람이 죽겠다는데 의원을 지척에다 두고 못 청해다 본단 말이요" 내가 갔다 오지. 여보, 주인, 그집이 어디쯤이요" 내가 지금 한달음에 다녀올 것이니 다사한데 어렵지마는, 저 병자가 대변을 보러 가나 소변을 보러 가나 곁을 떠나지 말고 잘 간호를 하여주오."
"그것은 어렵지 아니하오이다마는, 영감께서 저 양반과 본 래 친하시던가요, 이같이 위하시니?"
"응, 친불친 여부가 있소" 나와 한집안으로 지내는 터인데, 나 여기 있다는 기별을 듣고 찾아온 모양인데 저렇게 몹시 앓는다오. 부디 간호를 잘 하여주오."
부탁을 재삼 하고 권주부약국을 찾아가더라. 그때 연희병 으로 말하면 어서 몸을 빼쳐나야 황가놈에게 욕을 당하지 아니할 터인데, 섣불리 몸을 빼치려 하다는 욕을 더 재촉하 는 터인데, 섣불리 몸을 빼치려 하다는 욕을 더 재촉하는 것이요, 그뿐 아니라 고심하여 찼던 원수를 천행으로 만났 는데, 자기 몸이 도리어 피해가는 것은 일이 아니거니 싶어 한 가지 의사 내기를, (내가 무두 무미히 나가려다는 주인이 황가의 부탁을 들은 터인즉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하고, 황가의 말이 빨간 거짓 말이라고 이실직고를 한 대도 아까 아무말 못한 이상에 곧 이들을 리가 만무한즉, 차라리 주인에게 갑갑한데 산보나 하러 나가자고 하여 슬슬 경찰서 앞까지 가서 얼른 뛰어들 어가 황가를 잡아달라고 고발하는 수 밖에 다시 없다.) 하여 주인을 보고,
"여보, 주인 양반, 배 아픈 것은 조금 진정되나 속이 답답 하여 못살겠구려. 불안하나마 나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나 좀 쏘이러 나갑시다."
"압다, 갑갑하셔도 좀 참으시게요. 영감께서 오래지 아니하 여 오실 터인데."
"오시기로 관계 있소" 나아갔다라도 영감 오시는 것을 보 면 곧 도로 들어오지요."
주인은 아무 뜻도 모르고 그 말이 용혹무괴일 듯하여,
"아무려나 생각대로 하여 봅시다."
하고 동행을 하여 이 거리 저 거리 돌아다니다가,
"여기도 경찰서가 있나요?"
"있고 말고요. 저기 보이는 집이 경찰서라오."
"어디 거기 좀 가서 구경할까요?"
"구경할 것이 무엇 있나요" 대문에는 하인 왕래를 못하게 한즉 들어가볼 수도 없고, 들어간다해도 무엇이 볼 것 있나 요" 바로 죄인 중 아는 사람이나 있으면 면회차로나 들어갈 까요."
연희는 그래도 구경을 가자거니 주인은 가볼 것이 없다거 니 한참 수작을 하는데, 누가 앞으로 와락 달려와 우뚝 서 며,
"여기 어째서 와 계십니까?"
연희가 깜짝놀라 자세 본즉, 이는 곧 황가의 하인놈옥이라, 졸지에 변하는 얼굴빛을 억지로 진정하여 천연한 음성으로,
"자네가 황서방님 하인이 아닌가" 예를 어떻게 찾아왔나?"
그자의 입에서 아무말도 나오기 전에,
"서방님을 여기서 뵈었는데, 내가 복통증이 나서 지금 의원 을 보러 가셨는걸."
옥이가그 말을 들으니 제 상전의 소원 성취가 다 된줄로 추측하고,
"예, 그러하셔요! 저도 서방님을 뵈오려고 지금 사면팔방 찾아 다니는 길이올시다."
"서방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오실걸. 그러나 자네가 나를 어떻게 얼핏 알아보았나?"
"몰라뵈올 리가 있읍니까" 한 번 언뜻 본 김의관의 아들도 알아보았는데요."
연희가 그 말에 궁금증이 나서 어디서 보았느냐고 막 물으 려는데, 황가가 숨이 턱에 닿게 쫓아오며,
"몸이 성치도 못하여 예는 무엇하러 나왔소" 어서들 갑시 다. 의원이 왔소."
처음에는 연희가 혹 어디로 도망을 했는가 황황히 쫓아나 와 그곳에 있는 것을 보더니, 소스라쳐 놀라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못본 체 홱 돌아서며 연희더러,
"어서 들어갑시다."
연희는 자기 목적을 도달치 못함을 분히 여겨 얼른 돌아서 지를 아니하고 주저주저하는데, 옥이가 황가의 앞으로 썩 들어서며 절 한 번을 꾸벅 하더니,
"소인 문안 드립니다."
황가가 마지못하여,
"너 여기를 어떻게 내려왔느냐?"
"소인은 서방님 행차하신 후에, 즉시 댁에를 내려갔다가 예 까지 왔읍니다."
황가가 집에 다녀왔다는 말에 더욱 뒤가 나서 속마음으로, (저놈이 집에를 갔더라니 이것 큰일났구나. 그렇지마는 김 의관 죽은 거를 알았겠지마는 제 어미 죽은 것을 필경 몰랐 겠지. 어디 저놈의 눈치를 좀 보리라.) 하고, 억지로 반가운 체하며,
"허허, 고생을 막심히 하였구나. 너의 어멈 소식은 몰랐지, 아마?"
옥이가 눈이 둥그래지며,
"소인의 어미가 어디 가 있읍니까" 소인은 서방님께서 데 리고 행차하옵셨거니 하였읍니다."
"응, 그렇게 알기가 쉽지. 너는 아니 오고, 내가 이렇게 나 오는데, 너의 어머니 혼자 집에서 지낼 수가 있느냐" 그리해 서 내 외가댁으로 가서 아주 있으라고 보냈더니 잘이나 있 는지 모르겠다.
"소인은 그런 줄은 모르옵고, 그 댁 근처에를 지나면서도 들어가보지를 아니했읍니다."
황가가 그제는 마음을 놓고,
"오냐, 설마 잘 있겠지. 이다음에 올라가보려므나."
하고 연희를 재촉하여 앞세우고 주인으로 오는데, 옥이가 뒤에 따라오며 나직한 소리로,
"서방님, 앞에 각시는 이가 서주사댁 작은아씨가 아닙니 까?"
"에, 요란스럽다. 누가 듣는다."
"아무도 없는데 누가 들어요?"
황가가 권주부를 보내고 방으로 들어와 옥에게 권주부를 따라가라 한다.
"그 의술이 미상불 맹랑치 않은걸. 이애, 옥아, 권주부 쫓 아가서 약을 주시거든 가지고 오너라."
"예, 갔다옵지요."
옥이가 대답을 하고 나아가니 황가가 또 쫓아 나아가더니,
"이애,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라."
"그 이야기는 여쭙겠읍니다마는, 약은 웬 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까?"
"압다, 너는 그 의원의 말을 못 들었느냐" 아씨가 김가의 자식을 밴 모양이니 진작 약을 먹여 없애버려야 아니 옳으 냐?"
"그까짓 일이 그리 급하십니까" 몇 달 후에 낙태를 시켜도 고만이요 낳은 뒤에 죽여 없애도 그만이지요마는, 제일 김 의관의 아들 영록이가 우환이 아니오니까?"
"그는 네 말이 옳다마는 뱃속에 그놈의 씨를 그대로 두었 다는 아씨의 마음이 갈리어 또 무슨 일이 날지 모르겠구나."
"김의관의 아들만 없어지면 아씨 마음이 걸리지 않아 세상 없기로 관계가 무엇입니까?"
"대관정 그놈이 지금 어디 가 있느냐" 그놈을 꼭 붙잡아가 지고 오지를 아니하고."
"여쭐 것이니 들어보십시오. 김의관의 아들이 차에서 내리 는 것을 보고 붙잡고 인사를 청한즉, 성명을 변하여 시흥 오가라고 하옵기 처음에는 혹 잘못 알았나 하였다가, 아무 래도 의혹이 나기에 소인도 변성명을 하고 주인집으로 끌고 와 수일을 지내옵는데, 아무리 넘겨짚어 허실을 알려 해도 끝끝내 생작이 떼는 것을 보고 꼭 속기를 얼핏 같은 사람이 혹 있는 것을 잘못 보고 붙잡았거니 싶을 뿐이라,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저 하는 양이 가라고 떼밀어도 아니 갈 듯하 여 단속을 좀 덜하고, 제 자력대로 내버려두었더니 고만 간 다 온다 말없이 살짝 도망을 하였읍니다. 그 도망한 것을 보고 그제야 소인이 되속은 줄을 깨닫고 사면수소문을 하온 즉, 도무지 자취가 없삽기에 필경 차를 타고 이리로 내려온 줄 아옵고 쫓아왔사오니 어서 바삐 찾아보아야 아니 옳습니 까?"
"허허, 그것 분하다. 그놈을 놓치지 말고 꼭 잡았더면 아주 내 후환을 없이할걸 너는 내 심복이니 말이지, 그놈이 계집 빼앗기는 것커녕, 제 아비를 내 손으로 죽인 줄을 알기 곧 하면 사생 결단하고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니 큰 우환거리 가 아니냐?"
"그렇고 말고요. 서방님께서 어련히 통촉하셨을 바는 아니 옵지마는, 김의관을 죽이기까지 하신 것은 너무 과하신 일 이올시다. 그 자식 되어서 원수를 갚으려고 아니할 리가 있 읍니까?"
"오냐, 죽이기까지는 내가 과격한 일이지마는, 그자의 쫓아 온 것을 보고 일시 내 엄적할 욕심으로 그 지경을 하였으니 지금 와서 후회하면 소용 있느냐" 뒷일 방비나 잘해갈 것을 생각하여야지. 그래, 그놈이 이 항구로 왔기가 가려로구나?"
"분명히는 알 수 없읍니다마는 이리로 왔기가 십상팔구올 시다."
"그놈이 이곳에 왔을수록 아씨의 낙태를 시켜야만 하겠으 니, 얼핏 권주부약국에 가 약이나 가져오너라. 그 약을 먹여 후환부터 없애고 고놈의 종적을 수색하여 보자."
권주부는 의술 뿐 아니라 관상을 잘하는 터인데, 연희의 얼굴을 팔모로 뜯어보아도 남자가 아니오 여자요, 맥을 보 건대 다른 병은 없고 태맥이 분명한데 황가가 독약을 청구 하는 것을 보고 의심이 들기를, (아무리 그 얼굴을 보아도 여자요, 맥을 보건대 태맥이 확 실한데, 여자가 아니오 남자라는 것과 태맥이 아니라 체적 이 생김이라 하는 양을 짐작컨대, 황가 필경 남의 수절하는 과부를 통관하여 태기가 있으니까 탄로가 날까 보아 낙태를 시킬 계교인가 보다. 내가 바로 몰랐으면이어니와, 기위 반 짐작이라도 한 이상에 그런 악한 일을 할 까닭이 없다.) 하고 보내할 약을 마침 지어놓았다가 옥이를 내러주며 짐 짓 부탁하기를,
"이 약이 독한 약이니 태기있는 부인에게는 부디 쓰지 말 도록 하오."
"여려 말으십시오. 그대로 여쭙지요."
이때에 연희는 황가에게 붙잡혀 움치도 뛰도 모사고, 아니 아픈 배가 아프다 칭탁하고, 목전의 굽한 욕을 면하려는데, 권주부가 와서 맥을 보고 태맥이라는 소리에 그 그 고명함 을 은근히 탄복하였는데, 황가가 따라나가서 수군수군하고 저 약을 지어다 주는 것이 의심이 나서 저사하고 아니 먹으 려 한즉,
"어서 자시오. 이 약을 자시면 복통이 곧 그치리라 하는데, 왜 아니 자시려고 하오?"
"그까짓 의원이 무엇을 알아서 그 약을 먹으면 복통이 아 니 나요" 지껄이는 소리가 전판 허무맹랑한 걸요."
"맹랑은 공연히 맹랑해" 맥이나 바로 보았지, 이약을 태상 이라도 관계치 않고 태상 아니라도 관계치 않으니 잔소리 말고 어서 자시오. 어서 자시고 병이 쾌차 하여야 나와 혼 인을 하루바삐 아니하오?"
연희는 저사하고 아니 먹으려거니 황가는 기어이 먹이거려 니 무수 상지하다가 황가가 화를 버럭 내어 소리를 지른다.
"약을 아니 먹으려는 것을 본즉, 배가 아프지도 아니한 것 을 필경 꾀배앓이를 하여 나를 속이는 것인즉 먹기 싫거든 고만두오. 나도 나 할대로 할 터이니. 흥, 그까짓 얕은 꾀를 뉘 앞에서 쓰려고" 내가 어림없이 속고서 의원을 청해 온다 약을 지어 온다 하였군."
약그릇을 들어서 팽개치려다가 다시 턱 밑에다 들이대며,
"정녕 아니 먹을 터이요" 아주 한 마디를 하오."
연희가 가만히 생각을 한즉, (그 약을 아니 먹었다는 저놈에게 욕을 당장 못 면할 지경 이라 죽으나 사나 그 약을 제 소원대로 먹어 우선 피화를 하는 것이 옳다.) 하고 약을 받아 벌컥벌컥 한숨에 다 마셔버렸더라. 황가가 은근히 요행하게 여기기를, (옳지, 인제는 김가의 시를 없애게 되었다. 아마 조금 있으 면 배가 더 아프다고 야단을 하렷다. 핏덩이만 쏟거든 다시 보혈할 약을 쓰면 그만 나을 터이지.) 연희 역시 그 약을 사세가 급박하여 받아먹기는 하고 무슨 야단이 날줄 알고 은근히 근심을 하는데, 그 약이 들어가더 니 거북하던 배가 도리어 편안하고 아무 일이 없는지라 속 마음으로, (내가 아무 일이 없는 양을 저놈에게 보였다는, 저놈이 또 무슨 약을 지어올 터이니 엄살을 좀 톡톡히 하여 저놈의 정 신을 빼어놓으리라.) 하고 별안간에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자리에 못 붙고 엎드렸다 앉았다 야단치니, 황가가 외양으로 놀라는 체 하 며 속으로는 다행히 여겨, 본체만체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 와, 옥이와 영록이 찾을 의논을 한다.
"이애, 옥아, 인제는 낙태는 시켰다마는 그놈을 어떻게 하 면 잡겠느냐" 그놈을 잡아 없애야 내가 발을 뻗고 잠을 잘 터인데."
"가만히 계십시오. 소인이 지금 약 지어가지고 오다가 수상 스러운 것 하나를 보았읍니다."
"무엇을 보았단 말이냐?"
"소인이 분주히 저 건너 술집 문 앞을 지나오느라니까 웬 사람이 마당 앞에 섰다가 소인이 저만치 오는 것을 흘깃 보 더니, 아주 질색을 하여 몸을 피하는데, 복색이라든지 몸집 과 키가 김의관의 아들과 방붕하와요."
"그러면 쫓아 들어가보지, 그대로 왔단 말이냐?"
"그 생각이 있었읍니다마는, 약을 급히 가져오라고 하셨으 니까 지체할 길이 없사와 그대로 왔사옵고, 서방님께서 약 을 쓰시느라고 골몰하시니까 미처 여쭙지도 못하였읍니다."
"이애, 그놈이 거기 그저 있을까" 그 술집이 어디 쯤이냐"
우리 같이 가보자."
옥이가 손으로 건넌 산 모롱이를 가리키며,
"저기 저 건너 술집이올시다."
옥이는 앞을 서고 황가는 뒤를 서서 그 주막을 찾아가서 황가는 멀찌기 서서 망을 보고, 옥이는 바로 대문을 흔들며 주인을 찾는다.
"주인, 주인."
"누구요" 술 자시러 온 양반이요" 우리 집에 술이 떨어졌 소. 다른 데로나 가보시오."
"술은 잇으나 없으나 이리 좀 나오시오."
"예, 나가오. 누구란 말인구?"
하며 주인 노옹이 나와 대문을 열더니,
"예, 추워, 일기도 맵기도 하다. 웬 양반인데 이 추위에 찾 아 계시오?"
"들어가십시다."
"뉘 댁이시오?"
"예, 예, 차차 아실 터이니 들어가십시다."
"들어앉으실 데가 없소이다. 술도 떨어지고 나무도 없어서 건넌방은 폐방을 하구요. 안방에는 딸이 근친을 와서 있읍 니다."
옥이가 그 소리에 더럭 잡아 젖힌다. 주인이 대들어 옥이 의 팔뚝을 잡아 나꾸며,
"이 양반이 미쳤나, 실성을 했나" 남의 집 내정 돌입을 함 부로 하게."
"내정 돌입이라니, 술집에 좀 들어오는 것이 내정돌입이야"
댁이 술장사를 않고 부인아가씨 사처방을 꾸며놓았나 보구 려."
"여보, 술장사하는 사람은 이렇게 성명도 없단 말이요" 술 도 없다는데 남의 집 안방 문은 왜 열러 들으시오?"
"술도 낯 가려 파나 보구려. 번연히 방안에 어떤 사람이 들 어앉아 술을 먹는 것을 아는데 이따위 수작이 다 무엇이야!"
"내 집에 술군이 있는 것을 댁이 똑똑히 알으오?"
"아무렴, 알지."
"그럴 터이면 댁 생각대로 찾아놓으시오. 만일 술군을 못 찾아놓으면 큰 봉변하오리다."
"그리하오. 못 찾아놓기는, 번연히 내 눈으로 본 것을 못 찾아놓아!"
하고 다시 방문을 잡아 젖뜨리고 신발 신은 채 뛰어 들어 가 미친놈 모양으로 이리 휘휘 저리 휘휘 둘러보는데, 주인 노옹은 기가 막혀 문밖에 그대로 서서,
"저놈이 어서 난 놈이야" 오, 이놈 못 찾아만 놓아보아라, 내 손에 다리가 부러지고야 말 터이니."
주인의 마누라와 주인의 딸은, 불의에 풍파를 만나 어쩔 줄을 모르고 이 구석 저 구석에 우뚝우뚝 돌아서서,
"에그, 이게 웬 야단일까" 별 미친 사람이 다 많으이. 우리 집에서 누가 술을 먹는다고 남의 집 젊은 여편네가 있는 방 에를 함부로 뛰어들어와 야단법석일까"
"오늘 벌써 둘째 괴상한 꼴을 보네."
옥이가 그제는 제 생각에도 안되었든지 얼른 도로 나가 주 인 노옹 앞에 가 머리를 조아 복복 사죄하는 말이라.
"노인장 용서하여 줍시오. 제가 실수가 많소이다. 그러나 지금 아낙에서 하시는 말씀을 잠깐 듣자온즉, 괴상한 꼴을 둘째 보았다 하시니, 하나는 제가 디려니와 하나는 또 누구 가 있길래 그렇게 말씀을 하시옵니까?"
주인 노옹이 좋은 주먹으로 옥이 눈에 불이 번쩍 나체 볼 치를 올리려다가, 나이 많은 탓으로 용서성이 많아서 들었 던 주먹을 도로 움치며,
"여보, 이 양반, 댁이 실진을 했는지 술이 취했는지 모르겠 소마는, 그게 무슨 난장 맞을 행세요" 내가 십분 용서하여 고만두는 것이니 잔소리 말고 어서가오."
"고만두는 것이 다 무엇이요" 좀 단단히 물어보오. 무슨 곡 절로 남의 집 안방에를 함부로 뛰어들어왔나?"
"압다, 요란스럽소. 개천 나무래 무엇하겠소" 소경된 우리 가 그르지. 우리가 주막거리에 나아와 술장사하는 것이 불 찰인즉 고만둡시다. 이 양반 어서 가오. 십분 용서하는 것이 니."
옥이가 짓궂게도 주인 앞에 가서 앉으며,
"주인장께서 이처럼 널리 용서하시니 감사무지하오이다. 그 러나 아까도 말씀하였거니와, 아낙에서 괴상한 꼴을 둘째 보셨다 말씀을 하시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그것은 알아 무엇하려오" 그놈을 댁이 알으시오?"
"어떤 놈 말씀이오니까?"
"오늘 신수가 사나와서 댁같이 미친 짓하는 사람이 아까도 한 놈이 왔더라오."
"그놈이 누구인데 어떻게 미친 짓을 하더란 말씀이요?"
"누가 아오 그놈이 누구인지" 우리 세 식구가 막 밥상을 받고 앉았으려니까, 별안간에 웬 놈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 어오더니, 저 윗 방 독 뒤에 가 숨어 앉았길래 깜짝놀라서 네가 웬 놈이냐 물은즉, 그놈이 손짓을 홰홰 내저으며 제발 덕분 떠들지 말고 사람을 살려달라기에, 웬 사람인데 무슨 곡절이 있느냐 물은즉, 제 말에 어떤 자와 전량 거래에 시 비가 되어 뭇매질이 났는데, 그자는 우악하고 저는 약하여 잡히기곧 하면 죽어도 죽고 사정을 보아달라 하기에 경상이 가긍하여 r대로 두고 문밖에를 나아가 두루 살펴보아도 아 무도 쫓아오는 자가 없길래, 다시 들어와 저를 보고 밖에 아무도 없으니 어서 갈 데로 가라 한즉, 그 사람이 그제야 독 뒤서 기어나아와 고맙다고 인사 한마디 할 여부없이 꼬 리가 빠지게 도망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 아니 괴상하오?"
옥이가 혀를 홰홰 내두르며,
"저런 놈 보아. 저놈이 어디로 도망을 하였을까?"
"왜 노형이 그놈을 짐작하시나 보구려?"
"짐작이라는 것이 다 무엇이요" 그 놈이 아주 큰 도둑놈이 라오. 그놈이 간 밤에 내 주인에 들어와 우리 행장 수천 원 을 도둑하여가지고 도망하는 것을, 내가 이때까지 꼭 뒤를 밟아다니다가 아까 대문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잡으려 다가, 그놈에게는 필경 흉기가 있을 터이요, 또 나 혼자 잘 못 덤볐다가 도리어 해를 당할까 염려가 되어 보지 못한 체 하고서 그놈의 마음을 눅이고 지금 잡으러 왔는데, 설마 그 놈이 그 동안에 어디 갔으랴 하였더니 벌써 도망을 하였구 려."
"예, 그놈이 그런 놈이야요" 누가 그런 줄이야 알았습니까"
그러면 주인더러 미리 통기를 해주시지요. 꼭 붙잡았다 드 리게."
"주인이 그놈과 부동이 되어쓴지 아니되었는지 어찌 알아 서 통기를 해요" 여보, 나는 댁이 말씀하는 것을 들으니까 이실직고가 아닌 듯싶어, 내가 내정 돌입한 것을 가이없이 생각하오마는, 만일 이놈을 진시 잡지 못하면 주인에게 후 환이 없지 아니하리다."
주인 깜짝놀라서,
"에그, 그리해서 어찌하게요" 주인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 리셔요" 당신이 아무쪼록 잘 말씀하셔서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기만 바라오."
"그는 어찌되었던지 당장 이놈을 잡아야만 하겠으니, 여러 말 할 것 없이 그놈 간 곳을 어서 가르쳐 주시오."
"그놈 간 곳을 알 수가 있읍니까" 그놈이 저 앞길로 간 지 가 얼마 동안 아니되오니 바삐만 쫓으면 얼마 머리 아니 가 서 잡으실 듯하오이다."
"어느 길 말이요" 항구로 올라가는 길이요, 정거장으로 가 는 길이요?"
"아니오, 저 건너 산비탈로 돌아가는 길 아니 뵙니까" 그 길로만 급히 쫓으시면 십 리가 채 못되어 길 아래 외딴 주 막 하나이 있을 것이니 그 주막에 가 수색을 하여보시면 갈 데 없이 잡으오리다."
이때 황가는 오래 기다려도 옥이의 동정이 없으니 궁금증 이 생겨서 그 집 문밖에 와서 기침을 카악카악 하니 옥이가 분주히 나아오며,
"진작 왔더면 꼭 붙잡을 걸. 이놈이 벌써 달아났읍니다그 려."
"그놈이 어느 틈에 도망을 했을 수가 잇나" 필경 주인과 부동이 되어 얻다가 숨긴게지. 이애, 우리 들어가 주인을 조 련질하여 보자."
"아니올시다. 주인이 진실하여 속일 사람이 아니올시다."
"허허, 그것 분하다. 그놈을 꼭 잡았더면 좋은 것을."
"걱정 마십시오. 그놈이 저 길로 갔답니다. 급히 만 쫓으면 잡을 터이올시다."
"간 지가 얼마나 된다느냐?"
"얼마 아니되었답니다. 어서 쫓아가십시다."
"오냐, 어서 가자. 토막나무 끈 자리지, 제가 가면 얼마나 갔겠느냐?"
하고 황황히 장바 두 길이나 가다가 황가가 딱 멈춰서며,
"이애, 아니된 일 한 가지가 있다."
"무슨 일이오니까?"
"우리가 이렇게 쫓아가 그놈을 얼핏 잡으면 좋으려니와, 그 렇지 못하고 점점 멀리 번져 가는 지경이면, 속담에 모이의 둘 잡으러 가다가 집의 돝 잃기로, 아시를 주인에게 단단히 맡기든지 데리고 함께 가든지 해야 아니하느냐?"
"옳지, 참 그렇습니다. 주인에게 맡기시다니오" 아무리 단 단히 맡기기로 아씨께서 어디로만 가시면, 그 죄로 주인을 죽입니까 어찌합니까" 매사는 튼튼한 것이 제일이올시다. 소 인은 먼저 쫓아갈 것이니 서방님께서는 그 집으로 가셔서 아씨를 모시고 뒤를 따라 오십시오."
"오냐, 그 수밖에 없다. 나는 아씨를 데리고 곧 갈 것이니 너는 그놈을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쫓아가거라."
"예서 얼마 아니 가면 외딴 주막이 있다는데, 거기서 수색 을 하여보아 그놈을 잡으면 더 여쭐 말씀없고, 만일 거기 없으면 새향 장터까지 가서 기다리올 것이니 그리 아십시 오."
"그리해라. 그놈 잡고 못 잡는 것은 너만 믿는다."
황가가 주인집으로 와서 연희더러, 어서 나서라 같이 가자 하니 연희는 어쩐 곡절을 모르고 복통을 칭탁하며 얼른 나 서지를 아니하려 하니, 황가가 더욱 심조증이 나서,
"여보, 여간 아프더라도 좀 참고 나와 같이 갑시다. 예는 의약이 변변치도 못하고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즉 평양으로 가면 몸 편히 잘 조섭할 곳이 있으니 잔소리 말고 어서 갑시다."
"아무리 그러해도 복통이 더 심하여 촌보를 떼어놓을 수강 없으니, 수일간 동정을 보아 가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정 그러면 타고 가지. 예서 천연세월하고 있을 수가 있 소?"
하더니, 주인을 불러 인력거 한 채를 얻어 태워 앞세우니, 연희가 얼마쯤은 못 가겠다 앙탈을 하다가 가만히 생각한 즉, (저놈의 억지에 배기지를 못하겠는 중 평양으로 간다하니, 그리로 가면 남편의 소식을 탐지하여 보겠다.) 실심하고 못이기는 체 그 인력거를 타고 길을 떠났더라.
하
편집1
편집그 해 겨울이 덥지는 못하였으나 섣달이 되도록 눈이 별로 많이 오지를 아니하여 길 다니는 사람의 고생이 적더니, 연 희의 액운이 미진함일는지 황가의 죽을 때가 가까움일는지, 별안간에 북풍이 들이 불며 함박꽃송이 같은 눈이 눈을 못 뜨게 퍼붓기를 시작하여 경각내에 발이 푹푹 빠지게 퍼부어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당초에 영록이가 옥이놈을 기양서 만나, 황가의 종적을 탐 지할까 하고 수일 같이 묵으며 아무리 눈치를 보아도 알 수 가 없는데, 옥이놈이 자기 곁을 아니 떠나고 잡두리하는 양 을 본즉, 불측한 심장을 앙ㄹ 수도 없고, 제일 자기 부인의 소식이 궁금하여 옥이놈 잠든 새 도망을 하여 진남포로 바 로 내려왔는데, 감히 번화지에 주인을 못 정하고 촌으로 다 니며 망문투식을 하면서 슬몃슬몃 항구로 들어와 자기 부인 소식을 탐지하려는데, 어떠한 술집 문 앞에서 멀찌기 옥이 놈 오는 것을 보고 그놈의 눈에 들킬까 겁이 나서 그 모양 으로 남의 집 안방에를 붙문곡직하고 뛰어들어가, 독 뒤에 가 숨었다가 옥이 지나간 뒤에 몸을 빼쳐나서 가만히 궁리 한즉, (옥이 놈이 쫓아온 것을 본즉, 자기를 확실히 알고 해칠 마 음을 둔 모양인데, 예서 잘못 어리대다는 원수도 못 갚고 어느 지경에 갈 줄 모르겟고, 또는 자기 부인이 만일 생명 에 관계만 없고 보면, 아무리 시한은 지나더라도 평양으로 기어이 찾아갈 터인데, 공연히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피차에 만나지 못하고 더 고생만 할 터이니 차라리 평양으로 가는 것이 옳다. 평양으로 간대도 차비도 부족하려니와 대로로 가다가는 또 무슨 일이 있을는지 모르니 소로로 가는 것이 옳다.) 하고 그 퍼붓는 눈을 맞으며 평양으로 향하여 가는데, 근 근 십리 가량을 걸으니 매운 바람은 얼굴 에이는 듯하고 회 목까지 빠지는 눈에 열 발가락이 빠지는 것 같아서 새향 장 터를 채 못 미처 어떤 주막집 복로방에 들어가 더운 막걸리 한 잔을 사먹은 후, 화로에 발을 녹이고 있는데, 그 길이 소 로라 행인이 별로 많지 못한 중 눈이 그 모양으로 퍼부으니 까 여간 볼일에는 아무도 길을 떠날 이가 없으므로 흰떡 가 루를 체로 쳐서 그득하게 쌓아놓은 듯한 길바닥에 다만 영 록의 자취 뿐이라, 옥이가 누구에게 물어볼 여부없이 뒤를 밞아가는데, 황가 역시 그자취를 밞아 쏜살같이 쫓아가며 혼잣말이라.
"저기 보이는 것이 외따로 있는 주막인데 김가 놈이 저기 있으면 곧 잡아 없애겠구나."
급기 외딴 주막 앞에 와서는 이리 저리 휘휘 둘러보더니, 또 혼잣말로,
"저 주막으로는 당초에 들어가지를 아니하고 바로 갔네, 발 자취가 없을 제는, 어, 그놈 약다. 우리가 쫓아올 의심을 하 고 바로 달아난 모양인걸. 바로 가지 말고 세상없어도 가소 롭다. 우리 옥이놈이 여간 범연히 쫓을 터이냐! 불과 몇 십 리 못 가서 잡히고야 말리라."
은근히 또 혼자 웃으며,
"세상에 우슨 놈은 옥이란 놈이렷다. 제 어미가 내 손에 죽 은 줄은 모르고 나를 위하여 저렇게 진력을 하니, 그러나 내 일을 다한 뒤에는 옥이놈을 마저 처치하여야지, 그대로 두었다는 막현어은이라고 제 어미 일이 탄로되는 지경이면 내게 좋지 못한 일이 생길 터이지."
이 모양으로 속담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도깨비 땅마련하 듯 하며 연희가 탄 인력거를 따라가는데, 옥이가 숨이 턱에 닿게 마주 오더니 먼저 연희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황가에 게 인사를 하고 눈짓을 하여 황가를 길 한편으로 데리고 가 서,
"에구, 서방님, 예서 잘 뵈왔읍니다. 지나오신 외딴 주막으 로 도로 가 계십시오."
"왜 그러느냐" 영록이놈이 거기 있다더냐" 지금 오며 보니 까 그 주막 문 앞에는 사람 들어간 자취가 없던걸."
"아니올시다. 소인이 한달음에 쫓아서 이 앞 장터 거리에서 영록이를 잡았는데, 게는 이목도 번다할 뿐 외라 가만히 보 니까 영록이 아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오니, 거기서 잘 못 거조를 하다는 죽도 밥도 다 틀리겠기에, 저 찾아온 눈 치를 보이지도 아니하고, 저 들어간 집만 단단히 보고 도로 오옵기는, 서방님께서 거기를 오셨다가는 그놈이 눈치를 채 고 무슨 잡두리를 할는지 알 수가 없삽기에, 서방님이 도로 가셔서 외딴 주막집에 가 깜쪽같이 계시면, 소인이 무슨 수 단을 그놈 하나를 못 당하겠읍니까" 그러하오니 두 말 말으 시고 어서 그리로 가 계십시오. 지체가 오래 되면 그놈이 또 어디로 가기가 쉽습니다."
"네 의사가 옳기는 옳다마는, 그놈이 네 말대로 오지를 아 니하면 그 아니 걱정이냐?"
"그 염려는 말으십시오. 소인이 세상없어도 그놈을 기어이 유인하여 데리고 오리다."
"오냐, 나는 너만 믿는다."
옥이가 분분히 오던 길로 도로 가니 항가가 연희에게,
"여보, 일기도 극한이고 눈도 일향 퍼부어 더 갈 수가 없으 니 저기 지나온 주막으로 도로 가서 어한을 좀 하고 가시 다."
연희가 가만히 본즉, 옥이가 와서 무슨 말을 수군대자 가 던 길을 돌쳐서 외딴 주막으로 가자는 것이 심히 괴상하여 가고 싶은 마음이 썩 없으나, 사세가 어찌하는 수가 없어 죽으나 사나 거동이나 보리라 하고 황가를 따라 그 주막으 로 갔더라.
처음에 옥이가, 황가는 연희를 데리고 오라 하고 저는 영 록의 뒤를 밟아 새향 장 근처까지 가서 급히 서로 만난 즉, 미련한 마음에 속고 쫓아다니던 일이 분하여 제 상전 기다 릴 여부없이 우악한 주먹으로 영록의 볼치를 누에 불이 번 쩍 나게 서너 번 쥐어박으며,
"요 발길 자식, 네가 사람을 이 모양으로 속이고 도망을 하 면 승천입지를 할 줄 알았더냐?"
약질의 영록이가 그 자리에 푹 엎드러지며,
"에구, 사람 살리오!"
그 주막바깥 주인은 어디를 가고 다만 안주인들 뿐이라, 감히 나아와 곡절을 물어 말리지 못하고 다만 안문틈으로 엿보고 있더라. 옥이가 분김에 사정없이 때리다가 가만히 생각한즉, 살살 꾀어 붙잡고 있었더면 제 상전 오도록 넉넉 히 기다릴 것을 섣불리 때리기 시작을 하였은즉, 영록이가 저 하자는대로 그곳에 엎드려 있을 리가 만무한지라, (에라, 이왕 때리기 시작한 김이니 아주 다리 하나를 뚝 분 질러 놓아 움치도 못하게 만들어 놓겠다. 감히 나아와 때리 다가 그까짓 놈 죽는대도 관계 없지. 상전 부모라니 우리 댁 서방님 원수를 갚아드리는 것이 재하자 도리에 당연한즉 징역 몇 해 좀 할 작정하지.) 하고 영록의 머리를 끄들어잡고 발길로 허리를 퍽퍽 걷어 찬다. 손에 잡히는대로 목침을 들고 아랫도리를 함부로 때 리며,
"이 소견없는 어린 놈아, 우리 댁 서방님 실내를 함부로 빼 어가지고 도망을 하였어" 내 손에 너 하늘 높은 구경을 하 여보아라."
그 방문이 벌컥 열리며 난데없는 노파 하나이 뛰어들어와 옥이의 머리를 그들어 잡아 젖히고 뺨을 철석 쥐어 붙이며,
"이놈아, 이게 무슨 미련한 짓이야" 애매한 양반 작각 때리 고 나 좀 자세 보아라."
그 방문이 벌컥 열리며 난데없는 노파 하나이 뛰어들어와 옥이의 머리를 끄들어 잡아 젖히고 뺨을 철석 쥐어붙이며,
"이놈아, 이게 무슨 미련한 짓이야" 애매한 양반 작작 때리 고 나 좀 자세 보아라."
옥이가 깜짝 놀라 휙 돌아보더니, 그 노파 앞에 푹 엎드리 며,
"에구, 어머니, 여기를 어찌해 와계셔요?"
노파가 그 대답은 하지도 아니하고 영록을 잡아 일으키며,
"여보, 누구신지 정신 차려 일어나 앉으시오. 내가 없었더 면 큰일날 뻔하였읍니다."
다시 옥이를 꾸짖는 말이라.
"이놈아, 소위 서방님이 누구냐" 상전만 장히 중한 줄로 알 고 제 어미 죽인 원수인 줄은 모르는구나?"
옥이가 제 어미의 말이 이상하여,
"어머니, 그게 웬 말씀이오니까?"
노파가 한숨을 길게 쉬며,
"내가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너를 만나 내 이야기를 하고 원수를 갚을꼬 원하였더니, 하나님이 지시하셔서 오늘 여기 서 너를 만났구나!"
"어머니, 원수가 어디 있읍니까?"
"내 원수 있는 데는 모르고 소위 내 상전 있는 데 아느냐"
네 상전이 즉 내 원수란다."
"어머니께서 망령이 나셨읍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 니까?"
노파가 화를 버럭 내면서,
"이 자식, 망령" 내가 망령이야" 원수를 모르고 상전 상전 하고 따라 다니는 네가 얼빠진 놈이지. 내가 이야기를 차례 로 할 것이니 자세 듣고 정신을 좀 차려라. 소위 네 상전 황가가 너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간 뒤에, 나 혼자 빈 집을 정성껏 지키고 내려들 오기만 기다리는데, 병들어 입원하였 던 서주사나리가 병이 쾌차하여 오시더니, 분주불가히 떠나 가시는 것을 보고 웬 영문인지 모르는데, 그 이튿날 황가가 내려오자 뒤미처 김의관이라고 하는 양반이 오시더구나."
"그래서요?"
"나는 영문도 모르고 있는데, 황가가 김의관을 모르는 결에 참혹히 죽여 시체를 부엌 뒤에다 파묻더니 그 밤중에 나더 러 같이 가자 하기에."
"그래서요?"
이때에 영록이는 새 정신이 번쩍 나서 매맞아 아픈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바로 그 집에 없었으면이어니와 기위 그 집에 있는 터에, 주인이 살인을 저질러 놓았으니 어림없이 있다는 애궂은 벼 락을 맞을 터이기에 따라 나섰더니, 바닷가로 끌고 가서 부 지 불각중에 발길로 나를 차서 바다에다 들이뜨리니,"
"무엇이야요?"
"나를 황가가 발길로 차서 바다 가운데에다 집에 넣었단 말이다."
"에구, 저런, 무도한 양반 보게."
"이 자식, 양반" 어미 죽인 놈에게 양반?"
"그런데 어떻게 살아나셨읍니까?"
"장정 헤엄 잘 치는 사람이라도 솜 의복을 퉁퉁히 입고 몇 십 길이 되는지 모르는 바다에 가 빠졌으면 곰짝없이 죽을 터인데, 더구나 근력없는 내가 무슨 수로 살아나느냐" 그놈 에게 채어 바다로 들어갈 때에만 정신을 겨우 차렸고, 그 뒷일은 도무지 몰랐는데, 이 댁주인 양반이 내게 당해서는 은덕이 태산보다 높고 하해보다 깊으시다. 주인 양반께서 배로 장사를 하시는데 부산서 새벽에 배를 떠나 가시다가, 물속에서 내가 쑥 들어갔다 올라 솟았다 하는 것을 보시고 급히 쫓아와 건져 배에다 싣고 지성으로 치료하여 정신이 들은 연후에, 어디 사는 사람인데 무슨 일로 물에 가 바졌 느냐 물으시기에, 바로 말씀을 하는 것이 이로울지 해로울 지 몰라서 잠시 권도로 속여 대답하기를, 사면팔방 의지없 는 사람으로 세상에 살기가 하도 귀치않아서 죽어 모르자고 바다에 빠졌노라 하였더니, 주인양반께서 무한 가이없이 여 기시며, 내 집이 삼화 땅이니 같이 가서 얼마 동안이고 같 이 지냄이 어떠하냐고 하시고 누누히 말씀하시기로 가만히 생각한즉, 남의 신세는 점점 더 지나 아직 생명을 부지하였 다가 하일 하시든지 너를 만나는 날 이런 말을 이르고 원수 를 시원히 갚아보자고 못이기는 체 따라가서 이렇게 있더니 라."
옥이가 고개를 숙이고 우두커니 듣다가,
"저런 몹쓸 놈도 천하게 있읍니까" 저는 그런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읍니다. 어머니, 걱정 말으십시오. 어머니 원수 를 시원히 갚아드릴 터이니."
벌떡 일어나 영록이 앞으로 가 손목을 덤벅 잡고,
"서방님, 제가 서방님께 죄를 범하였읍니다. 그러나 널리 통촉하실 것은 황가가 제 어미를 죽이련 것은 금시 초문이 옵고, 삼사 년간을 주객지분의를 정하고 지내던 터에 제 일 을 어디까지 힘써 보아주지 않을 수가 없어, 일자 도망 이 후로 사면 팔방 찾아다니다가, 기양 정거장에서 서방님 차 타는 것을 보고 붙들기는, 아씨를 찾아 황가를 주자는 마음 이러니, 며칠을 보아도 아씨는 싹도 없고 서방님 혼자 뿐이 시기로 심중에 알 수 없는 일도 있다 하였더니, 서방님께서 저 모르게 피신하신 것을 보고 의심이 부썩 들기를, 서방님 이 아씨를 어느 곳에 감추어 두고 그곳에서 제게 붙잡혀 진 퇴유곡이 되어 계시다가, 몰래 몸을 빼쳐 가셨거니 하고, 진 남포로 내려가는 차를 타시려던 일을 추측하여 즉시 차를 타고 내려와서, 이리저리 듣보다가 의외에도 아씨를 만나뵈 왔는데, 그러자 황가가 분주히 와서 아씨더러, 몸이 아픈데 무엇하러 나왔느냐, 어서 들어가자 하며 제가 반가이 인사 를 하는데, 못 본 체 못 들은 체하기에, 아마 저 양반이 저 아씨를 새로 찾아 병 치료하기에 골몰하여 미처 알지를 못 하였나 보다 하고 짓궂이 앞으로 가까이가서 다시 인사를 한즉, 그제야 알은 체하고 제 얼굴을 홀금홀금 보는 것이 이상은 하나, 그놈이 제 어미를 죽이련 줄이야 뜻이나 하였 읍니까" 제가 상하간 되어 지낸다면서 그놈 저놈 하는 것을 서방님께서 들으시면 괴이한 것으로 여기실 터이오나, 저도 부산항 상없지 않은 사람의 자식으로 가세가 빈한하여 황가 의 돈백이나 빚을 쓰고 진서 못 갚았더니, 황가가 변상 가 변을 하여 쪽박 세간이나마 모두 집행을 하여가고, 유위부 족하여 모자 제 집에 와 고공살이를 하여 매삭 몇 원 월급 줄 것으로 나머지 돈을 에꾸어가라 하오니, 그때 사세를 당 하와 부정기가지 다 빼앗기고 제 갈이를 할 수 없삽기로 부 득이, 에그 참, 늦게 가서 아니된 일이 있읍니다. 그 다음이 야기는 차차 여쭐 것이니 서방님 여기 잠깐만 계셔 기다리 십시오."
"무슨 일이 그렇게 급한지는 모르되 하던 이야기나 마저 들읍시다."
"그런 지나간 이야기는 이따 들으셔도 관계치 않습니다. 지 금 급히 가볼 일은 저놈이 아씨를 모시고저를 쫓아올 터인 데 여기를 와놓으면 그놈이 이 항구에서 취리한 탓으로 사 면에 친한 사람이 많은데, 이 목번다한 대촌에 아는 자가 없으라는데도 없삽고, 제일 급한 것은 아씨께서 태중인가보 던대 독약을 지어다가 안태할 약이라고 속여 권하였은즉, 만일 무사하면 좋으려니와 약독이 발작하는 동시면 그 약 짓던 의사에 가 물어 해독을 얼핏 시켜드려야 할 터이니 두 말씀 말고 계시면 서방님 원수도 갚고, 제 원수도 갚을 도 리가 있읍니다." 하고 급급히 일어서 나가려 하니 노파가 다 시 달려들어 붙잡으며,
"이 자식아, 가기는 어디를 가" 또 가서 그놈과 부동을 하 여 간신히 천우 신조해 살아난 어미를 기어이 죽이고 애매 한 양반을 해치려고" 이놈, 못 간다. 그놈이 올 터이라니 여 기 있다가 나와 같이 그놈의 살점을 점점이 뜯어먹자."
"어머니, 진정하십시오. 제가 아무리 불초하오나 어머님 살 해한 놈과 다시 동심을 하오리까?"
영록이가 노파를 재삼 만류하여 옥이를 보내고 노파와 둘 이 소경력 이야기를 하며 옥이의 회보를 기다린다.
"에그, 아까 자식놈이 하던 말과 같이 집행을 당하고 황가 의 집에 들어가 소매 평생에 못해보던 드난살이를 장근 사 년 동안이나 하였읍니다그려. 그런데 서울 사시는 서주사라 는 양반이 무슨 송사 일관으로 내려오셔서, 황가와 이왕 서 울서 이웃해 살던 정리로 황가 집에다 주인을 정하고 계셨 지요. 그 양반이 참 점잖으셔요. 자연 오래 한집안에 계시니 까 이 늙은이와도 매우 정숙해지셔서 가끔 의복도 하여주시 고 신발도 사주시더니, 졸지에 그 양반이 병환이 들어 말씀 을 잘 못하시고 대단히 위급하니까, 황가가 즉시 그곳 자혜 병원으로 입원을 시키고 며칠 후에 자식놈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더니 도무지 소식이 없는데, 그러자 서주사나리가 병 환이 좀 나으셔서 오시더니 황가가 어디 가고 없는 것을 보 고, 무슨 의심이나 나시는지 이 늙은이 더러, 주인 어디를 언제 가서 이때까지 아니 왔느냐 물으시기에 그 사실대로 고한즉, 재삼 의아하여 주저주저하시더니, 한구석에 있는 웬 편지 휴지 하나를 집어 두세번 보시고 깜짝놀라시며 이내 검다 쓰다 말씀이 없이 급히 서울로 올라가시자, 그 이튿날 황가가 들어오자, 얼마 아니 있어 웬 양반 한 분이 들어오 시는 것을 황가가 마주 나아가며 잘 드는 칼로 난자를 하여 찔러죽이고."
이때 영록이는 혼불 부체하여 듣는지 마는지 아무 대답도 못하고 흙덩이처럼 앉았는데, 노파는 일향 신이야 넋이야 이야기를 한다.
"그 시체를 부엌 뒤에다 끌어다가 묻더니 이 늙은이더러 여기 있다는 큰일날 터이니 같이 가자 하기에 어찌할 수 없 어 그 어둔 밤에 따라갔더니, 인가 없는 해변으로 가서는 별안간에 발길로 덜미를 차서, 만경창파에 가 빠져 수궁 귀 신이 될 뻔하였읍니다. 서방님은 누구신데, 황가가 장가들 색시를 데리고 도망하셨더랬읍니까?"
영록이 두눈에 눈물이 비오듯 하며,
"황가놈이 살해한 양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오."
"에그머니! 저런 일 보아."
"그 신부는 황가놈의 집에 계시던 서주사의 딸인데, 나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을 그놈이 중간에 나서서 빼앗어 제 계 집을 삼으려 하니까 당장 어찌하는 수가 없어 신부와 같이 도망을 하였다가, 급기 집에를 들어 가서 화변 당하신 일을 알고, 내외가 황가놈을 잡아 원수를 갚자고 나섰어요."
"천하에 무도한 놈, 그 놈이 무죄한 양반을 그 모양으로 살 해하고 무사하기를 바라겠읍니까" 자식놈이 제 어미 죽이려 던 원수를 몰랐으니까 그놈을 위하여 서방님 해하려 하였 지, 이제 알고서야 그 놈을 위할 리가 있겠읍니까" 자식놈이 무식은 해도 마음이 곧아서 남의 일이라고 분한 것을 보면 기어이 설치를 하여주고 마는 성미올시다."
"작히나 좋겠소. 자제의 힘을 얻어 원수를 갚았으면 그 은 혜를 풀을 맺어라도 갚겠소."
"황가가 서방님께만 원수인가요" 자식놈에게도 불공대천지 수인데, 저 일 제 하는 것을 무슨 결초보은이란 말씀이요"
그대 말씀은 말으시고 자식놈의 회보를 기다려 보십시다."
얼마 아니되어 옥이가 숨이 턱에 닿게 뛰어와서 영록을 보 고,
"황가더러, 서방님을 유인해 올 것이니 둘이 합력하여 잡자 고 하였더니, 황가는 이곳에서 모자 상봉하여 제 죄상을 다 알고 저 잡을 계획을 하는 줄은 모르고, 인력거에 태워 앞 세우고 오던 아씨를 도로 데리고 저 죽을 곳으로 처벅처벅 찾아갔읍니다. 어서 가십시다."
"그놈이 어디로 갔소" 갑시다."
"나도 가겠다."
"어머니께서 가셔도 관계치 않지마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 려면 길이 더디니까 분을 참고 가만히 계시면 어머니 가슴 에 시원한 회보를 하여드리오리다."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아니 가면 못 될 일이 있으니, 세 상 없어도 같이 가자. 내가 아무리 늙었어도 넉넉히 쫓아간 다."
옥이가 저의 노모를 기어이 아니 데리고 가려는 것은, 나 중에 무슨 침책이 노모 신상에 돌아갈까 염려함이요, 노파 가 기어이 가려 함은 황가놈을 만나 무엇이라는 꼴도 보고, 자기가 시원히 속죄를 한 번 하여보려는 일뿐이라, 일변으 로 자기 아들을 위하는 생각도 들어감이러라.
노파가 기어코 나서는 것을 억지로 막는 수가 없어, 셋이 동행을 하여 그 주막을 찾아오는데, 겨울해가 넘어가기 시 작을 하더니 걷잡을 새 없이 침침한 밤이 되었는데, 주막 근처에를 당도하여서는 옥이가 자기 노모는 그 집 굴뚝 뒤 로 돌아가 숨어 있으라 하고, 영록과 같이 바로 들어간다.
급기 방문을 열고 보니 서씨와 주인계집 뿐이요, 황가는 보 이지 아니한지라 이상스러워 한 발을 들여 놓으며, 이 구석 저 구석 둘러보니, 황가가 웃목 구석 벽에 가 착 붙어 서서 손짓을 홰홰 내두른다. 옥이가 속 마음으로, (압다, 그놈 의사스럽다. 저를 보면 김서방님이 도망할까봐
" 이놈아, 네가 도망할까봐 걱정을 한단다.) 하고 방으로 썩 들어서며,
"어서 이리로 들어오시오. 날도 춥고 밤도 되었는데 이 주 막에서 자고 갑시다."
영록이가 대답을 하고 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황가는, (옳다, 이놈이, 인제는 내 후환을 다 끊어버리겠다. 저놈이 죽을 데를 제 발로 어정어정 걸어들어오는구나.) 연희는 자기 남편이 들어오는 양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속으로, (에구머니! 큰일났구나! 어쩌자고 저놈을 따라 여기를 오시 나" 저놈은 장정 둘이요, 우리는 약질 내외뿐이니 속절없이 원수도 못 갚고 죽을 터이지.‥‥‥. 나야 백 죽어도 아깝지 않은 인생이지마는‥‥‥ 당당한 남자의 신분이 되셔서 부 친의 원수도 못 갚고 일개 여자로 하여‥‥‥.) 하고 은근히 눈짓을 연해 해도 영록은 번연히 보고도 못 본 체 썩 들어와 앉는지라 그 광경을 당할수록 연희 마음은 한 웅큼이 되어, (에구, 저 양반이 내 눈짓하는 것을 못 본 체할 제는, 나의 사정은 모르고 약조를 어긴 것이라든지, 황가와 같이 있는 것을 모두 괴악히 여기시는 것이로구나.) 옥이가 웃목을 향하여,
"서방님, 왜 거기 계십시오" 이리로 행차하셔 이분과 인사 나 하시지요."
영록은 황가를 보고 가장 두려워하는 듯이 음즉음즉하고, 황가는 가장 모르는 듯이 앞에 턱 앉으며 옥이를 보고,
"이애, 이 양반이 누구냐?"
다시 영록더러,
"노형 인사합시다."
영록이가 짐짓 떠는 목소리로
"예 예, 나 나 나는 기 기 김서방이요. 대 대대 댁은 누구 시오?"
"응, 나를 아마 알기 쉬울걸. 나는 다동 서주사 서랑되는 황공삼이라는 사람."
이때에 연희의 마음이 어느 지경이라 하리요"
(어구머니! 어떻게 하다가 저 몹쓸 놈에게 속아 붙들려 왔 을까" 인제는 부모의 원수도 못 갚고 속절없이 죽겠네. 주인 영감이나 있었더면 말려나 줄 것을 어디 가고 없고, 저 다 죽게 된 마누라 하나 뿐인즉 소용이 있어야지. 오냐, 사세를 보아 남편이 저놈들 손에 해를 당하는 날이면 내가 물불을 헤아릴 것 다시 무엇 있느냐! 이를 갈아붙이고 대어들어 저 놈을 깨물고 집어 뜯고 머리를 도끼 삼아 코빼기를 들이받 아서라도 저 죽고 나 죽고야 말리라.) 하고 닭의 알 봄 고양이 노리듯 하고 있는데, 황가는 여전 히 영록을 늦췄다 되었다, 으르고 달래고, 제 세상이나 만난 듯이 양양자득하는데, 영록은 속으로 우스운 것을 참고 묻 는 말대답을 다 해간다.
옥이는 황가 곁에 바싹 가까이 앉아 둘의 수작을 연해 참 례하며, 그는 그렇지 않고 그는 그렇다고 영록이를 으르기 도 하고 황가를 말리기도 하는데,
"여보아라, 대강이에 피도 아니 마른 자식이 계집이라는 것 이 다 무엇이며, 또는 네게는 상관도 없고 나와 정혼을 하 여 반장 성례하려는 신부를, 요 염치없는 놈아, 감언이설로 꾀어 데리고 도망을 하면 하늘을 올라갈 줄 알았더냐" 땅으 로 들어갈 줄 알았더냐" 그 신부와 죽으나 사나 손목을 맞 잡고 왜 못 있고 내게 와서 저렇게 있게 하였더냐" 하늘이 정하신 연분을, 요놈, 이 방정스런 놈, 네가 저희하려면 될 것이냐?"
"오늘 이 지경된 터에 내가 그대와 장황히 말할 것이 없거 니와, 신부로 말하면 본래 나와 주단 거래까지 할 뿐 아니 라 피차에 같이 마음이 합하여 남 듣기에 발포는 아니하였 으나, 은근히 백년 사생을 같이 하자는 맹세가 굳게 있었은 즉, 그대의 억지로 결혼코자하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볼 리 가 만무하니, 깊이 물을 바가 없거니와, 그대가 결혼을 못하 였으면 뒤통수 치고 물러가는 것이 가하겠고, 정 분하면 모 월 모일이라도 나를 찾아 시비를 하거나 신부를 뺏앗아가거 나 하는 것이 가하거늘, 아무 죄없으신 우리 아버지는 어찌 살해하였는고?"
황가의 얼굴빛이 변하면서,
"이놈, 사람 궂히겠구나! 네 아비를 누가 죽였단 말이냐"
너같이 법 모르는 놈의 아비를 열 죽여 관계치 않지. 요놈, 너는 이 세상에 얼마나 살아 있을 줄 아느냐?"
영록이가 껄걸 웃으며,
"내가 왜 못 살아" 하나님이 소소히 내려다보시는데 죄악 이 관영한 너는 죽지 않고 무죄한 내가 못 살아?"
황가가 기가 막혀 무지한 주먹을 들고 영록을 향하여 때리 려 하는데, 옥이가 얼른 붙잡으며,
"왜 이리 급하게 굴으시오" 좀 참으시오."
황가가 옥이를 뿌리치며,
"왜 붙잡느냐" 요놈을 길닿게 말할 것 없이 진작 죽여, 다 시 아강이질을 못하게 하여야 하겠다."
옥이가 붙잡은 황가의 팔목을 놓지 아니하고,
"가만히 계십시오. 김서방님을 죽여야 옳을까 아니 죽여야 옳을까 물어볼 데가 있읍니다."
"그 애는 별소리를 다하지. 죽이고 아니 죽이는 것이 내 장 중에 있는데 누구더러 물어보란 말이냐?"
"아니오, 물어볼 데가 있지요."
하더니 문을 열고 내다보며,
"거기 계십니까" 이리로 들어오십시오."
그 방 굴뚝머리에서 누가,
"오냐, 들어간다."
대답을 하고 충충 오는 소리를 듣고 황가는 정신이 얼떨하 여,
"이애, 불러들이는 이가 누구냐" 이애, 글쎄, 누가란말이 냐?"
연희는 더욱 가슴이 내려앉으며,
"에구, 저놈의 당이 또 하나 있네. 인제는 우리 내외가 속 절없이 다 죽겠구나."
급기 그 사람이 들어오며,
"서방님, 안녕합시오?"
하는 소리에 그 기승하던 황가가 졸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이 외꽃 빛이 된다. 들어오는 사람은 즉 옥의 모라. 황 가 옆에 턱 앉으며,
"왜 죽었단 사람이 살아왔으니까 이상하지?"
황가가 모기 소리만치 가는 소리로,
"내가 주을 혼이 들어 그리 했으니 용서하게."
노파가 황가의 얼굴에 침을 탁 뱉으며,
"용서하게" 누구더러 용서하게" 아무리 심사가 불량하기로 제일 보아주는 이 늙은이를 무슨 곡절로 해변으로 유인해다 가 발길로 차 들이뜨려" 너같은 의리 부동한 악한 무리는 그대로 두어서 아니되겠다."
하고 밤이나 낮이나 원수를 갚는다고 품고 다니던 첩리한 칼 하나를 내어 황가의 가슴을 콱 찌르며,
"이놈, 나는 네게 죽어 보았으니, 너는 내게 좀 죽어보아 라."
황가가 사세 위급하니까 들어오는 칼을 손으로 받고 벌떡 일어나 도망을 하려는데, 옥이가 뒤에 있다가 황가의 다리 를 잡아 뒤로 나꾸치니, 황가가 덜컥 나아가 쓰러지며 곁묻 어 일어나려는 것을 영록이가 노파의 칼을 빼앗아 황가의 배를 가르려 하니, 노파가 손에서 쥔 칼을 주지 않고 소리 를 질러 말하거를,
"이 늙은이가 김서방님 내외분께 청할 말씀이 있읍니다. 두 분께서 부능ㄹ 참으시고 황가놈의 목숨을 이늙은이 손으로 끊게 하여주시면 그런 덕택이 없을 줄로 아오니 그쯤 통촉 하여 주옵시고, 옥아, 너도 황가를 어미 손으로 죽여 어미 가슴이 시원하게 하여라."
하고 다시 대들어 황가의 가슴을 턱턱 찌르니, 황가가 그 자리에 푹 엎드러져 선지미를 쏟으며 다시 말 한 마디 발명 도 못하더라.
연희는 그 남편을 위하여 무한 심려하다가, 노파의 그 광 경을 보고 비로소 마음을 놓았는데, 그 집주인 계집이 그 야단을 보고 어찌 겁이 나던지 뒤 울구멍으로 빠져 한달음 에 항구로 내려와 경찰서 대문을 두드리고 급한 상황을 고 발하였더라.
해분서에 재근한 권경부는 연희 진맥하던 권주부의 아우 라. 그 형제간 우애가 자별하므로 틈만 있으면 그 형님집에 가서, 피차에 당일 소경력을 담화하는 고로 일찍이 황가의 청함을 인하여 연희 맥보던 이야기를 하며 껄걸 웃고,
"이애, 내가 의학 공부 사십 년에 변 괴상한 일을 다 보았 다."
"무엇을 보아 계시오니까?"
"어제 어떤 소년 하나이 와서 제 아우의 병이 위중하니 잠 시 가서 보아달라고 하도 성화를 하기에 인정에 딱하여 아 니 가보았더냐" 급기 병자라는 걸 보니까 분명 여자가 남복 한 것 같은데 맥을 본즉 갈데없는 태맥이기로 아무 병이 없 고 여자 같으면 정녕 태맥이라고 말을 하였더니, 소위 그 형 된다는 자가 펄쩍 뛰며, 남자가 태맥이 다 무엇이요, 필 경 무슨 적인듯하니 적을 없앨 약을 지어달라 하기에 나는 도저히 약을 쓸 수 없다고 일어서 나오는데 그자가 쫓아나 오더니 제게 어떻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다년 괴를 배어 고 생하니 그것이나 깨뜨릴 약을 달라 하기에, 그리하라 대답 하고 와서 가만히 생각한즉, 그자가 웬 계집을 변복을 시켜 데리고 다니며 자식 밴 것을 떨어뜨리려고 애를 쓰노" 내가 몰랐으면이어니와 번연히 알고서야 적악할 필요가 없다, 하 고 보태할 약을 지어준 일이 있다."
권경부가 깜짝 놀라며,
"형님, 그 사람이 어디쯤 있겠읍니까" 약 가져간 지가 벌써 오랬나요?"
"왜 그리하니" 네가 그 사람을 짐작하겠니" 약을 오늘 아침 나절 가져갔는걸."
"형님, 왜 서울 아주머니 못 보셨어요" 아주머니 외손자가 저의 이웃 있던 집 신부를 데리고 도망을 하였은즉 좀 수소 문하여 달라고 아니하였어요?"
"이애, 아니다. 그 아주머니 외손은 지금 나이불과 열여섯 밖에 못되었을 터인데 이 사람은 노성한 것이 팔모로 뜯어 보아도 이십오륙 세 이상은 넉넉히 되었겠더라. 저희들은 곧 도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아저씨께서 부산서 피살하셨다는 소문이 있더라. 너는 아마 들었겠지."
권경부가 깜짝놀라며,
"옳지, 그 시체가 그 아저씨올시다그려. 경찰서로 밀통 오 기를 아무 날 성이 김가라는 사람이 그 항구에 사는 황공삼 의 집에서 참살을 당하였는데, 황가가 어디를 갔다가 그 전 날 제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시체만 부엌 뒤에다 파묻고 제 집에 있던 노파까지 데리고 어디로 도망했은즉 도저히 수색하라 하였기로 내인거객을 엄밀 조사하나 도무지 알 수 가 없읍니다."
"허참, 그놈의 행동이 아무래도 수상하던걸. 그런 줄 알았 더면 그놈위 하인 약 가질러 왔을 제 뒤로 슬며시 네게다 통기를 할걸 그리했구나. 내가 약을 주어 보내고도 종시 의 심이 나서 그 자 있던 주인으로 알아본즉, 잠시 자체도 아 니하고 그 길로 떠나서 어디로 갔다더라."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그놈 있던 주인에게 자세 채근을 좀 하여보겠읍니다."
하고 자기 형님집을 나서서 그 객주를 찾아가는데 웬 인력 거 끌고 오는 자가 어떠한 계집 하나와 같이 오며 수작하는 말이라.
"어, 인력거를 끌다가 별사람을 다 태우고 다녀보았소."
"임자는 인력거를 태다 주고 삯전이나 후히 받아 가지고 오니까 관계치 않소마는, 나는 이게 무슨 액회란 말씀이요"
자다가 얻은 병으로 집에 술도 떨어지고 그 애 아버지도 없 고 일찍이 누워 자려는데, 별안간 우루루 몰려들어와 사람 을 그 모양으로 죽여놓았으니 살인한 저희는 으레 죄를 면 치 못하려니와, 애매한 두꺼비 돌에 치기로, 애꿎은 내가 잘 못하면 못 살게 되겠구려. 그러기에 내가 지금 경찰서로 미 리 고발을 하러 가오."
권경부가 그 소리를 듣고, 그 계집과 인력거군을 붙잡고 대강 힐문한 후, 해서로 데리고 들어가 인력거군의 말과 주 막 계집의 말을 참조하여 즉시 여력 있는 순사를 조발하여 살인범을 일체로 포박하여 오라고 하였더라. 이때 거이 죽 게 되어 실낱 같은 목숨이 겨우 붙어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 고 엎드려 있는 황가를 들여다보고 세 사람이 돌아앉아 차 례로 수죄를 하는데, 밖으로 군도 소리가 데걱데걱 나며 순 사 사오 명이 쓱쓱 들어와서,
"웬 사람들인데 여기서 인명을 임의로 살해하였노?"
"인명 살해한 죄인은 나오니 잡아가십시오."
"아니올시다. 저놈에게 칼질한 죄인은 저올시다. 저를 잡아 가십시오."
노파가 손짓을 홰홰 내두르며,
"그 말이 다 딴소리올시다. 저놈 죽인 죄인은 결코 이 늙은 인데, 저놈이 아직 죽지를 아니하였으니 물어보셔도 아시리 다."
황가가 칼을 여러 군데 맞고 쓰러졌다가,
"에구, 순사 나리, 저 노파의 말이 옳습니다."
한 마디를 겨우 하고 인하여 죽으니, 순사가 일변 황가를 떠메어 앞세우고 영록 내외와 옥이 모자를 모조리 잡아 경 찰서로 데려가려는데, 노파가 소리를 버럭 질러,
"여보, 사람 죽인 죄인은 이 늙은이어늘 다른 사람은 무슨 일로 포박을 하여가시오" 살인자 사라니, 사람 죽인 나 하나 죽었으면 고만이 아니오?"
하고 황가 죽인 칼로 자기 목을 찌르니, 순사와 영록 내외 와 옥이가 급히 달려들어 칼을 빼앗는데, 이미 중요한 곳을 상하여 생명이 끊어졌더라.
이때 경찰서에서 영록 내외와 옥이를 잡아들여, 서장이 권 경부 시켜 심문을 하는데, 황가의 죄상이 일일이 탄로되는 지라 즉시 그 사유로 상부에 보고를 하고 세 사람을 백방하 였더라.
이때에 권주부는 경찰서 밖에 와서 등대를 하고 있다가 영 록 내외와 옥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 영록과 척분되는 말을 한 후, 일변 서울로 사연을 들어 전보를 놓는다, 일변 약을 써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태에 유익하도록 하는데, 영록이가 권주부에게 간청하여 돈백 원을 얻어 옥이 모의 시체를 염습하고 관곽을 갖추어 향양지지에 안장한 후, 인 해 옥이와 의형제를 맺자 함께 서울로 치행을 하여 올라왔 더라. 배오개 네거리에서 동소문 편으로 통한 큰 길은 통안 병문이라. 그 길로 올라가는 전차에 사람이 어떻게 많이 오 르는지 정거수가 미처 차표 값을 다 받지 못할 지경인데, 사람이 차에만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이 아니라 거리 가는 남 녀노소가 넓은 길에 빽빽하도록 찼으니, 이는 그 길이 특별 히 번창하여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날이 일요일인 고로 일반 관민들이 골몰 무가히 지내다가 하루 한가한 겨를을 얻어 창덕궁 안 동물원"박물원"식물원을 구경하려고 가는 사람들이라.
이왕 정시나절일 제 뵈일 때 팔도 선비가 장중에 들어가느 라고 집춘문이나 월근문에 부문하는 일체로 그 많은 구경군 이 홍화문 앞에 와서 낱낱이 표 한 장씩을 사서 들고 문안 으로 들어가더니 넓으나 넓은 곳에 각기 마음대로 이리로 떼를 지어 간다. 그 중에 어떠한 처녀 하나이 나이는 십일 세가 겨우 됨직 하고 이목구비가 떡으로 빚고 붓으로 그린 듯한데, 삼단 같은 머리를 발뒤꿈치까지 치렁치렁하게 땋아 느리었는데, 고운 모시 진솔 치마를 과히 상스럽지 않게 남 의 눈에 거치지 않을만치 머리에다 쓰고 근 오십된 노파의 뒤를 따라가며 나직한 음성으로,
"에그 할머니, 사람도 퍽으나 많습니다."
"글세, 난 이런 줄은 몰랐구나."
"저 많은 사람의 틈을 부비고 구경하려다가는 고생만 하고 구경은 못할 터이니 그만두고 도로 나갑시다."
"이애, 이왕 들어온 것이 절통하니 저기 저 소나무 밑 한편 구석에 가만히 앉았다 사람이 좀 빠져나가거든 구경하고 나 가자."
"그러다가 너무 늦으면 아비에게 사설이나 듣게요?"
"오늘 구경 온 것을 네 아비가 번연히 알고 내가 데리고 왔는데 무슨 사설을 할라구 그러느냐" 아이들이 어른을 무 서워하기도 하여야 사람이 되느니라마는 오늘은 관계치 않 다."
노파는 앞을 서고 처녀는 뒤를 서서 바른손편 언덕 솔나무 밑 잔디밭에 앉아서 그 아래 길로 구경 들어가는 사람을 내 려다보며,
"할머니, 사람도 많이 들어옵니다. 나가기도 적지 않게 나 갔는데 사람은 여전히 많은데요."
처녀가 맞은편을 물끄러미 건너다보더니,
"할머니, 저기 영록이도 구경을 왔습니다."
"어디 말이냐, 응 저기."
"하나 둘 셋째 교의에 회색 두루마기 입은 어른 곁에 앉은 것이 영록이 아니오니까?"
노파가 손을 들어 넘어가는 햇빛을 가리고 자세히 건 너다 보다가,
"참말 영록이가 거기 앉았구나. 에그, 그것 잘도 생겼거니, 저의 부모 마음에 여북 귀히 여길까! 우리 연희도 그만치 못생긴 것은 아니지마는 야속한 삼신이 계집애로 점지하셔 서 일상 섭섭하지. 영록 같이 똑똑히 생긴 사위나 얻었으면 한이 없겠다마는."
연희가 그 말을 듣더니 두 뺨이 빨개지며 다시는 아무말도 아니하더라. 영록은 남부 아래 다방골에 사는 김의관의 아 들인데, 김의관이 늦게야 영록을 낳아 금은보패보다 더 귀 히 여기는데, 가세 요부하므로 의복 음식을 제 마음에 부족 한 것이 없도록 하여주는데, 영록 나이 팔구 세 때부터 철 난 아이 모양으로 글 배우기를 자원하니, 김의관은 제 말이 기특하여 천자 읽히기를 시작하였는데, 이 아이 정신이 어 찌 좋은지 한 번 들으면 잊지를 아니하니, 비단 저의 아버 지되는 김의관만 좋아할 뿐 아니라 보는 사람마다 칭찬 않 는 이 없더라. 김의관이 신식 문견은 소대하여 언론 수작이 갑오 이전 완고 시대로 있어, 영록을 남의 집 아이들 일반 으로 학교에를 보내어 체육"지육"덕육을 시킬 줄은 모르고 시골 생원님을 데려다가 사랑에다 두고 동몽선습"통감 등속 을 가르치는데, 아들 자랑하는 마음으로 봄가을 일기가 좋 은 때이면 한두 차례 데리고 구경을 다니는 터이라. 촌 학 구가 구식으로 가르치는 글방에 공일이 어찌 있으리요마는 동리 사람들이,
"오늘이 공일이지" 쉬는 날이니 구경이나 갈까!"
하고 나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물려가는 것을 보고 영록 이가 저의 아버지에게 동물원 구경가기를 조르니, 김의관은 제 말에 못이겨 영록을 데리고 동물원으로 들어가 각종 동 물을 차례로 구경시키고, 장차 식물원 구경을 갈 터인데, 어 린 것이 오래 서서 돌아다녀 다리가 아파할까 하여 연못가 교의에 한가히 앉았다가,
"영록아, 그만치 구경하였으니 해도 늦어가고 다리도 아픈 데 고만 집으로 돌아가자."
"식물원 구경은 아니하고요" 거기는 각색 화초가 모두 만 발하였는데 나는 다리가 아니 아파요."
김의관이 껄껄 웃으며,
"에그, 그 자식 구경도 좋아한다. 그리해라."
하고 벌떡 일어나 식물원을 향하고 영록의 손목을 이끌고 올라가는데, 저의 할머니 말에 부끄럼을 못이겨 두뺨이 빨 개지던 연희는 정신없이 식물원으로 올라가는 길만 뚫어지 게 바라본다.
"할머니, 고만 구경을 가십시다. 인제는 사람이 많이 나가 고 과히 분잡치를 아니합니다."
"오냐. 그리해라."
2
편집노파는 그 구경을 몇 번이나 하였던지 이력이 뻔하여, 바 로 동물원으로 먼저 가 박물원으로, 식물원을 마지막으로 볼 작정인데, 연희는 무슨 사상이 있던지 식물원 길로 쭈루 루 앞서 간다. 노파가 가다가 딱 물러서며,
"이애 연희야, 이리 오너라. 저리 가서 노루"사슴"호랑이"사 자 각색 짐승을 먼저 보고 나중에 그리가자."
"저기부터 가보아요."
노파는 어린 아이의 뜻을 꺽지 아니하려고,
"오냐, 아무려나 하여라. 예부터 보나 제부터 보다 일반이 지."
하며 조손이 식물원으로 나가는데, 김의관은 영록을 일찍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작정으로, 이것저것 대강 대강 구경 을 시키고 나오는데, 중로에서 연희 일행을 만나니, 김의관 은 부인의 오는 것을 보고 체통을 차려 멀찌기 외면을 하며 걸음을 걷고, 노파는 남자가 마주 오니까 내외를 하느라고 길 옆에 돌아섰는데, 연희와 영록은 어린아이들이라 무슨 페모를 알아 길을 서로 사양하리요" 오거니 가거니 서로 이 마를 맞닿을만치 마주뜨렸더라. 영록은 연희를 유심히 보고 연희는 영록을 여겨 보다가 영록이가 먼저,
"너도 구경을 왔구나, 왜 인제야 왔니" 나는 벌써 다 보고 나가는데."
"‥‥‥‥‥‥."
영록이가 노파의 앞으로 쭈르르 가서,
"연희 할머니, 구경오셨어요?"
"오, 너 왔니?"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벌써 와서 구경을 다 하고 지금 갑 니다."
"나는 인제야 왔다. 먼저 잘 나아가거라. 나는 천천히 가겠 다."
아이들 마음에 동리 어른을 만나면 반가와하는 것은 예증 이라, 영록이가 저의 아버지를 부리나케 쫒아가더니,
"아버지, 우리 집 앞에 있는 연희도 저의 할머니와 구경을 왔어요."
"응, 어서 가자."
"더 구경을 하다가 같이 나아가지요."
"에, 철 없는 놈, 어서 나아가자."
영록이가 다시는 조르지 못하고 저의 아버지를 따라가더 라.
연희는 영록이 가는 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는지라, 노 파가 손목을 잡아당기며,
"이애, 무엇을 그렇게 보고 섰느냐" 어서 구경하러 가자."
"사람이 다 나가니까 도리어 심심한데요."
그러면 계집아이가 사람 많은 데로 함부로 다닐까" 심심한 것이 다 무엇이냐?"
하여 꾸짖어 데리고 이리저리 차례차례 구경을 시키며 혼 자 마음으로, (그것의 거동이 우습고도 맹랑하지 아니한가‥‥ 아까 실 없은 말로 저와 영록과 혼인을 정하였으면 좋겠다고 하였더 니‥‥.) 하고서 손을 이끌어 집으로 돌아왔더라. 연희 아버지 서하 고서 손을 이끌어 집으로 돌아왔더라. 연희 아버지 서주사 는 가세가 넉넉지 못한 탓으로, 내지인 고목 변호사의 사무 원이 되어 낮이면 그 사무소에 가있다가 밤이면 집으로 돌 아오는데, 그날은 일요일이라 사무소에를 아니 가고 집에서 서류를 정리하느라니, 대문 소리가 찌꺽 나며,
"연희 왔니?"
서주사가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
"거 누구냐" 영록이로구나."
"연희, 그저 아니 왔어요?"
"아직 아니 왔다. 너도 구경갔더냐?"
"예, 갔다 왔어요."
"너의 아버지 댁에 계시냐?"
"저의 아바지께서 구경 가셨다 오셨어요."
"오, 오늘이 공일이니까 글을 아니 읽고 구경갔다왔구나."
"제가 어디 학교에를 다닙니까, 공일을 보게" 제 선생님께 서는 구학문 선생님이시니까 공일을 모르시오."
"공일 아니 보면 더 부지런히 공부하고 좋지마는, 연골 때 부터 학교에를 다녀야 하는걸."
"아바지께서 학교에를 가면 여러 아이들하고 장난이나 하 다가 다치기도 쉽고 공부가 잘 아니된다고 아니 보내셔요."
"허허, 너의 아버지께서는 착실한 완고시로구나. 오냐, 아 무 데서라도 공부만 잘하여라."
벼루 혈합을 열고 색지 쪽을 주며,
"이것 갖다가 서수 속에 넣어라."
영록이가 색지를 받아들고 여득 천금하여 벙글벙글 웃으며 나아간 뒤에 서주사가 혼자 하는 말이라.
"남은 무슨 복으로 저런 아들을 두었노! 우리 연희도 저만 치 못생긴 터는 아니지마는 아들이 못되고 딸이 되어서 귀 해 하다가도 한편으로 일상 섭섭한 마음이 있지."
하며 보던 수지를 마저 상고하는데 연희가 저의 할머니 처 마 자락에 매달려 들어오며,
"아바지, 나 구경하고 왔소."
서주사가 문을 열고 마루 아래까지 마주 내려가며,
"어머니, 인제야 오셔요."
"압다, 사람이 어찌 많은지 어린 것을 데리고 어디 구경하 겠더냐."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사람이 많을 터이지요. 그래, 구경을 못하시고 오셔요?"
"왜 구경을 못하기는, 한 편 길치워서 우두커니 앉았다가 사람이 거진 나아가기를 기다려서 구경을 하느라고 이렇게 늦었구나."
"이 앞집 영록이는 벌써 와서 연희를 찾아왔던 걸요."
"에그, 그놈 사내자식이라 맹랑도 하다. 그 넓은데를 다 돌 아다니다 와서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연희를 찾아왔구나. 다 시 보아도 그놈 잘도 생겼어. 우리 연희와 혼인을 하였으면 좋겠더라."
"그까짓 것을 어느새 혼인 정하는 것이 다 무엇입니까" 아 직 내버려두었다가 제 나이 차거든 정혼 출가를 시키지요.
그뿐 아니라 저년 하나 분인즉 데릴사위나 하여 의지를 하 여야 할 터인데, 설혹 영록이와 정혼을 하기로 김의관이 무 엇이 부족하여 외아들을 데릴사위로 보내겠습니까?"
"그도 그렇다마는, 네 댁이 지금 아주 단산지경은 아닌즉, 설마 또 낳지 못할라구 그렇게 생각을 두느냐?"
나는 아무리 단산 지경은 아니라도 신병이 심장치를 않으 니 또 잉태하기를 바랄 수 없고, 천우신조하여 수태를 한 대도 무슨복력에 아들 낳기가 쉽사오며, 아들을 낳기로 잘 기르라는 데 없고, 기른다니 어느 세월에 재미를 본단 말씀 이오니까?"
서주사의 어머니 성은 장씨이니, 자녀간 생산은 부지런히 하였으나 낳는 족족 낭패를 보고 늦게야 서주사를 낳아 세 살이 겨우 되자 저의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니, 과부로 각색 고초를 다 겪으며 그 아들을 길러내어 며느리도 보고 초사 를 시켜 늙기에 재미를 보는데, 그날 그아들의 낙심하는 말 을 듣고 제 마음을 위로겸 자기의 경력을 이야기한다.
"이애, 그리 낙심하지 말아라. 나도 너를 낳기 전에 무슨 마음이 아니 들었겠느냐" 남의 집에 들어와 후사를 끊게 한 생각하면 하루도 몇 번씩 죽고 싶더니, 급기 막내로 너를 낳아놓고 핏덩이를 들여다보면 생각할수록 저것을 언제나 길러 재미를 볼꼬 하였더니, 네가 벌써 사십이 불원하고 그 속에서 난 자식이 열한 살이나 되었으니 세월이 잠깐이더 라. 올내년간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낳아놓으면 네가 늙기에 넉넉히 그 재미를 볼 터이니 공연히 너무 낙심을 말 아라."
그때 마침 대문 밖에서 누가 주인을 찾는 소리가 나거늘, 서주사가 분분히 나아가 보니 이는 별사람이 아니오, 곧 앞 집 김의관이라. 사랑으로 맞아 들어가며,
"영감 오셨소?"
"오늘은 댁에서 편히 쉬시구려."
"예, 그리했습니다. 담배 붙이시오."
김의관이 궐련 한 개를 피워 물고 두어 모금 빨더니,
"오늘 동물원 구경을 하고 왔거니오."
"그리하셨소" 무슨 가관이 많이 있어요"나는 집에서 볼일이 좀 있어서 꼼짝도 못하였는걸요."
"압다. 구경할 만한 것이 여러 가지던걸요. 동물원에는 동 서양 기기괴괴한 짐승이 많고, 박물원에는 고금의 명화"명필 과 각종 고물이 평생 처음 보는 것도 많고, 식물원에는 형 형색색 좋은 화초도 많습디다. 그러나 구경군이 어찌 많은 지 좀체 볼 수가 없습디다."
"아마 사람이 그렇게 많았을 것이요. 볼 만한 것이 많기도 하고, 오늘이 쉬는 날이니까 각 관청 관리와 관공"사립 학도 가 모두 갔을 터이니까."
"아마 노형 댁에서도 구경을 가셨지요?"
"내 딸년이 지각없이 조르니까 우리 자친께서 데리고 가셨 다 오셨지요."
"아마 그러신가 봅디다. 노형 자당은 뵈옵지 않은 터이니까 자세는 몰랐으나, 노형 딸아기는 내집에를 이따금 온 것을 더러 보아 알뿐 아니라 우리 놈이를 보더니 저희끼리 반가 와서 지껄입디다. 내가 지금 노형심방 오기는 우슨 말씀 한 마디를 하자고 왔는데 노형이 팔시나 아니하실는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읍니다만 괄시할 리가 있습니까""
"다른 일이 아니라 내 자식도 노형이 조석으로 익히 보신 터이오. 영애도 내가 많이 본 터이니 피차 불필타구로 사돈 이 되면 어떠하겠소?"
"노형이 그 말씀을 먼저 하시니 말이지, 지금 우리 자친께 서 구경터에서 자제 아이를 보시고, 다시 보아도 잘생기었 더라고, 여식과 정혼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하시기에 내가 여쭌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여쭈었습니까?"
"신랑은 다시 더 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노형댁 가품을 동리 간에 일상 흠선하던 터이니까, 통혼을 하여 댁에서아 니 들으시면 모르거니와, 허 아직주단 거래가다 무엇이오니 까마는 노형 의향이 그러하시거든 아무려나 보내시지요. 허 락곧 하시면 그만치 좋은 일 다시 없으나, 내 신세를 생각 하고 자친께 여쭙기를 혼처는 더 말할 게 없이 극가하나 사 십지년에 쓸 자식은 없고 딸년 그것 뿐인 즉, 불가불 데릴 사위를 하여 앞에 데리고 있어야 할 터인데, 그 집에서 귀 중한 외아들을 무슨 대사로 데릴사위 줄 리도 없고, 무슨 염치로 달랄 수도 없으니까 그 아니 딱하오니가 하며 모자 가 무한 개탄을 하였는데, 지금 노형이 먼저 통혼을 하십니 다그려."
"노형 사정은 그러하시겠소마는, 그럴 것 없소. 내 집과 노 형 댁이 한마당에 있어 한집안과 일반인즉, 혼인 지낼 지경 이면 자식놈이 데릴사위 일반으로 노형 댁에 와 있다시피 할 터인즉 두말 마시고 아주 정혼을 합시다."
서주사가 가만히 생각한즉 신랑도 욕심이 나고 그 집형세 도 불빈할 뿐 아니라 가품이 매우 좋은 줄을 익히 아는 터 인즉 그런 혼처 내어놓기가 아까와서,
"노형이 미거한 여식을 어떻게 보셨는지 이처럼 친히 오셔 서 말씀을 하시니 어찌 감히 이론을 하오리까?"
"감사하오, 기위 면대를 하여 정혼한 터이니 아주 오늘 주 단을 보내오리다."
"그까짓 입에서 젖내나는 것들을."
서주사가 그 말을 마치고 김의관을 작별한 후 안으로 들어 가 자기 어머니와 부인께 정혼한 이야기를 하고, 주안을 분 별하여 내다가 김의관과 삼사 배 나눈 뒤에 김의관이 자기 집으로 돌아와 자기 부인 오씨와 말을 하고, 즉시 영독을 불러 사주단자를 대간에다 쓰라 하여 백지로 봉하고 싸리를 쪼개어 같이 한반을 끼워 위아래를 다홍실로 휘휘 감아서 서주사 집으로 보냈더라.
서주사가 김의관을 보내고 안으로 들어가 자기 어머니와 부인 임씨에게 연희 정혼한 이야기를 하니,
"오냐, 잘 정했다. 신랑도 다시 골라야 영록이 만한 자격이 없을 것이요, 그 집 벌절도 격장가에서 우리가 다 아는 터 이니 아주 잘되었다. 신랑은 다시 보아도 잘생겼던걸. 오늘 구경터에서 보아도 그 많은 아이들에 하나도 눈에 드는 아 이가 없고 영록이가 제일 잘생겼던걸."
임씨는 자기 시어머니 말 끝에,
"에그, 제일 시집이 가까워서 좋고, 만일 저것을 멀리 시집 을 보내놓고서야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살 수 있나?"
"우리도 영록이를 일상 탐을 냈지마는, 김의관 집에서도 우 리 연희를 대단히 탐을 내었던 것이야."
이 모양으로 좋아하며 아직 혼인을 지내지는 아니하였으나 두 집에서 서로 사까이 지내기는 한 형제집보다 조금도 못 지 아니하더라. 이왕에는 영록과 연희가 날마다 서로 찾아 다니며 소꿉질도 하고, 말농질도 하여 저희끼리 사이가 썩 가깝더니, 두 아이 나이 십세가 가까와음으로부터 영록은 글 읽느라고 한만히 다니지를 아니하고, 연희는 침선 배우 느라고 대문 밖에를 아니 나가므로 서로 자주 만나지를 못 하다가, 그날식물원으로 나가는 길에서 만나 a한 반가와 말 몇 마디를 하였는데, 급기 혼인을 정하여 놓으니, 영록은 사 내놈이라 일호도 부끄럼이 없어 전보다도 더 부지런히 서주 사의 집에를 건너와서 연희를 보려고 기웃기웃 하는데, 연 희는 계집아이라 혼인 정하기 전과 같이 않아 부끄럼을 못 이겨서, 영록의 음성만 나면 어느 구석에 가 쥐 숨듯 숨어 서 내다 보지도 아니하니, 장씨노파는 그것들 하는 양이 재 롱스러워서, "연희야, 숨기는 왜 툭하면 숨느냐" 네가 시집 을 가서도 네 신랑을 보고 저 모양으로 숨을 터이냐?"
"어디로 갔느냐" 할머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고만 내버려 두오. 제 신랑 재목이 왔으니까 부끄러워 그 러나 보오. 이애 영록아, 너는 부끄럽지 않으냐?"
영록이는 그 대답은 아니하고 벙글벙글 웃기만 한다.
장씨가 영록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사내자식이라 맹랑하거든! 부끄러워하기커녕 뱃심 좋게 웃 기만 하는걸."
하고 벅장을 열고 과실을 내어 먹이더라. 그 같이 재미스 럽게 지내는 광음이 어느덧 두 아이 나이 십삼 세씩 되었더 라. 김의관은 완고의 사상으로 아이를 성례를 시키자거니, 서주사는 조혼의 폐습을 들어 아직 급하지 않다거니 하여 날마다 상지 중이더니,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살 세상이라 고 남과 송사는 왜 그리 좋아하던지 고목 변호사에 송사 위 임하는 원피고가 날마다 답지하여 일반 사무원이 미처 눈을 뜰 겨를이 없는 중, 부산 땅에 큰 송사가 한 가지 있어 변 호사가 불가불 출장 변론을 하게 되었는데, 고목 변호사는 경성에서 재판하는 일이 여러 가지 관계가 되어 사무원 하 나를 데리고 출장시킬 터인데, 사무원 중 법률에 밝고 변론 잘 할 만한 사람은 서주사가 제일이라, 부득이 당일로 급히 발행하게 되어 가사를 분별할 여부 없이 총총히 떠나며 자 기 어머니께,
"어머니, 일이 급하여 장황히 말씀을 여쭙지 못하고 떠나가 오니, 저 집에서 혼인 말을 하거든 신부의 아비가 다녀오거 든 의논 조처하자고만 하십시오."
간신히 자기 어머니께 하직절 한 번을 한 후 연희의 머리 를 두어 번 쓰다듬고 휘적휘적 나아가 인력거를 타고 정거 장으로 뒤도 못 돌아보고 가더라. 서주사가 그 길 떠날 때 에는 가까우면 일 주일, 멀어야 이 주일이면 회환할 줄로 생각하였는데, 소송 등사라는 것은 의외 충절이 생기어 여 러 달 지체되기가 부지중 그 해 여름을 객지에서 보내게 되 었더라.
부산항은 내외 상인이 복잡하게 모여들고 동서양 물화가 번창히 왕래하는 곳이라 도처마다객주집에는 너무 조용치를 못한즉, 잠시라도 유숙할 수 없는 중 더구나 소송 등사는 좌석이 요란하고서는 변론할 일을 연구하기가 극난한지라 주인을 으슥한 곳으로 택하여 가 있는데 그 주인은 서주사 의 집 이웃에서 살다가 수년 전에 그곳으로 낙향한 황서방 이라.
황서방의 연기가 불과 십구 세인데 그 부여조가 모두 큰 실업가로 각 은행 취체역으로 있던 터이더니, 재물을 모으 기는 어려워도 패하기는 쉬운 것이라, 황서방이 부여조가 우연 득병하여 모두 세상을 버린 후, 요량없는 황서방은 과 거하는 조모와 어미를 업수이여기고, 밤낮으로 부랑자를 추 축하여 그 많던 재산을 다 털어없애고 부산 농장으로 낙향 을 하였는데, 웬만치 경제를 하였으면 그 농장만 해도 나무 럽지 아니하게 냈으련마는, 걷지도 못하고 날기로 제 집안 경제로 못하는 것이 장사한다고 사면 빚을 내어 도처 낭패 를 하고, 사세부득이 상밥장사를 하고 있는고로 서주사가 일부러 찾아가 주인을 정하였으니, 이는 동시낙양인으로 한 동리에서 살던 정리도 생각하고, 또는 그 집이 한편 길치에 있어 번화치 않은 것을 취함이러라.
"존장께서 여기를 어떻게 내려와 계십니까" 그 동안 기체 안녕하시오니까?"
"응, 나는 별고 없었네마는, 댁내 다 무고하신가?"
"예, 시생은 그 동안 각색 풍파를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시생의 집을 어찌 알으시고 이렇게 찾아오셨읍니까?"
"나도 댁이 여기인 줄은 막연히 몰랐더니 급기 이 곳에를 내려와서 조용한 주인을 정하려는데, 뉘게 들으니까 자네 댁이 여기인데 손을 더러 유숙시킨다하기에, 일변 반갑기도 하고 조용도 할 듯싶어 이렇게 찾아왔네. 어, 과연 반가운 걸."
"아무렴 그러시지. 이곳에 행차를 아니하셨으면 이어니와, 오시고야 다른 집에 가 계셔서야 섭섭지 아니하겠읍니까?"
"아무렴 그러하지. 그러나 그 동안 각색 풍파를 겪었다 하 니 듣기에 놀라운 일일세그려. 무슨 풍파를 겪었단 말인구?"
"말씀을 여쭙자면 기가 막힙니다. 지각없이 굴다가 부조지 업을 다 없애고, 기름 엎지 른후 깨줍기로 이곳으로 내려오 기는 벼 백이나 추수하는 것이 있어 그것이나 지니고 지내 읍자 함이러니, 세상 일이 어디 마음과 같기가 쉽습니까" 항 구에서 남들 장사하여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을 보고, 슬며 시 장사를 해볼 마음이 들어서 장사 시작을 하였다가, 이익 커녕 낭패만 번번이 보고, 또 그 동안 상처까지 하였답니 다."
"허허, 저런 변 보아. 그래, 속현이나 하셨나?"
"속현을 어서 하라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나 시생이 결심하 기를, 돈을 다시 모아 조수족을 할 만하기 전에는 장가를 아니 들리라 하옵고 지금 만 이년을 이렇게 혼자 있으며, 그렁저렁 객주도 한다 장사라고 하여 팔아 없앴던 전답을 약간 물렀읍니다."
"허, 자네 집심이 무던한걸. 그러면 자네 자당께 주궤를 하 시겠네그랴. 노래에 여북 어려우실까" 아무쪼록 어서 속현을 하게."
"존장께서는 무슨 일로 이곳에를 행차해 계시오니까?"
"허허, 나도 생활에 곤란하여 내지 사람고목이라는 변호사 의 사무를 보아주고 매 삭에 사오십 원씩 얻어다 먹고 지내 는데, 마침 무슨 사건이 있어 그 위임을 맡아가지고 이곳으 로 출장하였네."
"그 동안 아마 서랑을 보셨읍니까?"
"정혼은 하였지마는 아직 어린 것을 성례시키기가 무엇해 서 그대로 내버려 두었네."
"예, 그러하시지요. 조혼이라는 것이 아주 해로와 연한 풀 에 서리 맞는 일체야요. 시생도 열한살에 장가를 들었읍니 다마는,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데요. 그런데 혼인은 뉘 집과 정하셨읍니까" 따님을 이왕 보았으니 말이지, 참 잘 두셨는걸이요."
"압다, 자네도 친좁게 지내지. 우리 앞집에 사는 김의관장 의 아들 영록이와 정혼을 하였다네."
"예, 영록이와 정혼을 하셨어요! 그 집 가세도 불빈하고 신 랑도 똑똑한 걸이요. 매우 잘 정하셨읍니다."
"잘 정하였나?"
"잘 정하셨읍니다."
공삼이가 이와같이 수작을 하고 혼자 내심으로, (내가 그 처녀를 조석으로 보았으니 말이지, 인물이 썩 일 색인걸. 그것 분하게 되었다. 혼인을 정하였더면 좋을 것 을‥‥. 내가 늘 홀아비로 살 수는 없고 장가를 다시 들자 면 변변치 못한 신부는 눈에 차지를 아니할 터이요, 응, 공 연히 내가 패가한 이야기를 샅샅이 하였지, 그 생각은 미처 돌지를 아니하고 무심히 하였지‥‥‥. 그 역시 소용없는 말이다. 설혹 내가 더럭 큰 부자가 되었다 하기로, 벌써 정 혼을 하였다는데 거기 파혼하고 나에게 후취 줄 리가 있나
"‥‥‥그렇지마는 그 신부 놓치기는 과연 원통한데.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고") 이리 생각 저리 생각 무한 생각을 하다가, (에라, 고만두어라. 유지면 사경성이니라.) 그 다음부터는 공삼이가 서주사를 더 특별히 대접하여 거 처도 편토록, 음식도 맞도록 맞도록, 소청하는 일이면 입에 혀같이 시행하니 서주사 생각에, (사람이 미상불 외도도 좀 해야 쓰는 것이로구. 저 사람 한 참 난봉 부릴 적에 내가 동리서 목도한 바이지마는, 경박"부 량하여 어른"아이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할러니 지금 지내보니까 아주 지각이 나서 공근하고 겸손 한 것이 십상 좋은 자격이 되는걸. 어, 인제는 황씨 집이 다 시 홍왕하여지겠군. 재물 모으기 전에는 속현 아니한다는 결심이 역시 범상한 사람의 못할 일이야.) 여러 달 동안에 서주사가 공삼이 사랑하는 마음이 친자질 이나 다름이 없이 여기는데, 공삼은 속셈이 있어 출입하는 시간 외에는 꼭 서주사 앞에 있어 서주사의 페를 받아 글씨 배우기로 종사를 한다.
"여보게, 자네가 기위 저렇게 부지런히 공부를 할터이면 글 씨 잘 쓰는 사람의 체를 받아다가 익힐 것이지, 변변치 못 한 내 글씨는 배워 무엇하려나?"
"존장의 필법 만하면 넉넉히 행세하옵지, 명필은 취하여 무 엇합니까" 시생이 일찍이 철이 없어, 부모의 가르치는 것을 배반하고 부랑하기로 종사를 하옵다가, 서사 통정도 변변치 못하오니 지금 와서야 후회가 되어 존장을 친부에서 답지않 게 생각하옵고 필법을 배우는 바이올시다."
"허허, 도리어 부끄러운 일일세. 나 역시 공부를 잘못하여 글씨가 겨우군두목일세."
이때에 장씨는 그 아들을 여러 달 못 보아 궁금한 중, 천 행으로 우체법이 있어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 왕래를 하니, 몸 성히 있는 줄은 든든 믿고 있는 중, 주인 정하고 있는 황공삼의 후대함과 그 자격의 기특한 말을 한이없고 칭찬한 것을 보고 자기 며느리더러,
"이애, 며느라, 사람이라 하는 것은 열 번 다시되고 백 번 다시 되나 보다. 그 사람이 우리 이웃에 살때에는 지각이 아주 없어 밤낮으로 주색잡기에 침혹하여, 저의 조부모가 손톱"발톱이 자빠지도록 벌어놓은 재산을 다 탕패하고 시골 로 떠나가더니, 그 사람이 그렇게 무던한 사람이 될 줄이야 누가 뜻하였어!"
"어머님, 그 사람이 어른"아이를 몰라보고 아주 후레자식이 라고 연희 아비가 늘 타매를 하고 도무지 대면하기를 싫어 하더니, 편지에 칭찬한 것을 보니까 아주 딴 사람이 된 것 이올시다. 그 때도 난봉짓은 하였으나 덜걱덜걱한 것이 과 히 녹록지는 아니하였지요."
집안에 큰 재앙이 오려면 괴상한 조감이 생기는 법이라.
하루는 임씨가 연희의 머리를 빗기며 자기 남편의 오래 오 지 못하을 한탄하는 차에, 어떠한 마누라가 의복을 정결히 입고 아는 집 들어오듯 하더니, 마루 앞에 가턱 걸터앉으며 혼잣말로,
"주인 아씨가 계신가요?"
임씨는 아는 사람이 누가 왔나 하여 손에 들었던 빗을 연 희 머리에다 꽂고 분주히 문을 열고 내다보니, 생면부지 모 르는 마누라다.
"웬 마누라님이요?"
"예, 지나다가 잠시 들어왔습니다."
"어디 계신 마누라님이요?"
그 마누라가 그 대답은 하지도 아니하고 연희의 얼굴을 물 끄러미 보더니,
"에그, 그 작은 아씨 잘도 생기었다. 얼굴에 오복이 그득하 고나."
임씨가 웃으며,
"그 마누라야, 관상도 하나 보이."
"예, 대강 짐작이나 합지요."
"그러면 자세 좀 보아주오그려. 이 애가 내 막내 딸인데, 저희 우애나 있겠소?"
임씨가 이렇게 말하기는, 평일에 그 남편의 말을 들어 사 주니 관상이니 본다는 것이 모두 허탄한 것으로 여겨 실없 이 물어서 제가 무어라 대답하나 거동을 보자는 것이라. 그 마누라가 임씨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더니 깔깔 웃으며,
"점잖은 아씨도 거짓말씀을 하십니까?"
"왜" 거짓말은."
"그럼, 진정이셔요?"
"아무렴, 진정이지. 늙은 사람을 속일까요?"
마누라가 허리춤에서 노랑 수건을 집어내어, 두 눈을 이리 저리 씻고 연희도 보는 체 임씨도 자세 보는 체하더니 다시 또 한 차례를 웃는다.
"그 마누라가 사람을 보고 왜 자꾸만 웃기만 할까?"
"예, 아씨 말씀이 하도 우스워서 그럽니다."
"내 말이 우습다니?"
"아씨, 왜 이러십니까" 귀신은 속이셔도 늙은이는 못 속이 셔요. 바로 이 늙은이 눈이 멀었으면 모르거니와 번연히 보 이는 데가 있는 것을 속이셔요" 아씨께서 생산인즉 서너 번 하셨읍니다마는, 지금 앞에 거느리고 계시기는 따님 하나 뿐이실 터인데, 몇 형제이니 몇 남매이니 하시니 속이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임씨가 은근히 혀를 홰홰 내두르며,
"어찌해 그렇단 말인가?"
"관상 이치를 어찌 다 말씀하오리까마는, 아씨 얼굴이시든 지 저 아기 얼굴에 벌써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보여?"
"길닿게 여쭐 것 없이 아씨는 아들 없으실 팔자시고, 저 아 기는 독신일 팔자가 아주 뚜렷이 보입니다."
임씨가 그 말을 듣고 신기해서 혼자 생각하기를, (저 마누라가 한 번도 우리 집에 와본 적이 없는데 저와 같이 여합부절 알아내는 것을 본즉, 관상법이라는 것이 있 기는 분명한 것이로구. 어디, 우리 연희 후분이 어떻겠나 좀 물어보겠다. ) 하고 마누라를 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자세 묻는다.
"여보, 마누라, 귀신같이 알아맞히구려. 기왕 보아주는 터 이니 우리 딸 후분이 어떻겠나 좀 보아주시오. 그러나 음성 을 좀 나직나직히 하오, 우리 시어머님께서 밤이면 잠을 못 주무시고 낮에 겨우 잠이 들으셨소."
"에그, 아씨 효성도 스러우셔라. 지금 세상에 엊그제 시집 온 것들도 제 시어미를 모두 네뚜리로 여기는데, 아씨는 같 이 늙어가는 터이시건마는 조심을 이렇게 하십니다."
"아까는 내가 과연 실없는 말로 마누라님 대답을 좀 들어 보자고 속였더니 여합부절 알아내는 것을 보니까 참 신통하 오. 저것이 내게 당하여 남의 열 아들믿듯 하는 터이니 잘 좀 보아주오."
"그러면 그렇지, 백주에 늙은 사람을 속이시려고. 그럼, 제 가 무엇을 변변히 알겠읍니까마는 정성껏 아는대로 보아드 리지요."
마누라가 연희의 머리를 반듯이
"여보, 왜 그러오" 그 애 상을 보니까 좋지 못하오?"
아니올시다. 아기 얼굴이 한 곳도 나무랄 데가 없읍니다마 는 한갓 수가 좀 부족합니다."
임씨가 깜짝놀라며,
"수가 부족하다니, 그래서야 어떻게 하오?"
"남의 수양딸로 보내시거나 후취로 들여보내셨으면 도액이 되어 관계치 아니하겠습니다. 아기 본래 타고난 수는 팔십 에 퇴를 달 터인데 중간에 잠깐 액운이 있어 그러하니까 그 도액만 하면 아무 걱정 없을 터이니 염려 말으십시오."
임씨가 돈 이십 전을 내어 그 마누라를 주며,
"이것이 변변치 않으나 담배값에나 보태어 쓰시오."
"에그, 천만 의외올시다. 제가 어디 생애로 다닙니까" 에그, 아씨를 처음 뵈와도 일상 뵈옵던 양반처럼 반가우셔. 그러 나 제 말씀을 귀밖으로 대면한 적이 없더니, 오늘 그 마누라의 말을 들으니까 지 나간 일이 꼭 꼭 맞으니, 관상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닌 데‥‥. 그 마누라 말대로 남의 수양딸로 주자니 내가 허수 하여 못견딜 뿐 아니라 어머님께서 내어놓으실 리가 만무하 고, 남의 후취로 주자니 이미 혼인을 정하였는데 변통할 수 있나‥‥. 어좌어우간 이따 어머니께서 기침하시면 이런 말 씀을 여쭙고 의논을 하여보겠다) 거미기에 장씨노인이 잠을 다 자고 일어나서 닫은 미닫이 를 열고 내다보며,
"어, 내가 잠을 많이 잤구나. 해가 벌써 승석때나 되었구 나."
임씨가 분주히 안방으로 건너가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앉 으며,
"어머님, 무엇 좀 잡수셔요, 시장하실 걸요."
"먹기는 무엇을 먹어" 오래지 아니하여 저녁밥이 될 터인 데."
"그러나 저는 오늘 우스운 일을 보았습니다."
"무슨 우스운 일을 보았는데?"
"아까 어머님 주무실 때에 웬 늙은 마누라 하나이 들어오 더니, 연희란 년 머리 빗기는 것을 여겨보더니 관상을 보는 체하기에, 제가 실없이 연희를 가리키며, 이 애 남매가 우애 나 있게 지내겠느냐 물었더니, 에그, 그런 것은 처음 보았습 니다. 그 말을 듣더니 그 마누라가 웃으며 번연히 아기가 독신인 줄 아는데 왜 속이느냐고 말을 하며, 몇 살에는 아 들을 낳고, 몇 살에는 딸을 낳아 삼사 형제를 낳기는 했으 나, 어느 해에 잃고 어느 해에 잃어서, 외딸 둘 팔자가 얼굴 에 나타났다고 눈으로 본 듯이 말을 해요."
"그래, 또 다른 말도 하더냐?"
"하도 신통하기에 과연 그러하노라 바로 말을 하고, 연희의 전정을 물어보았더니 아주 아니 들으니만 못해요."
"왜 무슨 괴악한 소리를 하더냐?"
"별로 괴악하달 것은 없어도 그 마누라 말이, 연희의 상이 복록이 가득하고 타고난 수는 팔십에 퇴를 달겠으나, 중간 에 살격이 있어 그 살을 풀지를 아니하면 수에 대단히 방해 가 되겠은즉, 도액하기 위하여 연희를 남의 수양녀를 주어 얼마간 떠나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후취로 시집을 보내라 하여요."
"그까짓것들이 무엇을 안더더냐" 지나간 일은 여간 알아맞 히어도 오는 일은 별로 모르느니라."
"저도 그런 줄로 알기는 합니다마는 rm 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에 꺼림하여요."
"내 마음도 그렇기 하다마는, 그것을 잠시인들 앞에 떠나 남의 수양딸로 줄 수가 있느냐" 정해논 혼인을 파의하고 다 른 데 후취로 줄 수가 있느냐" 아무래도 사세 부득의 일을 근심하여 쓸 데가 무엇이냐!"
그날왔던 마누라는 제가 <마의상서>나 <희이전서>를 공부 하여 관상한 것도 아니오, 특별한 의사 한 가지로 도처마다 영험하다는 말을 듣고 다니며 전곡 간 적지 아니 벌어들여 태평 생활을 하는 혹세무민의 무리이니, 기의사는 별것이 아니라 아무리 생면부지 모르는 집이라도 들어가려면 먼저 그 근동 사람에게 그 집 내용을 일일이 채문하여 자세 듣고 서야 들어가 능청스럽게 지껄여, 지각없는 부녀들로 고혹하 게 함이러니, 그날 궐녀가 마침 다방골로 지나다가 서주사 의 집에를 들어가 속여볼 작정으로 이웃 행랑것들에게 제가 서주사를 친한 듯이 슬슬 말끝을 내어, 서주사가 무남독녀 를 두었는데 지금 집에 없고, 다만 여편네들만 있다는 말을 역력히 알고 들어가, 그 모양으로 수작을 하여 두 부인의 마음을 현란케 하여놓은 것이라. 때는 정히 가을이 점점 깊 어서 팔월 중순경이라. 일기내 시한 더위에 들볶이던 사람 들이 중병이나 나은 듯이 시원 상쾌하고 몸이 가뜬하여 마 음에 날아갈 듯싶어, 혹 친구를 작반하여 각처 유희장에 구 경도 가고, 혹사 집에서는 아무 흥이 없어 중문을 적히 닫 고 시어머니 며느리도 연희를 앞에 앉히고 탄식하는 말이 라.
"어머님, 오늘이 벌써 팔월 열나흗날이올시다. 그저 저년의 아비가 있었더면 송편이나 좀 하여 먹을걸. 명절이 와도 명 절이 온지 만지, 남들처럼 시원하게 문박으로 공원으로 구 경이나 좀 다녓으면 좋겠습니다."
"글쎄로다. 추석 명일이 내일인데 오려 송편도 못해 먹고 남들과 같이 산보도 못하고, 사는 재미라고는 반점도 없구 나."
연희가 그 말깃을 달아,
"에그, 참, 할머니, 송편 좀 먹었으면."
"에이, 지각없는 것 같으니. 그러지 않아도 할머니께서 근 심을 하시는데,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서주사의 집 안방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김의관집에서 들 은 것같이, 계집하인이 붉은 칠 목판에 노란 종이를 덮어 이고 들어오더니, 그 목판을 내려 마룻전에 다 놓으며 전갈 한 마디를 정이 뚝뚝 듣게 한다.
"마님 안녕합시오" 아씨 안녕합시오" 작은아씨 안녕합시오"
댁 마님께서요, 문안 아옵고자 합니다 하고, 이동안 거느리 시고 기운 안녕하십니까 하고, 그동안 또 부산 편지나 종종 보셨습니까 하고, 이것이 많지 못하고 맛이 없으나 섭섭하 기에 보내오니 잡수어 보십사 하고요."
장씨가 내다보며,
"그것은 무엇인데 저렇게 많이 보내셨니?"
"고사떡이야요. 어저께가 무오일이라고 고사를 지내셨답니 다."
"이애, 며느라, 저것 받아라."
임씨가 마루로 나아와 찬장 우이에 얹힌 빈 목판을 내려 행주질을 정히 하더니 그 떡을 옮기어담으며,
"웬 것을 이리 많이 보내셨을까" 제일 우리 작은아씨 짜리 가 잘 먹겠구먼."
하며 방으로 들어와 돈 십 전을 내어 떡 담았던 목판에다 놓아주며 답 전갈을 한다.
"문안 아옵고자 합니다 하고, 궁금하던 차 하인을 부리셔서 댁내 안녕하신 문안 듣잡고 마음에 든든히 지냅니다 여쭙 고, 부산 소식은 종종 듣사오나 아직 오실 기망이 없사와 답답하오이다 하고, 고사떡은 웬걸 이다지 많이 보내셔서 입맛없던 차 잘 먹겠읍니다고 여쭈어라."
그 하인이 막 나아가자 웬 하인이 대문 밖에서 소리를 질 러서,
"한님, 한님."
3
편집임씨가 행랑을 향하여,
"어멈, 행랑에 있나" 댁에 누가 왔나 보이. 좀 내다보게."
행랑에서 아무 대답이없으니, 김의관 하인이 가다가 돌쳐 서서 한님 부르는 자를 향하여,
"여보, 어디서 왔소?"
그 자가 짚신 감발에 괴나리 봇짐을 걸메고 대 지팡이를 비스듬히 짚고 서서,
"예, 나는 부산에서 올라왔소. 이 댁이 서주사 댁이지요?"
계집하인이 부산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제 마음에도 반갑 게 여겨,
"예, 그댁이 서주사댁이요. 편지 가지고 왔소" 편지가 있거 든 이리 주오. 내가 들여다 드릴 것이니."
그 자가 봇짐을 벗어 끄르더니 큼직한 편지 한 봉을 내어 주며,
"엣소, 들여다 드리시오. 내가 서울 볼일이 있어 올라오는 데 서주사 나으리께서 이 편지를 주시며 부디 댁을 찾아 전 하고 답장을 받아달라고 하십디다. 내가 내일 모레 떠날 때 에 또 올 것이니 편지 답장을 써두었다가 주십사고 여쭈시 오."
계집하인이 편지를 받아들고 서주사 집으로 다시 들어가 임씨에게 드리며 그 자의 하던 말을 전하더니 임씨 앞에가 가까이 앉으며,
"아씨, 편지를 어서 떼어 보십시오, 언제나올라오시겠다고 하셨나. 댁 영감께서 날마다 궁금해 하시는데, 말씀을 가서 여쭙겠습니다."
임씨가 그 대답을 할 겨를없이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 편 지를 떼어 보는데, 그 편지가 겉봉은 하나라도 그 속에는 석 장을 각각 봉하여 넣었으니, 하나는 피봉에
「어머니 전 상서 부산 객중 자 상서」
라 하였고, 또 한 장에는 피봉에,
「월방 시중 즉납 부산 객중 상장」
이라 하였고 또 한 장에는 피봉에,
「연회 보아라, 부산 객중 평서」
라 하였는데, 게 식구가 다 각기 펴들고 보는데, 김의관의 집 하인이 무슨 재미있는 말이나 얻어들으면 저의 댁에 가 고하려고 귀를 기울이고 앉았는데, 그 편지에 무슨 말이 있 는지 장씨와 임씨가 처음에는 커닿게 보다가 점점 음성이 입속으로 들어가며 아무 소리 없이 속으로만 내려보더니 장 씨가 그 며느리더러,
"이애, 편지 좀 보아라."
임씨가 그 편지를 받아보더니, 자기에게 온 편지를 장씨에 게 드리며,
"어머님, 제게 온 편지도 이러하와요. 좀 보십시오."
장씨가 그 편지를 받으며 자기 며느리를 향하여 은근히 눈 짓을 하니, 임씨가 아무말 없이 편지를 둘둘 말아 한편 손 에다 움켜쥐고,
"행랑 어멈은 어디를 가고 없노" 저애가 마침 아니왔더면 편지를 누가 받아들일 뻔하였어?"
김의관 집 하인이 내려놓았던 목판을 다시 집어 이며,
"편지에 무슨 말씀이 계셔요" 나으리께서 언제나 행차하신 답니까?"
임씨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아직 언제 오실지 모른단다."
"에그, 그렇게 못 오셔서 작은아씨 혼인은 언제나 합니까"
어서 혼인을 지내셔야 쇤네들도 떡을 얻어먹을 터인데."
하며 연희를 돌아보며,
"작은아씨, 그렇지 않으오?"
그 하인이 하직을 다시 하고 저의 댁으로 돌아와 오씨 부 인에게 답 전갈을 고한 후
"아씨 시댁에는 그 댁 나으리 편지가 왔어요."
"응, 편지가 왔어" 그 댁 나으리께서 언제나 오신다고 하셨 다디?"
"그러지 않아도 쇤네가 여쭈어 보니까 그 댁 마님 말씀이 언제 오실는지 모르시겠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한단 말이냐" 그 양반이 어서 올라오셔야 도령님 혼인을 지낼 터인데."
"글쎄올시다. 다른 댁 같으면 벌써 혼인을 하셔서 재미를 적지아니 보셨을 터인데, 도령님 나이 어려서 장가를 이때 까지 아니 들여요" 그 댁에서는 혼인 지낼일 생각은 도무지 아니하시고 편지를 보시더니 무슨 말씀이 있는지, 마님아씨 께서 은근히 눈짓을 하시며 가만가만히 편지를 보시던데요.
에그, 이상야릇도 해라."
"오냐, 요란스럽다. 설마 올해 안으로야 그 양반이 올라오 셔서 성례를 시키시겠지."
"그 나으리 올라오시기 기다리다가 우리 댁 도령님은 노총 각이 되시겠네."
이와 같이 김의관집에서는 조급히 여기는데, 서주사집에서 는 혼인 일사에 대하여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더라. 그 문 제는 별문제가 아니라 그날 김의관집 하인이 받아 들여온 편지는 곧 그 혼인을 파의 하자는 것이라. 그 사연에,
"연희의 혼인은 그다지 급치 않은 것을 일시 무심중에 김 의관의 아들과 정혼을 하였더니, 지금 아무리 생각하여도 영록이라는 아이가 외화는 번번하나 기실은 허화로 생기어 제 수에 극히 해롭고, 또는 그 부모가 모두 완고되어 며느 리를 신식으로 활동치 못하게 하고, 매사에 그곡을 심히 하 여 고생을 막심히 시키기가 십상팔구오니 비록 주단 거래는 하였으나 아직 결혼을 아니하였은즉, 구태여 고집 불통할 필요가 없은즉 진시 변통을 하는 것이 가하오며, 또는 신랑 의 연기가 신부보다 오륙 년 손위가 되어야 생육에도 합당 하고 정도에도 적당하므로 현시 문명한 내지인들은 으레 신 랑의 연기가 신부보다 오륙년 이상 되는 것을 취하느니, 이 리 생각하오나 저리 생각하오나 영록과 결혼하는 것은 만만 불가하온중, 황서방 공삼은 연기도 적당하고 위인도 현안하 고 경력을 많이 하여 더 위논할 여부 없이 극가 극가한 터 이오며, 우중지 일찍이 재물을 치패하였다가 다시 경제를 극히 하여 점점 부요하여간즉 황씨의 집은 즉 늘어가는 터 이요, 김씨의 집은 즉 삭아가는 터이라. 그러한 중 황공삼이 가 그 동안 상처를 하고 결심하기를, 이왕 낭패한 재산을 회복키 전에는 속현을 아니하리라 하였더니, 지금 와서는 저축한 재산이 오히려 본래 있던 것보다 갑절이나 될 지경 이므로 방장 혼처를 구하는 터인즉, 내 생각에는 그같이 합 당한 혼처를 내놓기가 아까운즉 부재다언하옵고 퇴혼하는 뜻으로 김의관 집에 말을 보내옵소서."
장씨에게와 임씨에게 온 편지가 인사만 다를 뿐이지 사연 은 일반이라. 김의관집 하인 나아간 뒤에 시어머니와 며느 리가 의논이 분분하더라.
"어머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읍니까" 저 집에서는 아직 성례만 아니하였다 뿐이지 아주 새 사돈집으로 여기는데 무 슨 핑계로 퇴혼을 합니까?"
"이애, 그렇지마는 당장 핑계하기가 어렵다고 퇴혼을 아니 하고 그대로 두는 수가 있느냐" 그러지 않아도 아까 네 이 야기를 듣고 마음에 꺼림하여 먼저 편지로라도 애 아비와 의논을 하여보자 하였더니, 제 생각이 먼저 이렇게 드는 것 이 신기한 일인데, 무슨 자저를 한단 말이냐?"
"그야 누가 모릅니까마는 그렇게 탐탁히 정한 혼인을 지금 와서 무엇이라고 말을 할 것이 없어 근심이 되어 그럽니다."
"오냐, 그는 걱정 말아라. 내가 망령 삼아 생떼를 쓰겠다."
하고 방장 행랑 마누라를 불러 그 말을 김의관 집에 가도 록 이르려는데, 연희가 저의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를 이리 저리 보고 또 보며,
"할머니, 그까짓 흑세무민하는 관상쟁이년이 무엇을 안다고 그리하세요?"
"오냐, 너는 참섭할 일이 아니다. 어른이 어떻게 하든지 가 만히 있거라."
"또 이번에 온 편지는 모두 아버지가 보내신 것이아니어 요."
"이애야, 번연히 네 아비 친필을 보며 그런 말을 한단 말이 냐" 듣기 싫다. 저리 가거라."
임씨가 화를 버럭 내며 이 편지 저 편지 주엄주엄 집어 연 희 턱 밑에다 들이대며,
"이 소견없는 것아, 눈깔로 똑똑히 자세 좀 보아라. 아버지 친필이 아닌가."
"필적은 아무리 방불하여도 아버지 편지는 아니야요."
"그것은 어찌해서 그렇단 말이냐" 시원히 말을 해라."
"아버지께서 매사에 신의가 있기로 명예가 높으신터인데, 자식의 인륜 대사를 한 번 정해 놓으신 터에 무단히 이런 편지를 하실 리도 없고, 여러 해포를 그곳에 계실 터이 아 니시고 멀어야 몇 날 후면 올라오실 터인데 무엇이 그리 시 급해서 편지로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있읍니까" 또 그리고 이 편지를 열모로 뜯어보아도 필적이 어리어서 십분의 칠팔 분은 아버지 필적 같지를 아니합니다."
임씨가 벌떡 일어나 연상 혈합에 넣어둔 그 전에 온 편지 를 내어보이며,
"이애, 소견없는 말 작작 하고 이 편지와 비교를 똑똑히 좀 하여보아라. 너의 아버지 필획과 한 점이 틀리냐?"
"비교는 하나 마나, 아버지께서 그렇게 편지를 하실 리가 만무하니 깊이 생각을 하셔요."
"생각이 무슨 생각이란 말이냐" 너의 아버지께서 이런 편 지를 아니하셨더라도 내가 먼저 주장을 하려고 하였다. 너 는 참섭할 일이 아니니 아무말 말고 있으라니까 왜 이러느 냐?"
"말"소 흥정은 하였다가 도로 무르지요마는, 혼인은 인륜 대사인데요‥‥."
"네가 지각이 있느냐 없느냐" 무지막지한 하천배의 자식이 라도 계집아이로서 혼인 등사에 말을 못하겠더든, 너는 조 금도 수괴지심이 없이 중언부언, 응, 해괴망측도 한지고!"
"이애, 고만 꾸짖어라. 그게 아직 펄이 안나서 그렇구나.
그만 일렀으니 설마 다시야 그리하랴?"
"지금 철이 아니 나면 언제나 철이 납니까" 계집애년이 제 혼인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은 고담책에서도 못 보 았습니다."
연희는 감히 다시 말을 못하고 한편 구석에 돌아앉아 눈물 만 더벅더벅 떨어뜨리는데 임씨는 자기 시어머니와 김의관 집에 퇴혼할 공론을 분분히 한다.
"어머님, 김의관집에다 무슨 말로 퇴혼을 하면 좋을까요"
지금 그 집에서는 혼인이 다시 변통이 없을 줄 알고 어서 성례를 하자고 재촉을 하는 중인데요."
"글쎄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이애, 그렇지 아니하다.
아이 아비가 퇴혼하자는 편지까지 하고 퇴혼을 어떻게 할 방침인들 생각을 아니하겠였느냐" 우체로 편지를 부쳐 아이 아비의 시키는대로 하자구나."
각각 편지를 써서 한 봉투에 넣어 등기로 부치고, 날마다 그 회답 오기를 고대하더니, 이왕 같으면 주야 배도 쌍보행 을 띄운대도 십여 일 동안이면 편지가 오고 가지를 못하였 을 터인데, 사흘이 못되어 체전부가,
"편지 들여가오."
하는 소리에 기다리던 편지 답장이 왔더라. 그날 편지 뜯 어볼 때에 장씨"임씨 두 부인은 혼인 파의가 되도록 사연 하였기를 기다리고, 연희는 이왕 정반대로 아무쪼록 퇴혼치 말라는 사연 하였기를 기다리는데 급히 편지를 떼어보더니 연희더러는 이런 말 저런 말 여부없이 행랑어멈을 부르더 니, 연희의 외조 임통정을 청하러 보낸다.
"여보게, 어멈, 지금 한달음에 서학재 넘어가서 작은아씨 외할아버지 영감 좀 여쭈어 오게."
"예."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급히 가려는걸 연희가 물 끄러미 보다가,
"어머니, 아버지께서 무엇이라고 답장을 하셨어요?"
"그건 알아 무엇해" 어른이 시키는대로만 가만히 있지, 응"
규중처녀가 아니꼬와라."
하고 손에 들었던 편지를 연희 앞에다 홱 집어내던지며,
"어따, 네 눈으로 시원히 보려므나. 바싹바싹 소견없이 우 기더니."
연희가 그 편지를 집어들고 종두지미를 내려다보느라니, 필적은 저의 부친과 방불하나 그 사연은 천만 부당하다.
"연희의 혼인 일사는 일전 편지에 아주 말하였는데, 무엇이 자저되어 진시 퇴혼을 아니하옵고 이처럼 기별하옵는지, 길 게 말할 것 없이 나는 결단코 김의관의 아들로는 사위를 삼 지 아니할 터이니, 이 편지 보옵시는 대로 시각을 머무르지 말으시고 곧 퇴혼을 하옵소서. 연희의 지각없는 말은 종작 없는 어린아이의 소견인즉 다시 그런 개구를 못하도록 꾸짖 으시옵고, 당장 연희의 외조부를 잠시 청하여다가 내 편지 를 보시게 한 후 김의관 집에 직접으로 퇴혼을 하여줍시사 여쭈옵소서. 단정코 퇴혼할 줄로 믿고 황공삼에게 이미 혼 인을 통하여 허락까지 들었사오며, 황씨가의 사정이 급함을 인하여 연희의 연기는 비록 어리나 이 달 안으로 불복일 성 례를 시킨 후, 이곳에 있는 황씨의 집을 방매하고 서울 우 리 옆집으로 반이까지 하기로 작정하였사오니 공연히 유예 미결하여 창피한 지경이 없도록 주선하옵소서."
하였거늘, 연희가 낙심천만하여 가슴이 우둔우둔하며 얼굴 에 상기가 부썩 되어 아무 분개를 못하다가 다시 곰곰 생각 하기를 아무래도 그 편지가 의심이 나는데‥‥‥.
(평일에 아버지 말씀이 혼인을 일찍 하는 것은 큰 폐해라.
남자는 십팔구 세나 이십 세 가량이 되어 골격이 장성하여 야 요촉하는 일이 아니 생기고, 여자는 십오 세 이상 십육 칠 세 가량이 되어야 기혈이 충분하여 생식에 이로우니, 우 리 연희는 세상없어도 십칠 세 이전에는 성례를 아니 시키 겠다 하셨는데, 이 편지에는 별안간에 이 달 안에 불복일로 급히 성례를 시키신다는 말씀이 그 아니 이상하며, 그렇게 칭찬하시던 김씨가는 이 모양으로 타매하시고, 한없이 타매 하시던 황씨 아들은 이같이 칭찬을 하셨으니 그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지. 아버지 범절을 아는 바에 범상 처사도 이렇게 반복하실 리가 없거든, 하물며 자식의 혼인대사를 이렇게 사리에 온당치 아니하게 하실 리가 없고, 설혹 아버지께서 망령이 들으셔서 이쯤 하신대도 나 되어서는 죽을지언정 정 이행할 수가 없는 것이, 혼인은 일백 행실의 근원이라, 개나 돼지 아닌 바에 한 번 정하여 사주까지 받은 혼인을 파의하 고 다른 곳에 허신을 하고 천지간에 몸을 어찌 용납하리요
") 하여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주야 울기만 하니, 장씨는 간절히 달래고 꾀고, 임씨는 꾸짖고 욱박지르기만 하더라.
그리하자 인력거 소리가 뚜루루 나며 행랑어멈이 들어오더 니,
"아씨, 서학재 영감 오셨읍니다."
"벌써 오셨나" 그러면 안방 미닫이를 닫고 영감을 모시고 건넌방으로 들어오게."
행랑어멈의 뒤를 따라서 나이 근 육십한 노인 하나이온 세 상이 다 깎는 머리도 아니 깎고 주먹 같은 옥관자를 두 귀 밑에다 딱 붙였는데, 희뜩희뜩한 수염을 연해 쓰다듬으며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아랫목에 가 비스듬히 앉으니, 임씨 가 그 앞에 가 날아갈 듯이 절 한 번을 하더니,
"아버지, 근래에는 해소 기운이 좀 덜하셔요?"
임통정이 수염을 일향 쓰다듬으며,
"응, 나는 관계치 않다마는 모시고 몸 성히 있느냐" 네 남 편의 소식은 자주 들으며, 언제나 올라온다더냐" 영희는 어 디 갔느냐?"
임씨가 자기 아버지 앞으로 바싹 가까이 앉으며,
"아버지, 이것 좀 보셔요."
"무엇 말이냐?"
"이 편지가 연희 아범에게서 온 것인데 사연을 보시면 자 연 알으실 터이야요."
"무슨 사연이란 말이냐?"
하고서 안결집을 부스럭부스럭 열더니 돋보기를 내어쓰더 니 자기 딸이 주는 편지를 들고 한구히 보다가,
"이게 웬 말이냐" 점잖은 터에 주단까지 받고 면언을 하고 서 지금 와서 이론을 어찌 한단 말이냐" 이애, 여러 말 말고 기왕 정한 혼인이니 그대로 지내자고 네 남편에게 답장을 하여라."
"아버지께서는 사정도 채 모르시고 저렇게 말씀을 하십니 다."
"사정이 무슨 사정이란 말이냐" 김동을 나도 익숙히 보았 다마는, 그 애보다 더 똑똑한 서랑은 어디 있으며, 그 집이 요부하겠다, 인품이 후덕하겠다, 무엇이 어떠해서 퇴혼을 구 태여 한다고 이러느냐?"
"퇴혼할 만하니까 그렇지요. 공연히 그리하겠읍니까" 연희 아비가 퇴혼을 아니하려고 한 대도 제가 우겨 퇴혼을 하려 고 하였어요."
"너는 또 무슨 주견으로?"
"그런게 아니라 저 일전에 웬 마누라가 생면부지 모르는 터인데 지나다가 들어오더니, 연희를 유심히 보고 잘생기었 다고 칭찬을 하기에 관상할 줄을 아나보다 하였더니, 대강 짐작이나 하노라고, 연희의 초분"중분"말분을 말하는데, 초 분 지나간 일을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것을 보니, 중분"말분 도 그 말에 벗어나지 아니할 터인데, 연희의 타고난 수는 팔십에 퇴를 달 터이나 중간에 액운이 있어 남의 수양딸로 주어 부모를 갈거나 후취를 주어 팔자땜을 하기 전에는 단 수하기가 십상팔구라 하니, 들으면 병이요 아니 들으면 약 이라고, 그것 하나 있는 것을 남의 수양을 주고 앞이 허수 하여 견딜 수 없고, 나이 파고 지각이 나서 색시 사랑할 만 한 후취 신랑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 좋겠구먼. 김씨가와 정혼을 하였으니 저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꼬 하여, 저의 시 어머님과 한걱정으로 지내는 중 편지가 이렇게 왔어요."
임통정의 연기는 비록 많고 외양은 점잖으나 본래 무식한 소지로 무녀배의 미신하는 말을 곧이듣고 무꾸리를 일수 잘 시키는 자격이라, 자기 딸이 관상쟁이의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먼저 제법 점잖게 말하던 본의는 다 어디로 가고 요사 한 수작이 그 딸보다 한층 더한다.
"이애, 그럴 터이면 퇴혼을 하여야 하겠다. 주단 왕래라 하 는 것이 다 무엇이냐" 그 딸이 어떤 딸이라고, 제게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변통 아니할 수가 있느냐" 또 그나 그뿐 아 니라 이 집에 어른되는 네 남편의 뜻이 이러한 이상에 반대 할 수가 있느냐" 내가 김의관을 가보고 퇴혼을 하여주마. 이 애, 그러나 연희는 아무 눈치가 없더냐" 필경 아무 눈치가 없겠지. 규중 계집아이가 제 혼인 등사에 무슨 참섭을 하겠 느냐?"
"에그, 아버님께서 말씀을 하시니 말이지, 그런 소견없는 년은 처음 보았어요. 저년을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모르겠 읍니다."
"왜 무엇이라고 하더란 말이냐?"
"그년이 퇴혼한다는 말을 듣고 개냐 돼지냐 별말을 다하며, 저의 아비 편지를 번연히 보면서 부썩부썩 그렇게 편지할 리가 만무하다고 하기에 계집애년이 어른 하는대로 할 것이 지, 참섭이 무엇이냐 꾸짖어도 일향 듣지 아니하여 밥도 아 니 처먹고 쪽쪽 울기만 한답니다."
"오냐, 너무 욱박지 말고 가만 내버려 두려므나. 제 뜻이 기특지야 아니하냐" 어른이 제 전정을 위하여 억지의 일을 하는 것이지."
"다른 일과 달라 계집아이가 혼인 등사에 간섭이 무엇입니 까" 고년 정 고집을 하거든 박살을 하여 없애겠읍니다. 그런 소견없는 것을 자식이라고 두면 무엇하게요" 알뜰살뜰히 속 만 타지요."
"어, 네 지각이 연희만 도리어 못하구나. 아까도 말이"는 제 뜻인즉 가상하니 아무쪼록 좋은 말로 달래어 마음을 안 유시킬 생각은 아니하고 왜 그러느냐" 그리 말고 내 말대로 여러 가지 말로 달래어 밥도 먹고 울지 않도록 하여서 황소 년을 올라 오는대로 성례를 시켰으면 고만이지, 무슨 걱정 을 한단 말이냐" 나는 지금 곧 김씨가에 가서 혼인 파의의 말을 하고 오마."
임통정이 즉시 김의관 집으로 찾아가 김의관을 보고 수작 하는 것이라.
"주인이 댁에 계신가?"
"누구시오니까?"
하며 문을 열어보더니 깜짝놀라 마주 나와 영접하여 방으 로 들어가 아랫목 보료를 가리키며,
"이리 앉으십시오."
"아무데인들 관계 있나?"
김의관이 재삼 권하여 임통정을 아랫목에다 앉히고 절을 공손히 한 후, 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앞에 가 앉으며,
"일기가 심히 좋지 못하온데 기체 어떠합시오니까?"
"응, 댁내 일안하신가" 그러나 내가 오늘 자네를 찾아온 것 은 섭섭한 말 한 마디를 하자고 왔거니."
"섭섭한 말씀이 무엇이오니까?"
"응, 말하지. 자네 자제와 내 외손녀와 정혼을 아니하였던 가?"
"예, 그리했읍니다."
"혼처로 말하면 자네 댁이나 내 사위 집이나 막상막하고, 신랑"신부가 서로 나무랄 데가 없은즉 극히 가합한 터이지 마는, 천장 연분이 부족한지 아니될 일 한 가지가 생기었 네."
김의관의 눈이 둥그래지며,
"그게 어쩌신 분부오신지요?"
"매사를 전설거하는 편이 옳지, 간격을 두고 우물쭈물 하여 서는 가치 아니하기로 말일세. 남자와 달라 여자들은 아무 문견이 없고 요사스럽기는 내집 남의 집 할 것 없이 일반이 아닌가! 내 사위는 지금 부산에 가 있고, 내 딸이 저의 홀시 어머니 되시는 양반과 있는데, 아마 어떤 관상쟁이 계집이 왔던가 보데. 소위 관상쟁이니 사주장이니 하는 것이 알기 야 무엇을 알겠나마는, 내 외손녀의 상을 보고 십삼 년 지 나간 일을 일호 차착 없이 내리 맞히니까 깜짝들 혹해서 내 두사를 물은즉, 김씨가와는 연분이 없어 제수에두 해롭고 시집에도 이롭지 못하리라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서‥‥."
"별말씀을 다 합니다. 그까짓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그러십 니까" 이왕 서랑과 동리간에 중매 여부없이 단단히 면약을 하여 주단거래까지 한 혼인을 요사스러운 계집년의 주착없 이 지껄이는 말을 듣고 다른 의논을 할 수가 있읍니까" 그 집 아낙에서 혹 이론을 하시거든 노인장께서 명기불연을 하 십시오."
"허허, 괴이치 않으이. 나인들 알아듣도록 말을 아니했겠나 마는, 내 딸도 고집을 하거니와 제일 신부의조모 되시는 어 른이 한사하고 퇴혼을 하려 하여, 내 사위에게 그 동안 편 지 왕래가 여러 번 되어 아주 작정이 되었나 보데."
"그러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서랑 그 사람의 평일 범절을 깊이 아옵는 바 필경 이 일을 경홀히 변경 아니할 듯 싶은 데, 편지 왕래까지 하였다 하오니 아무래도 의심이 나는걸 요."
그 말을 그치자 계집하인이 사랑문 앞에 와서,
"영감마님, 아낙에서 여쭈십니다."
"오냐, 들어간다."
김의관이 일어서며,
"앉아 계십시오, 안에 잠깐 다녀 나오겠습니다."
"응, 그리하소. 나도 총총하여 차차 일어서겠네."
김의관이 안으로 들어오니, 그 부인이 분함을 못 이겨 얼 굴이 푸르락붉으락하며,
"영감, 왜 그리 구구하시오?"
"무엇이 구구하단 말이오?"
"저 애들이 들어와 말하기를, 사랑에 웬 손님이 오셔서 도 령님 혼인 말씀을 하시는데, 자세는 몰라도 퇴혼이니 어쩌 니 하셔요 하기에, 세상에 궁금해서 여편네의 행실은 아니 나 사랑 문턱에 가 엿들어 보았는데, 그런 괴악한 집 풍속 이 어디 있소! 혼인은 인륜 중 제일 큰 일인데 관상장이의 말을 듣고 이러니저러니 이론을 한단 말이요" 에그, 아니꼬 와라. 내 자식이 어디가 병신이요" 무슨 걱정이 되어서 그 아니꼬운 일을 당하시고 구구한 말씀을 하셔요" 첫 마디에 그러하겠다고 우리도 그다지 탐탁지 아니하노라고 못하시 고."
"그렇게 말을 하면 나 역시 주축일반되지를 아니하오" 퇴 혼은 어차어피에 되는 터인데 말이나 그렇게 하여 나마저 그른 사람이 아니되어야지요."
"영감 생각에는 그러하시지마는, 남들이야 그렇게 아나요"
서가의 집에서는 퇴혼하려는 것을 우리 집에서는 아무쪼록 혼인을 지내자고 빌붙는 줄 알 터이니, 그 아니 창피스러워 요?"
"미상불 그도 그렇소. 혼인 아니되는 이상에 쾌쾌한 모양이 나 보여야 옳겠소."
영록이가 협실에서 글을 읽다가 임통정이 와서 퇴혼 언론 하는 양을 보고 저의 아버지가 무엇이라 대답을 할는지 궁 금하여 가만히 엿듣느라니, 저의 아버지가 준절히 그 불가 함을 말하는 것을 듣고 속마음으로, (아버지께서 사리를 따져 대답을 잘 하시는구나. 될 말인 가! 이미 정하여 사주까지 받고서 지금 와서 퇴혼이라니! 우 리 아버지께서 저렇게 대답을 아니하신대도 내가 바로 홀아 비로 늙을지언정 다른 신부에게는 장가를 들지 아니할 터이 다.) 하고 있더니, 자기 아버지가 안에를 다녀 나오더니 임통정 을 대하여,
"길닿게 말씀하실 것 없읍니다. 그 집 의향이 이미 그렇게 들어간 이상인즉 생각대로 하라 하십시오. 자식놈이 아무리 못생겼기로 그 집 아니기로 설마 장가를 못 들이겠읍니까"
마음에도 그 집과 혼인 지내기가 썩 탐탁지 아니하건마는 점잖은 도리에 한 번 정한 혼인을 이론하는 것이 불가하여 그대로 있었더니 너무나 잘되었습니다.
"여보게, 일은 가이없이 되어 할 말이 없네마는, 이 역시 두 집에서 다 좋자고 하는 일인즉 조금도 혐의 쩍게 여기지 말고, 두 집이 예같이 친근하게 지내기를 믿네."
하고 소매 안으로부터 사주단자를 내놓는지라. 영록이가 절통하기도 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걱정들을 것을 불계하고, 좌석으로 썩 들어가 임통정에게 절 한번을 하고서 두 손을 마주잡고 한편에 비켜섰다가, 임통정이 작별하고 일어서 나 아가는 것을 따라 나가 중문밖에 이르러서 임통정 앞에 가 우뚝 서며,
"제가 여쭐 말씀이 있읍니다."
"응, 무슨 말인구?"
"이런 말씀이 아이들 되어 대단 불가하오나, 적은 규모를 지키느라고 대의 관도에 말씀을 아니하면 도리어 고집 불통 이니까 여쭙니다. 지금 노인장께서 가친께 말씀하시는 것을 가만히 듣자온즉, 사리 십분 가합치 아니하오니 노인장께서 서씨댁에를 가거든 명기 불연을 하옵서 일륜 대사에 큰 결 점이 없도록 하옵소서."
"그 일은 너의 어르신네와 이미 결정하였은즉, 너는 참섭할 일이 못된다."
"아니올시다. 말씀을 아니 내었으면이어니와 기위 여쭙는 터이니 말씀이올시다. 사람의 혼인은 말"소홍정과 달라 한 번 정한 것을 무르는 법이 없거늘, 혹 세무민하는 요녀배의 무거한 말에 고혹하여 자식의 백년 가약을 파괴하면 이는 무지"몰각한 자의 아니할 바이오니 노인장께서는 생각을 다 시 하여보옵소서."
"그게 무슨 소리냐" 혼인 정하였다가 퇴혼하는 일이 더러 있는 일이요, 또는 어른이 주장하여 좌우간 조처하는데 대 하여, 신랑 네가 참섭하는 것이 만만불가하니라."
"노인장이 아니하실 말씀이 올시다. 혼인을 어른이 주장하 시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오나, 이번 일에 당하와는 윤리 에 위반되는 거조이온즉 어찌 말씀을 아니 여쭈오리까! 만 일 일향 퇴혼을 하는 동시에 시집을 타문으로 가면 서씨와 규수도 행실이 온당치 못하고, 장가를 타문으로 가면 저도 행실이 온당치 못한 줄로 생각하오니 처분하여 하옵소서."
임통정이 그 대답은 다시 아니하고 행행히 자기 사위의 집 으로 와서 그 딸을 보고, 김의관과 수작한 것을 전하고 겸 하여 영록의 말을 이야기하며, 큰 성사나 한 듯이 부녀가 재미스럽게 웃으며 담화하는 것을 연회가 가만히 엿듣고 기 가 막혀 내심으로, (나는 외할아버지 거기 가시는 것을 보고 필경 무안을 당 하고 오시려니 하였더니‥‥‥. 내 집이나 남의 집이나 어 른들 처사하시는 것이 딱하지 아니한가! 에그, 외할아버지 를‥‥‥쫓아 나와서 여쭙더란 말씀이 열 번 옳고 백 번 옳 지. 아무리 저렇게들 하신대도 바로 내 몸이 열 조각이 나 기전에는 다른 데로 시집을 아니 갈 터이니까‥‥‥.) 공변된 광음은 사람의 사정을 따라 재촉하고 지체하지를 아니하고 일정한 이치를 따라 으레 가니, 둥그렇던 보름달 이 점점 이즈러져 부지중 그믐께가 되어오니, 임씨부인이 자기 시어머니와 의논을 하고 대례지낼 준비를 분분히 차려 놓고 부산에서 황공삼이 올라오기를 눈이 감도록 기다리는 데 연희는 기가 막혀 일정한 생각이, (살아서 황가에게 시집을 가느니, 차라리 목이라도 매어 세 상을 잊으리라.) 하고 몇 차례를 독한 마음을 먹었다가 다시 생각하기를, (오냐, 내가 경선히 죽을 것이 아니라 차회를 좀더 보아 정 위급하거든 죽어도 늦지 아니하다. 아무리 연구를 하여보아 도 이 일이 아버지가 알으시는 것 같지를 아니하고, 설혹 알으시고 그런 거조를 하시면 아버지 앞에 불가한 뜻을 시 원히 한 번 폭백을 하여보는 것이 옳겠다. 아마 소위 황가 가 올라올 때에는 아버지께서 같이 오실 터이지.) 그리하자 문밖에서 들레며,
"신랑 서방님이 지금 올라오셔서 이 뒷집에 사처를 정하셨 는데, 댁 나으리마님 서간을 보내셔요."
임씨가 반색을 하여 마루로 마주 나오며,
"이애, 새 서방님이 올라오셨다며! 나으리 서간이라니, 나 으리께서는 못 행차하시는 것이로구나. 이리 다고."
하더니 그 편지를 들고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 뜯어 본다.
"이번에 기어코 신랑과 같이 올라가서 저희들 성례하는 재 미를 보자 하였더니, 공교히 여러 달 끌어오던 송사의 재판 이 격일하여 몸을 빼낼 수가 없어 생각 다 못하여 신랑만 올려보내니, 내일로 곧 성례를 시키시며 장황히 다른 날을 또 택할 것 없이 아주 합례까지 시키시옵소서. 그날이 극히 길한 날일뿐더러 황서방의 사정이 여러 날 지체할 수가 없 으니, 나 없는 것을 부디 섭섭히 여기지 말고 내 말대로 혼 인을 지내게 하옵소서. 일이 이같이 급하였은즉 잔치음식을 집에서 잔만할 수 없을 터인즉, 요릿집에 보내어 교자나 몇 틀 맞춰다가 안팎 손님과 하인배들을 대접하도록 하옵소서.
신랑"신부의 의복은 이왕 유념한 것이 있을 터이니 응당 미 비한 것이 없을 듯하오. 퇴혼한 이래로 김의관 집에서 무리 한 책망이나 없는지" 책망이 만일 있을지라도 아무 관계 없 거니와 행여나 우리 집에서는 그 집에 대하여 좋지 못한 대 답을 말고 귀먹은 체 못 들은 체하소서."
임씨가 그 편지를 자기 시어머니께 보이고 일변으로 정안 청"교배석"독좌상 각색 설비를 분별하며, 일변으로 떡을 마 춘다, 술을 사온다, 국수를 사온다 하며, 일변으로 수모를 불러 연회의 머리를 감기고 세수도 시키려 하는데, 연희는 몸이 아프다 청탁하고 일체 기동을 아니하니, 장씨는 달래 고 임씨는 꾸짖으며 몸이 아무리 아파도 참고 일어나 수모 시키는대로 하라 하나, 연희는 일향 말을 아니 듣는다.
"저년이 금방 뒈지게 되었나, 도무지 기동을 못하게" 여보 게 수모, 고만 내버려두게. 세수를 아니하여 분이 잘 아니 먹거나, 머리를 아니 감아 결어빠지거나, 내일 성례할 때에 나 단장인지 성적인지 하게 그만 내버려두게."
"에그, 그래서 어떻게 하나" 오늘 말끔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아두어야 할 터인데."
"아무렴, 대수인가! 고만 내버려두게, 내일 저도 소견이 있 겠지. 저 모양으로 파발을 하고 교배를 하거나 단장을 하고 교배를 하거나 나는 모르네."
"그러실 리가 있읍니까" 지금은 작은아씨께서 몸이 편치 않으시니까 귀치않아서 그러셨지, 내일이야 무슨 날이라고 성적을 아니하실라구요" 작은아씨, 그렇지 아니하오" 내가 똑바로 알지."
그 모양으로 야단법석을 하다가 수모는 내일 오기로 가고, 집안식구들은 잔치 차리느라고 분주한데, 연희가 아무리 생 각하여도 박두한 화색을 면키 어려운 중, 손녀를 남다르게 사랑하는 장씨노인은, 연희가 어린 소견에 제 뜻대로 못하 는 것을 분히 여겨 혹독한 마음을 둘까 염려함이런지, 자나 깨나 연희의 곁을 아니 떠나니, 연희가 한 가지 꾀를 내어 저의 할머니 훈계를 옳게 듣고 마음을 고친 듯이 벌떡 일어 나 세수를 가져오라 하여 분 세수도 정히 하고, 저녁밥도 앙탈없이 많이 먹으니, 장씨노인은 집안에 큰 경사나 난 듯 이 마음을 턱놓고 며느리를 가보고,
"며느라, 우리 연희가 인제야 회심을 하였나 보더라."
"왜요?"
"제가 자청하여 소세도 하고 저녁밥도 곧 많이 먹었다."
"너무나 다행합니다. 말이 그렇지, 그년이 영영 고집을 하 고 말을 아니 들으면 죽이지도 못하고 어떻게 할 뻔했읍니 까?"
"글쎄다, 인제는 제 거동대로 내버려두고 아예 비위를 거스 려 말하지 말아라. 나도 인제는 저 있는 방에를 자주 가보 지 않겠다. 아이들이, 어른이 올라와 있는 것을 귀치않아하 는 줄을 번연히 알지마는, 그 애가 하도 매몰하니까 나는 은근히 겁이 나서 제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꼭 지켰더니 제 가 그 모양으로 풀리는 것을 보니까 내 마음이 턱 놓인다."
연희가 저의 할머니 없는 틈을 승시를 하여 머리맡에 걸린 수건을 벗겨 들고 슬며시 뒤꼍으로 돌아가 혼자 소리없이 탄식하기를,
"에그, 내가 우리 부모의 무남독녀 외딸로서 아무쪼록 살아 서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여 만년에 재미를 보시도록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어늘, 오늘날 이같이 비명에 자처하는 것 은 불효에 가까우나, 인륜의 큰 관계로 사세 부득이한 거조 인즉, 기실은 불효가 아니라 이는 실로 부모를 위함이니 나 의 지조를 조촐히 하여 남의 타매를 아니 받으면 그 빛난 성예가 부모에게 미치게 함이니라."
하고 수건 한 편 끝을 담밑 오동나무 가지에 걸쳐 매고, 한 끝으로 자기의 목을 매려 하는데 누가 별안간 와락 달려 들어 붙잡으며,
"여보, 좀 참으시오."
연희가 깜짝놀라 돌아보며,
"에그머니, 이게 누구야!"
오매에 잊히지 못하는 사람은 눈을 감아도 그 전형이 환하 게 보이느니, 이는 일심의 정기가 그 사람 하나에게 모여,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염염자재한 곡절이라. 연희가 죽기 로 결심하여 세상 만사에 아무 경황이 없는 중, 이게 누구 야 소리를 지르고 홱 돌아다 보는데, 그때로 말하면 보름께 가 아니니 달빛도 없고, 사람 거처하는 곳이 아니니 등불도 없고, 오직 침침칠야 곁에 사람을 분별키 어려운 밤이언마 는, 영록의 얼굴을 첫대 알아보고 아무말 못하고 땅에 가 푹 엎드러지니 영록이가 황망히 붙잡아 일으키며,
"여보, 이게 무슨 해거요" 정신을 차려 일어나 내말을 좀 들으시오."
"‥‥‥."
"사람이 죽는 것은 막마침 가는 일인데, 지금 꽃으로 이르 면 봉오리도 아니 전 터에, 왜 막마친 가는 일을 행하려 하 오?"
"‥‥‥."
"우리가 이곳에 오래 지체하며 장황히 말할 경위가 못되오 니, 간담을 들어 한 말씀 권고하는 것인즉, 아무쪼록 마음을 돌리어 독한 거조를 말고 부모의 명령을 승순하여, 나 같은 용렬한 위인은 계련치 말고 극가한 신랑과 아름다운 배필이 되어 유자생녀하고 백년을 해로하오. 내가 오늘 밤에 월장 을 하여 규중 여자와 접어를 하는 것이 실례인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우리가 어려서 같이 자라 맵고 단단한 마음을 깊이 짐작하는 바, 오늘밤을 당하여 스스로 추측을 하여본 즉, 필경 생각을 옹색히 하셔서 망령된 거조 있기가 십상 팔구이기로 법률에 저촉됨을 불구하고 깊은 장원을 넘어왔 사오니 특별히 용서하시오."
연희가 그 지경을 당하니 아무리 여자라도 말을 아니하는 수 없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간신히 입을 열어 모기 소리 만치,
"이 사람은 한 번 죽기로 결심하온 바에 다른 말씀은 할 것 없사오니, 부질없이 지체 말으시고 어서 바삐 나가옵소 서."
영록이가 그 말을 듣더니 연희의 손목을 턱 잡으며,
"소저가 이렇게 결심을 한 터이면 내가 도리어 실수의 말 을 하였소. 그러나 부모가 일시간 오해하고 부당한 거조를 하신다고 생명을 끊고자 함은, 이는 목전에 불측한 욕을 면 하나 부모의 누명을 더하게 함이오니, 그리할 것 없이 나와 함께 이 담을 넘어 도망하여 좋은 도리를 구처하는 것이 어 떠하오?"
"죽을 마음을 결단함은 사세가 부득이함에서 나옴이온 데‥‥어디든지 버리지 않으시면‥‥그러나 저 담을 어떻게 넘어가나요?"
"그것은 걱정없소. 내 어깨를 디디고 올라서서 저 나뭇 가 지를 휘어잡고 담으로 올라가면, 그 너머에는 내가 넘어올 제 갖다놓은 사다리가 있을 터이니 그리로 내려가오."
"에그, 나만 넘어가면 어떻게 하나요?"
"내 걱정은 말으오. 어떻게 하든지 못 넘어가겠소?"
연희가 그 담을 넘어가 기다리느라니 영록이가 뒤미처 넘 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느 으슥한 곳에 와서,
"우리가 이 모양으로 가다는 경찰이 밝은 세상에 얼마 못 가서 탄로가 날 터이니, 여기 가만히 숨어 앉았으면 내가 우리 집으로 도로 들어가 의복 입습을 도둑하여가지고 나올 것이니, 그것을 바꾸어 입고 가는 것이 옳을까 하오."
"시키는대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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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영록이가 임통정 다녀간 뒤로 주사야탁이, (어떻게 하면 서씨가 규수를 다른 데로 시집을 못가게 하 고 내가 기어이 그리로 장가를 갈꼬") 하더니, 급기 부산으로 가 있는 황공삼이가 서규수에게 혼 인을 정하고 성례차로 올라왔는데 내일이 혼인날이라는 말 을 듣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당장 칼이라도 가지고 황가를 푹 찔러 죽여 없애고 싶지마는, 강약이 부동할 뿐 아니라, 번다한 이목에 사실상 되지 못할 일이라 억지로 참 고 슬며시 이웃 노파를 연비하여 연희의 동정을 탐지한즉, 연희가 기어이 다른 사람에게 허신을 아니하려고 식음을 전 폐하고 누워 있다는 말을 듣고서, 심중에 한없이 기뻐하더 니, 또 연희가 황가 신랑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 일어나 소 세도 하고 밥도 먹어 얼마쯤 좋아하는 모양이라는 소문을 들으니 기쁜 마음이 변하여 분한 생각을 견디기 어려워 어 찌할 줄 모르다가 혼잣말로,
"에라, 남의 전하는 말을 도무지 준신할 수 없다. 내 눈으 로 시원히 연희의 거동을 보는 것이 옳겠다."
하고 메투리 한 켤레를 얻어 단단히 신고 곧 밤들기를 기 다려 서주사의 집 뒷담에 사다리를 갖다 놓고 막 넘어가려 는데, 귓결에 얼핏 들으니까 담 안 오동나무 밑에 어떠한 여자가 홀로 서서 신세 한탄을 은근히 하더니 수건을 가져 목을 매어 죽으려 하는데, 아무리 어두운 밤이기로 영록이 가 어찌 연희를 몰라보았으리요. 급한 바람에 뛰어내려와 턱 붙잡아 구제하고 그 담을 같이 나온 일이라. 영록이와 가만히 자기 집으로 들어가, 자기 입던 의복 일습을 이끌고 아래 대로 내려서, 훈련원 벌판을 지나 수구문 밖에를 나아 가니 밤이 벌써 밝아오느라고 동방이 훤하여 온다.
"가자 하시니 따라오기는 하나, 날은 밝아오고 정처는 없으 니 어찌하면 좋은가요?"
"날이 아무리 밝기로 남복을 한 이상에 무슨 염려가 있사 오리까" 누가 묻거든 나와 형제간이라고 대답을 합시다. 지 금 향하고 가기는 다른 곳이 아니라 무수막 건너 앞구정 사 는 나의 고모댁으로 가려 하는데, 나의 이종형님이 상해로 장사를 다니시는 터이니 필경 댁에 아니 계실 테지마는, 우 리 고모 아주머니께서는 범절이 정대하사 우리들이 들어오 는 것을 보시면 얼마쯤 반가이 여기사 좋은 방침을 가르쳐 주실 터이니 걱정 말고 어서 갑시다."
무수막고개라는 데가 경성 지근지처에 있으니, 평지일반으 로 여기고 넘나들지만, 만일 인가가 희활한 하향에 가 있게 되면, 영로에 한참여를 착실히 할 만한 곳이다. 장정이라도 급히 넘어가려면 다리가 뻑뻑하고 숨이 턱에 닿는데 더구나 귀골로 생장하여 대문 밖 일 마정을 못 걸어본 연희와 영록 이리요. 두 발이 통통 붓고 두 다리가 치저려 촌보를 걷기 가 어려운데, 덜미에서 사람이 쫓아오는 듯 정히 난당한 중 고개마루로서 사람의 소리가 지껄지껄 나며,
"이라 워 디여, 이라 이놈의 말아."
삐걱삐걱 찌걱찌걱 소몰잇군 말몰잇군이 나무를 싣고 떼를 지어 너른 길이 빽빽하게 내려오니,
"여보, 아니되었소. 우리 저 언덕 밑에가 숨어 있다가 다 지나가거든 갑시다."
"에그, 해인이 연락부절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고 영록과 같이 길 아래 언덕 밑 솔포기 밑에 가 숨도 크게 못 쉬고 앉았느라니, 그 소 몰잇군이 그 앞에를 막 내 려오자, 어떠한 자 삼사 명이 마주 올라오며 그 중 앞선 말 군을 향하여,
"여보, 말 좀 물어봅시다."
"무슨 말이요?"
"지금 이 길로 열사오 세 가량 되어보이는 총각"처녀가 가 는 것을 보았소?"
"무엇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 보았소."
"이 양반이, 이 길로 정녕히 갔는데 못 보았단 말이 웬 말 이요?"
"그 양반 생떼를 쓰네. 못본 것을 못 보았다고 하지, 어떻 게 하라오" 여보, 이 길로는 총각"처녀커녕 색시"신랑도 아 니 갔소."
그자들이 우두커니 서서 저희끼리 공론하는 말이라.
"여보, 이리로는 아니 왔나 보오. 이리 왔으면 말군들이 못 보았을 리가 없고, 보고서야 바로 일러주지 아니 할 리가 있소?"
"글쎄, 그러면 어디로 갔을까" 지소 순사가 분명 이리로 가 는 것을 보았다던데."
"순사의 말은 어디 분명합더니잇가" 처녀는 못 보고 학도 같은 남자 둘이 지나는 것만 보았다던데요."
"그러면 그 남자 아이 둘의 끄친 곳은 있겠지. 예까지 온 종적은 분명한데 간 곳이 없단 말인가?"
"그건 알 수 업소마는 한강길로 오는 사람더러도 물어 보 고, 뚝섬길로 오는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이 길로 오는 사람 보고도 물어보아도 못 보았다 각기 다 일반인데, 하필 이리 로만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우리 셋이 각각 갈라서 세 군데 로 쫓아갑시다."
그 중 한 놈이 핀잔을 탁 주며,
"이 사람, 우리가 그렇게 열나서 찾을 것이 무엇인가" 양반 이 시키는대로 예까지 와보았으니 고만이지."
또 한 놈이 화를 버럭 내며,
"여보, 그럴 수가 있소" 양반님네는 우리만 믿고 시키시는 데 채 찾아보도 아니하고 도로 간단 말이요" 아까 저 친구 말씀하시던 압구정까지 가보는 것이 옳으니, 한강이니 뚝섬 이니 다 고만두고 압구정으로 가보아서 만일 없으면, 한강 이고 뚝섬이고 찾아볼지라도 예서 도로 가는 것은 만만부당 하오."
지금 말하던 자는 즉 황공삼의 신임하는 하인이라. 압구정 에를 건너가 이진사집을 쏜살같이 찾아 들어가니, 이진사는 별사람이 아니라 영록의 고모부이니, 그는 오 년 전에 불행 하고, 그 아들이 당가하여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을 하는데, 본래 넉넉지 못한 가산이라 이 진사의 아들 이주사 가 상업에 길을 터서 집에 들어 있을 때는 별로 없고, 북경 과 상해를 문턱 드나들 듯하며 돈을 버는대로 꼭꼭 모아 자 기 집으로 환을 부쳐 논도 사고 밭도 사서 점점 발빈이 되 어 가는데, 이주사의 어머니는 곧 영록의 고모라. 비록 앞에 치마를 두른 부인일지언정, 정대한 범절이 좀체 남자로는 명함도 못 들일 지경이라. 그런 고로 영록의 부친 김의관도 자기 매씨의말이라면 대단히 어렵게 아는 고로, 서씨가에서 퇴혼하는 이야기를 고하였더니, 김씨부인이 열길 스무길 뛰 며 그런 변괴가 있으리 말리 하고, 반대 아니하고 허락한 자기 동생 김의관을 향하여 대단히 나무라는 것을 영록이가 역력히 듣고 본 고로, 얼마쯤 자기들을 두호하여 줄줄 믿고 그리로 향하고 가던 것이러라. 하루는 김씨부인이 자기 동 생의 소식도 궁금하고 영록의 혼인 일사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방장 편지를 써서 놓고 하인을 불러 보내려 하 는 차에. 부리는 노파가 들어오더니,
"김의관댁에서 하인이 왔어요."
"하인이 이 꼭두 식전에 어째서 왔단 말이냐" 무슨 일이 있다더냐?"
"간밤에 그댁 도령님이 도망을 하셨는데 댁으로 혹 오셨나 알러 왔답니다."
김씨부인이 깜짝놀라며,
"그게 무슨 소리냐" 도령님이 도망을 하다니, 그 하인 이리 들어오라고 얼핏 불러라."
하인 하나이 노파를 따라 들어오더니 뜰 아래서 허리를 굽 신 절 한 번을 하며,
"소인 문안드립니다."
김씨부인이 내다보며,
"오, 판득이 왔느냐" 무엇이야, 도령님이 어디를 갔어" 그 게 무슨 소리냐?"
"도령님께서 간밤에 주무시다가 슬며시 어디로 가셨는데, 온 댁내가 도무지 모르고 계시다가 오늘 새벽에 건너댁 작 은아씨가 어디로 간 곳이 없다고 불끈 뒤집히는 통에 의심 이 나셔서 작은 사랑을 열어보시니까 도령님도 아니 계셔 요."
"그러면 도령님이 앞 댁 작은 아씨와 함께 어디로 갔단 말 이냐?"
"그는 자세 알 수 없읍니다마는, 그 댁 작은아씨가 어디로 가시자 댁 도령님께서도 아니 계시니 그 아니 이상합니까"
그러니까 만구 일담이 같이 도망을 하였다고 한답니다."
김씨부인이 혀를 툭툭 차며,
"잘 되었다. 경위없는 일을 기어코 하려고 하더니. 너희들 이 댁에는 왜 왔느냐" 도령님 댁에 온 줄로 알고 왔느냐?"
"댁 영감 마님 내외분께서 걱정하실뿐더러, 앞댁에서는 오 늘이 대례날인데 신부아씨가 그 모양으로 부지 거처이자, 댁 도령님이 아니 계시니까 그 댁도 그댁이려니와 제일 신 랑 양반이 펄펄 뛰며 어떻게 야단을 하는지, 두 댁 하인까 지 나서서 사면 수색하는 중, 댁으로 혹 나오셨나 하여 소 인을 앞세우고 이렇게 찾아 나왔답니다."
김부인이 화를 버럭 내며,
"에이 괴악한 놈들, 댁에는 온 이도 간 이도 없다. 잔소리 말고 썩 들어가거라. 그러나 철모르는 어린 것이 어디로 가 서 고생을 하노! 그것이 어떤 자식이야! 우리 친정 오대 독 자로 금이냐 옥이냐 하는 것인데, 저게 무슨 변이란 말인구"
내가 아무래도 집에 가만히 앉았을 수가 없다. 들아가서 우 리 영록이를 어떻게 하던지 찾아야지, 그대로 내버려 두었 다는 참혹한 고생을 시킬 터이라."
하고 문안에서 나온 하인을 쫓아보낸 후 즉시 교군을 차려 자기가 문안으로 들어오는데, 김씨부인이 비록 부인일 법해 도 하례배의 통사정을 남자보다 못지않게 하여, 강을 건너 고개를 당도하면 교군에 내려 번번이 걸어 넘어가는 터이 라. 교군은 앞세우고 자기는 지팡이를 짚고 찬찬히 무수막 고개를 넘어오는데, 밤새도록 서리에 결었던 흙이 무심히 겨드락 길로내려오다가 신 바닥에 녹은 흙이 미끄러지며 뒤 로 덜컥 넘어지며 지팡이가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김씨부인 이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이렁나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며,
"에그머니, 길도 미끄럽다. 하마하더면 어떻게 할 뻔했어!
그러나 내 지팡이는 어디에 떨어졌을까" 에그, 저것 보게, 저기 내려가서 자빠졌네."
하고 길 아래 겨드락으로 그 지팡이를 집으로 내려간다.
이때 영록과 연희는 찾아오던 하인들이 압구정으로 가는 양 을 보고 진퇴유곡이 되어 돌아가도 못하고, 그 하인들 회정 하는 거을 보아서 기어이 압구정으로 나아갈 작정으로 숨었 던 솔포기 밑에 가 쥐 숨듯 하고 있어 감히 내다보지도 못 하더니, 별안간에 어디로서 휘익 소리가나며 몽둥이 하나가 머리 위로 들어오더니, 자기 있는 앞에서 고삐 한 길이만치 가서 떠어지는 양을 보고 더럭 겁이 나기를,
"인제는 큰일났다! 아까 찾아가던 놈들이 필경 우리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매질을 함부로 우악하게 하며 쫓아오나보 다."
하여 수각이 황당히 있더니, 인적이 저벅저벅 나며 누가 그 막내 떠어진 곳으로 오는 것을 보고서, 연희는 더욱 겁 을 내어 솔가지 뒤로만 들어가는데 영록이가 와락 뛰어나가 그 삶을 탁 붙잡더니,
"에그, 아주머니!"
김씨가 지팡이 집기에만 골몰하여 그 곁에 영록이 있는 것 을 미처 못 보았다가, 아주머니 보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 곧 영록이라 손목을 턱 잡으며,
"이애, 네가 이게 웬일이냐" 에그, 저 도령은 또 누구냐?"
"말씀이 장황해서 여기서는 여쭐 수가 없사오니, 아주머니 저희들을 우선 살려주셔요."
"무슨 곡절로 네가 예 와 있는지는 모르겠다마는 내가 지 금 너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니 같이 들어가자. 네 아비에 게 말을 하여 과히 꾸짖지 아니하도록 하마."
"죽으면 죽었지, 지금 집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읍니다."
"정 그러면 우리 집으로 나아가자. 글쎄, 저 도령님은 누구 냐?"
"차차 알으셔요. 그러나 아주머니댁에도 가기가 어려운데 요."
"무엇이 어려워?"
"저희 찾아간 하인들이 아주머니댁으로 나갔는데요."
"응, 그래서 말이로구나. 그놈들이 왔기에 내가 소리를 질 러 쫓아보내고 궁금함을 못이겨 내가 지금 너의 집으로 들 어가는 길이다."
하며 연희를 자세자세 여겨보더니,
"옳지, 이제 보니까 저 도령이 도령이 아니로구나. 네가 어 쩌자고 남의 집 처녀를 이 모양으로 데리고 나섰느냐" 오냐, 이곳에 오래 지체할 수 없다. 나 타고 온 교군에 너희 둘이 타고 우리 집으로 어서 급히 가거라. 나는 천천히 걸어갈 터이니."
김부인이 분주히 길 위로 올라서서 앞에서 기다리는 교군 군을 불러 영록과 연희를 태운 후, 교군 앞 휘장을 꼭 가리 어 떠나 보내고, 자기는 지팡이를 짚고 뒤를 따라 들어와, 뒷방으로 영록 일행을 데리고 들어가 자세한 말을 묻는 것 이라.
"글쎄, 이 자식아, 너는 어찌했던지 남의 집 귀한 처녀를 어찌하자고 이 모양으로 데리고 나섰단 말이냐?"
"아주머니께서 자세한 사정을 모르시니까 이렇게 걱정하시 기 쉬우시나, 제 말씀을 여쭙는 것을 들으시면 다 통폭하실 터이올시다."
하고 자기가 동리 사람의 전하는 말을 듣고 궁금증이 생겨 서, 서주사 집 뒷담에 사다리를 갖다놓고 담 너머 넘겨다보 던 말로, 그 담 안 오동나무 가지에다 연희가 목을 매어 죽 으려 하는 것을 보고 급히 뛰어내려가 구제하던 말로, 그 길로 담을 같이 넘어 남복을 시켜 데리고 압구정을 향하고 오던 말로, 나무장수를 만나 길 밑 언덕에 가 둘이 숨어 있 느라니까, 찾아 나오는 하인들이 말군과 수작을 하고 고개 로 넘어가던 근경이며, 압구정으로 가자니 찾아나간 하인들 의 거취를 알 수 없고, 문안으로 들어가자니 만사 와해가 되겠어서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있던 형편을 역력히 고 하는데, 연희는 아무 말 없이 두 눈에서 더운 눈물이 더벅 더벅 떨어져 옷깃을 적시더라. 김씨부인이 넋이 없이 앉아 듣다가 두 아이의 등을 뚝뚝 두드리며,
"에그, 기특들 한지고! 오냐, 걱정말아라. 고생이 진하면 낙 이 오는 날이 있느니라. 내가 너희 파혼한다는 말을 듣고 만만불가한 줄로 말하였건마는, 네 아비는 저 신부의 집에 서 먼저 퇴혼 언론하는데 감정이 생겼는지, 첫대 허락을 하 여놓아서 자식들이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 놓았구나! 그러 나 너희들이 내게 와 있는 것을 만일 알게 되면 필경 좋지 못한 효상이 생길 것이니 너희들은 꼼짝 말고 이 방안에 꼭 들어 있거라. 내가 하인배를 단속하여 이대 말을 일체 밖에 못 내게 하고, 내가 지금 슬며시 문안으로 들어가 눈치를 좀 보마."
"아주머니께서 잘 주선하여 주시기만 바라옵니다."
"오냐, 걱정 말아라.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일이 있다. 너 희 둘이 기왕 저 모양으로 된 터에 잠시라도 피차에 혐의스 러운데 아주 오늘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성례를 하는 것이 가하다."
하고 즉시 대례를 설비하고 영록과 연희로 교배를 시킨 후 자기는 분분히 교군을 차려 친정으로 들어왔더라.
의관이 그 아들을 잃고 두 눈이 캄캄한 중, 황가의 야료김 에 창피 막심하여 어찌할줄 모르고 있는 중 자기 매씨가 들 어오는 것을 보더니,
"누님, 들어오십니까" 우리 집에는 큰 변이 났어요."
"글쎄다. 하인들 편에 말은 대강 들었다마는, 그 일이 어찌 된 곡절이냐?"
"무엇이 어떻게 된 곡절이야요. 서씨가에서 퇴혼한 것은 누 님께서도 다 알으셨지요?"
"알았지, 그래서?"
"그 집에서 퇴혼을 그 모양으로 하더니 이 뒷집에서 살던 황공삼이라는 자와 혼인을 정하여 오늘이 성례할 날이더랍 니다."
"황공삼이라니, 부산으로 가서 사는 난봉놈이로구나."
"예, 그자올시다."
"그래서, 오늘이 성례날인데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
"엊저녁에 이슥토목 영록이가 제 방에서 글을 읽다 자기에 어디 갔으랴 하고 아무 뜻도 아니하였더니, 오늘 동이 막 트자 서씨가에서 신부가 부지거처라고 야단법석이 나더니, 우리 집으로 영록이 있고 없는 것을 알러 하인이 왔기에, 나는 영문도 모르고 되 큰소리를 하며 그 하인놈을 꾸짖었 더니, 웬걸요, 이놈이 참말 없어졌읍니다그려. 그 자식이 평 시에 아비의 말을 잘 복종하기에 그런 거조 할 줄은 꿈도 아니 꾸었더니, 이놈이 이런 짓을 하였으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서씨 가에서는 자기 딸을 당장 찾아놓으라 고 별별 야료를 하는 중, 제일 황가놈은 별별 흉악한 소리 를 다 하며 저리 야단을 한다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 단 말씀이오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저희만 자식을 잃었다더냐" 우리도 자 식을 잃고 기막히기는 피차 일반인데 뉘게 지다위란 말이냐
" 오냐, 그 집에서 누가 와서 또 무엇이라고 하거든 대답할 말이 없어 걱정이냐" 글쎄, 너부터 지각이 없느니라. 그 집에서 아무리 퇴혼 의논을 하더라도 네가 나 이르던 말대로 허락 을 말 일이 지, 앞 뒤 생각을 도무지 아니하고 그 모양으로 쾌쾌히 대답하더니, 잘 되었다. 잘 되었다. 아무리 자식이기 로 무엇이 잘못하였다고 나무래" 이애, 걱정 말고 어디 가 있던지 내버려 두어라. 그 지경으로 저희들의 뜻이 합하여 나간 이상에 만 번 찾으면 무엇하니" 그 신부가 황가에게로 다시 갈줄 아느냐" 열이 나서 찾으려는 황가가 더욱 우습다.
제가 무슨 턱으로 찾아" 그럴지라도 성례를 하였다거나 함 례를 한 신부가 그 모양으로 갔으면 넉넉히 제 계집이라고 찾으려니와, 무슨 턱으로 제가 찾아놓아라 말아라 한단 말 이냐?"
"그 집 신부 일사는 하여하고, 이놈의 거취나 알아야 아니 합니까" 어린 것이 아무 철없이 어디로 가서 무슨 지경이 되었는지 그 아니 걱정입니까?"
"그야 아비된 마음에 심려가 되겠지마는 이 일이 모두 너 의 자취니라. 신부로 말한대로 내가 길러 내나 다름없이 익 숙히 알지마는, 아이들이라 할 수 없이 영리하고 분명하여, 시비 경위를 넉넉 분석할 만하고, 또 우리 영록이는 여간 똑똑하냐" 부모의 처리하는 일이라도 의리에 벗어나면 행치 아니할 줄을 깊이 짐작하기로, 내가 무엇이라고 하더냐" 그 집에서는 아무리 미친년의 말에 고혹하여 퇴혼을 하려 한 대도 우리는 결코 허락할 일이 아니라고 아니하더냐" 어른 이 저희들에게 실체를 하여놓고 그 지경으로 나간 저희들을 무슨 입으로 나무라느냐?"
"글쎄올시다. 누님 말씀을 진작 들었더면 자식고생을 아니 시킬 것을, 그 집에서 하는 양이 하도 아니꼬와 선뜻 허락 을 하였읍니다그려. 그 놈이 그 신부를 데리고 누님댁으로 나 갔나 믿었더니, 누님댁에도 아니 가고 어디로 갔을까요"
서씨가에서도그 말을 잃고 초절을 할 뿐 아니라 소위 황가 가 어떻게 야료를 하는지, 저자가 필경 경찰서까지라도 호 소를 할 모양인데 그 아니 큰일이오니까?"
김씨부인이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을 하여보더니,
"오냐, 걱정 말아라. 황가가 만일 경찰서에 호소를 하여 네 게 무슨 침탈이 돌아오거든, 내가 나서서 다 말하마. 먼저 사주 왕래까지 하여 뇌정한 혼인이 정작이지, 뒤뿔치기로 제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
그때 마침 대문 밖에서,
"이리 오너라."
소리를 메붙이는 듯이 지르더니,
"이댁 영감 여쭈어라."
하는지라 김의관이 그 매씨와 하던 말을 중지하고 마주 나 아가며,
"누구시오" 저 사랑으로 들어오시오."
황공삼은 연치가 창창한 소년일 뿐더러, 한동리에서 살때 에 저의 어른이 김의관과 막역지우라, 조석으로 추축하던 터이라, 김의관이 황공삼을 친자질같이 길러내다시피 하였 거늘, 사랑으로 와락 달려들더니 반말 지껄이로 한바탕 야 로를 한다.
"여보, 당신은 무슨 뾰족한 수로 가식놈 시켜 남의 계집을 빼돌리오" 당장 찾아놓아야지, 아니 찾아놓고는 못 뱃길걸."
"이 사람, 자네가 어떻게 하는 말인가" 내 자식을 시킨 일 도 없거니와 내 자식이 뉘 계집을 빼어간 여부도 모르거늘, 찾아놓아라 말아라 하며 딱딱 으르노?"
"압다, 점잖은 이가 뻔뻔도 하오. 당신 아들이 뉘계집을 빼 어갔는지 정녕 모르오" 똑똑히 좀 들으시려오" 서주사의 딸 은 즉 내 계집인데, 밤사이로 간곳이 없자 당신 아들도 도 주를 하였으니 그 일이 뉘 조화요" 아무 관계가 없으면 하 인은 왜 각처로 찾아보냈읍더니잇가" 공연히 어름어름 말고 서 진작 찾아놓아."
"이 사람, 그 신부로 말하면 내 자식과 정혼을 하여 주단 거래까지 하였다가 졸지에 퇴혼은 하였네마는 자네 처라는 말은 금시초문이고, 또는 그 신부 도주하자 내 자식이 없으 니까 데리고 간 줄로 말을 하나보네마는 내 자식이든지 그 신부를 찾기 전에야 어찌 알아서 빼어갔느니 찾아놓으라 하 노" 이 사람, 내가 자네 선장과 죽마고교로 친밀히 지냈은 즉, 고인지자 즉오자로, 자네가 곧 내 자식 일반이어늘 말버 릇을 함부로 하여가지고. 응, 괴악한지고!"
황가가 소리를 버럭 질러서,
"당신이 어떻게 하는 말씀이오" 당신이 우리 선친 친구기 에 그렇지, 좀더 친근하였더면 우리 어미니까지 빼어가겠구 려. 오늘 내로 아니 찾아놓는다는 큰 봉변하오리다. 말버릇 을 잘하도록 행세를 하지, 그까짓것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 은 약과요, 약과야! 옳지, 사주까지 보냈더란 말 하는 것을 들으니까 자기 며느리로 알고 자식 시켜 빼돌렸군! 사주를 백 번 보냈으면 퇴혼한 이상에 소용이 무엇이야. 정작 혼인 택일까지 하고 오늘 성례하려던 나는 어디로 가고! 길게 말 할 것 없이 이렇게 옥하사담할 것 없이 경찰서로 가서 재판 을 합시다."
김의관이 기가 막혀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할 뿐인데, 김씨부인이 안문 안에서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듣다 가 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들여다보며,
"여편네가 남의 집 사내 양반에게 말하는 것은 실례지마는, 저 양반은 조그맣서부터 한동리에서 길러내다시피 한 터이 니 무슨 흉허물이 있사오리까" 그런데 지금 내 아우와 수작 하는 것을 대강 들었거니와 서시가 규수 있고 없는 것이 댁 에 무슨관계며, 내 아우가 무엇을 알았다고 재판을 하자고 하시오?"
"여보, 당신이 나를 길러내지 말고 젖을 먹였기로, 부인네 가 나서서 말씀이 무슨 말씀이요?"
"동기 일신인데 아무리 남녀는 다를지인정 내 아우가 당한 일에 말을 좀 못할 것이 무엇이요" 여보, 젊은 양반이 너무 이러지 말으시오. 장가를 들려면 어디 가합한 신부가 없어 서 하필 남의 완정한 신부에게 장가를 들려고 몰경계한 거 사를 하오" 우리는 서씨가에서 퇴혼을 청하기로 그 집에서 어떻게 할 처사를 보자고 내버려둘 따름이지, 김지와 성례 를 시키는지 이지와 성례를 시키는지 도무지 몰랐거늘, 그 신부 어디로 간 것을 왜 이집에 와서 지다위를 하며 재판을 하자 마자 하오?"
"그 신부를 이 주인의 아들이 데리고 도망을 하였으니까 그렇지요."
"그 신부를 내 조카가 데리고 간 것을 어찌 그리 분명히 알으시오" 내 조카가 서씨가에를 어려서는 한집안처럼 다녔 지마는, 근자에는 일체 투족을 한적이 없고, 조카놈 뿐 아니 라 이 집 하인배도 노소 물론하고 그 집에를 왕래치를 아니 하는 터인즉, 그 신부 가고 아니 간 것을 알 필요도 없고, 내 조카로 말하면 그 놈이 지각이 없어서 어디로 갔는지 어 른에게 온다 간다 말이 없었으니, 그 신부 데려간 여부를 어찌 안다고 이집에 와서 지다위를 하시오."
황공삼이가 건넌 산 꾸짖기로,
"어, 별일 다 보았네. 사네들 말하는데 아낙네가 참섭이 무 슨 참섭이람?"
눈을 심술이 뚝뚝 듣게 뜨고 김씨부인을 건너다보며,
"어서 들어가시오. 아낙네가 참섭할 일이 아니오. 당신이 이 모양으로 성군작당 말한다고 내가 할 말 못할 리도 없 고, 재판 못할 리도 없소. 아무 소용 없으니 공연히 내 입에 서 언짢은 말 나오기 전에 어서 들어가시오."
"여보, 댁은 어머니도 없고 할머니도 없소" 내가 나이로 해 도 댁 어머니 연기가 넉넉하고, 동리간에서 한 집안처럼 지 낸 터에 말버릇을 함부로 해가지고, 에, 해괴해라. 재판을 하거나 먼지판을 하거나 생각대로 하시오그려. 누가 왼눈이 나 깜짝할 줄 아는구먼. 우리 집에 와 떼가 웬 떼야" 우리 영록이가 그 집을 왕래하여 그 신부와 잇삿이라도 남 보는 데 아울러 보았으면 오히려 어찌해" 도무지 그 집과 상관이 엇는 터에 왜 와서 떼야" 우리 영록이도 남만치 똑똑한 것 이 저와 단단히 정혼하였던 신부가 다른 사람에게로 시집을 가게 되니까 분하고 화나서 어디로 간 것인데, 그 자식이 남들 알기에는 시들해도 우리 집에서는 금지옥엽같이 여기 는 것이요. 왜 자세 알지도 못하고 그것에게다 향하여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모두 하오" 정장을 한다면 누가 그리 겁 을 내오" 생각대로 하구려. 정장을 해서 정확한 증거를 잡아 내야지, 만일 그렇지 못하면 내 손에 못 배기리다."
"이런 제기,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계집 잃고 눈이 뒤집 히게 된 나보다 한층 더 뛰는걸. 정장을 하든지 말든지 내 마음대로 할 것이지 당신의 건고 들을 내가 아니오. 걱정 말으시오. 필경 어느 끝이 어디 닿든지 귀정을 날이 있을 터이니, 얼마나 기승을 부리고 잘 배기나 봅시다."
하더니 뒤도 아니 돌아보고 나간다.
김씨가 자기 동생을 향하여,
"이애, 안으로 들어오너라. 무슨 이야기 할 일이 있다."
"예, 들어가겠읍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김의관이 황가가 와서 야료하는 것은 몇째 걱정이오, 제일 애가 타서 못 견딜 일은 영록의 종적을 모름이라. 황가 간 뒤에 넋이 없이 앉았다가 자기 매씨가 무슨 말을 이르려고 들어오라고 하기에 즉시 들어오니, 김씨가 조용히,
"이애, 이 일을 어찌하여야 옳겠느냐" 저놈이 정녕 그대로 있을 리 만무하여 정장을 하고야 말 터인데‥‥‥."
"정장하면 당했지, 억지로 어떻게 합니까" 그까짓 일은 시 들해도, 영록이 놈이 어디가 잘 있는지 못 있는지, 죽지나 아니하였는지 꼭 미칠 듯 싶습니다."
"이애, 그는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 애들이 지금 우리 집 에 와 있다."
김의관이 일변 놀라고 일변 반기며,
"그 애들이 누님댁에 있다뇨?"
"에그, 요란스럽다. 가만히 말을 해라."
"누님댁에 하인들이 첫새벽에 찾아갔다 왔는데 그러면 누 님께서 속이셨읍니까?"
"하인 왔을 때에는 없었지."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이야요" 그 애들이라니, 저집 처녀가 참말 그놈과 같이 갔어요?"
"이야기를 다 하자면 기가 막힌다."
하더니, 자기가 하인 급보를 듣고 즉시 떠나 들어오다가 고개 너머서 영록과 연희 만나던 근경을 차례로 말하고 착 수 성례시켜 집에 감추어둔 일을 설파하니,
"저놈이 알면 큰 봉변을 할 터인데 어찌하자고 일을 그렇 게 하셨읍니까" 그 처녀 아니면 우리 영록이 장가 못 들일 라고 그 모양으로 구구히 성례를 시키셨읍니까?"
"저런 말이 있나" 혼인을 말로 흥성하듯 무르는 것이 아닌 데, 어른이 되어 저희들이 그른 거조를 한 대도 아무쪼록 엄금함이 가하거든, 황차 저희들은 의리를 삼엄하게 잡고 죽기로써 변경치 아니하려거늘, 어찌 그 뜻을 성취하여 주 지 아니한단 말이냐" 그런 몰각한 말은 다시 말고 선후 방 침이나 생각하여라."
"누님 말씀이 그르시다는 것은 아니오나, 황가 놈의 억지가 필경 그대로 있지를 아니할 터이으니 그 아니 걱정이오니 까?"
"그놈이 정소곧 하면 네집 내집 할 것 없이 엄밀히 수색을 할 터인즉, 우선 저 아이들을 우리 집에 두어서는 발각될 염려가 있은즉, 이 길로 기별하여 광주산성 우리 외가로 가 있게 하자."
"기왕 그리된 일에 어떻게 하는 수가 있읍니까" 누님 처분 대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 기별을 하자하니 하인이 하나 둘 알아서 소 문 퍼지기가 십상팔구인즉, 바로 내일 첫 새벽에 내가 집으 로 나아가서 조차하는 편이 옳겠다. 황가가 정소를 하기로 밤 동안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
이날 영록이는 저의 고모가 문안으로 들어간 후 그 집 뒷 방에 연희와 같이 꼭 숨어 있어 숨도 크게 못 쉬고 있는데, 밤이 삼경 가량이 되어 밖에서 술렁술렁하며 문 열어 부치 는 소리가 덜걱덜걱 나더니 안잠자던 노파가 뒷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서방님, 큰일났읍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응, 왜 그러나?"
"웬 놈들인지 모두 머리에 흰 수건을 질끈질끈 동이고 긴 몽둥이를 각기 휘두르며 문을 박차고 들어와 지금 안방"건 넌방을 구석구석 뒤집니다."
영록이가 그 말을 듣고 그 대답할 여부없이 연희 손목을 이끌고 뒷문으로 뛰어나아가 신발도 미처 못 신고 뒤꼍 수 도 구멍으로 기어 나아가 산 길로 천방지방 도망을 하여 어 느 바위밑에 가 엎드려 가만히 동정을 살피니, 사면이 고요 하여 아무도 쫓는 사람이 없는지라 그제야 숨을 돌려,
"여보,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소" 그놈들이 다른 놈이 아니 라 필경 황가가 우리 여기 와 있는 것을 알고 수색하러 보 낸 모양이니, 도로 들어갔다가는 봉변을 기어이 할 터이요, 향하여 갈 곳도 없은즉 이 아니 딱하오?"
"죄많은 이 사람이 진시 죽어 이 세상 버렸더면 귀중하신 터에 오늘날 고초를 아니 당하실 것을, 쓸데 없는 인생이 살아 있다가 이 지경을 당케 하오니, 진실로 몸을 둘 곳이 없나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요" 이 사람으로 인하여 부인이 고초를 당하였다 함은 가커니와, 부이으로 인하여 이 사람 고초 당 한다는 말씀은 만분 근리나 하오" 피차에 뉘 탓 할 것 없이 모두 우리의 팔자 소관이니 장황히 말씀 말으시고 당장 박 두한 화색을 모면할 도리나 생각합시다."
"‥‥‥."
"자, 우리가 이곳에만 이렇게 있다가 날이 밝으면 오도 가 도 못할 터이니 부인은 너무 심려말으시고 이곳에 가만히 은신하여 있으면, 내가 비밀히 도로 가서 그놈들 동정을 살 펴보고 와서 가든지 은든지 좌우간 하십시다."
하고 여나문 걸음을 채 못 가서 사람 몰려오는 자취가 우 루루 나는지라, 영록이가 내놓던 발길을 도로 움츠러뜨리어 언덕 밑으로 가서 연희와 한 뭉치가 되어 엎드려 있느라니, 그 사람들이 점점 그 아으로 가까이 오는 모양이라.
"여보, 저놈들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우리가 이 곳에 그대로 있다는 발각되기가 첩경 쉬우니, 저놈들이 더 가까 이 오기 전에 우리 저 아래로 진작 멀찌기 가십시다."
"에그,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은가?"
하고 영록의 손목에 매달려 겨드락길로 더듬더듬 내려가다 가 두 사람이 발을 냅다 놓는다는 것이, 위험하게 든든히 놓이지 못한 돌을 디디어 그 돌이 뚜루루 내리 굴러, 둘이 걷잡을 새 없이 곁묻어 따라 내리구르다가 절벽의 솔방울 떨어지듯 뚝 떨어지는데, 인명이 재천이라 죽을 사람이면 세상없이 보호자가 많더라도 의외의 횡래지액으로 죽고야 말고, 살 사람이면 세상없이 위험한 지경이라도 의외에 구 원자가 있어서 살고야마는 것이라. 영록 내외가 내리구르던 그곳은 뚝섬 맞은편 강 위 언덕이라 휘어잡을 나뭇가지 하 나 없고, 위에서 하나가 구르면 둘셋 벗을 청하여 무수히 와르를 내리구르는 목침만한 베개만한 돌 뿐이요, 그밑은 여러 수십 길 되는 강물이라 아무라도 게서 그 모양으로 내 리굴러 놓으면 하릴없이 그 강물에 가 풍덩 빠져 고기 배에 장사를 지내고 말지라. 당장 영록 내외의 내리구르는 광경 을 사람이 곁에서 보았으면 가슴이 한줌은 되고 마음이 아 슬아슬하여 전신에 소름이 쪽 끼칠만한데, 그때는 어두운 밤이라 누가 곁에 있대도 보지를 못하였을 터이요, 본래 사 람도 없으니 저 불쌍한 어린 내외를 누가 달려들어 구원하 여 주리요! 경각내 달린 두 생명이 번개같이 구르다가 급기 탁 떨어져서 넋을 잃다가, 한구한 후에야 정신을 수습하여 눈을 떠서 두루 두루 살펴보나,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고 다만 물결 소리가 두 귀에 들리며 몸이 저절로 흔들리 는지라, 영록이가 손을 내밀어 이리 더듬 저리 더듬 하는데 마침 정밤중에 돋는 달이 동편 하늘로 불그레 올라오며 맑 은 빛이 영록의 가슴에 가득히 비치는데, 그제야 자세 둘러 본즉 아무도 없는 빈 배 안에 두 몸이 담겨 있는지라, 꿈도 같고 생시도 같고 머리 위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요, 눈앞 에는 와글와글 끊는 물결 뿐인데, 사면에 인적은 없고 다만 물새의 꿈꾸는 소리가 이따금 나는지라, 기절하여 늘어진 연희를 흔들흔들 하며,
"여보, 정신 좀 차리오, 여보 여보!"
연희가 그제야 눈을 떠보며,
"에그, 여기가 어디어요?"
"예가 배 안인가 보오. 나도 어찌된 일인지는 정신이 얼떨 떨하오마는 가만히 생각한즉, 우리가 저 위에서 실족하여 내리굴러서 하릴없이 이 강물에 떨어져 죽을 사세인데, 우 리 둘이 죽지 말라는 팔자로 여기 빈배가 있자 배 안에 떨 어졌구려."
"세상에 신기한 일도 있소. 나같은 쓸데없는 여자는 열 번 죽어 관계 없으나 당신은 막중 존귀하옵신 남지신데, 이 배 가 이곳에 있는 것이 천행이 아니오니까!"
"여보, 우리가 천행으로 이 배에 떨어져 생명은 살았소마 는, 날이 밝기 전에 진작 믐을 숨어야 할 터인데 아까 우리 오던 길을 찾자니 저 절벽에를 올라가는 수가 없고, 이 배 안에 그대로 있자 하니 무슨 소조가 또 있을지 모르겠소구 려."
"에그, 참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래도 죽고 저리 해도 죽기는 일반이니, 저기 잇는 노를 집어가지고 이리 저리 저어봅시다. 필경 저 건너로 건너야 하겠지."
"에그, 아스시오. 배를 부리는 구경도 못하셨을뿐더러 섬섬 약질이 잘못하다 큰 실수하시기가 쉬우니, 똑 내 의견대로 하시는 것이 가하실 듯합니다."
영록이는 연희 영민한 생각에 무슨 좋은 의견이나 생각 할 줄 알고 반가이 묻는 말이라.
"예, 무슨 의견이요" 좋을 도리만 있으면 그대로 하다 뿐이 요?"
"당초에 이 고생이 모두 누구로 인하여 생겼느냐 하면 천 지간 죄악이 심중한 내 한 몸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온데, 종래 고집을 하여 이 모양으로 있다는 목전에 무한한 화색 이 생길 것이오니, 차라리 이 몸이 죽어 당신에 누가 없으 시게 하는 것이 당연하오니 한 번 결단한 뜻을 막지 말으소 서."
하며 뱃전을 향하여 물로 뛰어들려 하니, 영록이가 깜짝 놀라 연희의 허리를 훔쳐 붙잡고 급한 말로,
"여보 여보! 죽을 제 죽기로 이리 급할 것이 무엇 있소" 내 말을 좀 듣고 죽어도 늦지 아니하오."
"나를 붙잡으시는 것은 인정에 혹 그러실 듯하나 내가 살 아 있다는 둘의 생명이 다 위태하여 장차 어찌 될지 모르 니, 그 지경이면 이는 우리 두 집이 모두 복종 절사되기를 스스로 취함인즉, 이 몸 하나 죽는 것을 조금도 쾌념치 말 으시고 귀체를 보중하옵소서. 아무쪼록 구고 양위분을 효양 하옵시고, 나머지 겨를이 계시거든 이 사람 친부모의 비상 한 고생이나 면토록 하여주시면 죽은 고혼이라도 감격함을 마지 아니하겠나이다."
"글쎄, 이리 앉아서 말을 좀 듣고 죽어도 죽어요."
하며 연희의 허리를 잔뜩 안아 배 가운데로 앉히고,
"내가 할 말은 별것이 아니오. 부인이 지금 이 모양으로 죽 고자 함은 용혹무괴나, 다만 한가지k지는 모르는 것이요. 어 찌하여 그러냐 하면 우리 둘이 이 모양으로 손목을 이끌고 나온 것은 피차에 마음이 합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말자 함 인 즉,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 사람의 도 리라. 지금 부인이 저 강물에 몸을 던져 세상이 버리면 나 는 무슨 면목으로 홀로 살아 있으리요. 차라리 저 물에 같 이 빠져 죽은 혼이라도 서로 떠나지 아니할 터인즉, 구태여 조급히 굴지 말고 이 배를 끌러 저 건너로 건너가서 차차 무슨 변통을 하는 것이 가할 듯싶소."
연희가 가만히 생각하여본즉 자기가 그 말을 듣지 않고 죽 었다는 정녕코 영록도 따라 죽을 모양이라, 냅뜨던 마음을 스스로 참고,
"이 사람이 죽고자 함은 결코 당신의 구만리 전성을 위함 이요, 일호도 고생을 싫어함이 아니러니, 이 사람 곧 죽으면 홀로 살아 게시지 아니하겠다는 중난한 말씀을 하시니, 도 리어 몸둘 곳이 없어 다시는 죽을 뜻을 아니 두옵나니 심려 말으시고 계시옵소서."
"옳지, 잘 생각하셨소. 죽기는 왜 무단히 죽는단 말이요"
아무쪼록 살아서 내두사를 아니 보고. 그러나 날이 멀지 아 니하여 밝은 터이니 배를 저어 저 건너 육지로 가서 아무데 로 가던지 가봅시다. 설마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읍뉜 다."
하고 절벽 석각에 배 매어놓은 끈을 끄르고 노를 집어 이 리저리 젓는다. 급한 물결을 건너가려면 장정이라도 노를 젓기에 힘이 들어 까딱 실수하면 얼마쯤 하류로 흘러 내려 가거든, 하물며 약질 영록이는 평생에 노를 손에 만져본 적 이 없는 터에, 가벼운 배로 급한 여울물을 어찌 무사히 건 너가리요" 배가 중류에 가 뜨더니 노를 아무리 저으려 하여 도 물결에 채여 마음대로 아니될 뿐 아니라 노 끝이 배 밑 으로 휘어 들어가며, 영록이가 따라 들어가려 하니 하릴없 이 노를 집어 내던지고 뒤로 물러섰더라. 그 배가 끈 떨어 진 뒤웅박 모양으로 만경창파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빙빙 돌 며 한없이 내려간다. 그 때가 대낮 같으면 오고가는 내왕선 이라든지 고기 잡는 어선이라도 있어 그 모양으로 떠나가는 배를 붙잡아주련마는, 천지가 적막한 밤이라 연강 포촌 앞 에 충충 들어선 배가 모두 닻매고 잠자는 사람 뿐이라. 영 록이가 겁결에 아무리 목이 터지도록,
"사람 살리오, 사람 살리오!"
소리를 지른들 알아들을 사람이 어디 있었으리요" 천행으 로 그 날 새벽에 물 아래 바람이 슬슬 치불어, 물결대로 가 면 순식간에 서해 바다로 떠내려갔을 손바닥만한 배가, 둥 싯둥싯 동이 활짝 밝도록 간 것이 겨우 노돌 다리 위로 뇌 성벽력 같은 소리가 나며 난데없는 종이 한 장이 머리 위로 빙빙 돌아 배 가운데에 와 툭 떨어지는지라, 영록이가 그 경황없는 주에도 심히 이상하여 한 손으로는 뱃전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그 종이를 집어 보니, 글 석 자가 분명히 씌어 있는데, 이는 곧 자기 장인 서주사의 명함이라 깜짝 놀라 열물만 왈칵왈칵 토하고 엎드려 있는 연희를 흔들흔들 하 며,
"여보, 좀 진정을 하여 이것 보오. 어디로서 장인의 명함이 날아왔소."
연희가 명함을 받아 뒤적뒤적 보다가,
"세상에 이상한 일도 있어라. 우리 아버지 명함이 어디로 해서 예 와 떨어졌을까" 명함이 다른 종이 같이 얇고 가벼 운 것이 아닌즉, 바람에 날아왔을 수도 없고, 육지 같으면 누가 가져왔다고나 하련마는, 이 물 가운데 온 이도 간 이 도 없는데."
"이 일이 필경 하나님 조화나 귀신의 재주로 우리를 경정 시키는 것인데, 우리가 우매하여 개닫지를 못하는 것인가 보오. 그런즉 우리는 아무쪼록 살아나서 장인을 뵈옵는 날 이런 말씀을 여쭙시다."
하여 아무쪼록 연희가 죽을 마음만 아니 주도록 말을 하는 데, 연희가 그 명함을 손에 들고 우두커니 들여다 보며 눈 물이 비오듯 옷깃을 적시는지라 영록이가 만단 위로하며 그 배가 저절로 어디 가 닿기만 바라는 데 물 위로부터 나룻배 한 척이 노를 부지런히 저어 나는 듯이 쫓아오며 소리를 높 이 질러,
"그 배 게 좀 섰거라."
영록과 연희가 그 소리를 들으니 덜미에 벼락이 내리는 듯 정녕 황가가 알고 잡으러 쫓아오는 듯 싶으나 노와사앗대질 을 못하고, 빨리 가든지 더디 가든지 배 처분만 바라는 터 이라. 어찌하는 수가 없어 속담과 같이 잡아 잠수시오 하고 엎드려 있느라니, 곁묻어 그 배가 쫓아와서 뱃전을 턱 붙잡 으며 누가 우둥우둥 올라오는지라 영록과 연희가 겁결에 감 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엎드려 있는데, 그 사람이 연 희 앞으로 가까이 와서 손목을 잡아 일으키며,
"네가 이게 웬일이냐" 얼굴을 들어 나 좀 보아라."
연희가 그 음성을 듣더니 고개를 번쩍 들어보다가 와락 그 사람 앞으로 달려들며,
"에구, 아버지‥‥."
당초에 서주사가 변호사 사무원으로 부산항에 내려가 황공 삼의 집에 주인을 정하고 있으며 재판 일을 기다리더니, 우 연히 몸살이 나서 수일 신음하는데, 공삼이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진심껏 구원을 하는중, 졸지에 병세가 위독하여 오장을 에이고 혀가 굳어 말을 못하는 것을 마침 그곳 자혜 의원장이 심방차로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즉시 황공삼에게 입원 치료케 주선하라 하여 여러 가지로 진찰하여 보고 대 증투제로 약쓴 효험으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정신을 차려 차려 기동을 하였는데, 입원한 이후로 황공삼이도 현영이 없고, 자기 서울 집에 편지를 여러 차례 부쳐도 도무지 회 답이 없는지라. 궁금함을 못이겨 더 치료치 못하고 원장에 게 퇴원하기를 청하여 공삼의 집으로 와본즉, 사랑무을 첩 첩이 닫았는지라 심히 괴이하여 하인을 불러 묻는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행랑문이 덜컥 하더니 하인놈 나와 인사를 하며,
"나으리, 행차해 계시오니까" 이제는 병환이 쾌차합셔요?"
"오, 나는 나았다마는 너의 서방님은 어디 가셨느냐?"
"서방님께서 일전에 무슨 긴관이 계시다고 어디를 가셨는 데, 아직 환댁을 아니해 계셔요. 서방님께서는 아니 계시지 마는 사랑으로 들어오십시오."
하여 사랑문을 열고 불을 땐다, 쓰레질을 하다, 자리를 까 는데, 서주사는 사랑에 홀로 들어앉았느라니 심히 무료하여 다시 하인을 불러 묻는 말이라.
"이애, 너의 댁 서방님이 어디를 떠나셨으며 떠나 실 때에 아무 말씀도 아니 계시더냐?"
"서방님께서 지난 날 스무아흐렛날 떠나셨는데, 아무 분부 도 없으시고, 다만 며칠 아니되어 오신다고만 하셨읍니다."
"내 말씀은 아니하시더냐?"
"소인은 아무 말씀도 못 들었읍니다."
서주사가 그 말을 하여 머리맡 벼루 밑을 보니까, 무슨 편 지 수지가 하나 있는지라 무심히 집어서 펴보다가 눈이 둥 그레지며 그 편지를 척 접어 하인이 아니 보도록 감추고,
"오냐, 네 방으로 물러가 있거라."
"예."
하인이 제 방으로 들어간 후에 그 편지를 다시 펴서 찬찬 히 보니 이는 곧 자기 부인 임씨의 필적인데, 그 사연이 분 명한 자기 편지 답장이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보고 또 보다가 혼잣말로,
"세상에 이상한 일도 있다. 내가 병이 들어 집에 편지 한 적이 없는데 답장이 웬일이며, 사연에 연희 혼인을 이미 퇴 하였으니 아무 염려 말라는 구절 편지의 말과 같이, 신랑을 어서 불복일로 올려보내라는 구절, 연희는 저사하고 말을 아니 들으려 하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모르겠다는 구절이 모 두 천만 뜻밖의 말이니, 어이것 큰일났고! 내가 재판은 못한 대도 지에를 바삐 좀 올라가 보아야 하겠다."
하고 그 날 밤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여 올라오더라. 황공 삼은 서주사의 필법을 모방하여 위조 편지를 서주사 어머니 와 부인에게 보내어 연희 혼인을 퇴하고, 제게로 후취를 주 도록 하여, 서울서 오는 답장은 일변 감추어 서주사를 아니 보일 뿐 외라, 서주사 앓는 것을 좋은 기회로 여기어 약에 독한 물건을 혼합하여 먹이어 정신을 잃고 혼도하자, 자혜 의원장이 마침 와보고 데려가니, 제 마음에 얼마쯤 저옹히 여기는 중 일변 생각하기를, (제가 그 독약을 먹었은즉 아무리 치료를 잘한다 해도 희 생키 어려울 터이요, 희생을 한 대도 하루 이틀에 추서지를 못할 터이니, 그 동안에 서울로 가서 제 딸과 성례를 하여 합례까지 하여놓았으면 제 자식을 보기로 나를 설마 어찌할 라구") 하고서 분분히 서울로 떠나 올라가느라고, 편지수지 나지 는 것을 미처 못 간수하였더라. 급히 서울을 득달하여 성례 를 하려는데 철옹서아같이 믿고 조금도 의심 아니하였던 신 부가 부지 거처로 없어졌는지라 눈이 뒤집히고 분이 탱중하 여 제 하인과 서주사의 집 하인을 사면 각처로 늘어놓아 찾 아보며, 김의관의 아들 없어진 것을 트집을 삼아 천둥같이 땅땅 으르며 야단법석을 하면서도, 제 속으로 은근히근심하 기를, (다 쑨죽에 코 쳐지기기로, 이런 놈의 일도 있나" 고 박살 할 김가놈이 꾀어내지를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 없이 나와 혼인을 곧잘 했을 것을. 고런 씨 못 받을 놈의 자식 보았나!
제가 아무리 데리고 도망을 하였지마는 승천입지는 못하였 을 터이니 내 손에 잡히고야 말리라. 고놈은 철 모르는 것 이 제 계집 되려던 신부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된다니까 꾀 어서 데려가기가 오히려 용혹무괴어니와, 그년의 고모년이 우습지 아니한가! 옷자락이 몇 쪽이나 되는지 아니꼽게 출 반주하여 지껄여가지고. 궐녀의 행동이 아무래도 수상한즉 내가 경찰서에가 고소를 하여 단단히 심문을 하도록 한 터 이다. 아니 그것은 그렇지마는 한 가지 걱정이 서주사가 병 이 소복되어 서울로 올라오거나 이런 소문을 듣게 되면 죽 도 살도 다 틀릴 터인데, 경찰서에 고소를 하였다가, 관청 일이라 하는 것이, 매양 여러 날 지체되기가 쉬운데 미처 처결되기 전에 서주사가 올라오면 내 정적이 모두 발각될 터이니, 아서라, 정장할 것 없다. 위풍으로 정소를 하다고 으르기만 하고 주먹다짐을 하여 족불리지로 그 계집아이를 찾고야 말겠다.) 하고 김의관 집에를 뼈염도리로 가서 길길이 뛰며 야료를 하다가 김씨부인이 나서서 말막음하던 것이 종래 의심이 나 서 김의관을 끌어 앞세우고 압구정으로 나아가려 하니, 김 의관이 무엇이라 방색할 말이 없어 부득이나서기는 하였으 나 속마음으로 은근히 겁이 나기를, (내가 아니 가려면 이놈이 더욱 의심을 내어 저 혼자라도 가 보고야 말 터인데, 저것들이 철모르고 저의 고모댁을 영 고탑만치나 여기어 탄평히 있을 모양이니 큰 봉변 나지를 아니하였나" 누님게서 먼저 나아가셨으니까 설마 미리 그애 들 종적을 감추어주시기는 하셨을 터이지. 아니, 누님께선들 황가가 정소곧 하면 우리 집과 내외 종척의 집을 모두 수색 할 줄은 짐작하시겠지마는 오늘 이렇게 급자기 황가가 나아 갈 줄은 뜻을 못하셨을 터인데! 에라. 사람이 너무 나약하면 못쓰느니라. 저놈과 같이 가보아서 그 애들 종적이 발각 아 니되면 좋고, 그렇지 못하여 저놈의 눈에 뜨이는 날이면, 저 놈은 성례를 못하였고, 우리 영록이는 성례를 하여 합궁까 지 하였으니 쾌쾌히 말하여 지지를 아니하여야 하겠다.) 이 모양으로 마음을 도사려 먹고 압구정에를 나아갔더라.
김씨부인이 황가와 그같이 언힐을 하다가 자기 집으로 급히 나오기는, 황가가 만일 정소를 하면 경관이 자기 집까지 수 색하기가 쉬운즉, 진시 타처로 옮기어 종적을 감추어주리라 하였더니, 중로에서 하인의 급보를 듣고 집으로 창황히 와 본즉, 밤 동안에 초한 풍진이나 겪은 듯이 안팎 문짝이 떨 어지고 찢어져 턱턱 자빠지고 농장 의거리가 모두 깨어졌는 데 안잠자는 노파가 마주 나오며,
"에그, 마님, 이를 어찌합니까?"
"이것이 웬일인가?"
"에구, 간밤에 강도가 들어와서 댁 세간을 모두 도둑하여 갔답니다."
"그까짓 세간은 잃으면 대사인가마는, 저어, 여보게, 이리 가까이 좀 오게."
하더니 귀에다 입을 대고 가만히,
"여보게, 다동댁의 새 서방님과 새 아씨는 어디 가 숨어있 나?"
노파가 기막힌 대답으로,
"이런 변 보십시오. 처음에 강도놈들이 우루루 몰려 오는 것을 보고 제 생각에는 문안서 또 그 서방님과 아씨를 찾으 러 오는 줄 알고 급히 여쭈었더니, 두 분이 황황 분주히 뒷 문으로 나아가셔서 수도구멍으로 기어도주를 하시더니, 어 디로 가셨는지 이때까지 도무지 소식이 없읍니다그려."
김씨가 깜짝놀라며,
"그러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면 찾아보기가 좀 하지. 아 마 어느 덤불에가 숨어 있어서 집에 무슨 일이 그저 있는 줄 알고 못 들어오나 보구먼."
"마님께서 그 서방님 댁에 와 계신 것을 소문내지말라고 당부는 하셨고, 누구를 시켜 찾아봅니까" 마음에만 답답해서 이때까지 지냅니다."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아무 철모르는 것들이 겁 결에 뛰어나가서 고생을 여북 할까! 고생은 고사하고 오래 지 아니하여 큰 봉변이 있기가 쉬운데, 어디가 깊숙이 은신 이나 하여 있었으면 좋으련마는."
그 즉시 노파를 데리고 담 뒤로 돌아가서 이리저리 형편을 보아가며 숨을 만한 곳마다 모조리 뒤져보다가. 필경 종적 을 모르고 무한 걱정을 하며 집으로 들어오는데, 황가가 자 기 동생 김의관을 끌고 무슨 일이 당장 날 듯이 달려 들어 오더니, 불문곡직하고 내정으로 들어와 김씨부인을 딱 으르 며,
"여보, 공연히 이러지 말고 내 계집을 어서 내놓으시오."
"저분이 미쳤나, 실성을 했나" 댁 계집이 누구인데 내게 와 서 내놓으라시오" 젊은 양반이 경계없이도 함부로 덤벙이 오."
"내 계집 나 찾는 것이 경계가 아니오" 공연히 진작 내놓 아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는 좋지 못하리다."
"여보, 댁 생각대로 하시오. 아무 겁 없소. 필경 서씨집 규 수를 댁 계집이라고 말하나 본오만는, 그 규수가 우리 집에 없으니까 장황히 할 말은 없으나 그 규수로 말하면 우리 영 록이나 댁이나 정혼하였기는 일반이니, 누구든지 먼저 성례 하는 사람이 차지할 것인데, 댁에서 투철히 계집이라고 나 설 것은 무엇이요?"
"어째 못 나서요" 그래 나와 영록인지, 고 발길자식과 그 신부에 대한 권리가 똑 같단 말이요" 뻔뻔스럽게, 하는 말을 들은즉 분명히 그 규수를 이 집에 감추어둔 게로군."
하며 불문곡직하고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다락 속으로 벽 장 속으로 건넌방으로 부엌 광 속을 모조리 뒤지다가 다시 김의관과 시비를 한다.
"여보, 나잇살이나 자신 이가 행세를 음흉하게 말고 어서 바로 토설을 하시오."
"이 자식, 이 후레자식, 나도 삼대 독자를 잃어버리고 열이 나서 찾으러 다니는데 무슨 말을 바로 하라 하느냐" 아니할 말로 네 말과 같이 내 자식이 그 규수와 도망을 하였더라 도, 네가 와서 넉넉한 말이 무엇이야" 너는 그 규수와 혼인 을 정했든지 아니했든지 알 수가 없다마는 내 자식과는 벌 써 몇 해 전에 합사주까지 하였은즉, 설혹 어른들이 열백 번 퇴혼을 하려한대도, 저희들이 말을 아니 듣고 같이 도망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면 어른들도 할 말이 없고, 더구나 너야 아니꼽게 무슨 턱으로 투철히 내 계집이라고 나선단 말이냐?"
"이애, 이말 좀 보아라. 남의 계집을 빼돌려 제 자식과 도 망을 시키고 적반하장으로 되짚어 큰소리를 한다."
하며 연치이니 존장이니 다 불계하고 함부로 욕설을 하며 한참 야료를 하는데, 제 심복으로 데리고 올라온 하인이 숨 이 턱에 닿아서 오더니 대문 밖에서,
"서방님, 서방님."
하고 황공삼을 부르니, 공삼이가 제 하인의 음성을 듣고 마주 나아가,
"너 어찌해서 이렇게 급히 와서 부르느냐" 서주사 댁에서 신부 어디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더냐?"
하인이 가까이 와서 공삼의 귀에다 입을 대고 무어라 무어 라 두어 마디를 하니까, 공삼의 눈이 둥그래지며 아니 아무 말 없이 그 하인과 같이 영등포 가는 길로 나는 듯이달아난 다.
이때에 김의관 남매는 황가의 거동을 보고 더럭 겁이나서,
"누님, 저놈이 웬일이오니까" 저 하인이 와서 무엇이라고 하더니 저 모양으로 검다 쓰다 말없이 급히 가니 그 아니 기상하오니까" 그러나 이 애들은 어디 가있읍니까" 압다, 그 놈 집 뒤짐할 때에 그 애들 어디 있는 데는 모르고 은근히 어찌 겁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이애, 그놈 야단하는 통에 미처 너더러 이야기를 못하였다 마는, 간밤에 나 없는 승시하여 강도 놈들이 돌입하여 우리 집 가산 집물을 모두 도둑하여 가는 통에, 그 애들은 문안 서 저희들을 잡으러 나온 줄 알고 뒤꼍 수도 구멍으로 빠져 서 몸을 피하였다는데, 이때까지 들어오지를 아니하여서 내 가 집안 하인들과 이때까지 사면으로 찾아보아도 어디로 갔 는지 싹이 도무지 없구나."
"에구머니, 그러면 인제는 큰일났읍니다. 필경 황가의 하인 놈이 그 애들 어디 가 있는 소문을 듣고 급히 와서 통기를 하니까, 그 놈이 그 모양으로 쫓아간 것이올시다. 그래, 저 런 못된 자식, 이 근처 어디 있다가 도로 들어오지를 않고 어쩌자고 멀리 번져갔다가 저 봉변을 당하노!"
"에그 참, 그 지경 되었으면 어떻게 하여야 좋으냐" 불들리 기곧 하면 저놈에게 어린 것이 죽을 곤경을 겪겠구나. 이애,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빨리 쫓아가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놈이 어디로 갔는 줄알고 쫓아가오?"
"지금 얼마나 갔겠느냐" 급히만 쫓아가면 응당 만나기도 쉽겠고, 또 그놈이 우리 영록이를 붙잡으면 자연 왁자지껄 할 터이니 그 신부는 배어갈지라도 네가 대들어 영록의 몸 에 우악한 매가 아니 가게 하려무나."
김의관이 자기 매씨의 재촉도 당할 뿐 아니라, 자기 마음 에도 어찌 황망하던지 아무 연구 여부없이 영등포 편으로 숨이 턱에 닿게 쫓아가며 사람을 만나는대로,
"여보, 이리로 나이 스물두엇 되어 보이고 옥색 삼팔두루마 기에 중절모자 쓰고 새 구두 신고 가는 사람 보았소?"
하고 어떤 자는,
"나는 자세히 못 보았소."
급기 영등포 정거장에를 당도한즉 부산으로 내려가는 차가 막 떠나가려 하는데, 힐끗 보니까 황공삼이가 기차안에 앉 았는지라, 김의관도 표를 사가지고 그 차에를 오르려 한즉 벌써 기적 소리가 삐익 나며 차가 떠나가는지라, 망발의 발 로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김의관이 우두커니 서서 나는 듯이 가는 차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혼자 생각하는 말이라.
(어,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히 왔더면 저 차를 타고 쫓아갔 을걸. 그러나 저놈이 저 모양으로 급히 차를 타고 가노" 아 무리 궁구를 하여보아도 짐작할 수가 없는데, 아마 우리 영 록이가 그 신부를 데리고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쫓아와서 붙 들어 싣고 저의 집으로 가나보다. 내가 예까지 아니 왔으면 이어니와 예까지 와서 저놈 가는 것을 확실히 보고야 모르 는 체하고 도로 갈 수가 있나! 만일 내가 모르는 체하고 도 로 갔다가 저 몹쓸 놈이 우리 영록이가 살해하면 그런 눈에 서 피 나올 일이 있나! 오냐, 내게 차비할 돈은 넉넉히 있으 니 이 다음 차를 타고라도 쫓아가서 시원히 내 눈으로 보고 야 말겠다.) 하고 차시간을 눈이 빠지게 기다려 떠나가느라고 자기집 에, 그렇게 가노라 통기도 못하고 차에 올랐더라.
그때에 서주사는 황공삼의 집에서 자기 부인의 필적을 보 고 의심이 더럭 나서 급급히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날이 막 밝자 차가 노돌 다리를 당하여는 기관수가 기관을 틀어 전속력으로 아니 가고 천천히 건너가는 중, 강물을 내 려다보니 물 위로서 낚시 니루 한 척이 둥싯둥싯 떠내려오 는데 사공도 없고 다만 어린아이 돌 뿐이라 심중에 심히 이 상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의 딸 연희와 자기의 사위될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가 분명한지라, 급한 마음대로 하면 차에 뛰어내려서라도 만나보련마는, 육지에서라도 기차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려든 하물며 강물 위 차 안에서 어찌 뛰어 내리리요" 조급한 마음을 억제하고 남문 정거장에 와 내려 서 되짚어 인력거를 타고 노돌로 나아가 독선을 잡아 타고 그 배를 쫓아가본즉 과연 영록과 연희라. 영록이 탄 배를 자기 탄 배에 매어 달고 뛰어 들어가 얼싸안고,
"이애, 연희야, 너 이게 웬일이냐?"
연희가 십생 구사 중에 저의 아버지를 만나 어찌 반갑고 기쁘지 아니하리요" 저의 아버지 품에 푹 안기며,
"에구, 아버지."
서주사가 기가 막혀 일변 두 아이를 자기 타고 온 배로 옮 기고 일변 사실을 묻는다.
"이애, 연희야, 네가 웬 곡절로 이 지경이 되었느냐?"
"에구,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 죽을 죄를 지었읍니다."
하고 흑흑 흐느껴 울기만 한다.
"죄는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울지 말고 말이나 하여 라."
"‥‥‥‥."
"이 자식아, 갑갑하다. 왜 말을 아니하느냐?"
연희가 울음을 그치더니, 당초에 저의 어머니"할머니가 관 상쟁이 말에 고혹하여 퇴혼하려던 말로, 저의 아버지의 편 지에 혼인 옮기어 정하자는 사연을 보고 저의 외조 임통정 을 청하여 김의관 집에 보내던 일을 역력히 고하니, 서주사 가 깜짝 놀래어,
"저런 변괴가 있나! 내가 그 동안 앓느라고 세상을 몰랐는 데 편지는 무슨 편지를 하였단 말이냐" 혼인을 인륜 대사인 데 한 번 언약을 하여 주단까지 받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냐" 아마 너의 어머니가 환장이 되었나 보구나. 내가 아 니한 편지를 청탁하고 그따위 짓을 집구석에 있어 하였단 말이냐?"
"편지가 한 번만 온 것이 아니라 연거푸 여러 번을 왔는데, 저도 보니까 아버지 친필과 흡사하여요."
서주사가 무릎을 탁 치며,
"옳지, 이놈의 협잡이로구나. 그래서 혼인은 어디로 다시 정하라고 하였으며, 너희들이 배는 어찌해서 타고 어디로 가는 모양이냐?"
"혼인은 우리 이웃에서 살던‥‥‥."
"응, 황공삼이?"
"예."
"그래서?"
"불복일로 성례를 하라고 아바지 편지가 오자 황가가 올라 와서 성례를 하려고 하여요."
"저런 죽일 놈 보아. 그놈이 밤낮 내 글씨를 모본하기에 제 문필이 짧으니까 공부하는 줄만 알았더니, 흉한 뜻을 품은 줄이야 누가 뜻이나 하였어, 그래서?"
"저는 죽으면 죽었지 그대로 할 수가 없어서 먹도 아니하 고 머리를 싸고 누웠더니, 집안에서 잔치를 설비한다, 황가 가 올라왔다 하는 양을 보온즉, 밝는 날이면 변통없이 욕을 면치 못하겠기로, 어른들 보시는데 쾌히 낙종이나 할 듯이 좋은 기색을 보여, 마음들을 터놓으시도록 한 후에 밤들기 를 기다려 뒤꼍 오동나무에 가 목을 매어 죽으려는 차에."
"네가 자처를 하려고 목을 매더랬었어" 저런 변이 있나! 그 래, 어떻게 살아났느냐?"
연희는 다시 대답이 없고 영록이가 서주사 앞에 절 한번을 공손히 하더니,
"제가 미거한 탓으로 영애가 그 지경을 할 뿐 아니라 지금 이 곤란까지 당케 하였사오니 심히 황송하오이다."
하고, 연희가 식음을 전폐하고 황가에게 시집을 아니가려 한다는 소문이 났기로 애석한 마음을 못 이겨 사람을 은근 히 놓아 동정을 탐지한즉, 연희가 별안간에 좋은 낯으로 내 일 성례하기를 낙종한다는 말을 듣고, 분심이 폭발하여 밤 에 잠을 못 자고 고생고생하다가, 슬며시 내눈으로 그 거동 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사다리를 갖다놓고 담 넘어가 던 말로, 담 안 오동나무 가지에 연희가 목매는 것을 보고 놀라 뛰어내려 구게하던 말로, 같이 그 담을 넘어와 남복을 시켜가지고 압구정으로 도주한 말로, 중로에서 곤경을 겼다 가 자기 고모를 만나 같이 나가서 작수 성례하던 말로, 웬 놈들이 성군작당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또 도 망하던 말이며, 강절벽에서 실족하여 둘이 내리구르던 말이 며, 요행으로 빈배 안에 가 떨어져 그 강을 건너가려고 배 매어놓은 끈을 끌렀다가 노질을 할 줄 몰라 그 모양으로 떠 내려오던 일장을 차례차례 고하니, 서주사가 듣기를 다하고 서 주먹을 뽑내어 뱃전을 땅땅 치며,
"저런 죽일 놈, 그놈이 흉한 심장으로 내 필적을 모본하여 내 딸을 입욕하려고. 어, 열 번 찢어죽여도 내분을 못다 풀 놈, 그놈으로 해서 죄없는 너희들이 공연히 비명에 수국 고 혼이 될 뻔하였구나. 오냐, 아무 걱정 말고 나와 같이 집으 로 들어가자. 그 놈을 당장 경찰서로 끌고 가서 문서 위조 법으로 고발하여 청 바지를 입혀놓을 터이라."
하고 사공 시켜 부지런히 노를 저어 용산 와 하륙하여, 전 차를 타고 남대문 dksRK지 와서서 주사가 무슨 생각을 하 더니,
"이애들, 이에서 내리자.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서주사가 두 아이를 데리고 대평동 어느 집으로 들어가며,
"어멈, 집에 있나?"
"누가 우리 집에 오셨읍니까?"
"응, 지금 올라오는 길일세."
"에그, 댁에서는 나으리께서 그렇게 오래 아니 올라오신다 고 아주 걱정 중으로 계시던데요."
"언제 댁에를 갔던가?"
"한 보름 전에 가 뵈옵고 요사이는 공연히 골몰을 해서 못 가뵈었읍니다."
"아범은 어디 갔나" 근자에도 고기잡이나 잘 하나?"
"잘이 다 무엇입시오" 벌써 못 살 때가 되느라고 간밤에 그물을 쳐놓고 날이 추우니까 어한을 하려고 술집에를 들어 갔다가 술이 취하여 누워 자고 막 밝자 강으로 나와보니까 어떤 몹쓸놈이 배를 도둑하여 가서 그래서 지금 눈이 뒤집 혀 온 강으로 돌아다니며 찾는다고 나아갔답니다."
주인 마누라가 제 말 하느라고 분주무하다가, 영록과 연희 를 보고 깜짝놀라며,
"에그, 작은아씨가 웬일이요" 김의관 댁 도령님도 왔네. 이 게 웬일인가" 나리 마님, 작은아씨와 저도령님을 어디서 데 리고 오십니까?"
"요란스러워, 떠들지 말고 저 애들을 자네 집에 좀 감추어 두게. 곡절은 차차 알고."
주인 마누라가 감히 다시 묻지도 못하고 영록과 연희를 방 으로 들어앉히며 입속의 말로,
"무슨 사단으로 작은아씨와 저 도령님을 우리 집에다 데려 다 두시며, 떠들지 말라고 당바를 하시나?"
서주사가 아이들을 맡기고 홀로 나가며,
"여보게, 영감 들어오거든 잃어버린 배가 지금 용산 앞 강 에 가 있을 터이니 공연히 애쓰고 찾으러 다니지 말고, 곧 용산 강으로 가보라고 이르게."
"나으리께서 어떻게 저의 배 용산 강에 가 있는 것을 알으 셔요?"
"이 다음 말하지."
하고 인력거를 불러 타고 급히 몰아 자기 집으로 오며 혼 자 생각이라.
(이놈이 내가 이렇게 올 줄은 모르고 뻔뻔스럽게 우리 집 에 가 턱 앉아서 요두전목을 하며 연희를 찾아놓라고 야료 를 할 터이지. 내가 쑥 들어가는 것을 보면 저놈이 아주 질 색을 하렷다! 내가 들어가는 길로 이 놈을 달아나지 못하게 꼭 붙잡고, 경찰서로 가야지. 자칫하다가는 놓치기가 쉬울 터이다.) 하며 자기 집에를 당도하니 대문을 꼭 닫았는데 사람의 소 리가 적적한지라 인력거에 선뜻 내려 가만히 서서 동정을 보다가 슬며시 대문을 열고 자취없이 들어가며 우선 사랑부 터 엿보니, 마루 위에 흙발자취가 어지러이 났는데 곁문이 척척 닫히어 아무도 없는 모양이라, 혼잣말로,
"이놈이 어디 가 있길래 우리 집에 없노" 마루에 흙발자취 를 보니까 한바탕 야단은 톡톡히 한 모양이로구나."
다시 발길을 내놓아 안으로 들어가니, 행랑마누라가 부엌 에서 툭 튀어나오며,
"에구, 나리마님 행차하시네."
그 대답은 하지도 아니하고 안방으로 바로 들어가려는데,
"이 댁에 아무도 아니계십니다."
"다 어디 가셨나?"
5
편집마누라가 비죽비죽 울며,
"그 동안에 댁에는 큰 변괴가 났답니다."
"응" 변괴라니, 무슨 변괴?"
"작은아씨께서 어디로 가셔서 사면 찾아도 도무지 종적이 없고, 황서방님은 작은 아씨를 당장 찾아 놓으라고 시시로 오셔서 어떻게 야단을 하시는지, 마님과 아씨께서 진지도 못 잡숫고 잠도 못 주무시며 애를 쓰시다가 못하여, 황서방 님이 어디 가신 승시하여 마님은 마님 조카님 댁으로, 아씨 는 아씨 친정댁으로 몸을 피하셨읍니다."
"황가가 어떤 놈인데, 댁 작은아씨 어디 간 것이 무슨 상관 이라고 찾아놓으라고 야료를 하더란 말인가?"
"에그, 저런 말씀 보시게. 황서방을 모르셔요" 나으리께서 작은아씨와 혼인을 지내라고 편지까지 하여 보내셨다는데 요?"
"그 말은 고만두고 대관절 황가가 어디로 갔냐?"
"황서방님이요" 그 서방님이 댁에만 와서 야단을 하실 뿐 아니라, 작은아씨와 먼저 정혼하였던 이 건너 김의관댁에도 가서 어떻게 야단을 치셨는지 모르는데, 그 댁 영감의 누님 댁이 압구정에 계신데, 작은 아씨가 게 가 있기가 쉽다고 김의관영감을 앞세우고 압구정으로 나아가셨답니다. 인제 오래지 아니하여 들오오실걸요. 그래, 작은 아씨를 찾아가지 고 들어오셨으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그 야단을 또 어 떻게 만나리 싶으셔서 몸들을 피하셨답니다."
"딱하신 일일세. 피신해 무엇해" 어서 가서 마님도 오시고 아씨도 오라 하게."
행랑 마누라가 대답을 하고 나아간 뒤에 서주사 홀로 앉아 궁리하는 말이라.
"이놈이 압구정에를 바로 알고 찾아가기는 하였다마는, 연 희가 있어야 아니 만나보랴" 연희를 못 만나고는 또 지다위 를 하러 들어올 터이렷다. 오, 이놈, 들어오기만 하여라. 하 늘 높은 구경을 단단히 시키리라. 곧잘 살던 집안이 이게 무슨 풍파란 말인고! 이 탓 저 탓 할 것없이 우리 어머니께 서 망령이시고, 나의 내자가 지각없는 탓으로, 그 괴악한 놈 에게 속고서 자식의 못할 노릇을 하고 남의 위세까지 하였 지. 그놈이 아무리 내 글씨를 모본하였기로 내외간에 내 글 씨를 그다지 몰라서 진가를 분별치 못하였담, 응! 다름이 아 니지, 소위 관상쟁이년에게 고혹하여 아무쪼록 영록에게 퇴 혼할 계교가 앞서서, 위조 편지를 보고도 눈이 어두웠던 것 이지."
장씨 조인의 조카 장시어의 집은 모교 근처라. 다동에서 얼마 멀지 아니한 탓으로 자기 아들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 인력거를 타고 거무하에 돌아와 자기 아들의 손목을 잡고,
"에그, 네가 어떻게 올라왔느냐?"
서주사가 자기 어머니 앞에 가 절을 하고 단정히 꿇어 앉 으며,
"그 동안 병환이나 아니 계셔요?"
"오냐, 나는 아무 병이 청승스럽게 없다마는 그동안 집안에 큰 변괴가 생겼구나."
"글쎄올시다. 지금 들어와 행랑마누라에게 대강 이야기를 들었읍니다마는 그런 일이 어디 있어요?"
"그리했느냐" 네 편지를 본즉 연희의 혼인을 퇴하면, 너 주 인 정하고 있는 황씨와 혼인을 지내겠다 하였는데, 내 마음 에도 퇴혼하는 것이 해롭지 아니 여겨 즉시 네 말대로 일변 퇴혼한다, 일변 불복일 성례할 준비를 하였구나."
"그래서오니까?"
연희도 당초부터 그 일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바락바락 반 대를 하다가, 나중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머리를 싸고 누워 있기에 일변 꾸짖고 달래기는 하면서도 은근히 큰 근심을 하였더니, 급기 저녁을 당하여는 이애가 좋은 낯으로 발딱 일어나 소세도 하고, 밤도 먹고, 성적하러 온 수모와도 이야 기를 다 하기에, 혹시 독한 마음이나 먹을까 염려하여 내가 제 방에 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있다가, 그 거동을 보고 서 적이 마음이 놓여셔 안방으로 와서 잠시 허리를 펴느라 고 누웠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본즉, 이 애가 간 곳이 없구나. 온 집안이 황황망조하여 사면으로 찾는데,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도 밤 사이에 어디로 도망을 하였다고 야단하는 것을 들은즉, 짐작컨대 저희들이 같이 도망을 한 모양인데."
"그래서오니까?"
"네가 올려보낸 황공삼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압다 젊은 사람이 영악도 하더라. 열 길 스무 길 펄펄 뛰어, 전하심 후 하심으로 혼인을 정할 제는 웬일이고, 성례 임박하여 빼돌 리기는 웬일이냐 마냐, 성례만 아니했다 뿐이지 당신의 딸 은 즉 내 계집이니 나무라도 깍아 세우고 돌로라도 다듬어 세우라고 야단을 하다가, 김의관 집에 가서도 어떻게 야단 법석을 하였던지 김의관이 그 사람에게 끌려 지금 압구정 매씨 집으로 찾아갔단다. 하나님 덕분에 그 애들을 붙들기 나 하였으면 좋겠다마는."
"어머님, 너무 걱정 말으십시오. 제가 그 동안 앓느라고 세 상을 몰랐는데 집에 편지가 무엇이오니까" 그게 모두 황가 놈의 흉계온데 어머님께서 꼭 속으셨읍니다."
하고 영록과 연희를 사지에서 구하여 데리고 오다가 중간 에 감추어 둔 일절을 조용히 고하니 장씨가 다시 놀라며,
"이애, 저런 죽일 놈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느냐" 이 놈이 들 어오면 나라도 대들어 칼로 배지를 갈라 분풀이를 하겠다.
그놈에게 꼭 속고 죽을 애를 다 썼지. 어른은 어쨌든지 그 철모르는 어린것들을 비명에 죽일 뻔하지 않았나!"
일변 임씨를 재촉하여 오란다, 밤이 이윽한 뒤에 영록 내 외를 데려다가 행랑것도 모르게 뒷방에 감추어 둔다 하고, 황가 들어오기만 고대하더라. 그때에 김의관이 둘째 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바로 황공삼의 집을 물어서 방장 자 기 아들 영록이가 그 집에 있는 줄로 여기고 바로 쑥 들어 가니, 황가는 겁결에 나는 듯이 제 집에를 달려와 또 무슨 후환이 정녕 있을 듯싶어, 가장 집물을 수습하여 가지고 종 적 모르게 고비원주할 작정이더니, 힐끗 보니까 김의관이 두 눈에 눈물 흔적을 후줄하게 흘리고 들어오는지라. 가슴 이 덜컥 내려앉아, (에구머니, 저 분네가 어찌해서 내려오나" 옳지, 벌써 서주 사를 만나보고 나를 잡으러 내려왔나 보다. 저자를 가만히 두었다는 당장 경찰서에 고발곧 하는 날이면 나는 속절없이 살지 못할 터이니, 에라, 죄를 한 번 지으나 두 번 지으나 일반이다. 미리 잡두리를 하여 나 살 도리를 해야 하겠다.) 하고 식칼을 손에 들고 문 옆에 숨어 섰다가 김의관이 막 들어오는 것을 힘껏 명문을 찔러 넘어뜨렸더라. 김의관은 그줄 저줄 다 모르고 황가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달래머, 연희는 황가가 내놓든지 말든지 자기 아들이나 살 려달라 하여 데리고 올라갈 작정으로, 아무 방비 없이 들어 가다가 황가의 독한 칼을 맞고 넘어졌는데, 황가는 그 칼을 다가잡고 두 서너 번 다시 난자를 하여 성명을 아주 결단시 켜, 부엌 뒤로 끌어다 아니 보일만치 대강 파묻고, 가장 집 물을 팔 여부없이 마침 있던 돈 수십 원만 가지고 도망을 하는데, 제 집에서 부리는 하인은 다만 모자 뿐이라 아들놈 은 서울을 데리고 갔다가 떨어져 있고, 그 어미 노파가 빈 집을 지키고 있다가 천만 뜻밖에 그 광경을 보고 무서움을 못이겨, 한편 구석에서 벌벌 떨고 섰는지라. 황가의 생각에, (저 마구는 비록 무식하나 나의 행흉을 목도하였은즉 그대 로 두었다는 폐가 필경 되겠다.) 하고 노파를 앞으로 부르더니 나직한 말로,
"여보게, 우리 여기 있다는 큰 봉변을 할 것이니 아무 말 말고 나를 따라가세."
노파가 간신히 대답하는 목소리로,
"어디로 가시자고 하십니까" 제 자식 옥이란 놈은 어찌하 여 아니 옵니까?"
"글세, 급하니 잔말 말고 가기만 해! 가면 옥이도 만나고 다 관게치 않을 것이니."
"그러면 갑시다."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 행담 속에 헌 옷가지를 주섬주섬 집어넣는지라 공삼이가 성화같이 재촉을 하며,
"그까짓 것은 가지고 가서 무엇하려나" 게 내버려 두게."
"아무리 헌것이라도 아니 가지고 가면 당장 무엇을 입습니 까?"
"가기만 하면 입을 것도 다 있어."
고 모양으로 재촉을 하여 가려하는데, 그때가 초승이라 달 은 없고 밤은 되어 지척을 분변키 어려운데, 바로 바닷가 으슥한 곳으로 나아가니, 사람의 소리와 등불은 일 마장 아 래나 되는 부두에서 들리고 보일 뿐이요, 언덕 아래 흉흉한 파도가 와글와글 끓는 것 같더라.
"나리마님, 이리로 어디로 가시렵니까?"
"가는 데가 있어. 누가 듣네, 떠들지 말고 이리 가까이 와 서 내 말 좀 듣게."
노파는 본래 저의 주인의 말이라면 지체 않고 거행하는 위 인인데, 더구나 그런 때를 당하여 어찌 주저하리요. 저벅저 벅 공삼의 앞으로 들어가니, 공삼이가 가장 무슨 귓속 말이 나 할 듯이 바싹 다가서더니, 노파의 두 어깨를 잔뜩 쥐고 언덕 아래로 밀뜨리니, 근력없는 노파가 어찌 장정의 힘을 당하리요. 풍덩 소리가 나며 물결이 사면으로 헤어지는 곳 에 무죄한 노파가 용궁 구경을 하게 되었더라. 황가가 혼잣 말로,
"옳다, 인제야 마음을 놓겠다. 내가 너를 죽이고 싶어 죽인 것은 아니니, 죽은 고혼이라도 원망은 깊이 말아라. 내가 이 다음 잘되면 해마다 제사나 잘 지내주마."
하고 그 즉시 부두로 내려와 진남포로 가는 배를 잡아타고 훌쩍 떠나버리니, 그날 그 밤에 그 일 난 것을 그 항구에 알 사람이 누가 있었으리요" 그 이튿날 해가 늦은 뒤에야 그 집에 사람의 소리가 도무지 없는 것을 의심내어, 하나씩 둘씩 가서대문 틈으로 엿보기도 하고 엿듣기도 하나 마침내 동정이 없거늘, 그제는 대문을 열어본즉 안으로 걸리지도 아니하였는지라 옥이 어머니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어허, 이게 웬일인가" 이 집에 사람이 없나" 있어도 죽었 나" 어찌해서 대답이 도무지 없을까?"
하고 안으로 들어가 이 방 저 방 문을 열어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다만 중문 뒤에 피 흔적만 낭자하다. 그 길 로 경찰서에 가 고발을 하니, 경관이 급히 출장하여 사면으 로 수색하다가, 필경은 부엌 뒤에 피묻은 남자의 시체 하나 를 발견하였는데, 그 집 주인은 나아간 지나 벌써 여러 날 이 되어 없고, 다만 하인 노파 밖에 없었는데 그 노파를 아 무리 찾아도 종적이 묘연한지라, 물어 볼 곳은 없고 시체의 사면을 조사하여 본즉, 속에 명함 두어 장이 있는데,
「김창희」
성명 삼 자 뿐이라. 일변 시체의 죽은 원인을 검사하고 일 변 노파의 종적을 수색하는데, 그 죽은 원인은 남의 칼에 찔려죽은 것이 분명하고, 노파의 거처는 그 살인의 원범을 알지 못하여 진력 형탐하는 중, 공삼의 하인 옥이가 압구정 에서 저의 상전을 잃어버리고 게 있잘수도 없고, 문안으로 갈 수도 없어 할 일없이 저 역시 부산으로 내려오는데, 총 총한 바람에 저의 상전에게 노자 한푼 못 얻고, 적수공권으 로 촌촌 걸식을 하여 아무 소문도 못 듣고 제 상전의 집에 를 찾아 들어가느라니, 별안간 어떤 사람이 와락 달려들어 턱 붙잡더니,
"너 이게 웬일이냐" 여기를 어찌하자고 들어오느냐?"
옥이가 흘끗 보니 이는 곧 제 외가로 척숙되는 한가이라.
"아저씨십니까" 왜 무슨 일이 있읍니까?"
"무슨 일이 다 무엇이냐" 예서는 남의 눈에 뜨이기가 쉽다.
저리 가자,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니."
하고 으슥한 수풀 속으로 들어가 전후 말을 다 이야기 하 니 옥이가 혀를 홰홰 내두르며,
"그러면 그 송장이 누구일까요?"
"그 시체를 경찰관이 검사한즉 별로 다른 증거는 없고, 명 함이 들었는데 김창희라고 쓰였더란다."
"김창희요" 에그, 그러면 서울 다방골 사는 김의관 영감인 가 보오이다. 그래, 저 일이 웬 곡절인가" 그 양반이 압구정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겨를 에 예를 왔던가요" 그래, 댁 서방님 오신 것은 아저씨가 못 보셨읍니까?"
"서방님이 언제 오셨단 말이냐" 나는 못 뵈었다. 나 뿐 아 니라 동리 사람이 아무도 뵈온 이 없길래 경관이 별별 채문 을 다 하는데, 그런 말이 없지?"
"어머니는 어느 때 어디로 가셨어요?"
"저런 딱한 일이 어디 또 있느냐" 어느 때 가시는 것을 뵈 었으면 물어나 보았고, 어디로 간 줄 알면 찾아다가 보게"
이애, 열없이 예서 어루대지 말고 진작 어디로 가거라. 공연 히 죄없이 봉변을 할라."
옥이는 비록 악한 사람의 하례로 있기는 하나, 천질이 제 상전에게 충성되고 제 부모에게 효행이 특이한 중, 의사가 과히 미혹지 아니한 터이라. 제 친적의 전하는 말을 듣고 얼핏 생각하기를, (응, 그만하면 대강 짐작하겠다. 아마 김의관이 아들을 찾 으려고 여기를 내려왔다 우리 댁 서방님을 만나 생 지다위 를 하니까, 서방님께서 그 일을 탄로될까봐 죽여버리고 우 리 어머니를 데리시고 어디로 가셨나보다. 내가 여기서 지 체하여야 소용없으니 진작 사면 팔방 돌아다니며 계신 데를 찾아서, 고생을 하나 낙을 보나 모시고 지내야겠다.) 하고 그 길로 제 척숙을 하직하고 정처없이 가더라.
이 때에 서주사는 자기 딸과 사위를 데려다가 김의관 집으 로 보내고, 날마다 한두 차례씩 건너가 잘 있는 것을 보니 마음에 든든하기는 하나, 사돈의 소식이 여러 날 없는 것이 심히 궁금하기도 하고, 황가놈을 잡아 버릇을 단단히 가르 칠 차로 그 어머니께 가정을 고하고 부산으로 내려온즉, 황 가를 잡기는 고사하고 자기 사돈 김의관이 그 지경이 되었 는지라, 일변 본집으로 전보를 하여 통지하고, 일변 경찰서 에 고소를 하여 범인은 곧 황공삼이니 하루바삐 포박하여 달라 하였더라.
영록은 서가 규수와 작배 동거하니 평생 소원을 성취하여 한없이 기쁘기는 하나, 자기 부친의 뜻을 거역한 일이 못내 황송하여 지내며, 부친이 여러 날 돌아오지 아니함을 십분 초민히 여기더니, 의외에 자기 장인의 전보를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덜미에 벼락이 내리는 듯, 애통함을 마지 못하 다가 주먹을 뽑내며 땅을 치고 벌떡 일어나 몸부림을 땅땅 하며 우는 자기의 어머니를 만류하며 고하는 말이라.
"어머니, 그만 그치시고 진정하십시오. 울기만 하면 돌아가 신 아버님이 살아오십니까" 아무쪼록 아버님 원수를 갚아드 려야 당연한 도리올시다."
"오냐, 너의 아버지 살해한 그놈을 하루바삐 잡아서 간을 씹어야 내 가슴이 시원하겠다."
"걱정 말으십시오. 제가 나는 비록 어리나 옛사람의 말에 정성이르는 바에 쇠와 돌을 가히 뚫은다 하였사오니, 오늘 당장에 어머님 앞을 하직하고 나아가 몇 해가 되든지 기어 이 원수를 갚아 아버님 천대에 계신 혼령을 위로하고야 말 겠나이다."
"네 말은 기특하다마는 어린 것이 어디 가서 그놈을 찾으 며, 설혹 찾기로 어떻게 원수를 갚는단 말이냐" 아무리 지원 극통하더라도 아직 참고 있어 하회를 기다리자. 설마 하나 님이 지시하시기로 죄지은 놈잡을 날이 있게 하시겠지."
"어머님께서는 그대 심려는 말으옵소서. 제가 아무리 나이 는 어리오나 정성을 다하오면 어찌 원수놈을 잡지 못하오리 까" 나이 어린 것을 빙자하고 집에 평안히 있어 불공심수를 갚지 아니하면, 이는 곧 불초자를 면치 못할 터이오니 목전 의 사정 절박함을 생각지 말으시고 쾌히 허락하심을 바라나 이다."
오씨가 영록의 말하는 거동을 보건대 아무래도 제 뜻을 막 기 어려운지라 한숨을 길게 쉬며,
"네가 정 그렇게 뜻이 들어가거든 마음대로 하기는 하여라 마는,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다가는 원수도 갚지 못하고 모 진 목숨이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어미의 가슴에 못만 더 박히게 할라."
"어머님 훈계대로 하오리니 아무 염려 말으옵시고 안녕히 계시면, 아무쪼록 하루바삐 돌아와 뵈오리다."
영록이가 그 어머니 앞에 하직을 하고 죽장망해로 나서려 하는데, 자기 부인 서씨 즉 연희가 역시 남복을 차리고 나 아와, 먼저 오씨 부인께 자기 남편과 같이 나아가 원수갚기 를 청한다.
"어머님께옵서 홀로 계시온데, 슬하를 떠나가겠노라 함은 자식 도리에 황송하오나 시아버님의 참혹한 일 당하심은 모 두 불초한 제 죄로 인연함이오니, 제가 비록 규중 여자오나 어찌 집에 편히 있어 원수놈을 찾아 갚지 아니하오리까" 바 라건대 미거한 말씀을 용서하옵고 장곡에 맺힌 뜻을 성취케 하여주옵소서."
"이애, 네 말이 그르다는 것은 아니다마는, 네가 나간대야 원수갚을 능력은 없을 것이요, 잘못하다가 나의 유한만 더 되게 하기가 십상팔구인즉 십분 다시 생각하여라."
영록이가 자기 어머니 말끝에 다시 이어 이르는 말이라.
"여보 부인, 부인의 말을 들은즉 용혹무비오마는, 그는 그 렇지 아니한 것이, 나는 밖으로 나아가 상사 나신 아버님 원수를 갚고, 부인은 집에 있어 생존하신 어머님 봉양을 하 여야 피차에 당연한 도리일뿐아니라, 나아간 내가 일이 여 의히 못되어 광일이 오래 된대도 마음을 놓아 집안 근심이 없을 터이니, 부인 이 집에 있어 어머님을 봉양하는 것이 오히려 나와 함께 나아가느니보다 나을 줄로 아나이다."
"이 사람이 비록 문견이 없으나 그런 생각을 못하였사오리 까마는, 둘의 힘이 하나보다 나은 것은 정한이치라, 오랫동 안 신고를 하시느니보다 우리 둘의 힘을 합하여 진작 보수 를 하고 돌아와, 어머님 슬하를 길이 모시는 것이 어찌 가 하지 아니하오리까" 변변치 못한 뜻이오나 이미 정하였사오 니 용서하여 주심을 바라나이다."
영록이가 그 뜻을 억제하기 어려움을 짐작하고, 도리어 자 기 어머니께 간곡히 고하여 내외가 동행케 되었더라. 내외 가 오씨부인께 하직을 고하고, 장차 장씨노인"임씨부인께 사 연을 고한 후, 먼저 부산으로 내려가기를 의논할 새 연희가 은근히 말하기를,
"우리 친정에 가서 하직을 고함도 불가하고 부산으로 먼저 가는 것도 역시 불가하오니, 어찌해서 그리하냐 하오면 우 리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나의 떠나는 것을 보면 저사 만류 하실 것이니, 불효의 말씀이나 아직 모르시게 하는 것이 옳 삽고, 부산에 방장 우리 친정아버님이 내려가셨은즉, 그놈 그 근방에 잇기곧 하면 자연 포박이 될 것인데, 내 생각에 는 그 놈이 벌써 멀리 도망하였지 그 근방에 잇을 리가 만 무하온즉, 부산으로도 갈 필요가 없나이다."
"그러면 어디로 먼저 갔으면 좋겠소?"
"규중 여자가 동서 방향을 모르오니 어디라 졸사간 말을 할 수 없사오니, 조선 지도 한 권을 사가지고 자세히 상고 하여 그놈이 가히 감직한 곳을 쫓아가며 찾아보는 것이 제 일 가할까 하나이다."
영록이가 그 말을 옳게 여겨 즉시 지도 한 권을 사가지고 사면 방향을 살펴본 후에,
"이놈이 결단코 육지로는 아니 가고 배를 탔을 터인데, 부 산서 배를 타고 내지로 아니 갔으면 원산이나 삼화로 갔기 가 십상팔구인즉, 우리 원산으로 먼저 가봅시다."
"아니 그렇지 아니하지요. 원산"삼화 두곳으로 의심이 들진 대 구태여 한 곳으로 갈 것이 아니오라, 우리 둘이 각기 나 뉘어 하나는 원산으로 가보고, 하나는 삼화로 가보는 것이 가할까 하나이다."
"천부당한 말도 하오. 나는 남자이니까 혼자 말고 반쪽이 간대도 무슨 일이 있겠소마는, 부인이 어디를 혼자 간다고 하시오" 만 번 가서 그 놈을 만나기로 어떻게 처지하는 도 리가 있소" 공연히 원수도 못 갚고 몸에 욕만 돌아오기가 첩경 쉬우니 그런 말은 두 번도 말으오."
"그렇게 말씀하시기가 쉽사오나, 그놈이 그물에 벗어진 토 끼 모양으로 하방으로 도망하여, 우리가 찾아갈 줄은 천만 의외의 일일뿐더러, 제 눈에 뜨일 것도 없고, 불행히 제 눈 에 띄기로 남복을 한 터에 제가 어찌 얼핏 알아보오리까"
그놈 있는 것만 아는 날이면 몸을 피하여 바로 소관 관청으 로 가서, 범인을 포박하여 달라 고발곧 하면 무슨 흐려가 있사오리까?"
연희도 일시 조급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 영록도 그 말이 근리한 듯싶어 다시 연구하여볼 여부없이 그리 하 자 허락하였는데, 이 일 보통으로 추측하면 인정 밖이라 하 기 쉬우나 그 내외 두 사람의 철천지한이 가슴에 꼭 차서, 그놈 어서 잡는 데만 정신이 팔려 혈혈단신이 서로 나뉘어 가기를 일호도 주저하지 아니함이러라.
두 사람이 각각 갈 곳을 정할새 연희는 진남포로 가기로, 영록은 원산으로 가기로 정하였는데, 영록이가 경인선 기차 를 연희와 같이 타고 인천항에 도착하여 연희를 전송하는 것이라.
전밤중 조수가 덜꺽덜꺽 몰아들어와 부두 앞을 탁탁 치고, 진터리에 덩그렇게 놓여 있던 풍범선들은 물 기운을 못이겨 낱낱이 둥둥 떠서 파도치는대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태외 지 장수들은 물건을 내어 싣느라고 사람의 소리가 와글와글 끓는데, 창창한 두 소년이 해안에 마주서서 눈물을 뿌리며 작별을 하는 광경은, 심양강 비파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듯 한없이 처량하고 연연한 경황은 차마 사람의 눈으로 못 볼러라. 한 소년이 방장 종배를 타고 떠나려 하는데 한 소 년은 잡았던 손목을 차마 못 놓고 나직이 묻는 말이라.
"여보,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면 하일 하시에 어디서 만난단 말이요" 일정한 후기가 있어야 아니하오?"
배 타려던 소년이 내려놓았던 발길을 다시 올려놓으며,
"글쎄올시다. 그는 처분대로 어느날 어느 지방이던지 정하 사 일자를 말씀하옵소서."
묻던 소년이 배 타려는 소년의 귀에 입을 대고 대강 몇 마 디를 하는데 사공이 퉁명스러운 말로,
"어서 타시오. 시간이 다 되었읍니다. 무슨 이야기를 진작 못하고 타시려는 양반을 붙잡고 이러시오?"
두 사람이 잡았던 손목을 사공의 소리에 힘없이 스르르 놓 고, 한 소년은 배에 올라 나는 듯이 바다 한가운데로 향하 여 가고, 한 소년이 부두에 그대로 우두커니 서서 걷잡을 수 없이 나오는 눈물을 수건이 흠씬 젖도록 적시는데, 그 배가 해중으로 들어가 산덩이같이 팔미도를 턱 막아 서 있 는 화륜선에다 세우고, 선객을 윤선으로 인도하여 들이더니, 별안간에 연기가 풀석풀석 나며 기적소리가 두 귀가 딱 맞 히게 나더니 번개같이 가는 지라 부두에서 바라던 소년이 한숨 한 번을 길게 쉬고 돌아서서, 축현 정거장에 와 기차 시간을 기다려 남문 정거장으로 오더니, 급급히 다시 차표 를 사가지고 경원선 기차를 또 타더라. 경원선 철도가 아직 은 개통이 다 못되어 겨우 철원읍에 이르렀는데, 영록이가 철원읍에서 차를 내려 즉시 인력거를 두 패 질러타고 원산 항에를 당도하였더라. 혹 한 눈이 먼 체, 혹 한 다리 저는 체, 혹 얼굴에 때칠도 하고, 혹 헌 의복도 바꾸어 입으며, 이따금 의관도 정체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황하도록 행색을 차려가지고, 원산항 가가호호이 모두 수색하여 보아 도 황가의 종적이 묘연한지라 은근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 다가, 가만히 생각한즉 인천 부두에서 자기 아낙과 만나자 는 기한이 그럭저럭 박두하였는지라 혼잣말로,
"이놈이 이곳에는 아니 왔는 것을 공연히 돌아다니며 찾았 구나. 자기가 저사 고집하기로 뜻을 막을 수가 없어 섬섬 여자를 홀로 가게 내버려 두었는데 천행으로 그놈의 종적이 나 채탐하였으면 공연히 고생만 참혹히 하였을 터인데, 고 생은 으레 면치 못하려니와 생명에나 큰 관계나 없었으면 그 아니 좋을까! 내가 오늘 내로 곧 떠나서 평양으로 가야 약조한 날을 어기지 아니할 터이다."
하고 즉시 항구에 나아가 기선을 타고 삼화항으로 가서 분 주히 평양으로 올라왔더라. 북풍 겨울 하늘에 첫 눈이 풀풀 날리어 장림 쇠한 나무가지에 경각내 이화가 만발한 듯한 데, 소년 남자 하나이 새벽 빛을 띠고 홀로 오르락내리락하 며 중얼중얼 혼잣말이라.
"거진 올 때가 되었는데, 날은 벌써 밝았는데 웬 곡절 인구 이상도 하다. 내가 날을 잘못 쳤나" 그저께가 금요일 어저께 가 토요일, 오늘 정녕 이달 끝 일요일인데, 남의 길과 달라 멀리서 오느라고 미처 대오지를 못하나" 시간에는 못 대오 더라도 설마 얼마 아니있으면 당도하겠지."
하며 앉았다 섰다 이리도 바라보고 저리도 바라보며 애꿎 은 궐련만 펄쩍 쉴 새 없이 피워문다. 일 년 열두 달 중에 양력 십이월이 해가 짧아서 날이 밝자 한나절이 되고, 한나 절이 되자 어두워지는데, 영록이는 첫새벽부터 장림 긴 수 풀 속으로 왔다갔다 한 시각이 십 년이나 지지않게 보내며 사람을 고대하는데, 부지중 해가 서산에 넘어가 점점 어두 워지니 일부중 저녁 연기가 바람에 불리어 나뭇 가지마다 깃들어 지척을 분별키 어려워 온다. 대인난, 대인난, 백난지 중에 대인난이라. 영록이가 그 해가 다 지도록 자기 부인의 오기를 기다리느라고 입술이 마르고 가슴이 타서, 별별별별 망념을 다하여 애를 쓰다가 하릴없이 주인집으로 돌아오며 여러 가지로 근심을 한다.
(당초에 내가 잘못이지. 어찌하자고 여자의 몸을 혼자 가게 내버려 두었던고! 범절이 용렬하고 모호한 자격같으면 오늘 일자를 등한이 잊기나 쉬우려니와, 응당 오늘 일자를 가슴 에 새겨두어 잠시라도 잊을 리가 만무한데 어찌하여 못 오 는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로다. 중로에서 도척을 마 나 해를 당하였나" 아니 몸에 재물이 없고 의복도 잘 입지 를 아니했으니 도적이 보기로 무엇을 빼앗자고 덤볐을 리도 없고, 황가놈을 만나 피신을 못하고 욕을 당하였나" 아니, 그도 그렇지 않은 것이, 만손 그놈에게 욕을 당하였더라도 바로 자기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무슨 방법을 하든지 내 가 번연이 오늘 이리로 올 줄 아는데 기별 한 마디 아니하 여 주었을 리가 만무하지. 이게 웬 까닭인가" 아무리 생각하 여도 황가놈을 만나 오도가도 꼼짝 못하고 잡혀 있는 것이 확실한가 보다.) 그 밤을 잠 한잠 못자고 심려를 하다가, (에라, 세상 일을 몰라. 날짜를 잘못 꼽았어도 하루 더 기 다려 보는 것이 옳다.) 하고 첫새벽에 다시 장림으로 나아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 며 해를 보다가, (어, 진작 삼화로 가 찾아볼걸. 공연히 하루 해만 더지었구.
그러나 저 원수놈에게 잡히기만 하였으면 그 놈이 어림없이 그곳에 붙들고 있을 리가 만무하고, 또 그 성미에 황가놈 말을 얼핏 순종하여 생명을 부지했을 리가 만무한데, 오, 이 놈, 내가 열 치가 한 치가 되기로 죽기로써 결심한 이상에 세상없기로 너한놈 잘 살라고 내버려둘 줄 아느냐!) 이 모양으로 바안 활개를 치며 기차를 타고 삼화항으로 향 하였더라. 차가 강서 땅에를 당하여 기양 정거장에 잠시 정 거를 하는데, 연일 밤잠을 못 자고 석탄 연기에 머리가 아 파서 잠시 바람을 쏘이려고 차에서 내려 시원한 바람을 향 하고 섰는데, 어떤 자가 옆에 와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소매 를 턱 붙잡으며,
"댁이 여기 어째 왔소?"
총기가 다른 사람보다 배승한 영록이가 어찌 그자를 몰라 보리요. 깜짝놀라 나오는 소리를 억지로 참고,
"누구시오?"
"누구는 차차 알고 이리로 와서 나 잠깐 보시오."
"할 말씀이 있거든 여기서 하오. 차가 오래지 아니하여 떠 나겠으니까 못 가겠소."
"그 양반 대단히 뻑뻑하다. 차는 이 번 차밖에 다시 없소"
이 다음 차를 타구려. 친구가 청하는데 아니 가는 것이 다 무엇이야?"
"그 양반 별소리를 다 하며, 총총히 가는 남을 붙잡고 무단 히 힐난하네."
하며 속 마음으로, (저놈이 분명한 황가의 하인놈인데, 나를 알아보고 이 모양 으로 힐난을 할 제는 정녕 제 상전 황가놈이 이 근처에 있 는 모양이다. 내가 집에서 결심하고 떠나기는 황가놈 만나 원수 갚자는 것인데, 황가가 있음 직한 증거를 보고 갈 필 요가 없고, 나의 내자도 그 놈에게 붙잡혀 있지나 아니한지 저놈에게 못이기는 체하고 어디 좀 가 볼까보다. 그러나 저 놈은 둘이요, 나는 단 하나요 겸하여 약질인데, 갔다가 귀신 도 모르는 죽음을 당하면 그 아니 딱한가! 에라,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범을 어찌 잡겠느냐" 좌우간 가 보는게 옳다."
하고,
"여보, 댁이 정 가자니 가기는 합시다마는, 가는데는 대관 절 어디요?"
"가보면 알지요."
영록이가 그자의 잡은 소매를 훌뿌리며,
"이 양밤 소매 놓고 갑시다. 죄인 잡아가듯 이게 무슨 모양 이요?"
"예, 소매는 놓을 것이니 어서 가기나 합시다."
그자가 영록을 앞세우고 얼마 아니 가더니, 큰 객주집으로 들어가 으슥한 사처방 하나를 치우고 들어앉더니 얼굴을 뜷 어지게 살펴보며 새삼스럽게 인사를 청한다,
"그러나 노형 성씨가 누구시오?"
"여보,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자고 했읍니 까" 내 성은 오가요."
"공연히 이러지 말고 바로 말하시오. 번연히 알고 묻는데 오가라는 것이 다 무엇이요?"
"어떻게 하는 말이요" 오가이기게 오가라고 하지, 오가 아 닌 것을 오가라고 했단 말이요" 그 양반 넉넉히 남의 친기 도 우기겠소."
"댁이 번연히 김서방인 줄 아는데 오가라고 한단말이요"
서울 다동이 댁이지요?"
영록이가 짐짓 껄걸 웃으며,
"예, 그러면 댁에서 횡 보았소. 내 집은 시흥읍인데 다동이 어디 가 붙었는지 알지 못하오."
"댁 어르신네가 김창희 김의관 아니오?"
영록이가 벌덕 일어서 가려고 하며,
"세상에 별일도 다 보았구. 사람을 자세 알지도 못하고 성 화같이 끌고 오더니 별별 소리를 하고 앉았네. 에이, 정신 없는 양반, 나는 가겠소."
그자는 별사람이 아니라 황공삼의 하인 옥이니, 제 상전과 제 어미의 종적을 찾으려고 사면 팔방으로 불폐풍우하고 돌 아다니다가, 마침 기양 정거장에 와서 제 상전이 눈에 혹 띌까 하여 차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을 면면이 상고하다가, 영록이 차에서 내리는 양을 보고 서주사의 딸을 찾아 저의 상전의 소원 성취를 하여주자는 작정으로 제 식주인으로 데 리고 온 일인데, 아무리 자세 보아도 얼굴은 김의관의 아들 과 흡사한데 성명"거주가 같지 아니한지라 제가 혹 잘못 보 았나 의심은 나되, 종시도 알 수가 없어 얼른 놓아보내지 아니하는데, 영록이는 짐짓 못 이기는 체하고 잡혀 있으며 옥이와 본이 나도록 수작을 한다.
"내 성명은 댁에서 이미 아셨거니와 댁은 누구시오?"
"댁 성명을 내가 알다니, 댁이 김의관 자제인 줄을 내가 이 미 알았단 말이요?"
"김의관은 웬 김의관이란 말이요"
"김의관은 웬 김의관이란 말이요" 내가 이미 말하였은즉, 시흥읍 오가인 줄을 알으셨단 말이야요."
옥이가 껄걸 웃으며,
"예, 그렇단 말이야요. 나는 부산 사는 김옥이란 사람이요."
"객고 평안하시오?"
"예, 평안하시오" 댁이 시흥이라며 예는 무슨 일로 오셨던 가요?"
"예, 우리 외가가 평양 외성인데, 외가에 다니러 왔다 진남 포 구경을 하려고 가는 길이오."
"그러면 유람차로 나섰구려. 유람차로 나선 양반이 무엇이 그리 총급하다고 하여 계시오?"
"그야 동역객 서역객 이지마는, 목적지는 진남포인즉 차를 놓치지 아니하고 가야 아니하오" 노형은 어찌하여 예 와 유 련을 하오" 무슨 장사를 하시오?"
"예, 장사도 별로 하는 것이 없고 나 역시 유람을 하러 나 섰소."
"다동 김의관은 어떤 사람인데 나를 보고 그 아이들이냐고 반가이 물어 계시오?"
"김의관이라고 있지요. 댁 모습이 그 아들과 흡사해서 실례 를 했소이다."
"객지에 다니기가 너무 외롭더니 피차에 잘 만났소. 노형도 유람차요 나 역시 유람차인즉, 서로 의지하여 같이 다니면 어떠하겠소?"
옥이가 영록의 딱 잡아떼는 소리를 듣고도 한편으로 의심 은 쾌히 없지 못하더니, 피차 잘 만났으니 작반하여 유람하 자는 말을 듣고 속마음에, (저 사람이 과연 김의관 아들이 아니로구나. 만일 김의관의 아들이 변성명한 것 같으면 내 얼굴을 짐작할 터이니, 어름 어름 빠져나가려고 할 터인데, 작반을 하여 같이 다니자는 것을 본즉, 확실히 다른 사람을 내가 횡보았나 보다. 관기모 자면 인언수재라고, 저 사람 외양 범절이 저만치 얌전할 제 는 마음도 과히 흉치 아니할 터이니, 자기의 소원대로 작반 을 하여 다니며 위인을 보아 통정을 하고 내 뒤를 좀 보아 달라 하겠다.) 각정을 하고 껄걸 웃으며,
"좋은 말씀이요. 피차 객지에서 형제처럼 의지하고 지냈으 면 해롭지 아니하지요."
사람의 능력으로 변통치 못하고 귀신의 재주로도 추측치 못할 것은 선악 보응이라. 매양 천만 뜻밖에 일이 생겨 만 구일담으로 죽으려던 사람이 살아도 나고, 부귀"복록을 천만 년 누릴 듯하던 사람이 없기도 하여, 천태만상이 듣고 보기 에 두렵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섭섭도 한데, 그 여러 가지 경우를 차례로 손가락을 꼽아 헤어보면, 모두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 일 뿐이어늘, 저 완명 무도한 황공삼은 남의 집 신부를 무례히 욕심내어 아 무 죄없는 김의관을 참혹히 죽이고, 제 죄 엄적하기 위하여 여러 해 신임하던 옥이 어미를 바다에다 떼밀어 없이한 이 후로, 그 밤에 배를 타고 삼화항으로 와서 성명을 변하여 박참위 행세를 하며 여간 돈만 가지고 온 것으로 물건도 무 역하려는 체, 식리도 하려는 체, 가장 큰 부상대고 인모양을 하고 어떠한 객주에 들어 있는데, 그래도 혹아는 자의 눈에 발각이 될까 하여, 가장으로 만든 수염을 주문하여 위아래 턱에다 붙여놓으니, 여간 아는 친구는 고사하고 제 집안 식 구라도 능히 알아보지못할러라.
이때 연희가 자기 남편을 인천 부두에서 작별하고 앞을 가 리는 눈물을 억지로 진정하며 육선에 올라 부지중 진남포에 를 당도하여, 여러 선객과 함께 하륙을 하니, 남자라도 초행 이면 정신이 얼울하려든, 더구나 규중 여자로 대문밖 기척 을 모르다가"번화 복잡한 생면강산에를 당하니, 발길이 서먹 서먹하여 어디로 향할지 모르다가 가만히 생각한즉, (당초에 아니 나섰으면이거니와, 기위 나선 이상에 주저서 어 굴다는 남의 눈에 수상히 보일 터인즉, 아무쪼록 활발한 모양을 보여야 하겠다. 그러나 이놈이 어디 가 있노" 이놈 있는 데를 알아 기약한 날 평양으로 가서 내외가 같이 와 철천지수를 갚을 터인데.) 하고 조금도 수줍은 태도가 없이 다른 남자나 일반으로 객 주집을 찾아 별로 사처를 정하여 잠을 자고, 그 이튿날부터 항구 안 집집마다 슬몃슬몃 구경 다니는 것처럼 모조리 수 색하여도 황가의 영향이 없는지라 혼자 마음에, (이 항구에 있는 노소 행객을 하나 빼지 않고 살펴보아도 황가의 영향을 못 보겠으니, 필경 그놈이 이곳에 없는 것인 즉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다.) 하고 봇짐의 지도를 내어 방향을 골몰히 살피어 보는데, 어떠한 구레나룻이 설핏하게 난 소년 하나이 들어오더니, 등잔 뒤에 가 앉으며,
"저 양반, 우리 인사합시다."
"좋은 말씀이요."
"뉘댁이시며 어디 살으시오?"
"내 성은 임가인데 살기는 전라도 나주 사오."
"나주 사시는 양반이요" 말소리는 서울 양반 같은데요."
연희가 그자가 성을 묻는데 얼른 생각나는대로 자기외가 성을 대고, 고향을 외가본 나주로 대었더니, 그자가 어음이 같지 아니하다는 말에 군색히 꾸며 말하기를,
"어려서 고향을 떠나 전라도 방언은 다 잊어버렸어요. 노형 은 누구신데 어째 찾아 계시오?"
"나는 서울 사는 박 참위라는 사람인데, 군대 파산 이후에 집에서 놀기만 하다가 장사나 하여볼까 하고 이곳에 와 있 는데, 연일 노형 지나다니시는 것을 보니까 전에 어디서 여 러 번 뵌 듯 낯이 익어서 와서 뵈옵고 인사를 청하였소. 노 형은 무슨 일로 이곳에를 오셔서 여러 날 유련하시오?"
"예, 나는 별로 볼일은 없소이다마는 평안도 물색이 하도 좋다기에 구경차로 내려온 길이요."
"평안도 물색이 좋다지마는, 지금 일기가 엄동이라 구경다 니시기가 어려우시겠소. 동행은 몇 분이나 되나요?"
"동행은 여럿인데 아직 여기는 아니 왔소이다. 날이 추우면 이 모양으로 들어도 있고, 따뜻하면 나서서 돌아다니니까 엄동이 관계 있읍니까?"
"그러면 초면에 어찌 들으실는지는 모르겠소마는 나 역시 객지에 아무도 작반한 이가 없어 너무 적적한데, 노형 동행 오기 전에는 우리 둘이 같이 지내면 어떻겠소?"
연희가 그 말을 들으니 마음에 싫어서 칭탁할 말을 생각하 다가,
"말씀은 감사하나 내가 그렇지 못할 사정이 있소이다."
"무슨 사정이 계신가요?"
"내가 양친시하인데 나 여기 있는 기별을 들으시고 우리 어머니께서 금명간 내려오실 터인즉, 내가 주인을 떠날 수 도 없고, 노형이 내 주인에 같이 계실 수도 없으니 대단히 미안하오."
연희는 그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수문수답을 할 따름이요, 그자는 연희를 칠분 짐작하고 짐짓 찾아 와 지긋지긋 문답 을 하는 것이라.
"허허, 그야 내가 바로 노형 처소로 같이와 있겠다면 모르 거니와, 노형더러어찌 내 주인으로와 계시라고 하겠소" 또는 아직 동거처를 하다가 노형 자당께서 행차하시면 나는 내 주인으로 도로 가도 무방하지요."
연희가 무엇이라 대답할 말이 없어 묵묵히 앉았다가 다시 핑계하는 말이,
"그도 그러하려니와 노형 하실 말씀 한 마디를 여쭐 것이 니 용서하여 집에서 나객지에서나 평생에 꼭 혼자 거처를 하여 버릇을 하여서 친구 말고 부모와도 한방에 누워 자지 를 못하는 버릇이 오니 아무리 박절하오나 모시고 같이 거 처할 수가 없나이다."
구레나룻 난 자가 정색을 하며,
"여보, 어떻게 하는 말이요" 동시 객지에서 그만한 청을 하 였더니 사람 대접을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요"
나를 노로보로 알으오" 없소. 내가 별로 자본이 많지 못해도 그래도 몇 백원 가지고 영접하는 놈이 댁 행장 도둑하여 갈 내가 아니오."
"그렇게 하실 말씀이 아니올시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보, 내 고집도 댁만은 착실하오. 댁은 좋거니와 언짢거 니 예 와 같이 있을 테니 귀찮아도 좀 견디시오."
연희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자가 노했던 얼굴을 훨쩍 풀어 껄껄 웃으며,
"허허, 내가 생찌그렁이군이지요" 그렇지마는 내가 의복이 없다든지 반전이 없어 노형에게 떼를 쓰는 것이아니라, 노 령을 뵈와 보아도 일면여구하여 친절히 사귀자고 이리하는 것인즉, 조금도 어찌알지 말으시오."
"말씀 아니하신대도 모르는 일은 아니오나, 성미가 괴악하 여 아무리 노여하신대도 붕행치 못하겠소이다."
그리할수록 그자가 너털웃음을 하고 얼레발을 치며 수염을 연해 쓰다듬다가 수염이 송두리째 뚝 떨어지니, 그자가 황 망히 돌아앉으며 어름어름 도로 붙이는 양을 연희가 누결에 보고, 그자의 얼굴을 자세 여겨본즉 황가가 분명한지라 경 혼 낙담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다시 생각한즉, 만일 경선 히 굴다는 저놈에게 욕을 당장 못 면할 터이요, 원수도 갚 을 기망이 없는지라 수염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 여 천연한 말로,
"노형이 정 이렇게 고집을 하시면 나는 다른 곳으로 가 있 을 터이니 이 방으로 와 계시려거든 계시오."
"그러면 내가 이 방을 탐낸 것쯤 되게요" 댁과 동거처를 한 번 하여보기가 원이 되어 그러는 것인데, 댁은 다른 데 로 가고 나만 예 와 있으라고, 응?"
하더니 연희 턱밑으로 바싹 들어앉으며 또 한 번을 껄껄 웃고 연희의 손목을 잡으려 하며,
"왜 이래, 공연히 성가스럽게. 귀신을 속이지 나를 속이려 고 남복을 하고 변성명을 하면 내가모를 줄 알고 이리하오"
우리가 역시 천생연분이어늘, 무단히 편심으로 고집을 한 대도 소용도 없소마는, 지금이라도 진시 회심하여 바른대로 사정 곧 말하면 내가 얼마쯤 좋을대로 하여주리다."
연희가 가만히 생각한즉, (그놈이 벌써 자기의 본색을 알고 와서 떼를 쓰는 모양이 라 급격히 반대를 하다는 저놈의 손에 속절없이 죽어 불공 심수를 갚지 못할 뿐 아니라, 가장으로 하여금 눈이 빠지도 록 헛 기다리며 고생을 무진 할 터이니, 에라, 차라리 임시 처변으로 비위를 슬슬 맞추어 마음을 놓게 하고 기회를 보 아 처치하리라.) 하고 한숨을 길게 쉬고 나오는 눈물을 손에 들었던 수건으 로 이리저리 씻으며 아무말도 없이 앉았으니, 그자가 앞으 로 다가앉아 연희의 두 뺨을 어루만지며,
"겁내지 말으시오. 이왕 일은 내가 손톱만치라도 개의 할 내가 아니오. 아무 근심 말고 우리 이야기나 합시다. 그래, 김의관의 아들은 어디로 가고 예 와 이렇게 객고를 하오"
하늘이 정하신 연분은 인력으로 어찌 못하는 법이외다."
연희가 짐짓 모르는 체하고 모기 소리만치,
"당신이 누구신데 나를 알으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셔요?"
"나를 응당 모르리다. 한동리에서 그대를 길러내다시피 한 나를 몰라봐" 자, 자세 보오."
하고서, 위아래 턱의 수염을 뚝뚝 떼고 얼굴을 바싹 들이 대니 연희가 뒤로 주춤 물러앉으며 언뜻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또 말이 없으니,
"인제 나를 똑똑히 알겠소" 내가 그대에게 내소박맞던 황 공삼이요."
"‥‥‥."
"그때 형편으로 말하면 조금 과격하다고 하면 하겠지마는, 내가 그 경위를 당하였어도 그리 했기가 십상팔구인즉 다시 개론할 것 없고, 우리가 오늘부터 피차 화합하여 백년을 해 로했으면 고만 아니오?"
"‥‥‥."
"도금사세 하여서는 그대가 아무리 내 말을 아니 들으려 하여도 아니될 것인즉, 잠시라도 남의 속 태우지 말고 진작 말을 해요."
"‥‥말을 무엇이라고 해요?"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는 지금 어디 가 있소?"
"나도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다니 말이 되나" 그때 같이 도망을 하고서 알지 를 못한다고" 그래도 종시 뉘를 속이려고! 이러지 말고 어서 바른대로 하라니까."
"사이도차에 할 일 없소이다. 바른대로 말씀을 하오리다."
"응, 진작 그럴 일이지, 김영록이가 어디 있으며, 그대는 어찌하여 혼자 이곳에 와 있소?"
"기차 들으시면 알으시지요. 당초에 김의관의 아들과 같이 도망하기는, 한 번 김씨가 와 정혼한 이상에 변경을 아니할 결심이 있음이러니, 피차에 아무 경력없는 어린 사람들이 수중에 노자도 넉넉지 못하고 간 곳마다 생면 강산이라, 그 간 죽을 풍상을 한없이 겪다가 생목숨이 얼핏 죽기는 어렵 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모양으로 도로 방황하다가는 장 차 무슨 지경에 이를지 몰라 부득이 피차 사정을 말하고 각 각 헤어졌어요."
"압다 그 자식, 그만한 주변도 없는 것이 남의 집 귀한 신 부를 함부로 데리고 도망을 하였던가" 고놈이 그래 어디 가 있소" 발목을 잡아매어 부딪혀 죽이게."
"그 지경이 되니까 그는 서울 자기 집으로 올라가고, 나는 차마 부끄러워서 서울로 가는 수는 없고, 우리 아버지께서 부산 계신 터이니까 부산으로 가려 한는데 몸에 병이 생겨 서 어찌할는지 걱정이 태산 같아요."
"무슨 병이 있단 말이요?"
"집에서 떠난 이후로 일기는 비상이 추운데, 의복을 박착하 고 잠시도 더운데 거처를 못하였더니 그런지, 우연히 아랫 배가 뻗히어 아프기 시작을 하더니 점점 더하여 지금은 굽 도 젖도 할 수가 없고 진정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냉처를 많이 해서 하초에 냉이 쳐졌나 보구려. 진 작 치료를 하여야지, 부산으로는 무엇하러 간단 말이요" 예 서 병이나 치료하고나와 같이 지내다가 우리 같이 서울로 갑시다그려."
"‥‥‥."
"그 고초를 겪고도 아직도 김가놈을 못 잊어서 대답을 아 니하나 보오마는, 설령 김가가 그 모양으로 제꼭지에 물러 나지를 아니했더라도 내가 있는 이상이면 저는 속절없이 돌 아설 뿐인즉, 만 번 생각하여 소용없 죽은 공연히 그러지 말고 나 시키는대로만 하오."
"‥‥‥."
연희가 간간이 아랫배를 움켜쥐고 은근히 결음정을 내며 못견디어 하는 모양을 하니, 황가가 애가 씌워서,
"여보, 의원을 좀 청해 올까, 방에 불을 더웁게 때라고 할 까" 글쎄, 진정을 하오."
"이만해도 더운데 불은 더 때어 무엇하겠소" 의원이나 좀 보았으면 좋겠으나 이런 시골 구석에 똑똑한 의원이 있을 리가 있나요?"
연희가 의원 보기를 요구하기는 요행 틈을 얻으면 몸을 빼 쳐 도주하자는 계획인데, 황가가 주인을 불러 고명한 의원 어디 있는 것을 물으니, 순직한 주인이 이실 직고하기를,
"여기 의술 똑똑한 의원이 여럿이올시다. 양약을 스시려면 내지에 들어가 졸업한 의학사 회춘당약국이 있고요, 한약을 쓰시려면 저 아랫 동리 권주부약국이 있읍니다."
"그러면 의원을 청해다 보려면 보겠지요?"
"청해다 보기가 좀 거북한 걸요. 권주부는 좀체 정분에는 병을 보러 다니지 아니하고, 회춘당 주인은 오전에는 자기 집에서 병을 보고 오후에야 다섯시간까지 다니며 병을 보는 데, 청하는 사람이 답지하여 며칠 전에 미리 맞추기 전에는 청해 보기가 어려운 걸요. 압다 의술이나 그만치 배워가지 고 약국을 냈으면 큰 실수가 바로 나겠읍디다."
황가가 연희를 돌아보며,
"그러면 양약국에는 급자기 아니되겠고 권주부약국으로 좀 가봅시다."
"에그, 지금같이 아파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어요. 아구 구, 애구 배야."
주막 주인이 창밖에서 듣다가 황가를 바라보며,
"그러면 영감께서나 권주부를 가보시고 같이 가자 간절히 말씀을 하여보십시오. 그가 점잖은 양반이니까 영감 말씀이 면 아무리 초면이라도 아마 괄시를 아니함직하오이다."
황가가 의원을 가보고 싶은 마음은 미상불 없지 아니하나, 연희를 떨어져 자기가 염려되어 얼른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연희는 눈치를 보고 더욱 앓는 소리를 하고 몸을 비비 틀으 니, 황가가 저 보고 더욱 앓는 소리를 하고 몸을 비비 틀으 니, 황가가 저 보기에 어떻게 딱하고 가이없던지 주인더러,
"여보, 권주부약국이 여기서 얼마나 되오?"
"한 이 마장 가량 밖에 아니됩니다."
"에고, 그만두시오. 초면 모르시는데 가시기로 그런 의원이 올는지도 알 수 없는데, 공연히 수고스러우신데 가깝지도 아니한 데를 가실 것도 없고, 나 같은 팔자 기박한 것 앓다 가 나면 고만이요, 죽은들 관계 있읍니까?"
황가가 의원을 찾아가볼 듯이 말은 하면서도 주저주저하다 가, 연희의 말을 듣더니 와락 가고 싶은 마음이 나서 뒤 염 려를 다시 하여볼 여부 없이 벌떡 일어나서,
"말이 되나, 사람이 죽겠다는데 의원을 지척에다 두고 못 청해다 본단 말이요" 내가 갔다 오지. 여보, 주인, 그집이 어디쯤이요" 내가 지금 한달음에 다녀올 것이니 다사한데 어렵지마는, 저 병자가 대변을 보러 가나 소변을 보러 가나 곁을 떠나지 말고 잘 간호를 하여주오."
"그것은 어렵지 아니하오이다마는, 영감께서 저 양반과 본 래 친하시던가요, 이같이 위하시니?"
"응, 친불친 여부가 있소" 나와 한집안으로 지내는 터인데, 나 여기 있다는 기별을 듣고 찾아온 모양인데 저렇게 몹시 앓는다오. 부디 간호를 잘 하여주오."
부탁을 재삼 하고 권주부약국을 찾아가더라. 그때 연희병 으로 말하면 어서 몸을 빼쳐나야 황가놈에게 욕을 당하지 아니할 터인데, 섣불리 몸을 빼치려 하다는 욕을 더 재촉하 는 터인데, 섣불리 몸을 빼치려 하다는 욕을 더 재촉하는 것이요, 그뿐 아니라 고심하여 찼던 원수를 천행으로 만났 는데, 자기 몸이 도리어 피해가는 것은 일이 아니거니 싶어 한 가지 의사 내기를, (내가 무두 무미히 나가려다는 주인이 황가의 부탁을 들은 터인즉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하고, 황가의 말이 빨간 거짓 말이라고 이실직고를 한 대도 아까 아무말 못한 이상에 곧 이들을 리가 만무한즉, 차라리 주인에게 갑갑한데 산보나 하러 나가자고 하여 슬슬 경찰서 앞까지 가서 얼른 뛰어들 어가 황가를 잡아달라고 고발하는 수 밖에 다시 없다.) 하여 주인을 보고,
"여보, 주인 양반, 배 아픈 것은 조금 진정되나 속이 답답 하여 못살겠구려. 불안하나마 나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나 좀 쏘이러 나갑시다."
"압다, 갑갑하셔도 좀 참으시게요. 영감께서 오래지 아니하 여 오실 터인데."
"오시기로 관계 있소" 나아갔다라도 영감 오시는 것을 보 면 곧 도로 들어오지요."
주인은 아무 뜻도 모르고 그 말이 용혹무괴일 듯하여,
"아무려나 생각대로 하여 봅시다."
하고 동행을 하여 이 거리 저 거리 돌아다니다가,
"여기도 경찰서가 있나요?"
"있고 말고요. 저기 보이는 집이 경찰서라오."
"어디 거기 좀 가서 구경할까요?"
"구경할 것이 무엇 있나요" 대문에는 하인 왕래를 못하게 한즉 들어가볼 수도 없고, 들어간다해도 무엇이 볼 것 있나 요" 바로 죄인 중 아는 사람이나 있으면 면회차로나 들어갈 까요."
연희는 그래도 구경을 가자거니 주인은 가볼 것이 없다거 니 한참 수작을 하는데, 누가 앞으로 와락 달려와 우뚝 서 며,
"여기 어째서 와 계십니까?"
연희가 깜짝놀라 자세 본즉, 이는 곧 황가의 하인놈옥이라, 졸지에 변하는 얼굴빛을 억지로 진정하여 천연한 음성으로,
"자네가 황서방님 하인이 아닌가" 예를 어떻게 찾아왔나?"
그자의 입에서 아무말도 나오기 전에,
"서방님을 여기서 뵈었는데, 내가 복통증이 나서 지금 의원 을 보러 가셨는걸."
옥이가그 말을 들으니 제 상전의 소원 성취가 다 된줄로 추측하고,
"예, 그러하셔요! 저도 서방님을 뵈오려고 지금 사면팔방 찾아 다니는 길이올시다."
"서방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오실걸. 그러나 자네가 나를 어떻게 얼핏 알아보았나?"
"몰라뵈올 리가 있읍니까" 한 번 언뜻 본 김의관의 아들도 알아보았는데요."
연희가 그 말에 궁금증이 나서 어디서 보았느냐고 막 물으 려는데, 황가가 숨이 턱에 닿게 쫓아오며,
"몸이 성치도 못하여 예는 무엇하러 나왔소" 어서들 갑시 다. 의원이 왔소."
처음에는 연희가 혹 어디로 도망을 했는가 황황히 쫓아나 와 그곳에 있는 것을 보더니, 소스라쳐 놀라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못본 체 홱 돌아서며 연희더러,
"어서 들어갑시다."
연희는 자기 목적을 도달치 못함을 분히 여겨 얼른 돌아서 지를 아니하고 주저주저하는데, 옥이가 황가의 앞으로 썩 들어서며 절 한 번을 꾸벅 하더니,
"소인 문안 드립니다."
황가가 마지못하여,
"너 여기를 어떻게 내려왔느냐?"
"소인은 서방님 행차하신 후에, 즉시 댁에를 내려갔다가 예 까지 왔읍니다."
황가가 집에 다녀왔다는 말에 더욱 뒤가 나서 속마음으로, (저놈이 집에를 갔더라니 이것 큰일났구나. 그렇지마는 김 의관 죽은 거를 알았겠지마는 제 어미 죽은 것을 필경 몰랐 겠지. 어디 저놈의 눈치를 좀 보리라.) 하고, 억지로 반가운 체하며,
"허허, 고생을 막심히 하였구나. 너의 어멈 소식은 몰랐지, 아마?"
옥이가 눈이 둥그래지며,
"소인의 어미가 어디 가 있읍니까" 소인은 서방님께서 데 리고 행차하옵셨거니 하였읍니다."
"응, 그렇게 알기가 쉽지. 너는 아니 오고, 내가 이렇게 나 오는데, 너의 어머니 혼자 집에서 지낼 수가 있느냐" 그리해 서 내 외가댁으로 가서 아주 있으라고 보냈더니 잘이나 있 는지 모르겠다.
"소인은 그런 줄은 모르옵고, 그 댁 근처에를 지나면서도 들어가보지를 아니했읍니다."
황가가 그제는 마음을 놓고,
"오냐, 설마 잘 있겠지. 이다음에 올라가보려므나."
하고 연희를 재촉하여 앞세우고 주인으로 오는데, 옥이가 뒤에 따라오며 나직한 소리로,
"서방님, 앞에 각시는 이가 서주사댁 작은아씨가 아닙니 까?"
"에, 요란스럽다. 누가 듣는다."
"아무도 없는데 누가 들어요?"
황가가 권주부를 보내고 방으로 들어와 옥에게 권주부를 따라가라 한다.
"그 의술이 미상불 맹랑치 않은걸. 이애, 옥아, 권주부 쫓 아가서 약을 주시거든 가지고 오너라."
"예, 갔다옵지요."
옥이가 대답을 하고 나아가니 황가가 또 쫓아 나아가더니,
"이애,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라."
"그 이야기는 여쭙겠읍니다마는, 약은 웬 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까?"
"압다, 너는 그 의원의 말을 못 들었느냐" 아씨가 김가의 자식을 밴 모양이니 진작 약을 먹여 없애버려야 아니 옳으 냐?"
"그까짓 일이 그리 급하십니까" 몇 달 후에 낙태를 시켜도 고만이요 낳은 뒤에 죽여 없애도 그만이지요마는, 제일 김 의관의 아들 영록이가 우환이 아니오니까?"
"그는 네 말이 옳다마는 뱃속에 그놈의 씨를 그대로 두었 다는 아씨의 마음이 갈리어 또 무슨 일이 날지 모르겠구나."
"김의관의 아들만 없어지면 아씨 마음이 걸리지 않아 세상 없기로 관계가 무엇입니까?"
"대관정 그놈이 지금 어디 가 있느냐" 그놈을 꼭 붙잡아가 지고 오지를 아니하고."
"여쭐 것이니 들어보십시오. 김의관의 아들이 차에서 내리 는 것을 보고 붙잡고 인사를 청한즉, 성명을 변하여 시흥 오가라고 하옵기 처음에는 혹 잘못 알았나 하였다가, 아무 래도 의혹이 나기에 소인도 변성명을 하고 주인집으로 끌고 와 수일을 지내옵는데, 아무리 넘겨짚어 허실을 알려 해도 끝끝내 생작이 떼는 것을 보고 꼭 속기를 얼핏 같은 사람이 혹 있는 것을 잘못 보고 붙잡았거니 싶을 뿐이라,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저 하는 양이 가라고 떼밀어도 아니 갈 듯하 여 단속을 좀 덜하고, 제 자력대로 내버려두었더니 고만 간 다 온다 말없이 살짝 도망을 하였읍니다. 그 도망한 것을 보고 그제야 소인이 되속은 줄을 깨닫고 사면수소문을 하온 즉, 도무지 자취가 없삽기에 필경 차를 타고 이리로 내려온 줄 아옵고 쫓아왔사오니 어서 바삐 찾아보아야 아니 옳습니 까?"
"허허, 그것 분하다. 그놈을 놓치지 말고 꼭 잡았더면 아주 내 후환을 없이할걸 너는 내 심복이니 말이지, 그놈이 계집 빼앗기는 것커녕, 제 아비를 내 손으로 죽인 줄을 알기 곧 하면 사생 결단하고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니 큰 우환거리 가 아니냐?"
"그렇고 말고요. 서방님께서 어련히 통촉하셨을 바는 아니 옵지마는, 김의관을 죽이기까지 하신 것은 너무 과하신 일 이올시다. 그 자식 되어서 원수를 갚으려고 아니할 리가 있 읍니까?"
"오냐, 죽이기까지는 내가 과격한 일이지마는, 그자의 쫓아 온 것을 보고 일시 내 엄적할 욕심으로 그 지경을 하였으니 지금 와서 후회하면 소용 있느냐" 뒷일 방비나 잘해갈 것을 생각하여야지. 그래, 그놈이 이 항구로 왔기가 가려로구나?"
"분명히는 알 수 없읍니다마는 이리로 왔기가 십상팔구올 시다."
"그놈이 이곳에 왔을수록 아씨의 낙태를 시켜야만 하겠으 니, 얼핏 권주부약국에 가 약이나 가져오너라. 그 약을 먹여 후환부터 없애고 고놈의 종적을 수색하여 보자."
권주부는 의술 뿐 아니라 관상을 잘하는 터인데, 연희의 얼굴을 팔모로 뜯어보아도 남자가 아니오 여자요, 맥을 보 건대 다른 병은 없고 태맥이 분명한데 황가가 독약을 청구 하는 것을 보고 의심이 들기를, (아무리 그 얼굴을 보아도 여자요, 맥을 보건대 태맥이 확 실한데, 여자가 아니오 남자라는 것과 태맥이 아니라 체적 이 생김이라 하는 양을 짐작컨대, 황가 필경 남의 수절하는 과부를 통관하여 태기가 있으니까 탄로가 날까 보아 낙태를 시킬 계교인가 보다. 내가 바로 몰랐으면이어니와, 기위 반 짐작이라도 한 이상에 그런 악한 일을 할 까닭이 없다.) 하고 보내할 약을 마침 지어놓았다가 옥이를 내러주며 짐 짓 부탁하기를,
"이 약이 독한 약이니 태기있는 부인에게는 부디 쓰지 말 도록 하오."
"여려 말으십시오. 그대로 여쭙지요."
이때에 연희는 황가에게 붙잡혀 움치도 뛰도 모사고, 아니 아픈 배가 아프다 칭탁하고, 목전의 굽한 욕을 면하려는데, 권주부가 와서 맥을 보고 태맥이라는 소리에 그 그 고명함 을 은근히 탄복하였는데, 황가가 따라나가서 수군수군하고 저 약을 지어다 주는 것이 의심이 나서 저사하고 아니 먹으 려 한즉,
"어서 자시오. 이 약을 자시면 복통이 곧 그치리라 하는데, 왜 아니 자시려고 하오?"
"그까짓 의원이 무엇을 알아서 그 약을 먹으면 복통이 아 니 나요" 지껄이는 소리가 전판 허무맹랑한 걸요."
"맹랑은 공연히 맹랑해" 맥이나 바로 보았지, 이약을 태상 이라도 관계치 않고 태상 아니라도 관계치 않으니 잔소리 말고 어서 자시오. 어서 자시고 병이 쾌차 하여야 나와 혼 인을 하루바삐 아니하오?"
연희는 저사하고 아니 먹으려거니 황가는 기어이 먹이거려 니 무수 상지하다가 황가가 화를 버럭 내어 소리를 지른다.
"약을 아니 먹으려는 것을 본즉, 배가 아프지도 아니한 것 을 필경 꾀배앓이를 하여 나를 속이는 것인즉 먹기 싫거든 고만두오. 나도 나 할대로 할 터이니. 흥, 그까짓 얕은 꾀를 뉘 앞에서 쓰려고" 내가 어림없이 속고서 의원을 청해 온다 약을 지어 온다 하였군."
약그릇을 들어서 팽개치려다가 다시 턱 밑에다 들이대며,
"정녕 아니 먹을 터이요" 아주 한 마디를 하오."
연희가 가만히 생각을 한즉, (그 약을 아니 먹었다는 저놈에게 욕을 당장 못 면할 지경 이라 죽으나 사나 그 약을 제 소원대로 먹어 우선 피화를 하는 것이 옳다.) 하고 약을 받아 벌컥벌컥 한숨에 다 마셔버렸더라. 황가가 은근히 요행하게 여기기를, (옳지, 인제는 김가의 시를 없애게 되었다. 아마 조금 있으 면 배가 더 아프다고 야단을 하렷다. 핏덩이만 쏟거든 다시 보혈할 약을 쓰면 그만 나을 터이지.) 연희 역시 그 약을 사세가 급박하여 받아먹기는 하고 무슨 야단이 날줄 알고 은근히 근심을 하는데, 그 약이 들어가더 니 거북하던 배가 도리어 편안하고 아무 일이 없는지라 속 마음으로, (내가 아무 일이 없는 양을 저놈에게 보였다는, 저놈이 또 무슨 약을 지어올 터이니 엄살을 좀 톡톡히 하여 저놈의 정 신을 빼어놓으리라.) 하고 별안간에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자리에 못 붙고 엎드렸다 앉았다 야단치니, 황가가 외양으로 놀라는 체 하 며 속으로는 다행히 여겨, 본체만체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 와, 옥이와 영록이 찾을 의논을 한다.
"이애, 옥아, 인제는 낙태는 시켰다마는 그놈을 어떻게 하 면 잡겠느냐" 그놈을 잡아 없애야 내가 발을 뻗고 잠을 잘 터인데."
"가만히 계십시오. 소인이 지금 약 지어가지고 오다가 수상 스러운 것 하나를 보았읍니다."
"무엇을 보았단 말이냐?"
"소인이 분주히 저 건너 술집 문 앞을 지나오느라니까 웬 사람이 마당 앞에 섰다가 소인이 저만치 오는 것을 흘깃 보 더니, 아주 질색을 하여 몸을 피하는데, 복색이라든지 몸집 과 키가 김의관의 아들과 방붕하와요."
"그러면 쫓아 들어가보지, 그대로 왔단 말이냐?"
"그 생각이 있었읍니다마는, 약을 급히 가져오라고 하셨으 니까 지체할 길이 없사와 그대로 왔사옵고, 서방님께서 약 을 쓰시느라고 골몰하시니까 미처 여쭙지도 못하였읍니다."
"이애, 그놈이 거기 그저 있을까" 그 술집이 어디 쯤이냐"
우리 같이 가보자."
옥이가 손으로 건넌 산 모롱이를 가리키며,
"저기 저 건너 술집이올시다."
6
편집옥이는 앞을 서고 황가는 뒤를 서서 그 주막을 찾아가서 황가는 멀찌기 서서 망을 보고, 옥이는 바로 대문을 흔들며 주인을 찾는다.
"주인, 주인."
"누구요" 술 자시러 온 양반이요" 우리 집에 술이 떨어졌 소. 다른 데로나 가보시오."
"술은 잇으나 없으나 이리 좀 나오시오."
"예, 나가오. 누구란 말인구?"
하며 주인 노옹이 나와 대문을 열더니,
"예, 추워, 일기도 맵기도 하다. 웬 양반인데 이 추위에 찾 아 계시오?"
"들어가십시다."
"뉘 댁이시오?"
"예, 예, 차차 아실 터이니 들어가십시다."
"들어앉으실 데가 없소이다. 술도 떨어지고 나무도 없어서 건넌방은 폐방을 하구요. 안방에는 딸이 근친을 와서 있읍 니다."
옥이가 그 소리에 더럭 잡아 젖힌다. 주인이 대들어 옥이 의 팔뚝을 잡아 나꾸며,
"이 양반이 미쳤나, 실성을 했나" 남의 집 내정 돌입을 함 부로 하게."
"내정 돌입이라니, 술집에 좀 들어오는 것이 내정돌입이야"
댁이 술장사를 않고 부인아가씨 사처방을 꾸며놓았나 보구 려."
"여보, 술장사하는 사람은 이렇게 성명도 없단 말이요" 술 도 없다는데 남의 집 안방 문은 왜 열러 들으시오?"
"술도 낯 가려 파나 보구려. 번연히 방안에 어떤 사람이 들 어앉아 술을 먹는 것을 아는데 이따위 수작이 다 무엇이야!"
"내 집에 술군이 있는 것을 댁이 똑똑히 알으오?"
"아무렴, 알지."
"그럴 터이면 댁 생각대로 찾아놓으시오. 만일 술군을 못 찾아놓으면 큰 봉변하오리다."
"그리하오. 못 찾아놓기는, 번연히 내 눈으로 본 것을 못 찾아놓아!"
하고 다시 방문을 잡아 젖뜨리고 신발 신은 채 뛰어 들어 가 미친놈 모양으로 이리 휘휘 저리 휘휘 둘러보는데, 주인 노옹은 기가 막혀 문밖에 그대로 서서,
"저놈이 어서 난 놈이야" 오, 이놈 못 찾아만 놓아보아라, 내 손에 다리가 부러지고야 말 터이니."
주인의 마누라와 주인의 딸은, 불의에 풍파를 만나 어쩔 줄을 모르고 이 구석 저 구석에 우뚝우뚝 돌아서서,
"에그, 이게 웬 야단일까" 별 미친 사람이 다 많으이. 우리 집에서 누가 술을 먹는다고 남의 집 젊은 여편네가 있는 방 에를 함부로 뛰어들어와 야단법석일까"
"오늘 벌써 둘째 괴상한 꼴을 보네."
옥이가 그제는 제 생각에도 안되었든지 얼른 도로 나가 주 인 노옹 앞에 가 머리를 조아 복복 사죄하는 말이라.
"노인장 용서하여 줍시오. 제가 실수가 많소이다. 그러나 지금 아낙에서 하시는 말씀을 잠깐 듣자온즉, 괴상한 꼴을 둘째 보았다 하시니, 하나는 제가 디려니와 하나는 또 누구 가 있길래 그렇게 말씀을 하시옵니까?"
주인 노옹이 좋은 주먹으로 옥이 눈에 불이 번쩍 나체 볼 치를 올리려다가, 나이 많은 탓으로 용서성이 많아서 들었 던 주먹을 도로 움치며,
"여보, 이 양반, 댁이 실진을 했는지 술이 취했는지 모르겠 소마는, 그게 무슨 난장 맞을 행세요" 내가 십분 용서하여 고만두는 것이니 잔소리 말고 어서가오."
"고만두는 것이 다 무엇이요" 좀 단단히 물어보오. 무슨 곡 절로 남의 집 안방에를 함부로 뛰어들어왔나?"
"압다, 요란스럽소. 개천 나무래 무엇하겠소" 소경된 우리 가 그르지. 우리가 주막거리에 나아와 술장사하는 것이 불 찰인즉 고만둡시다. 이 양반 어서 가오. 십분 용서하는 것이 니."
옥이가 짓궂게도 주인 앞에 가서 앉으며,
"주인장께서 이처럼 널리 용서하시니 감사무지하오이다. 그 러나 아까도 말씀하였거니와, 아낙에서 괴상한 꼴을 둘째 보셨다 말씀을 하시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그것은 알아 무엇하려오" 그놈을 댁이 알으시오?"
"어떤 놈 말씀이오니까?"
"오늘 신수가 사나와서 댁같이 미친 짓하는 사람이 아까도 한 놈이 왔더라오."
"그놈이 누구인데 어떻게 미친 짓을 하더란 말씀이요?"
"누가 아오 그놈이 누구인지" 우리 세 식구가 막 밥상을 받고 앉았으려니까, 별안간에 웬 놈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 어오더니, 저 윗 방 독 뒤에 가 숨어 앉았길래 깜짝놀라서 네가 웬 놈이냐 물은즉, 그놈이 손짓을 홰홰 내저으며 제발 덕분 떠들지 말고 사람을 살려달라기에, 웬 사람인데 무슨 곡절이 있느냐 물은즉, 제 말에 어떤 자와 전량 거래에 시 비가 되어 뭇매질이 났는데, 그자는 우악하고 저는 약하여 잡히기곧 하면 죽어도 죽고 사정을 보아달라 하기에 경상이 가긍하여 r대로 두고 문밖에를 나아가 두루 살펴보아도 아 무도 쫓아오는 자가 없길래, 다시 들어와 저를 보고 밖에 아무도 없으니 어서 갈 데로 가라 한즉, 그 사람이 그제야 독 뒤서 기어나아와 고맙다고 인사 한마디 할 여부없이 꼬 리가 빠지게 도망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 아니 괴상하오?"
옥이가 혀를 홰홰 내두르며,
"저런 놈 보아. 저놈이 어디로 도망을 하였을까?"
"왜 노형이 그놈을 짐작하시나 보구려?"
"짐작이라는 것이 다 무엇이요" 그 놈이 아주 큰 도둑놈이 라오. 그놈이 간 밤에 내 주인에 들어와 우리 행장 수천 원 을 도둑하여가지고 도망하는 것을, 내가 이때까지 꼭 뒤를 밟아다니다가 아까 대문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잡으려 다가, 그놈에게는 필경 흉기가 있을 터이요, 또 나 혼자 잘 못 덤볐다가 도리어 해를 당할까 염려가 되어 보지 못한 체 하고서 그놈의 마음을 눅이고 지금 잡으러 왔는데, 설마 그 놈이 그 동안에 어디 갔으랴 하였더니 벌써 도망을 하였구 려."
"예, 그놈이 그런 놈이야요" 누가 그런 줄이야 알았습니까"
그러면 주인더러 미리 통기를 해주시지요. 꼭 붙잡았다 드 리게."
"주인이 그놈과 부동이 되어쓴지 아니되었는지 어찌 알아 서 통기를 해요" 여보, 나는 댁이 말씀하는 것을 들으니까 이실직고가 아닌 듯싶어, 내가 내정 돌입한 것을 가이없이 생각하오마는, 만일 이놈을 진시 잡지 못하면 주인에게 후 환이 없지 아니하리다."
주인 깜짝놀라서,
"에그, 그리해서 어찌하게요" 주인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 리셔요" 당신이 아무쪼록 잘 말씀하셔서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기만 바라오."
"그는 어찌되었던지 당장 이놈을 잡아야만 하겠으니, 여러 말 할 것 없이 그놈 간 곳을 어서 가르쳐 주시오."
"그놈 간 곳을 알 수가 있읍니까" 그놈이 저 앞길로 간 지 가 얼마 동안 아니되오니 바삐만 쫓으면 얼마 머리 아니 가 서 잡으실 듯하오이다."
"어느 길 말이요" 항구로 올라가는 길이요, 정거장으로 가 는 길이요?"
"아니오, 저 건너 산비탈로 돌아가는 길 아니 뵙니까" 그 길로만 급히 쫓으시면 십 리가 채 못되어 길 아래 외딴 주 막 하나이 있을 것이니 그 주막에 가 수색을 하여보시면 갈 데 없이 잡으오리다."
이때 황가는 오래 기다려도 옥이의 동정이 없으니 궁금증 이 생겨서 그 집 문밖에 와서 기침을 카악카악 하니 옥이가 분주히 나아오며,
"진작 왔더면 꼭 붙잡을 걸. 이놈이 벌써 달아났읍니다그 려."
"그놈이 어느 틈에 도망을 했을 수가 잇나" 필경 주인과 부동이 되어 얻다가 숨긴게지. 이애, 우리 들어가 주인을 조 련질하여 보자."
"아니올시다. 주인이 진실하여 속일 사람이 아니올시다."
"허허, 그것 분하다. 그놈을 꼭 잡았더면 좋은 것을."
"걱정 마십시오. 그놈이 저 길로 갔답니다. 급히 만 쫓으면 잡을 터이올시다."
"간 지가 얼마나 된다느냐?"
"얼마 아니되었답니다. 어서 쫓아가십시다."
"오냐, 어서 가자. 토막나무 끈 자리지, 제가 가면 얼마나 갔겠느냐?"
하고 황황히 장바 두 길이나 가다가 황가가 딱 멈춰서며,
"이애, 아니된 일 한 가지가 있다."
"무슨 일이오니까?"
"우리가 이렇게 쫓아가 그놈을 얼핏 잡으면 좋으려니와, 그 렇지 못하고 점점 멀리 번져 가는 지경이면, 속담에 모이의 둘 잡으러 가다가 집의 돝 잃기로, 아시를 주인에게 단단히 맡기든지 데리고 함께 가든지 해야 아니하느냐?"
"옳지, 참 그렇습니다. 주인에게 맡기시다니오" 아무리 단 단히 맡기기로 아씨께서 어디로만 가시면, 그 죄로 주인을 죽입니까 어찌합니까" 매사는 튼튼한 것이 제일이올시다. 소 인은 먼저 쫓아갈 것이니 서방님께서는 그 집으로 가셔서 아씨를 모시고 뒤를 따라 오십시오."
"오냐, 그 수밖에 없다. 나는 아씨를 데리고 곧 갈 것이니 너는 그놈을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쫓아가거라."
"예서 얼마 아니 가면 외딴 주막이 있다는데, 거기서 수색 을 하여보아 그놈을 잡으면 더 여쭐 말씀없고, 만일 거기 없으면 새향 장터까지 가서 기다리올 것이니 그리 아십시 오."
"그리해라. 그놈 잡고 못 잡는 것은 너만 믿는다."
황가가 주인집으로 와서 연희더러, 어서 나서라 같이 가자 하니 연희는 어쩐 곡절을 모르고 복통을 칭탁하며 얼른 나 서지를 아니하려 하니, 황가가 더욱 심조증이 나서,
"여보, 여간 아프더라도 좀 참고 나와 같이 갑시다. 예는 의약이 변변치도 못하고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즉 평양으로 가면 몸 편히 잘 조섭할 곳이 있으니 잔소리 말고 어서 갑시다."
"아무리 그러해도 복통이 더 심하여 촌보를 떼어놓을 수강 없으니, 수일간 동정을 보아 가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정 그러면 타고 가지. 예서 천연세월하고 있을 수가 있 소?"
하더니, 주인을 불러 인력거 한 채를 얻어 태워 앞세우니, 연희가 얼마쯤은 못 가겠다 앙탈을 하다가 가만히 생각한 즉, (저놈의 억지에 배기지를 못하겠는 중 평양으로 간다하니, 그리로 가면 남편의 소식을 탐지하여 보겠다.) 실심하고 못이기는 체 그 인력거를 타고 길을 떠났더라.
그 해 겨울이 덥지는 못하였으나 섣달이 되도록 눈이 별로 많이 오지를 아니하여 길 다니는 사람의 고생이 적더니, 연 희의 액운이 미진함일는지 황가의 죽을 때가 가까움일는지, 별안간에 북풍이 들이 불며 함박꽃송이 같은 눈이 눈을 못 뜨게 퍼붓기를 시작하여 경각내에 발이 푹푹 빠지게 퍼부어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당초에 영록이가 옥이놈을 기양서 만나, 황가의 종적을 탐 지할까 하고 수일 같이 묵으며 아무리 눈치를 보아도 알 수 가 없는데, 옥이놈이 자기 곁을 아니 떠나고 잡두리하는 양 을 본즉, 불측한 심장을 앙ㄹ 수도 없고, 제일 자기 부인의 소식이 궁금하여 옥이놈 잠든 새 도망을 하여 진남포로 바 로 내려왔는데, 감히 번화지에 주인을 못 정하고 촌으로 다 니며 망문투식을 하면서 슬몃슬몃 항구로 들어와 자기 부인 소식을 탐지하려는데, 어떠한 술집 문 앞에서 멀찌기 옥이 놈 오는 것을 보고 그놈의 눈에 들킬까 겁이 나서 그 모양 으로 남의 집 안방에를 붙문곡직하고 뛰어들어가, 독 뒤에 가 숨었다가 옥이 지나간 뒤에 몸을 빼쳐나서 가만히 궁리 한즉, (옥이 놈이 쫓아온 것을 본즉, 자기를 확실히 알고 해칠 마 음을 둔 모양인데, 예서 잘못 어리대다는 원수도 못 갚고 어느 지경에 갈 줄 모르겟고, 또는 자기 부인이 만일 생명 에 관계만 없고 보면, 아무리 시한은 지나더라도 평양으로 기어이 찾아갈 터인데, 공연히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피차에 만나지 못하고 더 고생만 할 터이니 차라리 평양으로 가는 것이 옳다. 평양으로 간대도 차비도 부족하려니와 대로로 가다가는 또 무슨 일이 있을는지 모르니 소로로 가는 것이 옳다.) 하고 그 퍼붓는 눈을 맞으며 평양으로 향하여 가는데, 근 근 십리 가량을 걸으니 매운 바람은 얼굴 에이는 듯하고 회 목까지 빠지는 눈에 열 발가락이 빠지는 것 같아서 새향 장 터를 채 못 미처 어떤 주막집 복로방에 들어가 더운 막걸리 한 잔을 사먹은 후, 화로에 발을 녹이고 있는데, 그 길이 소 로라 행인이 별로 많지 못한 중 눈이 그 모양으로 퍼부으니 까 여간 볼일에는 아무도 길을 떠날 이가 없으므로 흰떡 가 루를 체로 쳐서 그득하게 쌓아놓은 듯한 길바닥에 다만 영 록의 자취 뿐이라, 옥이가 누구에게 물어볼 여부없이 뒤를 밞아가는데, 황가 역시 그자취를 밞아 쏜살같이 쫓아가며 혼잣말이라.
"저기 보이는 것이 외따로 있는 주막인데 김가 놈이 저기 있으면 곧 잡아 없애겠구나."
급기 외딴 주막 앞에 와서는 이리 저리 휘휘 둘러보더니, 또 혼잣말로,
"저 주막으로는 당초에 들어가지를 아니하고 바로 갔네, 발 자취가 없을 제는, 어, 그놈 약다. 우리가 쫓아올 의심을 하 고 바로 달아난 모양인걸. 바로 가지 말고 세상없어도 가소 롭다. 우리 옥이놈이 여간 범연히 쫓을 터이냐! 불과 몇 십 리 못 가서 잡히고야 말리라."
은근히 또 혼자 웃으며,
"세상에 우슨 놈은 옥이란 놈이렷다. 제 어미가 내 손에 죽 은 줄은 모르고 나를 위하여 저렇게 진력을 하니, 그러나 내 일을 다한 뒤에는 옥이놈을 마저 처치하여야지, 그대로 두었다는 막현어은이라고 제 어미 일이 탄로되는 지경이면 내게 좋지 못한 일이 생길 터이지."
이 모양으로 속담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도깨비 땅마련하 듯 하며 연희가 탄 인력거를 따라가는데, 옥이가 숨이 턱에 닿게 마주 오더니 먼저 연희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황가에 게 인사를 하고 눈짓을 하여 황가를 길 한편으로 데리고 가 서,
"에구, 서방님, 예서 잘 뵈왔읍니다. 지나오신 외딴 주막으 로 도로 가 계십시오."
"왜 그러느냐" 영록이놈이 거기 있다더냐" 지금 오며 보니 까 그 주막 문 앞에는 사람 들어간 자취가 없던걸."
"아니올시다. 소인이 한달음에 쫓아서 이 앞 장터 거리에서 영록이를 잡았는데, 게는 이목도 번다할 뿐 외라 가만히 보 니까 영록이 아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오니, 거기서 잘 못 거조를 하다는 죽도 밥도 다 틀리겠기에, 저 찾아온 눈 치를 보이지도 아니하고, 저 들어간 집만 단단히 보고 도로 오옵기는, 서방님께서 거기를 오셨다가는 그놈이 눈치를 채 고 무슨 잡두리를 할는지 알 수가 없삽기에, 서방님이 도로 가셔서 외딴 주막집에 가 깜쪽같이 계시면, 소인이 무슨 수 단을 그놈 하나를 못 당하겠읍니까" 그러하오니 두 말 말으 시고 어서 그리로 가 계십시오. 지체가 오래 되면 그놈이 또 어디로 가기가 쉽습니다."
"네 의사가 옳기는 옳다마는, 그놈이 네 말대로 오지를 아 니하면 그 아니 걱정이냐?"
"그 염려는 말으십시오. 소인이 세상없어도 그놈을 기어이 유인하여 데리고 오리다."
"오냐, 나는 너만 믿는다."
옥이가 분분히 오던 길로 도로 가니 항가가 연희에게,
"여보, 일기도 극한이고 눈도 일향 퍼부어 더 갈 수가 없으 니 저기 지나온 주막으로 도로 가서 어한을 좀 하고 가시 다."
연희가 가만히 본즉, 옥이가 와서 무슨 말을 수군대자 가 던 길을 돌쳐서 외딴 주막으로 가자는 것이 심히 괴상하여 가고 싶은 마음이 썩 없으나, 사세가 어찌하는 수가 없어 죽으나 사나 거동이나 보리라 하고 황가를 따라 그 주막으 로 갔더라.
처음에 옥이가, 황가는 연희를 데리고 오라 하고 저는 영 록의 뒤를 밟아 새향 장 근처까지 가서 급히 서로 만난 즉, 미련한 마음에 속고 쫓아다니던 일이 분하여 제 상전 기다 릴 여부없이 우악한 주먹으로 영록의 볼치를 누에 불이 번 쩍 나게 서너 번 쥐어박으며,
"요 발길 자식, 네가 사람을 이 모양으로 속이고 도망을 하 면 승천입지를 할 줄 알았더냐?"
약질의 영록이가 그 자리에 푹 엎드러지며,
"에구, 사람 살리오!"
그 주막바깥 주인은 어디를 가고 다만 안주인들 뿐이라, 감히 나아와 곡절을 물어 말리지 못하고 다만 안문틈으로 엿보고 있더라. 옥이가 분김에 사정없이 때리다가 가만히 생각한즉, 살살 꾀어 붙잡고 있었더면 제 상전 오도록 넉넉 히 기다릴 것을 섣불리 때리기 시작을 하였은즉, 영록이가 저 하자는대로 그곳에 엎드려 있을 리가 만무한지라, (에라, 이왕 때리기 시작한 김이니 아주 다리 하나를 뚝 분 질러 놓아 움치도 못하게 만들어 놓겠다. 감히 나아와 때리 다가 그까짓 놈 죽는대도 관계 없지. 상전 부모라니 우리 댁 서방님 원수를 갚아드리는 것이 재하자 도리에 당연한즉 징역 몇 해 좀 할 작정하지.) 하고 영록의 머리를 끄들어잡고 발길로 허리를 퍽퍽 걷어 찬다. 손에 잡히는대로 목침을 들고 아랫도리를 함부로 때 리며,
"이 소견없는 어린 놈아, 우리 댁 서방님 실내를 함부로 빼 어가지고 도망을 하였어" 내 손에 너 하늘 높은 구경을 하 여보아라."
그 방문이 벌컥 열리며 난데없는 노파 하나이 뛰어들어와 옥이의 머리를 그들어 잡아 젖히고 뺨을 철석 쥐어 붙이며,
"이놈아, 이게 무슨 미련한 짓이야" 애매한 양반 작각 때리 고 나 좀 자세 보아라."
그 방문이 벌컥 열리며 난데없는 노파 하나이 뛰어들어와 옥이의 머리를 끄들어 잡아 젖히고 뺨을 철석 쥐어붙이며,
"이놈아, 이게 무슨 미련한 짓이야" 애매한 양반 작작 때리 고 나 좀 자세 보아라."
옥이가 깜짝 놀라 휙 돌아보더니, 그 노파 앞에 푹 엎드리 며,
"에구, 어머니, 여기를 어찌해 와계셔요?"
노파가 그 대답은 하지도 아니하고 영록을 잡아 일으키며,
"여보, 누구신지 정신 차려 일어나 앉으시오. 내가 없었더 면 큰일날 뻔하였읍니다."
다시 옥이를 꾸짖는 말이라.
"이놈아, 소위 서방님이 누구냐" 상전만 장히 중한 줄로 알 고 제 어미 죽인 원수인 줄은 모르는구나?"
옥이가 제 어미의 말이 이상하여,
"어머니, 그게 웬 말씀이오니까?"
노파가 한숨을 길게 쉬며,
"내가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너를 만나 내 이야기를 하고 원수를 갚을꼬 원하였더니, 하나님이 지시하셔서 오늘 여기 서 너를 만났구나!"
"어머니, 원수가 어디 있읍니까?"
"내 원수 있는 데는 모르고 소위 내 상전 있는 데 아느냐"
네 상전이 즉 내 원수란다."
"어머니께서 망령이 나셨읍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 니까?"
노파가 화를 버럭 내면서,
"이 자식, 망령" 내가 망령이야" 원수를 모르고 상전 상전 하고 따라 다니는 네가 얼빠진 놈이지. 내가 이야기를 차례 로 할 것이니 자세 듣고 정신을 좀 차려라. 소위 네 상전 황가가 너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간 뒤에, 나 혼자 빈 집을 정성껏 지키고 내려들 오기만 기다리는데, 병들어 입원하였 던 서주사나리가 병이 쾌차하여 오시더니, 분주불가히 떠나 가시는 것을 보고 웬 영문인지 모르는데, 그 이튿날 황가가 내려오자 뒤미처 김의관이라고 하는 양반이 오시더구나."
"그래서요?"
"나는 영문도 모르고 있는데, 황가가 김의관을 모르는 결에 참혹히 죽여 시체를 부엌 뒤에다 파묻더니 그 밤중에 나더 러 같이 가자 하기에."
"그래서요?"
이때에 영록이는 새 정신이 번쩍 나서 매맞아 아픈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바로 그 집에 없었으면이어니와 기위 그 집에 있는 터에, 주인이 살인을 저질러 놓았으니 어림없이 있다는 애궂은 벼 락을 맞을 터이기에 따라 나섰더니, 바닷가로 끌고 가서 부 지 불각중에 발길로 나를 차서 바다에다 들이뜨리니,"
"무엇이야요?"
"나를 황가가 발길로 차서 바다 가운데에다 집에 넣었단 말이다."
"에구, 저런, 무도한 양반 보게."
"이 자식, 양반" 어미 죽인 놈에게 양반?"
"그런데 어떻게 살아나셨읍니까?"
"장정 헤엄 잘 치는 사람이라도 솜 의복을 퉁퉁히 입고 몇 십 길이 되는지 모르는 바다에 가 빠졌으면 곰짝없이 죽을 터인데, 더구나 근력없는 내가 무슨 수로 살아나느냐" 그놈 에게 채어 바다로 들어갈 때에만 정신을 겨우 차렸고, 그 뒷일은 도무지 몰랐는데, 이 댁주인 양반이 내게 당해서는 은덕이 태산보다 높고 하해보다 깊으시다. 주인 양반께서 배로 장사를 하시는데 부산서 새벽에 배를 떠나 가시다가, 물속에서 내가 쑥 들어갔다 올라 솟았다 하는 것을 보시고 급히 쫓아와 건져 배에다 싣고 지성으로 치료하여 정신이 들은 연후에, 어디 사는 사람인데 무슨 일로 물에 가 바졌 느냐 물으시기에, 바로 말씀을 하는 것이 이로울지 해로울 지 몰라서 잠시 권도로 속여 대답하기를, 사면팔방 의지없 는 사람으로 세상에 살기가 하도 귀치않아서 죽어 모르자고 바다에 빠졌노라 하였더니, 주인양반께서 무한 가이없이 여 기시며, 내 집이 삼화 땅이니 같이 가서 얼마 동안이고 같 이 지냄이 어떠하냐고 하시고 누누히 말씀하시기로 가만히 생각한즉, 남의 신세는 점점 더 지나 아직 생명을 부지하였 다가 하일 하시든지 너를 만나는 날 이런 말을 이르고 원수 를 시원히 갚아보자고 못이기는 체 따라가서 이렇게 있더니 라."
옥이가 고개를 숙이고 우두커니 듣다가,
"저런 몹쓸 놈도 천하게 있읍니까" 저는 그런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읍니다. 어머니, 걱정 말으십시오. 어머니 원수 를 시원히 갚아드릴 터이니."
벌떡 일어나 영록이 앞으로 가 손목을 덤벅 잡고,
"서방님, 제가 서방님께 죄를 범하였읍니다. 그러나 널리 통촉하실 것은 황가가 제 어미를 죽이련 것은 금시 초문이 옵고, 삼사 년간을 주객지분의를 정하고 지내던 터에 제 일 을 어디까지 힘써 보아주지 않을 수가 없어, 일자 도망 이 후로 사면 팔방 찾아다니다가, 기양 정거장에서 서방님 차 타는 것을 보고 붙들기는, 아씨를 찾아 황가를 주자는 마음 이러니, 며칠을 보아도 아씨는 싹도 없고 서방님 혼자 뿐이 시기로 심중에 알 수 없는 일도 있다 하였더니, 서방님께서 저 모르게 피신하신 것을 보고 의심이 부썩 들기를, 서방님 이 아씨를 어느 곳에 감추어 두고 그곳에서 제게 붙잡혀 진 퇴유곡이 되어 계시다가, 몰래 몸을 빼쳐 가셨거니 하고, 진 남포로 내려가는 차를 타시려던 일을 추측하여 즉시 차를 타고 내려와서, 이리저리 듣보다가 의외에도 아씨를 만나뵈 왔는데, 그러자 황가가 분주히 와서 아씨더러, 몸이 아픈데 무엇하러 나왔느냐, 어서 들어가자 하며 제가 반가이 인사 를 하는데, 못 본 체 못 들은 체하기에, 아마 저 양반이 저 아씨를 새로 찾아 병 치료하기에 골몰하여 미처 알지를 못 하였나 보다 하고 짓궂이 앞으로 가까이가서 다시 인사를 한즉, 그제야 알은 체하고 제 얼굴을 홀금홀금 보는 것이 이상은 하나, 그놈이 제 어미를 죽이련 줄이야 뜻이나 하였 읍니까" 제가 상하간 되어 지낸다면서 그놈 저놈 하는 것을 서방님께서 들으시면 괴이한 것으로 여기실 터이오나, 저도 부산항 상없지 않은 사람의 자식으로 가세가 빈한하여 황가 의 돈백이나 빚을 쓰고 진서 못 갚았더니, 황가가 변상 가 변을 하여 쪽박 세간이나마 모두 집행을 하여가고, 유위부 족하여 모자 제 집에 와 고공살이를 하여 매삭 몇 원 월급 줄 것으로 나머지 돈을 에꾸어가라 하오니, 그때 사세를 당 하와 부정기가지 다 빼앗기고 제 갈이를 할 수 없삽기로 부 득이, 에그 참, 늦게 가서 아니된 일이 있읍니다. 그 다음이 야기는 차차 여쭐 것이니 서방님 여기 잠깐만 계셔 기다리 십시오."
"무슨 일이 그렇게 급한지는 모르되 하던 이야기나 마저 들읍시다."
"그런 지나간 이야기는 이따 들으셔도 관계치 않습니다. 지 금 급히 가볼 일은 저놈이 아씨를 모시고저를 쫓아올 터인 데 여기를 와놓으면 그놈이 이 항구에서 취리한 탓으로 사 면에 친한 사람이 많은데, 이 목번다한 대촌에 아는 자가 없으라는데도 없삽고, 제일 급한 것은 아씨께서 태중인가보 던대 독약을 지어다가 안태할 약이라고 속여 권하였은즉, 만일 무사하면 좋으려니와 약독이 발작하는 동시면 그 약 짓던 의사에 가 물어 해독을 얼핏 시켜드려야 할 터이니 두 말씀 말고 계시면 서방님 원수도 갚고, 제 원수도 갚을 도 리가 있읍니다." 하고 급급히 일어서 나가려 하니 노파가 다 시 달려들어 붙잡으며,
"이 자식아, 가기는 어디를 가" 또 가서 그놈과 부동을 하 여 간신히 천우 신조해 살아난 어미를 기어이 죽이고 애매 한 양반을 해치려고" 이놈, 못 간다. 그놈이 올 터이라니 여 기 있다가 나와 같이 그놈의 살점을 점점이 뜯어먹자."
"어머니, 진정하십시오. 제가 아무리 불초하오나 어머님 살 해한 놈과 다시 동심을 하오리까?"
영록이가 노파를 재삼 만류하여 옥이를 보내고 노파와 둘 이 소경력 이야기를 하며 옥이의 회보를 기다린다.
"에그, 아까 자식놈이 하던 말과 같이 집행을 당하고 황가 의 집에 들어가 소매 평생에 못해보던 드난살이를 장근 사 년 동안이나 하였읍니다그려. 그런데 서울 사시는 서주사라 는 양반이 무슨 송사 일관으로 내려오셔서, 황가와 이왕 서 울서 이웃해 살던 정리로 황가 집에다 주인을 정하고 계셨 지요. 그 양반이 참 점잖으셔요. 자연 오래 한집안에 계시니 까 이 늙은이와도 매우 정숙해지셔서 가끔 의복도 하여주시 고 신발도 사주시더니, 졸지에 그 양반이 병환이 들어 말씀 을 잘 못하시고 대단히 위급하니까, 황가가 즉시 그곳 자혜 병원으로 입원을 시키고 며칠 후에 자식놈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더니 도무지 소식이 없는데, 그러자 서주사나리가 병 환이 좀 나으셔서 오시더니 황가가 어디 가고 없는 것을 보 고, 무슨 의심이나 나시는지 이 늙은이 더러, 주인 어디를 언제 가서 이때까지 아니 왔느냐 물으시기에 그 사실대로 고한즉, 재삼 의아하여 주저주저하시더니, 한구석에 있는 웬 편지 휴지 하나를 집어 두세번 보시고 깜짝놀라시며 이내 검다 쓰다 말씀이 없이 급히 서울로 올라가시자, 그 이튿날 황가가 들어오자, 얼마 아니 있어 웬 양반 한 분이 들어오 시는 것을 황가가 마주 나아가며 잘 드는 칼로 난자를 하여 찔러죽이고."
이때 영록이는 혼불 부체하여 듣는지 마는지 아무 대답도 못하고 흙덩이처럼 앉았는데, 노파는 일향 신이야 넋이야 이야기를 한다.
"그 시체를 부엌 뒤에다 끌어다가 묻더니 이 늙은이더러 여기 있다는 큰일날 터이니 같이 가자 하기에 어찌할 수 없 어 그 어둔 밤에 따라갔더니, 인가 없는 해변으로 가서는 별안간에 발길로 덜미를 차서, 만경창파에 가 빠져 수궁 귀 신이 될 뻔하였읍니다. 서방님은 누구신데, 황가가 장가들 색시를 데리고 도망하셨더랬읍니까?"
영록이 두눈에 눈물이 비오듯 하며,
"황가놈이 살해한 양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오."
"에그머니! 저런 일 보아."
"그 신부는 황가놈의 집에 계시던 서주사의 딸인데, 나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을 그놈이 중간에 나서서 빼앗어 제 계 집을 삼으려 하니까 당장 어찌하는 수가 없어 신부와 같이 도망을 하였다가, 급기 집에를 들어 가서 화변 당하신 일을 알고, 내외가 황가놈을 잡아 원수를 갚자고 나섰어요."
"천하에 무도한 놈, 그 놈이 무죄한 양반을 그 모양으로 살 해하고 무사하기를 바라겠읍니까" 자식놈이 제 어미 죽이려 던 원수를 몰랐으니까 그놈을 위하여 서방님 해하려 하였 지, 이제 알고서야 그 놈을 위할 리가 있겠읍니까" 자식놈이 무식은 해도 마음이 곧아서 남의 일이라고 분한 것을 보면 기어이 설치를 하여주고 마는 성미올시다."
"작히나 좋겠소. 자제의 힘을 얻어 원수를 갚았으면 그 은 혜를 풀을 맺어라도 갚겠소."
"황가가 서방님께만 원수인가요" 자식놈에게도 불공대천지 수인데, 저 일 제 하는 것을 무슨 결초보은이란 말씀이요"
그대 말씀은 말으시고 자식놈의 회보를 기다려 보십시다."
얼마 아니되어 옥이가 숨이 턱에 닿게 뛰어와서 영록을 보 고,
"황가더러, 서방님을 유인해 올 것이니 둘이 합력하여 잡자 고 하였더니, 황가는 이곳에서 모자 상봉하여 제 죄상을 다 알고 저 잡을 계획을 하는 줄은 모르고, 인력거에 태워 앞 세우고 오던 아씨를 도로 데리고 저 죽을 곳으로 처벅처벅 찾아갔읍니다. 어서 가십시다."
"그놈이 어디로 갔소" 갑시다."
"나도 가겠다."
"어머니께서 가셔도 관계치 않지마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 려면 길이 더디니까 분을 참고 가만히 계시면 어머니 가슴 에 시원한 회보를 하여드리오리다."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아니 가면 못 될 일이 있으니, 세 상 없어도 같이 가자. 내가 아무리 늙었어도 넉넉히 쫓아간 다."
옥이가 저의 노모를 기어이 아니 데리고 가려는 것은, 나 중에 무슨 침책이 노모 신상에 돌아갈까 염려함이요, 노파 가 기어이 가려 함은 황가놈을 만나 무엇이라는 꼴도 보고, 자기가 시원히 속죄를 한 번 하여보려는 일뿐이라, 일변으 로 자기 아들을 위하는 생각도 들어감이러라.
노파가 기어코 나서는 것을 억지로 막는 수가 없어, 셋이 동행을 하여 그 주막을 찾아오는데, 겨울해가 넘어가기 시 작을 하더니 걷잡을 새 없이 침침한 밤이 되었는데, 주막 근처에를 당도하여서는 옥이가 자기 노모는 그 집 굴뚝 뒤 로 돌아가 숨어 있으라 하고, 영록과 같이 바로 들어간다.
급기 방문을 열고 보니 서씨와 주인계집 뿐이요, 황가는 보 이지 아니한지라 이상스러워 한 발을 들여 놓으며, 이 구석 저 구석 둘러보니, 황가가 웃목 구석 벽에 가 착 붙어 서서 손짓을 홰홰 내두른다. 옥이가 속 마음으로, (압다, 그놈 의사스럽다. 저를 보면 김서방님이 도망할까봐
" 이놈아, 네가 도망할까봐 걱정을 한단다.) 하고 방으로 썩 들어서며,
"어서 이리로 들어오시오. 날도 춥고 밤도 되었는데 이 주 막에서 자고 갑시다."
영록이가 대답을 하고 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황가는, (옳다, 이놈이, 인제는 내 후환을 다 끊어버리겠다. 저놈이 죽을 데를 제 발로 어정어정 걸어들어오는구나.) 연희는 자기 남편이 들어오는 양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속으로, (에구머니! 큰일났구나! 어쩌자고 저놈을 따라 여기를 오시 나" 저놈은 장정 둘이요, 우리는 약질 내외뿐이니 속절없이 원수도 못 갚고 죽을 터이지.‥‥‥. 나야 백 죽어도 아깝지 않은 인생이지마는‥‥‥ 당당한 남자의 신분이 되셔서 부 친의 원수도 못 갚고 일개 여자로 하여‥‥‥.) 하고 은근히 눈짓을 연해 해도 영록은 번연히 보고도 못 본 체 썩 들어와 앉는지라 그 광경을 당할수록 연희 마음은 한 웅큼이 되어, (에구, 저 양반이 내 눈짓하는 것을 못 본 체할 제는, 나의 사정은 모르고 약조를 어긴 것이라든지, 황가와 같이 있는 것을 모두 괴악히 여기시는 것이로구나.) 옥이가 웃목을 향하여,
"서방님, 왜 거기 계십시오" 이리로 행차하셔 이분과 인사 나 하시지요."
영록은 황가를 보고 가장 두려워하는 듯이 음즉음즉하고, 황가는 가장 모르는 듯이 앞에 턱 앉으며 옥이를 보고,
"이애, 이 양반이 누구냐?"
다시 영록더러,
"노형 인사합시다."
영록이가 짐짓 떠는 목소리로
"예 예, 나 나 나는 기 기 김서방이요. 대 대대 댁은 누구 시오?"
"응, 나를 아마 알기 쉬울걸. 나는 다동 서주사 서랑되는 황공삼이라는 사람."
이때에 연희의 마음이 어느 지경이라 하리요"
(어구머니! 어떻게 하다가 저 몹쓸 놈에게 속아 붙들려 왔 을까" 인제는 부모의 원수도 못 갚고 속절없이 죽겠네. 주인 영감이나 있었더면 말려나 줄 것을 어디 가고 없고, 저 다 죽게 된 마누라 하나 뿐인즉 소용이 있어야지. 오냐, 사세를 보아 남편이 저놈들 손에 해를 당하는 날이면 내가 물불을 헤아릴 것 다시 무엇 있느냐! 이를 갈아붙이고 대어들어 저 놈을 깨물고 집어 뜯고 머리를 도끼 삼아 코빼기를 들이받 아서라도 저 죽고 나 죽고야 말리라.) 하고 닭의 알 봄 고양이 노리듯 하고 있는데, 황가는 여전 히 영록을 늦췄다 되었다, 으르고 달래고, 제 세상이나 만난 듯이 양양자득하는데, 영록은 속으로 우스운 것을 참고 묻 는 말대답을 다 해간다.
옥이는 황가 곁에 바싹 가까이 앉아 둘의 수작을 연해 참 례하며, 그는 그렇지 않고 그는 그렇다고 영록이를 으르기 도 하고 황가를 말리기도 하는데,
"여보아라, 대강이에 피도 아니 마른 자식이 계집이라는 것 이 다 무엇이며, 또는 네게는 상관도 없고 나와 정혼을 하 여 반장 성례하려는 신부를, 요 염치없는 놈아, 감언이설로 꾀어 데리고 도망을 하면 하늘을 올라갈 줄 알았더냐" 땅으 로 들어갈 줄 알았더냐" 그 신부와 죽으나 사나 손목을 맞 잡고 왜 못 있고 내게 와서 저렇게 있게 하였더냐" 하늘이 정하신 연분을, 요놈, 이 방정스런 놈, 네가 저희하려면 될 것이냐?"
"오늘 이 지경되 터에 내가 그대와 장황히 말할 것이 없거 니와, 신부로 말하면 본래 나와 주단 거래까지 할 뿐 아니 라 피차에 같이 마음이 합하여 남 듣기에 발포는 아니하였 으나, 은근히 백년 사생을 같이 하자는 맹세가 굳게 있었은 즉, 그대의 억지로 결혼코자하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볼 리 가 만무하니, 깊이 물을 바가 없거니와, 그대가 결혼을 못하 였으면 뒤통수 치고 물러가는 것이 가하겠고, 정 분하면 모 월 모일이라도 나를 찾아 시비를 하거나 신부를 뺏앗아가거 나 하는 것이 가하거늘, 아무 죄없ㅇ신 우리 아버지는 어찌 살해하였는고?"
황가의 얼굴빛이 변하면서,
"이놈, 사람 궂히겠구나! 네 아비를 누가 죽였단 말이냐"
너같이 법 모르는 놈의 아비를 열 죽여 관계치 않지. 요놈, 너는 이 세상에 얼마나 살아 있을 줄 아느냐?"
영록이가 껄걸 웃으며,
"내가 왜 못 살아" 하나님이 소소히 내려다보시는데 죄악 이 관영한 너는 죽지 않고 무죄한 내가 못 살아?"
황가가 기가 막혀 무지한 주먹을 들고 영록을 향하여 때리 려 하는데, 옥이가 얼른 붙잡으며,
"왜 이리 급하게 굴으시오" 좀 참으시오."
황가가 옥이를 뿌리치며,
"왜 붙잡느냐" 요놈을 길닿게 말할 것 없이 진작 죽여, 다 시 아강이질을 못하게 하여야 하겠다."
옥이가 붙잡은 황가의 팔목을 놓지 아니하고,
"가만히 계십시오. 김서방님을 죽여야 옳을까 아니 죽여야 옳을까 물어볼 데가 있읍니다."
"그 애는 별소리를 다하지. 죽이고 아니 죽이는 것이 내 장 중에 있는데 누구더러 물어보란 말이냐?"
"아니오, 물어볼 데가 있지요."
하더니 문을 열고 내다보며,
"거기 계십니까" 이리로 들어오십시오."
그 방 굴뚝머리에서 누가,
"오냐, 들어간다."
대답을 하고 충충 오는 소리를 듣고 황가는 정신이 얼떨하 여,
"이애, 불러들이는 이가 누구냐" 이애, 글쎄, 누가란말이 냐?"
연희는 더욱 가슴이 내려앉으며,
"에구, 저놈의 당이 또 하나 있네. 인제는 우리 내외가 속 절없이 다 죽겠구나."
급기 그 사람이 들어오며,
"서방님, 안녕합시오?"
하는 소리에 그 기승하던 황가가 졸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이 외꽃 빛이 된다. 들어오는 사람은 즉 옥의 모라. 황 가 옆에 턱 앉으며,
"왜 죽었단 사람이 살아왔으니까 이상하지?"
황가가 모기 소리만치 가는 소리로,
"내가 주을 혼이 들어 그리 했으니 용서하게."
노파가 황가의 얼굴에 침을 탁 뱉으며,
"용서하게" 누구더러 용서하게" 아무리 심사가 불량하기로 제일 보아주는 이 늙은이를 무슨 곡절로 해변으로 유인해다 가 발길로 차 들이뜨려" 너같은 의리 부동한 악한 무리는 그대로 두어서 아니되겠다."
하고 밤이나 낮이나 원수를 갚는다고 품고 다니던 첩리한 칼 하나를 내어 황가의 가슴을 콱 찌르며,
"이놈, 나는 네게 죽어 보았으니, 너는 내게 좀 죽어보아 라."
황가가 사세 위급하니까 들어오는 칼을 손으로 받고 벌떡 일어나 도망을 하려는데, 옥이가 뒤에 있다가 황가의 다리 를 잡아 뒤로 나꾸치니, 황가가 덜컥 나아가 쓰러지며 곁묻 어 일어나려는 것을 영록이가 노파의 칼을 빼앗아 황가의 배를 가르려 하니, 노파가 손에서 쥔 칼을 주지 않고 소리 를 질러 말하거를,
"이 늙은이가 김서방님 내외분께 청할 말씀이 있읍니다. 두 분께서 부능ㄹ 참으시고 황가놈의 목숨을 이늙은이 손으로 끊게 하여주시면 그런 덕택이 없을 줄로 아오니 그쯤 통촉 하여 주옵시고, 옥아, 너도 황가를 어미 손으로 죽여 어미 가슴이 시원하게 하여라."
하고 다시 대들어 황가의 가슴을 턱턱 찌르니, 황가가 그 자리에 푹 엎드러져 선지미를 쏟으며 다시 말 한 마디 발명 도 못하더라.
연희는 그 남편을 위하여 무한 심려하다가, 노파의 그 광 경을 보고 비로소 마음을 놓았는데, 그 집주인 계집이 그 야단을 보고 어찌 겁이 나던지 뒤 울구멍으로 빠져 한달음 에 항구로 내려와 경찰서 대문을 두드리고 급한 상황을 고 발하였더라.
해분서에 재근한 권경부는 연희 진맥하던 권주부의 아우 라. 그 형제간 우애가 자별하므로 틈만 있으면 그 형님집에 가서, 피차에 당일 소경력을 담화하는 고로 일찍이 황가의 청함을 인하여 연희 맥보던 이야기를 하며 껄걸 웃고,
"이애, 내가 의학 공부 사십 년에 변 괴상한 일을 다 보았 다."
"무엇을 보아 계시오니까?"
"어제 어떤 소년 하나이 와서 제 아우의 병이 위중하니 잠 시 가서 보아달라고 하도 성화를 하기에 인정에 딱하여 아 니 가보았더냐" 급기 병자라는 걸 보니까 분명 여자가 남복 한 것 같은데 맥을 본즉 갈데없는 태맥이기로 아무 병이 없 고 여자 같으면 정녕 태맥이라고 말을 하였더니, 소위 그 형 된다는 자가 펄쩍 뛰며, 남자가 태맥이 다 무엇이요, 필 경 무슨 적인듯하니 적을 없앨 약을 지어달라 하기에 나는 도저히 약을 쓸 수 없다고 일어서 나오는데 그자가 쫓아나 오더니 제게 어떻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다년 괴를 배어 고 생하니 그것이나 깨뜨릴 약을 달라 하기에, 그리하라 대답 하고 와서 가만히 생각한즉, 그자가 웬 계집을 변복을 시켜 데리고 다니며 자식 밴 것을 떨어뜨리려고 애를 쓰노" 내가 몰랐으면이어니와 번연히 알고서야 적악할 필요가 없다, 하 고 보태할 약을 지어준 일이 있다."
권경부가 깜짝 놀라며,
"형님, 그 사람이 어디쯤 있겠읍니까" 약 가져간 지가 벌써 오랬나요?"
"왜 그리하니" 네가 그 사람을 짐작하겠니" 약을 오늘 아침 나절 가져갔는걸."
"형님, 왜 서울 아주머니 못 보셨어요" 아주머니 외손자가 저의 이웃 있던 집 신부를 데리고 도망을 하였은즉 좀 수소 문하여 달라고 아니하였어요?"
"이애, 아니다. 그 아주머니 외손은 지금 나이불과 열여섯 밖에 못되었을 터인데 이 사람은 노성한 것이 팔모로 뜯어 보아도 이십오륙 세 이상은 넉넉히 되었겠더라. 저희들은 곧 도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아저씨께서 부산서 피살하셨다는 소문이 있더라. 너는 아마 들었겠지."
권경부가 깜짝놀라며,
"옳지, 그 시체가 그 아저씨올시다그려. 경찰서로 밀통 오 기를 아무 날 성이 김가라는 사람이 그 항구에 사는 황공삼 의 집에서 참살을 당하였는데, 황가가 어디를 갔다가 그 전 날 제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시체만 부엌 뒤에다 파묻고 제 집에 있던 노파까지 데리고 어디로 도망했은즉 도저히 수색하라 하였기로 내인거객을 엄밀 조사하나 도무지 알 수 가 없읍니다."
"허참, 그놈의 행동이 아무래도 수상하던걸. 그런 줄 알았 더면 그놈위 하인 약 가질러 왔을 제 뒤로 슬며시 네게다 통기를 할걸 그리했구나. 내가 약을 주어 보내고도 종시 의 심이 나서 그 자 있던 주인으로 알아본즉, 잠시 자체도 아 니하고 그 길로 떠나서 어디로 갔다더라."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그놈 있던 주인에게 자세 채근을 좀 하여보겠읍니다."
하고 자기 형님집을 나서서 그 객주를 찾아가는데 웬 인력 거 끌고 오는 자가 어떠한 계집 하나와 같이 오며 수작하는 말이라.
"어, 인력거를 끌다가 별사람을 다 태우고 다녀보았소."
"임자는 인력거를 태다 주고 삯전이나 후히 받아 가지고 오니까 관계치 않소마는, 나는 이게 무슨 액회란 말씀이요"
자다가 얻은 병으로 집에 술도 떨어지고 그 애 아버지도 없 고 일찍이 누워 자려는데, 별안간 우루루 몰려들어와 사람 을 그 모양으로 죽여놓았으니 살인한 저희는 으레 죄를 면 치 못하려니와, 애매한 두꺼비 돌에 치기로, 애꿎은 내가 잘 못하면 못 살게 되겠구려. 그러기에 내가 지금 경찰서로 미 리 고발을 하러 가오."
권경부가 그 소리를 듣고, 그 계집과 인력거군을 붙잡고 대강 힐문한 후, 해서로 데리고 들어가 인력거군의 말과 주 막 계집의 말을 참조하여 즉시 여력 있는 순사를 조발하여 살인범을 일체로 포박하여 오라고 하였더라. 이때 거이 죽 게 되어 실낱 같은 목숨이 겨우 붙어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 고 엎드려 있는 황가를 들여다보고 세 사람이 돌아앉아 차 례로 수죄를 하는데, 밖으로 군도 소리가 데걱데걱 나며 순 사 사오 명이 쓱쓱 들어와서,
"웬 사람들인데 여기서 인명을 임의로 살해하였노?"
"인명 살해한 죄인은 나오니 잡아가십시오."
"아니올시다. 저놈에게 칼질한 죄인은 저올시다. 저를 잡아 가십시오."
노파가 손짓을 홰홰 내두르며,
"그 말이 다 딴소리올시다. 저놈 죽인 죄인은 결코 이 늙은 인데, 저놈이 아직 죽지를 아니하였으니 물어보셔도 아시리 다."
황가가 칼을 여러 군데 맞고 쓰러졌다가,
"에구, 순사 나리, 저 노파의 말이 옳습니다."
한 마디를 겨우 하고 인하여 죽으니, 순사가 일변 황가를 떠메어 앞세우고 영록 내외와 옥이 모자를 모조리 잡아 경 찰서로 데려가려는데, 노파가 소리를 버럭 질러,
"여보, 사람 죽인 죄인은 이 늙은이어늘 다른 사람은 무슨 일로 포박을 하여가시오" 살인자 사라니, 사람 죽인 나 하나 죽었으면 고만이 아니오?"
하고 황가 죽인 칼로 자기 목을 찌르니, 순사와 영록 내외 와 옥이가 급히 달려들어 칼을 빼앗는데, 이미 중요한 곳을 상하여 생명이 끊어졌더라.
이때 경찰서에서 영록 내외와 옥이를 잡아들여, 서장이 권 경부 시켜 심문을 하는데, 황가의 죄상이 일일이 탄로되는 지라 즉시 그 사유로 상부에 보고를 하고 세 사람을 백방하 였더라.
이때에 권주부는 경찰서 밖에 와서 등대를 하고 있다가 영 록 내외와 옥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 영록과 척분되는 말을 한 후, 일변 서울로 사연을 들어 전보를 놓는다, 일변 약을 써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태에 유익하도록 하는데, 영록이가 권주부에게 간청하여 돈백 원을 얻어 옥이 모의 시체를 염습하고 관곽을 갖추어 향양지지에 안장한 후, 인 해 옥이와 의형제를 맺자 함께 서울로 치행을 하여 올라왔 더라.
그 새의 이름은 불사조라 하고 그 얼굴은 영호 같았다. 멀 리서 울려오는 예배당 새벽 종소리에 놀라 깨니 희망의 서 광이 비치는 새 날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