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따라지
지루한 한 겨울동안 꼭 옴츠려졌던 몸뚱이가 이제야 좀 녹고보니 여기가 근질근질, 저기가 근질근질. 등어리는 대구 군실거린다. 행길에 삐죽 섰는 전봇대에 다 비스듬히 등을 비겨대고 쓰적쓰적 부벼도 좋고. 왼팔에 걸친 밥통을 땅에 내려논 다음 그 팔을 뒤로 제쳐올리고 또 바른 팔로 발꿈치를 들어올리고 그리고 긁죽긁죽 긁어도 좋다. 번히는 이래야 원 격식은 격식이로되 그러나 하고 보자면 손톱하나 놀리기가 성가신 노릇. 누가 일일이 그리고만 있는가. 장삼인지 저고린지 알 수 없는 앞자락이 척 나간 학생복 저고리. 허나 삼년간을 내려입은 덕택에 속껍데기가 꺼칠하도록 때에 절었다. 그대로 선 채 어깨만 한번 으쓱올렸다. 툭 내려치면 그뿐. 옷에 몽콜린 때꼽은 등어리를 스을쩍 긁어주고 내려가지 않는가. 한번 해보니 재미가 있고 두 번을 하여도 또한 재미가 있다. 조그만 어깻죽지를 그는 기계같이 놀리며 올렸다 내렸다, 내렸다 올렸다 그럴 적마다 쿨렁쿨렁한 저고리는 공중에서 나비춤, 지나가던 행인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둥굴린다. 한참후에야 비로소 성한 놈으로 깨달았음인지 피익 웃어 던지고 다시 내걷는다. 어깨가 느런하도록 수없이 그러고나니 나중에는 그것도 흥이 지인다. 그는 너털거리는 소맷등으로 코밑을 쓱 홈치고 고개를 돌리어 위야래로 야시를 훑어본다. 날이 풀리니 거리에 사람도 풀린다. 싸구려 싸구려 에잇 싸구려, 십오전에 두 가지, 십오전에 두 가지씩. 인두 비누를 한 손에 번쩍 쳐들고 젱그렁 젱그렁 신이 올라 흔드는 요령소리. 땅바닥에 널따란 종잇장을 펼쳐놓고 안경잡이는 입에 게거품이 흐르도록 떠들어대인다. 일전 한 푼을 내놓고 일년동안의 운수를 보시요. 먹찌를 던져서 칸에 들면 미루꾸 한 갑을 주고 금에 걸치면 운수가 나쁘니까 그냥 가라고. 저편 한 구석에서는 코먹은 바이올린이 닐리리를 부른다. 신통 방통 꼬부랑통 남대문통 씨레기통, 자아 이리 오시오, 암사둔 숫사둔 다 이리 오시요. 장기판을 에워싸고 다투는 무리. 그 사이로 일쩌운 사람들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발가는 대로 서성거린다. 짝을 짓고 산보를 나온 젊은 남녀들, 구지레한 두루마기에 뒷짐진 갓쟁이. 예제없이 가서 덤벙거리는 학생들도 있고 그리고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구경을 나온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채이며 뭘 사내라고 부지런히 보챈다. 배도 좋고 사과도 좋고 또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국화만두는 누가 싫다나. 그놈의 김을 이윽고 바라보다가 그는 고만 하품인지 한숨인지 분간 못할 날숨이 길게 터져 오른다. 아침에 찬밥덩이 좀 얻어 먹고는 온종일 그대로 지친 몸. 군침을 꿀떡 삼키고 종로를 향하여 무거운 다리를 내어딛자니 앞에 몰려선 사람떼를 비집고 한 양복이 튀어나온다. 얼굴에는 꽃이 잠뿍 피고 고개를 내흔들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목노에서 얻은 안주이겠지, 사과 하나를 입에 들이대고 어기어기 꾸겨 넣는다. 이거나 좀 개평탤까. 세루바지에 바짝 붙어서서 같이 비틀거리며 나리 한푼줍쇼, 나리. 이 소리는 들은척 만 척 양복은 제멋대로 갈길만 비틀거린다. 앳다, 이거나 먹어라 하고 선뜻 내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에이 자식두. 사과는 쉬지 않고 점점 줄어든다. 턱살을 추켜대고 눈독을 잔뜩 들여가며 따르자니 나중에는 안달이 난다. 나리, 나리, 한 푼 주세요, 하고 거듭 재우치다 그래도 괘가 그르매, 나리 그럼 사과나좀 무어 이자식아 남먹는 사과를 좀. 혀 꼬부라진 소리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정작 사과는 땅으로 가고 긴치않은 주먹 이 뒤통수를 딱. 금새 땅에 엎뎌질 듯이 정신이 고만 아찔했으나 그래도 사과, 사과다. 얼른 덤벼들어 집어들고는 소맷자락에 흙을 쓱쓱 씻어서 한 입 덥썩 물어 띠인다. 창자가 녹아내리는 듯 향깃하고도 보드라운 그맛이야. 그러나 세번을 물어 뜯고나니 딱딱한 씨만 남는다. 다시 고개를 들고 그담 사람을 잡고자 눈을 히번덕인다. 큰 길에는 동무 깍쟁이들이 가로 뛰며 세로 뛰며 낄낄거리고 한창 야단이다. 밥통들은 한 손에 든 채 달리는 전차 자동차를 이리저리 호아가며 저이깐에 술래잡기 봄이라고 맘껏 즐긴다. 이걸 멀거니 바라보고 그는 저절로 어깨가 실룩실룩하기는 하나 근력이 없다. 따스한 햇볕에서 낮잠을 잔 것도 좋기는 하다마는 그보담 밥을 좀 얻어 먹었다면 지금쯤은 같이 뛰고 놀고 하련만 큰 길로 내려서서 이럴까 저럴까 망설일 즈음 갑자기 따르르응 이자식아. 이크 쟁교로구나, 등줄기가 선뜩해서 기급으로 물러서다가 얼결에 또하나 잡았다. 이번에는 트레머리에 얕은 향내가 말캉말캉 나는 뽀죽구두다. 얼뜬 봐한즉 하르르한 비단치마에 옆에 긴 몇 권의 책 그리고 아리잠직한 그 얼굴. 외모로 따져보면 돈푼이나 좋이 던져 줄법한 고운 아씨다. 대뜸 물고나서며 아씨 한 푼 줍쇼, 아씨 한 푼 줍쇼. 가는 아씨는 암만 불러도 귀가 먹은 듯 혼자 풍월로 얼마를 띠르다 보니 이제는 하릴없다. 그 다음 비상수단이 아니 나을 수 없는 노릇. 체면 불구하고 그 까마귀발로다 신성한 치맛자락을 덥썩 잡아 채인다. 홀로가는 계집쯤 어떻게 다루든 이쪽 생각. 한 번 더 채여라. 아씨 한 푼 줍쇼. 아씨도 여기에는 어이가 없는지 발을 멈추고 말뚱히 바라본다. 한참 노려보고 그리고 생각을 돌렸는지 허리를 구부리어 친절히 달랜다. 내 지금 가진 돈이 없으니 집에 가줄께 이거 놓고 따라 오너라. 너무나 뜻밖의 일이다. 기쁠 뿐더러 놀라운 은혜이다. 따라만 가면 밥이 나올지 모르고 혹은 먹다 남은 빵조각이 나올는지도 모른다. 이건 아마 보통 갈보와는 다른 예수를 믿는 착한 아씬가부다.
치마를 놓고 좀 떨어져서 이번에는 점간히 따라간다. 우미관 옆 골목으로 들어서서 몇 번이나 좌우로 꼬불꼬불 돌았다. 아씨가 들어간 집은 새로 지은, 그리고 전등달린 번듯한 기와집이다. 잠깐만 기다려라, 하고 아씨가 들어갈제 그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기대가 컸다. 밥이냐, 빵이냐, 잔치를 지내고 나서 먹다 남은 떡부스러기를 처치못하여 데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떡고물도 좋고 전여도 좋고 시크므레 쉰 콩나물, 무나물, 아무거나 되는대로. 설마 애까지 데리고 와서 돈 한 푼 주고 가라진 않겠지. 허기와 기대가 갈증이 나서 은근히 침을 삼키고 있을 때 대문이 다시 삐꺽 열린다. 아마 주인 서방님이리라. 조선옷에 말쑥한 얼굴로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네가 따라 온 놈이냐, 하고 한 손으로 목덜미를 꼭 붙들고 그러더니 벌써 어느 틈에 네번이나 머리를 주먹이 우렸다. 그러면 아가 파 소리를 지른 것은 다섯번째부터요 눈물은 또 그 담에 나온 것이다. 악장을 너무 치니까 귀가 아팠음인지 요자식 다시 그래봐라 다리를 꺾어 놀테니. 힘 약한 독사와 도야지는 맞대항은 안된다. 비실비실 조 골목 어귀까지 와서 이제야 막 대문안으로 들어가려는 서방님을 돌려대고, 요자식아 네 다릴 꺾어 놀테야, 용용 죽겠지. 엄지 손가락으로 볼따귀를 후벼보이곤 다리야 날 살리라고 그냥 뺑소니다. 다리가 짧은 것도 이런 때에는 한 욕일지도 모른다. 여남은 칸도 채 못 가서 벽돌담에 가 잔뜩 엎눌렸다. 그리고 허구리 등어리 어깻죽지 할 것 없이 요모조모 골고루 주먹이 들어온다. 때려라, 그래도 네가 차마 죽이진 못하겠지. 주먹이 들어올 적마다 서방님의 처신으로 듣기 어려운 욕 한마디씩 해가며 분통만 폭폭 찔러논다. 죽여봐 이자식아, 요런 챌푼이 같으니, 네가 애편쟁이지 애편쟁이. 울고 불고 요란한 소리에 근방에서는 쭉 구경을 나왔다. 입때까지는 서방님은 약이 올라서 죽을등 살등 몰랐으나 이제와서는 결국 저의 체면 손상임을 깨달은 모양이다. 등뒤에서 애편쟁이, 챌푼이, 하는 욕이 빗발치듯 하련만 서방님은 돌아다도 안 보고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섭지 않다는 증거로 침 한 번을 탁 뱉고는 제집 골목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맡아 놓고 깍쟁이의 승리다.
그는 담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으나 실상은 모욕당했던 깍쟁이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데 큰 우월감을 느낀다, 염병을 할 자식, 하고 눈물을 닦고 골목 밖으로 나왔을 때엔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떠오른다. 야시에는 여전히 뭇사람이 흐르고 있다. 동무들은 큰 길에서 밥통을 뚜드리며 날뛰고 있다. 우두커니 보고 섰다가 결리는 등어리도 잊고 배고픈 생각도 스르르 사라지니 예라 나두 한번 끼자. 불시로 건기운이 뻗치어 야시에서 큰 길로 내려선다. 달음질을 쳐서 전찻길을 가로 지르려 할 제 맞닥드린 것이 마주 건너오던 한 신여성이다. 한 손에 대여섯살된 계집애를 이끌고 야시로 나오는 모양. 이건 키가 후리후리하고 걸찍하게 생긴 것이 어디인가 맘새가 좋아 보인다. 대뜸 손을 내밀고 아씨 한 푼 줍쇼. 얘 지금 돈 한푼 없다.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이것도 돌아다보는 법 없다. 야시에 물건을 흥정하며 태연히 저 할 노릇만 한다. 이내 치마까지 끄들리게 되니까 이제야 걸음을 딱 멈추고 눈을 똑바로 뜨고 노려본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되 옆의 사람이나 들으란 듯이 얘가 왜 이리 남의 옷을 잡아다녀. 오가던 사람들이 구경이나 난 듯이 모두 쳐다보고 웃는다. 본 바와는 딴판 돈푼 커녕 코딱지도 글렀다. 눈꼴이 사나와서 그도 마주대고 벙벙히 쳐다보고 있느라니 웬 담배가 발앞으로 툭 떨어진다. 매우 길음한 꽁초. 얼른 집어서 땅바닥에 쓱쓱 문대어 불을 끄고는 호줌에 넣는다. 이따는 좁쌀친구끼리 뒷골목 담밑에 모여 앉아서 번갈아 한 모금식 빨아가며 잡상스런 이야기로 즐길 걸 생각하니 미리 재미롭다. 적어도 여남은 개 줏어야 할텐데 인제서 겨우 꽁초 네 개니. 요즘에는 참 담배 맛도 제법 늘어가고 재채기 하던 괴로움도 훨씬 줄었다. 이만하면 영철이의 담배쯤은 감히 덤비지 못하리라. 제따위가 앉은 자리에 꽁초 일곱 개를 다 피울텐가, 온 어림없이. 열살 밖에 안 되었건만 이만치도 담배를 잘 필 수 있도록 훌륭히 됨을 깨달으니 또한 기꺼운 현상, 호줌에서 손을 빼고 고개를 들어보니 계집은 어느덧 멀리 앞섰다. 벌에 쐈느냐, 왜 이리 달아나니. 이것은. 암만 따라가야 돈 한 푼 막무가낼 줄은 번연히 알지만 소행히 밉다. 에라, 빌어먹을 거, 조금 느므러나 주어라. 힝하게 쫓아가서 팔꿈치로다 그 궁등이를 퍽 한번 지르고는 아씨 한 푼 주세요. 돌려대고 또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더니 고개만 흘낏 돌려 보고는 잠자코 간다. 그럼 그렇지 네가 어디라구 깍쟁이에게 덤비리. 또 한 번 질러라. 바른편 어깨로다 이번엔 넓적한 궁등이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아씨 한 푼 주세요.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다. 이 계집이 행길 바닥에 나가자빠지면 그 꼴이 볼만도 하련만 제아무리 들이받아도 힘을 들이면 들일수록 이쪽이 도리어 튕겨져 나올 뿐 좀체로 삐끗없음에는 에라 빌어먹을 거. 치맛자락을 닝큼 집어다 입에 들이대고는 질겅질겅 씹는다. 으흐흥 아씨 돈 한 푼. 그제야 독이 바짝 오른 법 한 표독스러운 계집의 목소리가, 이 자식아 할 때는 왼몸이 다 짜릿하고 좋았으나 난데없는 고라 소리가 벽력같이 들리는 데는 정신이 그만 아찔하다. 뿐만 아니라 그순간 새삼스레 주림과 아울러 아픔이 눈을 뜬다. 머리를 얻어맞고 아이쿠 하고 몸이 비틀할 제 집개같은 손이 들어와 왼편 귀바퀴를 잔뜩 찝어든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끌리는 대로 따라만 가면 고만이다. 붐비는 사람 틈으로 검불같이 힘없이 딸려 가며 그러나 속으로는 허지만 뭐. 처음에는 왜도 겁도 집어먹었으나 인제는 하도 여러번 겪고난 몸이라 두런움보다 오히려 실없는 우정까지 느끼게 된다. 이쪽이 저를 미워도 안하련만 공연스레 제가 씹고 덤비는 걸 생각하면 짜장 밉기도 하려니와 그럴수록에 야릇한 정이 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시키려는가. 유리창을 닦느냐, 뒷간을 치느냐, 타구쯤 정하게 부셔주면 그대로 나가라 하겠지. 하여튼 가자는 건 좋으나 원체 잔뜩 찝어당기는 바람에 이건 너무 아프다. 구두보담 조금만 뒤졌다는 갈데없이 귀는 떨어질 형편. 구두가 한 발을 내걷는 동안 두 발 세 발 잽싸게 옮겨 놓으며 통통걸융으로 아니 따라갈 수 없다. 발이 반밖에 안 차는 커다란 운동화를 칠떡칠떡 끌며 얼른 얼른 앞에 나서거라. 재쳐라, 재쳐라, 얼른 재쳐라. 그러나 문득 기억나는 것이 있으니 그 언젠인가 우미관 옆골목에서 몰래 들창으로 들여다보던 아슬아슬하고 인상깊던 그 장면. 위험을 무릅쓰고 악한을 추격하되 텀블린도 잘 하고 사람도 잘 집어세고 막 이러는 용감한 그 청년과 이때 청년이 하던 목잠긴 그 해설. 그리고 땅땅 따아리 땅땅 따아리 띵띵 띠이 하던 멋 있는 그 반주.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큰 거리, 이 때 청년이 목숨을 무릅쓰고 구두를 재치는 광경이라 하고 보니 하면 할수록 무척 신이 난다. 아아 아구 아프다. 재쳐라, 재쳐라, 얼른 재쳐라, 이때 청년이 땅땅 따아리 땅땅 따아리 띵띵 띠이 띵띵 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