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공모를 알게 된 크산티페가 베드로에게 알려주고는 로마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마르첼로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도 그에게 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배신자처럼 달아나도 되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런 게 아니지요. 다만 로마를 떠나면 당신은 계속해서 주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가 형제들의 말에 복종하여 혼자 로마를 떠나면서 “아무도 따라오지 마십시오. 나는 변장을 하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마 성문을 벗어나자, 베드로는 로마로 들어가는 주님을 보았다.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주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다.

주님께서는 “그렇다, 베드로야.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그제서야 베드로가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베드로는 기쁨에 가득 차서 주님을 찬미하면서 로마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십자가에 못박힐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일이 베드로에게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형제들에게 돌아가서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시를 전해주었다. 슬픔에 잠긴 형제들이 울면서 “젊은 저희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다시 떠나가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주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신앙을 더욱 굳세게 만들어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오래도록 살려두시겠다면 난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를 데리고 가시겠다면 역시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마 군사 네 명이 와서 그를 잡아다가 아그리파에게 데리고 갔다. 아그리파는 베드로를 독신죄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했다.

가난한 자와 부자, 과부와 고아, 건강한 사람과 불구자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베드로를 바라보고 또 그를 구출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한 목소리로 “아그리파여, 베드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이오? 그가 죽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멸망시키실까 두렵소.”라고 고함쳤다.

베드로가 조용히 하라고 진정시킨 뒤에 “나를 통해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기적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각자의 행실에 따라 보상하실 때까지 그분을 기다리십시오.

아그리파는 자기 아버지의 하인이니 그에게 화내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그대로 지금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가는 것을 왜 꾸물거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십자가에 가서 베드로가 “오, 십자가의 이름! 숨겨진 신비여! 십자가의 이름으로 표현된 형언할 수 없는 자비여!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인성이여! 오, 형언할 수 없고 분리할 수 없는 사랑이여! 지상의 경력을 끝내는 자리에서 나는 당신을 붙잡고 있습니다. 사형 집행자들이여, 내 머리를 아래로 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들이 베드로의 말대로 거꾸로 매달았다.

형제들이 아멘으로 응답할 때, 그가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