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번뇌/압록강에서

압록강(鴨綠江)은 고조선(古朝鮮)에 있어서는 도리어 남방(南方)에 치우치는 내정(內庭)의 일수(一水)이었다. 이것이 아주 북경(北境)을 짓게 된 때로부터 조선인(朝鮮人)이 반도(半島)라는 자루 속에서 웅크리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다가 최영(崔瑩)으로 인(因)하여 오래간만에 요수(遼水) 저편의 넓은 뜰에 하마 활개를 다시 칠까 하였더니 이태조(李太祖)가 위화도(威化島)까지 와서 딴 뜻을 두고 회군(回軍)하는 통에 모처럼의 기회(機會)도 수포(水泡)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강(江)을건너 질러놓은 대철교(大鐵橋)는 어찌보면 떨어졌던 옛 땅을 거멀못으로 찍어 당긴 것 같기도 하지마는 이 물 한줄기를 경계(境界)로 하여 이 둑에는 하얀 사람이 다니고 저 둑에는 퍼런 사람이 우물우물함은 재미있는 대조(對照) 그 속에 퍽 느꺼운 것이 있다. 고구려(高句麗) 고어(古語)에 구토회복(舊土恢復)을 ‘다물(多勿)’이라 한다 함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적혔다.

其一 편집

말 씻겨 먹이던 물 풀빛 잠겨 그득한데,
위화(威化) 섬 밖에 떼 노래만 높은지고,
맞초아 궂은비 오니 눈물 겨워 하노라.

其二 편집

안뜰의 실개천이 언제부터 살피 되어,
흰옷 푸른 옷이 편갈리어 비최는고,
쇠다리 거멀 아니면 ‘다물’ 볼 줄 있으랴.

其三 편집

굽은 솔 한 가지가 저녁 물에 비최이니,
추모(鄒牟)님 활등인 듯 도통(都統) 어른 채찍인 듯,
꿈 찾아 다니는 손이 놓을 줄을 몰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