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조금만 짧았다면

허공에 둥실 높이 떠올라 중심을 잃은 몸이 삐끗할제, 정신이 고만 앗찔하야 눈을 떠 보니, 이것도 꿈이랄지, 어수산란한 환각이 눈앞에 그대로 남어 아마도 그동안에 잠이 좀 든듯 싶고, 지루한 보조로 고작 두점 오분에서 머뭇거리던 괘종이 그 사이에 십오분을 돌아 두점이십분을 가르킨다. 요바닥을 얼러 몸을 적시고 흔근히 내솟은, 기죽죽한 도한을 등으로 느끼고는 고 옆으로 자리를 좀 비켜눕고저 끙, 하고 두팔로 상체를 떠들어보다 상체만이 들리지 않을뿐 아니라 예리한 칼날이 하복부로 저미어 드는듯이 무되게 처뻗는 진통으로 말미아마, 이르 꽉 깨물고는 도루 그자리에 가만히 누어버린다. 그래도 이 역경에서 나를 구할수 있는것이 수면일듯 싶어, 다시 눈을 지긋이 감아보았으나, 그러나 발치에 걸린 시계종소리만 점점 역역히 고막을 두드려올뿐, 다라난 잠을 잡을랴고 무리를 거듭 하야온, 두 눈뿌리는 쿡쿡 쑤시어 들어온다. 이번에는 머리맡에 내던졌던 로-드안락을 또한번 집어들어 두 눈에 점주하야보다가는, 결국 그것마저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닫자 인제는 남어지로 하나 있는 그 행동을 애꼈음에도 불구하고, 그댈 들어누운채 마지못하야 떨리는 손으로 낮후였던 람푸의 심지를 다시 돋아올린다. 밝아지 시계판에서, 아즉도 먼동이 트기까지, 세시간이나 넘어 남았음을 새삼스리 읽어보고는 골피를 찌프리며 두 어깨가 으쓱하고 우그러들만치, 그렇게 그 새간의 위협이 두려워진다. 시계에서 겁 집어먹은 시선을 천정으로 힘없이 걷어올리며 생가하야보니, 이렇게 굴신을 못하고 누어 있는것이 오날째 나흘이 되어오련만 아무 가감도 없는듯 싶고, 어쩌면 변비로 말미아마 내치핵이 발생한것을 이것쯤, 하고 등한시하였던 것이. 그것이 차차 퍼지고 그리고 게다 결핵성농양을 이루어 치질중에도 가장 악성인 치루, 이렇게 무서운치루를 갖게 된 자신 밉지 않은것은 아니나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나의 본병인 폐결핵에서 필연적으로 도달한 한 과정일듯도 싶다.

치루하면 선듯 의사의 수술을 요하는 종창인줄은 아나, 우선 나에게는 그럴 물질적여유도 없거니와 설혹 있다 하드라도 이렇게 쇠약한 몸이 수술을 받고 한 달포동안 시달리고 난다면, 그꼴이 말못될것이니 이러도 못하고 저러도 못하고 진퇴유곡에서 딱한 생각만 하야본다. 날이 밝는다고 거기에 별 뾰죽한 수가 있는것도 아니로되, 아마도 이것은 딱한 사람의 가얄핀 위안인듯 싶어 어떡하면 이 사간을 보낼수 있을가, 하고 그 수단에 한참 궁하다가 요행히도 나에게 흡연술이 있음을 문득 깨닫자, 옆의 신문지를 두손으로 똥치똥치말아서 그걸로다 저쪽에 놓여있는 성냥값을 끌어내려가지고 권연 한개를 입에 피어문다. 평소에도 지침으로 인하야 밤권연을 삼가왔던 나이매 한먹음을 조심스리 빨아서 다시 조심스리 내뿜어 보고는 그래도 무사한것이 신통하야 좀더 많이 빨아보고 이렇게 나종에는 강렬한 자극을얻어보고저 한가슴 듬뿍이 흡연을 하다가는 고만아치, 하고 재채기로 시작되어 괴로히 쏟아지는 줄기침으로 말미아마 결리는 가슴을 만저주랴, 쑤시는 하체를 더듬어주랴, 눈코 뜰새없이 퍼둥지둥 억매인다. 이때까지 혼곤히 잠이 들어 있었는듯 싶은, 옆방의 환자가 마저 나의 기침이 옮아가 쿨룩어리기 시작하니 한동안 경쟁적으로 아래웃방에서 부즈런히 쿨룩어리다 급기야 얼마나 괴로움인지, 어그머니 하고 자지러지게 뿜어놓는 그 신음소리에 나는 뼈끝이 다 저리어온다. 나의 괴로움보다는 그 소리를 듣는것이 너머도 약약하야 미안한 생각으로 기침을 깨물고 저노력을 하였으나 입 막은 손을 떠들고까지 극성스리 나오는 그 기침을 어찌 할 길이 없어,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죄송스리 쿨룩어리고 있노라니 날로 더하야가는 아들의 병으로하야 끝없이 애통하는 옆방 그 어머니의 탄식이 더욱 마음에 아파온다. 아들의 병을 고치고저 헙수룩한 이 절로 끌고와 불전에 기도까지 올렸건만 도리어 없던 증세만 날로 늘어가는것이, 목이 부어 밥도 못먹고는 하루에 겨우 밈 몇 수까락식 떠넣는것도 그나마 돌라놓고 마는것이나, 요즘에 이르러서는 거지반 보름동안을, 웬 딸국질이 그리 심악한지, 매일같이 계속되므로 겁이 덜 컥 났던차에, 게다가 어제 아츰에는 보꼬개에서 우연히도 쥐가 떨어저 아차 인젠 글렀구나, 싶어 때를 기다리고 앉었는 그 어머니였다.

한때는 나도 어머니가 없음을 슬퍼도 하였으나 이 정경을 목도하고 보니, 지금 나에게 어머니가 게섰드라면 슬퍼하는 그 꼴을 어떻게 보았으랴, 싶어 일즉이 부모를 여윈것이 차라리 행복이라고 없는 행복을 있는듯이 느끼고는 후-하고 가벼히 숨을 돌라어본다. 머리맡의 지게문을 열어제치니 가을바람은 선들선들 이미 익었고, 구슬피 굴러드는 밤버레의 노래에 이윽히 귀를 기우리고 있었던 나는 불현듯 몸이 앞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슲었는가, 까닭모르게 축축이젖어오는 두 눈뿌리를 깨닫자, 열을 벌컥 내가지고는 네가 울테냐 네가 울테냐 이렇게 무뚝뚝한 태도로 비열한 자신을 열러보다, 그래도 그 보람이 있었는지 흥, 하고 콧등에 냉소를띠우고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우려치고, 그리고 가슴우에 얹었던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초조히 훌터본다. 너 말고도 얼마든지 울수 있는 창두적각이 허구많을터인대 네가 우다니 그건 안되리라고 쓸쓸히 비웃어던지고는, 동무에게서 온 편지를 두손에 펴처들고 이것이, 네번째이련만 또 다시 경건한심정으로 근독하야 본다.

金兄께
심히 놀랍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일이 막막할 수가 없습니다.
울어서 조금이라도 이 답답한 가슴이 풀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울 것 같습니다.

이것은 나의 이 사실을 인편으로 듣고 너무도 놀란 마음에 황황이 뛰오려 하였으나, 때마침 자기의 아우가 과한 객혈로 말미암아 정신없이 누웠고, 그도 그렇건만 돈 없어 약 못 쓰니 형된 마음에 좋을 리 없을 테니, 이럴까 저럴까 양난지세(兩難之勢)로 그 앞에 우울히 지키고만 앉았는 그 동무의 편지였다. 한편에는 아우가 누웠고, 또 한편에는 동무가 누웠고, 그리고 이렇게 시급히 돈이 필요하건만 그에게는 왜 그리 없는 것이 많았던지, 간교한 교제술이 없었고, 비굴한 아첨이 없었고, 게다 때에 찌든 자존심마저 없고 보매,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청년에게 처세의 길을 열어줄 수 없어 그대로 내굴렸으니, 드디어 말없는 변질이 되어 우두커니 앉았는 그를 눈앞에 보는 듯하다. 아, 나에게 돈이 왜 없었던가 싶어 부질없는 한숨이 터져나올 때, 동무의 편지를 다시 집어들고 읽어보니, 그 字字句句에 맺혀진 어리석은 그의 순정은 나의 가슴을 커다랗게 때려놓고,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엄숙히 암시하여 주는 듯하여 우정을 넘는 그 무엇을 느끼고는 감격 끝에 눈물이 머금어진다.

며칠 있으면 그는 나를 찾아오려니, 그때까지 이 편지를 고이 접어두었다. 이것이 형에게 보내는 나의 답장입니다. 고 그 주머니에 도로 넣어주리라고 이렇게 마음을 먹고 봉투에 편지를 넣어 요 밑에다가 깔아 둔다. 지금의 나에게는 한 권의 성서보다 몇 줄의 이 글발이 지극히 은혜롭고 거칠어가는 나의 감정을 매만져주는 것이니, 그것을 몇 번 거듭 읽는 동안에 더운 몸이 점차로 식어옴을 알자, 또한번 램프의 불을 낮춰놓고 어렴풋이 눈을 감아본다. 그러다 허공에 둥실 높이 떠올라 중심을 잃은 몸이 삐끗하였을 때, 정신이 그만 아찔하여 눈을 떠보니, 시간은 석 점이 되려면 아직도 5분이 남았고, 넓은 뜰에서 허황히 궁그는 바람에 법당의 풍경이 은은히 울리어오는 것이니 아아, 가을 밤은 왜 이리 안 밝는가고, 안타깝게도 더딘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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