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산문집/문예시평

演劇熱(연극열)의 勃興(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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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文藝(조선문예)의諸方面(제방면)이 小說(소설)이나 評論(평론)이나 映畵(영화)나 모다 一種(일종)의 不振狀態(부진상태)에 빠진듯한 最近(최근)에 唯獨(유독) 演劇(연극)에對(대)한 熱心(열심)만이 一般(일반)으로 昻揚(앙양)된 表徵(표징)을 發見(발견)할수있다. 新聞紙(신문지)의 傳(전)하는 消息(소식)을 들으면 各地方(각지방)에서 多數(다수)의劇團(극단)이 組織(조직)된다. 그중멫은 左翼的標榜(좌익적표방)을 가진것이요 나머지는 單純(단순)한 好奇心(호기심)에서 出發(출발)한듯하다. 그 組織(조직)된 劇團(극단)들이 얼마나한 演劇的活動(연극적활동)을 하는지는 듯지못하였거니와 비록 큰實行(실행)이 없다하드라도 朝鮮(조선)의 現實(현실)에 비추어 그것이 놀랄일이라는것보다 오히려 當然(당연)에 가까운일이고 組織(조직)된 事實(사실)만해서도 演劇熱(연극열)의 潜在(잠재)는 表明(표명)되는것같다.

또 京城(경성)에서 今年(금년)여름以後(이후) 硏劇舍(연극사)는 二個月(이개월)동안 演劇市場(연극시장)은 三個月(삼개월)동안의 長期興行(장기흥행)을 마쳤고 新舞臺(신무대) 또한 團成社(단성사)에서 一個月以上(일개월이상)의 實演(실연)을 거듭하고 있는中(중)이다. 이들 營業的劇團(영업적극단)들의 興行(흥행)이 劇本(극본)의 取擇(취택)에 所謂(소위) 新派劇(신파극)의 臭味(취미)를 멀리 벗어나지못하고 舞臺裝置(무대장치)와 俳優演出(배우연출)의 技術的方面(기술적방면)에 있어서도 刮目(괄목)할만한것을 길러내는 價値(가치)있는 任務(임무)가있고 또 朝鮮(조선)에서 長期興行(장기흥행)에 必要(필요)한 觀客層(관객층)의 存在(존재)를 證明(증명)하야 常設劇團組織(상설극단조직)에 可能(가능)에 한 指示(지시)를준다.

이밖에 우리의 强烈(강렬)한 關心(관심)을 끄으는것은 劇藝術硏究會(극예술연구회)의 成立(성립)이다. 이會(회)는 外國文學(외국문학)과 劇技術(극기술)을 攻究(공구)한 諸氏(제씨)로 組織(조직)되여 이미 第一回劇藝術講習會(제일회극예술강습회)를 開催(개최)하였고 또 硏究生(연구생)으로 實演劇團(실연극단)을 組織(조직)하였다한다. 이會(회)가 實驗的公演(실험적공연)에나 將來朝鮮(장래조선)의 新劇運動(신극운동)에 獻身(헌신)할 일군을 養成(양성)함에 學生層(학생층)을 그重要對象(중요대상)으로 삼는것은 가장 正當(정당)한 處事(처사)일것이다. 後進國(후진국)의 諸運動(제운동)에 있어 學生層(학생층)이 重要(중요)한 所任(소임)을 하는것은 周知(주지)의 事實(사실)이며 朝鮮(조선)의 過去(과거)도 이를 證明(증명)한다. 劇運動(극운동)의 方面(방면)에있어서도 正當(정당)한 指導(지도)만 받으면 學生劇(학생극)의 가질 任務(임무) 또한 클것이다. 朝鮮人(조선인)의 各學校(각학교)의 學生團體(학생단체)는 學校又(학교우)는 學生層(학생층)의 創立紀念(창립기념)으로 年一二回(연일이회)의 公演(공연)을한다. 그러나 그 劇本難(극본난)에 해매이는 모양 또 上演(상연)하는 劇本(극본)의 醜態(추태)는 우리들 所謂(소위) 文藝(문예)를 攻究(공구)한輩(배)로서 悲慘(비참)의 念(염)을 일으키게한다. 近來(근래) 이 劇藝術硏究會(극예술연구회)에 對(대)하야 各處(각처)의 學生團體(학생단체)로부터 劇本(극본)의 提供(제공)과 上演(상연)의指導(지도)를 要求(요구)하였으나 要求(요구)하는 期日(기일)의 短促(단촉)으로말미암아 많이 酬應(수응)치못하였다고 傳(전)함을 드렀다. 대개 近代劇(근대극)이라 或(혹)은 新劇(신극)이라하는 名稱(명칭)아래서 우리는 두가지 重要(중요)한 方面(방면)을 理解(이해)한다. 한가지는 發達(발달)된近代科學(근대과학)을 應用(응용)한 演出(연출), 舞臺裝置等(무대장치등)의 技術的方面(기술적방면)이오, 다른 한가지는 個人(개인)의 自由(자유) 感情(감정)의解放(해방) 男女平等(남녀평등) 階級平等(계급평등) 民族平等(민족평등)같은 思想的方面(사상적방면)이다. 이 自由平等(자유평등)의 思想(사상)은 모든 近代思想(근대사상)의 基調(기조)가되는同時(동시)에 近代劇(근대극)에 있어서도 「입센」以後(이후) 벗어나지못하는 正統(정통)이다. 그러므로 學生劇(학생극)의 指導(지도)에 가장 適任者(적임자)인 이會(회)로서는 演出(연출)의 技術的方面(기술적방면)의 指導(지도)는 勿論(물론)이려니와 正當(정당)한 劇本(극본)의取擇提供(취택제공)이 무엇보다 緊急(긴급)한 問題(문제)일것이다.

이외에 또한가지 今年(금년)에들어 劇本(극본)의 創作發表(창작발표)가 若干(약간)있었으나 다른이들 사이에 個評的(개평적)으로 말이 많이있었고 또 上演(상연용)으로 論議(논의)될만한것이 적기에 여기서는 길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

以上(이상)으로 現下(현하)의 演劇熱(연극열)을 대개 測定(측정)해보았거니와 이熱心(열심)이 한때의 부질없는 熱(열)되기에 그치지않고 참으로 燦然(찬연)한 成果(성과)를 맺을것인가 이將來(장래)를 展望(전망)할때에 우리는 이 올라가는 언덕이 넘우나 險峻(험준)함을 느낀다.

우리의 演劇運動운동(연극운동)에는 幾多(기다)의 克服(극복)하여야할 難關(난관)이있다. 이것의 克服(극복)을 講究(강구)하기 爲(위)하야 우리는 몬저 이것을 檢討(검토)해보자.

첫재──우리는 過去四千年(과거사천년)의 歷史(역사)가온대 完全(완전)한 形體(형체)를 이루지못하고 極(극)히 微力(미력)한 假面劇(가면극)과 歌劇(가극)의 小片(소편)들을 가졌을뿐 참으로 劇(극)이라는 名稱(명칭)을가지고 一般化(일반화)된 藝術形式(예술형식)을 가저보지못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첫재로 만나는 큰難關(난관)이다. 日本內地(일본내지)같은 데서는 數百年(수백년)의 傳統(전통)을가지고 完成(완성)된 歌舞伎劇(가무기극)이있어 이 儼然(엄연)한 敵國(적국)을 打破(타파)하고 新劇(신극)이 發達(발달)하기는 남이開拓(개척)한 領地(영지)를 侵奪(침탈)함같이 어렵다 하지마는 우리의 新劇運動(신극운동)은 荒蕪(황무)한 沙漠(사막)을 開墾(개간)하는 느낌이있다. 우리에게는 春香(춘향) 沈淸(심청) 흥보놀보를 除(제)한外(외)에 口說(구설)로 民衆(민중)사이에 普遍化(보편화)된 劇的(극적)題目(제목)이없고 外國人(외국인)에게는 觀劇(관극)이라는것이 生活上(생활상)不可缺(불가결)의 項目(항목)인데反(반)하여 우리에게는 觀劇(관극)의 習慣(습관)이 없다. 이 新觀客(신관객)의 獲得(획득)이라는 우리 新劇的開墾(신극적개간)의 灌漑事業(관개사업)까지를 우리는 스사로 遂行(수행)하여야한다.

둘재──우리에게는 劇本(극본)이없다. 우리의 흉금(胸襟)에 大波紋(대파문)을 일으키는 새 傑作(걸작)이없다. 그렇다고 外國(외국)같이 民衆(민중)의 귀에익고 눈에 익어서 해마다 되풀이해도 觀客(관객)을 끄으는 傳統的傑作(전통적걸작)이 있느냐 그도 勿論(물론)없다. 그러면 飜譯劇本(번역극본)은? 우리가 혹시 上演用劇本(상연용극본)의 付囑(부촉)을받고 外國(외국)의名作百篇(명작백편)을 읽어보았자 우리와 그네의 生活(생활)의 過度(과도)한 差違(차위)는 우리의 觀衆(관중)앞에 내여놓아 大歡迎(대환영)을 받을 作品(작품)을 만나기 어렵게한다. 또 營業的劇場(영업적극장)같은데서 上演(상연)하는것을보면 흔히 우리와 人情風俗(인정풍속)이 接近(접근)한 日本內地劇(일본내지극)의 飜案(번안)이다. 그러나 이것亦是(역시) 微溫(미온)한 구경거리에 지나지않는다. 우리의 耳目(이목)을 그劇本(극본) 그上演(상연)으로 集中(집중)시킬만한 大傑作(대걸작)의現出(현출)이없이는 이難關(난관)을 넘기어렵다. 우리는 劇本難(극본난)의 굴엉에서 허위적어릴뿐이다.

셋재──劇興行日數(극흥행일수)의短促(단촉) 이것은 總觀客數(총관객수)의 不足(부족)에서 생겨난 困難(곤란)으로 劇本難(극본난)을 더한층 甚(심)하게하는 結果(결과)를 짓는다. 西洋(서양)서는 한作品(작품)이 成功(성공)하는때는 半年一年(반년일년)씩 繼續(계속)上演(상연)하는수도있고 日本(일본)의 歌舞伎(가무기)도 普通(보통) 一個月興行(일개월흥행)을한다. 그런데 우리는 三日(삼일) 或五日(혹오일)만에 새 劇本(극본)을 上演(상연)해야한다. 裝置(장치)와衣裝(의장)의費用(비용) 俳優(배우)의言辭暗誦練習(언사암송연습)의 不足(부족)은 勿論(물론)이어니와 多數(다수)한 劇作家(극작가)가 있는 文學的先進國(문학적선진국)에서도 相當(상당)히 成功的(성공적)인劇本(극본)은 一年(일년)에 한두篇(편) 생겨나기가 어려운것인데 하물며 朝鮮(조선)에서 이頻數(빈수)한 新劇本(신극본)의 提供(제공)이 어떻게 可能(가능)할일이나. 粗製(조제)의 劇本(극본)은 다시 觀客(관객)의 興味(흥미)를 減殺(감쇄)시킨다. 이困難(곤란)의 克服(극복)은 傑作劇本(걸작극본)의 出現(출현)으로 總觀客數(총관객수)를 增加(증가)시켜야만 可能(가능)하다.

넷재──朝鮮(조선)의 生活(생활)그것에 劇的要素(극적요소)의 缺乏(결핍)을 느낀다. 하나 둘을 들추어보면 戀愛題材(연애제재)의 缺乏(결핍)(社交生活(사교생활) 따라男交女際(남교여제)의 稀少(희소)로 말미암아) 華麗雄壯(화려웅장)한 生活場面(생활장면)의 缺乏(결핍) 家屋構造(가옥구조)에 狹少(협소)한 間(간)막이가 너무 많아서, 우리의 家屋(가옥)과 室內(실내)를 舞臺(무대)우에 올려놓기 어려운것 이것을 苟且(구차)히 避(피)하기爲(위)하여 舞臺(무대)한편에 방 그옆에 마루 그옆에 마당 이 마루와마당에서 劇的動作(극적동작)의 大部分(대부분)이 進行(진행)되는것을보고 不自然(부자연)의 感(감)이 있는것은 나 한사람이 아닐것이다. 대체로 우리의 現實生活(현실생활)그것이 悲劇(비극)되기에는 너무 偉大(위대)함이적고 喜劇(희극)되기에는 너무 悲慘(비참)한것인가보다. 不充分(불충분)하게나마 우리의 劇運動(극운동)의 當面(당면)할 困難中(곤란중) 멫개를 들었으나 여기다 難中最難(난중최난)의 檢閱難(검열난) 그리고 資本難(자본난) 俳優難等(배우난등) 三災八難(삼재팔난)에 그치지않을것이다. 그러나 그中(중)에서 가장 中心(중심)되는것이 劇本難(극본난)일것이오 劇本難(극본난)의克服(극복)은 다른 諸難關(제난관)을 打開(타개)하는 武器(무기)가 될것이다. 우리의 演劇人(연극인)이 創作飜譯飜案(창작번역번안)에依(의)해서 어느程度(정도)까지 이것을 克服(극복)할것인가.

한개의 熱心(열심)이 全般的(전반적)으로 勃興(발흥)되는것은 決(결)코 一朝一夕(일조일석)에 오는것도아니요 누가 맘대로 맨드는것도 아니다. 新劇運動(신극운동)에 從事(종사)하는諸位(제위)의 建築師(건축사)같은 꾸준한 努力(노력)이없으면 이 間歇泉(간헐천)은 다시 地下(지하)로 시며들고 말것이다.

一人稱小說(일인칭소설)의流行(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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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새 읽어본 小說(소설)가운데 重要(중요)한 創作小說(창작소설)의 거의 全部(전부)가 「나」라하는 이야기주인이 나와서 자기의經驗(경험)을 이야기하는, 所謂(소위) 一人稱小說(일인칭소설)이라는것을 發見(발견)하였다. 玄憑虛作(현빙허작) 「서투른盜賊(도적)」, 廉想涉作(염상섭작) 「嫉妬(질투)와밥」, 兪鎭午作(유진오작) 「上海(상해)의追憶(추억)」 洪一吾作(홍일오작) 「故友(고우)」等(등) 이것이 한 偶然(우연)의一致(일치)던 作者心理(작자심리)의 어떠한 共通(공통)이던間(간)에 한 奇異(기이)한現象(현상)이다. 대저 一人稱小說(일인칭소설)이라는것은 어떠한 長點(장점)과 短處(단처)가 있는것이냐 이것의 長點(장점)을 들면 첫째 써나가기가 가장수얼하고 둘째 늘 한가지觀點(관점)에서 觀察(관찰)한바를 차레대로 敍述(서술)하므로 事件(사건)을 單純(단순)하고 理解(이해)하기쉽게 만들고 셋째 目擊(목격)한事實(사실)이나 자기의 經驗(경험)을 이야기하는것이되므로 表現(표현)이 생생하고 迫眞力(박진력)이 있을수있고 넷째 자기의 心的經驗(심적경험)이나 觀察(관찰)을 더 完密(완밀)히 記述(기술)할 自由(자유)가있다. 長點(장점)만가지고 短處(단처)없는것이 世上(세상)에없다. 小說家(소설가)라면 小說中人物(소설중인물)의 누구의心理(심리)에나 自由(자유)로이 出入(출입)하면서 그것을 記述(기술)할수가있는것인데 여기서는 이야기주인 以外(이외)의 人物(인물)의心理(심리)를 記述(기술)할 權利(권리)가 없어진다. 또 事件(사건)을 多面的(다면적)으로 記述(기술)하야 進展(진전)시키지 못하므로 그 描寫(묘사)는 平面的(평면적)이되여 立體性(입체성)을 잃게된다. 그러므로 小說家(소설가)가 이形式(형식)을 採用(채용)할때에 그長點(장점)을 發揮(발휘)시키지못하면 그 短處(단처)만 들어날것은 勿論(물론)이요 걸핏하면 小說家(소설가)로서 描寫(묘사)의 努力(노력)을 省略(생략)하고 게으름부렸다는 非難(비난)까지 들을것이다. 實例(실례)에있어 이를보면

廉相涉作(염상섭작) 「嫉妬(질투)와밥」은 이웃집 三角(삼각)싸홈을 이웃집에앉어서 자기에게 關聯(관련)된部分(부분)만 써놓아서 事件(사건)의發展(발전)과 心理(심리)의解剖(해부)가 둘다 讀者(독자)의腦(뇌)에까지 分明(분명)히 들어오지않는다. 「上海(상해)의追憶(추억)」도 이것이 더强(강)한效果(효과)를 얻지못하는原因(원인)이 이것을 單純(단순)한 一夜(일야)의 追憶(추억)으로 맨들어버린데 있는것같고 洪一吾(홍일오)의 「故友(고우) 또한 그의 立體思想(입체사상)에 因由(인유)하겠지마는 一人稱記述(일인칭기술)로서는 그의 逃避的自嘲(도피적자조)를 벗어나 稚氣(치기)없이 힘찬抗議(항의)가 될수는없을것이다.

다만 바라는것은 이 一人稱小說(일인칭소설)의 流行(유행)이 小說家(소설가)의 倦怠(권태)가 낳은 이─ᅅᅵ고─잉의 産兒(산아)가 아니면 하는것이다.

讀者共同製作小說(독자공동제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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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者(독자) 共同製作小說(공동제작소설)이라는 寡聞(과문)한 우리로서는 들어보지도못하든 新樣式(신양식)이 新東亞(신동아) 十一月號(십일월호)에 出現(출현)하였다.

어떠한것인가 한小說家(소설가)가 어떤이야기의 실머리를 내놓고 讀者(독자)가 그것을받어서 發展進行(발전진행)시키고 또 그것을 小說家(소설가)가 받고 또 讀者(독자)가받고 이렇게 一世二世至于千萬世(일세이세지우천만세)하는 樣式(양식)이라한다. 머언 西洋(서양)일은 잘 모르나 日本(일본)서 連作小說(연작소설)이라는것이 流行(유행)된일이있다. 數名(수명)의 筆者(필자)가 豫定計劃(예정계획)없이 서로받아써서 小說(소설)을 맨들어나가는것이다. 日本內地(일본내지)의小說家(소설가)는 대관절 有名(유명)하다. 現代(현대) 쩌날리즘의世界(세계)에서는 琥珀(호박)에와서붙는 몬지모양으로 어떤 큰이름에는 어떤數(수)의 讀者(독자)가 딸아다닌다. 가령 某某等五人(모모등오인)의 有名(유명)한作者(작자)가 連作(연작)하는 小說(소설)이 있다면 그 五人(오인)의 「이름에 따르는讀者(독자)」는 이 小說(소설)로 달라 엉긴다. 그러면 이 小說(소설)이 小說(소설)로됐건말건 그 「이름의讀者(독자)」가 그新聞(신문)이나 雜誌(잡지)로 들어모여서 營業的(영업적) 好成績(호성적)을맺는다. 그러므로 連作小說(연작소설)의 作者(작자)는 반듯이 專門的小說家(전문적소설가)임을 要(요)치않는다. 政治家(정치가)던 學者(학자)던 有名(유명)한것이 唯一(유일)의 取擇條件(취택조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名士登場(명사등장)의 餘興(여흥)에 지나지못하였든것이다. 그 連作(연작)된小說(소설)이 한卷(권)의 冊(책)이되여가지고 歡迎(환영)받지못한 것은 그것이 小說(소설)로서 成功(성공)치못한證據(증거)이오 또 여러가지 不美(불미)한點(점)이 있드라도 營業的(영업적)으로 利潤(이윤)만 생기는일이면 決(결)코 衰頹(쇠퇴)하지않는 이社會(사회)에서 이제 流行(유행)하지 않게된것을보면 營業的(영업적)으로도 큰成功(성공)이 아니든것을 推測(추측)할수있다. 우리 朝鮮(조선)에서도 連作小說(연작소설), 連作映畵劇本(연작영화극본)도 있었고 「學生(학생)」雜誌(잡지)에서는 學校對抗(학교대항) 릴레 小說(소설)도 있었으나 그리 人氣(인기)를 集中(집중)치못한것은 그罪(죄)가 朝鮮(조선) 쩌날리즘의 未發達(미발달)로因(인)하여 「이름에따르는 讀者(독자)」가 없는데있든가보다. 이 頹勢(퇴세)를 挽回(만회)하기爲(위)하야 百尺竿頭更一步(백척간두갱일보)의 新案(신안)이 나온것이다. 小說論(소설론)을 길게 늘어놓을것없이 대체 小說(소설)이라는것이 그 構想(구상)이 緩慢(완만)할수있고 되게 째일수도있지마는 플로ㅌ와 性格(성격)의 統一(통일)된發展(발전)을 잃고는 成功(성공)할수없는것이다. 「戀愛(연애)의淸算(청산) 第一回(제일회)는 小說家(소설가)로서 若干(약간)의 困惑(곤혹)을 느끼면서 憑虛(빙허)가 그 簡潔生動(간결생동)하는 筆致(필치)로 前途(전도)의風雲(풍운)을 豫想(예상)시킬만한 出發(출발)을 시켯다. 이것이 小說(소설)로 훌륭한것이 못되리라는것은 우리가 豫測(예측)할수있다. 未來(미래)에屬(속)하는일이라 斷言(단언)할수없다는것은 圓滿(원만)을 질기는 大人(대인)의말일뿐 그러나 이 奇想天外的(기상천외적) 考案(고안)이 크게 餘興的價値(여흥적가치)를 發揮(발휘)하야 그 營業(영업)에 利(이)를 끼치기를 우리는 또한 衷心(충심)으로 바라는바이다.


作品評(작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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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의 文藝批評家(문예비평가)가 한개의 評文(평문)을 쓸때마다 그 冒頭(모두)에 자기가 평소에 朝鮮(조선)의 小說(소설)을 읽지않는사람임을 자랑하고 또 그글을 쓸 義務(의무)로因(인)하야 읽지않든것을 읽든때의 그 倦怠(권태)를 하소하는 그朝鮮(조선)의文藝創作(문예창작)을 나는 習慣的(습관적)으로 읽는다. 東光(동광), 三千里(삼천리), 彗星(혜성), 批判(비판), 新東亞(신동아), 文藝月刊(문예월간)의 十月(시월), 十一月號(십일월호)에실린 創作小說(창작소설), 戱曲全部中(희곡전부중)에서 몇개를들어 여기 몇마디의評(평)을 쓰랴한다.

가보세 趙容萬作(조용만작) (東光十月號(동광시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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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規模(규모)는 적으나마 會話(회화)나 人物出入(인물출입)이 相當(상당)히 째여진 作品(작품)이다. 때는 甲午年東學亂(갑오년동학란)의初期(초기) 양반에게 매맞고난빌미로 生命(생명)이頃刻(경각)에있는 김첨지의집퇴지에서 村老三人(촌로삼인)의 對話(대화)가운데 그들의 抑欝(억울)과 屈從(굴종)이表示(표시)되고 다음 靑年二人(청년이인)의對話(대화)에서 時代(시대)를 달리하는 젊은패들의 들고일어나는 反抗(반항)이 나타난다. 女子兩人(여자양인)을 點景(점경)으로하야 彩色(채색)을加(가)한다음 마즈막숨ㅅ결에도 웬수갚기를 부탁하는 아버지를내놓고 가보세 가보세의 合唱(합창)을따라 東學黨(동학당)에加擔(가담)하야 뛰여나가는 젊은이로 끝을막는다.

이劇本(극본)은 東學亂(동학란)뒤에 숨은 한개의 特別(특별)한 揷話(삽화)라기보다 東學亂(동학란)의 背景(배경)이되는 普遍的空氣(보편적공기)가운데의 한 代表的點(대표적점)을 求(구)한것같다. 그러나 이劇本(극본)의 空氣(공기)는 强烈(강렬)한 動亂的空氣(동란적공기)가아니라 오히려 哀調(애조)에 가까운것이다. (薄暗(박암)한舞臺(무대)에서 事件(사건)을 進行(진행)하는 것이 이感(감)을 더하게한다) 우리가 이作品(작품)을 아조크게 評價(평가)하지못하는理由(이유)는 이劇本(극본)이 우리를 動亂的空氣(동란적공기)속에 휩쓸어넣기에는 너무 가녈피고(우리를 어떤 空氣(공기)가운데 同化(동화)시킴에는 고리키―의 「夜(야)의宿(숙)」의 規模(규모)를 要(요)한다) 우리를 感激(감격)시키는 事件(사건)되기에는 너무 單純(단순)하야 特殊性(특수성)이없다는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劇本(극본)에 上演(상연)의機會(기회)를 주어 그 實演(실연)의 效果(효과)를 보고싶어한다.

故友(고우) 洪一吾作(홍일오작) (文藝月刊十一月號(문예월간십일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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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作品(작품)을 推獎(추장)하기에 躊躇(주저)치않는다. 實(실)로 朝鮮的(조선적)인 너무나 朝鮮的(조선적)인 無力(무력)한 現實面(현실면)이 우리의 가슴으로 스며들어온다.

낙수질을하든내가 偶然(우연)히 길에서 小學校時代(소학교시대)의 同窓(동창)을만난다. 우리가 學校生活(학교생활)을 追憶(추억)해보면 거기는 조금 어리석고 사람이 좋아서 한班學生(반학생)의 놀림감이되는 學生(학생)이있는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람좋은 學生(학생)의하나이다. 이제그는 칼소리를 철그럭거리는 巡査(순사)요 경부되기가 소원이다. 여전히 사람좋은그는 옛친구 나를 대접하기위하야 술집으로 들어가서 시골순사의 호기를 부린다. 들어오는길에 자기의 실수로 길ㅅ가에다 바처놓았든 똥장군을다쳐 똥물이 구두에 튀였다. 그는 아 똥장군의 임자를 뺨을치고 구두로차고 여러사람의 말김으로 겨우 용서해준다.

이作品(작품)가운데 觀察者(관찰자)인 話者(화자)의心理(심리)는 조금도 나타나지않는다. 이것은 요새에 흔치아니한 態度(태도)이다. 이作品(작품)은 우리를 奮然(분연)히 주먹쥐게함보다 自嘲(자조)와 야유로 끄은다. 그러나 나는 이作品(작품)에 더切迫(절박)한 動感(동감)을 주지못한다고 또는 아나토―ㄹ 프랑스의 채소장사가 죄없이 法律(법률)로 말미암아 生活(생활)을 蹂躪當(유린당)함에對(대)한것같은 人權的抗議(인권적항의)가없다고 이作品(작품)을 非難(비난)하려 하지않는다. 作者(작자)가興奮(흥분)해서만 讀者(독자)가 奮起(분기)하는것이 아니다. 作品(작품)의 效果(효과)는 그리 單純(단순)히 作用(작용)하는것이 아니다. 이 無力(무력)한 朝鮮(조선)의 現實描寫(현실묘사)가 반드시 우리를 無力(무력)에同化(동화)시키는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嫉妬(질투)와 밥 廉想涉作(염상섭작) (三千里十日號(삼천리십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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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돈으로 작은집과 단살림을하는데 큰마누라가 쫓아와서 三角(삼각)싸홈이 버러진다. 작은집은 간다고짐을싸고 작은집이 없으면 큰마누라는 서방님차지만했지 둘이 굶을판이라 여기서 싸홈은 愛慾(애욕)에그치지않고 더 醜劣(추열)한一面(일면)을 加(가)한다. 이事件(사건)을 이웃집에살고 친하게지내서 양편의 하소를듯고 중재를하노라하는 친구가 자기에게 관련된부분만 一人稱(일인칭)으로 쓴것이다.

그래서 이作品(작품)은 읽고나도 作中人物(작중인물)의 心理解剖(심리해부)가 事件(사건)의進行(진행)이 눈앞에 뚜렷이 보이지않는다. 그러나 이作(작)에서 나의興味(흥미)를 끄으는것은 「나」라는 人物(인물)의 고리타분하지않고 거칠게 수말스런態度(태도)와 俗談(속담)을 縱橫驅使(종횡구사)한 표현이다.

이作者(작자)에게 前(전)붙어있든 傾向(경향)이지마는 이作品(작품)에서 그 度(도)가 더 두들어진다. (最近(최근)에 金東仁(김동인)도 「결혼식」에서 많은 俗語(속어)를 使用(사용)하였다) 所謂(소위) 文語(문어)라는 점잔흔글이 標準語(표준어)노릇을하는데 좀 상스럽게울리는 俗談(속담)을 많이 使用(사용)하는것을 어떤이는 자미없는일이라하지마는 나는 非常(비상)한興味(흥미)를 가지고 그 文體(문체)의發展(발전)을 主意(주의)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제마다 본뜰것으로녀겨 勸告(권고)하는것이 아님은 勿論(물론)이다.

十一月九日稿(십일월구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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