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金枝)와 옥엽(玉葉)이 오히려 천하다 하여 천상과 지하에 오직 하나이라고, 귀하게 기르던 옥정(玉晶)이도 그의 액운이 당도하였던지 일찌기 부모를 잃고 할 일 없이 노방문전(路傍門前)에 구걸하여 그의 비참하고 가엾은 생활을 유지하였다.

너무 슬프고 또 경험 없는 잔인한 고생을 견디지 못하여 그랬든지 양안(兩眼)이 함께 실명(失明)하였다. 어린 옥정에게야 불행이라한들 어찌 이같은 참혹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비록 문명의 자녀요, 자태가 수려한들 노변에서 구걸하고 보니 눈 한 번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다. 아! 이 세상은 이같은 것이다. 이같이 냉정하고 이같이 잔혹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가련한 소저(小姐)를 버리지 않았다. 다행히 자선가의 아들 성식(聖植)에게 구조되어 그의 집에 동거하게 되었다. 비록 은인의 ─ 성식의 ─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마는 그의 온후하고 애정이 넘치는 듯한 음성은 옥정으로 하여금 들을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깨닫게 하였다. 더우기 그의 친절한 대우에는 경모치 않을 수 없었다.

흠앙(欽仰)치 아니지 못하였다.

이같이 거내는 옥정이는 성식의 인격을 무한히 흠모하고, 또한 충심으로 사랑하였다. 다만 일분 일각이라도 성식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고적하고 무의(無依)함을 슬퍼했다. 그러나, 옥정이는 자기의 처지와 사정(事情)을 생각하여 감히 이같은 뜻을 발표할 용기가 없었다.

아! 옥정이가 성식을 참으로 사랑한 것이 도리어 옥정이에게는 불행이 되었다. 비애의 눈물로 화하였다.

성식에게는 자기의 일생을 같이 할 약혼자가 있었다. 이것을 안 때에 옥정의 슬픔과 놀라움이야 과연 어떠하였으랴?

그러나 옥정이는 결코 성식을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치 않음이 옥정의 위대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식에게 향한 애정을 끊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것은 그의 의지가 박약한 것도 아니지만 연애라는 것에는 옥정의 위인(爲人)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물론 단념코자 하였다. 그러나, 무섭고 두려운 연애의 세력 하에 구속된 옥정이는 번민하여 마지 않았다. 드디어 이 세상을 비관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의 무한한 말할 수 없는 비애는 그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이 이 진세를 떠나서 극락의 복지(福地)로 들어가게 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영고(榮枯)의 천칙(天則)이 있다. 그렇지만 옥정이와 같은 비운에 빠져 일생을 눈물로 보낸다 함은 실로 동정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이와 같은 불행, 이러한 비운에 빠져서도 조금도 타락치 않고 스스로 남의 행복과 쾌락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옥정의 위인(爲人)엔 감복지 않을 수 없다.

아! 그의 눈물의 일생! 그의 비참한 임종!

그 바람과 또 그 빛이
장미꽃을 사랑컨만,
장미는 그의 하나만
사랑하는고나.

그 쓸쓸한 바람을
돌아볼 이 뉘며,
그 찬란한 빛을
스려할 이 뉘랴.

솔솔이 부는 바람
어디서 오는지
모르거니와,
뉘라서 그 바람이
길고 긴, 슬프고 슬픈,
한숨의 엉기임인 줄이야
알까보냐.

아! 복스러운 저 빛은
어이하여 그같이
찬란한가,
너의 찬란한 그 빛이
사랑의 귀한 표적을
나타내는구나.

빛도 없고 쓸쓸한
그 바람은
사랑의 빛을
어이 보일까,
아릿답고 사랑스런
그 꽃가에서
잔잔히 사라져
버리는구나.

─ 1919. 1. 3. 상야(上野)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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