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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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역사의 기록면에서 그 인격으로나 그 사적으로나 충무공 이순신의 위를 갈 사람이 얼마 없으리라. 그의 위토와 묘소가 경매를 당하게 된다니 이런 변이 또 있으랴. 이런 민족적 치욕이 더 있으랴.

세상에서는 민족적 선열위인을 위하여는 비각(碑閣)을 지으며 동상을 세우며 혹은 기념박물관이 있고 혹은 기념도서실을 두며 그의 출생한 모옥 그의 손이 닿은 일수일석(一樹一石)이라도 표 지르고 보호하여 후세의 자손으로 하여금 백대천대까지라도 그들을 흠모하여 민족적 자부심을 기르며 그들을 추앙하여 민족적 향상심을 분발케 한다. 불란서의 판테온이 있고 영국의 웨스터민스터가 있음이 가히 소이래(所以來)를 알 것이다. 민족적 자부심이 없는 민족이 어찌 퇴패(退敗)를 면할 것이며 민족적 향상의 목표가 없이 어찌 단결진취의 민족적 노력이 있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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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의 인물과 사적은 노노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아는 바다. 국난에 임하여 척수고진(隻手孤陣)으로 민토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출했으니 민족적 은인이오, 포폄에 초월하고 진하나 퇴하나 오직 대의를 위해 했으니 민족의 의범이오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발명했으니 민족문화의 선구라 할 것이다. 만일 조선인이 조선의 정신을 제대로 가지고 왔다고 하면 그의 비각도 있어야 했을 것이오 그의 동상도 곳곳이 섰을 것이며 그의 기념관, 그의 도서실, 그의 박물관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없다 할망정 그의 위토와 묘소가 채귀의 손으로 전전한다 하니 수치람도 한 걸음 넘어서 민족적 범죄라고 할 것이 아니냐.

나옹이니 화옹(華翁)이니 하고 이국의 위인을 숭양할 줄 알되 자가(自家)의 위인을 모르든 그 시대는 다시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선을 찾자"는 부르짖음이 벌써부터 잦은 이때에도 을지문덕의 묘소가 평토화해서 그 자취를 찾기 어렵되 우리 손이 한줌 흙도 옮기지 못하더니 이제 또 이순신의 사당에 표지가 붙게 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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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누구를 책하랴. 굶고 헐벗는 한이 있더라도 묘소를 수호하는 그 위토를 사수하지 못한 그의 자손일족의 무엄함을 엄책할 것은 무론이어니와 일방으로 채권자인 금융업자에게 대하여서도 그도 또한 조선민족의 일기관(一機關)이며 일분자(一分子)인 이상 과연 채권채무의 법적관계로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또는 민족적 체면과 양심을 고려하여 써 선처할 방법이 없을 것인가 우리는 먼저 그보다도 민족적 이상이 결여하고 민족적 정열이 냉각되고 민족적 자부심이 마비된 조선의 사회를 스스로 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설워한다.

수치를 수치로 아는 자에게는 이러한 붓대를 들기조차 손이 떨리고 얼굴에 모닥불을 붓는 듯하다. 그러하나 이를 널리 사회에 알리어 그 책임감에 호소함이 이때의 의무로 생각하매 붓을 아니 들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 충무공의 분묘를 위함 뿐이랴. 이것을 계대기(契大機)로 하여 우리는 일층 민족문화에 대한 숭앙심과 애착심을 불길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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