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씨전
一[일]
편집무명씨. 그에게도 명씨가 없을 리는 없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의 이름을 내놓기가 어려운 것뿐이다.
이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의 고향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 만 그가 조선 사람이었던 것만 알면 그만이다.
그-무영씨인 그를 편의상 A라고 부르자.
A가 열 일곱 살 되던 해에 그의 고향을 뛰어난 것은 까닭이 있다-. 아버지가 애매한 죄에 몰려서 감사 모에게 갖은 악형을 당하고, 수천석 타작하던 재산의 대부분을 빼앗긴 것을 알게 되매, 분을 참지 못한 것이었다.
그때에는 나라 정사가 어지러워서 당시 정권을 잡았던 M씨 일족이 감사요, 목사요 하고 전국에 좋은 벼슬을 다 차지해 가지고 양민을 잡아들여서는 재물을 빼앗기를 업을 삼을 때다. 서울에 큼직만한 집의 기앗장이 이렇게 빼앗아 올린 양민의 피 아닌 것이 얼마나 되나, A는 일본으로 뛰어가서 얼마 동안 준비를 해가지고 동경의 육군 사관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때 육군사관학교에는 A밖에 B,C,D,E,F의 무명씨들이 십여인이나 유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나이가 비등하고 또 일본에 온 동기도 대동소이 하였다. 지금은 비록 천하를 말하고 국가를 논하지마는, 애초에 집을 떠난 동기는 대개는 권문세가에 원통한 일을 당한 집 자재로서, 한 번 톡톡히 원 수를 갚고 설치를 하자는 것이었다.
B는 양반에게 선산을 빼앗겼고, C는 그 아버지가 양반에게 수모를 당하였고, D는 그 아버지가 양반에게 재산을 빼앗겼고 등등.
그러나 그들이 육군 사관학교에 다니는 동안에 일본군인의 의기와 애국심을 보고는 처음 오던 조그만한 동기를 버리고 천하, 국가를 경륜하고 큰 뜻을 품게 되었다.
二[이]
편집일로 전쟁이 터지었다. 때는 마침 A씨등이 사관 학교를 마치고 견습 사관으로 일본 군대에 있을 때다. 하루는 A가 있는 연대의 연대장이A를 불러,
『A군. 오늘 아침 우리 연대는 출정 명령을 받아서 이십 사시간 내로 만주를 향하여 떠나게 되었소. 그대는 외국 사람이니 출정할 의무도 있지 아니한즉, 행동을 자유로 할 것이요.』
하였다. A는 서슴치 아니하고,
『연대장. 될 수만 있거든, 나를 전지로 데리고 가주시오. 일본군이 어떻게 충용하게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양을 보고 배우려합니다. 소관도 종군한 이상에는 귀국 군인과 꼭 같은 충성으로 귀국을 도우려합니다. 이번 기회에 귀국에서 우리를 교육해 주신 은혜를 갚으려 합니다.』
하였다. 연대장은 곧 그 용기를 칭찬하고 A의 출정을 허락하였다.
三[삼]
편집일로전쟁에 일본군을 따라서 만주에 출정한 이는 A밖에 사오 인 있다. 그들은 A와 꼭 같은 정신으로 군대에 복무하였다. A와 B와 C같은 이는 제일선에서 한 부대를 지휘한 일조차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이 나고 일본 군이 개선할 때에 A씨 등도 같이 개선하여서 훈장까지도 탔다. 그리고 A,B.C등 몇 사람은 서울에 머물러서 한국주차 일본군 사령부(韓國駐箚日本軍司令部)에 근무하였다. 그들이 공부를 한 목적이 일본 군대에서 사관 노릇하려 함 이 아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때에 한국에는 그네를 써 줄 만한 것도 없었다.
군대는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때 군대에 장관이니 영관이니 위관이니 하는 것은 대개 양반집 도련님들이어서 「차렷」,「우로 나란히」도 모르는 화초 장교들이었다.
군데란 치안을 유지하거나 외모를 막으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감님의 구경거리나 되고 양반집 일 없는 자식을의 밥벌이 판이 될 뿐이었다. 그중에서 한두 개 군인다운 군이 없지 아니하였으나 그런 이들은 도리어 천대를 받아서 마음을 펼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일본 다녀온 「생도」들은 다 김옥균, 박영효, 일파의 혁명 사상을 가진 자로 여겨서요로 대관이며 양반네들이 밉게 보고 의심할 때다. 이런 때니깐 좋은 무관 공부를 해 가지고 왔건만도 원체 시골 상놈인 A,B, C등은 써 주는 데가 없어서 일본 군대에서 견습 사관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四[사]
편집A가 본국이라고 돌아와 보니, 나라 일이라고 엉망이었다. 바깥 세력은 조수와 같이 밀어 들어도는데 정부에 권력을 잡은 양반들은 서로 물고 뜯고 세력 다툼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A는 B, C, D, E, F 등 동지로 더불어 가끔 청루주사에 모여 밤이 새도록 술을 먹고 통곡하여 가슴에 찬 불평을 잊으려 하였다.
이때다. A는 몸에 육혈포를 지니고× 보국 집을 찾았다.
×보국은 세도의 집이요 또 조선 일부로서 그야말로 부귀가 쌍전하였다.
뜻밖에 찾아온 쳥년 사관, ×보국은 이 일본 사관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일로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본 군인이라면 당시 한국의 대신들도 쩔쩔 매었기 때문이다.
A는 ×보국을 보고 공손히 절하여 어른에게 대한 예를 표하였다. ×보국은 이 까닭 모를 청년 사관을 붙들어 일으키었다. ×보국의 늙은 낯에는 불안 이 가득하였다.
『대감 나를 아시겠소?』
하고 청년사관A는 입을 열었다.
『내가 영감을 알 수가 있소?』
하고 ×보국은 A의 유심히 보았다.
이윽고 ×보국의 낯빛은 흙빛이 되었다. 왜 그런고 하면 ×보국은 A의 얼굴에서 자기가 갖은 악형을 다해서 반생반사발를 만들어 놓은 A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국의 낯빛이 흙빛이 되는 것을 보고 A는,
『인제 대감은 내가 누군지를 알겠소? 대감이 갖은 악형을 다해서 폐인이 되었던 내 아버지는 그 후 일년이 못해서 세상을 버렸소. 그가 마지막으로 유언할 말이 원수를 갚아 달란 것이요. 내가 이래 십 육여 년간 공부를 한 것도 내 아버지 원수를 갚으란 것이요. 오늘 내가 대감을 만났으니 대감의 운고도 오늘이 끝인 줄 아시오.』
하고 군복 바지 포키트에서 번쩍번쩍하는 육혈를 꺼내어 ×보국의 가슴에 겨누었다. 불의에 이 일을 당하고 ×보국은 염불하는 중 모양으로 두 손벽을 마주 붙이고 A의 날카로운 눈을 우러러 보며,
『영감! 영감! 잠간만 참으시오. 내가 선대감께서 가져온 재산을 이식을 길러서 조수히 영감께 드릴 테니, 이 늙은 것의 목숨만 살려 주시오.』
하고 오동지달 설한풍에 벌거벗고 한데에서 사람 모양으로 덜덜덜덜 떨었다.
『과연 전에 잘못한 것을 뉘우치시오?』
하고 A는 ×보국을 노려 보았다.
『 뉘우치지는 오래 외다.』
『그러면 대감이 뉘우친 표를 내가 하라는 대로 할테요?』
『하다뿐이요. 목숨만 살려 주시면 무엇이나 하오리이다.』
A는 육혈포를 다시 집어넣고,
『내가 인제 대감에게서 돈을 받아간다면 그것은 내 사욕을 위하는 것이니까, 대장부할 일이 아니요. 대감의 재산은 모두 백성의 재산이니, 이것을 풀어서 첫째로 학교를 세워 교육을 일으키고, 둘째로 가난한 지사들을 도와 맘놓고 나라 일을 하게 하고, 세째로 총준 자제를 뽑아 외국에 유학을 시켜서 나라 일할 인재를 양성하도록 하실 테요?』
『그저 영감이 하라시는 대로 하오리다. 학교는 내일부터라도 곧 세울 것이요.가난한 지사로 말하면 내가 아는 이가 없으니, 영감이 소개하시면 얼마든지 신주를 돌보아 드릴 것이요, 또 유학생도 영감이 천하는 사람이면 보내오리다.』
『우리 단 둘이 말한 것을 후일에 증거할 사람이 없으니 대감이 친필로 지금 그 말씀을 종이에 쓰시고 대감이 서명 날인하시고, 또 대감 자제의 서명 날인을 하여주시오.』
×보국은 지필묵을 잡아당기어, 光武[광무]〇〇年[년]〇月[월]〇日[일] A氏[씨] 處爲考音事[처위고 음사] 一[일], 設立學校事[설립학교사] 一[일], 補助志士薪水事[보조지 사신수사] 一[일], 派遣總俊出洋留學事[파견총준출양유학사]×〇〇㊞子名[자명] ㊞ A는 이 다짐을 집어넣고,
『대감이 이 다짐대로만 하시면, 반드시 전국 백성의 숭앙을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고 이 다짐을 어기시면 A의 칼과 육혈포가 언제든지 대감의 머리 위에 있는 줄 아시오.』
하고 ×보국의 집에서 나왔다.
그 후에 A는 한 번도 ×보국의 집에 간 일이 없었으나, ×보국은 A에게 약속한 대로 우선 학교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이것은 몇 해 후에 일이지만는, A가 벼슬을 버리고 나와서 성당 운동을 할 때에 많은 궁한 지사들이 A의 손에 먹고 살았거니와, 그 돈 중에 얼마는 ×보국의 ×보국의 이름으로 일본과 미국과 구라파라로 파견되었다.
그 후 십 년간 파란 많은 A의 생활의 제일 삽화가 이 ×보국 사건이다.
五[오]
편집나는 A씨의 이야기를 있는 대로 다 쓸 수는 없다. 첫째는 지면 관계와 시간 관계어니와 둘째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사정을 가진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띠엄띠엄 큼직큼직한 사실만을 지면과 검열이 허하는 대로 쓰는 줄 알아 주기를 바란다.
六[육]
편집A씨는 그 후에 일본군 사령부를 나와서 한국의 육군 부위로 임명되어서 무관 학교 교관, 시위대 중대장 등을 지나서 불과 이년간에 육군 참령, 일명 대대장에 올랐다.
그때는 한국의 모든 것이 초장 시대이니까, 벼슬자리 올라가는 것도 대중이 없었다.
「우로 나란히」,「앞으로 가」도 부를 줄 모르는 민보국이니 조판서니 하니 사람의 자질들이 십 칠, 팔세에 벌써 육군 참윕시오,부윕시오 하다가 일 년 이태 사이에 참령입시오, 부령입시오, 원수부부관입시오 하는 판이니까, A씨 같은 이가 이태 안에 부위에서 참령으로 올라갔다고 놀랄 것은 없을 것이었다.
七[칠]
편집전에도 잠간 말한 바와 같이 동경 육군 사관 학교 동기생, 또는 한두 해 전후 출신으로서 동지라고 할 만한 사람이 A씨 외에도 B씨, C씨, D씨,E씨,F 씨, 이 모양으로 육, 칠인 되었다. 이육, 칠인은 당시 한국육군의 신지식으로서 벼슬자리는 낮을망정, 위로 황제이하로 정부 대관에까지 일종의 존경과 두려워함을 받았다. 그들은 효충회(效忠會)라는 일종 동장회적 성질을 띤 구락부를 조직하여 가지고 때때로 처소를 정하고 모여서 각 개인이 출처 진퇴를 상의하였다.
그들 중에 가장 선배인 B씨는 육군 정령으로 무관 학교의 교장이었다. 이 사람은 키가 작고 몸이 뚱뚱하고 눈이 작아 겁이 없기로는 A씨와 같고, 살이 희고 얼굴이 몽탕하고 호협하기로는 A씨보다 승하였다. 그는 술을 무량으로 먹고 술값이 없으면 군복을 벗어 전당으로 잡혔다. 한 번은 기생집에서 자고 화채가 없어서 군복을 벗어 주고 내복에 군도를 차고 외투를 입고 사진을 하였다는 말까지 있는 사람이다. 군대 해산을 의논하는 모회석에서 꽁무니를 까고 똥을 갈긴 것도 그요, 말을 타고 영문으로 들어오다가 군대 해산의 조서가 내렸다는 말을 듣고 칼을 뽑아 말의 목을 베어 안고 앙천통곡한 이도 그다.
그 담에는 C씨. C씨는 사관 학교 출신은 아니다. 그는 일개 병정으로 올라 온 무관이다. C씨는 한문 책 한 권도 보지 못하는 지식이지마는, 기골이 장 대하고 논초리가 관우 모양으로 위로 치찢어지고 목소리가 크고, 수염을 나는 대로 내어버려서 얼굴의 삼분지 일이나 가리우고, 찢어진 옷을 입고, 병정이 신는 구두를 신고, 병정과 함께 자고 먹고, 참으로 병정의 부스럼을 입으로 빨아주고, 나라를 사랑하기를 제 목숨보다 더하고,
『내가 무식하게 무얼 아오? 그저 동지네가 옳다고 하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지요.』하는 인물이다. 이는 어느 진위대장.
D씨는 시위 이 대대장으로 맵시가 호초알과 같은이. 몸이 강강하고 근엄하여 술을 아니 먹고 색을 가까이 아니하고 밤낮에 생각하고 일하는 것이 군대 교련이었다.
다음이 E씨. 키가 크고 말이 적고 한 번 약속한 일이면 말없이 지키는 이.
다음이 F씨. 이는 어느 시골 부자의 아들. 키가 크고 뚱뚱하고 점잖기가 양반과 같고, 그러면 백령백리 해서 「전라도 아전」이라는 별명을 듣는 이. 그는 배일파(그때에는 이러한 지사파가 있었다. A씨 등은 다 이 파에 속하였다)에 가서는 배일파의 동지가 되고, 친일파(그때에는 이런 파도 있었다. 요로 대관이며 양반 계급의 대부분이 이 파에 속하였다)에 가서는 친일파와 지기상적하였다. 그리고 군사령부에 가면 또 군사령관이하로 일본 사관들에게도 환심을 샀다. 무겁기 천근과 같고 둔하기 물소와 같을 듯하면서도 그의 맑은 눈정기 값을 하노라고 이렇게 백령백리한 까닭에 동지간에 도 추호의 불신임을 받음도 없었다.
이 중에서 A씨로 말하면, 키가 작고, 몸이 강강하고 눈이 가늘고, 빛나고 목소리는 평소에 부드러우나 한 번 노하면 쇠소리와 같고, 비록 연설은 못 하나 좌담에 능하고, 무슨 일을 계획하매 물부어 샘틈이 없고, 한번 한다고 작정하며, 하늘이 무너져도 변함이 없고, 비록 몸이 작으나 만근의 무게 가 있어서 요로의 대관들과 합석하더라도 조금도 눌리는 바가 없고, 나라를 사랑하는 매 몸과 집이 없고, 동지를 사귀이매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고, 친구를 한 번 믿으매 다시 의심함이 없고, 만일 한가지 흠이 있다 하면, 그는 당시 세계 사조이던 마키아벨리식 사상에 물들어서 목적을 위하여서는 수단을 가리지 아니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연소 기예한 신진 무관들은 전부가 시골 사람이었다. 그중에 오직 하나 시위 이 대대장 D씨가 서울 태생이나 서울에도 중인이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와, 갑오경장 후로 조선의 계급이 타파되었다고 하지 마는 그것은 말뿐이요, 나라의 모든 기관은 여전히 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 이니 복인이니 하는 양반들의 손에 잡혀 있었다. 오직 한국의 마지막 내각(削除).
그때 군대에도 참장이니 부장이니 하는 것이 민 무슨 호, 민영 무엇이던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령, 부령 중에도 실권 있는 자리는 아무 판서의 손자요, 아무대신의 사위였다.
영국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조약국장, 우로 나란히도 모르는 육군 부 장, 교육이라는 교자도 모르는 학부의 무슨 국장, 무슨 과장, 재정학, 경제 학이란 이름도 모르는 학지부의 무슨 과장, 이러한 벼슬들은 나라일을 하기 위해서 있다는 것보다는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는 양반님네들의 밥벌이, 호 강 자리로 있는가 싶었다.
명치 삼십년대의 한창 붙일 듯 일어나는 새 일본을 보고 온 이 젊은 사관들의 눈에 이러한 한국의 정계가 어떻게나 비치었을까 하는 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削除) 하고 K 진위대장 C씨 울툭불툭한 상놈스러운 주먹으로 술상을 탕탕 쳐서 안주 그릇이 부서질 지경이었다.
『그, 저, 썩어진 대구리 놈들(대신들이란 말)부텀 모조리 집둥우리에 담아 다가 튀겨야 해!』
하고 제일 선배인 B씨도 급진적 혁명을 역설하였다.
八[팔]
편집A, B, C, D, E, F 등 젊은 사관들의 목표가 어디 있었던 것은 이상에 그들의 성격을 말한 데서 대강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군대를 자기네의 세력 안에 넣고, 즉 자기네의 손에 쥐이고, 이것은 오늘날의 유명무실한 군대에서 참으로 힘있는 군대로 만들어 가지고 썩어진 양반계급에 대해서 한 혁명을 일으켜서 한국의 국권을 신진 평민 계급의 손에 넣자는 생각을 가졌다. 아직 구체적 계획은 서지 아니하였으나 이 계획은 결코 전혀 실현성이 없는 공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이 A, B, C- 들은 원수부, 시위대, 진위대, 무관 학교 같은 군부의 각기관에 들어갔고 또 그들의 실력은 나날이 조금씩이라 실권을 장중에 넣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젊은 무관들이 단제인 효충회는 일종의 비밀결사였다. 가장 선배가 되는 B씨가 회장격이요, 가장 모략과 신망이 있는 A가 참모격이요, 근엄한 시위대장D씨와 열렬한 진위대장C씨는 형시에는 동지 권유의 임무를 맡고 거사할 때에는 각기 군대를 거느리고 혁명군의 앞장을 서게 될 것이요, 돈 많고 교제 잘 하는F씨는 한국 정부와 일본군사령부의 주요 인물과 사귀어 알아볼 것은 알아보고, 인연을 맺아 둘 사람은 맺아 두기로 하고 또 F 자신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지마는 A 이하로 일반 동지가 생각하기에는 필요한 때가 오면 군자름도 내리하고 믿고, 또한 진위대장인 E씨는 C, D 양씨와 아울러 장차 거사할 때에 한 몫을 보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짜 놓고 시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A는 또 한편으로 군인 외의 동지를 구하여 한 정당을 조직할 야심을 가졌다.
九[구]
편집A씨가 정치적 포부를 가지고〇〇회라는 정치적 결사(그것은 독립 협회를 제하고는 아마 조선에서 처음인 애국적 정치 결사였다)를 지은 사실을 자세히 말한 이유는 없다. 다음 어느 기회에 〇〇회의 주요 인물과 그 회에 관한 대강 사실을 말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 정치적 결사에 대하여서는 독자는 그때까지 기다리실 수밖에 없다.
十[십]
편집껑충 뛰어서 이야기는 광무〇〇 년 여름에 옮아간다. 효충회[效忠會]동지들이 모이어 비밀히 시사 문제에 관한 토론을 하는 자리에 어떤 편지 한 장이 왔다. 그것은 무론 우편으로 온 것은 아니다. 어떤 병정 하나가 갖다가 A씨에게 주고 달아났다.
그 편지를 떼어 본 A씨의 낯빛은 해쓱해지고 눈초리는 오르락 내리락하고 숨소리는 높아지었다. 좌중이 다 A씨의 태도를 보고는 마치 일시에 숨이 끊어지고 몸이 굳어진 듯이 말이 없다.
『군대를 해산하기로 오늘 내각 회의에 내정이 되었다오!』
하고 A씨는 그 편지를 좌중에 내어던지었다.
그 편지는 궁중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각 회의를 엿들은 사람의 편지인 모양이어서 궁녀체로 순 한글로, 내각 회의 시에 총리대신 R, 내부대신 S, 탁지대신 K, 농장공부대신 C, 군부대신 R 등등 제 대신이 토의하던 말 중에서 중요한 구절을 매우 요령 있게 적은 것이었다.
그것에 의하건대 R 총리대신이 모처의 의사라 하여 도저히 군대를 해산하 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을 역설하고 만일 자진하여 한국이 군대를 해산하지 아니하면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될 터이라는 말까지 하였다.
이에 대해서 찬성 반대파가 나뉘어 S내부대신, C 농상공부대신,K탁지대신, 같은 이는 사직을 안보하고 인민을 도탄 어육에서 건지기 위하여 저편의 요구대로 군대를 해산하자고 하고, 기타 R군부대신, R학부대신,P 궁내부대신, K원로 등은 군대 없는 나라가 어디 있으며 또 남이 해산하란다고 제 군대를 해산하는 못난이가 어디 있느냐고 반대하였으나 필경 하나씩 둘씩 총리대신의 말과 위협(반대하는 자도 개인의 지위는 물론이어니와 생명에까지 위험이 있으리라는!)에 자라 모가지 모양으로 움추려지고 끝끝내 뻗댄이는 두어 사람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는 정식으로 어전 회의를 열어서 군대 해산의 조서에 각대신이 서명하기로 하고, H내각서기관장이 해산 조서를 기초할 것을 맡고, S 내부대신이 전국 관민에게 공문할 것을 맡고, R 총리대신과 C 농상공부대신이 상감의 뜻을 움직일 것을 맡고, R군부대신이 일본 군사령관에 말하여 일변 일본 군대로 시내의 각 요지를 수비케 하고 일변 한국의 군대의 무장을 해제하여 병영을 일본 군대에 내어주는 실행 임무를 맡기로 하였다.
이 말은 즉 R군부대신이 각 대의 간부를 불러 해산 명령을 전달하고 아울러 해산사무를 맡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편지를 본 효충회 출석자 B, C, D,E,F 등 모든 장령들은 청천병력에 얼 빠진 것 같았다.
어떤 이는(C씨 같은 이)
『한테 해 보자!』
하고 팔을 뽐내고 어떤 이는,
『이놈들을-이 나라 잡아먹는 도적놈들을.』
하고 이를 갈고 또 어떤 이는 실성통곡하였다.
마침내 의논은,
『있는 힘을 다해서 군대 해산에 반항하자.』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효충회 육, 칠인 중에 실지로 군대를 지휘하는 지위에 있는 이는 시위 대대장인 D씨와 서울서 얼마 멀지 아니한 지방 진위대 대장인 C씨뿐이었다 군부대신 부관인 씨나 . A 무관학교 교장인 B씨나 있지도 아니한 치중대장인 E씨 같은 이는 손에 한 소대 병정도 없는 사람들이다.
『옳다, 어디 겨루어 보자!』
하고 C씨는 즉시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가오. 다들 웬걸 생전에야 만나겠소? 이판에 살아나는 놈도 개아들 놈이요.』
하고 인사도 다 아니하고 뛰어 나가 버렸다. 그는 군대 해산령이 내리기 전에 자기가 맡은 수비대로 가려던 것이다.
B씨는 각 대 통솔자를 찾아 F씨는 S 내부대신(이는 부총리격이었다)과 C 농상공부대신을 찾아 군대를 해산이 불가한 것을 말하기로 하고, A씨는 R총리대신과 R군 부대신을 찾아서 군대 해산을 못하게 하도록 힘쓸 것을 약속 하고 헤어졌다.
「군대를 이상적 군대로 만들어 보자」하여 주소로 애를 쓰던 이 사람들의 실망과 분개는 형용해 말할 도리가 없었다.
十一[십일]
편집A시는 곧 R총리대신 집을 찾았으나 예궐하였다 하여 만나지 못하고 그 길로 R군부대신 집을 찾았더니 그 역시 예궐하였다 하나, A씨는 군부대신 부관인 관계로 R군부대신 집 사랑에 들어가서 군부대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얼마 아니하여 뚱뚱한 군부대신은 술이 반취나 하여서 인력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A씨는 예사롭게 부관답게 R씨 맞았다.
『어, 자네 왔나?』
하고 군부대신은 육군 대례복의 금줄이 찬란한 군모를 벗어서 곁에 선상노에게 주는 것을 A씨가 그 군모를 받아서 마당에다가 탁 집어 동댕이를 쳤다.
『이 사람 이게 웬 일인가?』
하고 R씨는 술이 번쩍 깨는 듯하였다.
『군대가 다 없어지는데 군모는 해서 무엇해요?』
하고 A씨는 주목으로 눈물을 쥐어 뿌리며,
『이 모자가 군대를 해산하려는 군부대신 위 머리 위에 올라 앉은 것이 죄지요!』
하고 구둣발로 그 찬란한 군모를 지르밟고 비벼버렸다.
모자는 찌그러지고 흙탕구리가 되어서 해산 당하는 군대와 같이 참혹하게 화계 밑에 굴러가 자빠졌다.
군부대신은 아무 말이 없이 고개를 숙였다.
『자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나?』
하고 양실 응접실 교의에 걸터앉아서 주먹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R씨는 A씨에게 물었다. 그 음성은 마치 죄을 지은 사람이 용서함을 청할 때의 음성과 같이 힘이 없었다.
『대감!』
하고 A씨는 상관에게 대한 예절도 버리고 군부대신의 팔을 꽉 붙들었다.
『대감! 대감은 군 이외다. 내각 대신들이 다 썩고 물렀기로 대감마저 그러 실 수는 없읍니다. 대감 못한다고 반대하시오!』
『낸들 왜 반대를 아니해 보았겠나.』
하고 R군부대신은 숙였던 고개를 기운 없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들 아니할 수는 없다고 하니, 내가 혼자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다들이라니? 대감은 반대신데 다른 대신들이 해산을 주장한단 말씀이지요?』
하는 A참령의 다짐에 R씨는 다만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릴 뿐.
『대감은 분명 반대십니까?』
『암 반대지. 내야 설마 찬성하겠나. 하지만는 수상(首相)의 뜻이 기울어진 걸 어찌한단 말인가. 애초에 발론을 수상이 했거든. 그야 수상도 자기 뜻이야 아니겠지. 뒤에 내려누르는 데가 있어서 그러겠지마는 수상의 뜻이 정했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나. 안 그런가.』
하고 R씨는 연해 이마에서 땀을 씻는다.
끝난 뒤에 궁중에서 축하(?)의 뜻으로 한잔 먹은 것과, A씨가 대드는 바람에 어색해진 것과 이것이 합하여 이마와 등골에서는 몸에 있는 물이 다 나오려는 듯이 땀이 흘렸다.
『인제는 또 수상의 뜻이 해산으로 기울어졌으니까, 대감의 뜻은 아니지마 는 내일은 대감이 앞장을 서서, 대감의 손으로 군대를 해산해버릴 직분을 맡으시었단 말씀야요? 그래 대감의 모가지는 이런 때에는 좀 내어대어 보지 못하고 그렇게 아끼면 천년이나 만년 갈 듯 싶읍니까.』
R군부대신은 대답이 없다.
『설사 대감이 모가지를 내어대고, 못한다고 크게 다투는지 못할 망정, 내 일이면 없어질군부대신 자리를 발길로 차고 물러나올 기운도 없읍니까. 그리고는 무엇을 먹겠다고 제 손으로 제 군대를 해산하고, 제 손으로 제가 있 는 군부대신의 자리를 팔아먹을 염치가 어디 난다 말씀입니까.』
『……』
『대감…… 아직도 늦지 아니합니다. 단연히 군대 해산에 반대하노라는 성명서를 이 자리에서 쓰시요!』
『글쎄 나 혼자만 뻗대면 일이 되나. 총리대신이 한다는 것을 어찌 한단 말인가.』
『그러면 총리대신만 대감 모양으로 맘을 돌린다면, 대감은 끝끝네 반대하시렵니까?』
『암 그렇지.』
하는 대답을 R군부대신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대감께서 군대 해산 불가라는 편지 한 장을 써줍시오. 소인이 가지고 가서 총리대신의 맘을 돌려보겠읍니다.』
『그거 안 될 걸.』
『되고 안 되는 것은 소인께 맡기시고, 대감은 편지 한장만 써줍시어.』
A씨의 비분한 태도와 정정당당한 이론에 눌리어 R군부대신은 더 모피할 핑계를 얻지 못하여,
『R 수상각하!
제국의 군대를 해산함은 도저히 차마 못할 일이옵기, 소인은 죽기로써 반대하려 하오니 각하께옵서도 돌려 생각하시기를 복원하나이다.
자세한 말씀은 부관 A에게 하문하시옵소서. 〇월 〇일 석 R재배』
R이 이편지를 쓴 것은 반은 A의 열성에 감동됨이요, 반은 A의 위엄에 눌림이었다. R은 A가 자기를 죽이기라도 할 듯하게 살기가 등등하게 생각하였다.
『소인 곧 다녀 오겠읍니다.』
하고 A는 R군부대신의 집을 나서서 바로 R수상집으로 가려다가 총리대신을 방문하는데 합당할 만한 예복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잠간 집에 들렸다.
十二[십이]
편집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인력거를 타고 나서려다가 한번 전화로 물어보고 가는 것이 편하리라 하여 R군 수상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세 번째 전화를 걸려 할 때에 A씨의 귀에 댄 수화기에서는 R군부대신의 음성이 들렸다 씨는 깜짝 . A 놀라서 가만히 들어보니, 그것은 전화가 혼선이 된 것이었다.
『지금 A가 소인의 편지를 가지고 댁으로 찾아갈테니, 안 계시다고 만나시지 마시지요.』
이러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분명히 R군부대신이 R수상에게 거는 전화였다.
『그러면 헌병대에 전화해서 A란 자를 잡아 가두라지요.』
하는 것은 분명 R수상이었다.
『그럴 것까지 없고. 제가 놔 두기로니, 무엇을 하겠읍니까. 대감께서 안 만시면 그만이지요.』
하는 것은 군부대신이었다.
A는 당장,
『이 개 같은 놈들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꽉 참고 들을 것을 다 들은 뒤에 수화기를 걸었다.
『아 다 틀렸구나!』
하고 A는 발로 방다닥을 굴렀다.
A는 「우후후후」하고 한참이나 소리를 내어 울더니, 벌떡 일어나서 벽장에서 육혈포를 꺼내어 十二[십이]연발에 탄환을 재어 기계를 점검해 보고 나서, 군복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육군 참령의 정복을 정연하게 입고 인력거를 타고 나섰다.
A씨가 인력거를 타고 바로 대문을 나서려 할 때에 마주 들어오는 우비 씌운 인력거 하나가 있었다. A는 그 인력거가 누구의 인력거인 줄도 알았으나, 짐짓 모른 체하고 그 인력거를 비켜서 인력거를 몰았다.
『영감!』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우비 씌운 인력거 속에서 나오며 머리 쪽진 젊은 여자 하나가 내려 서서 지나가는 A의 인력거를 따랐다.
그러나 A의 인력거는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어두운 ×동 병문으로 드리 어가고 말았다.
이 여자는 추금(秋琴)이라는 기생이다. 그때에는 오늘날과 달라서 명기라 고 하면 돈 있는 놈보다도 지사를 따르는 기풍이 있었다. 추금이도 그러한 기생 중의 하나로서 A씨의 사랑을 받고 A씨를 사랑하는 기생이었다. 그래서 가끔 추금은 밤이면 A씨 집을 찾아와서 이튿날 아침에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오늘도 추금은 A씨를 위로할 양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추금이는 씨가 자기를 A 본체 만체, 자기가 부르는 소리도 들은 체 만 체 하고, 가버린 것이 불쾌하고 분해서 눈물을 참고 입술을 물었다. 그러나 추금이는 얼른 다시 생각하였다. 근래에 A씨가 도무지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 하고 혹시 만난대야 전과 같이 유쾌한 빛이 없을 뿐더러, 용모가 초췌하는 것이며 오늘 저녁에 이처럼 A씨가 자기의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할 새가 없 는 것이 필시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있다 하면 무슨 곡절?
그것은 크나큰 국사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A에게 대한 섭섭하고 분한 맘은 풀리고 도리어 크나큰 국사로 해서 노심초사 하는 A가 한없이 동정이 되었다.
『가!』
하고 추금은 인력거에 올라 앉아서 인력거군을 재촉하였다. 비록 그렇더라도 인력거군이 부끄러운 생각 없지 아니하였다.
『어디로 모시랍쇼?』
하고 인력거군은 인력거 채를 들어 무릎 위에 놓으면서 고개를 뒤로 돌려서 물었다.
『집으로 가.』
하고 추금은 기운이 다 빠지는 듯함을 깨달았다.
十三[십삼]
편집그날 밤에 추금은 R수상이 부르는 것도 물리치고 A씨를 찾아왔던 것이다.
A씨를 향하여 R수상의 부름을 물리쳤다고 한대야 큰 자랑될 것도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이것이 한두번 일이 아닌 까닭이었다.
각료 중에 추금을 사랑하는 사람이 R수상 외에도 있었다.S 내대(내부대신), C 농대(농상공부대신) 같은 이는 그중에도 심한 편이요, 정력이 절륜하다는 R군대(군부대신)도 이 미인을 지나쳐 보았을 리는 없지마는 그가 자기의 부관인 A참령의 애기인 줄을 안 때에는 손을 대이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여려 대신들이 추금의 재색에 침을 흘리는 중에도 R수상은 자기의 지위가 한국에서 가장 높은 모양으로 추금을 손에 넣는데도 자기에게 우선권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동 대감께서 아씨 부르시오.』
하고 인력거가 오면 추금은 그 부르는 곳이 어딘가를 물어서 만 일백수(白水)라든지, 화월(花月)이라든지 하는 일본 요리집이면 가고 ×동 〇〇정 댁이라고 하면 무슨 핑계든지 내어서 거절하였다. 그러할 때마다 그 어미가 발을 구르고,
『이년아 나 죽는 것을 보아라.』
하고 발악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날에는 R수상은 추금을 〇동 〇〇정 댁으로 불렸다. 그러는 것을 어디 가고 없다고 해서 돌려보내었다.
한성 정계에 풍운이 자못 급한 것은 추금이도 모를 리가 없었다. 해아(海牙) 평화 회의에 밀사가 나타났다는 둥 그 밀사가 만국회의석상에서 연설을 하다가 비분한 나머지 배를 갈라 죽었다는둥, 이 때문에 황제가 양위를 한다는 둥, 벌써 했다는둥, 일본군대가 남산 꼭대기와 남대문 누상에와 대한문까지 〇포를 설치했다는 둥, 인천에는 일본 군함이 수만 명 군대를 싣고 들어온다는 둥, 인제 큰 난리가 난다는 둥, 이러한 밑있는 소리, 밑도 없는 소리가 병문 지게군이며 행랑어멈, 아범들 사이에까지도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때다. 이러한 때에 지사와만 추축하는 명기 추금이가 정계 풍운이 급박한 낌새를 몰랐을 리가 없다.
이러한 때에 추금이가 A에게 대하여 가지는 생각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A씨와 그의 동지되는 여러 지사들이 아마 시국을 바로 잡아서 난리를 평정하리라 하는 희미한 희망과 또 하나는 이렇게 풍운이 급박하면 손에 넉넉한 실력이 없는 A씨 기타와 지사들의 운수가 불길하리라는 근심과였다.
A씨가 여러 날을 두고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할 때에 추금은 여자가 의례히 가지는 맘으로 혹시 A씨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자기를 잊어버림이 아닌가 하는 질투를 느끼지 아니함도 아니지마는, 한 번 돌려 생각할 때에 A씨는 오늘날 시국에 집이나 아녀자에게 견권하는 정을 가질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하였다. 그리고는 전장에 내보낸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의 가슴을 안고 있 었다.
十四[십사]
편집옷도 끄르지 아니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일컫고 자리에 누워 있을 때에 추 금의 주정뱅이 오라비 M이 집을 헐며 들어왔다.
『추금아, 추금이 있니?』
하고 M은 누이의 방에 늘인 발을 들고 머리를 쑥 데밀었다. 갈라 붙었던 머리카락은 앞으로 뒤로 옆으로 갈기갈기 늘어지고 입에서는 튀튀하고 거품이 일었다. 본래는 그리 적지도 아니한 눈은 졸려서 못 견디어하는 어린애 눈으로 가느스름하게 반작거리고 모시 두루마기 고름은 한쪽이 뜯어져서 고 맺은 것이 겨드랑이에서 디룽거렸다.
추금은 못 들은 체하고 돌아누웠다.
『얘 추금아.』
하고 M은 추금의 곁에 들어가 앉으며 웃은 얼굴, 귀여워하는 어조로,
『얘 추금아, 이를테면 내가 이렇게 술이나 먹고 망나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네 오라비거든…. 그렇지마는 취한 것은 아니야. 내가 그것 먹고 취해?
안 될 말이지, 하하하하. 얘 누이야, 동생아이 오라비놈 술 좀 먹여주려 마.』
하고 잘 말 듣지 아니하는 손가락으로 추금의 목을 간지린다.
『글쎄 왜 이래요?』
하고 추금은 귀찮은 듯이 팔을 들어서 M의 손을 뿌리쳤다.
『오빠도 사내로 태여났거든, 좀 사내답게 사내다운 일을 해보시구려. 나 이 삼십이 내일 모렌데도 밤낮 술만 잡숫고-내가 버는 돈이 어떤 돈이라고 그것으로 술 잡숫고 다니신다 말요? 동생이 부끄럽지 않아요?』
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주정뱅이 M을 흘겨보았다.
『네 말이 옳다. 백번 옳고, 천 번 옳다. 내가 죽일 놈이다. 죽일놈이고 말고.』
하고 M은 척추골이 부러진 듯이 앞으로 푹 허리를 구부려버리고 만다.
『병정 노릇이라도 좀 댕겨 보시구려. 그것도 못하겠거든 순검 노릇이라도 좀 댕겨 보시구려!』
하고 추금은 엄숙한 낯으로,
『남과 같이 영웅 열사는 못될망정 순검, 병정도 못된단 말이요?』
하고 추금은 속으로 A 같은 사람과 M과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M을 챙망하다가, 그 주정뱅이가 죽여 줍소사 하는 듯이 가만히 앉았는 것을 보고는 불쌍한 생각이 나서 말을 끊고 말았다.
『추금아, 내 영웅이야 바라겠느냐마는 열사는 되마.』
하고 M은 이윽고 고개를 들고 몸을 똑바로 얼굴을 엄숙히 하였다. 그의 낯에는 조금 전에 있던 취한 빛이 다 없어지고 해쓱한 그 얼굴, 여무진 눈에서는 찬 바람이 나는 듯하였다.
이때에 대문에 찾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R 수상에게서 두 번째 온 인력거 였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추금은 이번에는 아니 간다고 거절을 아니하고 성큼 일어사서 그 인력거를 탔다.
(未完[미완] 中斷[중단])
(一九三一年三月 -六月[일구삼일년 삼월-육월] 《東光[동광]》所載[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