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와 콩
1
편집“내일 군청서 목화 심으러 오우. 무엇을 심었든지 다 뽑아버리고 목화 심는다우”
동리 밖 느티나무 위에서 동리소임(洞里所任)의 외치는 소리가 초저녁 바람에 흘러서 흐릿하게 들린다.
“뭐라고 웨는 소린가?”
두윤(斗允)이가 옆에 앉아 있는 정선달한테 물었다.
“글쎄 내일 군청 사람들이 나와서 목화 안 심은 밭에 목화 심는다는 말 아니야. 감자나 콩이나 무엇을 심었든지 다 뽑아 버리고 목화 심는다는 말 아니야. 그 소리야.”
“응. 그 소리야. 아까 구장(區長)한테 들어서 벌써 알았어.”
등잔 밑에 누워서 이야기책 보던 재선(在善)이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심어 논 곡식을 뽑아 버리고 목화를 심어!”
“그러믄(그럼) 본래 군청서 심으란 걸 안 심었거든”
“뭐시!(뭣!) 아무리 군청 사람들이라고 심어 논 곡식을 빼고 목화를 심어. 말인가 뭣인가.”
한편 구석에서 혼자 짚세기를 삼고 있던 곰보 박대성(朴大成)이가 소리를 꽥질렀다. 그는 이 동리에선 단 한사람인 농민조합원(農民組合員)으로 재선이와 만나면 싸웠다. 재선은 면장(面長) 일가족하고서 관청서 하라면 무엇이든지 다 옳다하고 떠드는 성벽이 있음으로 동리 사람들이 빈정대어서 면장대리(面長代理)라고 불렀다.
“목화든지 무엇이든지 이익만 되몬(면) 심을낀(텐)데. 손해가 되니 하는 수 이야재(지).”
“손해가 뭐고, 난 작년에 죽도록 가꿔서 목화를 따 가지고 공동판매장(共同販賣場)에 가져가니께(까). 양털(羊毛)같은 솜 한 근(斤)에 이십 전 밖에 안 준단 말이다(이야). 그래 다섯 근 가져가서 일원 한 장 얻어 오니께, 우리 집 여편네가 우는소리로‘우리 딸막이 옷이나 해 입힐 걸 갖다가. 다시는 우리 목화 심지 맙시더(다). 콩이나 무시(무우)나 갈어 묵(먹)고’한단 말이다. 그래서 금년에 나는 구장이 자꾸 맡기는 목화씨도 기어이 안 받아하고 면소 앞밭에 콩을 다 심어 버렸어.”
두윤이는 밭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 면소 앞 닷 마지기 밭에다 군청서 기어이 목화 심으란 걸 안 심고 콩 심은 이야기를 하였다.
“흥! 자넨 그래도 팔러가서 받을 값을 다 받으신께 괜찮네. 난 열다섯 근을 늙은 놈이 이십 리나 지고 가서 솜 값을 찾으니, 한 근에 십팔 전씩 쳐서 열두 근 값으로 2원 16전 밖에 안 준단 말이다. 그래. 내 목화는 확실히 열 다섯 근인데, 와(웨) 열두 근 값밖에 안 주느냐고 물으니까. 군청서 온 양복장이가 알아듣지 못할 조선말로.‘그 따위 바보 소리 말어. 열두 근이기에 열두 근이라지. 거짓말이거든 이 장부(帳簿)를 봐! 장부를!’한단 말이야. 그래 난 다시 할 말이 있어야지. 소로 ― 시(완전히) 목화 세 근을 잊어버리고 왔지.”
정선달은 새삼스럽게 화가 나는지 곰방 담뱃대로 목침을 뚝뚝 두드린다.
“그게야, 정선달이 잘 못 달어 그런 줄 알 수 있나. 무슨 그 사람들이 백성을 속일까봐.”
“면장대리 너는 가만있어 백성을 안 속일 줄은 어떻게 아누?”
면장대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성이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꽥지르니 면장대리는 깜짝 놀란 뒤에 몸을 건들하였다.
“말이지. 목화만 그렇다구. 뽕도 없는 땅에 억지로 심어서 밤잠도 못 자고 누에를 쳐서 꼬치를 가져가면 상고치 한 관에 이원, 뽕 값도 안되고 공력 값도 안 되는 걸 뭐. 또 간간이 한 두 관은 어디가는 줄 모르게 잊어버리고.”
근검(勤儉)하기로 유명하고, 살림 잘하기로 유명하고, 또 양잠(養蠶) 잘하기로 유명한 허춘삼(許春三)이가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참말이지. 관청 사람들 하는 일은 알 수 없더라.”
“그래. 그 사람들 심사는 참으로 알 수 없어. 설마 백성을 해되게는 아니할텐데.”
그들은 진정으로 ××[관청]사람들의 심사를 알 수가 없었다. 언제든지 백성을 위해서 백성을 이롭게 한다고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그들에게는 이상하였다. 이익은커녕 손해가는 목화를 기어이 심으라는 것이라든지, 뽕나무를 강제로 심으라는 것이라든지, 그 외에 술 담배 같은 것을 제 마음대로 못해 먹게 하는 것이라든지, 모든 그러한 관청사람들의 하는 짓이 무슨 심사인지 알 수 없었다. 또 가만히 꼬치, 목화를 기어이 공동판매장으로 가져오라는 것, 그렇게 헐케 사서 누구를 다 주는지. ××[세금]들은 그렇게 비싸게 받아 가지고 다 무엇을 하는지. 그러한 모든 것이다 그들에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관청사람들의 심사를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모르긴 무엇을 몰라 ××××[군청 세금]을 ××[매길} 때는 뭣 때문에 ×[했]었건대……. 다 그런 게야.”
두윤이와 정선달은 아무 말없이 앉아서 저 혼자 두 눈을 불끈불끈 하고 있는 대성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적어도 그때에는 대성이가 자기들보다 좀 다른 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토막방은 한참동안 잠잠하여졌다. 어두운 석유불만 저 혼자 깜박깜박하였다.
“야! 다들 뭐하노. 한 패 뜨는 중인가?”
“어 필성(必成)인가? 오래간만이다. 우짠(어쩐)일고? 오늘 저녁에.”
“심심해 놀러 왔지 뭣. 이 동네는 어째 봄 농사 다 지어가나?”
필성이는 낡은 중절모자를 방 가운데 휙 던지고 호주머니에서 단풍 토막 하나를 내어 피운다.
“두윤이 자넨 콩이고 매물(메밀)이고 다 심었겄지?”
“콩이고 매물(메밀)이고 이 사람아 큰일났네.”
“큰일이라니, 와(웨)?”
“내일 군청사람들이 나와서 심어논 콩을 다 빼버리고 목화를 심는다네.”
“와 목화 심으란 밭에다 콩을 심으라더나. 하하.”
필성은 껄껄 웃었다.
“그렇지만 팔아야 거름도 안되는 목화를 심을 수 있나. 콩 같은 건 가을에 죽이라도 써 묵(먹)지만……. 자네들 농민조합에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나?”
두윤의 눈에는 약간 애걸하는 빛이 떴다.
“글쎄 우리 조합에서? 느그(자네들)가 조합에 들어야 뭣을 어짜지.”
“글쎄 말이지.”
대성이가 껄껄 웃었다. 필성은 빙그레 웃으면서 한참동안 아무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글쎄 사실은 오늘 저녁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볼라(려)고 왔는데, 글쎄 어짜면(어쩌면) 좋을까. 자네들은 어짜면(어쩌면) 좋겠어?”
필성은 그의 말버릇인‘글쎄’를 자꾸 거듭하였다.
“우리가 무엇을 아나. 군청 사람들이 와서 심으면 심은대로 보고 있지. 어짜근노(어쩌겠나)?”
필성은 또 한참동안 아무 말없이 담배만 피운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하기 전에 자네들 어째서 (略[략])[군]이나 (略[략])[면]에서 목화나 뽕나무를 강제로 심게 하고, 또 공동판매소란 것을 두어서 목화나 솜을 그저 가져가듯이 헐케 사 가는지 아나?”
“우리가 그런 걸 알 수 있나. 그렇게하니까 하는 줄만 알지.”
두윤이와 정선달은 필수(‘필성’의 오기 ─ 편자 주)의 무릎 옆으로 다가 앉는다.
“그래, 모를께다.”하고 필성은 단풍을 피우면서 차근차근하게 이야기하였다.
“(略[략])[군]에서 농민들을 목화나 뽕을 강제로 심으게 하는 것은 농민들의 이익(利益)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부산(釜山)이나 서울이나 동경(東京)이나 대판(大阪)에 있는 제사회사(製絲會社), 방적회사(紡績會社)의 실 만들고 베짜는 가음(原料[원료])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또 공동판매장(共同販賣場)이란 것은 농민들의 편리를 위해 둔 것이 아니고, 제사회사나 방적회사들에게 헐케 사주기 위해 둔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와 함께 또 농민이란 건 현사회(現社會)에서는 어떠한 처지에 있으며, 어찌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 특히 조선의 농촌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 것,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아 듣기 쉬운 말로, 단풍 한 개가 다 탄 줄도 모르고 빈 파이프를 빨면서 한참동안 차근차근하 게 이야기하였다.
두윤이나 정선달은 긴장된 얼굴로 숨만 내쉬면서 가만히 앉아들었다.
“응. 그래 그래. 그런 걸 우리들이야 알 수 있어야지.”
그들은 이제야 참으로 탄복하였다. 필성은 어떻게 그런 세상 일을 잘 아는지 속으로 탄복하였다. 그들은 이때까지는 필성은 그저 책만 좀 읽었지, 세상일은 아무 것도 모르는 줄로 알았다. 농사가 짓기 싫어서, 농민조합이니 뭣이니 하며 떠들고 돌아다니다가, 가끔가끔 경찰서에나 불려가는 사람인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농민조합에서 한다는 여러 가지는 다 옳기는 하나, 사실되지도 않고, 관청사람에게 미움만 받는 일인 줄로 알았다. 그래서 필성이나 대성이가 여러 번 만날 때마다
“자네 조합에 안 들란가?”하면은
“글쎄 차차 들지.”하고 슬슬 피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필성의 차근차근한 이야기를 들으니 과연 그럴듯 하였다. 참으로 자기들보다 세상 일을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필성은 그들이 이때까지 알고 있는 그러한 필성은 아닌 것 같고, 따라서 농민조합이란 것도 그들이 이때까지 알고 있는 그러한 것은 아닌 것을 알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지금 이해관계(利害關係)에 적지 않은 일에 당면해 있는 때이다. 그래서 그들은 필성이가 어떠한 좋은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아마도 알고 있지 생각하고 한 번 듣고 싶었다.
“대강 알았어?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일후 또 한 번하지. 그러면 이야기는 그만하고 자네들 내 말대로 한 번 해 볼래?”
필성은 반쯤이나 웃는 말을 하였다.
“우찌(어떻게?) 될 일이면 해보지 뭐.”
그들은 무슨 방법이 있는가 얼른 알고 싶어 모든 눈이 필성한테 일제히 몰려졌다.
누워 있던 정선날도 벌떡 일어났다.
“그럼 이래 보지. 내일 군청 사람들이 목화 갈러 오거든 쟁기를 꽉 붙잡고 꼼짝도 못하게 해보지.”
필성의 말은 역시 반쯤 웃는 소리였다.
“그라몬(그렇게 하면) 될까. 아무 별 일 없는가?”
두윤이와 정선달은 서로 쳐다본다.
“일은 무슨 일. 요새 신문(新聞)을 보면 그렇게 해서 안 심으고 만데가 많은데 뭣. 저 전라도(全羅道) 곡성(谷城)이라는 데는 여기 같이 ××[군청]서 강제로 목화 심는다고 ×[군]기수니 ×[면]기수니 ×[면]하인이 쟁기를 가지고 나와서 봄 무시(무우)가 뾰족뾰족 나와있는 밭을 그만 갈아 디빌라는(엎을라는) 것을 농민조합원이 쟁기를 꼭 붙잡고 못 갈게 해서 기어히 못 심으고 말았고, 또 경상북도 군위(軍威)란데도 목화 심으러 온걸 그리 뻗대니께 못 이기고 갔다는데 뭣. 그런 일이 퍽 많은데 뭣. 아무리 ××[군청]이라도 이 편에서 기어히 뻗대면 못 이기는 게야.”
“참 그럴 게야 아무리 군청사람이라도 거기는 불과 사오인이고, 이편에서는 수십명이 되니까.”
“그럼 그뿐 아니라, 또 이 편에서 하자는 일이 당연한 일이니까.”
필성은 온방안 사람을 일부러 한 번 둘러보았다.
“우리도 그래 보자! 그러면 될 것이야.”
대성이가 소리를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그래 보자. 우리 젠장 별일 있으나 없으나 한 번 해보자. 우리 또 별 일 있으면 나중에 한 놈 ×[죽]을 요량하고 해보지 뭣.”
두윤이도 벌떡 일어나 쪼그리고 앉는다.
“별일이 있으면 얼마나 있으까(있을랴구) ××[지역 이름 - 편자 주] 군청 기수가 다 뭣고(뭐야).”
정선달도 일어났다. 온 방은 별안간 열기가 찬 것 같았다. 다만 ××[면장]대리만이 한 쪽 구석에서 아무 말없이 앉아서 다른 사람들하는 이야기만 잠자코 듣고 있다.
“두윤이 자네 밭이 제일 면소에 가즉(가깝)지? 그리로 그 자식들이 제일 먼저 올 낀께(것이니까). 우리 그리로 먼저 모여 있자. 그래 거게만 몬 심으기(못 심으게)하면 다른 데는 그냥 그대로 가지 뭣.”
“그라믄(그럼). 그럼.”
“그렇지 그렇지. 됐어 됐어.”
필성이는 역시 껄껄 웃었다.
“그럼, 우리 조합에서도 몇이 가지.”
“나도 가지. 나도 가. 난 목화 심을 밭도 없지마는.”
대성이는 제 일같이 또 무슨 기쁜 일이나 난 듯이 소리를 쳤다.
2
편집그 이튿날이다. (略[략])[면소 앞] 두윤이 콩밭 저 편에는 농민 수십명이 모여 있다.
양복입은 (略[략])[군] 기수가 (略[략])[면] 기수(技手)와 (略[략])[면] 하인(下人)을 데리고 나온다. (略[략])[면]하인은 장기를 지고 소를 몰고 콩밭으로 왔다. 그래서 양복장이 지휘에 쫒아 푸릇푸릇 하여 있는 콩이랑 위에다 장기를 꼽는다. 콩은 며칠 전에 온 봄비를 맞아 어린 양털같이 너울너울 하고 있다. 보기 좋게 굵은 푸른 선(線)을 그어 있다.
“왜 목화를 안 심으고 콩을 심었어?”
하도 어이가 없는 듯이 장기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두윤이를 보고 양복장이는 소리를 꽥지른다.
“목화는 심어 팔아야 이익도 안되고 콩은 그래도 양식을 할 수 있어서…….”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 말어! 또 설령 이익이 안되더래도 (略[략])[군청]에서 심어랬으면 무엇이든지 심어야 되는게 아니야?”
“그럼, (略[략])[군청]에서 심으란 건 무엇이든지 심는 게야. (略[략])[군청]에선 백성을 조금이라도 이익되게 시켰지 해되게는 안 시켜.”
빼빼 마른 (略[략])[군]기수가 옆에 서서 부축하는 말이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금년은 이왕 심으논 것이니께. 그냥 해먹고 내년에는 목화를…….”
“안돼. 안돼. 그런 소리 말어.”
양복장이는 (略[략])[면]하인을 보고 손짓을 한다.
“얼른 갈어. 얼른 갈어. 뭣을 보고 있어!”
(略[략])[면] 하인은 어쩌면 좋을 줄을 몰라서 멍멍하게 서 있다가 마지못한 듯이 다시 장기를 세우고 소 고삐를 한 번 당긴다.
“이리. 이리.”
늙은 황소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이 앞으로 무긋이 나가려 한다. 푸른 콩 이삭은 커다란 쟁기 밑에서 하나둘씩 쓰러지려 한다.
“안된다. 안된다. 난 목화 안 심을란다. 이익도 안 되는 목화 안 심을란다”
두윤은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쟁기를 꽉 붙잡는다. (略[략])[면 하인]은 꼼짝도 못한다. 늙은 황소도 종지 같은 눈만 꿈쩍거리면서 가만히 서있다.
“왜 이래. 왜 이래. (略[략])[군에서] 시키는 일을”
양복장이는 소리를 친다.
“안되오. 안되오. (略[략])[면 하인] 안되오.”
두윤이도 소리를 쳤다. 그러자 또 저편 언덕 위에서 보고 있던 농군 열 두서넛이 괭이를 매고 달려온다. 강대성이 정선달, 허춘삼이가 모다 그들 중에 섞였다.
“여보게들 이것 좀 봐. 목화 심는다고 시퍼렇게 나있는 콩을 갈아 디비는(엎는) 걸. 이런 일이 세상에 어디 있나.”
두윤이는 기운이 나는 소리로 농군들을 보고 부르짖는다.
“목화를, 이익도 안되는 목화를 심어. 목화도 목화지만 시퍼렇게 나있는 콩을…….”
“아무리 (略[략])[군청]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略[략])[군] 기수와 (略[략])[면] 하인을 둘러쌓다. 황소 앞을 막아선다.
“그래 말이지. 안된다. 안된다. 죽어도 안된다.”
두윤이는 더욱 기운을 내어 소리쳤다. 양복장이는 두 눈이 둥그레졌다. 횃불이 활활 일어나는 한편에 또 약간의 겁도 난 것 같았다.
“왜 이래. 왜 이래. 온당치 못하게 (略[략])[군청]서 하라는데 왜 이래.”
“(略[략])[군청]이 다 뭐꼬. 해롭게 시키는게 (略[략])[군청]인가.”
“아무리 (略[략])[군청]이라도 해롭게 시키는데 뭣하는가.”
“(略[략])[군]이 다 뭐꼬. ×[군]기수가 다 뭐꼬. 참, (略[략])[군]이라면 누가…….”
군중이 이렇게 떠드니 양복쟁이는 두 눈이 더욱 둥그레졌다.
“왜 이래 떠들어.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떠들어. 가! 관계없는 이는 다 가!”
“왜 관계없어. 우리도 다 밭 가지고 있다. 목화 안 심고 콩 심었다.”
군중은 그냥 떠들었다.
“(略[략])[군청]서 하는 일을 이래서는 안돼. 법률이 있어. 공무방해죄(公務妨害罪)가 되어!”
“옛다 (略[략])[군청]이라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는 줄 아는가 뵈.”
“젠장 (略[략])[군청]이라면 뉘가 겁낼 줄 아나.”
“목화는 왜 강제로 심으라노. 공동판매장은 뭣 한다고 두어서 목화니 꼬치를 그저 뺏어가노!”
“옳아, 이 자가 작년 공동판매장에서 목화 속여먹은 자 아닌가.”
정선달이 인제야 알았는 듯이 다가서면서 소리를 친다.
“왜 아니라. 왜 아니야. 그 자다. 왜 남의 목화를 속여먹어서 등수(等數)를 속이고 근수를 속이고.”
“그래. 그래. 그라몬(그러면) 이 사람 내 목화 세 근 내 놓아라. 열다섯 근 가져가고 열 두 근 밖에 안 주었지. 내 놓아 이 사람아.”
정선달은 새삼스럽게 분이 나는 듯이 기수의 양복 자락을 당기면서 소리를 질렀다.
“내 목화 두 근 내 놓아 그것도 내 피땀을 가지고 지은 목화다. 오늘은 꼭 내놓아라. 어데 능청스럽게.”
“이 자식이 왜 이래 어데 (略[략])[군기수]한테 덤비드노.” 기수는 약이 오른 듯 낯빛을 시뻘겋게 해 가지고 정선달의 뺨을 친다.
“이 사람 봐. 젊은 사람이 어데 나 많은 사람을.”
“이 자식 버릇없는 늙은이.”
기수는 또 정선달의 뺨을 치며 구둣발로 옆구리를 찼다. 정선달은 뒤로 자빠졌다.
“이것 봐. 사람을 치는구나. 사람을 쳐! 아무리 (略[략])[군기수]라고 젊은 놈이 나 많은 사람을 제 아비 같은 사람을!”
정선달은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 또 일어나던 기수는 또 발로 찬다.
“왜 이 나 많은 사람을 쳐 아무리 (略[략])[군기수]라고.”
“넌 네 집엔 아비 어미도 없나?”
“기수면 아무도 아무래도 되는 줄 아나. 기수가 뭐꼬.”
군중은 누가 떠드는 줄 모르게 와 떠든다. 괭이가 이리저리 왔다갔다한다. 콩밭은 어느듯 수라장(修羅場)이 되었다.
이렇게 되어 있을 때에 어느새 붉은 테 모자(帽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 왔다. 면기수가 빠져나가 몰래 데려온 것이다. 붉은 테 모자가 자전거를 밭 언덕 위에 놓고 콩 밭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군중은 필성이 대성이 몇 사람을 남겨두고는 모다 비식비식 뒤로 흩어진다.
“왜 이래 (略[략])[군]에서 나와서 하는 일인데 왜 이래.”
“나쁜 사람들이야 온당치 못한 사람들이야.”
붉은 테 모자는 그냥 그대로 쟁기 옆에 양쪽 손을 허리 위에 얹고 서있는 두윤이와 대성이의 뺨을 두 번씩 치고는,
“나쁜 사람이야…….”
하면서 모두 다섯 사람을 끌고 간다. 그것을 본 군중들은 다시 와 ― 둘러 모여 한 뭉치가 되었다.
“왜 잡아가오. 죄 없는 사람을.”
“제 아비 같은 나 많은 사람 친 놈은 그냥 두고 죄없는 사람을 왜 잡아가 요?”
군중은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붉은 테 모자 뒤를 따라간다. 그래서 그들은 (略[략])[면소] 앞마당에서 사람 내 놓으라고 자꾸 부르짖었다.
“나가 나가 안가면 너희들까지 잡아갈테야.”
부장이 나와서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군중은,
“잡아가도 좋아요. 그 사람들 내놓기 전에는 안가요.”하면서 그냥 둘러 싸 있다. 그래서 나중에는 붉은 테 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와서 군중을 보고 휘두르면서 쫒아낸다. 그러면 군중은 잠깐 동안 와 ― 흩어져 갔다가 다시 와 ― 모여들었다.
3
편집그 이튿날이다. 다섯 사람은 별일 없이 돌아왔다.
“그러면 그렇지 죄없는 사람을 공연히!”하면서 여러 농군들은 다섯 사람을 둘러쌓다.
“그래도 우리가 이긴 셈이지. 아무리 (略[략])[군청]이라도 이 편에서 뻗대기 만하면.”
박대성이가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팔을 뽐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편 하는 일이 당연한 일이거든.”
필성이는 기쁜 듯이 웃었다.
“그렇지만 며칠동안은 영위 안심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한 열흘동안을 여나홉이 뭉치여 두윤이 밭과 그외 목화 심을 밭에 때때로 한참씩 지키다 왔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듯 초여름이 닥쳐왔다. 보리밭은 누렁누렁 빛을 띄었다. 그래서 목화 심을 시기(時期)는 그러구러 지나갔다. 푸른 콩은 때를 따라 잘도 자랐다. 비를 맞아 거름을 먹고, 보기 좋게 훨훨 자랐다.
그러는 한 편에 필성이들은 한참동안 이 경화동에 분주하게 갔다왔다 하였다.
두윤이집 정선달집 이 집 저 집으로 한참동안은 밤낮없이 밥 먹을 여가도
없이 쫒아다녔다.
그래서 그해 초여름 이 경화동에는 △△농민조합 △△지부경화동 반(班)기가 바람에 날려 높이 펄렁거렸다.
─ 『농민소설집』 별나라사,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