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셔츠
1
편집박물 시간이었다.
“이 없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가?”
선생님이 두 번씩 연거푸 물어도 손 드는 학생이 없더니, 별안간 ‘옛’ 소리를 지르면서, 기운 좋게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음, 창남인가. 어디 말해 보아.”
“이 없는 동물은 늙은 영감입니다!”
“예에끼!”
하고, 선생은 소리를 질렀다. 온 방안 학생이 깔깔거리고 웃어도, 창남이는 태평으로 자리에 앉았다.
수신(도덕) 시간이었다.
“성냥 한 개비의 불을 잘못하여, 한 동네 삼십여 집에 불에 타 버렸으니, 성냥 단 한 개비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야 하느니라.”
하고 열심히 설명해 준 선생님이 채 교실 문 밖도 나가기 전에,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모이고 모여, 큰 홍수가 나는 것이니, 누구든지 콧물 한 방울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흘려야 하느니라.”
하고, 크게 소리친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돌아서서,
“그게 누구야? 아마, 창남이가 또 그랬지?”
하고 억지로 눈을 크게 떴다. 모든 학생들은 킬킬거리고 웃다가 조용해졌다.
“예, 선생님이 안 계신 줄 알고 제가 그랬습니다. 이 다음엔 안 그러지요.”
하고, 병정같이 벌떡 일어서서 말한 것은 창남이었다. 억지로 골 낸 얼굴을 지은 선생님은 기어이 다시 웃고 말았다. 아무 말없이 빙그레 웃고는 그냥 나가 버렸다.
“아 하하하하…….”
학생들은 일시에 손뼉을 치면서 웃어댔다.
×× 고등 보통 학교 일 년급 을 반 창남이는 반 중에 제일 인기 좋은 쾌활한 소년이었다.
이름이 창남이요, 성이 한 가이므로, 안창남(安昌南 ; 비행사) 씨와 같다고 학생들은 모두 그를 , 보고 비행가 비행가 하고 부르는데, 사실은 그는 비행가같이 시원스럽고 유쾌한 성질을 가진 소년이었다.
모자가 다 해졌어도, 새 것을 사 쓰지 않고, 양복바지가 해져서 궁둥이에 조각 조각을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집안이 구차한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이라도 근심하는 빛이 있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눈치도 없었다.
남이 걱정이 있어 얼굴을 찡그릴 때에는, 우스운 말을 잘 지어 내고, 동무들이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에는 좋은 의견도 잘 꺼내 놓으므로, 비행가의 이름이 더욱 높아졌다.
연설을 잘 하고, 토론을 잘 하므로 갑 조하고 내기를 할 때에는 언제든지 창남이 혼자 나가 이기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이 정말 가난한지 넉넉한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가끔 그의 뒤를 쫓아가 보려고도 했으나 모두 중간에서 실패를 하고 말았다. 왜 그런고 하면, 그는 날마다 이십 리 밖에서 학교를 다니는 까닭이었다.
그는 가끔 가끔 우스운 말을 하여도 자기 집안 일이나 자기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그는 입과 같이 궁둥이가 무거워서, 운동틀(철봉)에서는 잘 넘어가지 못하여, 늘 체조 선생님께 흉을 잡혔다. 하학한 후 학생들이 다 돌아간 다음에도 혼자 남아 있어서 운동틀에 매달려 땀을 흘리면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동무들은 가끔 보았다.
“이애, 비행가가 하학 후에 혼자 남아서 철봉 연습을 하고 있더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자 애를 쓰더라.”
“그래, 이제는 좀 넘어가데?”
“웬걸, 한 이백 번이나 넘도록 연습하면서, 그래도 못 넘어가더라.”
“그래, 맨 나중에는 자기가 자기 손으로 그 누덕누덕 기운 구둥이를 때리면서 ‘궁둥이가 무거워, 궁둥이가 무거워.’ 하면서 가더라!”
“제가 제 궁둥이를 때려?”
“그러게 괴물이지…….”
“아 하하하하하…….”
모두 웃었다. 어느 모로든지 창남이는 반 중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2
편집겨울도 겨울 몹시도 , 추운 날이었다. 호호 부는 이른 아침에 상학 종은 치고, 공부는 시작되었는데, 한 번도 결석한 일이 없는 창남이가 이 날은 오지 않았다.
“호욀세, 호외야! 비행가가 결석을 하다니!”
“어제 저녁 그 무서운 바람에 어디로 날아간 게지!”
“아마, 병이 났다 보다. 감기가 든 게지.”
“이놈아, 능청스럽게 아는 체 마라.”
일 학년 을 조는 창남이 소문으로 수군수군 야단이었다.
첫째 시간이 반이나 넘어갔을 때, 교실 문이 덜컥 열리면서, 창남이가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들어섰다.
학생과 선생은 반가워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그들은 창남이가 신고 섰는 구두를 보고, 더욱 크게 웃었다. 그의 오른편 구두는 헝겊으로 싸매고 또 새끼로 감아 매고 또 그 위에 손수건으로 싸매고 하여, 퉁퉁하기 짝이 없다.
“한창남, 오늘은 웬일로 늦었느냐?”
“예.”
하고, 창남이는 그 괴상한 퉁퉁한 구두를 신고 있는 발을 번쩍 들고,
“오다가 길에서 구두가 다 떨어져서, 너털거리기에 새끼를 얻어서 고쳐 신었더니 또 너털거리고 해서, 여섯 번이나 제 손으로 고쳐 신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그리고도 창남이는 태평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고 쉬는 동안에, 창남이는 그 구두를 벗어 들고, 다 해져서 너털거리는 구두 주둥이를 손수건과 대님 짝으로 얌전스럽게 싸매어 신었다. 그러고도 태평이었다.
따뜻해도 귀찮은 체조 시간이 이처럼 살이 터지도록 추운 날이었다.
“어떻게 이 추운 날 체조를 한담.”
“또 그 무섭고 딱딱한 선생님이 웃통을 벗으라고 하겠지……. 아이구, 아찔이야.”
하고, 싫어들 하는 체조 시간이 되었다. 원래 군인으로 다니던 성질이라, 뚝뚝하고 용서성 없는 체조 선생이 호령을 하다가, 그 괴상스런 창남이 구두를 보았다.
“한창남! 그 구두를 신고도 활동할 수 있나? 뻔뻔스럽게…….”
“예,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하고, 창남이는 시키지도 않은 뜀도 뛰어 보이고, 달음박질도 하여 보이고, 답보(제자리걸음)도 부지런히 해 보였다. 체조 선생님도 어이없다는 듯이,
“음! 상당히 치료해 신었군!”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호령을 계속하였다.
“전열만 삼 보(세걸음) 앞으로 ─ 옷!”
“전 후열 모두 웃옷 벗어!”
3
편집죽기보다 싫어도 체조 선생님의 명령이라, 온반 학생이 일제히 검은 양복 저고리를 벗어, 셔츠만 입은 채로 섰고, 선생님까지 벗었는데, 다만 한 사람 창남이만 벗지를 않고 그대로 있었다.
“한창남! 왜 웃옷을 안 벗나?”
창남이의 얼굴은 푹 숙이면서 빨개졌다. 그가 이러기는 처음이었다. 한참 동안 멈칫멈칫하다가 고개를 들고,
“선생님, 만년 셔츠도 좋습니까?”
“무엇? 만년 셔츠? 만년 셔츠란 무어야?”
“매, 매, 맨몸 말씀입니다.”
성난 체조 선생님은 당장에 후려갈길 듯이 그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아가면서,
“벗어랏!”
호령하였다. 창남이는 양복 저고리를 벗었다. 그는 셔츠도 적삼도 안 입은 벌거숭이 맨몸이었다. 선생은 깜짝 놀라고 아이들은 깔깔 웃었다.
“한창남! 왜 셔츠를 안 입었니?”
“없어서 못 입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무섭던 눈에 눈물이 돌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웃음도 갑자기 없어졌다. 가난! 고생! 아아 창남이 집은 그렇게 몹시 구차하였던가……, 모두 생각하였다.
“창남아! 정말 셔츠가 없니?”
눈물을 씻고 다정히 묻는 소리에,
“오늘하고 내일만 없습니다. 모레는 인천서 형님이 올라와서 사 줍니다.”
체조 선생님은 다시 물러서서 큰 소리로,
“한창남은 오늘은 웃옷을 입고 해도 용서한다. 그리고 학생 제군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으니, 제군은 다 한창남 군 같이 용감한 사람이 되란 말이다 누구든지 셔츠가 . 없으면, 추운 것을 둘째요, 첫째 부끄러워서 결석이 되더라도 학교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같이 제일 추운 날 한창남 군은 셔츠 없이 맨몸, 으으응, 즉 그 만년 셔츠로 학교에 왔단 말이다.
여기 섰는 제군 중에는 셔츠를 둘씩 포개 입은 사람도 있을 것이요, 재킷에 다 외투까지 입고 온 사람이 있지 않은가……. 물론, 맨몸으로 나오는 것이 예의는 아니야, 그러나 그 용기와 의기가 좋단 말이다. 한창남 군의 의기는 일등이다. 제군도 다 그의 의기를 배우란 말야.”
만년 셔츠! 비행가란 말도 없어지고, 그 날부터 만년 셔츠란 말이 온 학교 안에 퍼져서, 만년 셔츠라고만 부르게 되었다.
4
편집그 다음날, 만년 셔츠 창남이는 늦게 오지 않았건마는, 그가 교문 근처까지 오기가 무섭게, 온 학교 학생이 허리가 부러지도록 웃기 시작하였다.
창남이가 오늘은 양복 웃저고리에, 바지는 어쨌는지 얄따랗고 해어져 뚫어진 조선 겹바지를 입고, 버선도 안 신고 맨발에 짚신을 끌고 뚜벅뚜벅 걸어온 까닭이었다. 맨가슴에, 양복 저고리, 위는 양복 저고리 아래는 조선 바지, 그나마 다 떨어진 겹바지, 맨발에 짚신, 그 꼴을 하고, 이십 리 길이나 걸어왔으니, 한길에서는 오죽 웃었으랴…….
그러나, 당자는 태평이었다.
“고아원 학생 같으이! 고아원야.”
“밥 얻어 먹으러 다니는 아이 같구나.”
하고들 떠드는 학생들 틈을 헤치고 체조 선생님이,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보니까 창남이가 그 꼴이라 너무 놀라서,
“너는 양복 바지를 어쨌니?”
“없어서 못 입고 왔습니다.”
“어째 그리 없어지느냐? 날마다 한 가지씩 없어진단 말이냐?”
“예에, 그렇게 한 가지씩 두 가지씩 없어집니다.”
“어째서?”
“예.”
하고, 침을 삼키고 나서,
“그저께 저녁에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저희 동리에 큰 불이 나서, 저의 집도 반이나 넘어 탔어요. 그래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듣기에 하도 딱해서 모두 혀 끝을 찼다.
“그렇지만, 양복 바지는 어저께도 입고 오지 않았니? 불을 그저께 나고…….”
“저의 집은 반만이라도 타서, 세간을 건졌지만, 이웃집이 십여 채나 다 타버려서 동네가 야단들이어요. 저는 어머니하고 단 두 식구만 있는데, 반 만이라도 남았으니까, 먹고 잘 것은 넉넉해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 하게 되어서 야단들이어요. 그래, 저의 어머니께서는 우리는 먹고 잘 수 있으니까. 두 식구가 당장에 입고 있는 옷 한 벌씩만 남기고는 모두 길거리에 떨고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셨으므로 어머니 옷, 제 옷을 모두 동네 어른들게 드렸답니다. 그리고, 양복 바지는 제가 입고 주지 않고 있었는데 저의 집 옆에서 술장사하던 영감님이 병든 노인이신데, 하도 추워하니까, 보기에 딱해서, 어제 저녁에 마저 주고, 저는 가을에 입던 해진 겹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죽은 듯이 고요하고, 고개들이 말없이 수그러졌다. 선생님도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너는 네가 입은 셔츠까지도 양말까지도 주었단 말이냐?”
“아니오, 양말과 셔츠만은 한 벌씩 남겼었는데, 저의 어머니가 입었던 옷은 모두 남에게 주어 놓고, 추워서 벌벌 떠시므로, 제가 ‘어머니, 제 셔츠라도 입으실까요.’하니까, ‘네 셔츠도 모두 남 주었는데, 웬 것이 두 벌씩 남았겠니!’하시므로, 저는 제가 입고 있던 것 한 벌뿐이면서도, ‘예, 두 벌 남았으니, 하나는 어머니 입으시지요.’하고, 입고 있던 것을 어저께 아침에 벗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먼 길에 학교 가기 추울 텐데, 둘을 포개 입을 것을 그랬구나.’하시면서, 받아 입으셨어요. 그리고, 하도 발이 시려 하시면서, ‘이애야 창남아, 양말도 두 켤레가 있느냐?’ 하시기에, 신고 있는 것 한 켤레 것만은, ‘예, 두 켤레입니다. 하나는 어머니 신으시지요.’ 하고, 거짓말을 하고, 신었던 것을 어저께 벗어 드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나올 때에, ‘이 애야, 오늘같이 추운 날 셔츠를 하나만 입어서 춥겠구나. 버선을 신고 가거라.’하시기에 맨몸 맨발이면서도, ‘예, 셔츠도 잘 입고 버선도 잘 신었으니까, 춥지는 않습니다.’ 하고 속이고 나왔어요. 저는 거짓말쟁이가 됐습니다.”
하고, 창남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네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어머니께서 너의 벌거벗은 가슴과 버선 없이 맨발로 짚신을 신은 것을 보시고 아실 것이 아니냐?”
“아아, 선생님…….”
하는 창남이의 소리는 , 우는 소리같이 떨렸다. 그리고, 그의 수그린 얼굴에서 눈물 방울이 뚝뚝 그의 짚신 코에 떨어졌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눈이 멀으셔서 보지를 못하고 사신답니다.”
체조 선생의 얼굴에도 굵다란 눈물이 흘렀다. 와글와글 하던 그 많은 학생들도 자는 것같이 조용하고, 훌쩍훌쩍 거리면서, 우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조용히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