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不亂 探偵 [유불란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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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로 귀신과 같은 복수귀 해월이와 세계적인 무희 공작부인과 명「콤비」는 흥분과 엽기(曄奇)에 궁금해 하던「저 ── 널리스트」들에게 불타는 공명심과 아울러 커다란 자극을 던져 주었다.

이처럼 신비하고 이처럼 무시무시한 복수사건이야말로 탐정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으나 이것이 탐정 소설이 아니고 하계의 생생한 현실이란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실로 전대미문의 일대괴사(一大怪事)가 아닐 수 없었다.

『보이지않는 악마 해월…… 복수의 칼날 아래에서 떨고 있는 공작부인!』

『조선의 자랑인 무희 공작부인을 한시 바삐 복수귀의 손으로부터 구하라!』

『공작부인의 목숨은 남어지 몇 시간? 자취없이 다가드는 마수의 그림자!』

이와같이 도하의 각 신문지는 최상급의「센세이셔날」한 글자로 독자의 흥미를 부쩍 돋우었다.

『경찰당국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

『공명심에 노예가 되어 버린 사법주임 임경부여! 귀하는 한시 바삐 그 비열한 공명심을 걷어차 버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명탐정 유불란씨의 조력을 구하라! 이 중대사건을 무사히 해결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유불란씨가 있을 뿐이다!』

점점 위험에 빠져 들어가는 가련한 공작부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사회의 대표자인 신문이 명탐정 유불란씨의 출마를 부르짖기 시작한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이상한 것으로 도하의 신문이 그와같이 유불란 탐정의 출마를 부르짖지 않았다면 임경부도 혹시 민간탐정 유불란씨에게 조력을 구했을런지도 몰랐다.

허나 사회정세가 이처럼 자기의 무력을 노골적으로 힐난하고 유불란씨의 출마를 갈망하게 되어버린 지금에 이르러 마지못해 그에게 머리를 숙이고

『도와주십쇼.』

하고 간청해야만 될 자기자신을 생각할 때 임경부의 눈에서는 참으로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지금도 바로 그것이다.

순사부장 박태일이 이 삼 종의 신문을 임경부 앞에 펴놓으면서

『경부께서도 벌써 보시었겠지만 시민들의 부르짖음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변한 이 때 당국으로서도 그들의 갈망에 응하는 의미로……』

유불란씨에게 정식으로 조력을 구하는 것이 어떠냐고 임경부의 의향을 물으려 하였으나 박부장은 그만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임경부의 분노에 찬 눈초리가 자기를 흘겨보는 때문이었다.

내가 감당치 『 못하는 일을 그이면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자기만큼 경험은 없다손치더라고 유불란의 비상한 상상력과 민첩한 관찰력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처럼 자기 부하에게까지 멸시를 당하고보니 임경부의 양볼이 경련을 일으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저는 단지 민중의 의향을 상관께 전하였을 뿐이지……』

그 때 서장(署長)이「카이제르」수염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들어왔다. 나이는 사십이 될락말락한 임경부와 동연배의 인물이다.

『요즈음 신문잡지가 대단히 떠드는 모양인데 ────』

서장은「테이블」위에 흩어진 신문지를 뒤적거리며

『임경부, 어떻소? 사건이 더 커지기 전에 유불란군과 일을 같이 해볼 의향이 있다면 오늘 이라도 ──── 아니 지금 이라도 그를 초빙하여서 ────』

임경부는 숨길만 높다.

『그렇게 되면 사건에 대한 책임도 반분이 될 것이며 더구나 소란한 인심을 일시적이나마 진정시키는 의미로 ────』

무거운 공기를 깨뜨려 버리려는 듯 서장은『하하하 ──』하고 쾌할하게 웃었으나 임경부는 묵묵히 대답이 없다.

영리한 서장은 상관으로서 명령한다는 것이 아니고 동료로서 상의한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사건이 중대하니 만큼 당국으로서도 만반의 준비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만 될 것이 아니요. 만일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지금 인기의 촛점에 서 있는 공작주인이 살해를 당하는 날에는 사회의 비난은 오직 경찰당국, 더구나 유불란씨와 타협하기를 싫어하던 임경부께로 쏠릴겁니다. 물론 유불란씬들 무슨 별다른 힘이야 있겠소 마는 하옇든 그이와 일을 함께 하였다는 명목만을 가지고라도 흥분된 사회의 인심을 일시나마 진정시킬 수 가 있다면 다행이니까, 또 당국으로 치더라도 사회의 유용한 기관이라면 이를 잘 이용하는 것이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고 볼 수가 있느니만큼……』

서장의 어투는 임경부가 만일 끝끝내 고집을 부린다면 독단으로라도 유불란씨의 조력을 구하겠다는 것을 암암리에 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못알아차린 임경부도 아니었다.

『그러시오!』

뱉듯이 한마디를 던지고 임경부는 불쾌한 낯으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뱃짱과 정력만은 남 『 못하지않게 가졌건만……임경부도 자부심이 너무 많아서 걱정인 걸!』

하고 박부장을 쳐다보며

『그런데 임경부가 유불란군을 그 처럼 달갑게 생각지 않는 동기는 대체 어디 있는가?……』

『서장께서도 아시다싶이 작년 초가을에 일어난「아파 ── 트 살인사건」

── 저「M데아 ── 트」의「쇼걸」살해사건 말씀입니다. 그 사건에서 유불란씨에게 참패를 당한 이후 부터지요.』

『아, 그「쇼걸」 살해사건 ────』

『그런데 그때 유불란씨가 좀 지나치다면 지나치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농담을 건넨적이 있읍니다.』

『누구에게? 임경부에게?』

『그렇습니다. 그 보다 먼저 임경부는 유불란씨를 가르켜 아직 입술이 샛노란 어린애라고 비웃은 적이 있읍니다.』

『황구지작(黃口之雀)이라고 ────』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처럼 복잡하고 미궁에 빠졌던 사건이 결국 그 황구지작의 손으로 해결을 보지 않았겠읍니까. 임경부도 놀랐었지요. 그래 임 경부께서도 어지간히 유불란씨를 존경한다는 것보다도 장래성이 있는 유망한 청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어느 날 유씨는 임경부 앞에서 말하기를 ──── 탐정이란 결굴 발을 놀리는게 아니라 머리를 놀리는거라고 한마디 톡 쏘았었읍니다.』

『음, 황구지작에 대한 복수로구만!』

『네 그 때부터 임경부는 유씨를 ────』

서장은 자못 흥미를 느끼는 듯이 박부장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던 얼굴을 황급히 가다듬으며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여늬때 같으면 당국이 청하지 않더라도 유불란군은 공명심을 만족시키겠다는 것 보다도 범죄 그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저 편에서 먼저 사건에 뛰어 드는 것이 상예였건만 이번 사건에는 어찌된 셈인지 유군은 도무지 무대에서 나타나지를 않으니 ────』

하고 말머리를 돌린다.

『글쎄올시다. 언제가는 지나가던 길에 유불란씨를 한번 찾았더니 어딘가 여행을 떠났다고요.』

『어디 전화를 걸어 보게.』

박부장은 수화기를 들고 본국××××번을 불렀다.

『××서 박태일 입니다. 유선생 댁에 계십니까?』

『어째서 찾으시오?』

그것은 유불란씨의 목소리가 아니고 그 집에 있는 젊은 서생의 음성임을 박부장은 잘 알고 있다.

『공작부인 사건에 대하여……』

하고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저 유선생님은 지금 집에 안계십니다. 신문기자들과「인터 ── 뷰」하기가 귀찮으시다고 아침에 나가시어서 밤늦게야 돌아 오신답니다.』

하고 모정스럽게도 전화기를 딸깍하고 끊는다.

박태일부장은 무정스럽게 끊겨버린 전화통을 잠깐 동안 원망스러운 얼굴로 들여다 보고나서

『유불란씨는 지금 집에 안계시답니다.「인터 ── 뷰」하기가 싫어서 밤늦게야 돌아 온다고요.』

하고 서장께 전화의 내용을 보고 하였다. 바로 그 때 ──── 태평동 유불란탐정의 서재에는 지금 한사람의 중늙은이가 커다란 경대 앞에 앉아서 싯누런 노안경을 쓰고 히뜩히뜩한 머리털과 덥수룩하니 자란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자기의 얼굴과 풍채를 이모저모로 드려다보다가 드디어 만족한 듯이 우리가 항상 노인네들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온화한 웃음을 한번 빙그레 웃어본다.

그리고는 경대로부터 멀직이 떨어져서 자기의 앞모양 뒤모양을 살피더니 이번에는 왼편 양복장 앞으로 걸어가서 유리문을 열었다.

그것은 모양은 양복장 같았으나 실은 그렇지않고 약 이십 개나 되는 단장이 가지런히 걸려있는 것이다. 그는 그 중에서 한개의 노인용「스틱」을 집어들고 폈던 허리를 약간 굽히면서 주춤주춤하는 걸음으로 다시 경대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도어」밖에서「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와.』

하고 그는「노크」에 대답을 하였다. 문이 열리며 이십 이삼세 쯤 되어 보이는 서생이 들어오며

『선생님 지금 ××경찰서 박태일이란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읍니다. 공작 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기에 안계시다는 대답을 하였읍니다.』

하고는 자기의 직분은 다했다는 듯이 곧 밖으로 나가려 했다. 노인은

『잠깐……』

하고 불렀다.

『네?』

『난줄 알겠는가?』

하고 묻는 말에 서생은 그의 아래 위를 살피고서

『제눈엔 그럴 듯 싶어서 그런지 어딘가 낯익은 듯 한데가 없지 않읍니다만 대체로 몰라 볼것입니다. 모자를 쓰시면 더구나 알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말에 그는 어지간히 만족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면「H그릴」지하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올테니까 만일 무슨 긴급한 사건이 생기거든 곧 전화로 알려주게.』

『네 똑똑히 알아 들었읍니다.』

서생은 다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유불란은 이처럼 가지각색으로 변장을 하고 거리로 나다니기를 무엇보다 즐겼다. 더구나 행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자기를 유불란인줄 모르고 옆을 지날 때마다 그는 한량없이 기뻐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상 그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 빼지 못할 일과인 동시에 또한 무상의 취미였다.

지금도 바로 그것이다. 돈푼이나 있는 중류계급의 중늙이로 변장을 한 유불란은 자기 모양을 한번 더 경대 앞에서 유심히 살핀 후에 주츰거리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는 골목을 나서서 광화문 네거리를 오른편으로「커 ─ 브」하여 종로로 걷기 시작하였다. 매연이 자욱한 거리거리에는 우유빛 전등불이 꿈결같이 명멸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신문을 팔고있는 소년 옆에는

「공작부인의 목숨은 나머지 몇 시간?」

이런 표제가 길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그것은 하옇든 지금 종로를 향하여 주츰주츰 걸어가는 유불란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는 한사람의 수상한 그림자가 있다. 캡을 깊이 눌러쓰고 두 손을 양복 웃저고리에 쓰러 넣고 ── 그러나 유불란은 아무것도 모르고 무심히 걸어간다. 수상한 사나이는 어디까지든지 유불란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유불란을 따르는 수상한 사나이와 그런줄도 모르고 자기의 훌륭한 변장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걸어가는 명탐정 ── 두 사람의 거리는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면서 만침내 종로 네거리까지 다다랐다.

그 때 유불란은 오른편 쪽「H그릴」의「도어」를 단장으로 밀어젖히고 층층대를 걸어 지하실 식당으로 들어갔다.

수상한 사나이는 잠깐동안 맞은편 쪽 공중전화통 뒤에 몸을 감추고 「H그릴 로 들어가는 유불란의 」 뒷모양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그도 발걸음을 옮겨「H그릴」지하실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저녁때이건만 식당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십 여명의 손님이 이구석 저구석에 널려 앉아 있다.

유불란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마카로니」와「오므라이스」를 청하여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수상한 사나이는 유불란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이윽고 유불란은 식사를 마치고 홍차를 마시면서 급사에게 이 삼 종의 신문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할아버지 신문사 사장이신가봐!』

급사 하나가 신문을 가져오면서 낯익은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어째서?』

『신문사 사장이시게 매일저녁 오시기만 하시면 이 신문 저 신문 연구하시지!』

『허어……그렇다. 내가 신문사 사장이다. 허허허……』

유불란은 그렇게 호기있게 웃으면서 이 삼 종의 신문을 펴 놓고 공작 부인에 관한 기사를 대조해가며 읽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수상한 사나이는 슬그머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유불란 곁으로 다가오면서 돌연

『유선생이 아니십니까?』

하고 「캡」을 벗어 손에 들었다.

『당신은?』

하고 신문에서 눈을 드는 유불란을 향하여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아 역시 유선생이었읍니까! 이제야 유선생을 붙들었읍니다. 딴은 오늘 아침부터 선생댁 정문 밖에서 선생이 나오시기를 기다렸지요. 그런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문밖에서 지켰건만 안으로 들어간적이 없는 노인네가 안에서 나오지 않겠습니까. 옳지 이 노인이 유선생이로구나! 하고…… 뒤를 따랐던 것입니다. 아차 이거 실례 막십입니다. 저는 ××일보사 사회부에 있는 정대호(鄭大浩)올시다. 참 유선생 처음 뵙겠읍니다. 아 이처럼 유명하신 탐정을 이제와서 뵙게되니 정대호는 도무지 낯을 들 면목이 없읍니다그려. 그런데 저는 전부터 ××서 사법주임 임경부를 상당히 존경해 왔읍니다마는 이번 공작부인 살해미수사건에 관해서는 어찌된 셈인지 우둔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 아 참 이거 내가 이야기를 들으러 왔나 이야기를 하러 왔나…… 하옇든 이 신비스럽기 짝이없는 살인미수 사건에 대하여 유선생의 명석하신 식견을 하번 피력하여주시면 ××일보사로써 다시 없는 영광이겠읍니다. 뿐더러 경성 칠십 만 시민이 이처럼 유선생의 출마를 고대하고 있는 요즈음, 유선생 개인의 흥미도 흥미일 뿐더러 사회의 이처럼 지극한 갈망을 물리친다 해서야 어디 될법한 이야기겠읍니까? 임경부와의 타협 비타협은 둘째 문제라 치고라도 유선생이 단독행위로서 얻은 견해를 사회에 발표하여 미욱한 백성들의 지향없는 호기심을 바로잡아 준다는 것은 말하자면 식자로서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가 아닐 수 없읍니다.……먼저……』

『잠깐……』

유불란은 그때 빙글하고 웃으면서 손을 들어 자기에게도 이야기할 기회를 달라는 듯 상대방을 막았다.

××일보사 민완기자 정대호라는 이름만은 들은바 있으되 이처럼 도도히 흘러나오는 구변의 소유자인줄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던 유불란이다. 그는 어지간히 감동하여

『아침부터 저같은 사람을 기다렸다 하시니 대단히 황송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길게 이야기할 틈은 없으나 하옇든 정형의 성의를 존경하여 한가지 사건에 관한 견해를 말씀 드리지요.』

그 말이 유불란의 입으로부터 떨어지자마자 정대호는

『선생의 의견을?』

하고 외치며 희색이 만면하여 분주스럽게 연필과 종이를 꺼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공작부인 살해미수 사건에 관하여 다섯 가지의 「미스테리 ─ 神秘[신비]」가 있읍니다. 그 하나는 명수대 공작부인의 저택에서 열린 가장무도회에서 공작부인을 칼로 찌른, 그 도화역자가 대체 어디로 어떻게 자취를 감추었는가? 그 다음은 이선배란 화가가 태평동 막다른 골목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점…… 또 하나는 김수일이란 화가가 왜 가짜 이름과 가짜 직업을 가지고 공작부인과 교제를 해왔는가? 다음은 부민관 결혼식장에서 역시 질풍과 같이 나타났다 사라진 해월이의 비상한 재주요, 또 한가지 괴상한 것은 해월이란 도승이 마치 귀신과 같이 공작부인의 일거 일동을 어디선가(임경부의 조사에 의하면 이층 미술품 수집실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만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불란은 거기서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하였다.

『실로 이처럼 신비로운 사건은 우리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범죄사를 뒤져봐도 찾아 볼 수 없는 무서운 사건이 아닐 수 없읍니다. 이 범인의 가슴속에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추호도 엿볼 수 없는 무서운 계책이 숨어 있는 것 같읍니다. 그는 사람이라기 보다도 사람의 가면을 뒤집어 쓴 짐승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힘을 전연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초인적 재주를 가진 귀신이거나……』

그 때 정대호가 유불란의 말을 가로 막았다.

『유선생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십니까?』

『나는 학자입니다. 다만 이 사건을 외관으로만 본다면 그와같은 신비의 껍질을 쓰고 나타났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유선생이 지금 말씀하신 그 다섯가지의 신비에 대하여 제가 묻겠읍니다. 첫째로 공작부인을 해친 도화역자가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 점이 이 사건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포인트」지요. 그 점만 풀린다면 남은 모든 신비는 스스로 풀릴 것입니다. 그러나 나 역시 임경부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 임경부는 해월이와 김수일이란 가짜 화가가 같은 인물이라고 의심하고 있읍니다만 유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네 그 점만은 좀 임경부의 의견과 다르지요. 아니 나는 단언할 수 있읍니다. 김수일이와 해월이는 결코 동일한 인물이 아닙니다.』

『거기 대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요.』

『그건 이 자리에서는 말 할 수 없읍니다.』

『그러면 이 선배라는 화가는 또 어떻게 보십니까?』

유불란은 잠깐 동안 자기의 착잡한 사색을 가다듬는 듯 눈을 감았다 뜨면서

『그렇지 않아도 착잡다단한 이 사건에 김수일과 이선배라는 화가가 뛰어 들었기 때문에 사건은 한층 더 복잡성을 띄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 선배란 화가에 관해서도 단지 결론만을 말해드리지요.…… 이선배는 결코 범인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째서 그는 태평동 골목에서 연기처럼 사라졌읍니까?』

『글쎄올시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 말해 드릴 수가 없어서 대단히 섭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회견기가 신문지상에 발표된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단 한마디 ××서 사법주임 임경부에게 충고할 말이 있읍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사건에 있어서 김수일이란 인물과 이선배란 인물을 전혀 염두에 넣지 말고 다만 저 해월이란 도승만을 목표로 하고 수사를 진행하라는 부탁입니다.』

이리하여「H그릴」지하실 식당에서 유불란과 정대호가 마주 앉아있는 바로 그 시각에 삼청동 백영호씨의 , 저택에는 상상만 하여도 저릿저릿한 복수귀 해월의 시컴은 마수가 뻗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