魔乎人乎[마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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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란은 괴로운 듯 흐느껴 우는 은몽을 잠깐동안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자아, 내 이야기를 좀 더 들어 주시요!』

하고 은몽의 그 교태(嬌態)있는 풍부한 몸뚱이에서 부터 자기자신을 가다듬으며 다시 준열한 어조로 계속하였다.

『 - 부민관 결혼식장에서 은몽씨는 해월을 발견하고 기절하였읍니다. 그러나 아까도 이야기한 바와같이 그 때는 벌써 사복한 경찰들로 말미암아 식장의 출입구란 출입구는 전부 봉해 버렸지요. 그러나 해월은 연기처럼 사라졌읍니다. 그것은 현대과학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은몽씨가 해월인줄 알면서 그를 그대로 밖으로 통과 시켰던지 그렇지 않으면 은 몽씨가 연출한 하나의 교묘한 연극일겁니다! 어째 그러냐하면 그때 해월을 보았다는 사람은 은몽씨 혼자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럼 협박장도 제가 썼다는 말씀이죠?』

은몽은 흐느껴 울면서 그렇게 항변하였다.

물론 은몽씨의 『 위필(僞筆)이겠지요. 나는 얼마 전에 나의 이 무서운 공상을 물적 증거로서 증좌(證左)하기 위하여 은몽씨의 필적과 해월의 필적을 대조해 보았읍니다. 대조해 본 결과 두 사람의 필적은 과연 달랐읍니다. 그러나 필적을 위조한다는 것은 해월이와 같은 영리한 범인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현대의 필적감정법이란 그리 절대성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 이리하여 은몽씨는 두 번째 해월이라는 복수귀의 존재를 세상 사람들에게 깊이깊이 인식시켰어요. - 』

『네 맞았어요! 꼭 들어 맞았어요! 유선생…… 유불란 선생은 정말 명탐정이시네요! 유선생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저는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하신 유 선생의 그 허황한 공상을 전부 승인한다고 하더라도 유선생은 …… 아아, 유 선생은 금강산 백도사에서 소년승려 해월이와 제가 교제하였다는 사실을 대체…… 대체 어떻게 설명하실테에요? 말씀 좀 해보세요! 어서 말씀 좀 해보세요!』

「테이블」에 쓸어졌던 은몽은 얼굴을 번쩍 쳐들면서 그렇게 부르짖었다.

『 - 은몽씨가 백도사에서 애기중 해월이와 교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은몽씨 이외에는 아무도 없읍니다.』

『그럼 그것 역시 제가 창작한 한토막의 거짓「로맨스」였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허기야 어느정도까지의 교제가 있었는지, 그것은 이 자리에서 갑자기 추측할 수 없읍니다만 제 생각으론 해월이가 은몽씨를 그렇게 증오하도록 - 그와같은 깊은 교제가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지요.』

『그러면 유선생의 말씀이 뒤죽박죽이 되지 않아요?……저와 해월을 동일한 인물이라고 보시는 유선생의 공상은 대체 어떻게 되느냐 말씀이예요?』

은몽은 이제는 울줄을 몰랐다. 아니,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의 그 위험한 입장을 기를 쓰고 변명하여야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나의 논리는 꽉 막혀 버렸지요. 이처럼 절벽으로 말미암아 꽉 막혀 버린 나의 논리의 방향을 어떻게 개척하여야만 될 것이냐?

그 때 백도사에는 과연 해월이라는 소년승려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폐병 제삼기에 발을 들여 놓았던 해월은 그 후 묘향산 보성사로 가 있다가, 거기서 평양 모란봉 밑 영문사로 옮겨갔을 때는 해월의 폐병은 벌써 삼기를 넘어서 제 사기에 들어 섰읍니다. 해월은 거기서 다시 서해안 어디로 생굴을 까먹겠다는 말을 남겨놓고 어느날 표연히 영문사를 떠났읍니다 그 후 . 해월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 점을 자세히 조사해 보기 위하여 얼마 전에 순사부장 박태일군을 평양으로 파견했으나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읍니다.』

『그러면 유선생의 이야기는 어떻게 돼요? 유선생은 해월이란 인물의 실재(實存)를 부정하면서 한편 해월의 실재를 인정하신다는 괴상한 논리를 어떻게 해결하세요?』

『그렇지요!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의 괴상한 논리입니다.! - 그러나 괴상한 논리도 아무것도 아니지요!』

패기가 만만한 유탐정의 얼굴을 은몽은 날카로운 증오의 눈초리로 쏘아 보았다.

『그것이 하나의 괴상한 논리가 아니라는 것을 어서 이야기해 보세요!』

하고 대드는 은몽의 낮으막한 목소리는 바늘처럼 예민하고 또 맵다.

『물론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니까, 모든 것이 하나의 상상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상상함으로써 꽉 막혔던 나의 논리의 방향을 개척할 수 있었읍니다. - 실인 즉 이 점에 대해서 나는 무척 번민하였습니다. 질서정연하게 세워 오던 나의 상상을 한 때는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하였지요. 그러나 결국 해월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한편 그의 존재를 긍정한다는, 이 모순된 형식논리의 참된 방향을 발견하였읍니다. - 즉 백도사에게서 폐병을 앓고 있던 소년승려 해월의 실재를 나는 긍정하지요.

그러나 복수귀 해월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부정합니다!』

『그게 대체 어떻게 하시는 이야기예요?』

『모르시겠읍니까?』

『모르겠어요. - 』

『해월은 죽었읍니다!』

『에?…… 해월이 죽었다고요?』

『아니, 죽은 것을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까, 죽었을거라고 말씀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요.』

『………?』

『지금으로 부터 십 삼년 전, 해월이라는 승명(僧名)을 가진 어여쁜 소년 승려가 백도사에 살고 있었지요. 그 해 여름 열 여섯살인 은몽씨는 할머니와 함께 백도사로 피서를 갔던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은몽씨의 말씀대로 과연 해월이가 그 때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은몽씨를 사랑했는가 그것은 혼자만이 알고 있는 영원한 비밀일 것입니다. 그러나 추측컨대 은 몽씨의 그 지긋지긋하게 무서운 연애사는 말하자면 은몽씨의 아름다운 창작 - 해월을 하나의 무서운 악마로 만들고자한 은몽씨의 독백(獨白)이었을 것입니다. 해월은 은몽씨를 따랐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십 삼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 이르러서 은몽씨에게 그 처럼 무시무시한 복수를 하리만큼, 그 만큼 은몽씨를 사랑했다고는 통 생각키지 않아요. 박태일 부장이 돌아오면 알 수 있읍니다만 내 생각으로는 평양 영문사에서 폐병 제 사기를 접어 들었던 해월은 그 후 어디선가 남모르게 죽어 버렸을 겁니다.』

하고 유탐정은 은몽을 바라보았다.

은몽은 늙은이가 옛말을 사랑하 듯 무척 흥미를 느낀다는 얼굴로

『재미있는 말씀, 오늘밤 싫건 들려 주세요! 그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예요?』

하고 은몽은 조소에 빛나는 눈동자를 들었다.

『조금 더 있읍니다. - 거기서 은몽씨는 무엇을 생각했는가? 십 삼년 전이면 옛날입니다. 그 옛날에 금강산 백도사에서 몇일 동안 같이 놀던 애기중- 자기를 좀 따르는 듯 하던 애기중 - 그리고 폐병으로 말미암아 여명이 길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애기중 - 그 애기중이 - 그 후 어디선가(이것은 은 몽씨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만) 남모르게 죽어버렸다는 소식을 주워들은 은 몽씨는 무엇을 생각했는가. 애기중과의 무서운 연애사를 창작하여 복수귀의 악마적 성격과 아울러 복수의 동기를 이야기 하였고 그의 성명을 그대로 따옴으로서 해월이라는 하나의 실재성(實存性)을 가진 인물을 등장시키어서 범인이 가공적(架突的)인물이라는 것을 「캄프라치」하였읍니다. ―은몽씨!

어떻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은몽의 싸늘한 비웃음 밖에 아무 것도 사지 못하였다.

『대단히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저는 유선생을 탐정이라고 알았는데 지금에 이르러보니 탐정이 아니고 탐정소설가의 재능을 더 많이 가지셨군요!』

이 말은 확실히 유불란으로 하여금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한마디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이렇다할 물적증거를 아직 하나도 잡지 못한 나의 이야기는 확실히 하나의 탐정소설가적 공상에 지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유불란은 초조한 듯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 다니다가

『그러나 은몽씨!』

하고 부르며 휙 돌아섰다.

『나의 이 탐정소설가적 공상은 멀지않아 은몽씨의 입으로 하여금 나를 탐정이라고 부르게 할 때가 반드시 오리라 믿읍니다!』

『그러나 제 입은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죽을 것을 걱정하지요. 태양이 서쪽에서 뜨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번 날밤, 해월이 가 저에게 처음으로 기나긴 협박장을 보낸 날밤, 임경부가 삼청동 「풀」

옆 「콩크리트」담장 밑에서 엉거주춤하고 앉아 있는 해월의 그림자를 발견한 사실을 유선생은 대체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독자제군은 혹시 잊었을런지 모르나 저번 폭풍우가 쏟아지던 날밤, 삼청동 백영호씨의 저택을 방문하였던 임경부가 정문 앞까지 나왔을 때, 그는 바로 삼청동 「풀」옆 담장 밑에서 배회하고 있는 수상한 사나이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놀랐던 것이다.

『아, 그 사나이 말씀입니까?』

하고 유탐정은 한번 빙그레 웃으면서 설명하였다.

『그때 사나이는 곧 저편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임경부는 곧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본서로 전화를 걸어 부하들을 데려 왔지요.』

『그래요. 유선생의 말씀대로 제가 곧 해월이 그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저는 그 때 틀림없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을 유 선생은 대체 어떻게 설명하실 테야요?』

은몽의 얼굴에는 바늘같은 비웃음이 가득 찼다.

『흥 - 은몽씨는 그걸 가지고 나의 지론을 반박하고자 하시지만, 그건 또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단 말씀입니다.』

『어떻게요? 어서 설명을 해보세요!』

『그 사나이로 말하면 해월이도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누구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보호코자,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해월이라는 범인을 체포하고자 삼청공원 일대를 배회하던 탐정 유불란이었읍니다.』

『에?…… 유선생이었어요?』

최후의 성벽(城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과 놀라움이 휩쓸린 것 같은 은 몽의 목소리였다.

유불란은 다시 담배를 피워 물고 은몽의 얼굴을 뚫어질 듯 바라보다가

『 - 그날밤, 정원안과 정문 밖에는 순사부장 박태일군을 위시하여 여러 경찰들이 빈틈없이 지키고 있었읍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은몽씨의 신변에는 또 다시 신기한 사건이 발생하였지요. 은몽씨와 정란씨는 침실에서 자고 있었고 남수네 부자와 임경부는 바로 옆방 「아뜨리에」에서 은몽씨를 지키고 있지 않았읍니까. 창밖은 무서운 폭풍우, 밤은 깊어서 열 두시가 이윽히 넘었을 때, 백영호씨는 「아뜨리에」에서 옆방 침실로 들어가 보고 놀랐읍니다. 침대 바로 위, 벽에 꽂힌 협박장, 그 때 은몽씨는 정란씨와 함께 침대 위에서 잠들고 있었지요. 그 협박장 - 복수귀 해월의 비가(悲歌)가 적혀 있는 그 협박장을 벽에 꽂아 놓은 것은 정란씨보다 약 반 시간 쯤 후에 잠들었다는 은몽씨 자신이었을 겁니다.』

은몽은 잠깐동안 후추알처럼 매운 침묵으로 유탐정의 설명을 비웃고 있다가

『네에 너무 꼭꼭 들어 맞아서 무섭습니다. - 그럼 이층 미술품 수집실에 출입한 것도 저였을까요?』

『물론, 은몽씨 자신일겁니다! 백영호씨가 가지고 있는 열쇠를 훔쳐 가지고 미술품 수집실에 들어가서 방바닥 매듭(節[절])을 빼놓고 아래층 침실이 내려다 보이게 해놓은 것도 은몽씨였고 방바닥 먼지 위에 사람이 기어다닌 자리를 남겨논 것도 은몽씨입니다. 왜냐고요? 그렇게 해 놓음으로서 은 몽씨는 어디까지나 해월을 하나의 실재인물로 만들려 했던 때문이지요.』

『그 누구의 탐정소설을 읽는 것 같아서, 대단히 흥미가 있읍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나자신이 연출한 나의 연극이란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은몽씨의 연극 중에서 가장 「클라이막스」인 백영호씨 살해 당시의 광경을 설명해 볼까요? - 』

『네, 어서 - 』

『그날밤 - 백영호씨가 해월의 칼날에 죽는날 밤, 집안에는 백영호씨와 은 몽씨와 그리고 정란씨가 있었읍니다. 정란씨는 삼층 자기방에서 「피아노」

를 치고 있었고 은몽씨와 백영호씨는 아랫층 「아뜨리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읍니다. 아니, 백영호씨 살해에 대한 「찬스」를 엿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 겁니다. 왜냐하면 , 은몽씨의 연극에는 반드시 적어도 한 두 사람의 관중(觀衆)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그 때 은몽씨가 관중으로 택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그즈음 삼청공원을 산책하고 있던 남수군이었읍니다.』

『남수씨가 제 연극의 관객(觀客)이었다고요?』

『그렇지요. 남수라는 한사람의 관객이 은몽씨의 연극을 구경함으로써 해월이 가 실재인물이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는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 』

『그럽시다!』

유불란은 그리고 점점 깊어가는 여름 밤거리를 한번 내다보고 나서

『남수군이 정문 밖에서 은몽씨의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정문 안으로 뛰어 들어 왔을 때, 들창문을 활짝 열어 젖힌 「아뜨리에」에는 「커- 텐」이 쳐져 있었읍니다. 그 「커-텐」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 - 하나는 틀림없는 백영호씨고 또 하나는 치렁치렁한 긴 「만또」로 전신을 감춘 복수 귀 해월이가 백영호씨의 가슴을 예리한 단도로 찌르는 광경이었지요. 그러나 그 때 은몽씨의 그림자는 통 보이지 않았읍니다.』

『저는 그 때 옆방 침실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서 침대 아래에 숨어 있었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 그림자가 비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글쎄 그것은 은몽씨의 이야기고…… 그때 남수군은 사태가 너무 촉박해짐으로 이놈 해월이! 하고 고함을 치며 현관으로 부리나케 뛰어 들어가면서 보니, 해월은 놀라 복도로 뛰어 나가면서 「스위치」를 껏읍니다. 현관으로 뛰어 들어간 남수군은 그때 캄캄한 복도에서 은몽씨의 부르짖음을 듣고 해월이와 은몽씨가 컴컴한 복도에서 서로 부딪쳤던 것으로만 생각하고 은 몽씨의 이름을 부르면서 따라 갔읍니다. 그때 은몽씨는 저편 복도의 들창으로 해월이가 도망갔다고 말했읍니다. 이리하여 남수군은 은몽씨의 교묘한 연극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던 것입니다.』

『어째서 남수씨가 속았다는 말씀이예요?』

『해월은 아무데도 도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던 때문이지요! 은몽씨는

「스윗치」를 끈 다음에 재빠른 솜씨로 해월의 가장을 벗어서 어딘가에 감추어 두고 다시 「스윗치」를 켰던 것입니다. 이층 미술품 수집실에서 목탁 소리가 났다던가, 백영호씨와 둘이서 천정을 바라보며 무서워 했다던가 - 그것은 전부가 은몽씨의 창작적 「세리프」지요!』

하고 은몽을 한번 흘겨 보고나서

『은몽씨! 그래도 은몽씨는 나의 상상을 긍정하지 않으십니까? 해월의 그 귀신같은 행동은 이렇게 생각하므로서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입니다. 정원 한복판에서 「커-텐」에 비친 해월의 그림자를 본 남수군은 거기서 한번 더 복수 귀 해월의 실재를 확인하였읍니다. 그것이 은몽씨 자신의 대담무쌍한 연극이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이리하여 남수군은 은몽씨의 살인극에 있어서 가장 충실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지요. 은몽씨는 마음 속으로 살인극의 성공을 무척 기뻐하면서 그때까지 채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백영호씨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무한히 슬퍼하였읍니다. - 은몽씨! 은 몽씨가 정말 악인이 아니라면 하시바삐 나의 말을 긍정해 주십시요!』

『유선생!』

하고 은몽은 힘있게 불렀다.

『유선생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저로 하여금 유선생의 그 황당무게한 공상의 희생자로 만들어야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유선생이 정말 그것을 원하신다면 그리고 그렇게 …… 돼야만 유선생의 사회적 책임을 면할 수 있겠다면…… 저는, 저는 - 』

『아닙니다. 은몽씨!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다만 사건을 참되게 해결하겠다는 일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읍니다. - 그래도 은 몽씨가 나의 말을 옳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그 때 은몽씨가 백영호씨에게 최후의 「키쓰」를 하였을 때, 백영호씨가 은몽씨의 입술을 깨물은 이유를 설명해 드릴까요?』

『어서 설명해 보세요.』

『 - 백영호씨는 해월의 칼을 맞고 쓰러질 때, 실로 무서운 사실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무서운 사실 - 그것은 해월이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란 사실, 그리고 그 여자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읍니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그 무서운 사실을 남수군과 정란 씨에게 전하려고 팔을 은몽에게로 내밀면서 입술을 들썩거리었지요. 그러나 영리한 은몽씨는 그 눈치를 알아차리고 입을 막을 셈으로 「키쓰」를 하였읍니다. 백영호씨는 너무도 안타까운 김에 은몽씨의 입술을 깨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명배우인 은몽씨는 그것을 남편이 자기에게 남겨 놓고간 애정의 표적이라고 말하면서 한층 더 애닲게 느껴 울었지요. - 』

『입을 막을 셈으로 「키쓰」를 했다고요?』

하고 은몽은 어이없다는 듯이 한번 흥 하고 코웃음을 쳤으나 유탐정은 그런 것 쯤 조금도 개의(介意)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하는 바를 어디까지나 솔직히 토로하였다.

『 - 그러나 거기서 은몽씨는 실로 치명적인 실수를 하나 저질러 놓았던 것입니다.』

『실수는 또 무슨 실수를 제가 저질렀어요?』

『백영호씨가 살해를 당한 직후, 이층 미술품 수집실에서 사람들은 문제의 처녀사진이 들어 있는 조그마한 「로켓트」를 주웠읍니다. 그것은 실로 은 몽씨 자신이 다년간 몸에 지니고 있던 「로켓트」였을 것입니다. 은몽씨의 실수로 떨어뜨린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말미암아 사건의 범위가 훨씬 좁아졌지요. 더구나 남수군이 그와 똑같은 사진을 자기 아버지의 신변에서 발견했을 순간, 그가 필연적으로 연상한 것은 해월과 자기아버지 백영호씨와의 그 어떤 관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수군은 부랴 부랴 자기 고향인 ×천읍을 다녀온 그날 밤, 해월은, 아니 은몽씨는 대담하게도 증인 감시 중에 남수군을 살해하므로서 그 어떤 비밀을 이야기 하려고한 그의 입을 영원히 봉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유선생은 『 그 사진도 역시 제가 떨어뜨렸다는 말씀이예요?』

하고 톡 내쏘는 은몽의 독기를 품은 질문에 유불란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물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되는거에요? ×천읍에서 살던 그 여분이라는 부인이 제 어머니란 말씀입니까?』

그러나 유불란은 한참동안 잠자코 서 있다가

『그것은 나 역시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은몽씨의 아버지 주택서(朱澤書)씨와 은몽씨의 어머니 김옥녀(金玉女)씨가 오년 전까지 신의주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엄여분을 은 몽씨의 어머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 그러나 엄여분과 은몽씨 사이에 그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월은 아니 은몽씨는 엄여분의 사진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비밀이 탈로날 것을 두려워하여 여행으로 부터 돌아온 남수군을 쏘아 죽였으니까요!』

『유선생은 처음부터 나를 해월이라고 가정하고 그 그릇된 가정 밑에서 이론을 진행시키기 때문에 그와 같은 모순된 말씀을 하시게 되는게 아니예요?

저와 엄여분의 사이에 대체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것은 실로 유탐정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반박이었다.

『은몽씨의 말씀대로 나는 아직 거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드릴 아무런 지식도 가진 것이 없읍니다. 만일 내가 거기 대한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벌써 사법주임 임경부로 하여금 공작부인 주은몽의 체포장을 발행하게 했을 것입니다. 』

하고 유불란은 물었던 담배를 재털이에 부비면서

『 - 그러나 은몽씨! 그 점에 대해서는 멀지않아 만족한 설명을 해드릴 때가 반드시 오리라 믿고 있읍니다!』

『네, 그럼 저는 목을 느리고 그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요. - 그러면 그 담에 제가 남수씨를 살해하였다는 설명을 하여 보시지요!』

『 - 그 날밤, 이층 응접실에는 여행으로부터 돌아온 남수군을 중심으로 하여 나와 오상억변호사가 앉아 있었읍니다. 그 때 정란씨는 삼층에 있었고 은몽씨는 아랫층 침실에 있었을 것입니다. 침실에서 은몽씨는 해월을 상징하는 주홍빛 긴 「만또」를 뒤집어 쓰고 이층으로 올라와서 「도어」를 방긋하니 열고 남수를 「피스톨」로 쏘았읍니다. 그때 나보다도 먼저 뛰쳐 나간 것은 오상억 변호사였지요. 해월은 무서운 속력으로 층층대를 뛰어 내려 아래층 은몽의 침실로 뛰어 들어 갔읍니다. 뛰어 들어가면서 은몽은 「악마 하고 외치고 입었던 」 해월의 「만또」를 벗어버린 후 권총으로 바로 머리맡에 놓여 있는 화병을 쏘았읍니다.』

『아아!』

『그리고 침대 아래 쓰러져서 뒤로 따라 들어온 오변호사를 향하여, 해월은 들창 밖으로 넘어 갔다고 외쳤읍니다. 저번에 남수군을 속이듯이 오변호사를 은몽씨는 또 속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될 것이, 그 때 현관으로 나가서 침실 들창 밖으로 뛰어 온 나는 거기서 도망하는 해월의 그림자를 필연적으로 발견했어야만 될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러나 그날밤은 안개가 유달리 짙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안개가 짙어서 해월을 볼 수가 없었을거라는 점이 은몽씨가 만들어 놓은 유일한 피난소(避難所)일 것입니다!』

『어쩌면 유선생은 마치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그리도 꼭꼭 맞히시는 지 참 신통하기 짝이 없어요!』

은몽의 입술이 날카롭게 비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