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12장
寫眞[사진]속의 處女[처녀]
편집복수귀 해월이 ── 아아 그는 너무나 대담한 악마였다.
임경부, 오상억, 유불란, ── 이처럼 명성이 쟁쟁한 탐정들의 눈앞에서 해월은 마치 인도의 마술사와도 같이 나타났다 사라지지 않았는가.
해월은 대체 어디 숨어서 그 처럼 응접실 안의 광경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엿보고 있었던가? 그가 던지고간 붉은 봉투는 무참하게도 또 한사람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이튿날 아침이다. 오전 열시 ── 태평동 유불란은 돌연 요란한 전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머리맡에 놓인 수화기를 들었다.
『유불란이 올시다. 누구십니까?』
긴장한 얼굴이다.
『접니다. 저예요 ──』
은몽이었다. 주은몽의 절반은 애원하는 목소리였다.
『아 은몽씨!……』
유불란은 그 순간 말문이 꽉 막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몽씨 어떻게 이런아침에…』
하고 물었을 때 은몽은 바들 바들 떠는 음성으로
『저는 무서워서, 무서워서 못견디겠어요. 이렇게 대궐같은 커다란 집에서 정란이와 단둘이 어떻게…… 남수씨는 지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고 서둘러대고……』
『여행? 남수씨가 어디로 여행을 떠난답디까? 그리고 어떠한 목적으로 그처럼 갑자기?』
『모르겠어요. 가는 곳은 말리지 않고 가는 목적도 말하지 않아요. 그저 무엇엔가 대단히 흥분한 얼굴로…… 그 처럼 침착하던 사람이 오늘아침 갑자기 태도가 변했어요. ……『해월을 잡는다, 해월을 잡는다!』하고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 거리겠지요. 무엇인가 잘 알수는 없지만은 무슨 유력한 증거를 잡은 모양 같아요. 지금 마악 떠나려는 즈음인데 그렇게 되면……』
은몽이 말을 채 맺기전에 전화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선생님! 유선생님이시죠? 저는 정란입니다. 처음 뵙는 선생님께 이처럼 전화로 실례 합니다마는, 오빠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고요. 그렇게되면 저의 집에는 남자라고는 한사람도 없지않아요. 어떻게 우리들끼리…… 그래서 생각다 못해 어머님이 유선생께 전화를 거는거랍니다. 선생님께서 어머님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신다면 말씀이야요. 오빠가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저의 집에 오셔서 우리들을 보호해 주세요. 어머님을 한시 바삐 구해 주세요! 이대로 그냥 두었다가는……』
은몽과 정란이가 지금 전화통에 매어 달리듯이 애원하는 광경이 눈앞에 보는 듯이 떠오르는 유불란이었다.
『정란씨 잘 알았읍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유불란은 잠깐동안 말을 끊고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듯 눈을 감았다 다시 뜨며
『그런데 정란씨! 제가 갈 때까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남수군을 꼭 붙잡아 두십시요. 제가 남수군을 꼭 만나야겠읍니다! 꼭 붙들어 두셔야 합니다!』
『네 네! 그러면 선생님, 지금 곧 이리로 와 주셔요!』
『십 분만 기다리십시요. 십 분 동안만 남수군을 붙잡아 두시요!』
유불란은 전화를 끊었다. 부리나케 외출복으로 갈아 입으면서 그는 마치 열병환자 처럼 중얼 거린다.
『남수가 ── 저 탐정소설가 백남수가 대체 무엇 때문에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가……?』
아침도 못먹은 유불란이다.
삼분 후 ── 나는듯이 밖으로 뛰어나간 유불란은 지나가는 빈 자동차를 잡아타고
『삼청동, 삼청동!』
하고 외쳤다.
『이 사건에는 탐정이 너무 많은 것 같애!』
총독부 앞을 지나 삼청동을 향하여 질풍처럼 기어 올라가는 자동차 안에서 지긋이 눈을 감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쳐보는 유불란이었다.
『── 임경부, 오상억, 백남수, 그리고 나 ── 모두 명탐정들 뿐이다!』
이윽고 자동차가 삼청동 「풀」 옆에 솟아있는 백영호씨 저택 정문 앞에서
『삑』소리와 함께 멎있을 바로 그때,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마악 현관을 뛰어 나오는 백남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은몽과 정란이가 따라나오는 것을 보니 잠깐만 기다리라는 모양이다.
유불란은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활기있게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며
『남수씨 오래간만입니다. 어디 여행을 떠나시렵니까?』
하고 먼저 인사를 하였다.
『유선생님……』
정란과 은몽이 반가히 맞이한다.
『아, 유불란씨입니까. 안녕하십니까 ──』
백남수의 그 흥분한 얼굴이 저윽이 당황해 한다.
『어디 여행을 가시렵니까?』
『네 잠깐 다녀올데가 있어서 ──』
『그렇습니까? 하마터면 남수씨를 놓칠번했군! 나는 나대로 또 남수씨를 꼭 만나야 할 용건이 있어서 찾아 왔는데, 여행은 어디로……』
그러나 백남수는 거기에는 대답을 피하며
『무슨 용건이십니까?』
그 때 옆에 서 있던 정란과 은몽이
『아이 좀 들어 오셔서 이야길 하셔요!』
유불란도
『과이 바쁘시지 않으시거든 ──』
하고 안으로 들어가기를 청하였다.
백남수는 잠깐동안 무엇을 생각하는 듯 주저하더니
『그럼 안으로 들어 가십시다. 그리고 나도 유불란씨에게 중대한 것을 한 가지 말씀 드려야겠읍니다. 자아 ──』
이리하여 그들 네 사람은 얼마 후 이층 응접실에 마주앉는 몸이 되었다.
『유불란씨!』
남수는 마주앉아 홍차를 단숨에 꿀꺽꿀꺽 드리키며 유씨를 쳐다보았다.
『네? ──』
『유불란씨는 대체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다니요……』
유불란은 자기의 무능을 스스로 부끄러워 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수에게로 향하였던 시선을 옆에 앉은 은몽에게로 옮기었다.
『그러면 아직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까?』
『남보기에 대단히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아직 아무런 단서도 ──』
유불란은 무안한 듯이 얼굴을 붉혀 보이었다.
남수는 그 때 또 한번
『유불란씨!』
하고 힘있게 불렀다.
『왜 그러시우?』
『이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유력한 증거물을 발견했읍니까?』
『그렇습니다! 실로 이상야릇한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읍니다. ── 다시 말하면 그렇게도 착잡 다단한 이 사건이 오상억군의 글로 말미암아 ── 즉 이선배와 김수일과 유불란씨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건은 무척 단순화 하여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주은몽씨에게 복수하려는 해월만을 체포하면 되었으니까 ── 그러나 여기 이상한 사실이 하나 발견 되었읍니다.』
『무엇입니까?』
세 사람의 극도로 긴장한 얼굴, 얼굴, 얼굴 ── 그러나 그 때 아랫층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젊은 어멈이 한 장의 명함을 들고 들어왔다.
저 관철동에 계시는 『 , 오선생님하고 또 한분 ── 이런 분이 찾아 오셨읍니다. 』
명함에는
『혜성전문학교 교장 황세민』
이라 씌어 있었다.
이윽고 젊은 어멈에게 안내를 받아 금테 안경을 쓴 오상억 변호사와 육십이 될락말락한 혜성전문학교 교장 황세민씨가 들어왔다.
황세민씨는 한번보아 대단히 온화한 늙은이다. 머리털이 절반 이상 희었고 그 허엽스레한 머리털과 노동자처럼 햇볕에 탄 거므틱틱한 얼굴이 유달리 사람들의 시선을 빼았는다. 그거므틱틱한 얼굴은 전문학교 교장으로서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그러한 인상을 사람들은 받았다.
백남수의 흥미있는 화제가 이 두사람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중단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적지 않게 귀찮다는 얼굴로 오변호사와 황교장을 맞이하였다.
오상억은 일동에게 황세민씨를 소개 하였다. 황세민씨는 특히 주은몽과 정란을 향하여 허리를 굽히며
『백영호씨의 무참한 봉변에 대하여서는 이 황세민, 무어라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일부러 이처럼 찾아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은몽이 권하는대로 황교장은 의자에 걸터 앉으며 다시 한번 은몽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때 오변호사가 황교장을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오늘 황교장께서 이처럼 찾아오신 것은 돌아가신 백선생과 황교장 사이에 약속되었던 칠십만원 제공 문제에 관하여……』
하고 고문 변호사로서의 자격을 차렸다.
『네 실상은 ──』
하고 이번에는 황교장이 말을 받아
『실상은 이처럼 불행중에 계시는 요즈음, 이런 문제를 가지고와서 여러분을 귀찮게 하는 것은 저의 본의가 아니옵니다만 사정이 너무 촉박하여 졌으므로 한시 바삐 ──』
하고 은몽과 남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네에 ──. 물론 그러한 의사를 그이가 생전에 표시한 것이니까 고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도 하루 바삐 그 문제를 해결해 버리는 것이 저도 좋을 듯 싶읍니다만 ──』
하고 은몽은 남수의 표정을 살피려는 듯 그리고 얼굴을 돌렸다.
『네에……잘 알아 듣겠읍니다. 그런데 ──』
하고 남수는 한번 기침을 한 후에
『아버지가 그런 의사를 표시한 것만은 사실인 듯 싶으나, 그러나 아직 거기 대한 법적수속 같은 것은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최초부터 칠십 만원 제공 문제에 극력 반대하여 온 사람입니다. ──』
『그러면? ──』
하고 긴장한 얼굴빛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황교장의 시선을 무시해 버리려는 듯 남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의사를 어디까지나 존중해야만 될 나의 처지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만은 아무리 아버지의 의사라 할지라도 저는 반대입니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읍니다만 아직 저로서는 사재의 거의 전부를 그런 사회사업에 바칠 그러한 기특한 심경의 변화는 아직 가져본적이 없으니까요.』
『……』
『그러니까 대단히 매정스런 말씀입니다만 이 문제만은 이대로 중단된 것으로 알아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칼로 베는 듯 딱 잡아떼는 남수의 말에 은몽은
『그래도 고인의 의사를 그렇게 무시하면 어떻하세요?』
하는 것을
『은몽씨는 잠자코 계십시요. 남철(南鐵)형님이 실종선고(失踪宣告)를 받은 이상 유산상속권은 이 백남수에게 있으니까 ── 도대체 아버지가 칠십 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사회사업에 바치겠다고 한 그 심경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사이지요. 하옇든 황선생과 아버지 사이에 어떠한 의사의 교환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화 하지않은 이상 저는 이 문제를 그냥 진행시킬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해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
그 처럼 한점의 찬의(讚意)조차 보이지 않고 냉냉하게 잡아 떼는 남수의 말에 늙은 황세민 교장은 다시 뭐라고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유감입니다.』
옆에 앉았던 오상억이 은근히 황교장을 위로하였다.
『할 수 없읍니다. 혜전을 폐교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요.』
풀이 죽은 황교장이었다.
그 때 남수는 팔뚝 시계를 드려다 보며
『그런데 오군, 마침 잘 왔네.』
하고 말머리를 돌린다.
『왜?』
『유불란씨와 자네에게 한가지 보여줄 물건을 발견 하였단 말이야.』
『뭐?』
오상억과 함께 유불란, 정란, 은몽이, 모두 상반신을「테이블」위로 내밀었다.
남수가 대체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흥분했던가?……사람들은 일단 중단되었던 남수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음을 기뻐 하였다.
『대체 뭐길래 그렇게……』
은몽은 대단히 안타까운 모양이다.
『이것을 보십쇼!』
남수는 그 때 「포켙」에서 수첩을 꺼내 들더니 그 수첩사이에 끼어 있던 한장의 사진 ── 명함판의 조그마한 사진을 꺼내어 「테이블」위에 놓았다.
『이 사진을 자세히 드려다 보십시오!』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사진위로 쏠린다. 그러나 황세민 교장만은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않는 듯 멍하니 들창 밖을 내다볼 뿐이다. 폐교당할 혜전의 최후를 황교장은 슬퍼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진을 드려다 보자마자
『이것이 웬거요?』
『어디서 났어요?』
『대체 이 사진을 어디서……』
하고 저마다 물어보는 것이다.
그것은 머리를 길게 땋아 느린 시골처녀의 상반신이었다. 얼굴이 갸름하고 눈썹이 길고 그러나 상당히 오랜 사진임에 틀림이 없는 것은 사진 빛이 부옇게 퇴색한 것을 보더라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저번날 밤 ── 복수귀 해월이가 백영호씨를 죽이던날 밤, 이층 미술품 수집실에서 얻은 사진 ── 조그마한 『로켓트』에 들어있던 그 사진과 똑 같은 인물이 아닌가?
『음 ──』
유불란은 사진을 손에 들고
『적어도 이십년 전, 아니 근 삼십년 전에 찍은 사진이다. 나이는 열 아홉 아니면 스물가량. ──』
『그렇습니다. 지금 임경부가 가지고 있지만, 저번 수집실에서 얻은 사진도 이것과 똑같은 사진이었지요.』
『그런데 이것을 어디서 얻으셨어요?』
은몽은 복수귀 해월의 출현을 불현 듯 예기함인지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남수의 눈동자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오빠, 대관절 이것이 어디서 났어요?』
정란도 무서운 모양이다.
그 때 비로소 황세민 교장도 문제의 사진을 목을 늘여 넘겨다 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 다른 사람은 모르리라. 유불란만은 흘깃 넘겨다보는 늙은 황세민 교장의 얼굴에 이상한 충동의 빛이 일순간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을 눈치 빠르게 보았던 것이다.
허나 물론 모르는 척 하는 유불란이다.
『어디서 주웠는지, 오빠 빨리 이야길 좀 해봐요! 왜 그리 잠자코만 있는 거예요?』
그러나 남수는 무엇인가 이야길 하려다가 가끔 입을 꽉 깨물어 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백군 이야길 해보게나! 어디서 주웠는지…… 그리고 군은 이 사진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말인가? 』
하고 캐묻는 오상억의 말에
『어디서 주웠는지 미안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을 이야기 할 수는 없네.
그리고 이 사진이 누군지, 그것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사흘 후면 이 사진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흘 후, 내가 다시 여행으로 돌아오는 날, 적어도 이 사건에 관한 비밀의 절반은 해결될 것이라 믿네.』
그리고 남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러면 오군 특히 유불란씨! 제가 돌아오는 날까지 은몽씨와 정란을 잘 돌바 주시기 바랍니다.』
남수는 황급한 걸음으로 뛰어나갔다.
어디론가 알 수 없으나 탐정소설가 백남수가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서 흥분한 얼굴로 응접실을 뛰어나간 후,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과 아울러 남수가 남겨 놓고간 흥분으로 말미아마 일순간 어지러운 공기속에서 서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백남수의 그 미친듯한 흥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건이 무척 촉박하여 졌다는 감을 저마다 느끼게 한 것만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면 저는 이만 실례 하겠읍니다.』
하고 그 때, 늙은 황세민 교장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은몽은 황교장을 현관까지 바래다 주고 다시 들어 와서 남수가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죄송스러운 부탁이나마 자기와 정란을 위하여 며칠 동안 자기 집에 같이 묵어 주기를 청하였다.
정말 유선생님이 저희들과 『 같이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선생님 그렇게 해 주세요!』
정란도 은몽의 말을 지지하였다.
이리하여 결국 유불란과 오상억 두 사람이 은몽과 정란의 위험을 보호하고자 그 날 밤부터 이 집에서 유숙하기로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저는 잠깐 집에 다녀 오겠읍니다.』
하고 유불란은 오변호사와 정란과 은몽을 응접실에 남겨 둔채 밖으로 뛰어 나왔다.
밖으로 뛰어 나온 유불란은 삼청동 긴 골목을 안국동 쪽을 향하여 달름박질 치는 것이다.
얼마 동안 달름박질 치던 유불란은 안국동 네거리에 다다르자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네거리에서 종로쪽으로 걸어 가는 황세민 교장의 늙은 뒷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황교장은 그런 줄도 모르고 종로 네거리를 향하여 주첨주첨 걸어 간다.
오정이 바로 지난 종로 네거리 ── 유불란은 약 오십 「미 ─ 터」가량의 간격을 두고 황교장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황교장은 그때 백화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동안 주저하는 모양이더니 마침내 무엇을 생각했는지 머리를 끄떡끄떡하면서 백화점 안으로 들어간다.
유불란도 따라 들어갔다.
황교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기우리면서 일층, 이층, 삼층, 사층, ── 그는 마침내 식당으로 들어가서 저편 들창 옆 식탁에 자리를 잡고 「런 치」를 청한다.
오정을 바로 지난 이「M데파 ─ 트」의 식당은 마치 수라장처럼 어지럽고 분주하다.
유불란은 그때 요행으로 황교장의 바로 뒷 식탁이 비는 것을 보고 달려갔다. 황교장과 등을 지고 자리를 잡은 유불란이었다.
이윽고 유불란은 「커 ─ 피」를 마시고 황교장은 「런치」를 먹는다.
그러나 유불란에게는 이 늙은 황세민 교장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하였다.
그는 「런치」를 먹으면서 그 「런치」그릇 앞에 놓인 무슨 물건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유불란은 틈을 타서 머리를 기웃하고 황교장의 어깨위로 그가 들여다 보는 물건을 넘겨다 보았다.
『시계!』
커다란 회중시계였다.
그러나 유불란은 거기서 회중시계만을 본 것이 아니다. 회중시계 외에 또 한가지 물건!
『사진이다!』
그렇다. 그 커다란 회중시계 뒷두껑 안에 붙은 한장의 사진 ── 머리를 길게 땋아느린 스물안팎의 처녀 ── 얼굴이 갸름하고 속눈썹이 길고……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조금아까 백남수가 보여준 그 사진과 똑같은 인물이었으며 복수귀 해월이가 미술품 수집실에 떨어뜨리고 간 그 사진의 인물이 아닌가?
아까 황교장이 남수가 「테이블」위에 내놓은 문제의 사진을 보던 순간, 다른 사람은 몰랐으나 유불란만은 황교장의 얼굴에 나타난 이상한 충동의 빛을 보았다.
『그러면 백남수가 주웠다는 문제의 사진은 대체 누가 가지고 있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