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 분명 일종의 스포츠이나, 이것이 스포츠이면서도 스포츠 이상의 어떤 의미를 소유한 데서 나의 등산에 대한 동경은 시작되었었다. 룩색에 한 끼 먹을 것을 넣어 지고 자그마한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비롯해, 몇 달 혹은 몇 해를 허비해 가며 지구의 용마루와 싸우는 본격적인 등산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근골은 쓰여지는 것이고, 이것이 쓰여짐으로 말미암아 그 단련의 결과도 나타나는 점에 있어 등산의 스포츠적 성격이 나타난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수도의 한 과정같이 어떤 철학적 분위기로 우리의 심령을 정화해 주는 데 초 스포츠적 매력을 우리에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등산가의 한 가지 긍지는 굳이 다언을 피하는 기벽이 있으니, 이는 눈은 산봉과 하늘을 바라보고 오르되 이 순간 심령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안으로 성찰하는 겸손을 지키고 있는 때문이다. '인적 끊긴 곳에 돌을 베고 하늘을 보오. 구름이 가고, 있지도 않은 고향이 그립소.' 이것은 혼자 산골을 걷다가 돌을 베고 누워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읊은 졸하기는 하나 가장 솔직한 필자의 심경을 고백한 진리이다. 동중에 정을 그리워하고 저돌적인 순간 더욱 세심 주도하고 겁나 속에 용감과 불굴을 숨기고 겸손하나 혼자 화려한 향연을 즐기는 경지에 등산의 유현미가 있고 등산가의 자부가 의존하는 것이다.

'등산' 운운의 문을 초하는 자리에서 필자 굳이 등산의 자의해석에 구애되려 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가 항용하는 등산의 의의와 본격적 등산이 의미하는 등산의 의의와는 그 개념이 크게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옳을 줄 안다. 보통 등산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하이킹'에 대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얕아도 산에 오르니 등산이 아니냐 하면 물론 변명은 성립되는 것이로되, 우리가 아침에 떠나 점심때에 올랐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정도의 등산은 이 것이 등산이면서도 아무런 본격적 풍모는 겸용치 못한 초보적 혹은 하이커적――이런 말이 사용된다면――등산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격적 등산가가 갖는 '등산'에 대한 관념은 이러한 강보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그의 심안은 적어도 2천 미터 이상의 봉만과 그 봉만을 덮는 빙설과 암벽과 로프에 서로의 생명을 맞매고 오르는 장한의 일대를 볼 것이다. 백운대·차일봉은 차라리 정원일우의 조그마한 망대의 감이 있으므로 그의 목표는 오로지 망천후와 알프스와 히말라야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갖기에 부끄럽지 아니한 본격적 등산가라야 비로소 산악 문제를 운위할 자격이 있는 줄은 필자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망중의 소한을 이용해 자가락으로 얕은 봉만을 얼마간 발섭한 필자가 이 과제를 논할 아무 아무 경험도 자부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점에 있어 필자는 본격적 등산가를 뜻하는 그들에게 아무 공급할 자료와 경험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초보적인 하이킹 정도의 등산이라면 십유여 년간 즐겨 경험해본 만큼 그 경험을 토대 삼아 약간의 방식을 소개할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산대사는 우리의 죽백에 길이 전해질 명승이시거니와 그가 산을 알고 산의 정신을 통해 인생을 달관한 바 있었던 것은 산을 사랑하는 자의 항상 경앙해 마지 않는 바다.

대사의 묘향산·향로봉에 올라 만국도성을 개미 둥지에 비하고 천하의 호걸을 촛벌레라 웃어 버린 호호탕탕한 기백·풍격은, 이것이 곧 산에 오르는 자의 참된 기백이요 풍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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