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시집/왕거미
< 동물 시집
썩어 처진 초가 서까래 밑에
자를 대고 그려낸 듯 줄을 느리고,
코를 비비며 입맛 다시는 왕거미
얼마나 흉칙스럽게 점지되었기에
저리도 끔찍히 발은 많고도 긴가
털 돋힌 검정 사마귀 같은 화상아
저리도 못생긴 거미에게도
남 부럽잖은 한가지 재주는 있어
무지개처럼 줄을 잘도나 얽어놓았지
꽃 향내에 취한 나비, 싸대는 하루살이
떠드는 모기, 눈이 크기만한 잠자리가
끈적거리는 저 그물에 얽히기만 하면
저 놈은 소리도 없이 달려들어
단숨에 희희 동동 얽어놓고
맛나게도 뜯어 먹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