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시집/박쥐
< 동물 시집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관을 쓰고 살았다는 옛집에서
이야기로만 듣던 박쥐를 보다
먼 옛날
새떼와 짐승들이 편싸움을 할 제
꾀가 많은 박쥐는 싸움도 않고 구경만 하다가
새 편이 애써 싸워 이기면
얼른 새 편으로 날아가서
〈나는 날개가 있으니 새 편〉이라고 아양을 떨고
짐승 편이 애써 싸워 이기면
얼른 짐승 편으로 뛰어가서
〈나는 쥐처럼 생겼으니 짐승 편〉이라고 간사를 부리다가
새떼, 짐승떼에게 주리를 틀리고 쫓겨난 다음
새도, 개도, 닭도, 소도, 다 잠든 밤중에만 나와
잠든 꿀벌을 튀겨 잡아 먹는다는 박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