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사월이십오일(丙寅四月二十五日)에 대행(大行)이 등하(登遐)하시다. 고금에 다시는 없을 액(阨)하신 조제(遭際)이시라 옥후(玉候)가 강예(康豫)하시던 평석(平昔)에도 구중(九重)을 바랄 때마다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을 스사로 억제치 못하였었다. 그러나 바랄 때 느꺼울망정 계시거니 하는 생각이 느낌 속에 섞이어 그래도 위안이 있고 그래도 의의(依倚)가 있다가 이제 발서 멀으신 용어(龍馭)를 향하야 이천만의 눈물을 마지막 뿌리게 되니 슬푸다. 인간의 비애가 이에서 지나는 것이 있을까. 생각이 깊을수록 설음이 깊고 설음이 깊을수록 언어가 끄치이니 차라리 붓대를 꺾고 종의를 찢어 마음껏 쓰지 못할 비애를 그대로 감추고자 하나 조금이라도 드러냄이 없고는 우리의 애정이 더욱이 견대지 못함에야 어이랴.

대행은 순효(純孝)이시니 고종조재세(高宗朝在世)하실 때 잠시도 곁을 떠나시지 못하시다가 마츰내 격리하시게 되매 사모하시는 성심(聖心)이 좌우를 울리신 때가 많았었다. 무오대상(戊午大喪)에 이르러 성효(聖孝)가 팔역(八域)에 들리었으나 늘 뫼옵고 지내던 근신의 말을 들으면 천지가 무너질 듯한 절골(切骨)하신 애훼(哀毁)와 어항필서(閭巷匹庶)로도 견대지 못할 과도하신 집례(執禮)를 밖에서 오히려 다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고 한다. 삼가 성덕(聖德)을 규측(窺測)하옵건대 어찌 효에만 끄치시랴마는 보위(寶位)에 오르실 제 산하(山河)가 발서 고쳤고 호겁(浩劫)을 지내신 뒤 궁금(宮禁)이 더욱이 깊어 외로우신 인심(仁心)이 화성(化成)에 옮기시지 못하고 오즉 하늘에 솟아나시는 지극하옵신 효성이 기구한 시운과 지원지통(至冤至痛)한 화고(禍故)로 좇아 민서(民庶)의 첨앙(瞻仰)에 나타나시게 되니 이로만 생각하야도 지존이시나 기궁(畸窮)하옵신 대행의 만절(晩節)이 살 깊이 슬푸옵시지 아니한가.

이래(邇來)로 말씀하면 경경(耿耿)하옵신 일념이 오로지 봉선(奉先)하시는 데 계옵서 원릉(園陵)의 송백(松柏)과 청묘(淸廟)의 형향(馨香)이 성시에 비겨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미류(彌留)하실 때에도 종묘봉심(宗廟奉審)을 자로 산칙(申飭)하시고 금년이 주량(舟梁)의 구갑(舊甲)이라 하셔서 홍릉작헌(洪陵酌獻)하올 절차를 여러 번 하문(下問)하시는 이렇듯 지극하신 성효로 차마 하로아츰에 중동(重瞳)을 감으시니 명명중(冥冥中) 알음이 계시다 하면 어찌 유한(遺恨)이 없으실 수 있으스랴. 대점(大漸)에 미치기 전에 옥체가 날로 못하심을 따라 성정이 자연유약(自然柔弱)하심일런지 앞날을 짜르게 생각하오서 종묘에나 원릉에 계신 동안 마음껏 하시랴는 비창(悲愴)하신 기색이 가끔 옥안에 나타나셨다 한다. 이로써 뵈오면 더욱이 유한이 없으실 수 없을 것이다. 떠나셨으나 우리에게 멀으심이 아니니 우리 대행의 유한을 느껴 흰 옷깃에 눈물이 구를 때 용루의 나마지 뿌림이 어느 곳에던지 흔적을 끼치실 줄 안다.

태조(太祖)의 조업(肇業)하신 뒤로 태종(太宗)의 치공(治功)이 높으셨고 문교(文敎)를 고심(苦心)으로 베푸신 성군세종(聖君世宗)이 그 뒤를 이으셨다. 정리(政理)의 오륭(汚隆)이 여러 번 변하였으나 열조열종(列祖列宗)이 민의(民依)를 근휼(勤恤)하심에는 대개 일규(一揆)이셨고 또 인종(仁宗)의 지효(至孝)와 효종(孝宗)의 영지(英志)와 정종(正宗)의 문장(文章)이 다 전사(前史)에 탁월하신 터이라 역년(歷年)이 오래고 계세(繼世)가 길어 대행까지 이르게 되었었다. 우리의 오늘날 울음이 오즉 대행의 등하하심을 설워함이 아니라 열조열종에 향한 추모를 대행일신(大行一身)에 부치었다가 이제 이르러 오백년간성군의벽(五百年間聖君誼辟)이 일시에 거듭 붕조(崩殂)하심 같으니 고금을 부앙(俯仰)하야 어찌 실성(失聲)치 않을 수 있으랴. 우리 민중아 울라. 조업하신 태조를 울라. 치공 높으신 태종을 울라. 성인님금 세종을 울라. 인종 효종 정종을 울라. 열조열종을 울라. 마즈막으로 대행의 용어를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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