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 요구의 반영

노인이 生[생]더러 하는 말이, 「내가 여식 하나를 두고 아직 사위를 보지 못하였더니, 네가 여기 옴이 역시 前定[전정]된 연분이니, 그대로 있어 내 사위 노릇을 하여라」하거늘, 生[생]이 엎드려서 감히 무어라고 대답하지 못하니, 노인이 좌우더러 명하여 가로되 「아이들을 불러 오라」한즉, 곧 兩童子[양동자]가 안에서 나와 곁에 모셔 섰는데, 年齒[연치]는 十二[십 이],三[삼] 자칫 쯤 되고, 옥으로 깍은 듯한 도련님들이었다. 仙翁[선옹]이 가리키면서 生[생]에게 이르기를 「이 아이들이 내 두 자식놈이니라」하 고, 또 二子[이자]더러 일러 가로되 「내 저 사람으로 사위를 삼으려 하여 이미 결정하였으니, 어느 날쯤이 좋을지 곧 택일을 하여 보아라」한즉, 二 童[이동]이 손가락으로 날을 꼽아 보다가 한참 만에 대답하여 가로되 「모 래가 좋을 듯하외다」하고, 仙翁[선옹]이 生[생]더러 이르기를 「그럼 택 일까지 하였으니 아직 賓館[빈관]에 나가 기다리라」하므로, 生[생]이 명 을 듣고 나온즉, 仙官[선관]이 앞을 서고 마침 紅漆轎子[홍칠교자]가 등대 하고 있다가 한 처소로 데리고 가는데, 좌우 경개와 鋪陳凡節[포진범절]이 다만 놀랍고 다만 끔찍할 뿐이요, 목욕을 시키고 의복을 一新[일신]하게 갈 아입히매, 생각에 이미 반이나 신선이 된 듯하였다.

吉日[길일]이 當到[당도]한즉, 다시 仙翁[선옹]에게로부터 玉凾[옥함]에 담은 의복이 와서 그것을 갈아 입고 시키는 대로 漆轎[칠교]에 올라서 수십 仙官[선관]이 擁衛[옹위]한 중에 威儀[위의]를 갖추고 독자 廳[청]에 오르 니, 奠雁交拜[전안교배]의 모든 의식이 대개 인간과 같고, 신부를 대하매 선녀지마는 어쩌면 저렇듯 할 만큼 잘났으므로 마음에 기쁨이 예상보다 지 나서, 洞房花燭[동방화촉]에 雨情[우정]이 洽洽[흡흡]함은 따로 말할 것도 없으며, 이튿날 장모를 뵈오니 年可[년가] 三○許[삼공허]에 또한 容色[용 색]이 출등하며, 장인 장모가 大宴[대연]을 排設[배설]하여 경사를 기념하 였다.

이렇게 즐거운 꿈에 싸여서 세월 가는 줄을 잊어버리고, 어느덧 겨울을 지 내고 봄이 왔더니, 하루는 처가 남편더러 말하기를 「日氣[일기]도 화창하 니 밖 구경이나 해 보시려오?」하거늘, 生[생]이 굳이 유람을 청한대 처가 生[생]을 이끌고 후원으로 올라가는데, 빼어난 멧부리, 琉璃[유리] 깐 듯한 시냇물, 琪花瑤草(기화요초)에 珍禽奇獸(진금기수)가 굽이굽이 절경이요, 곳곳이 奇勝[기승]이며, 숱한 峰頭[봉두]에 올라서니, 허허바다가 발앞에 굽고, 큰 섬 작은 섬이 무수히 물결 사이에 솟았으며, 金闕銀臺[금궐은대] 와 주궁경원 珠宮瓊苑( )이 그림같이 여기저기 늘어 있고, 鶴[학] 탄 신선과 鳳[봉] 탄 선녀가 仙樂[선락] 縹渺(표묘)한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광경이 이 루 형용할 바를 몰랐다.

이러구러 반년을 지냈더니, 하루는 仙翁[선옹]이 生[생]더러 일러 가로되, 「女兒[여아]와 成親[성친]한 지가 오랜데 胎候[태후] 있단 말을 듣지 못하 니, 아마 너희 티끌에 젖은 뼈를 바꾸지 못하여 그런 모양인가보다」하더 니, 玉瑚盧(옥호로)를 기울여 환약 數三介[수삼개]를 끄집어내서 주어 가로 되 「이것을 먹으면 換骨脫胎[환골탈태]를 하리라」하거늘, 生[생]이 받아 서 먹으니 이로부터 몸이 거뿐하고 마음이 맑고 환해지매, 그 처에게 과연 태기가 있어 연해 二子[이자]를 낳았다. 여기에 머무르기 이미 三[삼]년이 되매, 一[일]일은 生[생]이 처를 더불어 한담하다가 홀연 눈물지으니, 처가 괴이하여 까닭을 묻거늘, 生[생]이 가로되 「내가 시골의 寒微[한미]한 사 람으로 仙境[선경]에 와서 귀한 사위 노릇을 하니 이보다 더한 낙이 있을 리 없으되, 다만 집에 노모가 계셔 문안을 모른 지가 이미 三[삼]년이니 마 음에 悵然[창연]하지 않을 수가 있소. 그래서 눈물이 떨어졌소」한대, 그 처가 가로되 「당신이 어머님께 覲親[근친]을 하시려면 아주 용이한 일이거 늘 왜 마음을 상하시오?」하고, 仙翁[선옹]께 말씀을 하여 仙翁[선옹]이 生[생]을 불러 「다녀옴이 옳다」고 하는데, 生[생]의 생각에는 車馬[차마] 와 趨從[추종]이 대단하여 동리가 들썩하게 되리라 하였더니, 조금 있어보 니 그 처가 옷 보퉁이 하나를 내다 주고 다른 주는 것이 없으며, 仙翁[선 옹]도 간단히 「잘 가서 근친을 해라. 멀지 않아 서로 보리라」할 뿐이요, 하인 하나를 불러 모시고 나가라 하는데, 겨우 門外[문외]에 나오니 다만 여윈 말 한 필에 아이 종 하나가 고삐를 잡고 있을 뿐이매, 마음에 매우 訝 惑[아혹]하고 말께 올라타면서 자세히 본즉, 말과 아이 종이 다 여기올 때 에 노방에서 죽어 넘어졌던 놈들이라, 이 신기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물어 가로되 「네가 어떻게 여기를 왔느냐」한즉, 아이놈의 대답이 「서방 님을 모시고 오다가 중로에서 웬 사람이 다짜고짜 붙들어다 가두는데, 암만 놓아 달래도 듣지 않은 지 그 동안 三[삼]년입니다」하였다. 生[생]이 이 에 그 아이와 仙翁[선옹]의 준 하인을 거느리고 山[산]으로 나오는데, 들어 갈 때에는 오래기도 하더니 나올 적에는 문외에 나선 지 몇 걸음 아니해서 산수 경치가 다 간 곳 없고 금세 大路[대로]를 당하여, 仙翁[선옹]의 하인 이 또한 하직코 돌아갔다. 그대로 길을 찾아 집으로 당도하니, 집에서는 한 참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다가, 生[생]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家人[가인]들 이 귀신이 오는 줄만 알고 모두 놀라니, 대개 그 집에서 生[생]이 길 떠난 채 돌아오지 아니하매 , 죽었다 하여 혼을 불러 헛장사를 지내고 三年喪[삼 년상]을 다 마치고 오늘은 정히 마지막 굿을 차려 生[생]의 幽魂[유혼]을 위로하는 판이며, 한참 만에 生[생]이 분명 생환한 것을 깨닫고, 굿이 잔치 로 화하였다.

어머니가 그 동안 어디를 갔더냐 하매, 生[생]이 먼저 權辭[권사]로써 대 답하고 뒤에 틈을 타서 자세한 곡절을 고한대, 어머니가 신기하여 함께 褓 [보]를 끄르고 보니, 곧 四時[사시] 의복 一[일]습인데, 비단도 아니요 무 명도 아닌 것이, 가볍고 따듯하며 四節[사절]에 한 벌씩을 입되 더럽거나 터지는 일이 없어, 누가 보든지 항상 새 옷과 같았었다. 뒤에 다시 三[삼] 년을 지내니, 仙奴[선노]가 生[생]의 二子[이자]를 데리고 왔는데, 모두 淸 秀[청수]하기 그지없어 一點[일점] 俗熊[속웅]가 없으며, 仙翁[선옹]이 편 지해 보내기를 「명년에는 大亂[대란]이 나서 貴鄕[귀향]이 말끔 魚肉[어 육]이 되리니, 이 하인을 따라서 온 집안이 다 이리로 들어오라」하였거 늘, 生[생]이 이 사연을 어머니께 고하고, 집과 논밭을 팔아 隣里[인리] 친 척을 모아 한 번 큰 잔치를 베풀어 작별하고, 온 집안이 仙奴[선노]를 따라 가니, 이것이 乙亥年[을해년]의 일이요, 이듬해 丙子[병자]에 과연 胡亂[호 란]이 일어나서 生[생]의 살던 고장이 다 쑥밭이 되어버리고, 生[생]은 한 번 간 뒤에 다시 소식이 없어 어찌 된 줄을 모르는데, 加平[가평] 땅에서는 노소 없이 이 이야기를 다 안다.

하는 것이 있읍니다. 이 이야기는 仙境[선경]보다도 丙子胡亂[병자호란]의 예언을 위주로 한 관계로, 인간인 사람을 나이 먹여 늙힐 수가 없어서, 仙 境[선경]과 인간의 세월이 어긋나지 않고 말았으며, 일변 실제적 사실로 꾸 미느라고 모든 재료를 상식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기괴한 맛이 매우 감 하기는 하였지마는, 돌이켜서 이러한 仙境[선경]의 관념과 및 거기 관한 설 화가 근세에도 참말 사실상에 있는 것처럼 표현한 점은 조선 민중에게 이러 한 것을 요구하는 심리적 기초가 어떻게 최근까지도 강하게 존재함을 살필 사실이라 할 것입니다.

라이선스

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