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 (김사량)
제1부 윤씨네 사람들
편집윤대감이 장안 행길가에서 무참한 횡사를 하였다는 급보가 서울로부터 북으로 오백 리 평안관찰부에 이르기는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도(賭)하여 한창 정국의 서슬이 사납던 시절, 즉 1910년 초가을 어떤 날 밤이었다.
급보를 접한 지 다음날 이른 새벽 삼, 사의 사정(使丁)에 메운 한 틀의 승교가 서울로 나가는 평양성 대동문 앞에 창황히 내달았다. 그 뒤로는 어떤 젊은 여자가 머리를 흐트린 채 허덕이며 따라온다. 늙은 성문지기는 교군들 앞에 나서며 아닌새벽에 웬 사람이냐고 어성을 높이었다. 그러자 교(轎)의 뒤에 호위하고 섰던 장대한 사내가 덤쑥 나서며 문지기에 속자춘 목소리로 무어라 주절거린다. 어차피 성문지기는 그 자리에 엎디어 놀란 소리로,
"××님께서……."
"쉬―"
어둠침침한 무서운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뒤에 따라오던 젊은 여자의 그림자는 마침내 내달았다. 여자는 교에 넌지시 매어달리어 숨이 턱에 오른 소리로 무엇인가 애연하게 부르짖는다. 겨우, 열일여덟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애티 있는 소리는 새벽의 고요한 공기를 흔들며 단말마처럼 떨리었다. 그러나 캄캄한 승교 속은 죽은 듯이 아무런 반향도 없었다.
끼익 육중한 소리를 내며 성문이 열리었다. 강가의 희멀그레한 안개가 퍼져 들어와 그 무럭무럭 농담을 짓는 광망이 컴컴한 속에 서성씨고 있는 그들을 묵화처럼 그려 낸다. 승교는 다시 사정들의 어깨 사이에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젊은 여자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늘어지었으나 사정없이 내닫는 교는 그를 밀쳐 버리며 쏜살같이 성문을 뚫고 나간다. 고즈넉이 초가을의 밤은 밝아 오며 동쪽 하늘은 차츰 불그레 동이 터올랐다. 웅장한 삼층 망루는 새벽 안개를 휘저으며 나타나고 안개는 그 시커먼 위용에 무섬을 타 흐밀흐밀 물러간다. 성안 만 호(戶)도 또한 하나의 새로운 역사의 바퀴를 돌린 이날의 밤으로부터 깨어난다. 성벽의 밖을 용용히 흐르는 대동강에 삿대를 지르는 소리만 철수락철수락 한가히 들려 올 뿐.
이윽하여 관위문 앞의 인경이 은은히 울리어 들려 온다. 평양성 육문은 모두 성문을 일제히 열어 젖힌다. 대동문으로 배추, 무, 콩, 파 들을 성안에 지고 들어오느라고 떠들썩하던 강 건너 사람들은 성문을 들어서자 펄쩍 놀라 그만 그 자리에 늘어붙었다. 성문 옆 돌작지에 차림차림 보통이 아닌 어떤 어여쁜 여자 하나가 정신이 혼미하여 쓰러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숨이 꺼진 듯이 우무적대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상한 듯이 마주 한 번씩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었으나 그러나 아무도 어쩐 영문인지는 알 바가 없었다.
"무슨 시악씨관데 하필 이 새벽에."
얼금뱅이 영감이 아주 문자를 써보려고 어기뚱하니 한마디 띄워 놓자,
"괜―히덜 섰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합세."
하고 좀처럼 지혜 있는 중늙은이가 서둘러 댄다.
"멀쩡하니 보고 있다가 또 본부에 끌려가지 원, 옷 입음새를 보면 알지 저 시악씨가 무언 줄 알어?"
"뭐야?"
모두들 겁을 집어먹고 둘러 돌아섰다.
"관기(官妓)이지, 관기."
중늙은이는 입을 쩍 벌리고 이렇게 부르짖더니 그만 앞서 줄달음을 쳐간다.
그들은 모두들 목을 길게 뽑고 무엇이라 수군수군대었으나 역시 분명히 관기라면 가까이 섰다가는 공연한 봉변을 당할는지도 모르겠다고 겁이 시퍼렇게 나서 뒤따라 도망을 치는 것이다.
1
편집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날, 동산 풀언덕에는 겨우 예닐곱이나 되었을까말까 한 얼굴이 흰 으슴푸레한 소년 하나가 혼자서 언제까지나 심드렁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수십 장의 절벽이 단애를 이루고 그 아래에는 검푸른 대동강이 지질펀하니 가로놓여서 언제나 꿈을 꾸듯이 흘러내린다. 소년은 한참 동안 멀거니 강가를 바라보고 있다. 강 건너 백사장에는 아지랑이가 어리고 백은탄(白銀灘)의 물결은 잉어가 노니는 듯 대동강이면 능라도 우거진 수양버들이 그림자를 잠근 언덕 밑을 성같이 솔단을 쌓아 채운 수상선이 흐느적흐느적 저어 내려온다. 어떤 때에는 들리는 듯 마는 듯 노랫소리도 날아오고― -―이리하여 외로운 그에게는 이 산수경치가 다시없는 그의 귀한 동무가 되었었다.
조그마한 물새가 쫑쫑 지저귀며 그의 옆과 바위 틈 사이를 날아다니는데 어디선가 두루미가 한 마리 내려와 소나무 가지에 우뚝 올라앉더니 목을 길게 뽑고 주위를 뚜룩뚜룩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제는 소년은 고개를 돌리고, 이것을 물끄러미 보고 앉았다가 주춤 일어서더니,
"휘―이."
하고 손을 들어 쫓는 시늉을 하여 본다. 그러나 두루미는 목을 기우뚱할 따름, 까딱도 움직이지를 않는다.
"휘―이."
또 한번 손을 들었으나 두루미는 이번은 목을 반대쪽으로 기우뚱할 뿐, 그러므로 소년은 지척지척 두서너 걸음 다가서면서,
"휘―이."
하고 크게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제야 두루미는 조금 쥐치를 펴며 날아갈 듯한 자세를 보인다. 소년은 아주 신이 나 손을 자락자락 치려는데,
"도련님, 도련님."
하고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그때에 비로소 소년의 얼굴에는 생기가 오르고 어깨는 들먹하며 입 가장에는 미소를 띄운다. 밥하는 우스꽝스런 노파가 머그작씨며 찾으러 올라오는 것이다. 갑갑하던 소년은 캐득캐득 웃으며 놀음치고 싶은 충동에 달음질을 쳐 무너진 성 돌 밑에 숨어 버리었다. 두루미는 놀라 후두닥 커다란 쥐치를 펴고 날아난다. 소년은 손으로 입을 막고 웃음을 억제하면서 노파가 엉금엉금 기어 올라오는 것을 엿보고 있다. 노파는 이미 그가 어디 숨은지를 알아채고서 우진 허리를 굽히고 기웃기웃 사면을 둘러본다.
"우리 도련님 어디를 숨었을까, 큰일났네. 여기 있나…… 그럼 저기나……."
옆에 있는 저를 찾지 못하는 노파의 짓이 아주 우스워서 소년은 그만 참지 못하고 캑캑거린다. 그러면 노파는 아주 눈이 뚱그래지며,
"옳지, 우리 도련님이!"
하면서 달려든다. 소년은 더욱 의기가 올라 캐들캐들하며 또다시 줄달음을 치었다. 소나무 새를 뚫고 풀밭을 달리고 위태한 바위 틈 속까지 숨어든다. 그적에는 노파는 진정 겁이 버럭 나서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멀찌가니 서서 손을 휘저으며 숨이 턱에 닿은 소리로,
"아이구 도련님 큰일날라구, 거기 가만 계셔요. 가만 계셔요."
하고 슬금슬금 다가서자 소년을 버쩍 붙든다. 노파는 땀벼락을 쓰고 그제야 숨을 휘― 내어 돌린다. 소년도 그제는 제가 아주 아슬아슬 무서운 곳까지 온 줄을 알고 노파에게 엉겁결에 안긴다.
"원 도련님두 이 할밀 죽일라고…… 어머님이 찾으신답니다."
이리하여 저녁때가 되면 소년은 노파의 등에 업히어 동산을 내려오게 된다. 거기는 기생골이라 하여 밤낮으로 장고와 가야금 소리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의 어머니 산월(山月)이는 아직 스물셋으로 그 당시에는 평양성 내에서도 드러난 명기였다. 곱게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하고서 마루에 오둑히 앉아 기다리다 아들 수일(秀一)이가 들어오면 팔을 벌리고 맞아들여 무릎 위에 올려 앉히고 뺨도 비비대고 꼬옥 끼어안고 바드득 떨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날의 놀던 이야기며 본 이야기를 고시랑고시랑 물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소년은 항용 손가락을 입에 문 채로 늘 아무런 대답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이 모자는 언제까지나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가 예상사였다. 그럴 때 노파가 우람스럽게 수선을 떨며 소년이 놀던 이야기를 자랑삼아 펴놓으려 하면은 산월이는 다만 둘의 행복된 시간을 남에게 앗기고 싶지를 않아,
"노친네는 가만있어요!"
하며 쏘아붙였다. 그리고는 꺼지게 한숨을 짓는다.
수일은 물론 기생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전부였으며 그리고 어머니와 같은 여자의 세계는 이 동리에서는 모두가 기생이었기 때문이다. 기생 중에서도 제 어머니가 남보다도 유달리 아름답다는 것이 그에게는 은근한 자랑이었을 따름이다.
그것이 언제였던가, 그때에도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않아 혼자 시무룩 일어 나와 동산에 올라앉아 있노라니 양복을 입은 어떤 젊은 사내가 물끄러미 가까이 오더니,
"너 산월이 애로구나."
고 물은 것이다.
소년은 의아스러이 한참을 번번히 쳐다보다가 그렇다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자 사내는 넌지시 웃음을 띄우고 다가와 앉으며,
"너이 집에 누구 손님이 와 있니?"
하므로 소년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반사적으로 일어서며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나 그때에 왜 그런지 설워지어 울먹울먹하는 저를 붙들고 사내가 가까스로 달랬기 때문에 아마 기생인 어머니가 퍽 훌륭한 사람이려니 하고 그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날 소년은 노파에 업히어 집에 돌아오자 시르뭉등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에게 전에 없이 눈을 푹 내리뜨고 물었다.
"멀하댄?"
"수일아, 내가 하긴 무얼 하겠니."
어머니는 힘없이 미소를 띠었다. 생긋 웃을 때에는 박속 같은 고운 이가 가지런히 드러난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지."
"누구 손님 오지 아난?"
수일이는 이상한 듯이 되짚어 물었다. 그때에 어머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반달 같은 눈썹은 파들파들 떨리었다.
"아이고 뉘가 그런 소리를……."
"난 머 다 아는데……."
하고 수일은 입을 비쭉비쭉 울상이 되어 중얼거리었다.
산월이는 도톰한 입술을 깨물며 창연히 입 가장에 미소를 띠었다. 까만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었다. 소년은 그제야 제가 물어 본 말이 의외로 어머니를 슬프게 만든 줄을 알고 그 다음부터는 결코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기에 수일은 더욱더욱 말이 적은 으슴푸레한 소년이 되고 말았다.
밤이 되면 언제나 인력거가 뿡뿡거리며 어머니를 데리러 온다. 그러므로 수일이는 밤에도 혼자서 외로이 잘 수밖에 없었다. 노파는 해만 지면 제 방에 활개를 펴고 넘어지어 집채가 떠나가게 코를 드랑드랑 골아 댄다. 소년은 밤중에 눈이 뜨이면 한없이 적적하고 무서웠다. 우무적우무적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숨을 죽이고 이불 사이로 살그니 방 안을 내어다본다. 뎅그렁하니 빈 방 안에 촉대에 꽂은 밀촛불만이 흐물흐물거리고 자갈 박은 장롱은 한구석에 우쭐하니 서서 유란하게 얼른댄다. 경대는 윗목에서 번쩍거리며 촛불은 그 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역시 경면에 그림파를 비치고 있는 분수기니 기름병이니 여러 가지 화장구(化粧具)는 금시로 마개를 터치고 옛말처럼 펄펄 타오를 것 같기도 하다. 수일이는 소스라쳐 놀라며 온몸에 땀을 쭉 끼치고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서 어머니가 빨리 돌아오기만 바랐다. 그러는 사이에 다시 푸시시 잠이 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오밤중 한시나 두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방 안에 들어오면 힘없이 경대 앞에 풀적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제 발그레한 얼굴을 들여다본다. 소년은 제 어머니가 돌아온 줄을 알고서도 이불 밑을 들고 몰래 내어다볼 뿐 숨소리도 크게 쉬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제 어머니의 이와 같은 애끊고도 아리따운 영상을 어찌를 못 한다. 잠자리 속에 숨어서 얼마나 늘 제 어머니의 이러한 염자(艶姿)를 황홀히 보아 온 것일까. 정기 없는 진주 같은 눈에는 아직 어린 애티가 어리고 약간 파리한 볼에도 숨길 수 없는 애처로움이 잠겨 있었다.
산월이는 한참 동안을 정신없이 앉았다가 눈을 스르르 감더니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일어섰다. 몸에 걸친 비단옷이 살랑살랑 꽃잎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진다. 그러면 수일이는 피가 술렁술렁 수물거리는 것 같다. 하얀 도담한 어깨가 나린나린한 곡선을 펴면서 나타난다. 어디서 한 마리의 학이 춤을 추러 왔는가. 스르르 불이 꺼지니 비취비녀만이 유난하게 캄캄한 방 안을 반딧불처럼 헤엄친다. 수일이는 눈을 꼭 들이 감고 숨소리를 잦추고서 더욱더욱 이불 속으로 깊이 기어 들어갔다. 그러자 어느덧 푸근한 가금도리에서 후꾼후꾼 향기가 내어 풍기는 어머니의 두 팔이 그의 조그마한 윗도리를 살며시 끼어 들이었다.
"오― 우리 수일일 혼자 두었댔구만, 오―"
수일이는 왜 그런지 숨이 가빠 아무 말소리도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면 어머니는 더욱더 그를 굳세게 끌어안으며 포동포동한 손으로 잔등을 잘악잘악 뚜드린다.
"내가 몹쓸년이지, 몹쓸년이야……."
그리고는 바르르 떨었다.
2
편집산월이는 본시로 연약한 성질로 태어나, 더욱이 수일의 어머니는 아직 연세도 어리어 보기에도 애연하였다. 등에 걸머진 숙명이 그를 깊은 절망의 심연에 떨어뜨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바둥바둥 애를 쓴다든가, 아우성을 친다든가 그러지는 못하고 어디까지든지 운명에는 복종을 한다는, 또 그래야만 되는 줄로 알고 있는 여자였다.
그렇다고 산월이는 결코 행복된 몸이 아니었다. 그러니 혼자 마음이 클클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극매일 적도 많았다. 아들 수일이가 있는 앞에서도 큰 소리를 지르며 으흥으흥 울기도 한다. 그런 때 소년은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무섭다 할까 외롭다 할까 한구석에 움쳐 서서 불불 떨며 어떻게 하면은 슬픈 어머니를 마음 평안케 할 수 있으랴, 좁은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산월이는 애타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요정에서 손이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 엄부렁 취하여 밤이 늦어서 돌아오는 적도 있었다. 그때는 반드시 수일이를 흔들어 일쿠어 낸다. 자기의 슬픈 심사를 걷잡을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수일이는 술냄새가 풍기므로 봉실한 코끝을 찌긋찌긋하며 일어난다. 그러면 어머니는 막 눈물이 쏟아질 만치 몸을 비틀며 간드러지게 웃어 댄다.
"난 또 술을 먹구 왔구나. 술을 먹구 와서 그래 우리 수일이 노염 났나 보구나?"
수일이는 졸음에 취한 눈을 어렴풋이 뜨고서 어머니를 한번 쳐다보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머니는 만족한 듯 생긋이 웃어 보인다.
"그래도 나는 또 너랑 오늘두 마주앉어 소리라도 하고 싶었단다. 수일아, 내 마음을 알겠니?"
"응."
수일이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럼 내 한마디 부를나."
산월이는 가야금을 들어 무릎 앞에 놓고 섬섬옥수로 십이현 줄줄을 넘나들기 시작한다. 구슬픈 음률은 끊어질 듯 미어질 듯 울리며 구르며 서로 합치면서 고요한 야경의 공기를 흔드니 산월의 처량한 목소리는 육자배기의 한머리를 잡는다.
무풍에 홍도화는 세우동풍에 눈물을 머금고 동정호 비치운 월색 그믐이 되면 무광이라 내 심중 깊고깊고 회포를 뉘가 알리
산월의 목소리는 방울이 울리는 듯 옥을 깨치는 듯 명주를 찢는 듯 오르고 내리고 가냘픈 분결 같은 손길은 가락가락 줄을 타고 노닌다. 소년은 이런 적도 여러 번 지낸지라. 고개를 폭 숙이고 어머니의 흔들리는 손가락만 바라보며 어떻게든 어머니를 기쁘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수일아 받어야지."
소년은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젖먹쇠 소리를 뽑아 하룻밤이 깊도록 어머니를 그리던 외로운 심정을 하소하련다.
화향숲의 춘풍절과 낙엽오동 추야월에 소소한 바람 소리 첩첩무궁한 이 내 마음 부질없는 흥을 자아내니 잠 한 잠을 이룰 기망이 전혀 없네
그러면 산월이는 말할 수 없이 서글퍼지어 산란한 심사 걷잡지를 못하는데, 수일이는 다시 이어,
벽사창이 열리거늘 님이 온가 나서 보니 님은 정녕 아니 오고 하늘에서 봉황이 나려와 춤만 춘다
산월이는 그만 더 줄을 긋지를 못하고 가야금 위에 가는 허리를 박고 흐득흐득 느껴 울었다. 수일이는 한참 동안 어머니의 흐득이는 어깨를 바라본다.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안된가 싶어 일어나 어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오마니 왜 울어."
그제는 어머니는 몸을 쳐들어 두 팔을 벌리어 수일이를 안아 들이고 칠보잠의 금나비같이 몸을 떤다. 뺨으로는 눈물이 비 오듯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울기는 왜 울겠니. 네가 소리를 너무두 잘하니 슬퍼지는구나. 오― 우리 수일이는 내 아들이야. 산월의 아들, 산월의 아들. 목소리까지 날 닮었구나!"
소년은 어머니의 하는 말을 들으니 노래로 어머니를 진작 만족시킨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모자가 둘이서 껴안고 우는 것도 싫지가 않아 어머니의 목에 으레 손을 감으며 엉엉 울어 댄다.
그럴 때면 옆방에서 코를 골며 자던 노파는 어느 바람에 벌써 문 앞에 나와 서서 쿨적쿨적거리며 따라 운다.
"왜 그렇게 우신답메까. 미사니 도련님을 봐서라두 참으셔야지요."
그러며 제 딴은 더 소리를 높이어 와―왕 울음보를 터친다. 산월이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울음을 그치려고 숨을 흑흑 들이켜며,
"내가 참 요즘 정신이 나갔나 보구나. 울지 않으마, 울지 않어. 응 수일아, 너도 이만 끄쳐라, 우리 수일이 용한 아이지……."
그러나 수일이가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가장 행복되기는 역시 이 시절이 아닌가 한다. 만약에 자기네 모자가 일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 수가 있었다면 그래도 그들은 얼마나 행복이었을까.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이쁘고 공손하며, 동산은 언제나 그를 반기는 훌륭한 놀음터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일곱 살 되는 해 가을에 어머니와 같이 평양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떤 날 밤 수일이는 무엇인가 아우성을 치는 소리에 놀라 소스라쳐 깨었다. 자는 동안 저는 잠자리째 노파의 방에 옮아와 누워 있었다. 밤손이 있을 때 이런 적이 한두 번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때마다 노파는 늘 우물쭈물 무어라고 옮겨다 누인 변해(辯解)의 말을 늘어놓았는데 이때는 어쩐 일인지 노파의 얼굴은 뻣뻣 굳어진 채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건넌방으로부터 연달아 어머니의 악받친 비명이 울려 왔다. 그리고 가장 집물(什物)이 깨어지는 소리가 뎅그렁 철그렁 요란하게 들려 온다.
"도련님."
하며 노파는 새하얘진 수일의 얼굴을 울음어린 상으로 내려다본다.
"서울 대감 아바지가 오셨답메다. 서울 대감이 내려오셨대요."
"아바지?"
단마디 수일이는 놀라 부르짖었다. '아버지'라는 말이 닿다가 그의 온 몸뚱을 잡아 흔든 것이다. 공포라 할까, 모멸이라 할까. 일종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혼란을 그에게 일으키게 하고야 말았다. '아버지', 이것은 그의 모자 사이에는 어떤 무서운 폭탄과도 같이 생각되어 왔었다. 하나가 이것을 들면은 또 하나는 영락없이 위험에 빠진다는 것처럼. 그러므로 그의 둘이는 지금까지 '아버지'라는 말을 무섭게 알고 꺼리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입 밖에 내지를 않도록 힘썼다. 언제인가 한번 수일이가 무슨 말 끝에 '아버지'라는 말을 물었을 때 산월이는 파르르 떨면서,
"아바지? 수일인 내 아들이야, 내 아들이야. 어머니가 혼자서 났단다."
하며 너무도 펄펄 야단을 떨어 좀처럼 수상은 하였으나 그 뒤부터 다시는 '아버지'라는 말을 꺼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또 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어머니의 숙명적인 온갖 괴로움과 슬픔이 오랫동안 지내는 사이에 소년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으로 이어진 것이었을까.
"그랍니다. 아바지랍메다."
그러면서 노파는 슬픔에 가득한 얼굴을 끄덕이었다.
"와 그런지 쌈을 하십메다레……."
이를테면 그의 아버지인즉 지금으로부터 칠 년 전 초가을 어떤 날 새벽, 아직 밤이 트기도 전에 평양성을 탈출하여 일로(一路) 서울을 향한 원평양×× 윤성효(尹成孝)였다. 산월이는 그 당시 겨우 열여섯 살의 어여쁜 동기로 하루 저녁 성내의 만기와 더불어 신관의 연락(宴樂)에 나아갔다가 성효의 눈에 뜨인 바 되어 관방에 매여 얼마 동안을 눈물로 지내는 동안 그만 회임한 몸이 되었다. 그 사이에 서울 정국에는 전광석화와 같이 천변만화의 정변이 일어났다. 성효의 선고 윤대감이 합병을 위하여 큰 공훈을 세우고 남작의 영위까지 받게 된 것도 이때이다. 그러나 소란한 흉변통에 대로상에서 친청파(親淸派) 누구인가의 칼을 받고 무참한 죽음을 보자 이 흉보를 접한 성효는 황망히 교를 달리어 서울로 올라가려 하였다. 그때에 대동강 안까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허겁지겁 달려와 매달려 새벽의 정적을 흔들며 비통한 애원을 하던 젊은 관기, 이것이 바로 산월이던 것이다.
그 후에 산월이는 겨우 열일곱의 몸으로 수일이를 낳고는 다시 할 수 없이 기계(妓界)에 묻히어 버렸다. 그리고 관방에서 부리던 지금의 노파를 데리고 인제는 수일이가 별고 없이 자라기만을 낙으로 삼고 지내었다. 서울로 올라가 새로이 남작을 이은 성효는 그 후에 다시는 그들 모자 앞에 얼씬한 적도 없고 아주 씻은 듯이 돌보지를 않았다. 오히려 산월이는 이것을 기뻐하였다. 사랑하는 수일이가 누구보다도 제 혼자의 아들이라는 행복감에 젖기도 하려니와 그는 다시없이 윤성효를 무서워하였으며 또 싫어하였던 때문이다. 그리고 남작은, 재임시의 갖은 악정으로 이 지방 사람으로부터도 아주 저주를 받는 존재였으며 산월이도 남 못지않게 그를 증오하였었다.
그러나 이날 밤 어떤 요정의 일실(一室)에 불리어 들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를 마친 뒤 얼굴을 쳐들었을 때 앞에는 틀림없이 윤성효가 껄껄 웃으며 앉아 있지를 않은가.
산월이는 몸서리를 치고 움츠러들었다.
"어린애가 길러난다는 말을 듣고 왔네."
성효는 역시 예와 다름이 없는 육중하고 천연스런 목소리로 업누르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 목소리를 들으면 호랑이 앞에 쥐 모양이 되는 산월이었다. 가슴이 울컹 내려앉는다. 수일이가 자라남을 어떻게 알고 있으며 또 무슨 생각이 들어 별안간 찾아온 것일까. 사실 그는 정실과 사이의 외아들이 동경에서 객사를 하자 앙앙불락이다가 평양에 흘리고 온 씨를 찾으러 마침내 내려온 것이었다. 남작은 주춤 몸을 펴더니 팔을 들어,
"이리 와."
호령하였다. 산월이는 등줄이 쭈볏하고 이마가 화끈하여 버쩍 얼굴을 쳐들었다. 칠 년이 지나서도 조금도 다름이 없는 핑핑한 얼굴, 우무럭한 눈, 두두룩한 입 가장자리, 허연 콧수염, 그의 눈에서는 불이 인다. 터지려는 눈물, 슬픈 원한, 이것을 참느라고 닫아 물고 있는 입술은 바들바들 떨리었다.
이튿날 아침 수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냥 동산으로 따라 올라왔다. 이슬 앉은 풀포기에 아침 햇빛이 끼치고 소나무 가지에서는 여전히 이름 모를 새들이 뽀롱뽀롱 날고 있었다. 그러나 수일이는 웬일인지 슬프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풀밭을, 소나무 사이를, 성 밑을 누구에게 쫓기기나 하는 듯이 숨이 턱에 닿아서 한없이 한없이 달아났다. 내종에는 기가 진(盡)하여 쓰러져 누워 소리를 내어 엉엉 울다가 그만 풀깃 그곳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허둥지둥 찾아다니던 노파에게 붙들리어 발버둥을 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는 낮이 기울어서이다.
돌아오니 어머니는 방 안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데 마루 위에 몸뚱이 커다랗고 어깨가 욱어든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풀신풀신 피우며 유심히 바라본다. 수일이는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리고 무서워 노파의 치마 뒤에 숨어 떨어지지를 않으려는데 노기(老妓)는 가까스로 끌고 가면서,
"도련님이 아바지께 인사하갔답메다."
하고 서둔다. 수일이는 한사코 안 가겠다고 치마 뒤에 매어달려 발을 벙둥벙둥 굴리었다. 남작은 푸짐한 기쁨에 마음이 흐뭇하여 새 아들을 바라보며 수염을 쭝깃쭝깃하는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토방가에까지 끌려왔을 때 수일이는 머리를 숙인 채 눈을 내리뜨고 숨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한번 서먹서먹 쳐다보려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었을 때 그만 그 자리에서 으아― 하고 소리를 내어 울었다. 아버지는 적이 객쩍은 듯이 수일이를 빤히 들여다보더니 허허득하고 그만 웃어 버렸다.
"이놈, 아버지를 모르고."
그러자 소년은 더욱더욱 그칠 줄을 모르고 노파의 몸에 달라붙으며 울음소리를 높였다.
이리하여 수일이는 아버지가 생기었다.
그 뒤에도 사흘 동안을 밤낮없이 어머니의 방에서는 아버지와 다투는 싸움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강경히 대드는 목소리는 차츰차츰 애원하는 듯한 구슬픈 소리로 변하여지고 드디어는 수일의 모자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산월이도 인제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수일의 일신이 펴이도록 윤씨네로 입적을 시키도록 결심한 것이다.
그들이 평양을 떠나던 날은 하늘은 맑고 바람은 쌀쌀하여 동산에서 가랑잎은 절벽 아래로 날고 대동강에는 찬물결이 금실금실 일고 있었다. 그날도 전과 다름이 없이 능라도의 수양버들은 흐느적거리고 강가를 조그마한 때생이들이 오락가락 노니는데 강 건너 모래밭에서는 유목떼가 언덕에 걸리어 그것을 끌어내느라 뗏목꾼들이 네다섯 노래를 부르면서 밧줄을 끌고 있었다. 수일이는 이 같은 좋은 경치도 오늘밖에는 다시 영 볼 수 없는가 하면은 슬프고도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대리석의 조상(彫像)처럼 차갑게 굳어진 채로 한마디도 입을 열지를 않았다. 운명의 줄이 당기는 대로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그이다. 옆집에 사는 월선이 복화니 홍도니 계향이니 모든 동무 기생들이며 또 그 온 가족들이 수일의 모자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강언덕 길가까지 전송으로 따라나왔다. 그들이 울기도 하고 수건을 흔들기도 하면서 무어라고 애끓게 부르짖는 것을 보면은 수일이는 인제는 진작 먼 곳으로 떠나고 마는구나 하는 슬픔이 치밀어 펄적 어머니의 몸뚱에 매어달리며 발버둥을 치면서,
"오마니 싫여, 싫여!"
하고 떼를 썼다.
어머니는 듣다가 바락 성을 내어 치맛귀를 뿌리치며 부르짖었다.
"왜 이래."
얼굴은 종잇장같이 새하얗고 신경줄은 패들패들 떨리고 있었다.
노파는 얼른 수일이를 제껴 업고 몸뚱을 저으면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수일이는 노파의 등을 두들기며 곤두박질을 하면서 울어 댄다. 노파는 그제는 달리지를 못하고 그 자리에 엎디치더니 저도 그만 목을 놓아 채여 울었다.
"아이고 도련님 왜 우십네까. 본댁으루 올라가시는데 이 할미만 따러가지를 못합네다그려. 도련님을 떠나서 어떻게 내가 살갔소."
원체 울기를 잘하는 노파는 오늘이야 하고 목을 놓고 서럽게 멋지게 우는지라 수일이는 그만 시무룩하여 다시는 더 울지를 못하였다. 따라가던 사람들도 모두 고름 끝으로 눈물을 훔치었다.
그때에 자동차가 한 대 달려오더니 삐그덕하니 옆에 와서 머문다. 그 안에는 아무도 탄 사람은 없으나 운전수가 내려오더니 공손히 절을 하며,
"대감님 말씀을 듣고 모시러 왔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를 않았습니다."
하였다.
3
편집수일이는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어머니와 같이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본집은 ×동 속 아늑한 곳에 궁전처럼 유란하게 누워 있었다. 행랑을 좌우에 거느린 큰문을 들어서면 바깥에 사랑과 안사랑 두 채가 국화단을 앞에 두고 한 쌍의 학이 마치 날아날 듯이 앉았고 돌담으로 내정과는 사이를 지었는데 큰문 가까이 중대문이 있어 그리로 들어가면 넓은 정원이다. 역시 선조 적에 왕궁으로부터 하사되었다고 전하니만치 정원에는 연못이 있으며 그 주위에는 살구, 배, 오동, 은행, 이런 것들이 우거져 있다. 이 못가의 나무 새를 깊이 들어간 곳에 안채가 기역자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 앞뒤에 버들 아카시아들이 퍼지어야 잎 떨어진 가지가지가 흔들리고 햇빛은 얼룩이 지면서 방방을 비추는 것이다. 온 집안은 아주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수일의 모자는 본집에 닿은 날 안채 대청마루에서 이 집 두 안주인과 그 외 식솔과 첫인사를 바꾸게 되었다. 평양 새집을 맞이한 김천(金泉)집은 나이 오십이라는데 물색 치마를 끌고 집오리처럼 헤매면서 하인이며 여종들의 분부에 수선을 떤다. 첫눈에도 제가 웃어른이라고 앞서가며 서둘기를 좋아하는 눈치가 엿보였다. 김천집은 성효가 김천골에 내려왔을 때에 눈을 건너 잠깐 보았던 천비라는데 그렇게 보자면 정말 몸가짐 말허두 모두가 비방한 데가 적지 않다. 그는 그 후 딴 남편과의 사이에 귀애라는 딸을 하나 낳았으나 성효가 서울에 들어앉게 되자 부랴부랴 올라와 이 집에 늘어붙은 것이다. 김천집은 하나하나 그들 모자를 집안 사람들과 인사를 시키었다. 그리고는 산월이에게 손을 내저어 보이며 능청맞게 이렇게 늘어놓았다. 산월의 인금을 보아하니 역시 제 손아귀에서 놀아날 금새라 적이 안심된 셈이다.
"여보오 새집, 이 크나큰 집을 내 혼자 맡아 볼려니 죽을래야 죽을 짬도 없구려. 이렇게 뼈숭이가 되었다우. 아이구 참 새집은 어쩌문 그리 피어오를 듯이 이쁘우?"
어린 딸 옥기(玉奇)의 손목을 잡고 딴전을 보며 노상 거만스럽게 우쭐먹 서 있는 해주(海州)집은 눈살을 흐밀흐밀하며 이따금 수일의 모자를 흘겨보곤 하였다. 김천집은 이에 더 듣고 보아란 듯이 가슴을 달낙시는 산월의 인물이며 인금을 추켜올렸다. 해주집의 딸 옥기는 입술이 뾰룽하여 동그란 눈을 개울개울거리며 수일과 산월의 신색만 살핀다. 드디어 해주집은 수고로이 새집이 올라왔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제 절 차례가 끝나자 옥기의 손을 끌고 작지 않은 몸을 저으며 저의 모녀가 있는 서쪽 방으로 가버린다. 김천집은 코웃음을 치고 해주집 모녀가 물러가는 모양을 흘겨보더니,
"에그 참 왜 저렇게 씨 안 먹게 생겼누. 매사가 저 모양이구서야……."
그리고 쯧쯧 입맛을 다시다가 넌짓 웃음을 띄우고 수일의 쪽으로 다가서더니 부쩍 안아 올렸다.
"휘―야 내 아들 내 아들 우리 도련님이로군그래."
그러나 의외로 무거웠던 모양이다. 숨을 씨글거리며 등뒤에 서 있는 귀애(貴愛)더러,
"내야 네라도 늘 도련님과 놀어야 한다. 우리 도련님도 귀애랑 잘 놀어야 하우."
추켜올려진 수일이는 김천집 어깨 너머로 제 어머니가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서 파들파들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몸을 흔들어 싫다는 시늉을 하자 김천집은 객쩍은 듯이 내려놓으며,
"낯이 선지 나를 싫다능구먼, 도련님이."
수일이는 어머니의 기색을 슬금슬금 엿보면서 귀애 옆으로 다가갔다. 귀애가 방긋 웃으며 손을 끌어 맞이하므로 그 옆에 우두커니 가 서서 좀 안된 듯이 김천집과 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저것 보우."
그제야 김천집은 너털웃음을 던지었다.
"그래 어린애는 어린애 동무가 있어야 한다고 하질 않으우. 저것 보우…… 얘 귀애야, 어서 도련님과 놀렴."
그러더니,
"새집―"
하고 새삼스러운 듯이 산월이 쪽으로 돌아선다.
"크나큰 집안이 이렇게 언제나 빈집 같어 어린애들이 적적해한다우. 그래 이따금 귀애가 갑갑해하면 옥기한테라도 놀러 갔다 오려므나 하고 보내지요. 아 그러면 옥기라니 멱 찔린 명아리처럼 못되게 굴어 울면서 쫓겨오질 않수. 그러구 그 해주집이 또 여간하우……."
"……"
"오늘두 그래 또 어딜 싸다니러 나갈 모양이드군. 그래두 이런 큰집에 들어앉아 있는 아낙네라니 좀 체면이 있어야 합니다. 아 내가 이렇게 혼자서 손이 못 돌아 무진 애를 써두 그저 아는 척 모르는 척 막무가내로군그래…… 그러니 여보 새집 대감님이 나를 보시면은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우. 여보게 김천집, 임자가 없으면 이 집안이 원 무슨 꼴이 될지 모르겠네……."
김천집은 제 김에 벌죽 웃는다. 그는 바깥에만 나가면 아주 이 집 대방 마님이나 되는 성시피 포장을 놓고 당기며 집안에서는 무슨 말에나 첫 허두에 대감님 대감님 하고 남작을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대감 자신은 집안에 들어와도 이 김천집보고 이렇다는 말 한마디 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 내가 혼자서 모든 가도를 맡어 보노라니 마르지유 말라."
"아이고 대봐!"
한참 신이 나서 말하는데 산월이가 돌연 날카롭게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러니 자기 딴 소리는 귀담아듣지도 않던 모양이다. 김천집도 무슨 영문인가 의아스러이 돌아다보니 바로 귀애와 수일이가 손을 마주잡고 토방가를 내려가려는 참이다.
"어델 가?"
어머니의 눈초리는 엄할 뿐더러 애원하는 듯도 하며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어쩐지 부드러움이 잠겨 있었다. 수일이는 어머니의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무세찬 시선에 등줄을 잡힌 것처럼 되어 조금도 더 내려갈 수가 없었다.
김천집은 하도 어이가 없어 잠시 먹먹히 이 모자를 보고 섰더니,
'내 원 참 별꼴을 다 보겠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제풀에 부아가 나서 꼬리를 저으며 제 방으로 돌아가다가 가분작이 돌아서더니 퉁명스럽게 부르짖었다.
"귀애야, 빨리 오너라. 얘 귀애 빨리 와!"
수일의 모자는 그제야 여종의 지시로 동쪽에 꺾어 돌린 두 칸 방에 인도되었다. 컴컴한 방이었다. 저녁 햇빛이 아카시아나무 가지 사이로 영창에 거밀거밀 비치는데 그것이 유별하게도 수일의 모자에게는 무섭게 보였다. 산월이는 수일이를 끼어안고 무엇 하러 이 먼 곳에를 왔던가고 서러워 어이할 바를 모르면서 흐득흐득 느껴 울었다. 그러나 수일이는 너무도 곤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품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포근히 잠이 들고 말았다.
4
편집그러나 하루하루 날이 가고 오는 사이에는 너무 부자연한 공포감도 조금씩 사라지어 수일이는 귀애와도 서로 사이 좋게 놀게 되고 어머니도 이 두 어린애가 서로 좋아라고 토방가에 내려가 노는 것도 거진 심상히 여기게 되었다. 그래도 산월이는 이 집 사람들이 공연히 그리고 괴벽스럽게도 자기네 모자를 미워하는 것 같은 느낌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천진난만한 귀애를 산월이도 애끊게 사랑하게 되고 수일이 자신도 더욱 귀애를 따르며 쓸쓸함과 외로움을 귀애와 더불어 끄게 되는 것이다. 귀애는 제비처럼 날쌔고 총명하며 나무 사이사이를 나는 듯이 달음질치며 다녔다. 그리고 대감집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종알종알 펴놓기를 즐겨 하였다.
"귀애네 오마니는 왜 그렇게 분주살 피우니?"
하고 수일이가 하루는 물은 적이 있다.
"얘 봐, 어머니를 오마니라네."
귀애는 샛별같이 맑은 눈을 굴리며 웃었다.
"그럼 우리 어머니가 분주살 피우잖구 어쩌겠니. 그래두 이 집에서는 대감님 다음가는 어른이거든."
귀애의 말에 의하면 안사랑에 와서 늘 누워 구는 김대감과 옥기의 어머니 해주집과는 수상한 사이인데 수일이는 커야만 그 뜻을 알리라고 뽐을 내었다. 이 안채에는 큰방에 또한 금순이라는 아주 말없고 침착한 소녀가 있었다. 그는 대방 마님의 소생으로 늘 방 안 구석에 들어박혀서 햇빛도 보러 나오지 않는 것은 그의 죽은 어머니와 이번 동경서 객사한 오빠의 귀신들이 접한 탓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으며 각색놀음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면서 윗동생처럼 나무라기도 하고 얼러대기도 하였다.
귀애가 학교에 가고 없는 때에는 수일이는 넓은 뜰 한구석에서 돌장난도 하고 나뭇잎으로 배를 삼아 연못에 띄우고 혼자 손바닥을 자락자락 치면서 놀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방에 쓸쓸히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으며 가끔 수일의 동정을 몸을 들어 살피곤 한다. 가을바람이 불어 정원에는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었다. 이것을 쓸어 모은 정직(庭直)이가 덕쇠라는 영감으로 대감네 선대 적부터의 하인이라는데, 허리는 굽고 이는 빠졌어도 극진히 수일이 앞뒤를 보아 주며 소중히 받들었다. 수일이도 덕쇠 영감을 따르게 되어 뜰 안에 보이기만 하면 비를 빼앗아 메고 달아난다. 그럴 때마다 지난날 평양의 그리운 동산에서 노파와 같이 달리며 놀던 생각이 문득문득 일어나곤 하였다. 영감은 한자리에 서서 허리만 굽실굽실 바라보며 웃는다. 수일이는 제 김에 멋쩍어져 내어던지고 서먹하니 섰다가 제 발밑을 이름 모를 벌레 하나가 기어가는 것을 이윽히 보고 굽어 앉는다. 영감은 그 뒤를 엉금엉금 걸어갔다.
그러나 밤중에 어머니와 한자리에 누웠을 때에는 수일이는 어떻게 하면 슬픈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마음 평안케 할 수 있을지 계교가 망연하였다. 어머니는 밤중에도 두서없는 생각, 밑도 끝도 없는 걱정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반측하며 풀깃 잠이 들었다가도 무슨 사나운 꿈에 화닥닥 깨었다. 역시 그는 수일이를 데리고 올라온 첫날부터 자기네 모자의 신상에 대하여 필요 이상 공포감에 애둘리어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불안과 후회의 염(念)에서 떠날 수 없는 터이었다. 옆에서 아무 철도 없이 잠이 든 수일이가 인제는 제 아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일어날 때 산월이는 더욱 마음이 아득하고 아팠다.
수일이가 밤중에 눈이 뜨이어 보면 어머니는 베개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흑흑 느껴 우는 적이 많았다. 그럴 때 수일이는 어머니의 몸에 바싹 달라붙으며 구슬픈 소리로 속삭이었다.
"응 어머니 왜 울어."
"아―니 울긴 왜 울꼬."
산월이는 베개에서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좌우로 머리를 흔들었다.
"꿈을 躥?"
"아―니."
"응 어머니, 그럼 무슨 이야기 해주어."
"밤이 깊은데 어서 자야지."
"싫여 싫여 응."
수일이는 한사코 조른다. 그래야 어머니를 슬픔에서 건질 뿐더러 또 어머니도 오히려 그의 이 소청을 속으로 기쁘게 알고 들어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눈물진 얼굴을 보일세라 버럭 수일의 몸을 끌어안고 숨소리를 갖추었다. 산월이는 역시 이 밤이 그들 모자를 축복한 채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새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나 수일이는 어머니의 가슴속에 깊이 머리를 파묻고 산월이는 눈을 스르르 감은 채 혼자서 중얼거리듯 나직나직한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수일아, 어떤 깊고 깊은 산골에 가난한 홀어머니와 어린애들 세 식구가 살고 있었구나. 어머니는 그날도 두 어린애를 집에 두고 열두 고개나 넘어서 외딴 마을에 삯일을 하러 갔드랜다."
"응."
"그래 저녁해가 뉘엿뉘엿 질 때에 어머니는 쌀을 한 줌 얻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구나. 그런데 첫 고개에 왔을 때 커다란 범 한 마리가 날아나드니 네 저고리를 주지 않으면 잡어먹겠다 하드래누나. 어머니는 질겁하야 목숨만 살려 달라고 웃저고리를 얼른 벗어 주지 않었겠니. 그랬드니 이 범이란 놈이 또 둘째 고개엘 날아나서 이번은 치마를 주어야 안 잡어먹겠다 하드래누나……."
"응."
"그래 이렁저렁 고개를 넘을 때마다 어머니는 저고리, 치마, 바지, 버선 모두 옷가지를 빼앗기고 마지막 고개에 가서는 그만 불쌍하게도 범에게 잡혀먹히었단다. 그러군 이놈의 범은 주섬주섬 모두 어머니의 의복을 주워 입고 쌀주머니를 쥐고 어린애들이 있는 집으로 찾아갔구나. 아가 아가 문 열어 다고, 어머니가 왔다 하면서 범은 문을 두들기었단다."
물론 수일이는 이 무서운 옛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이 이야기에 나오는 두 어린애들의 얼굴까지 눈앞에 선할 만큼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어머니와 꼭 둘이서 끼어안고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포근한 행복감에 언제나 늘 듣는 이 옛말도 전혀 싫증이 나지를 않았다. 뿐더러 그는 이 옛말에 오빠로 나오는 어린애가 들을수록 정다웠고 자랑스러웠다. 어린 누이동생은 어머니가 왔다고 좋아라고 했으나 지혜 깊은 어린 오빠는 목소리가 수상타 하여 문걸쇠를 열어 주지 않는다.
"거 누군지 우리 어머니 목소리가 아니다 얘! 오라버니가 그랬지 응 어머니."
하고 수일이는 비로소 아는 표시를 한다. 그적엔 어머니도 구슬픈 마음이 별안간 풀리어,
"우리 수일이 봐 아주 옛말을 다 외구 있네. 어쩌면 그렇게 정신이 좋으니?"
하며 잔등을 쳐주면서 기특해한다. 그리고는 어린애처럼 마음이 흥건해지어 목소리를 굳게 뽑아 범의 소리로 꾸미고,
"아가 아가 숫내를 먹어서 그렇구나."
"그럼 손을 보자 얘."
하고 수일이는 얼른 놓치지 않고 물어 본다.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않고 눈을 감은 채로 바른손을 수일에게 내어민다. 수일이는 킥킥 웃으며 어머니의 고운 손을 만지작거리고는,
"우리 어머니 손은 이보다 더 곱다 얘."
"아가 아가 일하다 재가 묻어서 그렇구나."
"그럼 발을 보자 얘."
수일이는 이번은 어머니의 왼손을 발이라 하고 살펴본다.
"우리 어머니 발은 이렇게 더럽지 않다 얘."
"아가 아가 신 벗고 흙마당으로 당겨서 그렇구나. 어서 그러지 말고 문 열어라, 쌀 갖고 왔다."
하면서 어머니는 한번 그 사랑스런 눈을 흡뜨고 으흥! 하고 으르렁대었다. 수일이는 어머니의 이런 모양이 우스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캐들캐들 웃는다. 어머니는 다시 옛말을 계속하였다.
"범이 암만 능청맞게 거즛말을 꾸며도 어린애가 속지를 않으니 그만 문을 뚫고 들어가랴는 생각이 났지. 그래 문을 세차게 댕기는 바람에 오라반은 혼쌀이 나서 재빨리 뒷문으로 누이동생을 끌고 새어 나가 뒤뜰에 있는 높은 오동나무 우에 올라갔구나. 범은 문을 뚫고 들어와 보니 어린애들의 간 곳이 있나. 방만을 이 구석 저 구석 찾어보아도 모르거든. 그래 하는 수 없이 뒤뜰에 나와 어정어정 찾어 돌아가 애들이 올라간 나무 밑 못가엘 왔구나. 범은 그만 펄쩍 놀라 눈을 흡뜨고 멈츳 섰단다. 저녁햇빛이 빨갛게 비친 못물 속에 두 어린애가 숨어 있단 말이지. 옳지 하고 범은 한 번 크다랗게 으앙 하구서 덥석 못물 속에 뛰어들어갔단다. 그리구는 사지를 가지고 흔탕진탕으로 덤볐구나. 그러나 어린애들이 보이나, 어느 새에 간 곳이 없지. 그래 범은 다시 뛰어들려고 두 발을 쳐들고 으르렁거리는데 어린 누이동생이 그만 참지를 못하고 해해 하고 웃어 대었단다. 범이 놀라 쳐다보니 높은 오동나무에 두 어린애가 올라가 있지 않간……."
그러자 어머니는 다시 범 목소리를 내어,
"아가 아가 어떻게 올라갔니?"
수일이는,
"앞집 뒷집 가서 챙기름 얻어다 바르고 올라왔지."
하고 가르쳐 주었다. 수일이는 오빠 대신이 되어 침착하게도 이 같은 지혜 있는 대답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아가 아가 암만해도 미끄러져 못 올라가겠구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이번은 연달아,
"애게 저런 바보야."
하고 이번에는 어린 누이동생으로 변하여 범에게 경솔하게도 묘책을 가르친다.
"앞집 뒷집 가서 도끼 얻어다 찍으면서 올라오지…… 그랬구나. 그래 인제는 큰일이 났단다. 범은 도끼를 얻어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나무를 찍어 발걸이를 하면서 올라오누나."
그제는 수일이는 조그마한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드리는 시늉을 하였다.
"하느님 불쌍한 우리를 살구어 주십시오. 우리를 살구어 주실려면 쇠사슬을 내리어 주시고 죽일려면 썩은 사슬을 내리어 주셔요……."
수일이는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사이에 그만 이 불쌍한 남매가 자기네 모자의 신세와 같은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조그마한 가슴이 미어질 듯하여 소리를 내어 슬프게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어 걷잡을 길이 없었다.
"오― 가엾어라 가엾어."
어머니도 따라 울음 섞인 목소리로 수일이를 어루만진다.
"울기는 왜 우니, 수일아 우리들두 하느님이 몰라보시겠니. 왜 몰라보시겠니…… 옛말에도 두 굵은 쇠사슬이 내려와 어린애 둘이를 살려 주시지 않든…… 오, 가엾어라. 괜히 내가 네 마음을 언짢게 하였구나. 빨리 우리 또 자자 응. 무에 서러울 게 있니. 하느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데."
하니 수일이는 더욱더 소리를 높여 울었다.
산월이는 자기까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가까스로 가다듬어 웃는 낯까지 억지로 지으려고 애쓰며,
"알누리 우리 수일이 우는 것 봐라…… 왜 우느냐, 울지 말어 응. 그래 범이란 놈은 썩은 쇠사슬을 받어 타고 올라가다가 중천에서 쑥대밭에 떨어져 밑구녕이 찔리어 죽지를 않든…… 알누리깔누리, 우리 수일이 이제 웃을래네……."
그제는 수일이도 손으로 눈을 비비적거리며 금방이라도 웃을 듯 웃을 듯하면서,
"오라반은 하늘에 올라가 달님이 되었나?"
"그렇단다."
"그럼 작은 누이는?"
"햇님이 되었단다."
"햇님은 점적해서 눈이 시우리나?"
"그렇단다. 그래 여자니깐 점적하지 않간. 그래 우리들이 보면 눈이 부시단다."
그러는 사이 벌써 동창은 밝아 왔다.
날이 새어 저녁쯤하여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아버지 윤성효가 어머니 방에 나타났다. 남작은 그 당시 운니동에 월화라는 기생첩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본집서 머물고 가는 일은 아주 적으며 또 그런 일이 설혹 있다 치더라도 그때마다 김천집과 해주집과 사이에는 한바탕씩 법석한 싸움이 벌어지곤 하였다. 그것은 대체로 남작이 해주집에서 자리를 하게 되어 김천집의 투기를 사기 때문이다. 두툼한 입을 꾹 다물고 거무테테한 볼작찌를 흐밀흐밀 움직일 따름, 아버지는 산월의 방에 와서도 아무 말 한마디 하는 길이 없었다. 또 산월이는 산월이로 한편 구석에 박힌 채 말을 건네지도 않고 눈을 거듭떠 보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수일이를 불러다 놓고 한참 동안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는 끙 하고 일어서서는 사랑으로 나가 버린다. 산월이가 어떤 때 하도 참지를 못하고 괴로운 표시를 하면은,
"무얼 그렇게 있나. 너는 수일이만 소중히 기르면 되는 거야."
하고 두말 안팎에 눌러 버린다.
그날은 또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수일이를 듬쑥 끌어안더니 음칠하고 일어선다. 수일이는 가슴이 달칵 내려앉았으나 그렇다고 어쩐지 울기까지는 못 되었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가 저를 다시없이 사랑하고 귀해하는 것을 알 뿐더러 무섭기는 할망정 아버지에게 내심 막연한 호의를 품고 있는 터이다. 아버지는 방을 나와 움치럭움치럭 중대문 쪽을 향하여 수일이를 안은 채 정원을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수일이는 연못가에까지 와서 시퍼런 못물을 보니 새삼스레 어젯밤 어머니와 같이 주고받은 옛말이 생각이 나서 놀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도 바로 옛말에 나오는 어린 두 남매가 피신하였던 바로 그와 같은 오동나무 한 채가 못가 위에 높이 솟아 있었다.
"이놈 무얼 보냐?"
아버지는 수상한 듯이 수일이를 내려다본다. 수일이는 이번은 흘금흘금 살피는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그만 머리가 화끈하고 등줄이 쭈뼛함을 느끼었다. 아버지의 깊숙하나 번질번질한 눈이라든지 허옇게 뻗친 콧수염이라든지 굵은 목이라든지가 갈데없이 옛말에 나오는 범으로 보인 것이다.
"아바지 범이구나 범."
수일이는 어느새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놈 그게 무슨 소리냐."
남작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주춤 멈추어 섰다. 수일이는 외려 신이 나서,
"아바지 범 아니가."
"아바지가 아니고 아버지라는데 이놈은 원 평양 상곳에 두었더니……."
"그래 아버지 범 아니가, 수염도 있구 눈도 같다애."
"이놈 이놈을 봤나."
하고 남작은 하도 어이가 없어 말을 못 하다가 가분작이 우스워지어 헛허허 하고 늘어지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불쌍한 어머니를 잡어먹어두 범은 내종엔 중앙에서 떨어져 죽어."
"무어?"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래지어 되짚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수일이는 그제야 겁이 버럭 생기었다. 그래서 머리를 푹 숙이고 시무룩하여 아무 대답도 못 한다.
남작은 하여간 엉뚱강산 이 이야기가 하도 우스워서 또 두어 번 크게 소리를 내어 웃고 전에 없는 만족한 축복에 찬 마음으로 안사랑을 향하여 다시 움치럭움치럭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5
편집시절을 못 맞은 대감들이 시세에까지 어두운데 타고난 욕심은 길길이 높아 턱없고 허황한 사업에 손을 대었다는 앞뒤를 연달아 번뜻하면 넘어가던 그 당시의 일이라 반석같이 아직도 튼튼한 윤대감네 안사랑에는 못 살게 된 여러 고귀한 사람들이 늙어빠진 개떼처럼 모여 와서는 누워 굴고 있었다. 어떤 이는 보료 위에 되사리고 앉아 담배만 빨고 어떤 이는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고담 읽듯 하고 어떤 이는 명주주의(明紬周衣)를 돌떠구에 걸고는 목침을 베고 반듯이 누워 혼자서 독장사구구를 한다. 그러나 이 안사랑에는 타구가 없는지라 한결같이 모두가 문밖에 경쟁이나 하는 듯이 탁탁 가래침을 내뱉기 때문에 저녁때쯤만 되면 구팡가는 하얗게 되곤 하였다. 때로는 그들은 벌떡 일어나 앉아 눈이 벌개지어 심상치 않게 주반을 쭈럭쭈럭하며 계구(計究) 다툼들을 한다. 또 너무 그러기도 시진할 때는 옛날의 정사이며 시속의 변천이며를 호기 좋은 목소리로 고담준론도 하여 본다. 그러나 대저로 말끝은 또다시 구름을 잡은 듯한 '꿈' 이야기로 변하는데 그래도 그들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금시로 큰 수나 벌어지는 것처럼 엉덩이를 들먹거린다. 그런 중에도 토지 경기나 금광 이야기가 되면 귀를 쭝깃하고서 그 좋은 말솜씨요 허두로 '아―암'이니 '그렇지'니 '여부 있나'를 연방하며 '아― 여보 왕대감', '문대감 보시우', '차대감 그렇습니다' 등 말이 어지간히 거창하다. 가장 손쉽기는 시재로 굉장한 금광을 잡아 재기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은 다 제각기 막대한 계획을 속에 품고 있거니 하고 생각지 않고는 잠시라도 견딜 수가 없는 인간들이다. 그러며 지금에 와서는 윤대감이야말로 그들이 비빌 수 있는 큰 언덕지였다.
그날도 박대감은 자기가 발견하였다는 금광포장을 지저분히 하고 오늘만은 기어코 윤남작을 붙들어 이 금광을 채굴토록 권한다고 노상 야단이었다. 그러나 이 박대감의 금광 이야기만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너무도 빈번히 들어온지라 그들도 인제는 외려 시산하고 귀찮기까지 하여 대꾸 하나 놓지 않고 혼자 내버려두었다. 오늘도 노 기다리었으나 아직 윤남작이 그림자도 얼씬하지를 않으므로 박대감도 또 어지간히 근기가 지쳐 혼자소리로,
"허― 오늘두 원 이 대감이 운니동 집에서 못 나오시는 모양인가 허―"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목침을 베고 커다란 눈을 번득번득씨고 있던 감때사나운 곰보 김대감이 또 무슨 흉한 생각이 들었던지 벌떡 뒤채어 엎데이더니,
"그래 박대감."
하고 헤― 웃는다. 박대감은 속이 뜨금하였다. 김대감으로 말하면 이 집 대방 마님의 오라비로 한때는 그 영명이 어엿하던 인물이었으나 인제 와서는 막대한 전지와 산림도 투기에 모두 잃어버리고 죽은 누이 집 안사랑에 이렇게 누워 구는 가엾은 신세였다.
그래도 그는 여느 낙백(落魄)한 대감들과는 달라 태평세월이며 언제나 뒤에서 껄껄거리며 비웃고만 살아간다. 그리고 그가 이 집 사랑에서 밤에도 잠자리를 보는 것은 아마 해주집과 심상치 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결같이 의심을 받고 있다.
"왜 그러시우."
박대감은 미타하여 코를 한번 훌쩍씨며 물었다.
"거― 박대감 품고 다니는 광석이…… 또 소전(小田)광산에서 집어 온 거나 아니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허시우."
박대감은 눈이 휘둥그래지며 부르짖었다.
"헤― 내가 참말 실수로군 실수야."
"김대감은 말을 듣지 않고 자시는 모양이구려."
박대감은 적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내가 뭐라 말했길래 그러신단 말이오. 내 말인즉 허니 광석의 성질이 소전금광 것보다 못허지를 않다는 것보다 내 광은 소전금광 쪽과는 아주 떨어져 함경도 쪽에 있습니다, 함경도 쪽에요. 그러기에 분석허든 사람도 깜짝 놀라면서 이거 소전금광보다 나으면 낫구려 허드란 말이오."
"허허― 거 참 그러기에 내가 말 실수라 허질 않소."
이렇게 김대감은 더 박대감의 비위를 긁으며 턱어리를 극정극정 부빈다. 그리고 헤헤헤 하고 다시 웃자 여느 대감들도 덩달아 깰깰 웃어 댄다. 그러니 박대감은 어차피 더 심사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농지거리를 해도 유분수요, 김대감! 말을 삼가시우."
하고 그는 한마디 오금을 박고는 아주 한심타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김대감도 인제는 다 된 모양이오. 옛날에 대관 안을 드나들던 시절의 당신이 저절로 생각이 나우. 그 등등하던 호기는 다 어데 두고 사람의 일만 그르치게 헌단 말이오. 김대감이 매형을 잘 권하야 이런 노다지가 끓는 유리한 사업에 나서도록 허기로서니 당신이 벼락을 맞을 일도 아니요, 또 내 그 은공을 몰라볼 사람도 아니외다."
"허― 이것 참."
하고 김대감은 부르짖으며 별안간 벌거덕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누워 있던 박대감도 되사리고 앉았던 차대감도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던 문대감도 너나할것없이 모두들 눈이 뚱그래 반색을 하며 박대감 쪽을 바라본다. 박대감은 그래서 처음에는 무슨 곡절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으나 내심은 어지간히 낭패하였다. 이 양반들이 제가 한 말에 이제 새삼스러이 환호할 리는 없으니 아마 늘 그들이 일제히 저를 투기하여 조롱함이리라 하였다.
"오늘은 참 희한한 일인데."
하고 문대감은 돋보기를 벗어 던진다.
윤남작이 수일이를 안고 박대감 등뒤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문 열리는 소리에 그제야 홱 돌아다보고 박대감도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서 그만 그 자리에 벌쩍 몸을 젖히며 호기 있게 웃어 대었다.
"헛허허 기다렸습니다. 기다려서야 내가 기어쿠 붙들었구려……."
아버지의 팔에 안긴 채 수일이는 사랑방의 이 이상한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작은 언제나 하는 버릇으로 방 안에 들어와서도 머리맡에 선 채로 한참 동안 귀를 쭝깃하고 있을 뿐이다.
"복이 있어. 마츰 잘 오셨소, 잘 오셨어."
하며 김대감은 박대감을 놀리는 어조로 매부 되는 윤남작을 향하여 떠들어 댄다.
"이번에는 아마 큰 수가 떨어지는가 보우. 아 원 박대감이 그 유명한 평안도 소전금광과 꼬옥 같은 금광을 함경도에서 발견하였다는구려. 아 박대감 옳지요? 그래 매형, 기왕이면 한번 발벗고 금광판으로 나서 보시구려…… 박대감께서두 나를 몰라보시지 않는다고 하시니, 헤헤헤 어디 이놈 박대감 덕분에 또 한번 사는 수 나나 봅시다그려…… 아 그런데 그 안은 놈이 평양 새집이 낳은 애요? 그놈 잘생겼다, 잘생겼어."
"허― 참 신수 좋은데."
차대감도 머리를 끄덕여 보인다.
"김대감!"
하고 박대감은 성이 시퍼렇게 나서 마침내 부르짖었다.
"말이라니 툭 해도 다르고 탁 해도 다릇습니다. 왜 그렇게밖엔 말을 못 하시우. 그게 무슨 사람을 망치련 말법이오?"
윤대감이 긴 장죽을 놋재떨이에 땅땅 두들기며 잠시 조용하여지자 윤남작은 혼자서 벙싯 웃었다. 그는 아마 방 안이 조용하여지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뒤에 연달아 수일이를 가리키면서 아주 우스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키키키 하고 웃어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놈 이놈이."
하고 그는 아직도 아까의 유쾌턴 마음을 끄지 못한 듯이 혼자 웃어 대었다.
"나를 보고 막 범이라구 합디다, 이놈이……."
수일이는 저를 두고 하는 말이라 버럭 겁이 나서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박았다. 사실도 이렇게 처음 보는 늙은이들이 사나운 바람에 빨래가 휘날리듯 미상불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늙은 대감들은 속으로는 '범이라니 범 중에도 가장 몹쓸 놈일지 모르지' 하고 생각하였지마는 차대감은 윤남작에게 비위를 맞추는 모양으로,
"허허 범이라군 좀 지나쳤는데……."
하였다.
수일이는 그 말에 무엇이 무서운지 그만 울기 시작하였다.
"이놈 이놈."
남작은 수일이를 쥐고 흔들었다.
"허― 이놈 보게 왜 우는 거야…… 그럼 내 이놈을 갖다 두고 또 나오리다."
하며 그는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사랑방으로부터 나가려고 하였다. 사실 그는 이 늙은 식객들과 잠시라도 마주앉기가 싫어 일상은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지만 오늘은 무슨 생각엔지 아마 수일의 자랑에 이곳으로 발길이 옮겨 왔던 모양이다.
"아 윤대감!"
"윤대감!"
하고 방 안 대감들은 허겁지겁 부르짖었다. 그들도 그렇게 신통치는 못한 계구(計究)나 그래도 이 윤남작을 붙들고 한바탕씩 늘어놓을 말이 제각각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박대감은 질겁을 하여 일어나 황황히 그 뒤를 따라나갔다. 곰보 김대감은 눈밑을 그밀그밀하면서,
"원 누이네마저 망할려는지 범이 스라서니를 낳었구먼. 놈의 애가 어디 있담. 거 제 어미 평양집은 쉽지 않은 인물이드만……."
"아 거 그래 정말 윤대감의 씨인 모양입더니까."
하고 문대감이 까맣게 때가 묻은 수건으로 콧물을 닦으며 묻는다.
그래 김대감은 갑자기 심사가 좋지 않아져 변덕스럽게 눈을 떡 버치고,
"거야 내가 알겠소. 원 별일을 다 물으시우."
우리 주인공의 아버지 윤성효는 참으로 이상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누구보고나 물을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아 원 그 대감이야'하면서 다시는 말도 말자는 듯이 손을 내어 저으면서 달아나는 것이었다. 다만 그 어지간히 큰 몸집은 좀 비(肥)지어 깨끗지 못한 인상을 주기도 하나 그러나 묵직한 입과 무엇인가를 늘 궁량하는 듯한 눈은 사람을 넉넉히 위압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더욱이 그의 컴컴한 과거와 불요불굴의 피는 때로는 남의 등줄을 쭈뼛하게까지 한다. 그렇기에 서도(西道)에는 옛날의 악관을 비방하는 말에 '이놈 네가 네 삼촌을 몰라보고 불공학대(不恭虐待)하다니 썩 죽일 놈이로다' 하고 어떤 악관이 무고한 백성을 잡아다 돈을 바치라고 고형을 주자 백성은 '소인은 삼대독자 외아들이올시다' 하였더라는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이 악관이 바로 윤성효라고 일일이 논거까지 세우며 어느 고사가(故事家)나 못지않게 증명까지 하려 드는 것이다. 어쨌든 이만한 전설의 주인공까지 될 만큼 대담도 하고 컴컴도 하고 욕심도 남달리 사납고 참혹스러이 몹쓸기까지 하다. 다행히 우리의 수일이가 그를 범이라고 불렀으니 범을 빌려 논지하자면 표범의 잔악을 품고 호랑이가 깊은 숲에 몸을 감추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용의주도하게 사면을 살피고 한번 숲을 나오기만 하면 소기(所企)를 향하여 돌진 맥진하는 성미였다. 그러므로 아들 수일이가 자기를 불러 범이라 하였을 때 슬며시 기쁜 듯하였던 것이다. 역시 내 아들이로군 하였다. 그는 본시부터도 범이라는 짐승을 퍽 좋아하여서 바깥 사랑 같은 데는 제창 호피를 두어 장 윗목에 걸었으며 또 보료삼아 깔기도 하고 있다. 그는 언제인가 한번 술이 만취하였을 때 서도서 정사턴 이야기가 나오자,
"허 평안도 상것들을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하지만 숲을 나온 범이 무엇이 무서울 것이 있담. 맹호복림(猛虎伏林)이야 합지요."
하고 기세를 올리었다고 전하지만 과연 믿을 말인지 아닌지는 모르되 미상불 이 윤성효를 이해케 하는 지언이랄 수밖에 없겠다. 그러므로 윤성효는 마치 복호(伏虎)처럼 호심탐탐히 좋은 계획과 사업을 찾지 않음도 아니나 다만 아직 시기가 당도하지를 않았을 따름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의 대 윤성효가 여기 안사랑에 와서 누워 구는 늙은 축들과 손을 잡고 사업을 일으킨다든가 함은 아예 있지도 못할 일이다.
"못난 놈이라니 그렇게 울 게 무에 있담."
윤남작은 수일이를 안은 채 국화단 앞에 내려서며 꾸짖었다.
"나를 보고 이놈 범이라 하고 범의 자식은 임마 울지를 않고 으르렁씨는 법이다."
"윤대감 이번만은 정말이유,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돌아다보지를 않아도 따라나온 박대감임에 틀림없었다. 윤남작은 두꺼비처럼 고개를 푹 박은 채 멈춰 섰다.
"사실 말루 금광이라면 허황한 것처럼 생각을 하시는지 몰라두 이것만은 내 장담합니다. 분석하던 사람이 다 글쎄 눈이 뚱그래서 소전금광 것보다 나으면 낫다고 그러는구려. 그래 내 막 대감 댁으로 달려왔습니다. 참말 딴사람에 넘기기에는 아깝습니다, 아까워…… 그리구 이제부터는 우리들두 금광을 해야 합네다. 좋은 사업도 자꾸 일쿠어 나가야 하지요. 생각해 보시구려. 아 금광이란 금광은 죄다 양귀자(洋鬼子)가 아니면……."
"과연 대감 말이 옳은 말이오. 그럼 내 또 나오겠소."
남작은 다시 움치럭움치럭 걷기 시작하였다. 수일이는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허겁지겁 달라붙어 야단을 대는 불쌍한 박대감을 머엉하니 보았다.
"아 원 대감, 또 그러시면서 달어나시지 말구 좀 조용히 들어 주시오."
박대감은 아주 큰일이 나서 애걸복걸이다.
"윤대감! 윤대감! 소전금광서는 하루에 십만 원을 캐어 냅니다. 이건 그것보다 나으면 나어요…… 자 내 광석을, 광석을 보여 드리지요……."
"가만 계시우. 내 또 나온다니까."
하면서 윤대감은 눈길 하나 까딱하지 않고 중대문을 선뜻 들어서려 하였다. 박대감은 너무 억막중에 급하여 남작 앞길을 질러 막으며 나섰다. 남작은 가분작이 눈을 부릅뜨고 박대감을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대감! 그래 안집에까지 들어올 생각이오?"
박대감은 아주 얼혼이 나가서 허리를 굽신굽신하며,
"허 내 너무 급한 생각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더니 열없어 물러서면서,
"……그 그럼 내 안사랑에 가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이번만은……."
윤대감은 대답도 없이 벌써 정원에 들어섰다. 못가에서는 덕쇠 영감이 비를 쉬고 손을 훅훅 불고 있었다. 황금빛 은행잎이 나풀나풀 못물 위에 떨어지고 있다. 대감은 이에 수일이를 내려놓더니 덕쇠를 불러 분부하는 것이다.
"행랑에 들러 자동차를 불러오라게!"
그러더니 해주집이 있는 방 쪽으로 다시 두꺼비처럼 움치럭움치럭 걸어간다. 수일이는 한참 멀거니 그의 뒤를 바라보다가 그만 한달음에 어머니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다시 저희들 방으로 가지 않음이 어쩐지 서먹하게도 생각되었던 것이다.
6
편집어느덧 추운 겨울이 북한산성을 넘어 들어와 정원의 나무숲도 아주 벌거숭이 되고 가지가지 사이로 멀리 흰눈이 쌓인 멧봉이 보이는 절기가 되었다. 어떤 때 아침에 일어나 보면 놀랍게도 아카시아, 살구, 배, 은행나무며 지붕도 뜰도 연못도 담장도 모두 눈이 부시게 하얗게 단장을 하고 있다. 이런 날은 수일이는 더욱 기뻤다. 술벅술벅 눈을 쓸어 모으는 덕쇠 영감을 붙들어 가지에 하얗게 눈꽃이 핀 살구 나무를 흔들어 달래며 저는 그 옆을 달음질쳐 돌면서 아, 아, 아 눈이 온다, 눈이 온다 하며 떠들어 대었다. 영감도 나중에는 신이 나 눈벼락을 머리와 어깨에 하얗게 쓰면서 나무를 얼싸안고 버둥버둥대며 웃었다.
그렇다. 요즘은 별반 집안 사람에도 그렇게 무섬을 타지 않게 되니 수일이는 자연 사람을 그리게 된다. 그러므로 바깥이 추워 놀 수가 없으면 그는 귀애를 따라 큰방 금순 누나한테도 놀러 가곤 하였다. 금순이는 겨우 열서넛밖에 안 된 소녀이나 조금도 명랑한 웃음빛을 띠는 길이 없다. 언제나 시무룩하니 앉아서 나 어린 수일이와 귀애가 노는 품을 엿보다가 간혹 킥킥 웃어 댄다. 언제인가는 금순이는 수일의 방에 찾아와서 흘깃 수일이를 보고 제가 서툰 솜씨로 수놓은 버선을 던지고는 산월이가 붙드는데도 아무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자기 큰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수일이는 이 금순 누나에게 왜 그런지 불쌍한 생각도 들면서 일변 정다움도 금치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일이는 옥기와는 동무가 되지를 못하였다. 특히 옥기의 얄뚱미로운 눈이 마음에 거슬리었다. 언제나 눈을 가지고 핼끔핼끔 보다가는, 둘이 눈이 마주치면 눈 가장을 깔낏하고 추켜올리고 딴전을 보는 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옥기는 한시라도 어머니인 해주집 치맛귀를 떨어지는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수일이가 달음질을 치다가 돌부리를 걷어차고 넘어지자 마침 어머니와 같이 외출을 하던 옥기가 그 모양을 보고 캐들캐들 자지러지게 웃어 댔다. 수일이는 처음은 못마땅히 생각하였으나 아마 옥기가 혼자 적적하므로 저와 동무가 되자고 그럼이라 하고 일어나서 먼지를 털면서 멋쩍게 다가갔다.
"놀지 않을래?"
그러자 옥기는 바로 큰일이나 난 것처럼 어머니에게 달라붙으며 무어라고 재잘거린다. 수일이는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고 머뭇거리니까 이번은 해주집이 막 대들 듯이 나서며,
"왜 이 모양이야! 별 자식을 다 보겠구나."
하고 빽 지르더니,
"얘 네 입으루 그러렴!"
하며 옥기를 내쏘아 민다.
수일이는 무서워 몇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그들 모녀가 다시 보란 듯이 너풀너풀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왜 이 두 모녀가 저를 보고 그렇게 몹시 구는 것일까 혼자 생각하여 보았다. 아무래도 해주집네 일은 모를 일이었다.
해주집네에 대하여 모를 일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금순 누나네 큰방에서 놀고 있노라면 건너편 해주집네 방에서 북을 두덩두덩 치면서 무어라고 주절거리는 여편네의 목소리가 들려 올 적이 많았다. 그럴 때는 금순 누나는 무슨 귀신의 침노라도 접한 것처럼 몸을 떤다. 수일이는 하도 이상스러워 유리창 밑으로 살그머니 와서 해주집네가 무엇을 하는가 하고 그쪽을 바라다보았다. 귀애도 그의 곁에 다가와 내다보면서 때때로 눈을 가지고 금순이가 우습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어지간히 오랫동안 북소리가 울리다 멎으면 방으로부터 웬 노파가 닭, 과실, 떡, 쌀 이런 것을 그득 실은 상을 맞들고 나와 마루 아래에 내려놓고 그 앞에 해주집과 둘이가 늘어앉는다. 옥기는 어머니와 무당이 푸닥거리하려는 것을 보려고 바시시 방문을 열고 마루에 나오면,
"뭐 하나?"
하고 수일이가 묻는다.
"얜 보면서두 묻니?"
귀애는 뽐을 내며,
"푸닥거리하지 않냐."
"푸닥거리가 뭐야?"
"귀신을 쫓는 것이지 머. 얘 귀신은 경단떡을 좋아한대…… 그래 새카만 보재기 쓰구 빨간 치마 입구서 귀신이 꼬부랑길루 꼬부랑꼬부랑 찾어온대겠지."
"귀신두 꼬부랑 할머니지야?"
"그럼, 그래 저 뒷문으루 경단떡을 먹으러 온단다. 인제 봐 응. 무당이 경단떡만 뿌리면 꼬부랑 귀신이 저기 달려붙지. 그럼 그걸 활촉 끝에 꽂아서 담장 바깥으루 쏴 보내면, 그 귀신은 다신 못 온대……얘 인제 할련다."
상청 서른여덟 수비 중청 스물여덟 수비
하청은 열여덟 수비
우중간 남수비 좌중간 여수비
벼루잡던 수비 책잡던 수비
많이 먹고 가거라
군웅왕신 수비 왔거든 많이 먹고 가거라
손신별장 수비 왔거든 많이 먹고 네 가거라
이렇게 주절거리던 무당 노파는 흐응 하고 손으로 코를 풀어 뽢 치맛귀에 훔치더니 상머리에 놓았던 칼을 들어 저으며 눈을 그느스럼히 뜨고 다시 내려 엮는다. 그제는 해주집은 누굴 보고 하는 짓인지 손을 석석 비비며 허리도 굽벅씬다.
수살 영산 간 수비 왔거든 많이 먹고 네 가거라
먼길 객사 간 수비 왔거든 많이 먹고 네 가거라
언덕 아래 낙상 수비 많이 먹고 네 가거라
염병질병 돌아간 수비 많이 먹고 네 가거라
쥐롱객사 간 수비 왔거든 많이 먹고 네 가거라
고뿔감기에 간 수비 왔거든 많이 먹고 네 가거라
열삼애삼여 간 수비 왔거든 많이 먹고 네 가거라
여러 각종 수비들아 많이 먹고 네 가거라
그러나 수일과 귀애가 이러고 있을 즈음 덕쇠 영감이 허겁지겁 달려와 수일이를 잔등에 업으며 어머님이 큰일났다고 고하였다. 사실로 돌아와 달려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정신 잃은 사람처럼 넘어져 있는 것이다. 산월이는 요즘 극도로 피해망상에 걸려 있었다.
"어머니 왜 그러니?"
"……"
달려들어 잡아 흔들었으나 대답이 없다.
"어머니?"
또 한번 불렀다. 그때야 무어라고 신음하는 소리를 내어 손을 바들바들 떤다. 수일이는 그 손을 꼭 붙들고,
"왜, 왜 그래?"
어머니는 숨소리를 돌리며,
"……수일이냐, 수일이냐?"
고 간신히 물었다. 수일이는 별안간 눈물이 쑥 쏟아지었다.
"으흥흥 으흥흥."
울며 웃었다.
"인젠…… 우리 수일일 놓지 않는다…… 놓지 않어."
어머니는 그러면서 수일이를 꼬옥꼬옥 껴안았다.
"으흥흥 으흥흥."
"우릴 귀신보고 잡어가라고 축수를 한단다. 축수를 하는 거야, 아무래두."
수일이는 더욱 모를 일이었다. 아마 그 무당과 해주집이 귀신 붙은 경단떡을 활촉에 꽂고 우리게로 쏘아 보내는 것일까 하였다. 그래 다시는 어머니를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런 것을 보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므로 귀신 섬기는 해주집네가 또 눈치가 다를 때에는 으레 곤두박질을 치면서 어머니게로 달려와,
"또 할래. 또 귀신을 불러 올래는가 봐."
하면서 어머니를 얼싸안았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양으로, 아직 평안도 사투리가 섞인 말로 부르짖었다.
"부를래문 부르디, 무섭지 않아."
어쨌든 간에 수일이 모자는 이 모양으로 놀란 소조(小鳥)처럼 그날그날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다할 파란도 없는지라, 옛말에 나오는 불쌍한 두 남매 모양으로 오동나무에 쫓겨 올라감과 같은 무서운 일도 없었다. 오히려 수일에게는 그의 동화의 세계는 오동나무 아래의 고즈넉한 못이랄 수 있었다. 거기는 무서운 범의 얼굴도 나타나고 사나운 바람결도 스쳐가지만 진작 물결을 잡으며 그 위에 평화스런 꿈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날 이 두 놀란 소조가 못가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될 '불행'이 당도하였다. 그것은 바야흐로 새봄이 찾아와 정원 안의 연못 가에도 따스한 바람이 나부끼고 나무 나무의 파란 새움이 그 속에 그림자를 잠그기 시작할 무렵의 일이다.
그날 산월이는 하염없이 심사가 불안한 가운데 수일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서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에 젖어 있었다. 수일이가 자라나는 양을 보매, 웬일인지 요즘은 자꾸만 옛날 일이 추억되는 것이다. 외성(外城) 잿등마을에서 그리 구차치 않은 집 외동딸로 태어난 일, 양친의 귀염도 받을 사이 없이 두 살 때에 갑오란을 겪어 쫓기는 청병(淸兵)에게 집을 태우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다는 일, 유모의 정성으로 여덟 살까지 불쌍하게도 그 길러나던 생각, 그해 가을에 성 내 애련당(愛蓮堂)골 기생 선녀집에 맡기우던 정경, 그러나 얼굴이 달처럼 둥그스레하고 마음이 부드럽던 언니 선녀는 그를 무척 귀애하여 마치 지금의 산월이가 수일이를 사랑하듯이 언제나 제 품에 안고 재우며 한숨도 짓고 모를 소리도 하고 팔자 한탄도 하던 것이다. 언니 선녀는 곱단이 곱단이 하던 그의 이름을 산월이라 고쳐 불렀다. 산봉우리에 쓸쓸히 오르는 달과도 같다 함인가. 그 사랑하던 언니도 묵은, 풀 길이 없는 슬픔이 있었던지 대동강에 몸을 던지고 인제는 없다. 어느 날 밤 선녀는 산월이를 껴안고 그의 조그마한 손을 펴보며 한숨을 짓더니,
"네 손금도 시원한 게 없구나."
하였다. 그때 산월이는 새근거릴 뿐 아무 말도 못 하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수일이도 서글픈 얼굴로 아무 말이 없다. 산월이는 수일의 손금을 보며,
"네 손두 왜 날 닮었니?"
하고 한숨짓는 것이다. 산월이도 필경 하나의 가련한 운명주의자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그 부드럽고도 고운 손에 장(長)금을 쥐고 있다. 제 팔자가 기박하기는 이 금이 가로막혀 있는 탓이라 그는 생각한다. 수일이도 제 손금을 들여다보며 제 금이 어머니를 닮아서 기쁠지언정 무엇이 슬프냐고 막연하나마 속으로 항변하는 것이다.
그럴 즈음이었다. 그날은 어쩐지 정내(庭內)의 공기가 수선수선한 품이 다르다 하였더니 해가 쭉 퍼지면서 해주집 쪽으로부터 나무 새를 흔들며 징〔鉦〕과 북, 제금을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오기 시작하였다. 굿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산월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슨 경련이라도 일으킨 것같이 떨어 댄다. 수일이는 어머니의 목덜미에 매어달리며,
"괜찮어, 괜찮어."
하고 부르짖었다.
"어머니 난 힘이 세다야, 힘이 세서 괜찮다. 나! 귀신 거튼 거 무섭디 않아!"
이 집에서는 봄이 되면 따뜻하니 안택굿이요, 사람이 앓으면 걱정이니 사신굿이요, 불길한 괘가 나오면 예방굿이요, 가을이면 배부르니 철머리굿이다. 그날은 바로 신춘을 맞이하여 처음 벌어지는 천신굿〔薦新祭〕으로, 새 제찬을 베풀어 조상의 신령을 비롯하여 흩어져 있는 사방의 제신을 청하고 무병식재와 장수다복, 소원성취를 비는 것이다. 해주집이 더구나 굿을 세우며 김천집도 못지않게 귀신으로 위하는 터이라 이런 때는 오월동주도 의취가 맞아 굿이 진행된다. 그리고 일가친척도 모이어 온 집안이 떠들썩하게 소동을 피운다.
한참 징과 장고, 제금 소리가 집안이 떠나가게 울려드니까 가분작이 요란한 소리는 잦고 무당이 흔드는 방울 소리와 같이 그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요원한 소리가 사람의 폐부를 찌르면서 들려 온다. 필경 축수를 시작함이었다. 모자는 숨을 죽이고 서로 껴안고서 빨리 무서운 굿이 끝나기만 빌었다.
이리하여 두어 시간쯤 지나서일까, 굿도 적이 가경에 들어 무당의 권수에 이르게 되자 수일네 방 밖에서 여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대감과 큰도령님의 귀신 맞이를 허신다구, 도령님 모시고 나오시라 여쭈옵니다."
산월이는 얼굴이 하얘지며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수일이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따라 일어서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의 손을 잡는 어머니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말 한마디 못하며 굿마당을 향하여 한발 두발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도 역시 악귀는 쫓아야 하며 죽은 사람의 혼신은 나아가 위하여만 되리라고 굳게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산월이는 무엇보다도 죽은 사람의 혼신이 저희들을 작해치나 않을까 무서워한다.
저기는 안채 우(右)편 끝 해주집네로부터 가까운 조금 언덕진 곳으로 허다한 일가친척이며 구경꾼들이 산더미처럼 둘러서서 법석야단이었다. 수일의 모자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리로 쏠리고, 굿마당의 공기는 한층더 소란하여졌다.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 수군수군거리는 자, 선웃음을 치는 이, 놀라 무어라 부르짖는 사람, 가지각각이었다. 파도 치듯이 흩어지며 내어주는 자리에 들어서며 산월이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하려 새하얀 얼굴을 위로 향하고 호흡을 갖추었다.
원무당은 머리에 범수염을 단 굴개를 쓰고 몸에는 구군복에 붉은 띠를 졸라매고 한 손으로는 무선(巫扇)을 번뜩이고 한 손으론 방울을 흔들며 대〔竿〕를 든 창부무당을 앞에 두고 무어라 주절주절거린다. 때때로 그 방울은 절렁절렁 울리고 그럴 때마다 무선은 하늘을 가리키며 군복에 단 철릭〔天翼〕활개를 친다. 해주집과 김천집은 황공함과 공순의 뜻을 표하여 두 손을 비비며 백배하면서 원무당의 권수를 듣고 있으며 창부무당이 든 대에 붙은 종이가 펄럭펄럭거리니 혼신이 와 접함이었다. 그것은 불행히도 동경서 객사한 큰도령의 혼신이라 한다. 굿주인이 되는 해주집과 김천집은 잔풍에 기름땀을 내어 도끼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다.
굿마당에 모여 싸인 사람 가운데는 안사랑에 와서 늘 묻혀 있는 김백작의 얼금뱅이 얼굴도 섞여 있었다. 그는 두어 번 코를 훌적 하고서 곱게 마고자를 입은 옆구리 부인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새댁이 원 사색이 되었구려."
부인이 흘깃 돌아다보니 흉하디흉한 곰보 대감이 감은 눈 언저리를 끔벅끔벅하고 있다. 그는 얼굴에 힘줄이 발라 눈을 감아야 입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 부인은 펄쩍 놀라 슬며시 자리를 옮아, 숨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 김대감은 눈을 뜨지 못하고 끔벅끔벅거리며,
"저이 모자를 잡어가는 굿도 아니겠거니와 도대체 이때 다 미신이거든요. 그렇게 겁을 낼 게 있소. 헤 그렇기에 이 집 윤대감두 굿이라니 필요없다고 합니다. 그저 내가 이렇게 윤대감 대신으로 나오기는 나왔지만―---"
그리고 비로소 눈을 떠보니 아까 그 부인은 간 데가 없다. 그래 급기야 노염이 나서 목젖을 꿀꺽거리었다. 두어 번 두리번두리번 훑어보고 목젖을 꿀꺽거리었다.
그때에 원무당은 핑핑 이삼십 회나 커다란 원을 그리며 선무를 하더니 고즛 멈춰 서서 길이 육 척이나 되는 삼지창(三枝槍)을 휘어잡고 하늘을 향하여 무어라고 부르짖는다. 산월이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굿을 처음 보았다. 온몸이 녹아져 오며 정신이 아찔거리어 마음을 안타까이 걷잡으려 수일이만 부득부득 끼어안았다. 굿마당도 일제히 긴장된다. 원무당은 삼지창을 휘두르기 시작하니 창끝은 눈이 부시게 번쩍거린다. 그리고 사나운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노려보며 더욱 줄기찬 무서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것은 수일의 이복형인 큰도령의 혼신이 창부무당이 든 대에 나타나서 제가 사자에 붙잡혀 지부왕 앞에 나가던 이야기를 펴놓는 넌지였다.
하명이 그뿐인가 때가 되었느냐
저승지부왕전에서 팔배특배자노와
성화착래로 잡어오랴 분부가 지엄하니
망년그물 손에 들고 쇠사슬 빗겨 차고
활등같이 굽은 길로 살같이 빨리 나와
앞산에 외막 치고 뒷산에 장막 치고
마당 한가운데는 명패 기 끝에 꽂아 놓고
일직 사자 월직 사자 강림 도령
봉의 눈 부릅뜨고 삼각수 거스르며
문지방 가루 집고 나서누나―---
그러자 둘러선 슬마리들이 징과 장고, 박고(朴鼓), 울쇠, 제금을 일제히 치고 흔들며 때리었다. 집이 무너지고 나무가 떠나가게 요란하다. 그제는 원무당은 삼지창을 하늘 높이 휘두르며 또 무어라고 주절거리자 대를 든 창부무당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대는 사납게 흔들리고 종이 갈기는 더욱 펄럭펄럭거린다. 주위는 소연하게 들끓으며 부인네들은 무서워 대편을 향하여 손을 비비며 빈다. 그런데 웬일인가 저주의 대는 막 수일의 편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창부무당은 눈을 들이 감고 숨을 헐떡거리며 무서운 얼굴로 육박한다. 무서워 사람들은 얼음이 꺼지듯 흩어진다. 원무당은 그 뒤를 우리 안에 든 미친 맹수와 같이 삥삥 돌며 춤을 춘다.
"엄마!"
수일이는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에게 얼굴을 틀어박았다. 어머니는 넘어질 듯이 움쳐서며 수일을 한 손으로 껴안은 채 한 손으로는 다가오는 대를 물리치려고 애를 쓴다.
"저 무당년 해주집과 짠 게로구나!"
하고 구경꾼 가운데서 누구인가 부르짖는 자가 있었다.
"무엇이 어째!"
해주집은 돌따서며 악을 받친다.
"짜긴 무얼 짠단 말이야!"
원무당은 더욱 기가 세어 너펄거리며 미쳐 날뛰고 대도 더욱 수일의 모자 쪽으로 육박하며 곤두박질을 친다.
"빌구려!"
"비세요, 평양집 비세요!"
사방에서 모두들 이렇게 부르짖었다.
"빨리…… 빨리 빌어요……."
수일이는 얼굴을 파묻은 채 조그만 손만 머리 위에 내놓고 살살 빌어 매었다. 그러나 일순간 저를 끼어안은 어머니의 팔 힘이 탁 풀리면서 그만 어머니는 아찔하여 그 자리에 쓰러졌다. 수일이는 어머니의 위에 엎디치며,
"어머니! 어머니!"
하고 발이라도 데인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어머니는 아주 상기(上氣)하고 만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
무당은 아주 의기가 양양하여 사자(使者)의 노호를 계속하였다.
이봐 망자야 어서 바삐 나서거라
천둥같이 지르니
가택이 무너지고 우주가 바뀌는 듯
일신수족을 벌벌 떨고
진퇴유곡 되었을 제
강림 도령 달려들어
한 번 잡어 나꾸어치니 열 손에 맥이 없고
두 번 잡어 나꾸어치니 열 발에 맥이 없고
삼세 번 나꾸어치니
폈던 손 뻗은 다리 감출 길이 없고나
머리에 천상옥 이마에 벼락옥
눈에 안정옥 혀밑에 바늘을 단단히 걸어 놓고 입에 하무 물려 귀에 쇠 채어 노니
명이 끊어지는 소리, 대천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중선 닻줄 끊는 소리 같다……
7
편집수일의 모자는 그 자리로 남대문 밖 양인병원에 떠매어 갔다.
그날 밤 두 모자를 문안 갔던 김천집은 밤이 아주 깊어서야 인력거로 돌아왔다. 김천집도 오늘 굿만은 하도 수상하게 생각되었다. 필경 이 해주집년이…… 하고 의심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아직 삼월 초의 밤 공기는 차갑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한데 진주 모래를 뿌린 은하수 위에 하얀 반달이 떠 있다.
"봄바람은 첩 죽은 귀신이라드니 원 거즛말인가."
김천집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살밑으로 포근포근 들어안기진 않구 이렇게 얼음같이 차담."
그가 대문가에서 인력거를 내리고 중대문으로 쑥 들어서려 할 참이었다. 연못 건너편 배나무 숲속에서 무엇인가 버석버석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그는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쪽 편을 살펴보았다. 사방은 다시 고요하여지었다. 연한 달빛이 희무럭하니 숲을 비추었는데,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는 것이 보인다. 그 원 모를 일이로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그랬나, 혹시 덕쇠 영감이라도 지나갔나? 그때에 누구인가의 흰 그림자가 걸핏걸핏 나무 새로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뒤로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황망히 그것을 붙잡으러 쫓아간다. 나무에 옷이 걸렸던지 가지가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놓아요!"
김천집은 가슴이 화끈하였다. 이 연놈들이로구나, 틀림없이 해주집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놓아요!"
헤헤헤 하는 능청맞은 사내의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김백작의 목소리다.
"어서 놓아요!"
"놓아 놓긴 왜."
"돼지 이 돼지……."
"돼지 헤헤 날 돼지라구."
하더니 김대감은 가분작이 공박하듯이,
"괜히 그래야 소용없어, 소용없는 거야. 오늘 일은 그게 다 누구의 작간(作奸)이냐? 응, 그런 무당년이 어디 있냐?"
"아이구 무슨 소릴?"
옳지, 역시 해주집년의 작간이로구나. 김천집은 그제야 큰 비밀을 잡은 것처럼 기뻐하였다.
"무슨 소리라니, 소룬소룬 내 말을 들어야지…… 결딴이다."
"……"
"암 그래야지."
"아이구 날 죽일려우."
"……"
"놓아요. 아이구 놓지 않으면 소릴 지를 테야……."
"그래 용이 있나.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걸 가지구…… 그래 그래 가만있어."
"나 죽어요, 나 죽는다……."
"요즘은 어디 딴 녀석이라도 생겼냐? 왜 날 그렇게 푸대접을 허는거야."
검은 그림자가 해주집을 안아 옆에 있는 청간으로 끌어들이려는데 여자는 안 들어간다고 두 손을 내저으며 야단을 치는 모양이다.
"이 연놈들."
김천집은 다시 한번 혼자소리를 중얼거렸다. 해주집이 요즘은 김대감을 전같이 밤중에 끌어들이지 않던 모양이라, 오늘 밤은 김대감 자신이 해주집의 굿 간계를 기화로 협박하여 투입하였음이었다.
"저년 × 앓는 고양이같이 잘은 혼난다."
김천집은 입을 비쭉비쭉하였다. 외려 속이 시원한 것 같았다.
"무당년과 짜고 수일이를 죽일려구. 망한년, 잘은 혼나 봐라."
그래 그는 기침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나무 새를 지나서 안채 제 방으로 향하였다. 돌토방 가에 이르렀을 때에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어 다시 멈춰 서서 인기척을 살피었다. 청간 쪽에서는 짹 소리 하나 나지를 않는다. 하늘을 쳐다보니 아카시아나무는 모두 엉거주춤하니 늘어서서 검은 가지를 바람에 휘저으며 너풀거리는데 그 새로 한 조각 깨어진 구름이 달빛을 받고 쓰러누워 있다. 가분작이 김천집은 일종의 질투감을 느끼었다. 그래 가슴을 떠밀듯이 재리고 대청마루에 선뜻 올라섰다. 그리고 뒷문을 열어 젖히더니 여종들이 자고 있는 건넌채를 향하여 고함소리를 질렀다.
"벌써들 꺼꾸러져 자는 거냐? 벌써 꺼꾸러져 자."
"네―?"
이번은 고양이 하품하는 듯한 여종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영창에 조그맣게 불이 비치었다. 그리고 두서넛 여종의 얼굴이 나타난다.
"무에구 오늘은 수상하다. 뜰안에 도적놈이 들어온 것 같다."
"네―?"
역시 힘닿지 않는 대답이다.
"흥, 네―라니?"
김천집은 못마땅하여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도 한번 입을 삐죽하며 '네―' 하고 흉내를 내어 보았다.
"어서 썩 사내들을 불러 내서 뜰안을 뒤져 보지 못허겠니?"
"네―"
선달음에 제 침방으로 들어갔더니 그는 더욱 가슴속이 술렁거리고 심사가 평안치를 않았다. 언제나 밤에는 공허를 느끼는 그였다. 그는 혼곤히 잠이 들어 있는 귀애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귀애는 펄쩍 놀라 일어나 앉는다.
"병원에 내일부터 놀러 가거라."
밑도끝도없이 김천집은 귀애보고 역정을 부렸다.
"알었냐, 알었어. 알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배라먹을년!"
귀애는 영문을 모르고 잠꼬대처럼 으응거렸다.
"흥."
김천집은 코웃음을 쳤다.
"모두 망할년들. 고양이 소리들은 왜 하노."
바깥에서는 사내들이 벌써 나와 돌기 시작한 모양으로 두런두런한 소리가 들린다.
김천집은 그래 부리나케 나가더니 대청마루에 서서 부르짖는다.
"액 이 연놈들! 청간에서 무얼 하느냐! 거기를 뒤져라, 뒤져! 거기를 봐라!"
사내들이 그곳으로 몰려가는 모양이다. 김천집은 고무신을 거꾸로 끌며 내려섰다.
"아무두 없는데요!"
"아무두 없다니."
김천집도 날개가 돋친 듯이 달려가 보았으나 벌써 청간에는 쥐 한 마리 없었다. 어디선가 첫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8
편집굿사건 이래 병상에 누운 산월이는 정말 망자의 저주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몹쓸 귀신이 시재로 천장을 뚫고 털이 수북한 손을 흐밀흐밀 내어밀지나 않을까 하는 착각에 앗 하고 부르짖으며 발작적으로 일떠나 앉기도 한다. 그리고 제 아들이 자기 옆에 천연히 있는 것을 보고서야 숨을 돌리며 가벼운 안도의 미소를 띠었다. 그 뒤에 열기는 떠오르고 정신없는 군소리는 계속된다. 수일이는 시름없이 앉아서 어머니의 이런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허수하고도 마음이 안 놓이는 깊은 고독 속에 잠기는 것이었다.
병원에는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여종이 때때로 빨랫감을 가지러 찾아올 뿐이고 그 외에는 오직 귀애만이 학교가 끝나는 길로 병원에 들러서 놀다가 간다.
귀애는 여러 가지 놀음을 알고 있어서 각시놀이며 종급질이며 동구박질, 뱅뱅돌싸 등을 가르쳐 주었다. 무어라무어라 혼자 신이 나 종알거리며 수일이는 그럴 때는 귀애의 맑고 이쁜 얼굴만 반반히 쳐다보고 있기가 일쑤다. 그러면 귀애는 수일이를 쳐다보고 그만 낯이 발그레해진다.
"얘 봐, 참 남의 소린 듣지두 않네."
수일이는 그래도 그냥 눈을 떼지 않고 히히히 웃는다.
"얜 상게두 보니?"
"……"
"보지 말어."
수일이는 그제야 할 말이 없어,
"난 각시놀이는 싫여."
하고 턱없는 소리를 한다.
"싫여? 아이구 얘 봐, 다 듣지두 않구 그러네. 애걔 또 본다. 그럼 어서 봐 봐!"
하며 귀애는 성난 것처럼 제 얼굴을 떠밀며 대든다. 수일이는 더 멋쩍어 그냥 히히히 웃는다. 그제는 귀애는 노상 할숨을 짚으며 처량한 빛을 띠고 수일의 조그만 손을 끌어당기어 제 무릎 위에 놓고 만지작거리면서,
"얘 불쌍해. 수일아, 집사람들이 모두 널 미워하겠지. 수일이가 맏아드님이라구…… 그래두 누나는 수일이가 제일 좋아. 난 우리 어머니가 다리고 온 딸이니깐 너랑 좋아해도 괜찮지 뭐."
산월이는 귓결에 귀애의 이런 재낭스런 소리를 들으며 고요히 웃는다. 그러나 수일이는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므로 그만 또 히히히 웃고 말았다. 귀애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더니 수일의 얼굴을 말끔히 쳐다보고,
"그게 무슨 대답이야."
"저녁 해는 얘."
하고 수일이는 더듬씨며 뚱딴지 이야기를 꺼낸다. 너무 아무 말도 안 한 것이 안된 줄로 생각한 것이라,
"빨간 사탕칠한 얼음이야, 얼음. 까마귀가 서산으로 가는 건 먹을라구 그래. 다 먹은 댐에는 새까만 하품을 자꾸 해서 캄캄한 밤이 된다구 어머니가 그랬어."
그리고는 경동을 살피려는 듯이 귀애의 얼굴을 쳐다보자, 귀애는 새침을 떼고 눈을 깜빡깜빡씨더니 수일의 코끝을 쥐고 흔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산월이도 그만 참지를 못하고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이리하여 산월이는 병원에서 차츰 행복스런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월의 마음도 차츰 가라앉고 원기도 회복되려 할 즈음 또다시 산월의 마음을 아프게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이제 다시 수일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도어를 열어 젖히더니 뚱뚱한 사내 하나가 돔비를 걸친 채 부리나케 들어왔다. 그것은 아버지이다. 실내에서 소름소름 심부름을 하던 간호부는 깜짝 놀라 산월이와 사내를 번갈아 보고 그만 달음질쳐 나가고 수일이는 침대 뒤에 달려가 어머니 몸에 바싹 붙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누워 있는 옆에 다가와 서더니,
"그만한가."
하며 퉁명스럽게 부르짖었다.
"수일이는 이번 봄부터 필운동 아우네 집에 맡기고 학교에 보내기루 작정했네."
어머니는 놀라 그 자리에 일떠나 앉았다.
"조그만 집을 하나 얻어 주어요. 수일이를 다리고 있도록 해주어요."
"……"
"네, 그렇게 그렇게만……."
"그건 못 할 소리야."
"왜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었다.
아버지는 나갈 듯하다 흘낏 돌아서더니,
"그런 말을 왜 하는 거야, 내가 하는 일에."
"싫여, 난 싫여."
아버지는 그제는 골이 시퍼렇게 나서 어성을 높이었다. 이런 일에는 머저부터 세차게 따야 된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는 터이다.
"두말할 필요 없고 적어두 너는 어린애 교육에는 적당치를 않어."
그러더니 다시 와당와당 나가 버린다. 어머니는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누워 버렸다. 그 뒤로 귀애가 놀러 왔다. 수일이는 다가가 그를 끌고 병원집 뒤 나무숲으로 나갔다. 포플러가 엉성하니 늘어서 있고 그 새에 늙은 회나무며 솔포기가 흔들리고 있는데, 아직 봄은 일러 새 한 마리 지저귀지 않고 하늘에 까치만 날고 있었다.
"왜 자꾸 가기만 하니?"
귀애는 수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난…… 난."
하고 수일이는 멈춰 서서 제 구두 앞코뚜리로 검은 흙을 밟아 이기면서,
"작은아버지한테 간대. 그곳에서 학교에 보낸다겠지. 그래서 어머니가 울구 있어."
귀애는 눈이 뚱그래지어 부르짖었다.
"정말?"
"정말 아이구…… 아버지가 그랬어."
"아버지가?"
"응 아버지가."
수일이는 눈을 내리뜬 채 중얼중얼대었다. 그러나 귀애가 너무도 놀라며 슬퍼함을 보고 수일이는 갑자기 자기가 그런 말을 고백한 것을 후회하여 도로 돌아가자고 말하였다. 그런데 귀애는 잠자코 그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수일이는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귀애의 걸어가는 뒷모양을 보았다. 귀애는 그냥 나무숲 깊은 잿등 위로 올라간다. 뒤도 돌아보지를 않으며 무슨 큰 설움이라도 가진 것처럼. 그래 수일이는 속으로 민망하여 어깨를 축 늘어치고 그 뒤로 슬적슬적 따라 올라갔다. 포플러나무 새를 지나면 언덕이 지고 거기는 드문드문 소나무와 아카시아나무가 섞인 라일락숲이다. 숲속은 어둑하며 쥐죽은 듯 고요하고 때때로 높은 가지에 바람이 걸리어 운다. 수일이는 갑자기 겁이 나서 입을 삐죽거리며 귀애가 간 방향을 살펴보았으나, 어디로 숨었는지 이제까지 보이던 귀애는 간 곳이 없다. 그래 그 자리에서 울먹울먹하노라니까 바로 옆 큰 소나무 뒤로부터 귀애의 캐들캐들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토끼처럼 뛰어나왔다.
"여기 있어, 여기."
수일이는 그만 소리를 내어 엉엉 울기를 시작하였다. 왜 그런지 갑자기 슬픔이 치밀어 올라와 할 수가 없었다. 귀애는 한사코 수일이를 어르며 제 저고리 고름으로 그의 눈물을 닦으면서,
"난 아무렇지두 않어. 아니야 아냐…… 수일이는 그렇게 하는 게 좋아, 아버지 하라는 대루 하는 게 좋아."
그러니 수일이는 더욱 마음이 외롭고 슬퍼지어 더 울음소리를 높이었다. 그래 귀애는 어떻게 하는 수가 없어 그만 수일이를 업고라도 병사(病舍)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몇 번인가 업고 비틀거렸으나 역시 거듭 실패였다. 두서너 간 가기도 전에 퍽하면 둘이가 다 넘어지었다.
"넌 넌."
하며 귀애는 숨을 태우면서 핀잔을 한다.
"이렇게 무거운 애가 그냥 우니. 인젠 어른이야, 그만 울어 그만."
9
편집수일이는 그 후 얼마 안 되어 필운동 숙부네 집에 맡기운 바 되어 그곳으로부터 학교에 새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하나도 동무를 얻지 못하여 얼마나 쓸쓸하고 또 일변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는 다른 소년들이 재미롭게 노는 것을 외따른 쪽에 서서 먼 바로 바라다볼 뿐이었다. 모두들 저보다 몸집이 크고 나이도 위로 하나같이 그에 대하여 몹쓰게 군다. 곁만 보이면 그를 조롱하려 든다. 어떤 몹쓸 녀석은 우진 그의 곁으로 공을 몰고 와서는 그의 정강머리를 걷어차고 달아났다. 그러나 그는 결코 빌빌 울지는 않고 옷을 툭툭 털면서 물러설 따름이다. 그것은 울기쟁이라는 별호까지 달릴까를 두려워함이었다. 그런데 신수가 사나우면 할 수가 없어 물러서다가 그만 다른 애와 부딪치어 엎더지는 수가 있다. 그럴 때면 이것을 보고 반 동무들은 손바닥을 치며 좋아하는 것이다.
더욱이 어떤 날 담임선생이 윤남작 말을 하면서 수일이를 추켜올린 다음부터는 수일에 대한 소년들의 태도는 더 나빠지었다.
"얘, 네 아버지가 무언데?"
하고 쉬는 시간이 되자,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석순철이가 그의 귓바퀴를 잡아당기었다. 그는 놀라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으나 어쩐지 무어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알어 있어. 알어 있어. 너의 아버지가 무엔지."
"……"
"벌써 알어 있다 얘."
하며 순철이는 그의 머리를 책상 위에다 쾅쾅 다지었다. 일상 말없고 유순한 순철이까지 저를 보고 왜 이렇게 몹쓸게 구는지가 수일에게는 이해키 어려웠다. 하여간 이 일이 있은 뒤부터는 그 당시에 흔하던 말 ×××라는 소리를 이제야 여덟 살밖에 안 된 수일이는 듣게 되었다.
학교에서 이렇게 돌림을 받아 시달리다가 필운동 집에 돌아온대야 누구 하나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도 없다. 구한국시대에 그래도 판관을 지냈다 하여, 숙부는 변호사라는 간판을 내어걸고 언제나 앞채 사무실에서 뭇 남자들과 수군거리고 있었다. 말처럼 얼굴이 긴 숙모는 늙은 부인네들을 내방에 좋아라 놓고 밤이 깊도록 히히닥거리면서 화투를 친다.
"아무래두 좀 애가 부족하죠."
숙모는 담뱃대를 흑흑 들이빨고서 화투장을 갈라 쥐면서 또 수일의 흉을 보는 것이다.
"윗물이 맑어야 아랫물이 맑다니 그래 두고 허는 소리입지요."
"님말 그 도련절이 기생 몸에 나왔다지요."
하고 누구인가가 밑을 달면은,
"그것두 기생이 막 열여섯 살 때에 낳었다니깐요."
하고 또 하나가 끝을 맺는다.
"외아들이 저 모양이구야 큰집 대감네두 앞날이 걱정이지요. 그러기 나는 원 딸〔子息〕하나 없어두 조런 것 있는 것보다는 외려 낫다고 우리 영감보고두 늘 말허지요…… 저런 막 난초를 집어 가우, 저런저런 어쩌문 목단이 또 떨어지는군."
수일이는 그 옆방에서 잠이 들려고 애를 쓰며 뒤채고 있노라면 자연 마음이 서글퍼지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옆에 누워 있다면 얼마나 행복스러울 것인가. 얼마든지 굳게굳게 껴안아 줄 것을 그리고 또 늙은 덕쇠 영감, 금순 누나며 귀애와 같이 정원 안을 달음질치던 생각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러면 슬프고 또 슬퍼 나오려는 눈물을 억제키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가 본집을 나오던 때의 광경이 다시금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다. 대문 앞에서 그를 인력거에 태우며 다시는 오지 못한다고 분부하던 아버지, 김천집은 울며 귀애는 저고리 고름만 깨물고 있었다. 그때가 얼마나 슬펐던가.
"내 만나러 갈게, 만나러 갈게."
대문 옆에서 이렇게 눈물을 먹으며 속삭인 어머니는 왜 찾아오지를 못하는가. 사랑하는 어머니여, 어머니는 지금 무엇을 하시나. 사무실 앞에서 한점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내방의 부인 손님네들도 인제는 모두 돌아가고 사면이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
그러는 사이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한밤중 선생의 무서운 얼굴이며 같은 반 장난꾸러기들의 면면이 꿈속에 나타나서 가물거린다. 어떻게 하면은 동무들에게 돌리우지를 않고 그들과 같이 즐겁게 놀 수가 있을까 하고 꿈속에서까지 걱정을 하는 사이에 밤이 훤히 밝아 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날 뜻하지 않은 일로 수일이는 석순철이와 사이 좋은 동무가 되었다. 약한 애들을 곯리기 잘하는 키다리 장경섭이가 그날 쉬는 시간, 교단 위에 서서 입으로 받아 먹으라고 눈깔사탕을 하나하나씩 던져 주어 교실 안이 들끓던 것이다. 저마다 시험을 해보느라고 입을 짝짝 벌리며 떠들어 대었다. 그때에도 수일이는 애초 염에 들지를 못하고 교단 옆에 서서 이 흉한 꼴들을 보고 있노라니 경섭이가 수일이를 발견하자 불현듯이 못된 생각이 일어났다. 그는 모두들 보는 데서 사탕에 질름질름 코를 발라 가지고 고함을 치며 수일이더러 받아 먹으라고 던져 주었다.
수일이는 아주 겁이 나서 반사적으로 입을 벌리었는데 그만 흉쭈루기 그것이 입으로 들어갔다. 그래 반 동무들은 모두들 좋아라고 손뼉을 치며 법석댄다. 수일이는 어쩐지 마음이 흐뭇하여 한번 둘러보고는 급기야 눈을 감고 그 코 묻은 눈깔사탕을 빡작빡작 깨물기 시작하였으니 교실 안은 더욱이 들끓게 되었다.
그러나 뜻밖의 일은 언제인가 수일이를 몹시도 구박한 석순철이가 그 순간 비호와 같이 달라붙어 그의 뺨을 들입다 치더니 그 자리로 돌아서며 장경섭이를 걷어차 넘어뜨리었다. 수일이는 이 삽시간의 일에 질색하여 물러서서 뺨만 비비적거리었다. 몸테지가 큰 장경섭이는 번듯이 누워서 엉엉 울어 대었다. 그리고 선생이 오자 발을 버둥버둥씨면서 호소하였다. 이 일로 순철이는 교단 위에 불리어 나아가 굵은 몽둥이로 열세 번이나 사정없이 얻어맞았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수일이는 순철에게 겁을 먹으며 조심조심 물었다.
"넌 그렇게 맞어두 왜 울지 않니?"
"날 내가 왜 울어. 겁쟁이나 울지."
"응 그래…… 그런데 선생님은 장경섭이는 왜 안 때리나?"
"거야 선생이 겁쟁이니깐 부잣집 아들은 무서워 때려?"
"응."
수일이는 그저 이렇게 대답하였으나 순철의 꿀리지 않는 배짱과 그 총명에 탄복하였다. 순철의 말에 의하면은 경섭이는 종로거리 신상(紳商)의 아들이며 저 자신은 가난뱅이 아들로 아버지는 먼 나라에 망명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잡혀와서 형무소에 넘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얼굴을 찡기기도 하고 손으로 시늉도 하면서 아주 그것이 제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종알거렸다.
"너의 아버지가 ×××니까 선생이 널 떠받드는 거야. 그렇다구 장한 것같이 그랬단 내가 용서 안 한다. 난 반에서 힘이 제일이야. 이래 보여두 난 커서 사상가가 될려거든."
"사상가?"
"얘 봐, 것두 모르니. 사상가는 제일 장하구 힘이 세니깐 나쁜 사람은 얼마든지 혼을 내어. 그리구 사상가가 되면 발꿈치에 용수틀이 달려서 펄펄 뛴다……."
"그럼 난 왜 쳤어?"
수일이는 의아스러이 이 사상가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두 나쁜 사람인 줄 알언?"
"그럼 나쁜 애 아이구. 코 묻은 눈깔사탕 먹는 자식이 어디 있어."
그리고 곧 옆골목으로 빠져들어간다.
"둘이 동무 안 될련?"
수일이는 그의 등뒤를 향하여 부르짖었다.
"응 오늘부터 우리는 동무야. 그래두 난 빨리 가야 돼. 사상가는 어머니를 도와 드려야 되거든."
"그럼 내일 또 만나자."
"응 내일. 잘 가라."
그 다음날 그들 둘이는 처음으로 사이 좋게 말을 주고 건네었는데 이것을 보고 반 동무들은 다시는 수일이를 몰아세울 염도 치지를 못하였다. 더욱이 한번은 교정에 높이 선 포플러나무에 동무들 따라 여남은 자 높이 올라갔다가 선생에게 들키어 모두 얻어맞았는데 그때에 새로 들어온 N선생이 가리지 않고 수일이도 들이 쳤기 때문에 그 후부터는 수일이도 완전한 동무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 당시는 선생이라면 어린 생도를 어떻게 때려야만 시원하게 때릴 수가 있을까고 연구하던 시절이라 별별 수법을 가진 선생이 많았었다. 우리 조선에서는 더욱이 그러하였다. 새로 들어온 이가 선생은 썩은 뼈처럼 엉거주춤하나 생도를 칠 때만은 아주 생기가 나 빨갛게 불타오르는 것이다. 안경은 벗어서 옆채기에 넣는다. 그리고 제가 흥분한 것을 야만이라고 알기 때문에 적이 침착한 태도로 이리 쳐보고 저리 비틀어 본다. 더욱이 발밑을 걷어차 넘어치는 데는 천하일품이었다. 평안북도서 온 선생인가는 '에이 이놈에 새끼들 뒈제 볼래니' 하며 수리가 닭을 채듯이 달려 붙어서 막 두들겨팬다.
"왜 선생님은 우리들을 자꾸 때리나?"
하고 수일이가 수업시간에 몰래 물었을 때 순철이는 한참 동안 증오에 찬 눈으로 선생을 흘겨보더니,
"우리들이 크면은 지겠으니깐 때리지."
하였다.
언제인가 한번은 누구인가가 방귀를 뀌어 모두 편경을 친 일이 있었다. N선생은 아주 놀라기나 한 듯이 푸들푸들 떨더니 책을 교탁 위에 놓고 한참 동안 안경 위로 생도들을 노려본 것이다. 생도들은 모두 무서워서 달싹도 못 한다. 선생은 그제는 마치 방귓내라도 몰려온 듯이 때가 새까맣게 묻은 수건을 꺼내어 코를 싸쥐며,
"무슨 더러운 일이야, 응. 교육을 암만 받어두 도시 문명할 줄을 그렇게 몰라."
그리고 가분작이 교탁을 치며 기침을 하였다.
"잇타이 다레가야쓰다(도대체 어느 놈이냐)?"
그러나 아무도 무서워서 대답을 못 하였으니 이리하여 그들 한반 칠십 명이 또 전부 채로 두들겨맞은 터이다.
그러나 창가를 가르치는 선생만은 생도들에게 손끝 하나 다치기를 꺼려하였다. 무슨 몹쓸 병균이라도 와 닿을까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그는 생도들이 헴에 맞지를 않으면 그 팔목에 퍼런 스탬프를 하나씩 찍어 주었다. 스탬프 찍은 것이 팔죽지 끝까지 올라가게 되면 그 생도를 교단 위에 내세우고 보자기를 머리에 씌운다. 그러면 한반 동무는 하나하나씩 차례로 나와 그 생도를 때려야 되었다. 이 ○선생은 교관실에 돌아가면 동료들보고 늘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너무 온순해서, 생도들에게 직접 손을 대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많은 애를 한꺼번에 벌 주려면 할 수 없이 교탁 아래에 두었던 헌 슬리퍼를 끄집어내었다. 그것으로 생도들의 뺨을 찰악찰악 음악적으로(그는 창가 선생이다) 치고 그 뒤에 하나하나 입을 벌리게 하고 그 슬리퍼의 끝을 물리었다. 수일이도 이 더러운 슬리퍼를 입에 문 적이 있다. 언제인가 코 칠한 사탕을 먹게 한 장경섭이가 가로 문 뒤에 그의 차례가 되었는데 암만해도 입이 열려지지를 않았다. 그러자 찰악 슬리퍼가 뺨을 쳐 들어오므로 그는 놀라 입을 열고 그것을 문 채 이삼 분간이나 서 있었다.
수일이는 어찌 그 일이 분하였던지 모른다. 그 뒤에 얼마 안 되어 그 슬리퍼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 일을 알자 ○선생은 다짜고짜로 석순철이를 불러내더니 불문곡직하고 발밑을 걷어차 넘어뜨렸다. 이와 같은 일은 필경 순철이가 한 짓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때 수일이가 얼굴이 하얘지어 바들바들 떨면서 손을 들고 일어섰다. 반 동무들은 수일이가 그런 대담한 일을 한 데 대하여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엉뚱한 애를 보게."
○선생도 망연하여 혼자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그래 어디 버렸느냐?"
"변소에요."
수일이는 겨우 한마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선생은 다시 순철이 편을 향하여 노려보더니,
"이 자식 네가 충동질을 하였지. 이 자식 이 자식."
하며 귓바퀴를 잡아당긴다.
방과후 수일과 순철이는 저녁때가 되도록 두 팔을 들고 교관실 앞에 서서 벌을 섰다. 그것은 으스스 추운 오후로 더욱이 햇발은 빨리 기울어지고 긴 복도는 쓸쓸하게 어두워 갔다. 먼 현관 입구를 닫는 소리가 덜컹덜컹 들려 온다. 수일이는 팔죽지가 떨어져 왔다. 선생들은 복도에 나와 모자를 쓰고는 한 사람 두 사람씩 뿔뿔이 다 돌아간다. ○선생은 우정 그들을 못 본 체하고 보아란듯이 어깨를 건들먹씨며 나갔다. 이런 때에 선생을 붙들고 용서하여 달라고 조르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러나 수일이는 그와 같은 용기도 없고 게구도 생기지를 않아 빨리 순철이가 선생보고 조르기만 기다렸으나 순철이는 또 순철이대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돌아다보지도 않는 것이다. 수일이는 선생들이 거진 전부 돌아가 버리는 것을 보고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뒤뜰에는 찬바람이 아카시아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건 왜 왔다 버련?"
순철이는 억울한 듯이 중얼거렸다.
"새 슬리퍼라두 가져올 줄 알었댄? 아주 깍정이가 돼서 더 헌 슬리퍼나 이제 어디서 주워 올 제 보아."
그때에 담임선생이 교관실로부터 나왔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은 않을 테지 응."
그리고 둘의 얼굴을 좀체 측은한 듯이 내려다본다.
"○선생에게는 내가 잘 말할 테니까 걱정 말구 돌아가. 다음부터는 조심할 테지. 그렇지. 너이 둘이는 아주 좋은 사이다. 자 기운을 내야지 기운을."
그러더니 수일의 쪽을 향하여 무거운 목소리로 조용히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님이 마중 오신 모양이다."
"네?"
수일이는 번듯 고개를 쳐들었다. 선생은 머리를 끄떡씨며 미소를 지면서,
"응 어머님이."
10
편집그만치나 만나러 온다고 굳게굳게 수일이더러 맹세하여 놓고서도 본집 안에 사로잡힌 포로와도 같이 영 찾아오지를 못하던 산월이다. 그가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용감하게 빠져나와 아들을 찾아오기까지는 다름이 아니라 또다시 너무도 무서운 어떤 사건에 놀라 수일의 신상이 급기야 염려되었던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그 당시에는 이 크나큰 집 담장 앞을 윤남작 일가를 저주하며 또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더욱이 술이나 취하여 무어라고 고함을 치며 대성(大聲)으로 윤남작 나오너라고 부르짖는 자들도 많았다. 어떤 이는 돌을 집어던지어 그것이 나뭇가지에 부딪히면서 밤중 고요히 잠이 든 그들의 지붕에 땅땅 떨어지며 요란히 울리었다. 수일이와 떨어진 뒤부터는 더욱 밤이 새도록 깊은 잠을 들지 못하여 뒤채기만 하던 산월이는 이 소리를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서 조그만 가슴을 또다시 달락씨며 아들 수일의 안부를 걱정하기에 온밤을 맞는 것이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이래 더 말할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지어 불쌍한 수일의 장래를 위구하는 터이었다.
그런데 이날 새벽의 일이다. 난데없이 밤중에 안사랑 쪽에서 총성이 울리더니 누구인가의 찔리는 듯한 비명이 들리고 그 뒤를 이어 또다시 탕탕 총성이 낭자하여지었다. 드디어 윤남작을 암살할 목적으로 해외로부터 침입한 사내는 경관대와 교전을 하여 그 자리에 쓰러진 터이다. 그리고 안사랑 토팡가에는 금광을 캐자고 윤대감을 조르러 다니던 애매한 박대감이 그만 이 집 주인으로 오인되어 노다지처럼 피를 쏟고 맞아 죽었다. 그때에 허겁지겁 도망을 쳐 중대문을 뛰어넘어 나무 새에 떨어진 채 정신을 잃고서 넘어진 김백작이 발견되기는 날이 어지간히 밝았을 즈음이었다―---그 시절로 말하면 바로 세계 정국도 화란(禍亂) 속에서 신음하여 파리에서는 강화회의가 벌어지려는데 노서아에는 제2혁명이 일고 일본과 기타 제 외국은 서백리아(西伯利亞) 출병을 한다는 난(亂) 통이다. 이런 정세로서 조선 사람 대중도 차츰 정치와 경제에 새로운 눈을 뜨고 생활과 문화를 위하여 분투하여 나가던 세대이다.
그 뒤부터 김백작의 얼굴은 일층더 인력의 법칙에 의하게 되었다. 눈을 감으면 가죽이 끌리어 올라가 입이 벌어지고 입을 닫으면 그제는 눈 언저리 가죽이 풀리어 푸시시 눈이 떠지는 터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침입한 사내가 육혈포를 들이댈 때에 그는 너무나 놀라 눈이 왕방울처럼 되어 비명조차 못 질렀는데 박대감은 제가 윤남작이 아니라 윤남작은 운니동 첩네 집에 가 누워 있으니 저만은 제발 쏘지 말라고 너무도 황망히 빌며 변명을 하였기에 도리어 주인이라 의심을 받아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침입한 사내가 검은 보자기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번득번득씨는 모양이 꼭 부엉이 같았다고 신이 나서 주절거렸다.
"그래 부엉이는 무어라구 헙더니까?"
월화네 집에서 이 급보를 듣고 돌아온 윤남작은 뒷수습이 거진 다 끝나자 그제는 푸욱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렇게 호기 있게 물었다. 그러자 김백작은 히끔 겸연쩍었던지 헤헤헤 하며 손으로 목을 치더니 한번 힉힉 혼자소리로 웃고서,
"그래 들어 보시려우."
하고 아주 자조를 띠어 목을 쑤욱 내어밀며,
"이 녀석아, 참새가 무어라고 울드냐 하고 난데없이 이런 걸 묻드군요, 헤헤헤."
그래 안사랑에 모여 앉았던 노대감들은 한꺼번에 웃음소리를 터치었다.
윤대감은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벌씬 멋쩍게 웃었다. 참새 울음소리의 비유는 옛날 대관들의 학정을 아주 잘 풍자한 말이었다. 사실상의 일은 여하간 어린애들은 흔히 이 참새놀이를 길가에서도 하며 놀았다. 언제였던가 윤성효도 집 대문 앞쪽에서 빈민의 애들이 모여서 참새놀이를 하다가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본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김백작이 말하는 의미를 넉넉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참새놀이에는 돌구름다리가 무대로 되었다. 왼 윗단에 악관이라 하는 어린애가 아주 뽐내며 앉았고 구름다리 아래에는 세 어린애가 포승을 받고서 굴복을 하고 앉아 있다. 그 뒤에는 두 형사가 채찍을 쥐고 노상 버티고 서서 상관의 명령만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터이다.
"이 오른쪽 놈아, 참새가 무어라고 울어?"
이렇게 상관이 고함을 지르면, 오른쪽 놈은 머리를 땅에 박고,
"네, 그저 참새는 짹짹 하고 웁지요."
한다. 그러자 상관은 발을 구르며 호령을 하되,
"이놈 찍찍은 울지 모르나 참새가 짹짹 우는 법이 어디 있느냐! 으흠 그놈 볼기를 다섯 대만 치거라!"
그런데 이놈의 형사들이 아주 상관 명령에 충실하고 몹쓰게 생겨먹은 놈이라 조금도 얀간한 맛이 없이 사정없게 채찍으로 볼기를 친다. 그래 오른쪽 애가 늘큰히 얻어맞자 이번은 가운데 애가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되어 약삭빨리 참새는 찍찍 하고 운다고 대답하였더니 그렇게 우는 놈의 참새가 어디 있느냐 짹짹 울지, 이렇게 되어 또 볼기가 열 대. 이리하여 맨 마지막 쪼그만 애 꼬맹 주사(主事) 차례가 되자, 그만 겁을 집어먹으며 찍찍짹짹 하고 운다고 대답하고서 또 그렇게 두 소리씩 하는 참새는 어디 있느냐고 볼기를 열다섯 대나 얻어맞게 차부가 된다. 그러나 이애는 아주 아프기도 하려니와 그 무법(無法)에 골이 올라 그만 울면서 일떠섰다.
"이 자식 왜 때려 응, 이 나쁜 사도 자식, 왜 두 소리를 못 해, 앵무새는 아무 소리라두 허지 않어?"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다른 놈도 합류하여 죄수 세 놈이 그만 반란을 일으키어, 도로 이번은 그 악관과 형사 세 녀석을 잡아 엎디치고 비끄러매었다.
"애 이 자식, 그럼 너 말해 봐, 너두 말 못 허지?"
하며 꼬마 주사는 악관사도를 타고 업누르며,
"이 자식 상관이나 되었다구 막 두들겨패기냐, 뽐내지 말어. 이건 노름 아냐? 애 이 자식 대답해 봐, 무어라구 우니?"
"애 꼬맹아, 난 난."
하며 아까의 상관은 비명을 지르면서 능청맞게도,
"난 귀머거리야. 그래서 참새 소리가 들리지 않어. 에이 너 그렇게 때리기냐. 조금 있다 죽는다. 아이구 이건 아까부단 더하지 않냐?"
"머야? 귀머거리야 이 자식. 거즛말 말어, 내가 다 알어 있어 다! 알어 있어!"
"허― 그래 김대감은 귀머거리가 되어 대답을 못 한 모양이지."
하고 윤남작은 의미 깊게 물었다.
"헤헤헤, 그런 게 아니지요."
하며 손을 내저으며 김대감은 거들거렸다.
"귀머거리가 되질 않우 바루 벙어리가 되었습지요. 아 너무 혼이 나서 눈을 흡떴기 때문에 그만 말구멍이 맥혔는걸요."
11
편집학교 뜰안 한 모퉁이 포플러가 주렁주렁 늘어선 나무 그늘가에 굳게굳게 얼싸안은 어머니와 아들의 그림자가 있다. 해는 바로 뉘엿뉘엿 지려는데 황금색의 저녁 햇발이 이 두 불쌍한 목숨의 오늘의 슬픈 포옹을 위로하듯이 포근히 두 몸뚱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는 길게 뻗쳐 누워 있고 포플러 높은 나무 가지가지에서 새로 나온 파란 잎들은 무어라고 속삭이듯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수일이는 어머니 품에 몸을 박은 채 훌적훌적 울기를 그치지 못하는데 산월이도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지로 참느라고 흑흑 숨을 들이켜며 느껴 울었다.
그러나 이윽하여 길게 뻗친 두 그림자가 조심조심히 움직이기를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제가 대신 끼어 든 수일의 책가방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닦으면서,
"아― 내가 무슨 몹쓸 죄를 저즐렀다기에―--- 내가 왜 수일이 너를 길러야 되는지 모르겠구나."
수일이는 얼굴이 새하얘지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아직 얼굴을 들지 못한다.
"아― 수일아, 너는 왜 태여나 날 이렇게 걱정을 시키니 넌?"
"내가……."
그는 어머니의 이 소리를 듣고 그만 말할 수 없는 깊은 실망에 빠진 것이다. 가장 사랑하며 또 몸이 부서지도록 간절히 간절히 그리던 것은 이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그래 수일이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 애연하게 호소하듯이 어머니를 다시 쳐다보았다. 산월이는 갑자기 안된 생각이 들어 수일이를 다시 껴안아들이었다.
"아이구 내가 못돼서 또 그런 소리를 했구나. 네가 너무 귀엽기두 하구 또 학교두 잘 단기는 것을 보니 너무 기뻐서 그런 거즛말을 하였는데 그걸 곧이듣는단 말이냐, 곧이들어? 노느라고 그랬어, 노느라고. 내 잘못했다고 빌게. 우리 수일이는 인제 울지 않을래. 인제 끄칠 제 보지. 나는 안 울지 않어. 봐 봐요, 날 좀, 나는 지금 웃질 않어?"
그리고 불현듯 너무도 해가 저문 줄을 알자 새삼스러이 놀라며 수일이를 분주히 재촉하여 앞세운다.
"아이고 너무 늦었구나, 빨리 가요. 빨리 원, 내가 철이 있나. 참 철부지지 철부지야."
"인젠 가방 나 주어."
교문을 나서며 수일이는 남이라도 보면 가방을 어머니에게 들게 한 것이 흉할까 해서 손을 내어밀었다.
"아냐, 내 조금만 더 들어다 줄나."
"내가 메어요."
"아냐 아냐. 아이고 너 이게 얼마나 무겁니. 벌써 네가 이런 걸 다 메고."
"무겁지 않어. 난 무겁지 않어."
"무겁지 않어. 아이구 넌 힘이 세구나."
하며 그냥 산월이는 한 손으로 가방을 꼭 낀 채 한 손으로 수일의 손을 잡고서 끌어당긴다. 그는 얼마나 오늘이 행복스럽고 즐거운지 알 수가 없었다. 길 가던 사람들도 적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들 모자를 뒤돌아본다. 산산한 바람이 길 먼지를 펄펄 날린다. 거리에는 벌써 전깃불이 켜졌다.
"매일 이렇게 늦게 오니?"
"아니."
"그래, 작은어머니는 '고매' 굴든?"
수일이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대답도 못 한다. 그래 산월이가 머리를 돌리자 그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할 수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었다.
"선생은."
"……고매 굴어."
"동무들은."
"동무들두."
어머니는 이 모양으로 숙부네 집 일이며 학교 일이며를 골고루 물었다. 그러면 수일이는 역시 어머니를 슬프게 하지 않을 양으로 모두 괜찮다는 듯이 어름어름 대답하였다. 그리고 보상이라도 되는 듯이 그 대신 석순철의 이야기를 종알종알 자랑을 하며,
"순철이는 사상가야. 그래 아무것도 무섭지 않대. 순철이는 나하구 동무야."
이렇게 뽐내었다. 산월이는 사상가라는 말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세상이 바뀐 뒤 다시 기생 몸이 되어 가지고 그는 얼마나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는가. 산월에게는 사상가라는 개념은 아직 똑똑지는 않았으되, 막연하나마 그것은 아마 자기를 못살게 한 윤대감 따위를 쳐 물리려는 사람들의 명칭이거니 하고 생각한다. 그래 산월이는 평양에 살고 있었을 때는 그 당시에 울리던 대성학교 출신들의 연설이라면 한사코 들으러 갔었고 또 그 나머지 더욱더욱 윤가에 대한 증오감을 불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사람들의 변전하는 운명에 얼마나 놀라 온 것일까. 그날 아침의 침입자의 죽음 이것도 눈앞에 서물거린다.
"사상가라니?"
"사상가?"
수일이는 전에 제가 순철에게 이 단어 때문에 부끄럼을 받은 일을 생각하며,
"어머니 것두 모르니, 사상가는 제일 힘 세서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사람이야."
어머니는 하도 어이없어 웃어 버렸다. 그리고 조금 무엇인가 생각하는 모양으로 고개를 숙이었다. 수일이는 좀처럼 귀애의 이야기를 물어 볼까 하였으나 왜 그런지 겸연쩍어 종(終) 입을 떼지 못하고,
"어머닌 작은아버지 집에 안 갈란?"
"못 가, 못 가."
산월이는 놀라 황망히 손을 저었다.
"나를 만났다구 아무보고두 말하지 말어 응, 응 알었지?"
"응."
수일이는 적이 못마땅한 듯이 볼멘소리로 대답한다.
"그래두 이젠 집에 다 왔는데."
그 소리에 산월이는 펄적 놀라 멈춰 서서 위쪽으로 수일이를 끌어들였다.
"어느 집이냐?"
"저거지 뭐, 검은 담장하구 문간에 등 달은 집이지 뭐."
산월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미륵처럼 굳어진 채 한참이나 그곳을 바라본다. 필운동이라도 퍽으나 깊은 곳으로 들어온지라 아주 쓸쓸하고 외로워 저런 집으로 제 어린 아들을 들여보내어야 하는가 하면 어찌 또 언짢아지는지 알 수 없었다. 산월이는 소룬히 제 옆채기에서 과자랑 은전을 꺼내어 수일의 책가방에 넣었다. 수일이도 의심스러이 어머니를 쳐다볼 뿐 말을 못 한다. 어머니는 가방을 수일의 어깨에 메어 주었다.
"아무 게두 보이지 말어라."
"응."
그러자 매시시 수일의 손을 놓았다. 수일은 두어 발자국 떨어졌다.
"내 또 올나, 또 와."
산월이는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겨우 부르짖었다.
"응."
수일이는 또다시 몇 발자국 떨어졌다.
"잘 가거라. 잘 가."
산월이는 수건을 흔든다. 그러다가 그것을 입에 물고 깨물었다. 그의 눈에는 파란 불빛이 서리우고 얼굴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일이는 조금도 떼를 쓰지 않고 슬금슬금 떨어져 간다. 그리고 때때로 뒤를 돌아다보고 약간 멈춰 섰다가는 또다시 걸어가다가 이번은 어머니가 수건으로 눈물을 적시는 모양을 보자 열 발자국쯤 달아났다. 그리고 저도 엉엉 울려다가 사상가는 울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서 울음을 참느라고 입을 비죽비죽거리면서 가방 속에서 눈깔사탕을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다보니 어머니는 빨리 들어가라는 시늉으로 수건을 펄럭펄럭 흔들면서 저도 차츰차츰 먼 곳으로 물러간다. 수일이는 대문 앞까지 와서는 그냥 멈춰 서서 종내 어머니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야 제 방으로 술그먹술그먹 들어갔다.
12
편집그 뒤에 또 몇 달인가 지나서 가을바람이 스산히 부는 어떤 일요일날 그들 모자는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어 북한산 밑을 향하여 자동차로 달린 적이 있었다. 산월이는 그날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기생 시절과 같이 차리고 왔었다. 어린 고양이같이 가는 허리에는 화문(花紋) 박힌 순백의 긴 치마를 가는 주름을 잡아 걸치고 물색 숙고사 웃저고리는 짧게 잘라 입고 검은 구름 같은 머리에는 옥비녀를 꽂고 띠에는 은장도, 금장도, 산호주에 진주월패를 주렁주렁 늘이고 손가락엔 천도금가락지를 끼었다. 그는 칠색 구름 속을 날아다니는 선녀와도 같이 사뿐히 차 안에 몸을 실었으나 막상 구루마가 달리기 시작하자 한편 구석 쿠션에 조그만 몸을 틀어박고는 슬픈 얼굴로 어깨를 들먹일 뿐이었다. 불쌍한 어머니는 그날은 처음부터 유별히 넜갔이 다르며 또 몸가짐도 평상 같지를 않았다.
수일이는 또 다른 한편 쪽에 오뚝히 앉아서 어머니가 무엇을 그렇게 슬프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는 듯이 몸을 까딱도 하지 않고 어머니 쪽을 구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막연하게나마 아무래도 오늘은 어머니가 무슨 큰 결심을 하고 온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그 후에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혹은 어머니는 그날 수일이를 최후의 길동무로 삼고 마지막의 길을 깊은 산중에서 걸으려는 것이나 아닌가고도 의심된다.
자동차는 벌써 산밑에 이르러 울울창창한 소나무숲 새를 뚫으며 달리고 있었다. 바위틈 새로 흐르는 물은 맑고 여기저기 물가에 갈대는 하얗게 피어 너훌너훌 머리를 젓고 있었다.
둘이는 웬만큼 가서는 도중에서 차를 버리었다. 하늘은 청청하게 높고 땅은 명랑한 황금빛으로 빛나는데 바람에 사납게 흔들리는 숲 소나무 가지가지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놀란 듯이 송알송알 지저귄다. 어머니는 아무 말 한마디 없이 숲속을 솔음솔음 더듬으며 수일이는 그 뒤에 조금 떨어져서 갈대꽃을 손으로 살악살악 흔들면서 묵묵히 따라 올라갔다. 갈대꽃은 바람을 타고 펄펄 파문을 그리며 하나하나가 엷은 눈송이처럼 떠올라간다. 수일이는 멈춰 서서 그것이 공중에서 오색이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쳐다보면서 소리 없는 손뼉을 치곤 하였다. 송림이 다한 곳으로부터는, 험하고 그악한 돌작지길이 산으로 기어오르고 있다. 산월이는 수일이 손을 끌며 올라간다. 소년은 역시 오늘의 어머니는 얼만큼은 불만이었으나, 다만 사랑하는 어머니가 다시 자기의 것으로 돌아왔다는 기쁨에 그득하여 되도록 어머니의 심사를 상치 않으려 그냥그냥 말없이 따라 올라갔다.
"어머니 아무두 없는 곳에 가나?"
하고 수일이는 동의를 구하려는 듯한 눈으로 물어 보았다. 어머니는 가벼이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흔들 뿐이다.
"옛적에 어린애 셋이서 범 잡으러 갔던 데두 이런 산이나?"
그는 어린애들이 어떤 산에 올라가 그곳에서 자고 있는 범을 용하게도 바윗줄로 얽어매었다는 옛말을 생각해 내었던 것이다.
"범두 없는 곳이란다."
어머니는 고즈넉이 말한다.
"범두 사람두 없는 쓸쓸한 곳에 간단다. 거기 가면 너하고 우리 둘이서 암만 소리를 지르며 지껄여두 사람이 듣겠니, 또 울어두 알겠니."
"그럼 어떤 중이 높은 무쇠나무를 본 데두 이렇게 높은 곳이야."
"응 그렇단다."
어머니는 할 수 없는 듯이 쓸쓸히 웃었다.
"그럼 어디 무쇠나무 아래에 돌구두 신은 크단 사람이 누워 있지. 그 사람 콧김에 저 수풀이 흔들리나."
"오라, 그런지두 모르겠다."
그들 모자는 서울 장안의 시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 밑에 발을 멈추었다. 벌써 어느덧 가을은 깊고 해는 서천(西天)에 기울어 쌀쌀한 바람은 소나무숲을 불어올리며 그들의 옷자락을 펄펄 날린다. 저녁해가 빨갛게 반조(反照)한 높은 느티나무가 세차게 흔들릴 적마다 몇백의 까마귀들이 휩쓸어 떠올라 까악까악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황금의 태양이 보낸 소악마들처럼 펄럭펄럭거리며 그 때문에 넓고 훤하던 조망은 처참하게도 컴컴스레 어두워진다. 장안만 호(長安萬戶)의 경치도 군데군데가 시커먼 단도에 찔리어 그것이 난무하는 사이사이로 천주교회당의 종루가 우뚝 솟는가 하면은 혹은 백아(白亞)의 높은 건물들이 걸핏걸핏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나무숲은 다시금 무더기로 흔들리면서 쏴―쏴― 함성을 지니 까마귀떼는 놀라 하늘 높이 몰려서 퇴진을 한다.
어머니는 가분작이 이상한 목소리로 캐들캐들 웃으며 손바닥을 친다.
"응 인젠 그만 내려가."
하며 수일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응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를 않고 마치 무엇에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같이 잠잠히 그 자리에 앉아 버린다. 그래 수일이도 수심에 찬 얼굴로 옆에 살그머니 다가와서 나란히 붙어 앉았다.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우리 수일이는 역시 어머니가 좋으니?"
어머니는 혼자소리처럼 이렇게 중얼거리었다.
그러나 말소리는 바람에 휩쓸어 난다.
"응."
수일이는 목소리를 삼키었다.
"난 어머니가 제일 좋아."
그리고 이어서 양보하였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곳이면 아무 데라두 갈래. 내 집에 가자구 안 글게."
산월이는 가만히 수일이를 끌어당기어 제 뺨을 아들의 얼굴에 비비었다. 그때에 그의 뺨에는 뜨거운 눈물이 한 줄기 옮아 넘어 흐른다. 수일이는 놀라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문 해에 빨갛게 질리어 보이는 어머니의 뺨에는 눈물이 끊일 사이 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두 내가 죽는다면……."
"어머니 왜 그런 소릴 하니……."
"아직 너는 철부지 애로구나."
하며 어머니는 슬픈 낯으로 웃는다.
"내가 병이라도 앓아 죽으면 어떡하니. 어머니두 한 번은 아무래두 죽는단다."
"어머니 그럼 매일 병 안 들게 하나님께 빌면 되잖어."
"글쎄, 그건 그럴지두 모르겠구나. 그래두 박대감처럼 총에 맞어 죽는 사람은 없던? 모두가 하나님 처분이실 테지만."
이전에 다시 만났을 적에 산월이는 역시 본집의 피습사건을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디었던 것이다. 산월의 생각에는 수일의 장래가 이 편에 선대도 무섭고 저편에 선대도 또한 위험하게만 보이는 것이다.
"응 그래두 박대감은 사상가에게 맞어 죽었지. 그럼 사상가가 되면 되지 뭐. 사상가는 발에 용수틀이 붙어서 얼마나 잘 피하는지 몰라."
호호호 하고 어머니는 눈물이 쏟아지게 높은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그 사상가가 또 맞어 죽었구나."
"그럼 어머니."
하며 수일이는 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으며 애연하게 부르짖었다.
"내 멋있는 소리꾼이 되어서 매일매일 하나님을 기쁘게 해줄래. 그럼 하나님은 어머니랑 나를 도와 줄걸 뭐."
어머니는 눈물이 다시 핑 돌아 고개를 제치며,
"참 우리 수일인 좋은 애로구나. 것두 정말 네가 소리를 하면 몹쓸 사람은 미치어 나가고 나쁜 사람은 그 자리에 죽어 넘어진다면 좋겠다."
"……"
"정말 그렇구나."
하며 산월이는 꿈꾸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가 네게 물려주는 건 소리밖에 없구나. 네 몸을 지킬 비수 하나, 나는 남겨 주지 못하고 죽겠구나."
"비수라니?"
수일이는 목에 침이 마르게 부르짖었다.
"죽여, 사람을 죽여."
"죽여?"
"응, 칼 말이고나."
"누귀를."
"아무개든."
모자 사이에는 다시 말할 수 없는 긴장된 침묵이 지배되었다. 수일이는 더욱더욱 무섭고도 이상야릇한 생각에 엄습을 받아, 떨리는 얼굴을 쳐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금다시금 살피면서 어머니의 진심을 알고자 애를 썼다.
"세상 사람이 윤가네를 저주한단다. 그리고 너는 그 무서운 후손이란다."
수일이는 더욱더욱 지금까지 경험치 못한 깊고깊은 우수와 회의 속에 억눌리었다. 어머니는 수일의 손을 잡고는 다시 일어나서 차츰차츰 더 그악한 단애를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슬프고 처량한 가느단 목소리를 뽑아 간간이 흐득여 울면서 자진 수심가의 한 구절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바람아 부지 말어라 송풍 낙엽이 떨어지누나 명사십리 해당화야 잎 진다, 꽃 진다고 설워를 말아 동삼 석 달은 죽었다가 명춘삼월이 돌아오면 잎은 돋아서 왕성을 하고 꽃은 피어서 만발하는데 우리 인생 죽어지면 만수장림에 운무로구나
그러자 수일이는 조금도 수줍은 기색이 없이 같은 슬픔, 같은 원한에 가득하여 맞받아 다음 노래를 부르니―---
만첩청산 썩 들어가서 잔딧잎으로 이마를 삼고 두견접동으로 벗을 삼고 석침 베고서 누웠으니 송풍은 거문고요 두견성은 노래로구나 살은 썩어 물이 되고 뼈는 썩어 황토가 되고 삼혼칠백이 흩어나질 제 어느 친구가 날 불쌍타 할까요 생각하면 심사가 좋지 않어서 못살리로구나
이때에 산월이는 아들을 얼싸안고 그만 자리에 엎더진 채 몸부림을 치며 어린애처럼 소리를 높여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수일이도 물론 따라서 엉엉 울어 대었다. 울음소리는 바람에 흩어져 하늘에서 부서졌다. 그리고 아무리 소리를 높여 울어도 누구 하나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산상에서 이렇게 모자가 슬프게 한껏 통곡을 하고 있을 적에 하늘에는 까마귀가 날고 저녁 안개는 뽀얗게 끼어 오는데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산월이는 수일이를 데리고 만장의 단애로는 찾아가지 않았다.
13
편집가을철도 차츰 깊어 가고 다시 새 겨울은 찾아왔으나 북한산에서 헤어진 이후로는 어머니는 채찍으로 맞은 것처럼 한 번도 찾아 주지를 않아, 수일이는 어머님을 그리는 마음이 더욱이 간절하여지었다. 어디가 아프시지나 않은가 하고 문득문득 걱정이 되나 역시 본집에 어머니를 만나러 가도록 허락은 내리지를 않았다.
그런데 어떤 날 수상하게도 사무실에 아버지가 찾아와서 숙부네 부처와 무엇인가를 수군수군거리는 것을 보았다. 수일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실내의 문을 열고 들어와 한옆에 서서 먼 바로 그들의 기색만 살폈다. 아버지는 수염 한끝을 입에 물고 깊은 눈꺊을 흐밀거리면서 수일이를 물끄러미 바라다볼 뿐 이렇다는 말 한마디 입을 떼지 않는다.
"수일이 도령님은 아주 큰 양반이랍니다."
하고 숙모는 연신 능청을 부리면서 남작에게 듣기 좋으라 말추를 늘이었다. 언제나 하루같이 수일에게는 쌀쌀하고 무정하던 이 숙모가 남작 앞에서는 유달리도 은근할 뿐더러 수일에게까지 외려 무시무시할 만치 친절한 것이다.
"첫째 공부 잘하고 말 잘 들으니 좀 훌륭해요?…… 그래 늘 저는 바깥어른과 마주앉으면 원 큰집 대감네는 아들두 참 잘 두어서 어쩌문 그렇게 팔자가 좋으실꼬 이렇게 두구 뇌인답니다."
그리고서 수일의 쪽을 척 둘러보더니만,
"수일 도령님 이리 좀 와요."
하고 아주 짓궂게 손까지 흔들어 보인다. 수일이는 온몸에 소름이 쭉 끼치는 듯하여 몸서리를 쳤다. 숙모는 물소같이 긴 얼굴에 께름칙한 미소를 띠며 얼러대려 든다.
"아무 근심 말구 공부나 더 잘해야 허우. 근심헐 게 무에 있나? 어머님두 우리 도령님이 공부 잘허기만 바래구 있을 테니 어머님 근심두 애여 말어야 허오."
"허― 그런 소린 다 왜 허나."
하고 뾰족한 매부리 콧잔등에 금테 안경을 건 숙부가 핀잔하듯이 제지하였다.
"어린애보구 헐 소리가 따루 있는 게지, 그런 소린 다 왜 허나."
그때에 아버지는 비로소 퉁명스런 소리로,
"나가 놀아라."
하였다. 수일이는 어리둥절하여 수벅수벅 걸어나가다가 귓결에 아버지가 숙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허기는 나두 어데 온천에라두 며칠 데리구 가볼까도 하였네마는 원체 어린애가 좀 귀찮어야지……."
직감적으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로구나 생각하니 수일이는 가분작이 몸뚱이 떨리며 가슴이 두근거림을 금치 못하였다. 마음이 안절부절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좁은 가슴을 조이면서 대문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때였다. 비록 의외의 일일지라도 이 동리 한집 한 집 문표로 쳐다보며 찾아 싸다니는 귀애를 문 앞에서 공교롭게도 만난 것은―--- 수일이는 깜짝 놀랐다. 어떤 소녀가 앞집 대문 아래서 키춤을 하며 문표를 살피고 있다가 인기척에 놀라 홰끈 돌아선 얼굴, 그것은 틀림없이 옛날의 귀애가 아니었던가. 가느다란 몸테지에 검은 조선옷 제복을 입은 탄탄스럽고도 귀여운 모습. 귀애는 수일이를 첫눈에 알아보자 입을 딱 벌리고 일순간 환희의 빛을 나타내더니 막 쓰러질 만치 내달아와서 수일이를 붙들고 숨길이 가쁘게 하닥이며 발바닥을 굴리었다.
"아, 만났다. 이제야 만나서!"
그러더니 아무 소리 하나 못 지르게 신달음으로 소매를 잡아 끌며 달아나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큰일나서, 큰일나서."
"어머니가?"
수일이는 펄쩍 놀라 되받아 물었다.
"응 어머니는 어머니는 네 이야기만 헛소릴 해. 헛소릴……."
"헛소리?"
수일이는 기를 쓰고 따라 달려갔다.
"글쎄 넌 어쩌자구 걱정 편지 한 장두 안 하니? 몇 번씩이나 편지를 했는데 넌 편지두 못 읽니?"
귀애는 숨이 턱에 닿은 목소리로 제 말만 말이라고 조잘거린다. 그것은 조금도 전과 다름이 없는 역시 여돌하고 영리한 귀애였다.
"왜 어쩌자구 회답편지두 않어. 그렇게 무서워 집이? 편지 쓸 줄두 모르니?"
"난, 난 편지 같은 거……."
"편지 같은 거가 뭐야 내가 편지를 세 번씩이나 했는데."
"못 받었는데."
"못 받어서? 못 받을 데가 어디 있어…… 옳지, 그럼 저 몹쓸 작은어머니가 감춘지두 모르겠어. 제가 글자를 모르니깐 제 욕한 줄 알구 찢어 버린지두 모르겠네."
그들은 벌써 삼청동 골목을 껴뚜르고 나와 지금은 돈화문 앞 넓은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쨌나? 어머니가?"
"애 봐, 큰일나서. 아주 큰일났단다. 어머니가 매일매일 몸부림치겠지."
"어째서?"
"내가 이만큼 큰애가 되구서 바루 대어 줄 줄 알어. 총기 있는 내가 너보구 대어 주면 어떡하겐? 네가 울며불며 야단치라구…… 어서 가. 가기만 하면 알어."
"어머니 어머니!"
"울지 말어요. 거진 다 왔어. 울지 말어."
한 반시 가량을 이렇게 숨이 멎도록 달음질을 쳐 어느새엔가 그들은 높은 담장으로 둘린 본집 조그마한 뒷문 가까이 이르렀다. 귀애는 수일이를 전신주 뒤에다 꼭 붙이어 숨겨 놓고 사방을 돌아보았다. 아직 해가 지기는 멀었을 때인데 가분작이 하늘색이 컴컴하여지며 시재 눈이라도 올 것 같은 일기로 변하였다. 살그머니 뒷문을 열어 보려고 다가설 즈음에 마침 행랑 사람 하나가 문을 열고 어슬렁어슬렁 나오더니 사나운 구름이 뭉겨 도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서 타악 가래침을 뱉더니 바른쪽으로 엉금엉금 걸어간다. 이 틈을 타서 귀애는 수일이를 얼싸안을 듯이 감싸고 뒷문으로 쏠려 들어갔다. 수일에게는 모든 것이 꿈결 같았다. 바로 그들이 들어선 곳은 연못에 가까운 언덕으로 언제인가 굿사건 때에 그들의 모자가 불리어들 나와 상기하여 넘어졌던 데였다. 거기서부터 연(連)달린 아주 쥐죽은 듯이 고요한 과수림(果樹林) 새를 걸핏걸핏 뚫고 나가면 고색이 창연한 본채 지붕 끝이 나무숲 위에 엉거주춤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아래 한쪽 끝 방이 전에 수일이와 어머니가 같이 지내던 곳이다. 수일이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여기까지 달려오기는 하였으나, 막상 어머니가 있는 방 앞까지 이르렀을 때에는 아주 기진하여 발밑이 부들부들 떨리며 혀끝까지 가두어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날은 유별히도 집안에 인기척 하나 없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수일이는 어머니 방의 문지방에 바싹 몸을 기대었다. 아카시아나무에 흔들리는 어르숭숭한 광선이 영창문에 비치어 사광(蛇光)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은 다시 방망이질을 하여 그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고, 눈앞은 캄캄하여지며 입 속이 타올라 말소리 한마디 낼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놀라시게 하지 말어."
귀애가 그의 등을 얼싸고서 조그마한 소리로 귓등에 속삭이었다.
"가만히 들어가서 만나구만 나와요! 내가 바깥에서 망을 볼 테니까 걱정 말어."
그러나 웬일인가 수일이는 어머니가 있는 방 안으로 뛰어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
하고 그는 숨죽인 소리로 부르며 유리문을 흔들었다.
"잠이 드신 모양인가 봐."
"어머니!"
"소릴 내지 말어요. 가만히 그냥 들어가래는데."
"어머니!"
수일이는 마치 방 안에서 쫓겨 나온 어린애가 어머니보고 용서를 빌려는 모양과도 같았다.
귀애가 얼핏 유리문을 열었다. 그 바람에 수일이는 반사적으로 방 안에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온몸에 공포가 쭉 뻗치어 그 자리에 그만 막대처럼 뻣뻣이 굳어져 내렸다. 어두컴컴한 방 한구석에 포단이 주름이 진 채 깔리운 위에 놀라 반신을 일으킨 어머니의 너무도 변한 모양이 시든 약초와도 같았다. 처음에 무엇이라고 어머니는 소리를 지른 것 같으나 그것은 딱히 들리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이전처럼 수일이를 쓸어 안지도 못하고, 정신의 갈피를 못 잡는 듯이 무서운 형상을 지은 채 머리를 휘젓고 있다. 머리카락은 산산이 헤어지고 뺨은 몰라볼 만치 파리하여 피부색은 유황색으로 보였다. 그 눈은 무섭게도 튀어나온 것 같아 아들 수일이는 아직까지 어머니의 그 곱던 얼굴에 이처럼 놀랄 만치 처참한 눈을 본 적이 없었다.
수일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물이 쭈루룩 쏟아지며 숨이 턱턱 막히었다.
어머니는 별안간 발작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사시나무처럼 손발을 와들와들 떨더니 몸을 괴롭게 비꼬다가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며 괴로운 목소리로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등 언저리가 사나운 물결처럼 흔들린다. 수일이는 그만 기겁하여 으아― 하고 울음통을 터치면서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목을 얼싸안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발을 버둥버둥씨어 머리맡에 놓여 있는 약병을 두서너 개 넘어치었다.
"그렇게 울면 안 돼요. 어머니를 그렇게 슬프게 하면 안 돼요!"
하면서 어느새엔가 달려 들어온 귀애는 꾸짖듯이 수일이를 끼어올리며 부르짖었다.
"내 그러라구 다려왔어? 암만 울어두 슬퍼. 그만둬요 그만둬!"
"어머니 어떻겠어요? 어떻겠어요?"
수일이는 그냥 울었다. 다름이 아니라 북한산상에서 수일이와 최후의 길을 걸으려다가 단념하고 돌아온 뒤부터는 산월이는 매일같이 문을 굳게 닫고 혼자 죽을 길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녘, 그는 하도 수상한 꿈을 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나깨나 그리운 평양 동산 위로 그들 모자는 청류벽(淸流壁) 무시무시한 단애 기슭에 이름도 모를 새빨간 꽃을 한움큼씩 얼싸안고 나란히 서 있었다. 그때에 난데없이 하늘은 캄캄하여지며 일진광풍이 몰려와서 그들의 꽃다발을 빼앗아 펄럭펄럭 휘날린다. 그러자 그것은 공중에서 여러 바퀴 핑글핑글 선회를 하더니 그만 대동강의 물줄기를 향하여 쏠려 내려가다가 돌연 우레 소리가 지르면서 강이 쩍 벌어지자 산산이 흩어지면서 마치 비닭이가 내려앉듯이 그 속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놀라 뒤를 돌아다보니 수일이는 벌써 어느새에 간 곳이 없이 사라지고 말았었다. 산월이는 이 꿈을 아주 불길한 일로만 생각하고 인제야 마침내 제 명을 끊을 날이 온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일이 심상치 않게도 바로 그날 아침 또 별안간에 해주집이 달겨들어 와서 야로를 하기 시작하였다. 흉쭈루기 그 처음 몇 날 전부터 그의 외딸 옥기가 바람을 케어 앓아누워 있었는데 소경을 데려다가 점을 쳐보니 동방 제십문(東方製十問) 안짝에서 살이 들어왔다고 하므로 이것은 필경 유령처럼 매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산월이가 김천집 모녀와 틀이를 하고 저의 모녀를 못살도록 저주를 한 탓이라고 생각을 하고 선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아들을 낳아 가지고 온 젊은 년이라 하여 지금까지 질투와 증오의 불길을 가누지 못하던 해주집이다. 그래 해주집은 노기가 등등하여,
"이년 좀 나와 보거라!"
하며 토방가에 와서 고함을 빽 질렀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는지라 제 바람에 더욱 기가 올라,
"아 이년 그래 안 나올 테냐. 아 이년 못 나오겠으면 그만두려무나."
하며 산월의 방에 쑥 뛰어들어갔다. 산월이는 마침 이불을 쓰고 흐득흐득 혼자 설움에 느껴 울고 있다가 누구인가가 벌거덕 미닫이를 열고 들어옴에 놀라 화닥닥 일떠났다. 해주집은 분통에 차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덤썩 산월의 머리채를 휘어감고 낚아채었다.
"응, 이년 네가 일떠나면 날 어쩔 테냐! 이 박살할 평안도 기생년! 이 아물진년, 대감의 밸을 다 긁어쥐구 큰 도령은 잡어먹구 이 박살할년!"
"아이구 오마니―"
"아 이년 엄포를 봐라. 하면 네 죄를 모르겠니. 큰 도령 하나 잡어먹은 것도 모자라 인제는 내 딸을 잡어갈라구! 이년, 이년 홍두깨 방맹이에 학춤을 추어야 알 테냐. 네 이년아, 네가 청승맞은 김천댁년하고 매일 밤 우리 모자 죽으라구 축수를 지내지."
하며 머리채를 방 안으로 들들 끌고 다녔다. 산월이는 비명을 간신히 지를 뿐 정신까지 혼미하여졌다. 여비들이 난데없는 외치는 소리에 놀라 몰려 들어와 달라붙어서 겨우 뜯어 놓기는 하였으나 해주집은 터치려는 분통을 억제치 못하고 막 여비들을 두들겨패며 끌리어 나가면서까지 제 가슴을 치며 독설을 퍼붓는 것이다.
"아이고 불쌍허라 내 팔자야. 응 이 박살할 평안도 기생년! 이년, 대체 네가 무슨 염치로 이 집을 쓰구 있단 말이냐! 응 이년, 제 자식새끼를 때웠으면 그뿐이지 내 딸은 또 왜 죽으라구 축수를 지낸단 말이냐? 응, 이 모두 불살러 죽일 년들! 이년 빨리 서방 얻고 나가거라! 이 죽일 년!"
해주집 소리가 어지간히 멀리 사라질 즈음 죽은 듯이 쓰러졌던 산월이는 유령처럼 머리를 흐트린 채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나갔다. 별안간의 일에 방 안에 남아 있던 여비 하나가 놀라 뒤따라 나갔다가,
"아―앗."
하고 부르짖었다. 산월이는 잿물 그릇을 마시고 피득피득 고민을 하며 넘어져 있던 것이다. 다시 여비들이 몰려와 비눗물을 풀어 넣는다, 의사를 부른다 하여 겨우 명만은 거두었으나 입 속이 타버려 언어, 음식이 전폐되다시피 된 것이다. 죽음까지 산월에게는 원수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도 수일이를 끌어당기며 무엇이라고 두어 마디 부르짖었다. 그러나 수일에게는 어머니가 캑캑 웃어 대는 것처럼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사코 입을 벌리고 무어라고 외치려고 한다. 수일이는 어머니의 이 모양을 보고 갑자기 악 하고 부르짖으며 물러나 바들바들 손발을 떨었다. 어머님의 그 귀엽던 입가는 시꺼멓게 타버리고 잇몸은 구실구실 썩어 떨어져 있지를 않은가!
귀애는 사납게 수일의 몸뚱이를 잡아 흔들었다. 그때에 방문 밖에서 누구인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선기침을 하는 것이다.
"귀애 아가씨."
하고 여비가 부른다.
"어머님께서 부르십니다."
"응, 가, 이제 곧 갈게."
귀애는 단숨에 이렇게 대답을 지르면서 날쌔게 수일의 손을 잡아 끌며 뒤쪽으로 빠져나갔다. 산월이도 어서 나가라고 몸짓 손짓을 하였다.
집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다시 귀애와 수일이가 담장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벌써 늦은 저녁으로 싸락눈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새어 나와 돈화문 앞 큰길을 담장줄을 따라 걸으며 귀애는 안타까운 듯이 수일이보고 알아듣게 핀잔을 하였다.
"넌 학교까지 단기면서두 그맛 거 모르겐? 암만 울어 본대두 인제 무슨 소용 있어. 어머니는 나쁜 것을 먹고 입 속이 못쓰게 되어서 말두 못 하시는데 너만 입을 벌리구 엉엉 체울면 어떡하니?"
수일이는 다시 생각하니 더 슬퍼 또 울기 시작하였다.
"아이구 인젠 울지 말어. 참어요."
하면서 귀애는 수일의 어깨를 끼고 흔들었다. 그래 수일이는 숨채기를 하며 억지로 울음을 그치며,
"난 인젠 슬퍼두 안 울 테야."
"아이구 또 왜 그런 슬픈 소리를. 인젠 내가 어머니에게 붙어 시중을 보니까 슬퍼할 것두 무서워할 것두 없어. 오늘두 어머니가 너무 울면서 네 이름만 헛소리루 부르기에 내가 필운동으루 달려가섰겠지. 그전에두 내가 얼마나 너한테 편지했는지 몰라."
"왜 어머니는?"
"모두 너 때문이지 머……."
"……"
"너두 좀더 크면은 알어. 네가 집에서는 둘째 주인이거든. 주인은 모두가 미워하는 법이야."
"주인?"
"응 그럼…… 너는 참 아무것두 모르누나. 그래 너두 주인이 되어서 어머니랑 네가 수모를 받는 것이지 머. 그래두 이제부턴 내가 네 대신 불쌍한 어머니께 효도해 드릴게 걱정 말어. 난 아까두 고무쭐루 우유를 잡숫게 하구 나왔대서. 어머니 더 괴로워하시면 나는 단지(斷指)를 할치야, 알었어? 손끝을 베일치야. 손끝을 베어서 생피를 먹여서 죽은 사람두 살렸다는 말을 나는 신문 보구 알었어!…… 그러기 언젠가 네 어머니가 우리 수일이는 귀애 있어 어찌 힘이 될지 몰라 하시겠지. 그럼 우리 둘이는 다시없는 사이지 응? 이봐 얘 보게!"
수일이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여지어 허둥지둥씨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생각이 치밀어 들어와 그의 가슴속을 악마처럼 쥐흔들었기 때문이다. 귀애가 제 몸을 잡아 흔들며 무어라고 부르짖는 소리도 의식과 감각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귀애는 눈을 파랗게 하고 수일이를 겨우겨우 부축하여 돈화문 담장에 의지케 하였다.
"정신을 차려, 정신을!"
벌써 사방은 어두워져 가고 눈은 함박으로 쏟아지며 그들 두 어린애를 하얗게 묻어 버리고 만다. 거리에는 사람들 그림자도 적어지고 때때로 마차가 지나갈 뿐. 그러나 귀애는 더욱더욱 정신을 가다듬어 수일의 몸뚱이를 쥐고 흔들었다. 겨우 수일이는 정신을 차리었는데 그제는 얼혼이라도 빠진 사람같이 멀거니 귀애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다.
"좀더 가면 돼, 기운을 내어요!"
하고 귀애는 속삭이었다. 그들 둘이는 다시 허둥지둥 걷기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금 저희들이 그 옛날 조부의 윤대감이 경복궁으로부터 돌아오다가 반민에 참살을 당한 자리를 헤매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것이다. 이것도 또한 얼마나 슬픈 가족사(家族史)의 일이냐.
"내 이후부터는 학교 앞에 만나러 가줄게. 네가 집에 또 왔다는 큰일이야. 오지 말어, 내가 갈게. 그리구 이제 필운동 집에 돌아가면 집에 왔댔노라고 그러지 말어. 그러구 빨리 자요, 울면 안 돼! 하나 둘세이면서 자면 나쁜 꿈을 안 꿔. 응, 천까지만 세어 천까지만. 그래 세일 수 있어?"
수일이는 한 마디도 대답을 못 하였다.
"아무보구도 말하지 말어!"
하고 귀애는 등뒤에서 부르짖었다.
"어서 빨리 가요!"
14
편집해는 다시 바뀌고 드디어 새봄이 돌아와 즐거운 봄이라는데 그날도 수일이는 학교 정문 앞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귀애가 만나러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즈음은 그들 둘이는 서로 날을 약속하고 거리를 같이 싸돌아다니면서 어머니의 하루하루의 정황을 묻거니 받거니로나마 낙으로 삼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유별하게도 거리가 수선수선하며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자욱하니 끼고 어쩐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귀애와 수일이가 서로 만나서 좋아라고 큰길로 접어 나가 보니 상점들도 굳게 문을 잠갔는데 사람떼들이 행길을 무어라 왁자지껄대며 한패거리씩 밀려다니며 아낙네들도 골목 새로 황망히 뛰어나와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무엇인가를 수군거리는 품이 심상치가 않았다.
"왜들 그러나?"
수일이는 어쩐지 불안하여 물었다.
"가만있어요."
하며 귀애는 수일의 손을 닦아 쥐었다. 그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종로 네거리에 나갔더니 뭇사람들이 무더기를 짓고 사나운 파도처럼 술렁거리고 있다. 귀애도 그제는 약간 겁을 집어먹고 종각 옆으로 수일이를 끌고 멀찌가니 서서 손에 땀을 쥐고서 이 모양을 반반히 보다가 다급하여 옆에 수염 달린 지게꾼들에 어쩐 영문이냐고 물어 보았다. 딱히 알고 싶었던 것인데 지게꾼이 홱 뒤돌아보며,
"허― 애들 어쩔라는교!"
하고 눈이 뚱그래서 이상스런 사투리로 부르짖었다.
"큰일날라꼬!"
수일이는 비슬비슬 뒷걸음질을 치어,
"돌아가."
하고 귀애의 손과 치마를 잡아당겼다. 귀애도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럴 무렵에 별안간 천지가 깨어지는 듯한 우레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마른 번개가 친다. 하늘이 번쩍번쩍댄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우르르!"
"와르르!"
군중의 흩어지는 그림자. 아우성. 폭풍우가 일기 시작하였다. 파도는 갑자기 높아지며 흰 그림자는 오밤중에 눈보라치듯 걸핏걸핏 난비하였다. 폭풍우, 눈보라, 홍수, 파도, 벽력, 우박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났다고 할까. 이같이 되어 드디어 수일의 모자에게는 실로 운명적인 무서운 날이 당도한 것이다.
그러나 어린 수일이는 영문도 모르는 파도와 소란 속을 귀애와 같이 엉엉 쳐울며 헤매면서 거리를 허둥대었다.
사나운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어느결엔가 물밀리듯이 사람떼에 쫓겨서 본집이 있는 계동(桂洞)골에 겨우 쏠려 들어갔다.
이때에 본집 속에는 벌집을 쑤셔 논 것처럼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문, 옆문, 뒷문 할 것 없이 문이라는 문은 모두 굳게 잠그고서 행랑 노복들은 후원, 앞정(庭), 사랑까지를 억수로 퍼붓는 비바람 속에서 번개처럼 줄달음쳐 왔다갔다하며 여비들은 오리같이 뒤뚱거리며 떼로 몰려다녔다. 해주집과 옥기, 금순이는 방 속에 깊이 묻혀서 졸연간에 이르른 천지이변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컴컴한 하늘에 번개가 펄펄 불붙듯이 일어날 때마다 비명을 으아― 하고 지르며 사족을 못 썼다. 안사랑채에 누워 굴던 대감들은 오직 하나 겨우 남겨 두었던 유물, 갈지(之)자 양반걸음까지 잊어버리고 장죽을 거꾸로 세우며 뿔뿔이 뒷문으로 빠져 달아났다. 물론 남작은 집안에 얼씬도 안 하고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그러나 김천집만은 큰일이 난 것이 귀애가 학교에 간 채 돌아오지를 않는지라 절통한 나머지 미친년처럼 대문을 열어 내라고 발을 구르며 큰 야료를 쳤다. 비 맞은 수탉과 같기도 하다. 막 팔을 휘저으며 대문짝에 쓸어 붙을라치면 노복들은 또 우르르 달려들어서 백방으로 빌며 떼어 놓는다.
"아이구 내 딸 죽누나―---"
하고 통곡도 하여 본다. 그리고는 또다시 어쩌자고 대문짝에 펄펄 달라붙을련다.
"이놈들, 이 죽일 놈들, 놓아라 놓아. 내 딸을 생벼락을 맞어 죽일려느냐. 아이구 아이구 벼락맞누나."
그럴 때는 또 불시에 우레가 탕탕 지른다.
"아이구 벼락이야, 벼락이로구나?"
하며 기겁하여 푸드덕거린다.
방금 그때에 바깥으로부터 귀애가 비명을 지르며 대문을 두드리니 놀라 열어 주는 바람에 수일이를 뒤에 달고 쓰러질 듯이 달려들어온 것이다. 김천집은 수일이가 들어오는 것은 볼 새도 없이 너무 기가 올랐던 김이라 마치 닭을 채는 독수리처럼 귀애에게 왈칵 달려든 것이 그만 미끈덕하여 철싹 둘이가 같이 엎더졌다. 노복들은 또 그것을 말리느라고 몰려들었다. 그새에 덕쇠 영감은 뒤로 수일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질색하여 달려들어 남모르게 몸으로 감싸고서 중대문을 뚫고 본관 빈방으로 허겁지겁 줄달음을 쳤다.
"아이구 이 썅 까시나야, 이 주리칠 썅 까시나야. 하늘이 무서운 줄을 모르겠니! 이 박살함할년."
하며 김천집은 이 대감 댁에 와서 배운 점잖은 말솜씨도 엉겁결에 모두 잊어버리고 별의별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넘어진 채 볶아지치듯 귀애를 두들겨패는 것이었다. 참말로 하늘이 무서운 줄을 아는 날이었다. 그러나 귀애는 개구를 못 하도록 얻어맞으면서도 걸핏 덕쇠 영감이 수일이를 안아서 어디다 감추려고 줄달음쳐 가는 것을 보고는 간신히 마음을 놓고,
'때려라 암만이라도.'
하고 속으로 세차게 앙심을 먹으며 두 팔 속에 머리를 구겨박았다.
덕쇠 영감은 수일이를 빈방 안에 아무도 모르게 감추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그러나 수일이는 새파랗게 얼어 굳어진 채 넘어지며 정신을 똑똑히 가지지 못한다. 영감은 헌 누더기로 온몸을 닦고 따뜻이 덮어 주고는 조그마한 수일의 손을 훅훅 입김을 불어 녹이며 눈물을 뚝뚝 흘리었다.
"원 오늘 같은 날 섶을 지고 불로 들어오신다니.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이렇게 붙들고 두어 시간쯤을 지내니 그래도 차츰 숨결이 고르러워지며 얼굴에도 순색(順色)이 떠돌면서 그냥 잠이 들고 말았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억수로 퍼붓던 비만은 그치었으나 더욱 우레 소리는 요란스럽게 진동하며 번개는 잦아지며 마치 각 방에 불길이 펄펄 일어난 것처럼 휘황하게 번쩍거린다. 그리고 사나운 폭풍은 천 사람 만 사람의 노호처럼 천지를 뒤엎을 듯이 쏴― 쏴― 몰아친다. 덕쇠 영감은 수일이가 아주 혼곤히 잠이 든 것을 보자 안도의 미소를 띠며 슬그머니 그 방으로부터 캄캄한 바깥에 나왔다. 산월이를 데려다 모자의 대면을 시키며 저는 그 근처에 숨어서 이 방에 딴 작해(作害)가 못 들어가도록 감시를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의 일이었다. 캄캄한 빈방 안에 쓰러져 누운 채 악몽에 시달리면서 뒤채기만 하던 수일이는 무서운, 지금 생각하여 보아도 꿈결이었던지 생시였던지 분간치 못하는 일인바 비몽사몽간에 바시시 방문이 열리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가 들어오시누나 하고 꿈결에도 생각한가 싶다. 하나 제가 여기 와 있다는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 몸뚱이를 움츠러치고 또다시 푸시시 깊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마음만이 행복된 옛날로 돌아간 것이다. 제 머리를 연연한 손이 쓰다듬어 주는 것 같기도 함을 느끼었다. 어머니가 제 옆에 와 있구나 하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그런데 갑자기 무더운 질식감에 숨이 턱턱 막히어 수일이는 번듯이 일어났다. 난데없는 연기가 방 안을 휩싸고 돌며 천장에 펄펄 불이 붙어 들고 있다. 눈거죽이 시우리고 앞이 캄캄하여지며 눈물이 쑥 쏟아지었다. 그때에 어떤 무서운 그림자가 방문을 열고 슬쩍 사라지고 마는 것 같음을 보았다. 수일이는 지금도 제가 사나운 꿈을 꾸고 있는 줄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별안간 불타는 석가랑지 속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발밑에 탕탕 떨어지는 소리에 엄마, 하고 일어섰다. 눈앞이 보이지를 않고 앞이 핑핑 돈다. 구석구석으로부터 타오르는 불길은 그때 선풍에 싸여 너훌너훌 그를 삼키려는 듯이 너물거렸다. 그는 두 칸 방 안을 비명을 지르며 엎더졌다 일어났다 하며 헤매었다.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수일이는 문을 찾아 그곳으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허둥지둥씨었으나 불길은 더욱 사나운 바람에 훅― 하고 휩쓸려 달려든다. 그는 기진하여 머리를 부딪치며 쓰러졌다. 그러나 다시 용기를 내어 손을 휘저으며 벌벌 몇 걸음 기어 보았다. 호흡이 힘들어지며 기침이 막 일어난다. 기둥이 촛불처럼 타오르며 천장이며 담벽에는 마치 제비떼가 몰려다니듯 불꽃이 뛰어 드디어 방 안은 초열지옥(焦熱地獄)으로 화하고 말았다.
이날 밤 이 윤대감네 본집에는 각 군데에 난데없이 사나운 불길이 일어난 것이다. 우레 소리는 더욱 높아 가며 번개는 더욱 무섭게 번쩍거리는데 집 담장 바깥에는 수천의 군중이 몰려와서 발을 구르며 아우성을 치며 이 광경을 저주하였다.
새 의식을 다시 차리었을 때는 수일이는 전신에 붕대를 감고서 전처럼 숙부네 집의 한 칸 방에 누워 있었다. 덕쇠 영감이 옆에 앉아 있다가 수일이가 눈을 매시시 뜨는 것을 보자 희한한 낯을 짓더니 별안간 슬픔이 치밀어 경련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손을 부들부들 떨며 콧물을 닦았다. 그날 밤 수일이를 잠들여 놓은 방으로 산월이를 남 몰래 인도하고 그 방을 숨어서 지키고 있던 영감이 어느새 순식간에 불길이 각 방에서 일어나자 뛰어들어가 정신을 잃고 넘어진 수일이를 젖은 제 적삼으로 휘어 감싸고서 사나운 기세로 타기 시작한 본집을 빠져나와 숙부네 집으로 달려온 터이었다.
"어머니?"
하고 수일이가 간신히 괴로운 소리로 아픔을 호소하니 덕쇠 영감은 급기야 침통한 빛을 얼굴에 지으며,
"도령님, 마음을 안돈(安頓)하야 들어 주세유."
하고 슬픈 소리를 짓는다.
"내가 어려서부터 육십 평생 이 윤대감 댁을 섬기는 동안에 무슨 일인들 없었겠어유. 더 무서운 일이 얼마든지 있었지라우. 평양 새 마님이 도령님과 같이 올라오셨을 적부터 필경 무슨 일이 일어나지 하였드니 종내 이런 일이 또 생기고 말었답니다……."
"어머니? 어머니?"
수일이는 온 몸뚱이 쑤셔 와서 꼼짝도 움직이지 못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밤중에 어머님이 머리를 흩어치시구 뜰안 각 군데로 헤매이시며 불을 놓으셨어유……."
"어머니가?"
수일이는 눈이 휘둥그래지었다. 그러자 다시 의식이 혼미하여지며 전신은 마비된 것처럼 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렇답니다. 집안 사람들은 도깨비불이니 혹은 집채 한 군데에 벼락이 떨어지어 벼락불이니 하지요마는 도령님 아무보구두 애여 이런 말 이르지 말으세유."
그리고 영감은 잠깐 눈을 감고 묵묵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또다시 마치 기도라도 드리는 것 같은 나직한 목소리로 구시렁구시렁 중얼거렸다.
"도령님이 누으셨던 방에두…… 어머님이…… 그만 같이 저승길을 가실 생각으로…… 그러구 온 집안에 돌아다니시며 불을 지르시구는…… 벌써 제가 도령님을 끌어내어 이리로 향한 줄은 모르시고…… 펄펄 타고 있는 도령님 누으셨던 방으루 달려들어가…… 그만……."
하고 잠시 말문이 막히어 흑흑 울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비비적씨는 것이었다.
"팔자입지유, 모두 팔자입지유."
15
편집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수일에게는 절망의 그림자가 뒤따라 그 일상생활은 희로애락을 멀리 초월한 일종 허탈에 가까운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누구가 면매를 하거나 매질을 하거나 욕지거리를 퍼붓거나. 이리하여 어떤 의미로는 그에게는 자기를 힘차게 끌어 인도하는 강력한 존재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육학년 때에 석순철이가 아버지를 따라 평양으로 옮아간다고 할 적에는 그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저도 순철이를 따라 그리운 동산이 있는 평양으로 가고 싶기가 한량없었다. 더욱이 순철이도 섭섭한 모양으로 우묵한 눈을 굴리면서 하나하나 손짓을 섞어 가며 그에게 이렇게 다지었다.
"수일아, 넌 어머님 돌아간 뒤부터는 모든 것이 싫여만 졌지. 그래 넌 늘상 심드럭해 기운이 없는 거야. 그래두 넌 평양은 좋아한다구 그랬지?"
"응."
수일이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그럼 너두 중등과(中等科)는 평양서 안 할 테야? 아주 좋다드라. 이 서울바닥엔 못난둥이들만 살어 있어. 너두 평양에 가기만 하면 못난둥이가 안 된다. 그 많잖어? 글쎄 넌 어머님을 좋아하기에 어머님 앞에서는 아무런 놀음두 다 할 수 있었지? 기운차게."
"응."
"그러니깐 넌 좋아하는 평양에 가기만 하면 어머님 앞에서처럼 용감허게 놀 수 있지 않어?"
"응."
하고 수일이는 사리가 과연 그럴 성싶게 생각되어 고개를 끄덕이었다. 순철이는 잠깐 동안 눈을 깜박이며 수일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급기야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평양에두 강이 있나?"
하고 묻는다.
"있지 않구. 대동강이지 머. 그리구 동산두 있어."
"응 그럼 퉁퉁배두 단기나."
"그런 건 없어. 기다란 수상선이나 단기지."
"응, 아주 멋있네."
순철이가 그만 평양으로 옮아간 뒤부터는 수일이는 이번은 자기를 늘상 업수이여기던 장경섭에게 끌려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경섭이는 그보다 세 살이나 맏이인데 또 수일이가 육학년 때에 공부에 잠심치 않아 그만 원급(原級)에 남게까지 되어 급도 한 학년 새트게 되자 인제는 아주 학교 동무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수일이는 숙부네 집에서 감금과 마찬가지의 생활을 계속지 않을 수 없었다.
열세 살이 되었을 적엔 수일이는 어딘가 어슴푸레한 음영이 끼어 있는 얼굴이 흰 귀여운 소년으로 성장하였었다. 하나 어떻게 보면 그는 바보처럼 시무룩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혼미의 경지에 빠져 있는 것같이도 보였다. 때때로 커다란 눈을 끔벅씨며 입 가장을 흐낼흐낼하여 무슨 영문 모를 말을 두어 마디, 서너 마디씩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 봄에 그가 오학년에 진급하면서 드디어 본집에 돌아와도 좋다는 아버지의 명령이 내린 것이다. 수일이가 본집에 돌아온 첫날 밤의 일이었다. 그것은 별이 총총한 사월의 초저녁 밤으로 나뭇가지는 창문 밖에서 흔들리고 달빛은 그의 방 속을 환히 비추었다. 김천집은 수일이를 보러 들어오자 곧자로 해주집에 대한 욕지거리를 펴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요즈음은 그는 사나운 질투의 불길에 싸여 제정신의 갈피도 바로 못 차리는 것 같았다. 산월이가 죽은 뒤부터는 대감이 본집에 돌아와서 잠자리를 가지는 적도 있으나 열 번이면 열 번 모두가 해주집네 차리에 가는 것이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래 수일 도련."
하고 그는 머리를 한번 휘저어 댄다.
"어머님이 그렇게 되시기두 도대체 다 뉘 탓이겠수."
"그만두셔요."
하고 수일이는 애원하듯 하였다.
"아 그게 무슨 소리람. 저런 모두가 다."
도련님 때문이지. 이 늙은 것이 다 곁들어 걱정하는 게 아니우. 그게 바로 비가 억수로 퍼붓는 밤이렷다. 아, 그런데 막 해주댁이란 년이.
"그만 두셔요. 난 난 빨리 잘려는데."
"아니 이 봐, 참 무엇이라는교?"
하며 김천집은 안색이 변하고 눈을 흡뜬다.
"아니 그 해주 갈보년이 거지 김대감 연석허구 쑥덕쑥덕 짜구서 어머니를 죽였다는데두 그래 원통허지를 않단 말이우. 그런 영문은 모르구 집에 대감은 또 그년 방에 들어가군 허니 이러다가 그 벼락맞을 년이 거지 김대감의 씨라두 받어 가지구 윤대감 집 아들을 낳었습네 하구 야단을 치면 그게 또 무슨 꼴이야."
그리고 타악 가래침을 창 밖에 내뱉더니 왔뜰거리면서 나가 버리었다.
수일이는 혼자 자리에 눕지도 않고 마치 무엇에 찔린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안개가 끼며 무서운 형상을 짓고 고민하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서물서물 보이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뭉게뭉게 화연(火煙)가로 다가가며 금시로 목을 매고 죽으려는 듯이 간직하였던 밧줄을 꺼내어 불탄 기둥에 던지는 것이다. 그러자 그 밧줄은 어렸을 때의 옛말 세계에서와 같이 황금색으로 찬란히 빛나며 스름스름 하늘나라로 어머니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어머니의 그림자는 옛날 소녀시대의 귀애 면영(面影)으로 변하여 중천에 떠올랐다. 아― 귀애는 웃음을 짓는구나. 그 옛날 병원 냇가 언덕에서 서로서로 재미있게 뛰놀던 일이며 라일락 숲속에서 굳게굳게 끼어안던 광경이 번개같이 눈앞을 스쳐간다.
그때에 귀애의 그리운 양자(樣姿)가 커다랗게 눈앞에 대사(大寫)되어 나타나니 그 등뒤에 어룽어룽씨던 모든 환영은 어느새엔가 사라져 버리고 그의 웃는 귀여운 얼굴만 쳇바퀴처럼 선회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바람에 그의 가슴속에서 술렁씨는 복잡한 감정은 일시에 동요를 끊고 귀애를 싸고도는 생각만이 바다처럼 퍼져 나아가 귀애의 웃는 얼굴 아래에서 파도를 치는 것이다. 수일이는 희미하게나마 자기가 그를 사랑하였으며 지금도 아주 끊임없는 사모의 정에 마음이 달고 있는 것을 느끼는 터이었다.
수일이는 하염없는 슬픈 생각에 젖으며 어느새엔가 정원으로 빠져 나갔다. 산산한 야기(夜氣)가 그의 얼굴을 스치고 간다. 그는 자기의 발소리에 놀라기도 하며 또는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 같은 가슴의 고동을 느끼면서 못가에 나가려고 새로 지은 신관 끝방 앞을 굽어돌려고 하였다. 바로 거기는 해주집의 거처로 되어 있는데 방 안은 연한 초록색 전광에 졸고 있는 것 같다. 그때에 그는 가분작이 놀라 저도 모르는 사이 옵쳐 물러섰다. 그 방 바깥 창밑에 희멀그레한 여자의 흰 의복이 걸핏 눈에 띈 것이다. 숨을 죽이고 나무그늘 밑에 숨어 자세히 시선을 주어 보니 바로 아까 저한테로 찾아왔던 김천집이 마치 늙은 짐승처럼 움츠리고 서서 방 안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바람에 흩어지고 그 무서워 보이는 눈은 휘황스럽게 번득씨고 있다. 그러나 김천집은 방 안의 광경에 대한 불붙는 질투에 사로잡혀 수일의 인기척에도 귀가 뜨이지를 않았다.
수일이는 살그머니 그곳을 빠져나와 못가로 걸어나왔다. 못물 위에는 칠채(七彩)의 달빛이 흔들리며 그와 한가지로 그의 가슴속도 가지각색의 상념에 동요를 지었다. 담장을 새에 둔 안사랑으로부터는 장기를 치는 소리가 때때로 땅땅 고요한 밤공기를 흔들며 들려 온다.
몇 번씩 노(老)대감들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도 터져 울려 왔다.
수일이는 한군데에 우두머니 서서 물끄러미 귀애의 방 쪽을 바라다보았다. 아직 바깥에서 돌아오지를 않았는가, 혹은 벌써 잠이 들고 말았는가, 거기는 불이 꺼지며 쥐죽은 듯이 캄캄하였다.
"수일 오빠."
하는 아주 사방을 꺼리는 듯한 나직한 말소리가 바로 뒤쪽에서 들렸다. 그는 펄쩍 뛸 듯이 놀라 '으응' 하며 반사적으로 부르짖었으나 벌써 그 목소리 주인이 귀애인 줄을 알았다.
"참 역시 수일이네."
달빛이 어물거리는 나무 새로부터 말소리가 들려 온다.
"응."
하고 수일이는 아주 겸연쩍어 입 속으로 대답하였다. 희미한 달빛으로나마라도 수일이는 첫눈에 귀애에게 아주 어떤 일종의 압박과 거리를 느끼고 말았다. 이 몇 해 동안을 서로 만나지 못한 새에 귀애는 이제는 흰양처럼 듬씻하게 성숙하여 거기는 쌀쌀한 위엄까지 서리어 있는 터이다.
귀애도 인제 열세 살이나 먹은 수일의 성장한 품에 좀처럼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수일의 서먹서먹해하는 모양이 하도 우스웠던지 말씬 하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일이도 객쩍게 히히히 하고 하얀 잇속을 보이며 연신 웃어 대었다. 이리하여 둘이는 한참 동안 서로서로의 생각으로 마주보며 웃기를 그치지 않았다. 역시 서로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기뿌지?"
"……"
수일이는 눈을 내리깔고 잠잠하였다.
못가의 나무 벤치에 둘이 나란히 앉았을 때 귀애는 몽실몽실 온기 있는 팔을 수일의 어깨에 두르고 살짝 끼어안아 보며 얼굴을 붉히었다.
"아이구, 네 몸이 왜 떨리니."
"난 난."
하고 수일이는 중얼거렸다.
"집에 인젠 영 못 오는 줄만 알었어."
"왜 못 와."
"그래두 머."
"왜 못 와요."
"난 난 몰라."
하고 그는 이렇게 마지못해 대답하였으나 불시에 제가 옛날처럼 다시 귀애게 어리광을 피운 것 같아,
"넌 넌."
하고 부르짖었다.
"내가 와서 기뿌니?"
"얘 봐, 아이구 참."
하며 귀애는 흠쌕스레 놀라는 표시를 하였다.
"인제는 나보구 누나라구 그래야잖어."
수일이는 그 말에 불쑥 심사가 좋지 않아져 눈을 힐끗 하고 쳐다보았다.
"누나는 인제부터는 수일이 네 공부를 껴들 테야."
"싫여, 그런 거."
"얘 봐, 막 그런 거라네. 넌 아직 이런 말 못 들언.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구 허지 않어. 우리들이라두 공부를 하잖으면 안 되여. 공부가 무엇보다두 우리들의 힘이야. 알어 있어. 공부가……."
"공부 안 해두……."
하고 수일이는 자못 불만스럽게 말하였다. 그는 자기가 한번 낙제를 한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웬만큼 중수(重數) 있게 저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런 거야두 헐 수 있어."
"그럼 그럼 그러기 안 된단 말이야!"
하고 귀애는 어쩐 일인지 불꽃처럼 펄펄거리며,
"아버지처럼 아무런 즛이라두 허는 거 그게 안 되여, 그게 안 되여요."
수일이는 귀애가 하도 의외롭게 흥분하는 모양에 놀라 의아스레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에 그는 지금까지 제가 가슴속에 고이고이 간직하여 오던 소녀 시절의 귀애의 영상은 벌써 사라지고 인제는 다시 그와 더불어 나무숲 사이를 달음질치며 다니던 그 옛날로 영 돌아가지 못하도록 무엇인가가 귀애로부터 멀리 사라진 슬픔을 확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귀애에게는 꼭 저를 삼사년 전의 수일로만 알고 대하려는 태도가 보이어 그는 인제는 나도 어린애가 아니라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벌써 그는 귀애가 말하는 뜻을 알 수가 없을 만치 둘의 성장 새에는 거리가 지어 있었다. 귀애는 벌써 열여섯 살 여학교 삼년생이었다. 전에만 하더라도 몇 번인가 귀애로부터 학교 편으로 온 힘든 한자와 뜻 모를 말이 많이 섞인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거기는 무슨 의미인지는 딱히 몰라도 귀애는 장차 여학교를 졸업하고는 조선을 빛내도록 힘쓰기 위하여 먼 중국나라에 유학을 갈 터이라고 써 있으며 그러기에 그도 꼭 수일이를 한번 찾아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으나 인제는 저도 커다란 여학생이라 남학교에 찾아갈 수는 없다는 사연이었다. 그때에 그는 귀애가 제멋대로 저를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마음이 불쾌하여 집에 돌아가며 그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것을 생각하니 그는 가분작이 노여워지며 또 낯이 뜨거워지어 어떤 말이든 쩍쩍하게 몇 마디 던져 주고 싶었으나 미처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이 모양으로 벌써 그는 제가 귀애 앞에서 저를 버젓한 한 사람으로 보이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새삼스레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수일이는 귀애와 한자리에 다시 앉아 있을 수 있게 된 것만도 얼마나 기쁜지 가슴이 두근거리었다. 하늘은 씻은 듯이 맑게 개고 달은 중공에 떠서 헤엄을 치는데 귀애의 피어오른 얼굴은 명주줄을 감은 듯이 설레는 것 같고 그 청옥 같은 두 눈은 파랗게 빛나 보인다. 그리고 그 몸짓 속에는 처녀애의 가만 못 있는 신비로운 초조가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귀애의 팔이 껴안은 그의 어깨에는 수북이 땀이 괴고 그 팔로부터는 따뜻한 피의 온기가 오관 속에 흘러든다. 그리고 귀애의 하드분한 향취가 어느덧 그의 전 관능을 쥐고 흔들어 낯이 홧홧하여 숨이 가술렁씨어,
"그럼 난 난 아문 거라두 배울 테야."
하며 겨우 한마디 목멘소리로 중얼거렸다.
김천집은 시든 고비 같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해주집의 침방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질투와 증오의 불길에 싸여서. 초록 전광이 뽀얀 방 안에는 아주 비길 데 없이 자극적인 공기가 지배되어 있는 것이다.
윤대감은 기름진 번질번질한 머리를 해주집의 하얀 무릎 위에 괴고 소처럼 누웠는데 해주집은 흐뭇한 앞가슴을 속저고리 새로 헤친 채 번민하는 창부와 같이 몸을 비꼬고 있었다.
그는 남작의 흰 수염이며 턱아리며 벌씬벌씬하는 입 가장이며를 만적이면서 금방 코야로 흘러 떨어질 것 같은 훌쩍훌쩍씨는 두 소리로 능살스럽게 군다.
"네― 여보우 대감, 오늘은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리 오셨어요. 그렇게 나를 혼자만 내어버려두시드니."
"허― 그러기 분주했다지를 않나 원. 무슨 바람은 무슨 바람. 내야 아니 바람이 불건 비가 오건 오고 싶으면 언제나 오는 것이지, 내 누구를 피해 다닐 사람인가."
"운니동 월화가 싫여허지."
"허― 그 다 못쓸 말. 월화는 월화고 임자는 또 임자 아닌가."
"그래두 뭐…… 그런데 대감님, 전 정말 또 하나 어린애가 가지구 싶어 죽겠수. 이렇게 나이는 많어 가고 보니 어린애가 무엇보단두 욕심나는군요. 인젠 옥기두 시집 보낼 나이구……."
"아 임자는 요즘 와서 별루 어린애 어린애 허는 걸 보니 필경 또 누구 허튼 놈의 씨라도 받어들인 게지. 내 귀에두 좋지 않은 소리가 들리는데, 허허허."
"아이구 참 대감님두. 요새는 그런 말씀까지 배우셔 가지구 불쌍한 나를 못살게 구니. 네― 대감 글쎄 그런 말씀은 왜 하셔요. 그래 아마 또 그 늙어빠진 김천 화냥년이 진수작을 헌 게지."
하고 제 김에 노기를 띠었다. 바깥 김천집은 흠칫 옴추 섰다.
"그 염병지랄할 늙은년이!"
"무얼 또 그러누. 그 입씸을 좀 곤쳐야 허네. 양반 대갓집을 쓰구 있을려면 허― 임자, 무슨 걱정이 있나. 내가 임자를 이렇게 다시 돌보는데 아들인들 못 낳고 딸인들 못 낳겠나."
하며 남작은 속으로 정말 어린애를 다시 낳을 수가 있다면 이번만은 좀 패기가 있고 똑똑한 놈을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계삼탕이라두 늘 장복하면서 배를 보온허라구."
"후후후, 이 복배를 말씀이지유."
하며 웃으면서 해주집은 비지가 그득한 커다란 배를 득실득실 헤쳐 내어 보였다. 그때에 무슨 소리엔가 놀라 대감은 화닥닥 뒤채이며 창 밖을 향하여 부르짖었다.
"누구냐?"
"헤헤헤헤."
복잡한 감정에 쌔운 음침한 웃음소리가 창문가로부터 들려 온 것이다. 그것은 벌써 제정신을 수습지 못한 거창스런 음향을 가지고 퍼지었다.
"헤헤헤헤, 계삼탕을 먹어 김대감의 씨알맹이가 뒤여지면 어쩔능구. 헤헤헤헤, 애 배인 계집년엔 삼은 비각이지 비각이야. 그걸 대여 드릴려구 이 늙은 것이 우진 찾어왔는데 그 누구냐? 헤헤헤헤, 나웬다, 나 김천 술장사 에미."
대감은 낭패하여 허겁지겁 일어나서는 마구 옷을 주워 입느라고 버둥버둥씨었다. 필경 또 무슨 큰 야료가 생길 것이라 막 달아나려는 것이다. 해주집은 처음에는 대감을 붙들려고 멈칫하였다가 그만 분통이 터지어 쏜살처럼 창문가로 달려가서 왈칵 문을 열어 젖혔다. 그 통에 들여다보며 헤헤헤헤 하며 그냥 웃어 대던 김천집은 그만 떠밀리어 그 자리에 넌지시 나가자빠졌다. 두 계집년은 컴컴한 속에서 눈을 횃불처럼 하고 서로 잠시 동안 노려보았다.
"이 꼬리 빠진 헐넉개 같은 년!"
하고 해주집은 서슬이 차게 부르짖었다.
"이 육시헐년, 네가 언제 그런 짓을 봤단 말이냐, 응. 내가 김대감허고 어쩌구 어째서. 이년 눈알을 긁어 내어 닭의 모이를 줄 년! 이년 아가리에 똥 들어가는 것을 볼려니!"
그러나 김천집은 해주집의 노발대발에는 흥흥 눈 거듭떠보지도 않으며 일떠서면서,
"대감!"
하고 의연히 헤헤헤 선웃음치는 소리로,
"흥, 사람의 씨는 흙덩어리와는 다르우. 알어듣겠수. 암만 뒷손질을 해두 씨야 갈 데 있나. 거지의 씨를 받었으면 거지의 씨를 낳어야지. 이제 뒷손질하야 손톱 하나 닮을 텐데."
"무엇이 어째, 이년 아직 아가리를 못 닫치겠니."
"야, 이 해주 갈보년."
하고 그제는 김천집은 정면으로 향하여 빽 질렀다.
"이년 내가 너드러 뭐라느냐! 응 이년, 대감을 내어놔라! 나는 대감에 일이 있어 왔다. 이년 네가 무슨 상관인데 날드러 어쩌자는 지랄이냐, 응 이년 대감을 내놔라!"
대감은 막 혼비백산으로 큰일이 나서 부랴부랴 뒷미닫이문으로 빠져나가 거기서 히벌덕씨며 의복을 걸치고 황망히 집 바깥으로 피하여 나갔다. 김천집은 눈이 뒤집히기만 하면 막 무가내하(無可奈何)로 언제인가도 그는 김천집에 멱살을 잡히어 큰일이 난 적이 있는 터이다. 그때 일이 머리에 떠올라 다시금 오금이 저리었다. 그래 그는 계집 둘이서 싸움하는 곳과는 딴 방향으로 어둑시근한 숲 새를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본시로 범 같은 몸뚱이라 암만 슬적슬적 내달으려고 하나 발소리는 쿵쿵 울리고 나뭇가지에는 몸뚱이가 걸리어 버석버석 소리가 난다. 그 그림자는 귀애와 수일의 쪽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을 걸핏걸핏 지나갔다.
둘이는 김천집과 해주집이 요란하게 싸우는 소리를 멀리 귓결에 듣고 있었다. 그러는데 난데없이 그들이 앉아 있는 옆을 분주스러운 발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휙휙 지나가는 바람에 수일이는 무서운 생각이 칵 들어 귀애에게 와락 달겨들었다.
그 뒤는 어떻게 되어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들 둘이는 굳게굳게 끼어안고 있었다. 귀애의 입술은 무더운 입김을 훅훅 불어 내며 그 뜨거운 몸 온기는 수일의 몸을 금시로 태워 버릴 듯하였다.
잔힘이 들어차 있는 팔은 수일이를 껴안은 채 열정을 받칠 길이 없는 공허에 떨며 수일이는 숨이 가빠지며 그 조그만 손으로 귀애의 등 언저리를 어루만지었다.
그때 귀애는 열정적으로 뺨을 비비대며 타오를 듯한 입김을 끼얹으며 그의 귓속에다 나직이 속삭이었다.
"아무두 아니야."
그 이튿날 아침 김천집은 수일이를 만나자 어젯밤 일은 씻은 듯이 잊어버린 모양으로 이렇게 청승맞게 늘어놓는 것이었다.
"내 어젯밤 아버님을 붙들구 잘 알어들으시두룩 여사모사 말씀드렸더니 아버님이 날 보구 말씀허신다는데 아 정말 임자가 산월이 대신을 서서 수일의 뒤를 돌보아 주어야지 않으면 수일이가 어떻게 지내겠는가 그러시겠지. 그래 도련님 이제부터는 모든 걸 나보구만 터놓고 의논허우."
본 집안은 이 모양으로 제 혼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그득하였다. 이 세상이 한 번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들이 서로서로 상대편 속에 절망을 찾아보고 제 김에 화가 치밀고 노여워지어 속절없이 서써 싸우고 울며불며 치고 야단이었다.
해주집의 딸 옥기는 벌써 크게 자라 그 즈음은 저라고 찬란하게 차리고서 사내들 틈에 끼어 밤낮없이 거리로 싸다니고 있었다. 차츰 불량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러나 그 대담한 행세며 태도가 수일에게는 외려 부러운 일처럼까지 생각되었다. 아직 열여섯밖에는 안 되었으나, 퍽으나 일된 셈으로 여학교도 중도서 퇴학을 하고 여러 상스럽지 못한 소문을 놓으며 다녔다. 그러나 금순이는 더욱더욱 우울 속에 잠기어 깊은 방 속에 늘상 움츠리고 들어앉아 있었다. 성년하여 더욱 몸 모양도 미워지어 희멀그레한 큰 눈을 내리뜨고서 이따금씩 굵은 목을 좌우로 흔드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깊은 감상에 빠진 노파와도 같았다. 수일이는 때때로 동정을 금치 못하는 마음으로 측은스레 바라보곤 하였다.
그래도 아버지 윤남작만은 더욱더욱 기가 차 그 커지기만 하는 뚱뚱한 뱃속에는 마치 득의와 행복과 만족이 그득하게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본집에 불이 일어난 소란 뒤에는 벌써 왕가의 관위도 내어 바치고 오랫동안의 진중한 계획에 쫓아 드디어 재계(財界)에 네 활개를 치고 진출하였다. 그의 정력과 야망과 재보는 새로운 발거리를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그는 세계대전 후 그 존명(存命)이 위태하던 남문(南門) 은행에 손을 뻗치어 그 추요(樞要)한 지위를 손쉽게 잡은 것을 비롯하여 방적회사도 일으키고 혹은 해(海)산업에 혹은 이권운동에도 나섰다. 이럼에 따라 옛날풍의 대관예복도 새로운 캐시미어 예복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 예복이 감싸는 큼직한 몸뚱이 속에는 몇백 년 동안 흘러온 봉건의 피와 신시대에 전화되어 가는 새로운 피가 대치상극하고도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더욱 득의만만으로 자기의 힘과 운명을 신빙하는 불손불황하고도 강인 영원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렇게 되니 안사랑에 누워 굴던 대감 축들도, 자연 덩달아 날개가 돋치고 발붙일 곳을 얻은 셈이 되어 윤남작이 자금 융통을 위하여 방매(放賣)하기 시작한 토지의 중개도 하며 또는 해금강에 세우는 별장에 나아가 맹랑스레 도감독 행세도 하게 되고 혹은 남작네 어업회사의 배를 얻어 타고 어렵의 놀라운 정경에 쓸데없이 감탄하며 덤비다 어부들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그들은 윤남작이야말로 이조 오백년의 영기와 천운을 받고 나온 위대한 인물이라 굳게 믿으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터였다.
"암 훌륭한 어른이다마다. 나와는 그야말루 수어지간(水魚之間)인데, 으흥…… 차츰 보시오. 그이가 전 조선팔도를 제 손으로 폈다 쥐었다 허는 날이 오지 않나. 암 여부가 있소."
그 말도 빙하여 참으로 그는 이 삼사 년 동안에 조선에서도 한둘을 다툴 만한 유수한 근대적 자본가로서 나타나 지위와 명예와 부귀를 한몸에 지니고 있었다. 중추원(中樞院) 참의(參議)를 비롯하여 관공(官公)간 민(民)간에 있어서도 엄연한 세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무대는 넓어져 동경 정객과도 교의를 맺으며 시시때때로 경학원(經學院) 학자에게 돈을 주어 한시를 써달래어 가지고는 우작(愚作)이라 겸양의 미덕을 보이며 중앙대관들에 받들어 바치고는 혼자 신이 나서 벙글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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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그 시절에는 소학교라고 하지만 부모의 강제로 벌써 결혼을 하고 난 생도도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지 않은 애들간에는 또 그 대신 일반의 풍조로 불건전한 남희(男戱)가 유행하고 있었다. 장경섭이는 전에도 말하였지마는 한 급 위로 열여섯 살인데 늘 수일이와 같이 다녔다.
수일이는 장경섭의 강제에 의하는 비사(秘事)를 심히 불결하고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였으나 그러나 한편으론 오직 하나의 동무인 경섭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도 큰 고통이라 거역할 수도 없었다. 이런 성격도 그의 생장의 역사를 통하여 볼 때 그다지 무리라 할 바도 아니지마는 또 이와 같은 소년기의 생활도 수일의 장래의 생활태도에나 인간형성에나도 커다란 영향을 주고 남음은 간과할 수가 없는 일이다.
때로는 장경섭이는 조달하게도 수일이를 색주가집에까지 이끌고 다녔다.
"수일이 너 홍도한테 안 가볼 테냐?"
이렇게 경섭이가 호령을 하면 수일이는 경섭의 기다란 배를 꾹꾹 지르며 키키키 웃으면서 비굴한 노복과 같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경섭이는 어깨를 내저으며 긴 다리를 찔찔 끌고 거치면서 간다. 그는 아주 마음이 느긋한 모양으로 벙실한 코를 나팔처럼 훌럭거렸다.
거기는 그들이 몇 번인가 다녀 본 컴컴한 뒷골목 색주가 골이었다. 좁은 길 양쪽에는 빨간 등, 파란 등을 단 집이 주렁주렁 달리고 그 처마 밑에는 분을 하얗게 바른 가지각색의 옷차림을 한 젊은 여자들이 추파를 던지며 손짓을 하기도 하고 들어오라고 수작도 걸며 또는 학생애들 학생애들 하고 얄망진 소리로 놀리기도 하였다. 두세 색주부는 시골뜨기 같은 사내를 끌어들이느라고 캐득거리며 야단을 치고 있다.
그들 둘이는 큰 사내들이 주렁주렁 다니는 골목길을 접어들어 가 좁은 막다른 골목 속을 서성대었다. 그러자 함석집 뒷문 하나가 살며시 열리더니 거기 홍도의 조그만 하얀 얼굴이 나타나며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살랑살랑 저어 보였다.
경섭이와 수일이는 구석 모퉁이 방에서 홍도를 새에 두고 노래도 부르고 담배도 피어 물며 술먹기 내기도 하였다. 홍도는 가는 허리를 비꼬며 쏟아지게 웃음을 웃어 대는데 그럴 때는 뺨은 장밋빛에 물들고 가는 눈은 눈썹 속으로 요염하게 숨어드는 그런 여자였다. 그는 언제나 이 두 소학생들의 주제넘는 놀음이 우스꽝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킥킥 소리를 내어 웃으면서 상대를 하였다. 더욱이 홍도는 수일이를 어린애 다루듯 하여 그가 담배를 피워 빨다가 숨이 막히어 눈물을 내쏟으면 그것을 보고 홍도는 허리가 끊어져라 웃어 대었다. 그러나 수일이는 그래도 홍도네 방에 오면은 낯은 홧홧거리되 마음은 집에서처럼 괴롭지는 않았다. 그는 홍도에게서 어린 시절의 귀엽고도 재낭스럽던 귀애를 연상하며 즐기었다. 옛날에는 그와 귀애와 서로 사이에는 일보의 거리도 없이 조금도 어려운 이야기며 힘든 일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귀애는 옛날과 얼마나 달라졌는가. 수일이는 지금의 귀애에게서 볼 수 없는 그리운 옛날의 그림자를 이 홍도에게서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경섭이는 윗옷을 제꺼덕 벗어던지고 자랑인 와이샤쓰 바람으로 커다란 손을 척 무릎에 꽂고,
"홍도야, 술을 부어야지."
한다. 그러면 홍도는 펄쩍 놀라는 시늉을 하고 자리를 고쳐 잡고서,
"영감님, 술이 없는 걸 어쩌노."
그러자 수일이는 제법 안색을 고치고 한번 호령을 하여 본다.
"이 계집 무슨 말버릇이냐."
홍도는 그제는 그만 어이가 없어 눈을 딱 버티고 입을 벌린다. 수일이도 멋쩍어졌다. 홍도는 양초 같은 손끝으로 수일의 도톰한 입술을 잡아 끌며 연신 캐들캐들 웃어 대었다.
"아이구, 이 도령님, 난 이래뵈어두 벌써 당신만한 아들을 다 기른 적이 있는걸요."
"거즛말 그만둬."
하고 경섭이는 한번 홍도를 노려보고 헤― 하며 혀를 내어 물었다.
"내 마누라는 네 동갑세루다, 얘."
그러더니 아츠츠츠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찌푸리었다. 홍도가 그의 무릎을 아프게 꼬집은 것이었다.
"그러믄 그렇지, 자 그럼 이번은 벌루 수일 도령 소리를 한번 해야 되우…… 아이구 이 키다리 좀 가만있어요."
수일이는 그러지 않아도 지금까지 홍도한테 제 서글픈 이야기를 한 적이 두서너 번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제 서러움에 침잠하여 홍도로부터 동정을 받은 것을 한갓 위로로 삼고 있던 것이다. 홍도에게 제 불행이며 슬픔을 이야기할 때 그는 왜 그런지 가장 원기가 생기고 마음도 불타는 것을 의식한다. 그럴 때는 홍도는 반은 이상스레 여기는 태도이나 때때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끄덕이곤 하였다.
홍도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어서 노래를 부르라고 최촉(催促)을 하나 불현듯 그 모습이 옛날 수심에 잠겨서 저더러 노래를 부르라고 하던 어머니와도 같이 보이었다.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그것을 감추려는 듯이 눈을 스르르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눈물은 하염없이 뺨 위를 흐르고 또 흘러내리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내가 간들 아주 가며
아주 간들 영 잊을소냐
홍도는 수일의 옆에 살금히 다가붙어서 반은 애원하듯이 반은 황홀스럽게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슬픈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경섭이는 홍도의 쪽으로 다가와 앉으며 그 귓등에다 대고 무어라고 속삭이었다. 홍도의 눈은 가늘게 웃음을 짓고 입은 방싯한다. 그리고 할 수 없다는 듯이 양팔을 들어 기지개를 하는 시늉을 하니 경섭이는 그 가는 허리를 듬썩 끼어안았다. 그 여세로 홍도는 경섭의 몸뚱에 치우치면서 숨채기를 하며 나풀거린다.
"아이구 놓아요. 좀 가만있어요."
그제는 경섭이는 좀 면구스러운 듯이 히히히 웃더니만 홍도의 무릎을 치며 부르짖었다.
"수일이 너두 이걸 베구 누워!"
홍도는 수일이를 끌어당기어 제 무릎에 뉘어 놓고,
"그럼 인제들은 조용히 자야 하우."
경섭이는 또 다른 한쪽의 무릎을 베고 넌지시 누웠다. 그러나 홍도는 수일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귓바퀴를 만지작거리기도 하면서 나직이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수일이는 그 살랑살랑하는 비단옷을 통하여 홍도의 따스하고 포근한 육감에 차츰 취해 오르면서 어느새엔가 푸시시 환상의 세계로 빠지는 것이었다. 별안간 눈썹이 까맣고 긴 진주와 같은 눈동자가 벌과 같이 방 안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때때로 그의 얼굴 가까이까지 날아들려고 하는 것같이도 보인다. 그러나 어느새엔가 그 까만 눈썹에 불이 타올라 펄럭거리며 진주와 같은 눈동자는 빤짝빤짝 이상한 광채를 띠고 흔들리었다. 그것이 가까이 오기만 하면 삽시간에 제 얼굴을 태워 버릴 것 같다. 그는 환상 속에서도 무서운 듯이 으흥으흥 신음하는 소리를 내었다. 귀애의 눈이로구나 하고 희미하게나마 의식게 될 즈음 불현듯 놀라운 환각의 문이 열리더니 그 옛날 북한산상에서 바람에 불리며 바위 아래 서 있던 어머니의 그림자가 한 마리의 흰 학처럼 대사되어 나타났다. 그 눈은 불빛을 띠고 빛난다. 그 다음은 어찌 된 일인가, 어머니의 걸쳐 입은 다홍색 치마와 검은 구름 같은 머리에 펄펄 불길이 타오르더니 하얀 몸뚱만이 화연 속을 새어 나와 중천으로 올라간다. 수일이는 아주 괴로이 신음하는 소리를 내어질렀다.
수일이는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수일이는 제가 큰 수치나 당한 것처럼 상이 빨개지며 얼굴을 돌리더니 불시에 일어났다.
"난 갈 테야."
경섭이는 상기한 얼굴로,
"갈 테냐."
고 벌개서 끄덕인다.
"먼저 갈려니."
수일이는 대답도 않고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홍도는 어둑한 데까지 따라나오며,
"왜 그래, 내가 무에 잘못……."
하며 무안함을 끄려는 듯이 수일의 몸뚱을 얼싸안으려 하였다.
"몰라 몰라."
수일이는 뿌리치며 다짜로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몰라 몰라' 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제 어머니가 모욕을 당한 것같이 느낀 것이다.
홍도는 수일의 그림자가 멀리 사라져 버리도록 우두머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혼자 그만 제 김에 허리를 쥐어짜며 캐들캐들 웃어 대었다.
"아무래두 그런 게야. 젖을 먹인대니깐 골이 난 게야……."
17
편집그 후 귀애와도 가끔 만났으나 그 태도와 말씨는 그를 친숙한 운도는 역시 초조하게만 할 뿐이었다. 귀애는 전보다 한결 조심성스러워 어른 티가 나며 때때로 목을 기울이고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젖곤 한다. 수일에 대한 그의 애정에는 조그만치도 변함이 없었으나 그러나 시방 와서는 귀애는 내사랑이 많은 하나의 누이로서 나타난 것이다. 이 소녀에게는 벌써 시대의 발소리며 사회의 호흡이 가까이 들리고 있었다. 가정과 사회의 정시(正視)로부터 오는 이성과 감정의 고민이 있었다. 가정의 질곡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에 봉사하려는 애끊는 정성은 그에게 있어서는 적어도 연애라든가 향락이라든가 하는 개인적 욕구의 상위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하나 이런 귀애라도 제 옆에 있지 않으면 그래도 수일이는 항상 우울하고 한시라도 견디지 못할 만큼 마음이 송그렸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를 않고 마음은 귀애 위로 달린다.
귀애는 또 귀애대로 제 조그마한 방 안에 박혀 여러 가지 책만 주워 읽고 있는데 이따금 책 위에 그냥 얼굴을 파묻은 채 무엇인가 암연한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한다. 언제인가 수일이는 이런 장면을 발견하고 왜 그러느냐고 탓하듯이 물어 보았다. 귀애는 쓸쓸히 머리를 저으며,
"수일이 너두 어른이 되면 알 수 있어."
한다. 그리고 맑은 눈을 그스스름히 감으며 몽상에 젖은 얼굴로,
"누나는 이제 여학교를 마치면 상해로 갈련다. 거기서 불란서 말 배울까 봐. 불란서 말은 훌륭한 예술에 기초가 된다. 누난 소설가가 될 치야…… 소설가."
"무슨 이야기 쓸 게 있어?"
"소설은…… 난 잘은 몰라두 퍽 유익한 거야. 계몽을 하지. 계몽이란 말 알고 있어? 쓰기야 수일의 네 이야기두 쓰구 아버지 일두 그려 내지 뭐. 그럭허문 어느 사람들은 계몽이 되는 것이지."
"……"
"난 이렇게 생각하면은 되게 슬퍼두 그래두 아마 아버지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우리집 사람들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 줄 알어. 이것만 소설루 써두 굉장한 이야기가 될 텐데."
수일이는 무슨 뜻인지 딱히 알 수가 없기에 아마 귀애가 저를 어린애라고 업신여기고 우정 힘든 말만 골라 쓰는 것이라고 심사가 좋지 않았다. 그래 무어라고 좀 뽐내어 보려 하나 할 말을 몰라 그만 우락부락 성이 났다.
"넌 왜 늘 장한 것처럼 그래 가지구만 있어. 아무것두 써달래구 싶잖어. 그리구 동무두 없구 나 혼자뿐인데 내 일을 쓸래면 무슨 말을 쓸 치야."
"호호호, 넌 참."
하고 귀애는 측은히 여기는 양으로,
"난 모든 걸 죄다 그려 놓을 치야. 세상 사람이 그걸 보구 욕을 하든지 미워하든지 내겐 상관없어. 그 사람들이 계몽되기만 하면 그뿐이지 뭐. 누나는 때때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 일가에 무슨 복수라두 할랴고 대드는 것처럼 생각되어 소름이 쫙 끼치군 한단다. 그래두 어떻게 생각하면 한갓은 속이 시원하겠지."
수일이는 되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거리에서 야단치던 사람들 말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라니."
"글쎄 말이다."
하고 귀애는 척 손을 턱 아래에 괴며,
"그런 사람들 말이지, 세상 사람들이란 행복을 구하야 헤매는 무리야. 제각각 제 행복을 찾을려구 서루 야단치구 싸움하구 울며불며 하지. 그런 사람들이 모두 우리집에 향하야 복수를 할려 드누나."
"누나는 어디서 그런 소리 다 배웠어."
하고 수일이는 이번은 의아스런 얼굴을 한다.
"아무나 다 그런 말을 하지 뭐. 우리 학교 선생님두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너이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 한 사람은 그 전체의 의지를 알어야 한다. 그리구서 너이들은 그 전체의 의지를 위하야 분투 노력해야 될 것이다'라구. 세상 사람들이란 아마 목장의 소나 말이나 같은 거야. 목장 속에서 모두들 떠들어 대긴 해두 행복의 나라로 나가는 문은 하나뿐이라구 그래. 그 문을 알어내인 선구자는 모든 사람을 앞에서 이 문으로 인도해 나아갈 의무가 있단 말이야. 그러구 보면 아마 우리집은 그 나가는 문 앞에 바위처럼 떡 막어 선 방해물인지두 모르겠어."
수일이는 마침내 이 당돌한 계몽주의자의 소론을 알 수가 없었다. 귀애로 하더라도 제 생각을 막연하게밖에는 표현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수일이는 잠잠히 있다면 귀애에게 또 멸시를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아주 지혜를 부려,
"그럼 소와 말이 우리집 같은 거 떠받들며 나가문 되잖어."
"그러게 말이야. 우리들은 몸뚱이 밟히어 부서진대두 좋아. 평양 어머님두 불쌍하게 그 한 사람이 되구 말지 않었어?"
"아니야."
하고 수일이는,
"우리 어머니는 제 손으로 용감하게 죽었어."
하고 반대하였다.
그들은 거기서 잠깐 묵묵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일의 귀애에 대한 하염없는 사랑도 종내는 결말을 지을 날이 당도한 것이다. 만약에 귀애가 현재에도 어디엔가 살아 있어 제 말처럼 정말로 윤남작 일가의 일을 그리는 날이 있다면 이 사건을 어떤 형식으로 취급할 것인가. 아니 귀애는 정녕코 이 세계 어느 한구석에선가 그것을 기록하고 있을 줄 믿는다.
다만 필자가 시재로 수일만을 중심삼아 그려 내는 것이 허용된다면 수일이는 이 일 때문에 망연자실하고 있었다는 것만을 전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는 수일이는 산산이 부서진 조각배 모양과 같다고나 할까. 그의 생활감정은 희미한 광망을 띠고 음산히 빛날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 와서는 제가 정말로 귀애를 사랑하였는지 혹은 또 현재에 귀애와 떨어지고 보니 제가 슬픈지 노여운지까지 그 분간을 못 할 정도였다.
차츰 가을바람이 선들거릴 무렵이었다. 어떤 날 밤 별안간 집안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윤대감이 엉금엉금 귀애의 침방 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해주집이 마침내 붙든 것이다. 그래 대감이 도망을 친 뒤에는 해주집과 김천집 새에 싸움이 벌어지었다. 불타는 질투로 대감을 제 곳으로 끌어들이려고 갖은 애를 쓰다 못해 김천집은 제 데리고 온 딸 귀애마저 대감에 바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인제는 몇백 석이라도 따내려 하였다. 이것이 드러났다. 그들 두 여편네는 서로 맞붙어 데굴데굴 굴며 끄댕이를 맞잡아당기면서 엎치거니 뒤치거니 이러다가 내종에는 엉덩판까지 드러내고 야단이었다. 몇 석으로 딸까지 팔아먹었느냐고 해주집은 김천집 끄댕이를 잡아 끌며 들구곤다. 김천집은 아이고 아이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분통은 더욱 터지어 제 머리채를 잡은 해주집 손을 깨물려고 날친다.
그날 밤 귀애는 빨갛게 임금(林檎)이 익은 숲 새에 머리를 무릎 위에 구겨 박고 흑흑 느껴 울고 있었다. 푸른 하늘 저 멀리에는 작은 별들이 깜박이고 굽은 가지 새로 숨어드는 일광은 주룽주룽 매어달린 임금에 서리어 흔들린다. 임금들은 이제 그 아래에 벌어지려는 비극에 반주라도 하려는 듯이 서로 끄덕끄덕거리고 높은 나무는 거인과도 같이 묵묵히 서서 미동조차 없이 이 여학생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수일이는 우두커니 그 뒤에 서 있는 것이다. 그는 벌써 모든 사정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소년의 가슴의 피는 몹시 뛰었다. 그는 살며시 귀애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얼음같이 차고 또 떨리었다.
"수일이가?"
하고 귀애는 놀란 듯이 나직이 목메인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떼어 놓는다.
"다치지 말어요. 그리구 아무 말두 묻지 말어."
"……"
"아― 다치지 말어요."
귀애는 막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한다. 그리고 몇 번인가 속으로 흑흑 느끼며 울었다.
"난 아주아주 네가 만나구 싶었어. 그래두 막시 만나구 보니 왜 그런지 무서워요. 난 오늘이야 내가 제일 수일이 너를 그립게 생각하구 있는 걸 알았어. 그래두 벌써 다…… 벌써……."
"……"
수일이는 애연한 듯이 그 두 손을 붙든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놓아 놓아요. 아이구."
"귀애 누나."
"아니, 놓아 놓아요."
"무에 무서웁니, 무에."
"응 아니…… 난 이제 떠나야 돼…… 난 아주…… 난 이렇게 쫓겨나다시피는 하지 않을렸드니 내 발로 박차고 나갈렸드니…… 언젠가 우리들 복수 이야기하였지. 그 말이 맞었어. 내가 첫번으로 만츠음 복수를 받는구나."
"아― 왜 울어. 왜 울어."
"가만있어, 가만있어요……."
하며 귀애는 일어나 얼굴을 두 손으로 싸고 맞은편으로 몇 걸음 달아나 쓰러졌다.
"어딜 가."
"어디든 생각나는 데루……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려 모르겠어. 그저 우리들이 불행이라는 것만 알겠구나. 그래두 수일이 넌 넌 행복스럽게."
"행복?"
수일이는 반발하듯이 슬프게 부르짖었다.
"왜 그래요. 넌 기운을 내야 해."
"기운 난 어떻게 하야……."
"아― 수일이 넌 왜 그런 슬픈 소리만 하니. 어떻게 하면 되냐구 어서 어른이 되어 훌륭한 사람 노릇을 해야지."
수일이는 안색이 창연하게 변하였다.
"어른?"
"응 그렇구말구 날래 어른이 되는 게."
하며 귀애는 눈물을 머금었다.
"무엇보다두 장한 거야. 힘이야 학식두 깊구 그리구 나이두 많어지면 아무것도 무섭진 않어요. 내 말 알어들어? 그래두 난 인젠 그만이야. 아주 파멸이야. 공상(空想)튼 행복두 아무것두 모두……."
귀애는 다시 흐득이며 울었다.
수일이는 갑자기 노여워졌다.
"넌 넌 바보야. 천치야. 천치야. 누나 바보, 바보."
귀애는 입술을 깨물고 몸을 떨었다.
"수일이 네 말이, 네 말이 옳아. 정말 너는 나를 무시하야두 돼요. 그래두 또 너무 슬퍼만 하지 말어. 인젠 네게는 아무것두 무서운 게 없어 응, 수일아. 그렇지 학식이 네 무기야. 학문은 아무런 운명이라두 개척할 수 있어. 나두 나두 기어쿠……."
"그럴까. 그럴지두 몰라."
하고 수일이는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래두 난 믿지를 않어. 모두 거즛말이야, 거즛말. 난 어른이 되면 되두새나더 괴롭고 슬퍼만 질 텐데."
"아무것두 믿지를 않는다구. 넌 그러니? 것두 좋아. 그래두 두 가지만은 신용을 해야 된다!"
"싫여, 싫여."
"지식은 우리들의 무기야, 나는 것만은 따이 말할 수 있어. 건 정말이야. 신용할 수 있는 일의 하나야. 그리구."
귀애가 이렇게 말할 새도 없이 수일이는 그곳으로부터 허둥지둥 제 방 쪽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귀애가 두서너 발자국 달려오며 큰 소리로 이렇게 부르짖는 것이 들렸다.
"그리구 또 한 가지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거야.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해요. 그리구 다시는 다시는 못 만나는 거……."
수일이는 겨우 집채 가까이까지는 왔으나 기진맥진하여 발이 부들부들 떨리어 바람벽에 상기된 것처럼 기대고 넘어지었다. 한 점의 구름도 없는 달빛이 내리비치어 그의 몸뚱을 하드분히 싸고서 흘렀다. 아― 밝은 달이다. 밝은 달이로다. 수일이는 몇 분간인가 정신없이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수일이는 놀라 정신을 가다듬었다. 별안간 황망히 김천집이 달려오더니 그의 몸뚱을 쥐고 흔들며 힐문하듯이 부르짖는 것이다.
"귀애가 어디 갔니? 귀애, 귀애가 어딜 갔어?"
수일이는 김천집의 턱어리가 몹시 흔들리는 것을 희미하게 바라다보았다.
"어디 있어. 어디 갔어."
"임금밭에, 임금밭에……."
하고 수일이는 넘어질 듯하며 겨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후 어디엔가 출분한 귀애의 소식은 영영 묘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삼 일 뒤에는 한 소녀의 시체가 연못 위에 떠올랐다. 처음에는 이것이 귀애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예의 추잡한 사건이 일어나 해주집과 김천집이 사납게 다투던 날 금순이가 드디어 연못에 몸을 던지었던 것이다. 그 며칠 뒤에는 집 뜰안에서도 또 왱강왱강 굿이 벌어지었다. 그때는 김천집과 해주집은 서로 사이 좋게 손이 발이 되도록 금순의 영혼이 옥황상제 앞으로 가기만 빌었다. 그들은 사혼(死魂)이 저희들을 침노할 성싶어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다.
수일의 생활은 이제 와서야말로 거의 절체절명에 가깝도록 황폐하였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죽어 없고 정 깊은 귀애는 간곳없이 사라지었다. 왜 어머니는 죽지 않으면 안 되었었을까. 그만치나 연약하고 모든 것에 순종만 하던 어머니가 어째서 또 집에 불까지 안 지르고는 못 견디었을까. 건 그렇다 하고라도 또 그처럼 영리하고 똑똑한 귀애가 달아나고 만다고야. 귀애만은 그래도 좀더 용감히 그와 같은 무서운 죄악과 싸우지 않았으면 안 되었을 터이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또 어쩐 일일까. 귀애의 파랗게 맑은 눈을 들여다보고 그 실도르래 굴리듯 하는 말을 들을 때엔 아무런 슬픔이며 고통도 사라지고 말던 저였는데 막시 귀애가 저를 보고 너를 사랑한다고 하였을 때는 벙어리처럼 아무 소리 한마디도 못 하고 창랑히 그 곁을 떠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을 뿌렸던 것이 아닌가. 소년은 마치 깊은 안개 속에 잠겨 버린 것처럼 아무 정신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확실히 무엇인가를 숨이 가쁘게 찾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눈은 몽몽한 안개 속에 싸여서 지척을 분간치 못하였다.
"학문이 나를 살린다군."
그는 절망적으로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귀애가 그 최후의 밤에 임금밭 속에서 저보고 말하던 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한 것이다.
"내게 무슨 학문이 필요 있어? 나는 하루하루를 외롭구 슬프게만 지내구 있는데. 그날그날 지내기두 마음 상하는데."
"호호호."
하는 행녀(杏女)의 자지러진 웃음소리가 환청된다.
"수일이는 정말 미친가 봐. 아주 가난뱅이 소리하듯 하겠지, 호호호. 그날그날 지내기가 어렵다구 막. 수일이는 괜한 걱정만 한대니까."
그는 아무 말 없이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아니야."
하고 이번은 경섭의 떠드는 소리가 저 멀리서처럼 들린다.
"수일이는 철학가야. 그래서 장한 것같이 걱정만 하구 있어. 철학가는 걱정꾸레기거든."
"걱정? 걱정 같은 거면 집어치우지."
하면서 수일이는 놀란 듯이 항변하였다.
"걱정은 강도처럼 못살게 나를 뒤따러단기기만 하누나."
"그러기 말이지."
하는 누구인가의 한숨짓는 듯한 애정에 찬 목소리가 가만히 들려 왔다.
"네게는 내 사랑이 언제나 필요하단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 나는 지금두 너를 멀리서 바라보구 있다. 멀리서 이렇게. 내가 누군지네 알겠니?"
수일이는 놀라 담벽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그리고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소리일까 혹은 귀애의 속삭임일까. 그는 괴로운 듯이 신음소리를 내며 어머니와 귀애의 얼굴이 서로 교차하여 흔들리는 환영을 바라보았다. 파란 실, 붉은 줄, 노란 둥그맹이들이 막 선회를 한다. 수일이는 그만 몽유병자와 같이 간신히 부르짖었다.
"어머니, 어머니."
"귀애야, 누나야."
18
편집그러나 우리들의 애달픈 주인공이 어떠한 절망 속에 빠져 있든 간, 덧없는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흘러 어느덧 또 눈바람 치는 십이월이 되었는데, 하룻밤은 수일이가 느지감치 홍도네 집으로부터 돌아오니, 아버지가 부른다 하여 가슴이 뜨끔하는 것을 바깥사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한참 동안을 푸근한 소파에 두꺼비처럼 웅크리고 앉은 채 담 한구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수일이는 그 등뒤에 풀기 없이 다가서서는 인제는 할 수 없다 하고 속추를 늘이고 섰었다.
"밤에 나가 노는 버릇은 언제부터냐, 대체 허튼 곳으로 발신(發身)하기는?"
아버지의 위엄기 있는 꾸중은 뒤돌아보지도 않으며 이렇게 시작하였다.
"……"
"너루선 나이가 일러. 나는 네 나이 적에는 경사백가(經史百家)에 붙어서 학문만 일삼었다. 꼭대기에 피두 안 마른 연석이, 너는 아무 때나 네가 남과 달리 이 남작네 집의 소중한 아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지. 가문에 치욕거리가 되어서는 내가 용서치를 않을 테야."
그러면서 아버지는 쑥 일어서서 양팔로 뒤지깨를 지더니 천천히 아까부터 들여다보던 담벽을 향하여 걸어가 멈춰 섰다. 그 앞에는 검은 반점이 있는 얼룩범의 커다란 모피가 펼쳐진 채 걸려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불빛이 서리운 그 범의 침침한 눈을 들여다보고 있더니, 넌지시 돌아서서 이번은 또 어정어정 다가오기 시작한다. 수일이는 사뭇 가슴이 두근거리었으나 될 대로 되는 수밖에 없다 하였다.
"벌써부터 외계에 눈이 띄어서는 안 되는 법이야. 더욱이 어려서 계집년에 마음이 팔리기 시작하면 모든 게 여우에 홀린 것같이 사리를 가리지 못한다. 저 범을 보았지. 범 같은 의기를 가져야지. 그렇지 않어두 이 세상에는 차츰 분간치 못할 일이 자꾸 늘어 가기만 허는데."
그러더니 퉁명스레 혼자소리처럼,
"……사회는 더욱더욱 혼란하여지며 복잡해만 갈 뿐이루다…… 너두 이 담에 가서 후회가 없도록 지금부터 버쩍 정신을 차리고 모든 세상 물정을 살펴야지. 아무것두 옛적처럼 만만히 볼 세상이 아니루다. 천하 모든 게 옛적과는 막 반대루만 되어 가니…… 요즘은 아주 시굴 토백이 반작놈들두 떼를 지어 가지구 와서는 소작료가 많으니 어쩌니, 비료값을 전주가 물라느니 하구 행패들을 부리구 가는 형세루다."
수일이는 아버지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마 아버지 저부터 벌써 여우에 홀린 것처럼 심란한 것이 아닐까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요새 와서 노 사랑에서 찾아온 사람들보고 큰 소리로 노발대발하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언제인가는 젊은 투박한 농사꾼들이 쓸어 와서 아버지를 붙들고 무어라고 야단을 치고 갔는데 아마 그 일을 보고 그러는가 보다 수일이는 짐작하는 터였다.
아버지는 드디어 수일의 곁에 가까이 다가오자, 그 거무테테한 큰 손으로 그의 조그만한 턱아리를 쳐들고 한참 동안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혼자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으―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 모양이지. 그러나 이제 차츰 알어진다, 알어져."
그리고 다시 한번 물끄러미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수일이는 좀체 무시무시하여 눈 속을 거밀거밀거리고 입 가장을 떨었다.
"멀쩡한 놈이라니……."
하고 남작은 연민의 미소를 짓는다.
"무에 그리 무서우냐. 이 아버지는 단지 네가 귀여우니 이렇게 어려운 말로 하는 것이루다……."
하더니 혼자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벌씬 웃는다. 그의 속종에 의하면 인제는 수일이도 장가를 보낼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놈."
하고 한번 전주르고서,
"너두 인제는 이 늙은 아버지에 효도를 헐 줄 알어야지. 옛적 같으면 벌써 어린애가 두엇 되어두 좋을 나이인데…… 그리 알어, 그럼 들어가 자거라."
수일이는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고 그냥 수벅수벅 걸어나오려니까, 등뒤에서 아버지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었다.
"내년 봄에는 네 잔치를 하자."
그래 소년은 놀라 멈칫하였다. 아버지는 돌연 허허허 하며 연신 호기 있게 웃더니만 또다시 고함을 쳤다.
"기뿌냐?"
이 소리에 또다시 놀란 듯이 황망히 달아나는 수일의 그림자를 어둠 속으로 바라보며, 남작은 제 어렸을 때를 회상하였다. 학식을 높인다 하여 경사면백에 배운답시던 열세 살 적에 처대(妻帶)하여 어린애도 하나 낳아 죽이고 벌써 십사오 세에는 가벌의 권세로 지방 요관 출도라 하여 원님 행렬을 지었다던 것이다. 그때의 자기에 비하여 볼 때 저놈이 저렇게 못나 보이는 것은 당초에 풀기 없는 제 어미 산월이를 닮은 때문인 게로다 하니 그는 무척 섭섭하였다.
이렇게 혼자서 한참 서 있다가 그는 화식(和式) 돔비를 어깨에 두르고 운니동 월화한테 갈까 하고 나오려는데, 안기는 바람이 차기도 하려니와 이미 밤도 깊었고 또 가분작이 해주집의 흐뭇한 육체도 생각이 나, 그럼 한번 안사랑을 들여다봐야겠군 하고 그리로 향하였다. 해주집의 정남(情男)이 처남 김백인 줄을 모를 리 없는 그는 안사랑에 김백이 아직 있나 없나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문 밖에 와 서자 김백이 아직은 해주집 방으로 들어가지를 않고 무엇인가 신이 나 책을 읽고 있는 소리를 듣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가벼운 정도(情堵)와 환희를 느꼈다.
들어서 보니 방 안에는 늙은 대감 셋이 기다란 보료 위에 구부러진 못처럼 지저분히 누워 있었다. 푸르락푸르락 코를 골기도 하며 또 푸― 하고 숨을 몰아 내치기도 하는 품이 아주 잠이 깊은 모양이다. 김백만은 이 늙은 대감들이 잠이 들어 버리고, 또 바깥사랑에 들어온 모양인 윤대감이 집을 나가기만 기다리느라고 밤이 깊도록 심심파적으로 옛 잡지를 읽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읽고 있는 내용인즉은 마음 곱지 않은 이 패잔가의 심정을 사뭇 즐겁게 하여, 아주 그곳에 정신 팔리어 한참 읽고 있노라는데, 별안간 밤중에 이 방으로 매부 대감이 나타나고 보니, 그는 해주집 방으로 가려는 제 속마음이 엿보인 듯한, 제 동정을 살피운 듯한 불쾌를 금치 못하였다. 그래도 그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아 이게 웬일이슈."
하고 머리에 손을 얹으며 힐쭉 웃었다. 괴로운 이 경우를 역용할 만한 돈지(頓智)와 재주가 없지 않은 그였다.
"마침 잘 오셨구려, 잘 오셨어. 그래 매형, 아 하두 갑갑허길래 저는 지금 막 신사상을 배우구 있던 참이랍니다."
하며 그는 붉은 표지의 헌 잡지를 흔들어 보였다.
"아주 그럴듯한 말을 한 연석이 있겠죠, 아 참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그래 매형 어때요, 한번 들어 보시려우…… 매형에게두 크게 유익헐걸요, 유익허다마다."
아무 대답 않고 남작은 수염 끝을 한 손으로 잡아 쥔 채 그 자리에 조상(彫像)처럼 서 있었다. 들으려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김백은 더욱 용기를 얻어 큰 소리로 일자일구(一字一句)를 주어 가며 띄어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이 소설이 조금이라도 조선사회의 전개를 배후 둔 이상 우리도 지나온 과거 한 세대에 흔히 나타나던 불가불 남작과 같이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흠 으흠…… 이 물가, 이 물가 등귀와 인플레에 의하여 더욱더욱 급속히 수행된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으흠, 필연적으로 사회계급 구성 위에 급격한 변화를 주어 광범한 생활층을 헤헤헤, 무산계급화한 것이루다."
여기까지 읽자 김백은 또다시 헤헤헤 하며 남작의 얼굴을 쳐다보고 웃어 대었다. 그 거친 이빨이 싯누렇게 무서우리만치 드러나 보였다.
"무산계급, 헤헤헤 이놈의 무산계급이라는 게 바루 요새 신식 청년들이 입만 벌리면 허는 수작이랍니다. 그게 큰 말감이지요. 그럼 어디 또 읽어 볼까, 으흠……."
하고 그는 다시 책을 들여다본다.
"……그러고 이 무산계급운동은 ××사건 실패를 전기로 하여 대중 속에 뿌리를 박고 작금 이 년 말부터는 더욱이 소작농민들의 각성을 촉진하여, 조합이 거의 전선적(全鮮的)으로 총설(叢說)되었으며 그 뒤부터는 소작쟁의가 빈발케 된 것이다. 으흠 으흠 이 반농노적 소작농민은 먼츰 호남 옥야(沃野)를 중심으로 하야…… 야…… 이것 보슈."
하고 김백은 그만 별안간 개가나 올리는 것처럼 부르짖으며 일어나 서서 남작 밑으로 달겨붙었다. 그리고,
"여기외다, 바루 여기를 보셔요."
하며 남작의 코끝 밑까지 책을 들이밀며 대드는 품이 아주 이 남작을 공박하려는 모양과도 같았다.
"그렇지 암, 일제히 용감한 ×쟁(爭)을 개시한 것은 중지의 사실이다라구 허지를 않었습니까. 헤헤헤 암 그렇다마다. 알구 있을 뿐일까, 매형! 바루 매형네 호남농장 소작인들두 현재 이 ×쟁에 가담해 가지구 야단 지랄이 아니유. 매형 그렇지유. 그러면 그렇다구 허셔야쥬."
"흐―흠."
하고 남작은 적이 못마땅한 듯이 가래를 들이켜며 볼을 불룩하였다.
"그러나 그놈의 ×쟁인지 무엔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데. 그게 결국은 누구에 불리한 일인지를 똑똑히 알어차리구서 쓰는 게 붓을 잡는 자의 할 일이 아닌가."
"허허― 그게 또 오묘한 말씀인 모양인데."
하며 김백은 끝까지 밉살스러운 얼굴로 남작의 우므덕한 눈을 쳐다보았다.
"미욱헌 이놈에는 결국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는걸요, 헤헤헤."
"흐―흠."
하고 남작은 다시 한번 못마땅해하더니 이윽하여
"그럼 들어 보게. 용감허구 못헌 게 문제가 아니고, 무엇보다 중요헌 것은 그놈의 소작쟁의가 제 놈들게 결국 이익인가 아닌가를 분간해 가지고 들어붙어야 된단 말이야. 만약에 저놈들이 쟁의를 일으켜 가지고 전주들을 귀찮게 헌다면 누가 그런 땅을 가지구 있어? 전주들은 모두 천치가 아니겠다. 그러니 귀찮은 김에 전지를 회사루나 팔어 버린다면 그 소작인 놈들은 대체 어찌된단 말인가. 이걸 나는 묻는 게지, 물어 보겠다는 게지. 가령 내가 지금 쟁의중에 있는 순천, 광주 등지의 농장을 동양척식회사에 팔어 넘긴다 치면, 진작 그놈들은 그 자리를 떠나야 될 형편이 아닌가. 요새 져온 놈들은 쩍 허면 우리 조선 사람 조선 사람 허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게 소위 민중을 사랑허기 때문이라는 취지와 결국에 있어 들어맞느냐 말이야."
"허허― 남작, 헤헤헤 그게 참 빗한 말씀인데."
하며 김백은 속 딴마음으로 한 번 교활한 웃음을 짓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주 빗한 말씀인데. 그럴 듯헌데 바루 정문(頂門)에 일침이라는겝죠. 그렇지, 옳아. 전주에나 소작인에나 모두 손해라."
그러더니 슬그머니 책은 뒤꽁무니로 돌리고 음충스럽게 다시 다가들었다.
"그런데 매형, 아 정말 순천 광주의 땅을 ××에 매도할 생각이세유."
"그게 또 무슨 소리유."
"……"
"뉘가 전지를 판다구 그랬는가, 단지 나는 이런 뜻으루 말헌 게지. 즉, 인제는 시대가 달러 조선서두 전주들이 모두 상공업자로 전(轉)해 가는 심인데, 소작인 놈들까지 서둘면 귀찮은 김에 전지를 죄다 팔어 돈 남는 딴 사업을 시작허리란 말이야. 전지보다 인제는 사업이 유리하거던, 사업이."
사실 이렇게 확신하여 자금융통 때문에 요즘 전지를 정리하고 있는 중인 윤남작은 슬쩍 돌아서서 어정어정 나오기 시작하였다. 김백은 그래 황망히 뒤따르며 빠른 소리로 주절거리기 시작하였다.
"××의 산전의 말인즉 평당 육십 전이라는데 너무 헐값이죠, 너무 헐값이에요. 나는 우리 매형이 애여 그런 값으룬 팔 리가 만무허다구 그래 두었습니다…… 은행이며 회사 공장의 사업두 모두 잘되어 가니 자금도 별반 필요치 않고……."
남작은 아주 의아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원 모를 소릴 다 허는군, 원. 그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는데."
"아 그러지 마시유. 너무 싸요, 육십 전이면 너무 싸지요. 그리구 그 농장에 욕심내는 놈이 ××뿐이라구요. 정 그렇게 파신다면 평에 한 오 전씩 더 놓도록 제가 힘써 볼까요, 아 좀 말씀을 허세요. 그렇게 나가시지만 말구."
그러나 벌써 남작은 방을 나와 토방을 내려가고 있었다. 김백은 푸― 하고 장탄식을 하더니 남작이 중대문 속으로 쑥 들어가는 그림자를 보고 싯누런 눈을 끔벅 감으며 헤헤헤 웃다가 문을 스르름히 닫아 버렸다.
"재미를 좀 보시겠단 말이지, 헤헤헤 톡톡히 보세유."
하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더니만 어찌 된 셈인지 드르르 다시 문을 열어 젖히면서 가래침을 탁 내뱉었다.
"옜다 받어라. 이거나 먹어라."
그리고 그 자리에 굳어진 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사방이 괴괴하고 달빛이 밝았다. 문 여는 소리에 놀라 깬 노대감들은 눈을 한번 떠보고 다시 끙 하고 뒤채며 돌아누웠다.
19
편집드디어 따뜻한 봄의 손길이 한강 천 리의 굳은 얼음을 녹이어 띄우며 남산에 깊이 잠든 송림을 어루만지면서 다시 장안으로 뻗쳐 들어왔다. 수일네 집 정원의 뭇 나무들도 파란 잎새를 내돋우며 살구나무의 가지가 발그레한 꽃봉오리를 들어 최초의 사랑스런 미소를 아지랑이 뽀얗게 끼는 사월의 하늘에 던지었다.
수일이는 열네 살을 맞이하는 이른 봄 어떤 날 장가를 든 것이다.
새로 맞이하는 새각시네는 서울로부터 남으로 한 칠십 리를 새에 둔 조그마한 읍내의 호농이었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새각시 복란이가 어떤 여자일까 하는 것은 막연한 호기심을 일으키게 하며 또 호의의 기대도 되었다. 그러나 그런 처가의 대청마루에서 전안상(奠雁床)을 새에 두고 둘이서 마주섰을 때, 수일이는 복란의 인물에 아주 어리둥절하여져서 백년해로의 선서로써 서로 절하는 예식까지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크고 뚱뚱함이 꼭 돌미륵처럼 모양 사나운 존재였다. 그것이 칠보홍상을 하고 고이 댕기를 늘이고 우중충하니 서서 때때로 천치 같은 곁눈질을 건네곤 하는 모양은 참말로 어린 마음에도 우습다기보다 연민의 정을 느끼게쯤까지 되었다.
"저것 보게 허― 신부가 신랑 봐서는 너무두 큰걸입슈."
"암탉과 병아리 모양인걸, 허허허."
식장 아랫마당에 웅굿중굿 그득히 모인 농군 사내들은 이 짝이 붙지 않는 부부를 향하여 키들키들 놀려먹는 것이었다.
"신부가 신랑 집어삼키겠다."
"너무 작어서 히― 좋잖지. 너무 작어서."
하며 그 중 술이 얼찌근한 한 녀석이 음란한 소리를 지르며 혼자 좋아라구 히히히 웃어 댄다.
"수수밭 속에서, 히히히…… 그게야말루 대짜백이였는걸, 히히히."
그러자 모두가 큰일난 것처럼 쉬쉬한다. 무슨 곡절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만 지껄여 이 자식."
"아따 그러면 어때, 뉘가 생소리를 허는가. 히히히 수수밭 속 그놈이……."
"쉬― 쉬―"
"인제 그런 소리 해 무엇 헐 치야. 이 망헐 주정꾼 보게."
이러는 가운데에서 잔치를 지내었는데, 본시부터 수일에게는 결혼이라는 것이 제게 더할 나위 없는 커다란 운명적인 사건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바지를 입으면 띠를 띠어야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벌써 열네 살이나 되었으니 그도 여느 애들처럼 각시를 맞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였었다. 그래 그날 저녁 사모관대를 하고 백마를 타고서 훌륭한 행렬을 짓고 시골로부터 서울 본집으로 각시를 데리고 올 때에는 외려 일종의 자랑스러움을 느끼게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의 일행이 도착을 하자 수일이는 다짜고짜로 장경섭이네 패에 이끌려 홍도네 술집으로 갔다. 수일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피곤하였기에 시달리지를 말아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조달(早達)한 이 소년들은 오늘 밤은 신부에게 안길 테니 하며 왁자지껄 떠들어 댄다. 경섭이는 벌써 그때는 중학생이었으며 동무들은 그 동급생으로 모두 합하여 넷이나 되었다. 그리고 넷이서 무어라 수군수군거리더니만, 짓궂게 동상례를 시작한 것이다. 수일이는 어리둥절하여 무슨 놀음인지 알 리가 없었으므로, 그 중 뚱뚱한 애가 바깥으로부터 조고만 상에 방치 두 개와 꼬아새리운 밧줄을 놓아 가지고 들어와 제 앞에 놓더니만 버룩버룩 웃으며 엎으러지듯이 평복하여 절을 할 때 그만 질색하여 일떠섰다.
"신랑님, 국수 잡수슈."
그러자 펄펄 너댓 놈들이 달라붙어 넘어치더니 삽시간에 한 놈은 그 밧줄로 수일의 바른 다리를 질끈 동여매고서 그놈을 지겨 떠메이고 일떠섰다. 그러므로 수일이는 막 공중걸이를 하며 거꾸로 매어달려 공명을 질렀다. 홍도는 들어오다 이걸 보고 배를 움켜쥐고 호호호 호호호 하며 웃어 댄다. 그리고 나중엔 좀 안되었는지 달라붙으며,
"좀 느꿔 주어요, 느꿔 줘. 그러다 상기하면 어쩔 테야요."
"비켜 이년!"
하고 사내놈들은 고함을 치며 떠밀었다.
"그래, 수일이 너, 내 말만 들으면 된다."
경섭이는 허리를 굽히고 밑바닥에 얼굴을 떨어트리고서 새근거리는 수일에게 설명하였다.
"네 발을 매인 밧줄은 말이야, 너의 신랑신부가 그 국수 모양으로 길게길게 백 년을 해로하라는 말이다. 알었니?"
"이 자식 어서 빨리 시작해."
하며 방치를 든 주근깨 많은 놈이 경섭이를 걷어차며 빽 질렀다. 경섭이는 놀라 후닥닥 일어서며,
"그럼 시작헌다."
하면서 수첩을 꺼내어 들었다.
"……글쎄 말이야, 수일이 너는 남의 시굴 가서 그곳 귀한 딸을 훔쳐 왔다 치거든. 그래 이 사람들은 그 시굴 사람들이라 치구 너한테 그 각시를 다시 빼앗어 갈려구 온 게야. 그러니 각시를 안 돌려보내겠으면 그 몸값을 내바치라는 말이다."
"그럼 데려가, 데려가."
하며 수일이가 간신히 대답을 하니, 모두들 너무 우스워 흠뻑 떠들었다.
"이 자식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겠니."
"자― 얼마!"
하고 뻐드렁이빨이 부르짖었다. 그러자 철서덕 하고 수일의 매어 들리운 발바닥에 방치가 세차게 와 부딪쳤다.
그리고 너무 웃기 때문에 쏟아져 나온 눈물을 훔치면서,
"그만해요, 그만해요."
하고 말리었다.
"이년 가만있어. 암만 네가 울어두 수일이는 오늘 밤은 신부 것이야."
라고 뚱뚱이가 막 칠 듯이 방치를 쳐들어 메었다가 길게 혀를 빼어 물고 웃었다. 그리고,
"얼마야!"
하고 수일의 발바닥을 철썩 넘겨 쳤다. 매어달린 몸뚱이 또다시 꿈틀거렸다. 홍도는 그제는 수일의 몸뚱을 안아 일으키듯이 붙들면서,
"아이구 참 이 학생 가엾어라, 그만 동리 처녀 빼앗어 온 죄루 한탁낸다구 빨리 그래요, 그럼 놓아 주어요."
"응 응."
수일이는 그제야 알아차리고 홍도 어깨에 매어달리며 숨이 턱에 닿은 소리를 하였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짐작하였음인지 행렬이 떠날 때 장모가 제 옆채기에 찔러 주던 지전뭉치를 생각해 내고,
"돈두 있어, 있어."
하며 옆채기를 어루지느라 맥빠진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리하여 동상례 턱으로 어린 사내애들의 주연(酒宴)이 전보다 훨씬 질탕히 벌어지었다. 수일이는 제 잔치라면서도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 내심의 흥분이며 정신의 착란과 육체의 피로 때문에, 더욱 그는 무어나 막 먹고 마시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신랑님 첫날밤에 너무 약주 자시면 첫딸을 낳는대요."
하며 홍도는 웃어 대면서 걱정스레 이야기를 붙인다.
"이리 와, 이 간나이."
하고 경섭이는 홍도의 몸뚱을 잡아 끌어당기었다.
"이리 와, 이리. 수일이는 인젠 네 수일이가 아니다. 아주 주인이 생겼으니까."
"그럼 이 자식, 네 주인은?"
주근깨투성이가 장단을 맞추어 물으니까,
"내 주인?"
하고 경섭이는 한번 머리를 슬슬 만적이더니,
"내 주인은 홍도."
하고 그 가는 목덜미를 쓸어안으니, 사내애놈들은 손을 치며 와― 하고 떠들어 대었다.
그 틈을 타서 수일이는 슬쩍 빠져나와 달그림자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한시나 되었는데 차일을 친 내정에서는 아직 여종들과 남노들이 어슬렁어슬렁 뒷정리로 서서 돌고 있다. 임시로 내건 고촉의 전등불이 쌓여채인 멍석더미며, 여기저기 걸려 있는 가마, 소등 이런 것을 희물그레 비추고 있었다. 먼 시골서 올라온 친척들은 수일이가 들어오자 반겨 맞이하러 나왔다. 그때 웬일인지 그는 오늘 밤 무슨 제사라도 지내려는데 제가 그 일에 큰 제물이라도 되던 것같이 가슴이 설레임을 느끼었다.
"빨리 새각시 방으로 들어가우."
김천집은 수일의 앞을 서서 이끌고 가며 잔사설을 늘어놓는다.
"아부님도 아까 들어오셨드랬는데 오늘이야말루 아들의 효도를 받으신다구 아주 기뻐하시드랍니다."
새로 꾸며 놓은 동방(洞房) 가까이 오자 김천집은 치마 속으로부터 한삼을 꺼내더니 수일의 양손에 달아 주며 귓속말로 속삭이었다.
"잊지 말구 외어 두우…… 방 촛불은 이 한삼으루 꺼야지 입으로 불어 끄던가 허면 큰일난답니다. 그건 복을 불어 쫓는 심이야."
수일이는 멍청하니 서서 김천집의 주름잡힌 으슴푸레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에 그는 불현듯 귀애의 생각이 치밀어 오늘 밤이 외로웠다. 김천집의 눈가에도 눈물이 몇 방울 맺혀 흐른다. 귀애와 수일의 사이가 특별하였으며 또 저희들끼리도 풀각시 만들어 부부놀이하며 귀엽게 굴던 생각, 그 귀애는 인제 간 곳이 없고, 제가 수일이를 생소한 남의 집 딸이 들어앉은 방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가 하면 마음이 언짢았다. 그러나 생각하여 무엇 하랴 가까스로 마음을 안돈하고 다시 일러주려는데 그래도 그 말소리는 진작 떨리었다.
"그리구 왼첨에는 새색시의 웃저고리부터 벗겨 주는 법이야. 그다음은 비나동곳…… 걸 모르구 꺼꾸루 하면 일평생 머리털 맞잡고 싸움만 하며 산답니다…… 그리군…… 그리군……."
방 안은 홧홧한 가운데 흐뭇이 뿌린 향수 향기 속에 떠 있는데, 머리맡에 놓인 두 자루의 촉대불은 펄럭펄럭거리며 뽀얀 금가루를 뿌리고 있다. 한옆으로는 초록에 주홍 깃 단 이불이 펴 있으며 봉황이 수를 놓은 구봉침이 놓여 있었다. 복란이는 아랫목 구석에 부처처럼 웅크리고 앉았는데 촉불이 흔들릴 때마다 비녀동곳은 찬란히 빛나 보였다. 수일이는 아랫입술을 깨물고서 촉불 옆에 앉아 때때로 노리듯이 제 신부의 우중충한 몸뚱을 훑어보았다. 어디서 꾸어다 놓은 쌀자루 같다는 속(俗)말을 생각해 보노라니 자연 비겁한 안돈과 잔인한 용기가 생기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문밖이며 영창가에는 친척 부녀들이 모여들어서 동방 속을 엿보느라고 수군수군거리며 키득거리기도 한다. 방문 밖에 수방(守房)으로 서 있는 덕일 영감이 그만 하고 물리치라고 쑹얼거리니까, 술이 건건한 한 여편네는,
"이 영감 그게 무슨 수작이냐 그래. 저런 말만한 새각시에다 애숭이 어린애를 떠맡기구 안심이 돼서 돌아간단 말이냐."
하고 야료를 한다.
"어떤 곳에선 첫날밤에 새각시년이 정남과 틀이허구 어린 새서방을 눌러 죽였다드라."
수일이는 방 속에서 이야기를 듣자 '수수밭 속에서' 이렇게 처가네 농군이 부르짖던 무슨 깊은 곡절이 있는 듯한 말이 鎗큼 생각이 나 가슴이 뜨끔하였다.
"무슨 그런 흉헌 말씀을 다 허세유…… 그러기 이 늙은 게 수방을 헙지유."
"무여 네 영감꼴에 수방이 다 무에냐, 옳지 신랑방두 못 들여다보게 허면서 수방일을 잘 보는 심인데."
"그렇습죠."
"아 이것 봐 청승맞게 그렇습죠라구. 이 등신아! 그래 네녀석이 수일 도련님의 성품이라두 알구 있단 말이냐. 여느 집 똑똑한 새서방처럼 새각시드러 버선을 벗겨 주지 잔등을 긁어 주지 그럴 금새가 되는 줄 알어? 흥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걱정허질 않겠다. 아 이자두 창틈으로 엿보노라니까, 수일 도령이 새각시 앞에서 막 울먹울먹하며 떨고 앉아 있겠지. 그런데 내가 안심허구 돌아가겠단 말이야! 이 영감 그런 수작 또 한번만 해봐라. 나는 결단쿠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떠나지 못해."
그때 끔벅하고 방 안의 불이 꺼져 버렸다. 그래 취중의 여편네는 적이 놀라 눈을 흡뜨고,
"이게 큰일났구나."
하고 부르짖었다.
"저것 보세유. 인젠 불이 꺼졌으니 그만들 돌아가세유."
"참 이게 큰일났어, 네 영감 때문에 볼 것두 못 봤구나! 아, 불을 정말 한삼으로 껐는지. 야― 이거 큰일났구나. 아 그래 여보 비키우 비켜. 내가 좀 들여다볼게. 그래 정말 한삼으로 껐는가유."
"곧잘 끄든데유."
하고 누가 호호호 웃으며 대답한다.
수일이는 캄캄한 속에서 복란의 옆으로 다가앉으면서 약간 겁을 먹은 소리로 거북스레 중얼거렸다.
"난 아무것두 무섭잖어."
그리고 정말 제가 무서워하는 줄 알려질까 두려워하여 마음을 단단히 걷잡으려 하였다. 어둠은 또 용기를 준다.
수일이는 차츰 가슴이 설레었다. 그럴수록 마음을 든든히 가져야겠다고,
"난 취허지 않었어. 술에두 세어."
20
편집수일이는 결혼한 뒤로부터는 더욱 고독의 외롬을 맛보게쯤 되어 매일을 울적한 가운데에서 지내게 되었다. 복란이는 언제나 성난 모양으로 볼이 척 늘어져 가지고 왕방울 눈을 섬석거린다. 그럴 때마다 앞이마에 주름이 미어질 듯이 잡히고, 눈썹을 지리끼면은 그 새에 산모양 깊은 웅덩이가 패곤 하였다. 이런 복란을 앞에 두고 보면 수일이는 더욱 비겁한 잔인감이 끓어올라 늘상 그를 조롱하며 또 개욕을 퍼붓고 몽통스레 때로는 걷어차기도 하였다. 그러나 복란은 겉모양으로 마음도 녹녹지를 않아 씨암탉과 같이 우두커니 맞고 있으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래 수일의 무법 앞에 그는 제 몸을 공손히 내어 맡기지를 않기에 때로는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애당초부터 수모를 받아 두었다는 내종엔 그것이 버릇이 되고 말리라 복란이는 생각하는 터이다.
"호박추니 볼추니 알어 있어? 호박추니."
수일이는 복란이가 기가 막혀 막 대들면 막 대들수록 일종 절망적인 쾌감을 가지고 더욱더욱 호기를 부리며 싫은 소리를 퍼붓는다.
"호박추니 오줌통 볼추니 넓적가우리 데부……."
복란이는 소년 남편이 발과 손으로 치다꺼리를 하려 들면은 제법 그 큼직한 뚱뚱한 몸으로 용감하게 맞대들어 보는데, 이런 듣기 사나운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하면 전혀 무장을 해장(解裝)당한 것처럼 되어,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구들바닥을 치며 왕왕 쳐울기가 일쑤였다.
"아이구 꼴 좋다. 물찬 제비네. 떠오르는 반달이네. 얘, 보기 싫여. 얘, 꿈에 보일까 무서웁다. 빨리 짐 꾸려 가지구 가기나 해……."
수일이는 한참 이렇게 별별 지혜를 다 짜서 욕설을 하노라면 자연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또 그만 멋쩍어지고 나중엔 턱없는 설움까지 복받쳤다. 이럴 때면 김천집은 뚱깃뚱깃하면서 연신 큰기침을 하며 달려왔다.
"얘네들아, 또 왜 이러니, 좀 소련소련히들 살어 보려므나. 거 분주해 살겠니. 잘은 헌다, 저런, 왜 저 지랄이야. 커다만 게 쳐울면서……."
"저를 막 두들겨요."
하며 복란이는 김천집에 서러운 목소리로 호소를 한다. 수일이는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이애야, 지랄 작작 하거라, 만날 너는 두들겨맞는다는 소리만 해가지고 있으니, 이거야 귀 아퍼 견디겠니."
하고 김천집은 복란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첫머리부터 핀잔이다.
"몸이나 적나? 말만해 가지구서…… 좀, 너두 남 소견 사나운 줄을 알어야지. 네 서방이라니 아직 스물 전이요, 그게 무슨 큰 힘이 있겠니, 어린애 일기루 알려므나, 일기루 알라구, 남두 되어 보렸다니 옛날 사람 생각두 좀 해보고 살어야지, 글쎄 제 서방 오줌까지 받어 주며 길러서 살었단다. 넌 네 팔자 좋은 줄을 모르지. 비단포단에 엎드러진 신세인데 무에 부족해 그런단 말이냐, 부족해하기를……."
"그래두 막……."
"그래두가 머냐, 그래두가. 나이 그만헌 게 왜 그리 지각이 없니. 날 보구 살렴, 날 보구 내가 다 아무 소리 없이 살어가는 것을 못 보냐."
하며 욕심에 그득한 얼굴로 한숨을 짓는다.
"이 집 대감 영감 비위 맞추며 살어가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그 백분지 일이래두 뉘가 알어준대면 떠받들겠다. 허기야 대감두 내가 없으면 집안꼴이 안 될 줄이야 알어주시지만 그래도 이 크나큰 집을 맡어 볼려니 심로가 오죽하냐. 어쨌든 여자는 참구 또 참는 게 고작이란다, 고작이야……."
하고 흠싹스레 넉살을 부리고 풍을 떨더니만 후― 하고 꺼질 듯이 또 탄식을 한다. 그러지 않아도 귀애가 이 집을 나가 종적을 감춘 뒤로는 김천집은 푹 맥이 빠지고 몸도 수척하여 뼈만 엉거주춤히 드러났다. 그리고 인제는 전의 등등하던 호기도 줄어들고, 더욱이 수일이가 결혼하자부터는 수일이를 쳐받들고 위함이 각별하였다. 지금 와서는 제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수일이 혼자뿐이라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어떻게 보면 수일이도 인제는 결혼한 어른이라 무서워하기 시작한 모양과도 같았다.
"제발 정 너만이라두 좀 이제부터는 입을 닫구 있어 다우. 사람 죽겠다, 사람 죽겠어. 지금 이 집안이 얼마나 혼탕진탕이냐 말이다."
이러면서 생각하여 보니 차츰 심사가 좋지를 않았다.
"글쎄 말이다, 아 그 해주 화냥년 모녀 그따위들이 다 행세를 할랴구 야단을 칠락허는구나. 그 옥기란 방정맞은 년이란 또 어데서 날도적놈 같은 연석과 붙어 살면서 이 집 와 턱하면 무에든 집어 가기가 일쑤구, 그 어미란 년이 또 그보다 백배 승해서 그걸 막 뒤에서 도와 주구 있는구나. 글쎄 야, 네가 그래서야 쓰겠니. 웃어른두 계신데, 하고 이렇게 바른말을 하는 것이 옳지……."
"어제두 겨냥을 본다구 제 금반지를 가져갔어요."
하고 복란은 겻불을 치며 운다.
"아, 저런 년 봤나."
하고 김천집은 펄적 몸을 일으킨다.
"그래 옥기란 년이?"
"아뇨, 해주 마마가……."
"박살할년 박살할년! 또 탕두질을 하였구나. 그년 오차(五車)에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
하며 김천집은 막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그 즈음은 옥기는 서로 좋아하던 권투선수 김홍식이와 동서(同棲)생활을 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해주집은 홍식을 애지중지하는 외딸 사윗감으로 못마땅히 생각하였으나 이왕 이렇게 된 바에는 좀 잘살게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우람찬 집도 사주고 돈이란 돈은 모두 긁어다 주며 식량일지 시탄일지 심지어 옷감까지도 제 앞으로 담당하는 터였다.
"요즘은 횟박을 쓰구 치맛귀가 너부룩해서 싸다니기에 저년 또 어데다 헐은 놈을 둔 게다 하였더니, 이년이 아마 제 사위놈하고 사는 게로구나!"
하고 나중 마디는 벽력같이 길게 뽑으며 고함을 지른다. 복란이는 놀라 울기를 멈추었다. 김천집이 너무도 흥분하여 기를 쓰는 놀음에 주추러든 것이다.
이런 날 밤에 김천집은 대감이 얼씬만 하면 붙들고 지랄이었다.
"인제는 대감님 마음이 느긋하시겠구려. 눈에 가시이던 귀애두 없어진 지 오래구…… 그래 이년 하나만 더 죽으면 시름을 놓으겠구려."
"……"
"안 죽어! 안 죽어요."
하고 제 김에 기가 막혀 부르짖는다.
"내가 왜 죽을꼬. 제 딸까지 잡어먹은 년이 그리 쉬이 죽을 줄 알어. 그래 인제는 나를 어떻게 해줄 테에요? 수일이두 인젠 클 대로 커서 제 총기가 다 들었는데 언제 이 늙은년을 내어쫓을려고 덤벼들지 안단 말이오. 나는 인제는 아무두 믿을 사람이 없는 사람이야, 날 어떻게 해줄 테에요. 당장 이 자리에서 끝을 내줘요."
"끝을 내라니?"
하고 대감은 천연스레 얼굴을 기우듬한다.
"그래 내 말을 모르겠단 말이오. 어느 년은 딸까지 집을 사 살림을 채릴 장만까지 해주면서 이년만은 왜 이렇게 원통하게 헌단 말이오? 나두 이 담에 죽을 때 널이라도 쓸 돈 장만이라도 있어야지, 누구를 믿고 산단 말이오."
"지랄 말어, 늙은 계집년이."
"아이구, 늙은 계집년이 되어 내가 못 헐 짓을 무에 했단 말이오. 그래 늙은 계집년이 싫여서…… 내 딸 귀애에까지 손을 대었단 말이오."
하며 그만 목을 터치고 울어 대었다. 대감은 멈칫 물러서며 얼굴에 시퍼렇게 노기를 띠더니,
"망할년."
하고 퉁명스럽게 부르짖는다. 그리고 정색을 하였다.
"네년 혼자론 그만헌 것두 많은 셈이지. 제게 좋은 것은 하나두 모르고…… 그만허면 너 혼자에게는 넉넉히 주고도 남는 거야. 그리고 죽두룩까지는 내해 먹고 살금새에 지랄이 무슨 지랄이란 말이야. 수일이가 아무러기서니 내가 살어 있는 동안에야 너 혼자쯤 무슨 걱정이 있단 말인가."
그러면 그제는 김천집은 정말로 제가 이 세상에 혼자뿐이로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어 더욱 슬퍼져 왕왕 쳐울었다.
"귀애야, 귀애야, 네가 어디를 갔단 말이냐."
그러다가는 나중에는 막 대감의 멱살을 잡으며 미쳐 날뛰었다.
"이놈아, 귀애를 내어놔라, 내 귀애를 내어노라구……."
"허, 그게 다 무슨 소린고. 왜 이 지랄인가. 놓아, 놓지 못헐 테야."
"못 놓는다, 못 놓아. 내 딸을 찾어다 놓기 전에는 못 놓는다!"
"내가 자네 딸을 어떻게 했다는 말인가. 그 원 당치 않은 소리를 해가지고…… 그래 또 내가 인륜을 어기는 짓이래도 하였단 말인가. 귀애야 자네가 다리고 온 딸 아닌가. 그게 내 피를 받은 애인가. 그렇지 않어, 그래도 이백 석내기도 자네 이름으로 옮겨 주지 않었나."
김천집은 그제는 더욱더욱 제 몸과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 펄펄 달겨붙는다. 대감은 간신히 벗어나 임금밭 새로 허벌덕거리며 달아났다. 겨우 안전한 곳까지 도망쳐 와서야, 그는 멈춰 서서 씨근거리며 땀을 훔치면서, 계집년이란 왜 이렇게 다루기 힘든 것일까고 한탄하는 것이었다.
해주집은 더욱 살이 비지처럼 올라 하얀 목덜미가 흐밀거리며 걸음을 걸을 때에는 함지만한 엉덩이가 죽가마처럼 출렁거리었다. 지금 와서는 실권에 있어서도 차츰 그는 김천집을 밟고 넘어설 지경이었다. 김천집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그에게는 만족이었고 또 행복스러웠다. 만족과 행복에는 권세도 뒤따르는 것이다. 그래 김천집이 혹시 보이지 않을 때에 해주집은 복란이한테로 달려와서는 세찬 시어머니 구실을 하려고 차부를 대었다. 새로이 들어온 이 복란이를 시험대로 하고 마치 김천집과 해주집은 서로 그 지배력을 다투는 모양과도 같았다. 더욱이 해주집은 딸 부부를 달래기 위하여, 아무거라도 주워 가는데, 그때에 늘 복란이는 희생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주집은 김천집이 보기만 하면 듣는 데에서 우진 사위가 장수같이 기골이 장대하여 믿음직하느니 하고 딸조차 없는 저편 부아를 돋우며 또 대감을 만나면 붙들고 세세한 것 시부룩한 것 모두 갖추 대어서는 조금이라도 더 돈을 타내려 하는 것이다.
"새 며누리 방 차지나 않나 하고 들여다보고 오는 길이랍니다, 대감님."
하고 그는 능살스레 군다. 대감과 같이 단둘잇적에는 체면을 차린다든가 점잖게 군다든가 하는 것이 얼마나 손해인지를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글쎄, 대감님보구니 말씀이지만 참 옥기 애란 년이 아버지께 드린다구 털실루 보선을 뜨구 있겠지요. 역시 그래서 제 아버지가 좋구 또 자식이 좋다는가 봐요. 아 며늘년이야 그렇게 상감마님처럼 해놓구 살면서 아버지께 이렇다는 것 하나 있어요…… 그런데 옥기네는 너무 아무것두 없어 걱정이어요, 참 딱허답니다."
"후―음, 그래서."
"대감님, 참 또 그렇게 넘겨짚으시구서……."
"아무렴, 또 돈을 달라는 말이지. 그런데 그 무슨 돈을 자네는 자꾸 달라구만 그러는가, 무엇에 쓰는지 나는 원 그 모르겠드구먼."
"그래두 또 그 옥기란 년이 금비나 하나두 없어서 바깥 출입두 못허누라구 울기만 허니 어미 된 마음에 되었어야지요. 이렁저렁해서 돈두 퍼그마 가는군요."
하더니만 대감님― 하고 그는 대감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응석을 떨었다. 대감은 자못 만족하였으나, 이 모양을 또 김천집이라도 어디서 보고 있지 않은가 해서 한번 두룩두룩 사방을 살펴보고서야 헤― 하고 웃었다. 그러나 공연한 돈에는 치를 떠는 성미라 갑자기 위의(威儀)를 갖춰야 될 필요를 느끼고, 수염을 입에다 당겨다가 물고 조금 고개를 기우름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대체루 나는 여편네들이 바깥 출입하는 버릇을 좋지 않게 생각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