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개월을 지나지 못하여 자기 수대(數代) 전래하는 주택을 훼철(毁撤)치 아니 못할 운명에 당한 진화는 책보를 곁에 끼고 C사 정문을 나왔다. 문 앞에서 한 번 주저하며 뒤에 있는 현관을 돌아다보며, 이곳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며 나왔다. 위선자, 협잡배들이 가면을 쓰고 권력하에서 굽실굽실 아첨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진화(鎭華)는 생각했다. 그는 머리를 들어 가로에 분주히 다니는 모든 사람 얼굴을 의미 있게 쳐다보었다. 다 평화로운 듯하다. 너는 낙오자이다······. 조소하는 것 같다. 그의 머리에서는 한 달 지나면 집을 헐어야 하는 것이 간단없이 울리어 온다.

그는 자기가 병적(病的) 신경을 가진 것이라고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때에는 행동을 힘껏 고쳐보랴 결심도 하였으나, 이것은 반분의 효험이 없이 경우에 당하면 자기의 병적 맘이 머리를 들고 나오는 것을 심한 고통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나는 생활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국면을 타파하여야 한다. 고식적 생활을 그대로 하여가다가는 비분발광(悲憤發狂)을 하고 말 것이다. 가로상으로 활개를 벌리고, 춤을 추고 돌아다닐 것이다. 그 뒤에는 뭇 애들이 돌멩이질을 하며 따라다닐 것이다. 편집광 병원의 액개물(厄介物)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병원 철창 안에서 봉두난발을 하고 새까만 얼굴에 하얀 이빨을 내놓고 히히 웃으며, 구멍에로 주는 밥을 받아먹으렷다. 아, 나는 아주 머리가 내둘린다.

이 매연과 진애 속에서 죽어가는 해쓱한 얼굴을 가지고 꾸무럭꾸무럭하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다. 어서 뒤에 산이 있고, 산에 수목이 울(鬱)하고, 앞에는 맑은 시내가 탕탕(蕩蕩)하게 흐르고, 거개는 고기 노는 데에······ 가서 살아야 겠다. 무사기(無邪氣)한 순박한 농부들과 함께 술을 먹고, 밥을 먹고 뛰고 노는 것도 또한 취미가 있음 직하다. 새 갓을 쓰고 아침 볕에 영롱하게 빛나는 이슬 맺힌 풀을 밟고 돌아다니는 것도 유쾌하겠지! 종일토록 땀을 흘리고 일하다가 벽공(碧空)에서 떠오는 듯한 둥근 달을 쳐다보고 땅 이불 끌고 돌아올 때에는, 신성하고 순결한 생각이 가슴에서 무럭무럭 나오겠지!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식사를 마치고 신간 서적을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의 형편을 추상할 때에는······. 이와 같은 것을 초월한 묵상을 계속할 때에는, 나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겠지······. 나는 어서 용단을 하여야 하겠다 하였다.

진화는 고민을 망각한 것 같다. 활로를 얻은 것 같다. 전신에 활기가 돋는 듯이 집에 돌아왔다. 아무 말 없이 의복도 갈아입지 않았다. □□지방에 있는 친우들에게 편지를 썼다.

M 자기의 지금에 당한 형편과 도회 생활에 싫증이 난 것이라든가, 전원생활에 동경한 것이라든가를 일일이 단서 없이 썼다. 이와 같은 말은 글자를 굵게 삐었다. 그대의 지방으로 불가불 철이(轍移)할 터이니, 그 지방에 적당한 전장(田莊)이 있으면 가격의 고하를 물론하고 살 터라고 하였다.

진화는 편지를 부친 뒤에도 그 지방에 마침 전장이 있기를 바라고 맘으로 빌었다. 또한 M이 자기를 병적 사상을 가졌다 논의나 아니할는지, 너는 도회 생활을 무상한 과장으로 알더니 금일에 표변함은 어쩐 까닭이냐고 희롱할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에는 편지한 것을 도리어 후회하였다. 그러나 순실한 M의 성격을 아는 진화는 그러할 리가 만무하겠지, 하고 스스로 그러한 생각을 취소하였다.

예상한 것과 다름없이 사오 일 뒤에 M에게서 상세한 회보가 왔다. 내용은 대개 이러하였다. 그대의 지금 경우에 생활을 개량함은 물론 대찬성이나, 그대의 말과 같이 그대가 지방에 와서 농부의 생활을 달게 여기고 할는지 의문이라 하였고, 또한 그대의 체격이 능히 감당할는지 알 수가 없다 하고, 그러나 노동은 신성하다 하니까 그대의 결심 여하에 있다 하였다. 이에 이르러는 자기를 소아와 같이 보았나 하고 성을 내었었다. 진화는 자기 희망대로 전장의 있는 것을 큰 다행으로 알지 아니할 수 없었다. 또한 전원생활에 대한 취미도 약간 쓰여 있다. 그중에 진화가 가장 낯을 붉히도록 부끄럽게 감동한 것은 "전원은 결코 낙오자의 수용소도 아니오, 은둔자의 도피처가 아니외다. 전원생활에는 전원생활의 정신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함이다.

이와 같이 한 일 월 후에 진화의 가족과 집물(什物)을 실은 열차는 남으로 향하여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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